동양의 신화 385
신처를 발견하여, 6년 동안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깊은 명상에 잠기
면서 살았다, 그 기간이 끝나자, 그는 한 명의 전도자로서 베나리스에
나타났다. 처음에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은 그의 정신상태를 의심했다.
그러나 그의 설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신망을 획득했고, 급속도로 유포
되어 그의 생존 중에 전 인도에 퍼졌다. 그는 여든 살에 죽었다.
불교도들은 -베다>>의 가르침이나 그 가운데 규정되어 힌두교도들에
의해 준수되고 있는 종교적 계급을 조금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
들은 또 계급의 차별을 인정치 않으며 모든 유혈 회생을 금하였으며 육
식도 금했다. 그들의 숭려는 모든 계급에서 선출된다. 그 대신 승려들
은 각지를 돌아다니며 걸식생활을 해야 했으며, 특히 다른 사람들이 버
린 폐물을 이용하려고 노력했고. 식물에서 의학적인 효력을 발견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였다. 그러나 실론에서는 세 계급의 승려가 인정되고
있다. 최상급의 승려는 보통 귀족과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써 그들은 주
요한 사원에서 부양되고 있으며, 이러한 사원의 대부분은 이 나라의 옛
군주들로부터 충분한 기부를 받고 있다.
부다가 나타난 후 몇 세기 동안은 이 종파도 브라만으로부터 관대한
취급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불교는 인도 전역에 침투하고 실론과
동부반도에 전파되었으나, 후에는 인도에서 오랫동안 계속하여 박해를
받았다. 그 결과 불교는 그 발생지에서는 자취를 감추었고 인접 여러
나라에 널리 전파되었다. 기원전 65년경에 중국에 전래된 것으로 추정
되며, 그 후 중국에서 한국, 일본, 자바로 전파되었다.
달라이 라마
신의 영흔에서 태어난 인간의 영혼이 언제까지나 신체 속에 유폐되어
있음은 비참한 상태요, 전세에 범한 과실과 최악의 결과라는 교의는 친
두교나 불교에 공통된 교의다. 그러나 때로는 소수의 인간이 지상의 생
존의 낄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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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 자신의 재림이라는 성격을 띠게 되었고, 그러한 전통이 티베트,
중국, 기타 불교가 성행하고 있는 여러 라마 속에서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칭기즈칸과 그 후계자들의 승리의 결과, 티베트에 거주
하는 라마가 그 종파의 교왕(歎王)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특
별한 영토가 그 자신의 영지로서 주어졌고, 그는 영계(業界)의 최고의
지위에 앉았을 뿐만 아니라, 어떤 점에서는 속계 (俗界)의 군주이기도 했
으므로,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처음으로 티베트에 부임한 크리스트교 선교사들은, 아시아의 이런 오
지에 로마 카톨릭교회와 유사한 주교의 궁정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사원
이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여기에는 승려와 여승의 수도원이 있었
고, 화려한 종교적 행렬파 의식이 있었으므로, 여러 선교사들은 이런
유사점 때문에 라마교를 타락한 크리스트교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흑은 크리스트교도들로부터 수입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
다. 이 파의 크리스트교도들은 불교가 티베트로 전해질 때, 타타르(동유
럽에서 아시아에 이르는 지방)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레스터 존
이것은 아마도 행상인에 의하여 전달된 라마, 즉 타타르족 사이의 정
신적인 수령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져서, 그 때문에 북아시아에는 프레
즈비터, 또는 프레스터 존이라는 크리스트교 교주가 살고 있었다는 소
문이 유럽에 퍼졌다.
로마 교황은 그를 찾아내기 위해서 사절단을 파견했고, 수년 후에는
프랑스의 루이 9세도 사절단을 파견했으나, 두 차례 모두 성공하지 못
했다. 그러나 그들은 네스토리우스파라는 크리스트교의 작은 단체를 발
견했는데, 이 사실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인물이 동양 어느 곳에 존
재한다는 신념을 굳혀 주었다. 마침내 15세기에 이르러 페드로 코빌람
동양의 신화 387
(14Kz-1540년경) 이라는 포르투갈의 탐험가가 홍해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아비시네스의 나라(아비시니아, 에티오피아를 말한다)에 크리스트교를 믿
는 왕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이 국왕이야말로 진정한 프레스터 존임에
틀림없다고 단정하고는 그곳을 찾아가. 네구스(에티오피아 국왕의 칭호)
고 부르는 그 국왕의 궁정으로 들어갔다.
388
2. 북유럽 신화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모두 남방의 신화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고
대의 신화나 전설에는 또 하나의 지류가 있는데, 이 또한 이것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 그 신화와 전설은 미국인들이 영국의 선조를 통하여
옛날로 거슬러올라갈 경우, 우리들 자신의 출신지가 될 수도 있는 나라
의 이야기므로 특히 그렇다. 그것은 오늘날의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
이, 아이슬란드로 알려지고 있는 나라에 살고 있는 스칸디나비아인이라
고 부르는 북방민족의 신화다. 이러한 민족의 신화나 전설은 -에다>>라
고하는두권의 책에수록되어 있다. 이 두권가운데오래된것은시
로 되어 있으며, 저작 연대는 1056년까지 土급되고, 비교적 새로운 산
문으로 된 -에다>>는 1640년에 집필된 것이다.
d:에다>>에 의하면, 예전에는 위에 하늘도 없었고, 밑으로 땅도 없었으
며, 오직 끝없는 대양과 안개와 같은 세계가 있었을 따름이며, 이 안개
의 세계에는 하나의 샘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 샘으로부터 열두 개의
시내가 흘러나왔는데, 이 냇물들은 멀리 흘러가면서 얼음이 되었고. 여
러 층이 겹쳐 대양을 메웠다.
안개의 세계 남쪽에는 빛의 세계가 있었다. 이 세계로부터 따뜻한 바
람이 불어와 얼음을 녹였다, 증기가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었고, 이
구름으로부터 이미르라는 서리의 거인과 그 자손 및 아우둠블라라는 암
소가 태어났는데, 거인은 이 암소의 젖을 먹고 자랐다. 그리고 암소는
얼음에서 된 서리와 소금을 할으면서 영양을 취했다. 어느 날 암소가
북유럽 신화 389
소금이 붙어 있는 바위를 할고 있는데, 처음에는 사람의 머리카락이 나
타났다. 다음에는 머리가 나타나고 사흘째에는 아름답고 민첩하고 힘에
넘치는 전신이 나타났다. 이 새로운 생명은 신이었다, 이 신과 그의 아
내가 된 거인족의 딸 사이에서 오딘, 빌리, 베 등의 형제가 태어났다.
그들은 이미르를 죽이고 그의 육체로는 육지를, 혈액으로는 바다를, 뼈
로는 산을, 머리카락으로는 나무를, 두개골로는 하늘을, 그리고 뇌수로
는 우박과 눈이 충만한 구름을 만들었다. 이미르의 눈썹으로는 미드가
르드(중간 세계)를 만들어 장차 인류의 거주지가 되게 했다.
그리고 오딘은 하늘에 태양과 달을 설치하고, 각각 그 진로를 지정하
여 밤과 낮 그리고 계절의 주기를 정하였다. 태양이 그 빛을 대지 위에
비춰 대기 시작하자, 곧 식물의 세계가 싹이 트고 잎이 나기 시작했다.
신들은 세계를 창조한 직후에 그들의 새로운 업적을 기뻐하면서 해변을
거닐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의 업적이 불완전함을 발견했으니, 그것은
인간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신들은 물푸레나무를 가지고 한 남
자를 만들고, 오리나무를 가지고는 한 여자를 만들어, 남자를 '아스케'
라 부르고 여자를 '엠블라' 라고 불렀다. 그런 다음 오딘은 그 두 사람
에게 생명과 영혼을, 빌레에게는 이성과 운동을, 그리고 베에게는 감각
과 표정이 풍부한 용모와 언어를 주었다. 그리고 미드가르드를 그들의
거주지로 부여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인류의 선조가 되었다.
이그드라실이라는 거대한 물푸레나무가 있어 이 나무가 전 우주를 떠
받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 나무는 이미르의 신체에서 나온 것
으로, 세 개의 거대한 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아스가르드
(신들의 거주지)로 뻗치고, 또 하나는 요툰하임 (거인들의 거주지)으로 뻗
치고 세번째 뿌리는 니플레하임 (암흑과 추위의 나라)으로 뻗쳤다. 각 뿌
리의 곁에는 샘이 있어 뿌리는 거기에서 물을 길어 올렸다. 아스가르드
로 뻗친 뿌리는 노른이라는 운명의 세 여신에 의하여 주의 깊게 보호받
고 있었다. 그들은 우르드르(과거) 와 베르단디 (현재) 와 스쿨드(미래) 였
다. 요툰하임 곁에 있는 샘은 이미르의 우물로서, 그 속에는 지혜와 기
390
지가 숨어 있었다. 그러나 니플레하임의 샘에는 니든호게(암혹)라는 독
사가 살고 있어서 이 독사는 끊임없이 뿌리를 파먹고 있었다. 그리고
네 마리의 수사슴이 물푸레나무 가지 사이를 좇아다니면서 새싹을 물어
뜯고 있었다, 그것은 동서남북의 바람을 상징한 것이다. 그 나무 밑에
는 이미르가 누워 있는데, 그가 몸을 흔들어 무거운 짐을 치우려고 하
면 대지에 지진이 일어난다.
아스가르드는 신들의 거주지 이름인데, 그곳으로 가려면 비프로스트
(무지개) 라는 다리를 건너야만 했다. 아스가르드에는 금과 은으로 만든
궁전이 있어 신들은 그 속에 살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오딘이 거주하는 발할라라는 궁전이다. 이 궁전의 옥좌에 앉으면 하늘
과 땅을 다 내려다볼 수 있다. 오딘의 양 어깨에는 휴우긴과 무우닌이
라는 두 마리의 갈가마귀가 앉아 있는데, 그것은 매일 전세계를 날고
돌아와서 보고 들은 바를 남김없이 오딘에게 보고한다. 오딘의 발 밑에
는 게리와 프레키라는 두 마리의 늑대가 누워 있는데, 오딘은 자기 앞
에 차려 놓은 고기를 모두 다 그들에게 준다. 왜냐하면 그는 음식물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유일한 음식물은 벌꿀술이다. 오딘은
또 룬 문자를 발명했는데, 이 문자로 금속의 방패 위에 운명의 신비를
새기는 것이 운명의 여신(노른)들의 임무였다. 오딘의 이름은 때로는 워
덴이라고 쓰기도 하며, 이 이름으로부터 웬즈데이라는 1주일의 네번째
날의 이름, 즉 수요일이 나왔다.
오딘은 종종 올파더라고 불리는 일도 있으나, 이 이름은 때로는 다른
의미로도 쓰여지고 있다. 그에 의하면, 스칸디나비아인은 오딘보다도
더욱 흘릉한 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신은 누구로부터도 창조되지 않
은 영원한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북유럽 신화 391
발할라 궁전의 판락
발할라는 오딘이 거주하던 큰 궁전이었는데, 그는 그곳에서 선발된
영웅들과 연회를 열었다. 그들은 모두 전쟁에서 용감히 죽은 사람들로
서 편히 누워서 숨진 사람은 제외된다. 슈립니르라는 수퇘지고기가 풍
부하게 그들의 식탁에 오른다. 왜냐하면 이 수퇘지는 매일 아침 식탁에
오르나 밤이 되면 다시 원상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음료로는 하이드
룬이라는 암염소로부터 짠 벌꿀술이 영웅들을 위해 충분히 공급된다,
그리고 연회를 하지 않을 때는 무술시합을 하며 즐긴다. 그들은 매일
뜰이나 들로 말을 타고 나가 서로 상대를 갈기갈기 찢을 때까지 싸운
다. 이것이 그들의 오락이다, 그러나 식사시간이 되면 그 상처도 모두
치유되고, 그들은 다시 발할라의 연회로 돌아간다.
발키리오르
발키리오르는 호전적인 처녀들로서, 말을 타고 투구를 쓰고 방패와
창을 가지고 다녔다. 오딘은 거인족과 최후의 결전을 해야 할 날이 왔
을 처, 그들에게 대항하기 위하여 많은 영웅들을 발할라로 모으려고 했
다. 발키리오르들은 이 오딘의 사자로 그 이름은 '전사한 자의 선택자'
라는 뜻이다. 그녀들이 말을 타고 심부름을 갈 때, 그녀들의 갑옷은 이
상한 광채를 발하여 이것이 북쪽 하늘을 비춘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오로라 보레알리스' , 즉 '북극광' 이라고 부른다. I)
1)그레이의 -운명의 자매신-이라는 송시는 이 전설을 바탕으로 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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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와 그 밖의 신들
번개의 신 소르(토르)는 오딘의 큰아들로서 신과 인간들 중에서 가장
강력했는데, 세 개의 대단히 귀중한 보물을 가지고 있었다, 그 첫째 보
물은 망치로써, 그 망치의 위력에 관해서는 서리의 거인이나 산의 거인
도 그것이 자기들을 향해서 날아오는 것을 가장 두려워할 정도였다. 왜
냐하면 그것이 전에 그들의 조상과 친척의 많은 두개골을 부순 일이 있
만기 때문이었다. 이 망치는 던지면 목표물을 맞히고는 저절로 소르의
수중으로 돌아왔다, 그가 가지고 있는 두번째 진기한 보물은 '힘의 띠'
라고 하는 것이었는데, 그가 이 띠를 허리에 두르면 그의 무서운 힘은
배가 되었다, 세번째 것도 대단히 귀중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쇠장갑으
로서 소르가 그의 망치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려고 할 때면 언제나 끼는
것이었다. 이 소르라는 이름에서 영어의 목요일이라는 말이 나왔다.
프레이는 신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신으로, 그는 비와 햇빛 그리고
지상의 모든 과실을 지배하고 관리했다. 그의 누이동생 프레야는 여신
들 중에서도 가장 자비심이 많은 여신으로서, 음악과 봄과 꽃을 사랑했
고, 특히 요정들(영국의 엘프)을 사랑했다. 또 이 여신은 사랑의 노래를
무척 즐기므로 모든 연인들은 그녀를 의지했다.
브라기는 시의 신으로서, 그의 노래는 무사들의 공훈을 기록했다. 그
의 아내 이두나는 사과를 넣은 상자를 보호하고 있었는데, 이 사과는
신들이 노년이 가까웠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맛보면 다시 젊어질 수 있
는 사과였다.
하임달은 신들을 지키는 경호원으로서 거인들이 비프로스트(무지개)
다리를 건너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하늘의 경계에 배치되어 있었
다. 그는 새보다도 잠을 적게 잤으며, 밤에도 낮과 마찬가지로 백 마일
앞을 내다볼 수 있었다. 청각도 대단히 예민했으므로 어떠한 土리도 다
들을 수 있었다. 하임달은 들의 풀이 자라는 소리나 양의 털이 그 등에
북유럽 신화 393
서 자라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로키와 그의 자손들
이 밖에 신들의 중상자(中傷者)요, 모든 사기와 재해의 배후로 알려진
또 하나의 신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로키로서, 그는 미남에다 훌릉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으나, 성질이 몹시 변덕스럽고 극악했다. 그는 원래
거인족이었으나 억지로 신들과 교제하여 간교한 지혜와 술책으로 신들
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고, 위험에서 구해 내기도 하였으며, 이것을
더없는 낙으로 삼고 있었던 듯하다,
로키에게는 세 자녀가 있었다. 첫째 아들은 펜리스라는 '늑대' 였고,
둘째는 미드가르드라는 '독사' 였으며, 셋째는 '헬라(죽음-라는 딸이었
다. 신들은 이 괴물들이 성장해서 언젠가는 신과 인간들에게 큰 해독을
끼치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오딘은 사자를 보내 그들을
데려오는 편이 나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왔을 때 그는 독사를 지구
를 둘러싸고 있는 깊은 바닷속에 던졌다.
그러나 이 괴물은 굉장히 크게 자라서 꼬리를 입에 물고 몸을 동그랗
게 하면 둘레가 자그마치 지구의 둘레 전체와 비등할 정도였다. 다음으
로 오딘은 헬라를 니플레하임 속에 던지고 아홉 개의 세계, 즉 죽음의
나라를 지배할 권력을 그녀에게 부여했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기에게
보내지는 자들, 즉 병이나 노쇠로 죽은 자들을 모두 이 나라에 배당했
다. 그녀의 전망은 엘비드니라고 불렀다. '기아' 가 그녀의 식탁이었고,
'아사(餓死-가 식탁용 칼, '지체' 가 하인, '지둔(運鈍-이 하녀, '절벽'
이 문지방이었고, 근심이 '침대', 격심한 고민이 각 '방의 장식' 이었다.
그녀는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의 육체는 반은 살색이고 반은 푸
른색이며, 무섭고도 몸서리치는 용모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늑대 펜리스는 신들을 몹시 괴롭혔으므로, 끝내는 쇠사슬에 묶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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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았다. 그런데 아무리 튼튼한 쇠사슬로 묶어도 마치 거미줄처럼 쉽게
그것을 끊었다. 마침내 신들은 산신령에게 사자를 보내 글레이프니르라
는 쇠사슬을 만들게 했다, 이것은 여섯 가지의 물건으로 만든 것이었
다. 즉 고양이의 발자국 소리, 여인의 턱수염, 돌부리. 물고기 숨, 곰의
신경 (감수성-새의 타액 등이 그것이었다, 완성되니 그것은 명주실같이
매끄럽고 부드러웠다.
그러나 신들이 늑대에게, 보기엔 하찮은 이 리본을 매도록 권유했을
때, 늑대는 흑시 그것이 요술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여 그
들의 의도를 의심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다시 풀어 준다는 보증으로
신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의 손을 자기 입속에 넣는다면 그것을 매도 좋
다고 승낙했다. 이 일을 맡을 용기를 가진 신은 티르(전쟁의 신)밖에 없
었다. 그러나 늑대는 이 쇠사슬을 끊을 수 없었고, 신들도 그를 풀어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자, 티르의 손을 물어뜯고 말았다. 그 이래
전쟁의 신은 외손이 되고 말았다.
소르가 산의 거인에게 품삯을 지블한 이야기
어느 날 신들은 그들이 거주할 건물을 짓고 있었다. 히드가르드와 발
할라가 집짓는 일을 완전히 끝냈을 때, 한 장인이 와서, '서리'의 거인
들이나 산의 거인들의 습격을 받을 염려가 전혀 없는 튼튼한 거처를 지
써 주겠다고 자청했다. 그피고 그 사람은 그 대가로 여신 프레야와 태
양과 달을 요구했다.
신들은 그가 모든 공사를 아무의 힘도 빌리지 않고 한 겨을 동안에
끝낸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만일 여름의 첫날까지 완
료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 대가를 취소하겠다고 말했다. 이
런 조건을 제시받자, 장인은 스바딜파리라는 그의 말의 사용을 허용해
주기를 요구하였고, 이 요구는 로키의 충고로 허용되었다. 장인은 겨을
북유럽 신화 395
의 첫날에 공사를 착수하여 날도 새기 전부터 말로 하여금 건축용 석재
를 운반궤 했다. 돌이 굉장히 큰 것을 보고 신들은 놀랐다. 그리고 신
들은 그 힘드는 일의 반 이상은 말이 했다는 것을 명백히 깨달았으나,
이미 계약이 체결되었고, 엄숙한 선서까지 행한 후였다. 왜냐하면 어떤
신이라도 이와 같은 경계를 하지 않고서는 거인들 가운데서 안전을 보
장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특히 악마 퇴치의 원정으로부터 소르가 귀환
하지 못하기라도 한다면 더욱 그럴 위험이 컸다,
겨울이 끝날 무렵이 되자, 건축공사는 많이 진척되었고 성채는 높게
구축되어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었다. 여름까지 불과 사흘이 남았을 때
완성되지 않은 유일한 부분은 출입하는 통로뿐이었다. 그래서 신들은
그들의 심판석에 앉아 회의를 열고 그들 중에서 누가 장인에게 프레야
를 주느니 태양과 달을 주느니 하는 제안을 했으며, 그렇게 되면 하늘
은 암혹에 빠지지 않겠느냐 하며 서로 따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것은 이제까지 많은 악행을 범한 일이 있는 로키의 소행
임에 틀림없으며, 만약 그가 장인의 맡은 바 일을 완성하여 약속한 보
수를 받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그를 혹독한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의
견이 나오자,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장인이 보수를 받지 못하도
록 힘쓰겠다고 서약했다.
그날 밤에 장인이 스바딜파리와 더불어 돌을 쌓으려고 나갔을 때, 갑
자기 한 마리의 암말이 숲 속에서 뛰어나와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말
은 고삐를 벗어나 암말의 뒤를 쫓아 숲 속으로 달아났으므로 할 수 없
이 장인도 말의 뒤를 쫓아갔다.
그러는 동안에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었지만, 일은 보통 때와 같이
진척되지 않았다. 장인은 그의 임무를 완성할 수 없게 되자 본래 거인
의 정체를 드러냈다.
그제서야 신들은 그가 사실은 산의 거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는 서약에 구속될 필요를 느끼지 않자, 그들은 소르의 도움을 청했다.
그는 곧 달려와서는 그의 망치를 높이 들어 장인에게 품삯을 지불했다.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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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은 태양이나 달로 지불한 것도 아니었고, 그를 거인들의 거
주지인 요툰하임으로 돌려보냄으로써 지불한 것도 아니었다. 소르는 최
초의 일격으로 거인의 두개골을 깨뜨려 리플레하임으로 내던졌다
망치를 되찾음
한번은 소르의 망치가 우연히 거인 트림의 수중에 들어간 일이 있었
다. 트림은 그것을 요툰하임의 바위 밑 여덟 길이나 되는 깊은 곳에 묻
었다. 소르는 로키를 보내어 트림과 협상을 시켰으나, 로키도 상대를
설득할 수가 없었다. 만일 프레야가 그 거인의 아내가 되기를 승낙한다
면 망치를 돌려주겠노라는 약속을 트림으로부터 받았을 따름이었다. 로
키는 돌아와서 협상의 결과를 보고했다 그러나 사랑의 여신 프레야는
서리의 거인들의 왕 따위에게 자기의 아름다움을 바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일이라며 싫어했다. 사태가 긴급했으므로 로괴는 소
르를 설득하여 소르에게 프레야의 의상을 입히고. 요툰하임으로 데리고
갔다. 트림은 베일을 쓴 그의 신부를 정중히 맞아들였다. 그러나 만찬
으로 여덟 마리의 연어와 큰 황소와 그의 음식물을 먹고 더구나 벌꿀술
세 통을 마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로키는 그녀가 요툰하임의 유
명한 지배자인 신랑을 만나는 기쁨에 여드레 동안이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트림은 마침내 호기심에 못 이겨 그의 신부의 베일
밑을 엿보고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왜 프레야의 눈동자가 불과 같
이 빛나느냐고 물었다. 로키는 변명을 되풀이하였고 마침내 트림은 그
말을 믿었다. 그는 망치를 가져오게 하여 그것을 신부 무릎에 놓았다.
그러자 소르는 변장을 벗어 버리고 그의 무서운 무기를 잡고는 트림과
그 부하들을 쳐죽이고 말았다.
프레이도이상한무기릎긴-인-- -"-_1-'-' -
북유럽 신화 397
는 칼이었다. 프레이도 그 칼을 잃었는데, 소르보다 불행하여 다시는
그것을 손에 넣지 못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프레이는
언젠가 오딘의 옥좌에 올라간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전 우주를 볼
수 있었다. 프레이가 주위를 돌아보고 있을 때, 멀리 거인왕국에 한 아
름다운 처녀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녀를 보자 그는 갑자기 비애에
사로잡혀 그 순간부터 잠도 자지 못하고 음식도 끊고 말도 할 수 없게
되 었다.
마침내 스키르니르라는 하인이 그의 비밀을 탐지하고 그의 칼을 대가
로 준다면 그 처녀를 신부로 맞을 수 있도록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했
다. 프레이는 승낙하고, 하인에게 칼을 주었다. 스키르니르는 길을 떠
나 그녀를 만났다. 그리고 그녀로부터 아흐레 안으로 어떤 장소에 와서
그곳에서 프레이와 결혼하겠다는 언약을 받았다. 스키르니르가 돌아와
서 심부름 간 일이 성공했다는 말을 전하자, 프레이는 이렇게 외쳤다.
하룻밤은 길다
두 밤처럼 길다,
어떻게 세 밤을 지내리요?
보통 때의 한 달이
이 애타는 시간의 반보다 짧게 느껴진다.
이렇게 하여 프레이는 모든 여자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르다를 그
의 아내로 얻었으나, 칼은 영영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소르의 요툰하임 방문
어느 날, 소르는 하인인 시알피를 데리고 로키와 더불어 거인국으로
길을 떠났다. 시알피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걸음이 빠른 사람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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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는 일행의 식량이 든 土르의 큰 배낭뜰 짊어지고 갔다. 밤이 되
었을 때, 그들은 광대한 숲 속에 있었다. 그들은 하룻밤 지낼 장소를
사방으로 찾다가 마침내 대단히 큰 저택을 발견했는데, 그 저택의 입구
는 건물의 한 편을 다 차지할 정도였다. 이곳에서 그들은 잠을 잤으나
한밤중에 지진이 일어나서 건물 전체를 뒤흔드는 바람에 놀라서 잠을
쟀다. 소르는 일어나서 그의 동행자들에게 자기와 같이 안전한 장소를
찾아보자고 말했다. 그들은 오른편에 인접한 방을 발견하고는 모두 그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소르는 손에 망치를 들고, 무슨 일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하고 문간에 서 있었다, 밤새도록 무서운 신음 소리가 들려
왔다. 날이 밝자, 소르가 밖으로 나가 보니, 근처에 굉장히 큰 거인이
드러누워 잠을 자고 있었는데, 코 고는 소리가 굉장했다. 밤중에 그들
을 놀라게 한 것도 이 코 고는 소리였던 것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때만은 소르도 망치를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거
인이 바로 잠을 깼을 때, 소르는 그의 이름을 묻는 것에서 그쳤다.
"나의 이름은 스크리미르요, 그러나 나는 당신의 이름을 물을 필요가
없겠죠. 왜냐하면 나는 당신이 소르 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오. 그런데 나의 장갑은 어디로 갔나? 하고 거인은 물었다.
그제서야 소르는 지난밤에 흘로 지샜던 곳이 거인의 장갑이고, 그의
두 동행인이 유숙하였던 방이 그의 엄지손가락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크리미르는 함께 여행을 하자고 제의했다. 소르가 승낙하자 그들은
곧바로 앉아서 조반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자 스크리미르는 모든 식량
을 배낭에 집어넣고 어깨 위에 메고 앞장서서 큰 걸음으로 걸어갔다.
어찌나 그 걸음걸이가 컸던지 그들은 그를 따라가기가 곤란할 지경이었
다. 그들은 하루종일 길을 걸었다. 해질 무렵에 스크리미르는 큰 참나
무 밑에 야숙할 장소를 정했다.
스크리미르는 그들에게 자기는 자겠노라고 말하고 "당신들은 배낭을
열고 마음대로 식사를 하시오" 라고 말했다.
스크리미르는 곧 잠이 들어, 코를 골기 시작했다. 이때 소르가 배낭
북유럽 신화 399
을 열려고 했지만 거인이 너무 꼭 맸기 때문에 매듐을 하나도 풀 수가
없었다. 마침내 소르는 격노하여 두 손으로 망치를 쥐고 거인의 머리를
맹렬히 내리쳤다. 스크리미르는 부시시 눈을 뜨고 나뭇잎이 자기 머리
위에 떨어졌느냐, 그리고 그대들은 저녁을 먹고 자려고 하고 있느냐고
물을 따름이었다. 소르는 자기들도 자려고 한다고 대답하고는 다른 나
무 밑으로 가서 드러누웠다. 그러나 소르는 도저히 잠을 이를 수가 없
었다. 스크리미르가 다시 숲이 울릴 정도로 크게 코를 골았다. 소르는
다시 일어나서 그의 망치를 쥐고 거인의 두개골을 향해서 머리가 움푹
괠 정도로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스크리미르는 잠이 깨어 부르짖었다.
'거찌 된 일인가? 이 나무 위에 새가 앉아 있는가? 이끼 같은 것이 나
무 위에서 떨어져 내 머리에 맞은 것 같은데,,,,,,. 그런데 당신은 아직
도 안 자오, 소르?
그러자 소르는 자기는 방금 잠이 깼으며 아직 한밤중이므로 찬숨 더
잘 시간이 있다고 말하면서 저쪽으로 급히 가버렸다. 그는 만약 세번째
타격을 가할 기회만 있다면 그때에는 완전히 결판을 내리라고 결심했
다, 날이 새기 조금 전에 그는 스크리미르가 다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망치를 쥐고 전력을 다하여 내리쳤다, 이번에는 손잡
이 외의 모든 부분이 거인의 두개골 속으로 들어갈 정도였다. 그러나
스크리미르는 일어나 앉아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도토리가 한 개 나의 머리 위에 떨어졌소. 여어! 소르, 당신은 잠이
깼소? 일어나서 옷을 입을 시간이 된 것 같소. 우트가르드 시까지는 얼
마 남지 않았고, 나는 당신들이 내가 상당히 큰 사람이라고 서로 속삭
이고 있는 것을 들었소. 그러나 우트가르드에 가면 나보다 훨씬 큰 사
람을 많이 보게 될 것이오. 그래서 당신들에게 충고하겠는데, 그곳에
가거든 지나치게 쁨내지 마시오. 우트가르드 로키의 부하들은 당신들과
같은 소인들이 쁨내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할 테니까. 자, 그곳으로 가려
거든 동쪽으로 뻗어 있는 이 길로 가시오. 나는 북쪽으로 가겠소. 그러
면 이곳에서 헤어지기로 합시다."
~00
이렇게 말하고 거인은 배낭을 메고는 그들과 작별하고 숲 속으로 들
어갔다. 소르는 그를 다시 부르고 싶지도 않았으며 함께 여행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소르와 두 사람은 묵묵히 길을 걸어갔다. 정오 무렵이 되자 평원 한
가운데 서 있는 한 도시를 발견했다, 그 도시는 허단히 논인 솟안 있었
기 맥문에 꼭대기를 바라보려면 목을 뒤로 젖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놀란 얼굴로 시내로 들어갔다. 한참 걷다 보니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궁전이 보였다. 그들은 궁전으로 들어갔다. 그곳 홀에는 거대한
체구를 가진 사람들이 걸상에 앉아 있었다. 일행은 안으로 깊숙이 들어
가 그 나라의 왕 우트가르드 로키 앞으로 갔다. 일행은 그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했다. 그러자 왕은 경멸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들을 바
라보고 말하였다. "만일 내 눈이 틀림없다면 저기 있는 저 젊은이는 土
르 신이지?
그리고 소르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마 그대는 보기보다는 재능이 있을 것 같소. 그대와 그대의 부하
들이 자랑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오?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재주를 한
두 가지 가지지 않은 자는 이곳에 머무를 수 없土."
"내가 가지고 있는 재주는" 하고 로키는 말했다. "누구보다도 빨리
먹는 것이오. 이곳에 있는 누구든 원하는 자가 있다면 나와 겨루어 봅
시다. "
"사실이 그렇다면 그것도 재주임에 틀림없소. 곧 시험해 봅시다"라고
우트가르드 로키는 말했다.
왕은 걸상 저쪽 끝에 앉아 있는 로기라는 그의 부하들 가운데 한 사
람에게 이리 나와서 로키와 재주를 겨루어 보라고 명령했다. 고기를 산
처럼 담은 좁다랗고 긴 구유가 흘 마룻바닥에 놓이자, 로괴는 구유 한
끝에 자리 잡고로기는다른끝에 자리잡았다 두A~~o ~~- --
북유럽 신화 401
어 치웠으므로, 결국 로키의 패배라는 판결이 내렸다.
다음에 우트가르드 로키는 소르와 같이 온 젊은이는 어떤 재주를 가
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시알피는 자기와 달음박질 경주를 할 수
있는 자와 경주하기를 원한다고 대답하였다. 왕은 달음박질을 잘한다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나, 그 젊은이가 경주에 이기려면 대단한 민첩성
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왕은 일어서서 어전에 있던 사람들을
다 데리고, 경주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있는 들판으로 나갔다. 그리고
후기라는 한 젊은 사람을 불러 시알퍼와의 경주를 명하였다. 첫번째 과
정에서 후기는 그의 상대자를 상당히 앞섰기 때문에, 한 바퀴 돌아 출
발점에서 멀지 않은 지점에서 그를 만났을 지경이었다. 계속하여 그들
은 두번 세 번 달렸으나 시알피는 역시 실패했다,
우트가르드 로키는 다음에는 소르에게, 천하에 떨치는 그의 용맹의
증거를 무슨 재주로 보여 주고 싶냐고 물었다. 소르는 누구하고든 마시
는 경쟁을 하기를 원한다고 대답했다. 우트가르드 로키는 물 따르는 자
로 하여금 큰 뿔잔을 가지고 오게 했는데, 그것은 그의 부하들이 향연
의 법규를 조금이라도 위반했을 때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잔이었다.
술 따르는 자가 그것을 소르에게 내밀자 우트가르드 로키가 말했다.
"잘 마시는 자는 단번에 그 뿔잔을 다 비을 것이오. 보통사람은 두
번 만에, 아주 보잘것없는 자도 세 번 만에는 비을 것이오."
소르가 그 뿔잔을 보니 약간 길기는 했으나 그다지 크지는 않았다, 그
는 몹시도 목이 말랐기 때문에 잔을 입술에 대고 단숨에 쭉 들이켰다.
그러나 잔을 놓고 안을 들여다보니, 물은 조금도 준 것 같지 않았다.
그러자 숨을 쉬고 나서 소르는 온 힘을 다하여 다시 들이키기 시작했
다. 그러나 잔을 입에서 떼고 보니, 전보다도 오히려 적게 마신 것 같
이 생각되었다. 술은 넘쳐 흐르지는 않았으나, 찰찰 넘치도록 남아 있
었다.
"소르여, 어떻소?라고 우트가르드 로키는 말했다, "수고를 아껴서는
안 되오. 세번째에 다 마셔 버리려면 깊이 들이마셔야만 하오. 미리 말
X-~~~x~ u_. -
것보닷
보신,e.
-단치
그것도
-
--公 乏
~ul O」"
-규표-'---
:--,b
_F물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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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할
지刃-v:건
틸쓴모. 1것-데단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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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조
자에게
로키논
금--
들려준져다.
칼례다.
料Iii닌I~理
전력을
알만탁.
'당신을
I)I'
卑技臺 術보라는 거요7'-하고 소르는 물었다.
"하한은 유회가 있는데" 하고 우트가르드 로키는 대답하였다.
퇴하여
그는
낀띤띤
낄틴렬II
솜씨를 발휘하여
"그것
은 이곳에서는 아이들밖에는 그 누구도 하지 않는 유희요. 다름이 아니
라 나의 고양이를 지면에서 들어올리는 일이오. 나는 당신을 전에 생각
했던 것처럼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이 눈으로 안 봤다면, 이와
같은 짓을 위대한 소르에게 해보라고 권하지는 않았을 것이오."
그가 말을 끝마쳤을 때, 큰 회색 고양이 한 마리가 흘의 마루 위로
뛰어나왔다. 소르는 손을 고양이의 배 밑에 넣고, 있는 힘을 다하여 고
양이를 마루 위에서 들어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고양이는 등을 구부리
고 소르가 아무리 노력해도 겨우 한쪽 발을 올렸을 뿐이었다.
결국 소르는 단념했다,
"역시 내가 생각한 바와 같구려"라고 우트가르드 로키는 말했다. "고
양이는 크고, 土르는 우리에 비하면 작으니까."
"작다고 하지만" 하고 소르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당신들 중에 누구
든 분노에 불타고 있는 내 앞에 나을 자가 있다면 보여 주시오. 나와
퇴름을 해봅시다. "
"이곳에는" 하고 우트가르드 로키는 걸상 위에 앉아 있는 자들을 바
라보며 말했다. "당신하고 씨름하기를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소. 나의 유모 엘리 할멈을 이리로 불러오너라. 그리
북유럽 신화 403
고 소르가 원한다면, 그녀와 씨름을 시키도록 하라, 그녀는 언제인가
소르에 못지않은 남자를 거꾸러뜨린 일이 있다."
곧 이가 다 빠진 노파가 흘 안으로 들어왔다. 우트가르드 로키는 그
녀에게 소르의 몸을 잡으라고 명령했다. 사정은 미리 설명되어 있었다.
그래서 소르는 노파를 세차게 붙잡았다, 그리고 세차게 다뤘지만 노파
는 완강하게 서 있었다. 맹렬하게 달라붙어 용을 쓴 끝에 소르는 발을
헛디디고 비틀거리다가 마침내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우트가르드
로키는 그들에게 이제 그만두라고 명령하고, 소르는 이제 흘에 있는 다
른 사람과 씨름을 해볼 필요도 없으며, 날도 저물었다고 덧붙였다. 그
리고 그는 소르와 그의 동료들을 좌석으로 안내했다. 일행은 그날 저녁
푸짐한 대접을 받으며 유쾌하게 보냈다.
이튿날 날이 새자, 곧 소르와 그 일행은 옷을 입고 출발준비를 했다.
우트가르드 로키는 그들을 위하여 식사준비를 명하고 충분한 음식과 음
료를 대접했다. 식사가 끝나자 우트가르드 로키는 그들을 성문까지 전
송하고, 이별할 때 소르에게 이번 여행의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고. 또
그대보다 힘센 사람을 만났느냐고 물었다.
소르는 큰 수치를 당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당신이 나를 변변치 않은 자라고
생각하리라는 것이오"라고 덧붙였다.
"아니오"라고 우트가르드 로키는 말했다, "그대가 이제 시외로 나왔
으므로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살아서 지배하고 있는 한 그대를 다시
이곳으로 들여보내지는 않을 것이오. 맹세하지만, 그대가 그처럼 강대
한 힘을 가졌고, 또 자칫하면 나를 파멸케 할 뻔한 것을 미리 알았더라
면, 나는 이번에 그대가 이곳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
오. 지금에야 이야기하지만, 나는 이제까지 쭉 그대를 마법으로 속였던
것이오. 첫번째로는 저 숲 속에서였소. 그때 나는 배낭을 철사로 매어
그대가 풀 수 없게 했었소. 그때 그대는 나를 망치로 세 번이나 때렸
소. 첫번째 타격은 제일 미약한 것이었으나 사실 그것이 나를 정면으로
404
때렸더라면 나는 죽었을 것이오. 그러나 나는 옆으로 몸을 피하여 그대
의타격은세번다산위에떨어졌던것이오. 그산에가보니세 개의
계곡이 생겼는데, 그 중 하나는 매우 깊소. 이 움푹 들어간 곳이 다 그
대의 망치에 의하여 생긴 곳이오.
나는 그대들이 나의 부하들과 한 경쟁에 있어서도 그대들을 속였소.
첫번 시합에서 로키는 기아의 화신처럼 그의 앞에 있는 것을 다 먹어치
웠소. 그러나 로기는 사실 '불'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소. 그래서 고
기뿐만 아니라 그것을 담은 구유까지도 먹어 버린 것이오. 시알피와 경
주를 한 후기는 실은 '생각' 이었소. 따라서 시알피가 그것과 보조를 맞
추는 일은 불가능하였소. 그대의 차례가 되자 그대는 뿔잔을 비우려고
했는데 분명히 말하건대, 그대는 하도 경탄할 만한 일을 완수했기 때문
에 나 자신이 그것을 목격하지 않았더라면 믿지 않았을 것이오. 그대는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그 뿔의 한 끝은 바다와 연결되어 있었소. 해안에
가보면 그대가 들이마셨기 때문에 바닷물이 줄어든 것을 알 수 있을 것
이오. 또 그대가 고양이를 들어 올린 것도 마찬가지로 경탄할 만한 일
이었소. 사실 그 한쪽 발이 마루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을 때 우리는
모두 공포에 떨었소. 왜냐하면 그대가 고양이로 여긴 것은 사실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미드가르드 뱀이었기 때문이오. 그런데 그대가 잡아당겼
기 때문에 뱀은 그 머리와 꼬리로 지구를 둘러싸려고 했지만 모자랐소.
또 그대가 엘리와 한 씨름도 놀랄 만큼 공적이었소. 왜냐하면 엘리는
사실은 늙은 산맥이었고, 그녀에게 정복당하지 않은 자는 과거에는 물
론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오. 그런데 이제 우리가 작별할 즈음하여
다시 그대가 나의 곁에 오지 않는 것이 우리들 서로에게 좋을 것이라고
말해 두겠소. 왜냐하면 그대가 다시 온다면 나는 또 그대를 다른 마법
으로 속여 방어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대는 헛수고만 하고 나와의
경쟁에서 아무런 명성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오."
이 말을 듣자 소르늘 겨노하여 -入金 란과르 드1르 料金 .11~고
북유럽 신화 405
를 파괴해 버리겠다는 생각으로 되돌아갔지만, 그곳에는 이히 푸른 들
판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발두르의 죽음
선-善)의 신 발두르는 매일 밤 무서운 꿈에 시달리고 있었다. 꿈은 그
의 생명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암시하고 있었다. 발두르는 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꿈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신들은 발두르로 하여금 절박한 위
험을 면하게 해달라고 천지만물에게 간청했다.
오딘의 처 프리카는 불이나 물, 쇠, 그 밖의 모든 금속, 돌, 나무, 여
러 질병, 짐승, 새, 독물, 파충류들에게 강요하여 아들인 발두르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았다. 오던은 그것으로 만족하
지 않고, 아들의 운명을 염려하여 앙게르보데라는 여자 예언자를 찾아
가 보기로 했다. 그녀는 거인으로서 펜리스와 헬라와 미드가르드 뱀의
어머니였는데, 이미 죽었기 때문에 오딘은 그녀를 찾으러 헬라의 나라
(지옥)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다른 신들은 프리카가 한 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는, 발두
르를 표적으로 하여 어떤 신은 창을 던지기도 하고, 어떤 신은 돌을 던
지기도 하고, 어떤 신은 칼이나 도끼로 찍기도 하며 즐겁게 놀았다. 왜
냐하면 그들이 아무리 난폭한 짓을 하더라도 발두르는 조금도 해를 입
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그것은 신들이 즐기는 오락이 되었고,
발두르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생각되었다. 로키는 이 광경을 보자 발두
르가 상해를 입지 않은 데 대해서 기분이 몹시 상하였다. 그는 여인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펜살리르라는 프리카의 저택으로 갔다. 프리카는 이
여인을 보자 신들이 저렇게들 모여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들이 발두르를 향하여 창이나 돌을 던지나 아무도 발
두르를 해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프리카는 말했다.
40~
"그렇다. 돌도 곤봉도 그 밖의 어떠한 것으로도 발두르를 해칠 수 없
다. 나는 그들로부터 다 서약을 받았으니까."
"아아! 모든 것이 발두르를 해치지 않겠다고 서약하였습니까?"하고
여인은 감탄하면서 외쳤다.
"모든 것이지" 하고 프리카는 대답했다.
"오직 발할라 동쪽에서 자라고 있는 한 작은 관목만은 예외지. 그것
은 '겨우살이' 라는 나무인데, 너무 작고 약하기 때문에 서약을 받을 필
요가 없다고 생각했소. "
로키는 이 말을 듣고 물러갔다. 그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그 겨
우살이'를 베어 가지고 신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
호두르(발두르의 형제)가 눈이 멀었기 때문에 이 유회에 참가하지 않고
혼자 서 있는 것을 보고 그의 곁으로 가서 말했다.
'개 당신은 발루르에게 무엇을 던지지 않는 거요?"
"나는 눈이 멀어서 어디에 발두르가 있는지 볼 수 없고, 뿐만 아니라
던질 것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오" 하고 호두르는 대답했다.
"그러면 이리로 오시오." 로키는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덧붙였다,
"당신도 다른 사람과 같이 하시오. 그리고 이 나뭇가지를 발두르에게
던져서 그에게 경의를 표하시오. 내가 당신의 팔을 그가 서 있는 곳으
로 향하게 해주리다, "
호두르는 '겨우살이' 를 손에 단단히 쥐고서 로키의 부축을 받으며 발
두르를 향해 힘껏 던졌다. 그러자 발두르는 그 나뭇가지에 몸이 배뚫려
죽고 말았다.
참으로 이런 잔악한 일은 일찍이 신들이나 인간 사이에서는 볼 수 없
었던 일이었다. 발두르가 쓰러졌을 때 신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아무 말
도 못 하고 서로 바라보며, 이런 짓을 한 자를 잡아야 한다고 저마다
다짐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 있는 곳이 신성한 곳(평화의 땅)이었기 때문에 복
수를 미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너무나 슬퍼 대성통곡했다. 그들
북유럽 신화 407
이 정신을 차렸을 때 프리카는, '여러분 중 나의 모든 사랑과 호의를
획득하기를 원하는 자는 없느냐' 고 물었다.
"나의 사랑과 호의는 저승에 가서 헬라에게 다시 한 번 발두르를 아
스가르드로 돌려보내 준다면 그 몸값을 치르겠다는 말을 전해 주는 사
람에게 주리라"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오딘의 아들로 '민첩한 자' 라는 별명을 가진 헤르모드
가 자기가 가겠다고 자청했다. 그러자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바람보다
도 빨리 달리는 오딘의 준마가 끌려나왔다. 헤르모드는 이 말을 타고는
그의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마구 달렸다. 아흡 낮 아흡 밤 동안 그는
아무것도 분별할 수 없을 만큼 어둡고 깊은 계곡을 달려, 마침내 교을
이라는 강에 이르러, 그 위에 걸려 있는 금빛 찬란한 다리를 건넜다.
이 다리를 지키고 있던 처녀가 그의 이름과 혈통을 묻고, 전날 다섯 명
의 죽은 사람들이 건널 때보다 그 흔자 건너는 지금, 다리가 더 흔들린
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런데 당신은 죽은 자의 관상을 띠고 있지도 않은데. 왜 저승으로
달리고 있습니까? 하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발두르를 찾으러 저승으로 가는 길이오, 혹 그가 이곳을 지나
가는 것을 보았습니까?
그녀는 대답했다.
"발두르라면 교을 강의 다리를 건너갔습니다. 그가 죽은 자의 나라로
간 길이 저기 보입니다,"
헤르모드는 길을 재촉하여 마침내 저숭의 빗장 지른 문이 있는 곳까
지 왔다. 이곳에서 그는 말에서 내려 안장을 더 꼭 졸라맸다. 그리고
다시 말 위에 올라가 말에 박차를 가했다. 말은 훌릉한 솜씨로 문을 조
금도 건드리지 않고 단숨에 뛰어넘었다.
헤르모드는 말을 달려 궁전에 이르러, 그의 형 발두르가 흘 안 가장
훌릉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밤을 형과 함께 보냈다. 이
튿날 아침 헤르모드는 헬라에게. '제발 형을 자기와 함께 돌아가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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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고 간청하고, '지금 신들 사이에는 비탄의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
는다' 고 말했다. 헬라는 발두르가 사실 그의 말과 같이 모든 사람의 사
랑을 받고 있는지 시험해 보아야겠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만약 세상 만물이 생물이거나 무생물이거나 간에 그를 위해
서 울고 있다면 환생시괴겠소. 그러나 만약 단 한 가지 물건일지라도
그를 좋지 않게 말한다든지 울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저승에 계속 가두
어 둘 거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헤르모드는 아스가르드로 돌아가서 그가 듣고 목격한 바를 모두 보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신들은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사자를 파견하여 발두르가
저승으로부터 구출되도록 울어 주기를 만물에게 간청했다. 만물은 쾌히
이 요구를 받아들여 인간이나 그 밖에 다른 동물도, 홀도, 돌도, 나무
도, 금속도 다 울어 주었다.
그 모양은 우리가 혼히 보는 일이지만 마치 이런 물건들을 찬 곳으로
부터 더운 곳으로 옮기면 그것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양과 비슷했다. 죽
은 사람들이 돌아오는 도중에 그들은 타우크트라는 마법사 노파가 동굴
속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녀에게도 발두르가 저승으로부터 구
제되기 위해서 울어 주기를 간청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타우크트는 마른 눈물로
발두르의 화장하는 불을
통곡할 것이다.
헬라여, 그를 자신처럼 단단히 놓치지 않기를.
이 마법사야말로 항상 신들과 인간 사이에 끊임없이 해악을 끼치는
인물로 등장하는 로키였으리라고 추측된다. 이렇게 하여 발두르는 끝내
아스가르드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북유럽 신화 409
발두르의 장례
신들은 발두르의 시체를 해안으로 운반하였다. 그곳에는 세계에서 가
장 큰 발두르의 배 흐링함이 정박하고 있었다. 발두르의 시체는 이 배
에 쌓아 놓은 화장용 나뭇더미 위에 놓였다. 이 모양을 본 그의 아내
난나는 너무도 슬퍼한 나머지 심장이 터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녀의
시체도 같은 나뭇더미 위에서 남편의 시체와 함께 불태워졌다. 발두르
의 장례에는 각계 각층의 군중들이 큰 무리를 지어 참가했다. 오딘이
그의 아내 프리카와 발키리오르 그리고 그의 갈가마귀들을 동반하고 누
구보다 먼저 왔다. 다음에는 굴린부르스티라고 하는 산돼지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프레이가 왔다. 하임달은 굴토프라는 그의 말을 타고 왔
다. 프레야는 고양이가 이끄는 이륜차를 타고 왔다. 그 밖에 많은 '서
리' 의 거인들과 산의 거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발두르의 말은 성장을 하
고, 화장용 나뭇더미가 있는 곳으로 끌려와서 그의 주인과 같이 불태워
졌다.
그러나 로키는 그가 당연히 받을 벌을 피하지는 못했다, 신들이 분노
하고 있는 모양을 보고 그는 산 속으로 도망쳐 사방으로 문이 난 오막
살이를 짓고 흘로 살았다. 그렇게 하면 어느 쪽에서 위험이 닥쳐오든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물고기를 잡는 그물을 만
들었다. 그러나 오딘은 그의 은신처를 발견하고 신들은 그를 잡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는 이것을 보고 연어로 변신하여 시냇물 속의 돌 사이에
숨었다. 그러자 신들은 로키가 발명한 그물을 끌고 시냇물을 훌었다,
로키는 자기가 잡힌 것을 알고 그물을 뛰어넘으려고 했다. 그러나 소르
1)롱펠로의 시집에 (테그너의 찬가)(테그너는 스웨덴 시인 사이아스 테그넬(1782-1~~
을 말함)라는 제목의 시가 있는데, 이것은 바로 이 발두르의 죽음을 주제로 한
것이다.
410
가 그의 꼬리를 쥐고서 꼭 죄었다, 그 이후 연어는 꼬리가 현저하게 얇
고 가늘게 되었다. 그들은 로키를 쇠사슬로 꽁꽁 묶고 그의 머리 위에
뱀을 매달아 그 독액이 한방을 한방을 그의 얼굴 위에 떨어지게 하였
다. 그의 아내 시구나는 그의 곁에 앉아, 그 독액이 떨어지는 것을 컵
속에 받는다, 그러나 그녀가 그 컵을 비우러 밖으로 들고 나갈 때에는
독액이 로키 위에 떨어져, 그는 공포로 고함을 치고 온 지구가 진동할
정도로 몸을 비튼다, 이것이 인간들이 지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요정
-에다>>가운데에는 신들만은 못하지만, 큰 힘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족속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그것은 요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백색
(白色)의 요정, 즉 빛의 요정은 특히 아름답고 태양보다도 더 찬란하고
섬세하고 투명한 직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다. 그들은 빛을 사랑하고
인간에게 친절하며 항상 아름답고 사랑스런 아이들의 모습으로 나타났
다. 그들의 나라는 알프하임이라고 부르는 태양의 신 프레이르의 영토
였는데, 그들은 이 태양신의 빛 속에서 항상 놀고 있었다.
혹색의, 즉 밤의 요정들은 다른 또 하나의 족속이었다. 그들은 보기
싫고 긴 코를 가진 난쟁이로서, 더러운 갈색 피부를 하고 밤에만 나타
났다. 왜냐하면 그들은 태양 광선이 비치면 바로 돌로 변해 태양을 가
장 무서운 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언어는 한적한 곳의 산
울림이었고, 그들의 거처는 지하의 바위틈이었다. 그들은 이미르의 섹
은 시체에서 생겨난 구더기로부터 탄생한 것으로 추측되며, 후에 신들
에 의해서 인간의 형태와 위대한 지혜가 부여된 것으로 생각되어졌다.
그들은 특히 자연의 신비스러운 힘에 대한 지식의 소유자로서, 또 룬
문자를 새기고 설명한 자로서 유명하다. 그들은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
장 솜씨 좋은 장인이었고. 금속이나 목재를 재료로 하여 제작했다. 그
북유럽 신화 411
들이 만든 제작물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소르의 망치와 프레이르에
게 준 스키드블라드니르라고 하는 배였다. 이 배는 토든 신과 그들의
전쟁 용구, 그리고 가구를 실을 수 있을 만큼 큰 동시에, 접으면 호주
머니 속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교묘하게 만든 것이었다
라그나로크, 즉 신들의 황흔'
북방민족에게는 다음과 같은 굳은 신앙이 있다. 즉 어느 펀가는 가시
적인 모든 피조물과 발할라와 니플레하임의 신들과 요툰하임, 알프하
임, 미드가르드의 주민들이 그들의 거처와 더불어 파멸할 때가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무서운 파멸의 날이 올 때까지는 여러 가지 전조가 나타날
것이라 했다. 우선 삼중(三重)의 겨울이 올 것이며, 그 동안 하늘의 네
귀퉁이로부터 눈이 내리고 서리는 혹독하고 바람은 찌르는 것 같고 폭
풍우가 계속되어 태양은 아무런 즐거움도 주지 않을 것이다, 단 한 번
의 여름도 없이 겨울만이 3년 동안 계속된다. 그 동안 전쟁과 내란이
온 우주에 퍼질 것이다. 지구까지도 놀라서 몸을 떨 것이며, 바다는 그
해상-海床)을 떠나고, 하늘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무수한 사람이 죽고 공
중의 독수리는 아직 움직이고 있는 그들의 시체를 먹을 것이다. 늑대
펜리스는 그제야 그의 쇠사슬을 끊을 것이며, 미드가르드 뱀은 바닷속
에 있는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나을 것이며, 로키는 그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신들의 적에 가담할 것이다.
이 전면적인 황폐 속에서 무스펠하임(불꽃의 나라)의 아들들은 수르투
르를 선두로 하여 돌진해 올 것이며, 그들의 전후에는 불꽃과 타오르는
불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말을 달려 무지개 다리 비프로스트를 건널
1)사실은 '황흔' 이 아니고 '멸능이라는 뜻.
412
것이며, 그때 다리는 말발굽 밑에서 파괴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
리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비그리드라는 싸움터로 행진할 것이다. 늑대
펜리스와 미드가르드 뱀과 헬라의 모든 부하들을 대동한 로키와 '서리'
의 거인들도 그곳으로 갈 것이다.
이때 하임달(다리지기)이 일어서서 신들파 영응들을 전쟁에 소집하기
위하여 기알르라는 뿔피리를 불 것이다. 이 선두에 서는 것이 오딘이
다. 그는 늑대 펜리스와 교전하나 이 괴물에 의하여 희생되고 만다. 그
러나 이 펜리스는 오딘의 아들인 비다르에 의하여 참살된다. 土르는 미
드가르드의 뱀을 죽임으로써 큰 명성을 얻지만 비틀비틀 뒷걸음질치며
쓰러지고 만다. 단말마의 괴물이 토한 독기 때문에 질식하게 되는 것이
다. 로키는 하임달과 맞붙어 둘 다 참살된다, 신들과 그들의 적이 전사
한 후에는 프레이를 죽인 수르투르는 전세계에 불과 불꽃을 던져 전 우
주는 불에 타 사그라진다. 태양은 어두컴컴하게 되고, 지구는 바닷속에
가라앉고, 별들은 하늘로부터 떨어지고 시간도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된
다. 이런 일이 있은 후에 알파두르(전능의 신-는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지구가 바다 한가운데서 떠오르게 할 것이다.
그 새로운 대지에는 물자가 풍부하여, 힘써 일하고 가꾸지 않더라도
저절로 농산물이 생산될 것이며, 또한 부정과 비참이 자취를 감추고 신
과 인간은 함께 즐겁게 살게 된다는 것이다.
룬 문자
덴마크나 노르웨이 또는 스웨덴을 잠시 여행하면 언뜻 보아도 우리가
사용하는 문자와는 전혀 다르게 보이는 룬 문자가 각인된 여러 가지 형
태의 큰 돌들이 눈에 들어을 것이다. 이 문자는 거의 다 직선으로 되어
있고 작은 막대기가 하나 흑은 여러 개 합쳐져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막대기는 고대에 북방민족이 앞으로 닥쳐을 일을
북유럽 신화 413
알기 위하여 사용했던 것이다. 여러 막대기를 뒤혼들어 섞어서 형성되
는 형태로 일종의 점을 펐다.
룬 문자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것은 주로 마술적인 목적에
사용되었다. 유해한 혹은 그들이 말하는 '쓰라린' 문자는 그들의 적에
게 여러 가지 재난을 불러일으키게 하기 위해서 사용되었으며, 유리한
문자는 재난을 막는 데 썼다. 어떤 문자는 의술적인 작용을 했고, 어떤
문자는 사랑을 얻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후대에는 묘지에 새기는 비명
에 사용하는 일이 많았는데, 현재 발견된 비명만 해도 천 개가 넘는다.
그 언어는 스칸디나비아어 (노르웨이어의 고대형)라고 하는 고트어의 한
방언으로, 현재도 아이슬란드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비명은 정확
히 해독할 수 있으나, 역사를 조금이라도 밝혀줄 수 있는 것으로 이제
까지 발견된 것은 극히 드물다. 왜냐하면 그 대부분이 묘석에 새겨진
비문뿐이기 때문이다.
스칼드
스칼드는 북방민족의 음유시인이나 시인을 의미하는데, 문명의 초기
단계 때 모든 사회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 족속이었다, 그
들은 역사적으로 전승해야 할 기록의 보관자였으며, 고금의 영웅들의
고전을 시와 음악으로 능숙하게 음송함으로써 무사들의 살풍경한 향연
에 지적인 기쁨을 가미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였다. 이 시인들의 작품을
-사가-라고 불렀는데, 그 대부분의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
다. 또한 이것들은 역사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내용을 포함
하고 있으며, 그 작품이 제작된 당시의 사회상태가 어떠하였나를 충실
히 묘사하고 있다.
414
아이슬란드
-에다-와 -사가>>는 아이슬란드로부터 우리에게 전해졌다. 다음에 발
췌한 칼라일(1795-1⑥1,영국의 비평가 , 역사가)의 -영웅과 영웅 숭배>>에
관한 강연의 한 구절1)은 우리가 이제까지 읽어 온 여러 기이한 이야기
가 발생한 나라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독자 여러분과 고전적 신화의 발생지인 그리스와 이 나라를 잠시 비
교해 보자,
"저 기이한 아이슬란드, 지질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불의 작용에 의
하여 해저로부터 폭발하여 솟아올랐다는 섬, 황량한 용암의 나라, 1년
중 대부분은 검은 폭풍우 속에 잠겨 있으나, 여름에는 야성적인 미에
빛나는 나라, 눈에 덮인 요쿨(산들),고함치는 게이시르(끓어오르는 온
천-유황의 못, 황폐하고 흔돈된 '서리' 와 '불' 의 싸움터와 같은 화산
의 균열이 있는 북해에 준엄하게 우뚝 솟아 있는 섬, 모든 지역 가운데
서도 문학이니 문서상의 기록을 발견할 가능성이 가장 회박한 섬에서
이와 같은 사건이 기록된 것이다. 이 황량한 나라의 해변에는 다행히도
풀이 우거진 지역이 있어 가축이 생존할 수 있으며, 인간은 그 가축과
해산물을 양식으로 생활을 영위한다. 그리고 이들은 시정이 풍부하고
또한 깊은 사상을 소유하고 있어서 그 사상을 음악적으로 표현하였던
것 같다. 만약 아이슬란드가 바다 가운데서 폭발해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고대 스칸디나비아인들에 의하여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그 손실
은 실로 막대했을 것이다?
1)제-장 (신으로서의 영웅) 참조.
북유럽 신화 415
드루이
드루이 (드루이드)라는 것은 갈리아, 대영제국, 독일 등의 지역에 거주
하던 고대 켈트 민족 사이에서 믿었던 종교의 사제 흑은 승려를 말한
다. 그들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그리스와 로마의 작가들의 기록과 현존
하는 웨일스와 게일의 언어로 된 시를 비교하여 얻은 것이다.
드루이는 사제, 행정관, 학자 또는 의사의 직무를 겸했다. 그들의 지
위는 인도의 브라만 계급, 페르시아의 마기, 이집트의 사제가 각 민족
에 있어서 차지하는 지위와 매우 유사하였으며, 그들은 그 민족 성원들
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드루이들은 우주에 존재하는 신은 오직 한 사람이라 가르쳤고, 그 신
을 '베알' 이라 불렀는데, 켈트 민족의 고고학자들의 학설에 의하면 그
것은 '만물의 생명' 혹은 '만물의 원천' 이라는 의미로써, 페니키아의
바알 신과 유사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 유사점은 드루이나 페니키아인이 모두 그들의 최고신을 태
양과 동일시했다는 사실에서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불은 신의 상징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로마 작가들의 주장
에 의하면, 드루이들은 또 무수한 하급 신들을 숭배했다고 한다, 드루
이들은 그들의 숭배의 대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우상도 사용하지 않았
고, 종교상의 의식을 거행하기 위하여 사원이나 기타 건물에 모이는 일
도 없었다. 돌을 원형으로 세운 것(그 돌은 일반적으로 컸다)이 그들의 성
역이었는데, 그 면적의 지름은 20피트 내지 30야드였다. 현재 남아 있
는 것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영국의 솔즈베리 평원에 있는 스톤헨지
라는 것이다.
이러한 원형의 성지는 일반적으로 어떤 냇가 부근이나 혹은 작은 숲
이나 가지가 널리 퍼진 참나무 그늘 밑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원의 중
심에는 크롬레크라고 하는 제단이 있었다. 그것은 여러 개의 돌기등 위
416
에 한 장의 크고 편편한 돌을 올려 놓은 것으로 마치 테이블과 같았다.
드루이들은 또 그들의 예배소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높은 언덕
위에 있는 여러 개의 큰 돌 혹은 돌더미였다. 이 돌을 캐어른이라 불렀
는데, 그것은 태양을 상징하는 신을 예배할 때 사용했다.
드루이들도 그들의 신에게 희생물을 제공하였으리라는 것은 의심한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들이 무엇을 제공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그들의 종교적 의식에 관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고대 고전(즉 로마) 작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드루이들은 특별한 제전
때, 예컨대 전쟁에 이겼을 때나 위험한 병에서 구제되기를 기원할 경우
에는 인간을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카이사르가 이 행사의 모습을 자세히 보고하고 있다,
"그들에겐 거대한 우상이 있는데, 우상의 사지는 나뭇가지를 꼬아 만
들고, 그 안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넣는다. 이에 불을 지르면 속에
있는 사람들은 화염에 싸이게 된다."
켈트 계 (운) 작가들은 이 사실에 대해 로마의 역사가들의 증언을 반박
하려고 갖가지 방법을 시도했으나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드루이들은 매년 두 차례의 제전을 거행하였다, 첫번째 제전은 5윌초
에 행했는데, 베알타이네(벨테인-즉 '신화의 불' 이라고 불렀다. 이 제
전 때에는 태양의 영예를 위하여 산꼭대기에 큰 불이 점화되었는데, 이
렇게 하여 그들은 겨울의 침울과 황폐 후에 태양의 혜택이 다시 돌아온
것을 환영했다.
이러한 습관은 지금까지도 스코틀랜드의 여러 지방에 그 자취들이 남
아 있는데, 그것은 성령강림제를 '백의 (白次)의 일요일' 이라고 부르는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월터 스콧 경은 -호상(湖上)의 미인-가운데
있는 (뱃노래) 속에서" 이 베알타이네라는 말을 쓰고 있다,
1)제2字 19절
북유럽 신화 417
우리는 베알타이네에 피어나서,
겨올이면 시들어 버리는
샘물 곁에 서 있는 어린나무 따위는 아니다.
그 밖의 드루이들의 다른 큰 제전은 '삼인' , 즉 '평화의 불' 이라고 일
컫고, 헬로 이브(11월 1일-쎄 거행되었는데, 스코틀랜드의 고지에서는
아직도 이 이름이 그대로 쓰이고 있다. 이날 드루이들은 그 지방의 가
장 중심이 되는 곳에 함께 모여, 엄숙한 회의를 개최하고 그들의 사법
적 직무를 수행한다. 공과 사의 모든 문제, 인격과 재산을 침해한 모든
범죄가 이 기회에 그들 앞에 제소되고 재판을 받았다,
이러한 사법 행위에는 어떤 미신적인 관습이 결부되어 있었는데, 특
히 성화의 점화를 들 수 있었다. 그 지방에 있는 모든 불을 완전히 다
끈 뒤에, 이 성화로 다시 점화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헬로 이브에 점화
하는 관습은 영국의 모든 섬에 크리스트교가 확립된 후에도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이 두 개의 큰 연례 제전 외에 드루이들은 보름달, 특히 초승달이 뜨
기 시작한 후 여섯번째 날을 축하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날 그들은 그
들이 사랑하는 참나무 위에 기생한 겨우살이를 찾아다녔다. 그들은 이
겨우살이와 참나무에 특별한 덕과 신성이 깃들여 있다고 생각했다, 그
러므로 이것을 발견하면 모두들 대단히 기뻐하며 엄숙한 예배를 시작했
다. 플리니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2)"그들은 그것을 그들의 언
어로 '만병통치약' 이라는 뜻의 말로 부르고 있다. 그리고 이 나무 밑에
서 엄숙하게 잔치를 치르고 제물을 준비한 후에, 우윷빛이 나는 황소
두 마리를 그곳으로 몰고 온다. 그리고 그 뿔을 이때 처음으로 결박한
다음 휜 예복을 입은 사제가 그 참나무 위에 을라가 황금 낫으로 겨우
I)옛날 켈트족의 달력으로는 이날이 1次의 첫날이다.
2, (박물지-제16권 95'장,
418
살이를 벤다. 그들은 그것을 횐 보자기에 싼 다음 신이 선물을 준 자들
에게 그것이 효능이 있게 해주십사고 기원하면서 황소를 참살해 나간
다." 그리고 그들은 겨우살이를 달인 물을 마시는데, 그것을 만병통치
약으로 생각하였다. 겨우살이는 기생식물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참나무
에서만 생긴다고는 할 수 없고, 또 자주 발견되는 것이 아니므로 소중
하게 여겨진다.
드루이들은 종교상의 지도자임과 동시에 도덕상의 지도자이기도 했
다. 그들의 윤리적 교훈의 귀중한 표본이 웨일스의 음창(吟唱)시인들(바
드)의 삼제가(三題歌) 속에 남아 있는데, 그것을 보면 우리는 그들의 도
덕관이 전체적으로 정당하며 그들의 행위가 대단히 고상하고 귀중한 원
리를 많이 지니고 가르쳤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또 그들의 시대와 민
족에 대한 연구가이기도 했고, 과학자이기도 하였다. 그들이 문자를 알
고 있었는지의 여부는 여러 가지로 논의되어 왔는데,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개연성이 강하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의 교리나 역사나 시를 문
자로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들의 가르침은 모두 말에
의한 것이었으며, 그들의 문학(이런 경우에 이런 말을 사용해도 좋다면)은
오직 입과 기억을 이용한 전승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나 로마의 저
술가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들은 대자연의 질서나 법칙에 많은 주의를 기울였으며, 천체와 그
운행, 세계와 여러 나라 국토의 크기, 불멸의 신들의 위력파 권력에 대
해 많은 것을 연구하고, 그들이 맡고 있는 청년들에게 가르쳤다,-
드루이의 역사는 조상의 영웅적 업적을 칭송한 전설로 되어 있었다.
운문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그것은 드루이들의 역사인 동시에 시였다,
-오시안의 시>>는 실제로는 드루이시대의 작품이 아닐지라도 그때의 음
창시인들의 노래를 충실히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온창시인들은 드루이들 가운데서도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1)카이사르의 -갈리아 펀기-제6권 14절 참조.
북유럽 신화 419
페난트(17-영국의 박물학자 고문연구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
다. "음창시인들은 신의 영감과 동등한 힘을 부여받은 것으로 생각되었
다. 그들은 공적인 것이든 사적인 것이든 과거에 일어난 모든 사건을
구술하는 역사가였다. 그들은 또 능란한 계보학자들이기도 했다....... "
페난트는 드루이의 직무가 다른 부문에서는 소멸된 후에도 수세기 동
안 웨일스 지방에서 행하여진 음창시인과 음유시인들의 대회인 아이스
테드포드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대회는 재능 있는 음창시
인이 아니면 자기 작품을 음송하기를 허용하지 않았고, 또 능숙한 음유
시인이 아니면 연주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능력을 판정할 심판관이 임
명되었고 적당한 등급이 수여되었다. 초기에는 웨일스 왕이 심판관들을
임명할 정도였고, 웨일스가 1284년 에드워드 1세에 의해 정복당한 후에
는, 영국의 왕에 의하여 임명되었다. 그러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에드
워드 1세는 웨일스의 대중들이 음창시인들에게서 감화를 받아 그의 통
치에 반항하게 되었다고 하여 그에 대한 복수로써 그들을 몹시 잔혹한
방법으로 처형했다고 한다.
드루이의 조직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지휘 아래 로마군이 대거 침입
하였을 때가 전성기였다. 이들 세계 정복자들은 그들의 주요한 적으로서
드루이들을 맹렬하게 박해했다. 드루이들은 본토 도처에서 박해를 받았
다. 이들은 마침내 앵글 시와 아이오너 섬으로 퇴각하여 그곳에서 잠시
동안 피난생활을 하면서 모욕받은 그들의 의식을 계속해 나갔었다.
드루이들은 아이오너와 그 인근 도서 및 본토에서 그들의 세력을 유
지하였으나, 마침내 하일랜드(스코틀랜드 북서부의 고지로서, 옛날 켈트족
이 거주했던 지방)의 선교사인 성 롤룸바가 옴으로써 그들의 지위와 미신
은 전복되었다. 그 지방 주민들은 콜룸바에 의하여 최초로 크리스트교
신앙으로 인도되었던 것이다.
420
아이오너
아이오너는 영국의 여러 섬들 중에서도 가장 작은 섬의 하나다. 울퉁
불퉁한 황량한 해안 부근에 위치하고 위험한 바다에 들러싸여 내부에
아무런 자원도 가지고 있지 않은 섬이지만, 아이오너는 역사상 불멸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북구의 모든 나라들이 이교의 검은 구름
에 뒤덮여 있었을 때에도 이 섬만이 문명과 종교의 중심지로서 살아 남
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오너 혹은 이졸므킬이라고 부르는 이 섬은
'멀'이라는 섬 말단에 있으며 멀 섬에서 약 반 마일 폭의 해협을 사이
에 둔 지점에 위치하고, 스코틀랜드 본토와의 거리는 36마일이다.
콜룸바는 아일랜드 태생으로 왕족이었다. 아일랜드는 스코틀랜드의
서부와 북부가 아직 이교의 암혹 속에 잠겨 있을 때, 이미 복음의 빛이
비친 나라였다. 563년에 콜룸바는 열두 명의 사도를 데리고 버들가지와
짐승가죽으로 만든 배를 타고 아이오너 섬에 상륙하였다. 그러나 이미
이 섬을 점령하고 있던 드루이들도 콜룸바가 그곳에 정착하는 것을 막
으려 하였고, 인근 해안의 야만족들도 적의를 가지고 그를 괴롭혔으며,
때로는 공격하여 그의 생명을 위태롭게 했다. 그러나 그는 인내심과 열
성을 가지고 모든 반대를 극복하고 왕으로부터 그 섬을 기증받아 그곳
에 수도원을 세우고 그 원장이 되었다, 그는 불굴의 노력으로 스코틀랜
드의 하일랜드와 여러 섬에 성서의 지식을 펴나갔다. 그에 대한 존경은
대단하여 주교도 아닌 일개 장로 수도사에 불과했으나, 모든 교구 사람
들이 그 주교들과 더불어 그와 그의 제자들에게 순종했다. 그 중에서도
픽트족(스코틀랜드 북동부 지방에 卜-세기경까지 정주했었던 민족)의 왕은
콜룸바의 예지와 그 덕성에 감복한 나머지 그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헌
고, 인근의 족장이나 왕들도 롤룸바에게 조언을 바라게 되었고, 그의
판단에 따라 서로의 분쟁을 해결하였다,
콜룸바는 아이오너에 상륙하였을 때, 열두 명의 사도를 동반하였는
북유럽 신화 421
데, 그는 이들을 구성원으로 하여 하나의 종교단체를 조직하고 그 지도
자가 되었다. 결원이 생길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때때로 이 단체에 가
입했으므로, 최초의 열두 명이라는 인원은 언제나 유지되었다. 그리고
그 건물은 수도원이라 부르고 그 우두머리는 원장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제도는 후세의 수도원 제도와는 공통점이 거의 없었다. 그
회칙에 복종하는 사람들은 '쿨디' 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그것은 아
마 라틴어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에서 유래했던 것 같다. 그
곳은 복음의 설교, 청년들의 교육, 공동 예배에 의한 신앙심의 유지와
같은 공통적인 일에 상호부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단결한 종교인의 단체
였다. 이 수도회에 들어가려면 몇 가지 서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그 서약도 일반 수도원에서 과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왜냐
하면 독신,빈곤 복종, 이 세 가지 중에서 쿨디는세번째 것만을실천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빈곤에 구속되지는 않았고, 반대로 그들
자신과 그들에 의존하는 자들에게 안락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부지
런히 일했던 것 같다. 그들의 아내가 수도원에서 그들과 같이 거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정된 가까운 곳에
서 살 수는 있었다. 지금도 아이오너 부근에 '여인의 섬' 이라고 부르는
섬이 있는데, 이곳에서 그들의 남편은 의무상 학교나 수도원에 출석하
지 않으면 안 될 때를 제외하고는 그들과 같이 살았던 것 같다.
이러한 점이나 그 밖의 점에 있어서 쿨디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기
성 교리를 범하였기 때문에 이단시되었다. 그 결과, 카톨릭 교회의 세
력이 커감에 따라 쿨디의 세력은 쇠퇴해 갔다. 그러나 정식으로 쿨디
교파가 탄압을 받아 해산된 것은 13세기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나 그들
은 개인적으로 일을 계속했으며, 최선을 다해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침
략에 저항했다. 그러는 동안에 종교개혁의 여명이 온 세계에 비추기 시
작했다.
아이오너 섬은 서쪽 바다에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그 바다를 횡행하
던 노르웨이와 덴마크 해적의 침범을 받기 일쑤였고, 여러 번 약탈을
3p!
422
당하여 가옥은 소실되고 평화스러운 주민들은 그들의 칼에 피살되덖다.
이러한 불리한 사정 때문에 아이오너는 점점 쇠퇴하게 되고, 스코틀랜
드 전역에서 쿨디들이 멸망한 후에는 더욱 그러했다. 로마 카톨릭 교회
가 지배하게 되자 아이오너는 수녀원의 소재지가 되었고. 지금도 그 유
적을 찾아볼 수 있다. 종교개혁 때 수도원은 철거췄으나 수녀들은 남아
서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 허용뤘다. (1561년)
아이오너 섬은 지금은 주로 관광객이 찾아드는 곳이 되었다. 이곳에
는 수많은 교회와 묘소를 포함한 유적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에서도 중요한 것은 대성당 혹은 대교회당과 수녀원에 딸린 예배
당이다. 이러한 크리스트 교회의 유적 외에 더 오랜 시대의 다른 유적
이 있는데, 이는 아이오너에 크리스트교의 숭배와 신앙과는 다른 형태
의 신앙이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것은 원형의 석총(石琢)으로서 각
지방에서 발견되는데, 드루이들의 것으로 생각된다.
423
3. 슬라브 신화
신들의 탄생, 원시적 이원론(二元論)
슬라브 신화의 기원에서 우리는 하나의 원시적 이원론을 발견한다.
이것은 생명을 주는 힘으로서의 빛과 파괴력으로서의 어둠의 대립에서
유래한다. 이 양자의 기본적인 대립은 슬라브 세계의 서방 지맥 (文脈)에
해당하늘 여러 민족 사이에서 발견되는 두 신상(神像-을 낳았다. 벨로보
그 (sield,O-와 체르노보그(Tchemobog)가 그것이다.
그 이름의 구성 자체가 그들의 성격을 밝혀 준다, '벨로보그' 는 '희
다'는 의미를 지닌 형용사 '벨리' 와 '신'을 뜻하는 명사 '보그' 로 이루
어진다. 형용사 '초르니'는 '검다'는 뜻이다. 즉 이들은 빛과 낮의 신인
횐 신과, 어둠과 밤의 신인 검은 신으로-그것은 또한 선-書)의 신과
악(惡)의 신이다-서로 대림한다.
얼마간 기록된 증언에 따르면, 이교 시대의 슬라브족의 반제사장 겸
반주술사인 볼흐프들은 이렇게 말했다 한다.
"두 분의 신이 있는데, 한 분은 하늘에, 다른 한 분은 땅에 있다."
우크라이나인들 사이에는 지금도 "너 같은 건 검은 신에게 죽는 게
낫다?라는 표현이 남아 있다.
백러시아에서는 벨룬-벨리'-희다는 뜻-의 파생어) 의 존재를 믿고
있다. 널리 알려진 전설 속에, 이 신은 횐 옷에 횐 수염을 기른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낮에밖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그 행위는 언제나
424
선행에 한정된다. 즉 길을 잃고 헤매는 나그네를 위험에서 구해 내고.
밭에서 일하는 불행한 농부를 돕는다.
벨로보그와 체르노보그의 단순한 대립 관계로 모든 다양한 자연 현상
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신들의 모습이 원시 신화의
'흑=백' 의 배경 속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자연 숭배, 전원(Ee③)의 신들, 하늘과 그 자식들
이교 시대의 슬라브인이 하늘에 기도를 올리며 "하늘이여, 저를 보아
주세요-아버지여, 제 말을 들어 주세.인" 하고 말할 때, 그것은 그의
입장에서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그는 하늘을 하나의 지고(至高)
의 존재, 하나의 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난 뒤에 이교 시대의 슬라브족 원시종교 속에 신을 인격화
해서 보는 여러 경향이 침투하자, '하늘' 은 본래의 성격을 상당히 남긴
채 스바로그(svarog)신의 형태로 의인화되었다. 이 명칭의 어근(스바르
는 빛나다, 밝다는 뜻)은 산스크리트어와 관계가 있다.
'하늘' -스바로그)은 두 명의 자식을 낳았다. 다지보그(I뜰bog)란 이름
의 '태양' 과 스바로그의 자식이라는 뜻의 스바로기치 (svarogitch)라는 이
름의 '불(火-이 그것이다.
비잔틴 제국의 어느 연대기 작가(잔 마랄라-는 이교 시대의 슬라브족
의 우주 창조설적 신화를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요약하고 있다.
'小바로그의 뒤를 이어 '태뜰 이라 불리는, 또 다지보그라고도 불리
는 그의 자식이 지배자의 지위에 올랐다. ,,,,,, '태뚱은 황이고 스바로
그의 자식이며 다지보그란 이름을 지녔다. 그는 강력한 지배자였기 때
문이다. "
스바로그의 다른 또 하나의 자식-'불' (슬라브어로는 오고니, 이것을
산스크리트어의 아그니 (인도 바라몬교의 불의 신)와 관련지을 수 있다)-은
슬라브 신화 425
이교 시대의 슬라브족에 대해 말한, '크리스트의 미지의 숭배자' 라 불
리는 먼 옛 시대의 어느 저술가의 저작 속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되고
있다,
"그들은 또한 불을 스바로기치라 부르며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하늘' (스바로그)은 다른 모든 신의 아버지이다.
슬라브의 옛 신화에 따르면, 스바로그는 우주를 지배한 뒤에 만물을
창조하는 지고의 힘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었다,
많은 슬라브 여러 나라에서는 농부들이 지금도 불에 대한 신비스런
숭배심을 지니고 있다. 불은 언제나 신성한 성격을 띠고 있고, 노인들
은 젊은이들에게 집안에서 불을 붙이려 할 때에는 큰소리로 떠들거나
맹세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도 전설이나 민화 속에 옛 신화의 시적-請約)인 혼적이 보존
되어 있고, 그 중에 입에서 불을 토하는 날개 달린 괴물 '불뱀'의 이야
기가 있다,
스바로그의 또 한 명의 자식인 '태양(다지보그-에 대해서는, 러시아
의 학자 아파나시에프가 그 아버지 및 형제와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하
고 있다.
"하늘이 의인화된 신으로서의 스바로그는 때로는 햇빛에 비치고, 때
로는 구름에 덮인 채 번개로 빛나며 '태똘과 '불'의 아버지로 여겨지
고 있었다, 자욱히 긴 어두운 구름 속에서 스바로그는 번개의 불을 점
화하고, 이리하여 천상의 불의 창조자로 나타난다. 지상의 불은 번개의
형태로 지상에 전해진 신의 선물이었다. 슬라브 민족이 어째서 불을 스
바로그의 자식으로 숭배했는지 이것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스
바로그는 번개의 화살로 자욱히 낀 구름을 꿰뚫어 태양이 밝게 빛나게
하고, 고대의 은유적인 언어로 말을 하면서 어둠의 악령들에 의해 꺼져
가는 태양의 횃불에 불을 붙인다. 이러한 시적인 개념은 밤의 장막을
열고 떠오르는 아침 해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일출(日出)에, 그리고
아침마다 태양의 불길이 붉게 타오르는 데 태양의 재생이라는 관념이
ercls
426
결합되었다. 따라서 스바로그는 '태톨 에 생명을 주고 다지보그를 이
세상에 낳은 신이었다."
슬라브 신화나 전설에 따르면 '태양' 은 동방의 풍요롭고 영원한 여름
나라에 산다. 그 땅에 우뚝 솟은 그의 황금의 궁전에서 '태꿀은 아침
마다 불길을 토하는 백마들이 끄는 빛나는 마차를 타고 하늘을 일주하
러 나선다.
폴란드 민화 속에서는 '태좋은 황금 갈기를 지닌 12마리의 백마가
끄는 다이아몬드 이륜마차로 산책을 한다.
또 다른 전설 속에서는 '태양'은 동방의 어떤 황금 궁전에 살며 은말
과 금말과 다이아몬드 말 등 세 마리가 끄는 마차를 타고 그의 코스를
달린다.
세르비아인들 사이에서는 '태양' 은 젊고 아름다운 왕이다. 빛의 왕국
에 살며 황금과 주홍색 천으로 장식된 왕좌에 앉아 있다. 그 곁에는 두
명의 아름다운 처녀 '새벽의 오로라'와 '석양의 오로라', 그리고 일곱
명의 재판관(행성)과, '꼬리 달린 별' 의 모습을 하고 우주를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일곱 명의 '사자(혜성-가 있다. 거기에는 또 태양'의 재머
리 백부(伯父-인 '늙은 메시아츠(슬라브어로 달이란 뜻, 슬라브 민족 사이
에서는 이 천체의 이름의 남성이다>'가 있다.
러시아의 민간 전설에서는 '태끙 은 12개의 왕국을 다스리고 있다(12
개월, 또는 황도價料의 12궁). 이 '태틀은 하늘의 태양 안에서 살고, 그
자식들은 각각의 별에서 산다. 자식들은 그들을 목욕시켜 주고 충실히
돌보아 주며 그들에게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 주는 '태양의 처녀들'의
시중을 받고 있다.
천구상(天理上)에 있어서의 '태양' 의 하루의 운행은 슬라브의 몇몇 신
화에서는 그 나이의 변화로 표시되고 있다. 즉 '태양'은 아침마다 태어
나 아름다운 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한낮에는 성년에 이르며, 해질
녘에는 노인으로 죽는다. '태양' 의 1년간의 운행도 그와 비슷한 방식으
로 설명된다,
슬라브 신화 427
슬라브의 몇몇 신화나 전설은 '태양'과 '달'의 관계를 사람 사이의
관계와 비슷하게 해석하고 있다. 슬라브어의 '달' 의 이름-메시아츠
-이 남성인데도, 많은 전설은 메시아츠를 젊은 아가씨로 표현하며
여름이 시작될 때 '태뜰과 결혼하고 겨울이 되면 이듬해 봄이 돌아을
때까지 '태양' 과 헤어진다고 설명한다,
'태뜰 과 '달', 이 부부는 '별' 들을 낳는다. 이 부부의 기분이 나쁘고
사이가 험악해졌을 때 지진이 일어난다.
다른 신화에서는 그와 반대로 메시아츠가 남편이고 '태양 이 그 아내
이다. 우크라이나의 어느 가요(歌謠)는 '교교히 비치는 메시아츠' 가 주
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대궁전(하늘-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데, 거기에
서는 밝게 빛나는 '태양'은 그의 아내이고, 그들의 자식들이 빛나는
별' 이다.
오늘날에도 슬라브의 액막이 문구 속에는 '아름답고 가련한 달' 을 향
해 병의 치유를 기원하는 것이 다소 있다.
또 우크라이나의 어느 전설 가요의 주인공은 '가련한 태양'을 향해
"신이시여, 저를 도와 주소서, 한 남자를-하고 호소한다.
낮과 빛의 위대한 신격-어둠과 추위와 가난의 정복자인 태양신
(다지보그)은 행복의 동의어가 되어 있다, 인간의 운명은 이 신의 손에
맡겨져 있다. 이 신은 공평하고 정의롭다. 나쁜 자를 벌주고, 착한 사
람에게는 상을 준다.
폴란드 갈리차 지방의 슬라브인은 오늘날에도 누군가에게 불행이 찾
아들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너 같은 건 '태똘에 죽어 버리는 게 나?
하고 말한다. 크로아티아의 농민은 "태끙 이 너에 대한 내 원한을 풀
어 주시길? 하고 말한다.
그런데 앞에서 어떤 슬라브의 전설을 인용하고 그에 따르면 '태뜰
곁에서는 두 명의 '태양의 처녀' 인 '오로라' 들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오로라' -슬라브어로는 조리아(또는 자리아)-도 또한 신격으
로 간주되어 왔다. '새벽의 오로라(조리아 우트렌니아이아, 우트로는 아침
428
이라는 뜻-는 '태양' 이 천공(天空)으로의 여행을 시작할 때 하늘의 궁전
문을 연다. '석양의 오로라(조리아 베체르니아이아, 베체르는 석양이라는
뜻-는 '태양' 이 자기 궁전으로 돌아오면 문을 닫는다.
훗날의 어느 신화는 그 조리아에게 특별한 임무를 부과하고 있다.
"하늘에 세 자매, 세 명의 가련한 처녀 조리아가 있다. '석양의 조리
아' 와 '한밤의 조리아' 와 '새벽의 조리아' 이다. 그녀들은 쇠사슬로 '작
은곰자리'에 매인 개 한 마리를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쇠사슬
이 끊기거나 하면 그때는 세계의 종말이 찾아을 것이다,"
그래서 세 명의 가련한 조리아는 전 우주의 중요한 수호자인 것이다.
슬라브 신화에서는 자매인 두 명의 '조리아(오로라-곁에 때때로 두
명의 자매 '별' 이 붙어 있는 일이 있다. '샛별' 인 즈베즈다덴니차와 '태
백성 (해가 진 후 서쪽 하늘에 보이는 금성-인 베체르니아이아 즈베즈다이
다. 그녀들은 조리아들과 일을 분담하고 '태양' 의 백마들을 돌본다.
그녀들 중 한 명인 덴니차는 몇몇 전설 속에서는 '태양' 대신 메시아
츠(달)의 아내가 되어 있다. 세르비아의 어느 전설 가요 속에서 메시아
츠가 덴니차를 책망하며 말한다. "당신은 어디 가 있었소, 별의 덴니차
여? 대체 어디 가 있었던 거요? 어디서 당신은 세월을 헛되이 보내고
있었소? 어디서 세월을, 밝은 나날을 사흘씩이나 헛되이 보내고 있었
소?"
러시아의 어느 오랜 액막이 문구 속에 덴니차는 신 가운데 가장 위대
한 신과 거의 같은 신격을 지닌 신으로 나타난다. 그 액막이 문구는 이
렇게 말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신과 덴니차께 기도를 올리자?
또 다른 액막이 문구 속에서 사람들은 '샛별' 을 향해 이렇게 기도한다.
"내 어머니이신 베체르니아이아 즈베즈다(샛별)시여. 저는 당신께 호
소합니다. 저 12項의 아가씨들, 12명의 재앙의 아가씨들(열병)의 일을."
이교 시대의 슬라브인들은 또한 바람의 신 또는 신들을 믿고 띤었다.
그 신앙의 흔적이 다음과 같은 기모한 액막이 문구 속에 남아 있다.
"바다 위에, 대양(大洋) 위에, 부얀 섬 위에 세 명의 형제, 세 명의
슬라브 신화 429
'바람'이 살고 있다. 첫째가 '북풍', 둘째가 '동풍', 셋째가 '서풍'이
다. '바람' 이여, 부소서, (어느 모 여인) ,,,,,,에게 견디기 어려운 슬픔을
날려보내 그녀가 단 하루, 단 한 순간이라도 나를 생각지 않고는 보낼
수 없도록?
서풍은 부드럽게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바람으로 도고다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몇몇 전설에 따르면 이 '바람' 은 모두 일곱 종류이다.
슬라브의 몇몇 종족에서 우리는 스트리보그라 불리는 바람신에 대한
숭배를 보게 된다. 또 바르풀리스라는 이름의 바람신에 대해서도 언급
하고 있는데, 이 신은 벨룬 신의 종자 중 하나로 뇌우(賣雨)의 시끄러운
소리를 일으키는 바람신이다. 에리스보르치는 성스런 바람신이었다. 하
지만 방금 말한 이들 신들의 이름의 어미 동음성 (同資性)은 오히려 리투
아니아어 혹은 스칸디나비아계 게르만어에 기원이 있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축축한 어머니 대지-
이교 시대의 슬라브인들은 '대지' 를 특별한 신격으로서 숭배하고 있
었는데, 그 신격의 모습에 대해서도, 그에 대한 숭배에 대해서도 우리
는 많은 상세한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다만 러시아에 있어서
는 그것이 '축축한 어머니 대지' 라는 의미의 마티-시라잽리아라는 말로
불리고 있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슬라브 농민들의 다양한 풍속이나 습관 중에서 이 '축축한 어머니 대
지'에 관한 여러 가지 신앙의 신화적 또는 제식적(資料的)인 기억이 발
견된다,
몇몇 지방에서는 8월이 되면 농부들이 새벽녘에 대마 기름을 가득 채
운 항아리를 들고 들로 나간다. 그들은 동쪽을 향해 말한다.
430
''축축한 어머니 대지여, 모든 악하고 사악한 존재를 다스려 주소서.
그들이 저회들에게 주술을 걸거나 무슨 해코지를 할 수 없도록.-
이런 기도를 올리면서 그들은 기름을 땅에 붓는다. 그리고 서쪽을 향
해 말한다.
''축축한 어머니 대지여, 당신의 용솟음치는 심연 속, 당신의 불타는
불 속에 사악한 힘을 모두 빨아들이소서."
남쪽을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축축한 어머니 대지여,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모든 악천후를 온
화하게 만들어 주소서 ' 유사(流砂) 와 회오리바람을 진정시켜 주소서.
마지막으로 북쪽을 향해 말한다.
"축축한 어머니 대지여, 북풍과 검은 구름을 진정시키고, 추위와 눈
보라를 다스려 주소서 1"
각각의 기도 후에 기름을 붓고, 그리고 그 기름을 넣어 두었던 항아
리를 땅 위에 던진다.
'대지' 는 의식을 지닌 올바른 지고의 존재이다, 만약 사람이 그 신비
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으면, 이 '대지'는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 러시
아의 몇몇 지방에서는 농부는 막대기 혹은 그냥 손가락으로 땅에 구멍
을 파고 거기에 귀를 대고서 '대지'의 말을 듣는다. 그때 만약 그가 눈
위를 미끌어져 가는, 짐을 가득 실은 셀매 소리를 연상시키는 上司를
들었다면 그해는 풍년일 것이다. 만약 반대로 텅 빈 쌜매 土리를 들었
다면 틀림없이 수확이 적을 것이다.
'대지' 는 올바르고, 사람들은 그를 배신해서는 안 된다. 수세기 동안
슬라브 농민들은 토지 소유권에 관한 다툼을 '대지' 에 증언을 구하는
방식으로 해결해 왔다. 만약 누군가가 흙덩어리를 머리 위에 올려 놓고
맹세하면, 그 맹세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옛날의 '대지' 숭배의 혼적이 지금도 러시아에 남아 있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어느 기묘한 의식이 있고,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농부들이
마을에 나쁜 전염병(페스트나 콜레라 따위-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슬라브 신화 431
그 의식에 도움을 청한 일이 있었다. 한밤중에 노파들이 마을 안을 뛰
어다니며 남자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마을 여자들을 불러모았
다. 9명의 처녀와 3명의 과부가 선택되어 마을 밖으로 나갔다. 그녀들
은 그곳에서 함께 온 여자들과 함께 옷을 벗고 속옷 한 장만 걸펐다.
쳐녀들은 머리를 풀고, 과부들은 머리를 횐 숄로 덮었다. 한 과부가 가
래에 몸을 묶고, 다른 한 명의 과부가 가래를 끌었다. 9명의 처녀들은
낫을 준비하고, 다른 여자들은 동물의 두개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무
서운 물건을 몸에 달았다, 병이 싹트는 것을 무력화시키는 '대지' 의 강
력한 정기(精氣)에 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가래로 도랑을 파면서 행렬
은 아우성치며 마을 주위를 돌았다. 불운하게도 행렬을 만난 남자들은
누구나 용서 없이 호되게 당했다 한다.
전원의 작은 신들
크리스트교가, 슬라브의 이교 신화가 완전히 꽃을 피우기 전에 공격
을 가했다. 그리고 그것을 말하자면 거의 부화 상태에서 죽여 버렸다.
크리스트교의 승리로 슬라브의 이교 신화는 주된 신들을 잃었다, 디
이 미노레스. 즉 작은 신들은 이 대학살을 피할 수 있었다. 슬라브인들
은 크리스트 교도가 되었지만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교 신앙을
보존하고 있고, 또 그들의 형이하학적이고 또 정신적인 세계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은 남신(資料)과 여신(文理) 집단으로, 그리고
착한 '정령' 과 나쁜 '정령' 집단으로 채우고 있다.
돔(집이란 뜻)이라는 말에서 나온 '도모보이' 는 집의 신 또는 정령이
다. 슬라브 농민들은 미신에서 이 신을 정식 명칭으로 부르길 피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 신을 '할아버지' 라는 말로 가리키고, 다른 사
람들은 '집주인' 이라고 부른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 이라든가 '문
제의 그것' 이라고 말한다.
432
Zk-
'도모보이' 의 외관은 분명치 않다. 많은 경우 그것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털이 자란 생물로 나타난다. 양손의 손바닥에 이르기까지 비단처
럼 보드라운 털로 덮여 있고, 그 양손은 인간의 손을 쏙 빼닮았다. 때
로 똴이 있거나 꼬리가 달려 있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신은 또 때로
는 가축이나 건초 묶음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적도 있다.
이 '도모보이' 의 모습을 보기란 어렵다. 또 위험하기조차 하다.
그렇지만 이 '도모보이'의 목소리는 들을 수 있다. 그 신음 소리와
숨죽인 흐느낌 소리 따위를 종종 들을 수 있다. '도모보이'의 말투는
보통은 상냥하고 귀에 즐겁게 들리지만, 때로는 우울하거나 성급하다.
이 '도모보이'나 다른 약간의 신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다.
최고신이 지상 세계와 천상 세계를 창조할 때, 그를 둘러싸고 있던
정령 중 일부가 그에 반란을 일으켰다. 최고신은 그 정령들을 하늘에서
쫓아내고 지상으로 내던졌다. 그 중 몇몇이 사람들이 사는 집 지붕이나
뜰에 떨어졌다. 숲 속이나 물 속에 떨어져 사악한 마음을 그대로 계속
지니게 된 정령들과는 반대로, 그들은 인간들과의 교제 속에서 호의를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도모보이' 는 자신이 사는 집에 친근감을 느끼게 되면 떠나고 싶지
않게 된다. 러시아의 농부가 새 '이즈바(통나무집-를 지으면, 그의 아
내는 들어가 살기 전에 빵 한 조각을 테어 난로 밑에 두고 '도모보이'
를 새 집으로 유인한다. '도모보이'는 난로 곁이나 입구 문턱 밑에 살
기를 좋아한다. '도마니아' 나 '도모비하' 로 불리는 그의 아내는 지하실
에 살기를 좋아한다.
'도모보이' 는 집주인들을 덮치려 하고 있는 불행을 예고한다. 가족
중 누군가가 죽기 전에 이 '도모보이' 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또 아내의
머리채를 잡고 남편이 때리지 못하도록 막아 주기도 한다.
'도모보이' 는 슬라브인 사이에서 가족이 부족과 구별되고 거기서 독
립하기에 이를 때 비로소 나타났다. 그 이전의 슬라브 신화는 '로드' 나
슬라브 신화 433
'추르' 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부족 정령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었다.
'로드' 나 '추르' 는 아주 번역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조상이나 선조라는
뜻이다.
인가에 사는 다른 정령들
'도모보이' 가까이에는 그와 친척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다른
정령들이 있다. 예를 들어 '드보로보이(뜰이란 뜻을 지닌 主보全에서 생
긴 이름-와 같은 뜰의 정령이라든가, '반니크(욕조란 뜻을 지닌 '바니小
에서 생긴 이름-와 같은 욕조의 정령이라든가, '오빈니크(곡식 창고란 뜻
을 지닌 公빈'에서 생긴 이름>'와 같은 곡식 창고 정령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 '반니크' 의 거주지는 농부들이 목욕탕으로 쓰는, 이즈바 곁에
지어진 작은 오두막이다.
'도모보이' 보다 인간에게서 약간 멀리 떨어져 있는 이 정령들은, '도
모보이' 만큼 인간에게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숲이나 물의 정령들만큼 심
술궂지는 않다.
'드보로보이' 는 횐 털을 지닌 모든 동물(개나 고양이나 말)을 몹시 싫
어한다, 회더라도 암탉만은 이 정령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암
탉은 이따금 들판 등에서 발견되는 등근 구멍이 있는 돌로 표현되는 특
수한 신, 즉 암탉의 신이 지켜 주기 때문이다. '드보로보이'를 달래기
위해 가축 우리 안에 약간의 암양의 털과 뭔가 반짝거리는 작은 것, 한
조각의 빵을 놓아둘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것을 바치면서 이렇게 말하
지 않으면 안 된다,
"황제 드보로보이여, 주인이며 친절한 가까운 이웃이여, 저는 감사의
표시로 이 선물을 바칩니다. 부디 가축들을 정답게 받아들여 잘 돌보아
주시고, 잘 길러 주십시오."
'드보로보이' 가 아주 심술궂은 태도를 보일 때에는 뜰의 나무 울타리
434
몸을 씻을 때 쓰는 나무통 외에 앉아 있는 반니크
까치 시체를 무서워한다.
종종 '드보로보이-가 인간
중 하나가 어느 아7
었다.
씨가
수 있다. '드보로보이-도
여자와 사랑에 빠질
F씨한테 마음을 빼
1' 따가씨의 머리칼을 땋고 그것을 풀지 ~~111
^1근나섯
살이
날 처음으로 머리를
보이' 에게 목이 졸려
되었
을때
풀었다, 이
죽어 있는
앗겨 오랫동안 함께 지내
어느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
튿날 아침 아가씨가 침대 위
모습이 발견되었다.
-
잔 채찍으로 악마
역시 뜰에 매달린
패가 있다, 이 정령
적이 있
했다. 아가
그 흔례 전
에 '드보로
슬라브 신화 435
'반니크' 는 욕실에서 산다. 세 패의 사람들을 욕실에 들여보낸 뒤에
네번째로 들어가는 것이 이 정령이다. 그는 악마나 숲의 정령들을 욕실
에 초대한다. '반니크'가 한창 몸을 씻고 있을 때 만약 누군가가 방해
하러 들어오거나 하면 방해꾼의 몸에 펄펄 끓는 물을 끼얹거나 때로는
그 목을 조르기까지 한다. 사람들은 욕조에서 나갈 때에는 '반니去 를
위해 조금이라도 물을 남겨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반니크'한테 미래를 물어 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를
알고자 온 사람은 욕실 문을 열고서 벌거벗은 등을 내밀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반니크' 가 그 손톱으로 등을 찌른다면
불길한 조짐이다. 만약 부드럽게 손바닥을 살짝 댄다면 그에겐 좋은 미
래가 약속되어 있는 것이다.
'오빈니크(곡식 창고의 정령-는 언제나 곡식 창고 한구석에서 살고 있
다. 보통 털을 마구 흩뜨린 커다란 검은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개처럼 짖고, 큰 입을 벌리고 웃을 수 있다, 그 눈은 타오르는 숯불처
럼 빛나고 있다. 몹시 심술궂어 곡식 창고에 불을 지를 수도 있을 정도
이다.
인가에 사는 정령 중에 여성 정령은 단 한 종류뿐이다. 그것은 '키키
모라'로, 몇몇 지방에서는 '도모보이' 의 아내로 통하고 있다. '키키모
라' 와 관련해서는 수없이 많은 신화와 이야기와 전설이 있지만, 그것들
은 이 정령의 정확한 모습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어느 때는 닭을 돌보
는 것만이 그녀의 일이고, 어느 때는 가사(家事) 일체를 도와 주지만 그
것은 단지 그 집안의 주부가 근면할 때뿐이다. 만약 주부가 게으르면
'키키모라' 는 밤에 그녀의 자식들을 부추겨 어머니에게 많은 고통을 안
겨 준다. '키키모라' 와 화해하는 유일한 수단은 숲에서 풀고사리를 뜯
어 와 그것으로 탕약을 만들어 부엌 안의 항아리나 찻잔을 하나도 남김
없이 썬어 내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뿌리 깊게 살아 있는, 이들 집 정령 전원에 대한 신앙
은, 원시 슬라브 민족이 집을 지키는 무수한 신격들에게 바친 숭배의
436
I~.理'.
"끈公II
F"j
키키모라
슬라브 신화 437
잔촌물에 다름 아니다.
나머지는 단지 이름을 거론하는 데 그치기로 하자. 가축을 수호하는
페세이아스와 크루기스(크루기스는 또한 대장장이들의 수호신이기도 했다) .
마구간을 돌보는 라타이니차. 귀가 아주 예민해 아주 낮게 속삭이는 소
리도 들을 수 있고 절규 파위를 참아 낼 수 없는 프리기르스티티스. 도
마뱀 모습을 하고 있다고 믿어지고 우유로 길러진 기보이티스. 여성 신
격으로는 집안 관리를 담당하고 오븐에서 꺼낸 첫 빵을 받는 마테르가
비아, 빵 밀가루 반죽이 색지 않도록 지키는 두그나이. 집의 여신으로
주로 보헤미아에서 숭배되고 있는 크림바. 이 이름들은 다시 리투아니
아어, 스칸디나비아어 그리고 게르만어의 어미 동음성 (語尾間資性)을 보
여 주고 있다,
2(1A-
고대 슬라브인들이 정주하고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지역에는 아
주 삼림이 많았다. 슬라브 개척자들은 예상치 못한 사건이나 위험으로
가득 찬 거대한 삼림을 가로지르는 길을 뚫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
다. 그들이 그곳에서 '레시' -레小-숲이란 뜻-에서 나온 이름>,숲
의 정령과 만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슬라브의 민간 전설은 '레시'에게 인간의 또습을 부여죄고 있지만.
그 양 볼은 푸른 기가 돌고 있다. 이것은 그의 피가 푸른 색이기 때문
이다. 종종 툭 튀어나온 녹색 눈과 짙은 눈깹에 긴 녹색 수염을 기르고
있다, 그 머리칼은 그리스 정교 사제의 머리칼과 똑같다. 이따금 민중
의 변덕스러운 상상이 이 정령으로 하여금 색다른 몸차림을 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붉은 허리띠를 두르고 오른발에 왼발 구두를 신거나, '카
프탄' (띠 달린 긴 소매 옷) 단추를 반대 방향으로 채우거나 한다. '레시'
에게는 그림자가 없고 일정한 키도 없다. 숲 한가운데를 걸어다닐 때에
438
는 그의 머리는 숲에서 가장 높은 나무 꼭대기에까지 닿는다. 숲가를
걸어 작은 관목이나 풀숲 사이를 지나갈 때에는 나뭇잎 밑에 숨을 수
있을 정도로 난쟁이로 몸을 변화시킨다,
'레시' 는 이웃 사람들의 땅을 침범하지는 않지만, 자기 왕국을 아주
조금이라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나그네가 흔자서 숲을 지나가
거나 농부가 혼자 숲에서 버섯이나 과일을 채취하러 오거나 하면, 혹은
사냥꾼이 숲 언저리에서 깊숙한 데까지 모험을 시도하려고 하면, '레
시'는 으레 그들을 헤매게 만들고 덤불 속을 이리저리 모든 방향으로
걸어다니게 만든 뒤에 언제나 같은 장소로 돌려보내 준다.
하지만 본성이 착한 이 정령은 거의 언제나 마지막으로는 그 포로를
석방해 준다. 특히 그 포로가 된 사람이 그의 마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경우에는. 따라서 길을 잃은 사람은 나무 줄기에 앉
아 옷을 벗고 그것을 뒤집어 입지 않으면 안 된다. 그때 오른발에 왼발
구두를 신는 것을 잊어서도 안 된다.
'레시'는 몇몇 전설에 따르면 죽어야 할 운명에 놓인 인간 여자와 악
마의 밀통(密通) 에서 태어났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사(不死)
의 정령이다,
하지만 '레시'들은 매년 찌월 초에서 이듬해 새 봄이 올 때까지 모습
을 감추든가 혹은 일시적으로 죽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시기에는 그들
은 화를 내기 쉬워 특히 위험하다. 아마도 가까이 임박한 소멸을 생각해
서 그럴 것이다. 고뇌와 분노로 채워진 그들은 숲속을 뛰어.다니거나 휘
파람을 불거나, 절규, 흥분한 여자의 새된 웃음소리, 인간의 흐느낌 소
리나 맹수나 야수의 표효 같은 것을 흥내내며 여러 가지 소리를 낸다.
몇몇 전설은 '레시'에게 가족 본능을 부여하고, 그 곁에 그의 아내
'레샤치하' 와 자식들인 '레숀키'를 나타내 보인다. 그들은 숲 깊숙한
곳에 살며 공동으로 나쁜 짓을 한다,
슬라브 신화 439
폴레비크
각각의 숲에 하나씩 '레시' 가 살고 있다고 한다면, 어느 들판이든 각기
하나씩 '폴레보이' 또는 '폴레비-폴레는 들이란 뜻)에 지배되고 있다.
'폴레비크'의 겉모습은 지방에 따라 다르다. 어느 때는 그것은 단지
힌옷을 입은' 모습일 뿐인가 하면, 어느 때는 지면(地面)처럼 검은 육
체와 각각 색깔이 다른 두 눈을 지니고 있다. 또 머리칼 대신 머리 위
에 긴 푸른 풀이 자라나 있기도 하다. 종종 '폴레비크'는 말을 하는 기
형적인 난쟁이가 되어 나타난다.
'폴레비크' 는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레시' 와 같은 방식으로 길 저문
나그네를 즐겨 헤매게 만들려 한다. 그는 자기 밭을 다 갈지 않고 그
위에서 잠들어 버린 술주정꾼의 숨통을 끊어 버리는 일이 있다. 이런
행위를 할 때 이 정령은 이따금 자식들의 도움을 빌린다. 자식들은 고
랑 사이를 달려 양친이 먹을 새를 잡는다.
'폴레비主의 호의를 사기 위해 제물로 땅에 판 구멍 속에 달걀 두
개와 이젠 울지 못하는 늙은 수탉 한 마리를 놓아 둘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희생물을 바칠 때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러시아 북부에서는 이 '폴레비크' 의 모습이 때때로 '풀루드니차' (폴루
제니는 한낮이란 뜻)의 모습으로 대치된다. 이 정령은 키가 크고 온몸에
횐옷을 걸친 아름다운 아가씨이다. 여름의 수확하는 시기에 밭 속을 산
책하다가 한낮에 일하는 남녀를 발견하면 그 머리를 잡고 사정없이 고
통을 가한다. 또 어린 아이들을 보리밭 속으로 끌어들여 길을 헤매게
만든다.
다른 전원의 신격들은 크리스트교가 숭리를 거둔 뒤까지 살아 남을
수 없었다. 그들 중 몇 명을 열거해 보기로 하겠다,
폴란드인 사이에서는 들판의 번영은 다탄, 타발스 그리고 특히 경작
을 담당하는 라브카파팀 등의 신과, 과일의 생장(生長)을 돕는 여신 마
440
르잔나가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모디나, 실린지에츠는 숲의 신이었다.
가축은 발지노, 쿠르바이친, 크레마라, 프리파르치스 등의 보호 아래
놓여져 있었는데, 쿠르바이친은 특히 새끼양을 돌보고, 크레마라는 특
히 돼지에 관심을 보였으며-사람들은 난롯불 속에 맥주를 부어 이
신에게 바쳤다-프리바르치스는 새낀 돼지를 어미 돼지 젖에서 떼어
내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다른 슬라브인들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몇몇 신격이 숭배되고 있었
다. 즉 들판의 과일의 수호신 크리코, 체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잘 익도
록 도와 주는 키르니슨 작은 가축 동물의 신으로 키예프에 제단이 있
는 모코슈, 꿀벌의 수호신 조심, 숲의 신 주티부르, 모든 형태를 취할
수 있는, 짓궂은 장난을 좋아하는 요정의 일종으로 숲의 정령인 시크사
등이다.
물의 요정, 보디아노이
'보디아노이', 이 정령은 물의 정령이다, 이 이름 그 자체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왜냐하면 이 이름은 물을 의미하는 말 보다에서 유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령은 호수나 연못이나 크고 작은 하천에 사는 심술궂은 위험한
신격이다. 이 정령이 즐겨 사는 곳은 수문(水門)이나 물레방아 근처로,
물레방아의 커다란 날개 뿌리 밑에는 종종 몇 명의 '보디아노이'가 모
여 있다.
이 '보디아노이' 의 모습은 아주 변화가 심하다.
어떤 것은 인간의 얼굴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긴 발가락과
인간의 손 대신 동물의 다리를 갖추고, 긴 뿔과 꼬리, 불타는 석탄불
같은 눈을 지니고 있다. 다른 어떤 것은 아주 키가 큰 인간의 겉모습을
하고 풀과 이끼로 뒤덮여 있다. 거대한 붉은 눈과 어부의 장화와 같은
슬라브 신화 441
I긱 小.
?트교-
물레방아 곁에 있길 좋아하는 물의 요정, 보디아노이
긴 코를 지니고, 온몸이 새까맣게 보일 때도 있다. 또 녹색 머리칼과
수염을 기른 노인의 모습을 하고 나타날 때도 종종 있는데, 그 수염 색
깔이 여러 가지로 변하고 달이 기운 밤에는 희어진다.
'보디아노이'는 또 때때로 벌거벗은 여자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물
속의 나무 뿌리에 앉아 물방을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빗는다.
,-
442
혹은 온몸이 이끼로 뒤덮인 거대한 물고기 모습으로, 또는 작은 날개
를 달고 물위를 스칠 듯 날아가는 나무 줄기 형태로 발견된다.
'보디아노이' 는 불사(不死)의 존재이지만, 달이 차고 기움에 따라 다
시 젊어지거나 늙거나 한다.
'보디아노이'는 인간을 싫어하고, 경솔한 인간의 틈을 노려 그들을
물 속에 끌어들인다. 물에 빠져 이 정령의 깊은 수저(水底) 왕국에 떨어
진 자는 그 예가 되어 버린다. 이 정령은 가라앉은 배에서 가져온 금은
으로 장식되고, 태양보다도 강한 빛을 내는 마법의 돌로 빛나는 수정
궁전에 살고 있다.
낮에는 '보디아노이' 는 궁전의 깊은 곳에 몸을 숨기고 가만히 앉아 있
다. 저녁이 되면 그곳에서 나와 다리로 물을 때리며 논다. 이 소리가 아
주 멀리서도 들린다고 한다. 해가 지고 나서 남자나 여자가 목욕을 하러
오면, '보디아노이' 에게 갑자기 잡혀 도망갈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이 정령은 물레방아의 제방에 다가가면 물에 자유로운 통로를 되돌려
주려고 그 제방을 부수려 애쓴다.
러시아에서는 수십 년 전까지 밀가루를 빻는 사람들이 '보디아노이'
의 호감을 사려고 날이 저문 뒤 혼자 지나가는 사람을 물 속에 밀어 떨
어뜨리기까지 했다.
북북 러시아 올로네츠 지방의 어느 호수에 많은 가족을 거느린 '보디
아노이' 가 살고 있었다,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그는 동물이나 사람의
시체가 필요했지만, 호수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무척,주의력이 깊
어서 그곳으로 물을 길러 오지도 않고 목욕하러 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 '보디아노이' 는 마침내 강을 따라 다른 호수로 가려 했는데, 허등대
다가 그만 발로 작은 섬을 걸어 강 속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지금도 사
람들은 강 속에 떨어진 그 작은 섬이 그렇게 된 것을 보여 줄 수 있다
고 말한다.
쓸라브 신화 443
루살카
젊은 아가씨가 물에 빠지면-사고로 빠지든 자기 의사에 따라 빠지
든-그녀는 루살카가 된다, 이 신앙은 슬라브 민족 전체를 통해 공통
적이다, 하지만 이 물의 신격(神格)의 모습은 어디에서든 똑같지는 않
다, 그것은 기후와 하늘의 빛깔과 물빛의 변화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푸른 도나우' 지방의 슬라브인 사이에서는 '루살카' 는 '빌라' 라고
불릴 때가 많은데, 젊은 아가씨의 매력적인 특징을 얼마간 갖춘 우아하
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북부 러시아에서는 도나우 강이나 드네프르 강
의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쾌활한 매력적인 루살카들이, 자태에서 사람을
끄는 면이 거의 없고 머리를 빗지 않아 제멋대로 흐트러진 심술궂은 아
가씨로 변한다.
남부 지방의 루살카들의 창백한 얼굴색은 달빛과 비슷하다. 북부에
있는 이 자매들은 물에 빠져 죽은 시체처럼 푸르딩딩하고, 그 두 눈은
사악한 녹색 빛으로 빛나고 있다. 남부의 루살카들은 종종 가벼운 안개
옷을 입고 나타나고, 북부의 루살카들은 언제나 볼품 없는 나체의 모습
이다.
도나우 강이나 드네프르 강의 루살카들은 북부의 호수나 강에 사는
자매들이 모르는 묘한 곡조의 노래를 부른다. 남부 여러 지방의 루살카
들은 그 미모와 상냥한 목소리로 나그네를 유혹한다. 북부의 루살카들
은 밤늦게 강둑을 산책하는 경솔한 남자나 여자를 확 낚아채 물 속으로
떨어뜨려 죽이는 일밖에 생각지 않는다, 태양과 푸른 하늘 나라의 루살
카의 품안에서는 죽음조차 거의 달콤하다. 그것은 일종의 안락사(安業
-이다. 북부 지방의 루살카들은 정반대로 그녀들의 회생물들에게 갖
가지 격렬한 고통을 가한다.
슬라브 전설은 루살카들에게 물 속과 숲 속의 이중 생활을 부여하고
444
나무
에서
쉬고 있는 루살카
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까지-정확히는
들은 물 속의 왕국에서 산다. -루
속으로 옮겨간다. 수면에 늘어진
자작나무를 골라
기어올라 간다. 밤이 되면
'루살카 주일' 까지-그녀
살카의 주일' 동안 물 속에서 떠나 숲
가늘고 긴 가지가 있는 수양버들이나
달빛을 받으며 나뭇가지를
좌우로 흔들면서 논다. 번갈아 소리를 지르며
"I의 빈티에서 춤을 춘다, 남부 지방의 슬라브인들은 루살카들이 춤추
나무에서 내려와 나무 사
슬라브 신화 445
면서 밟은 곳에서 풀이 잘 자라고 보리도 한층 많이 거둘 수 있다고 믿
고 있다.
하지만 이 정령들의 행동은 또한 해로운 것이 될 수도 있다. 물 속에
서 장난을 치며 놀다가 그녀들이 물레방아의 날개 바퀴에 뛰어올라 그
것을 멈추거나 돌절구를 쪼개거나, 둑을 손상시키거나 어부의 그물을
찢는다. 또 천등을 동반한 강우나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들판으로 보
내거나, 여자들이 자고 있는 틈을 이용해 실이나 천을 훔쳐 가기도 한
다. 다행히도 루살카들이 장난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단지 손안에 '저주받은 풀' , 즉 향쑥 이파리 하나를 지니
고 있기만 하면 된다.
루살카와 관련된 신화는 죽음과 죽은 자에 관한 슬라브인들의 일반적
인 신앙을 반영하고 있다. 그 신앙에 따르면 녹색 나무들은 죽은 사람
들의 주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태양이 아직 '여름을 향해 걷기 시작하
지 않을' 때에는 죽은 자의 혼인 루살카들은 어둡고 차가운 물 속에 머
무를 수 있다, 하지만 물이 생명의 천체의 광선에 비쳐져 따뜻해지면,
루살카들은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를 수 없다. 그리고 그녀들은 죽은 자
들의 주거지인 나무 위로 돌아간다.
도시와 전쟁의 신들
앞에서 말한 대로 슬라브 민족이 다른 여러 민족, 즉 스칸디나비아나
게르만 여러 민족과 접촉하기 시작한 슬라브 변방 지역에서는, 그들의
신화는 그 소박한 원시적 성격을 잃고 새로운 영감을 얻어 간략화된 약
간 새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현대 러시아의 몇몇 학자들은 이교(異敎) 슬라브에 있어서의 두 개의
신화(그것은 거의 두 개의 종교이다)를 분명히 구별하지 않으려는 의향까
지 내보이고 있다. 하나는 우리가 지금까지 그 특색에 대해 말해 온,
446
농부 -사냥꾼 -어부로 이루어지는 민중의 대집단에 공통되는 신화이고,
다른 하나는 보다 고차적인 계급, 도시와 방비가 잘 되어 있는 성채(城
승) 주민들의 신화이다.
아무튼 발트 해 연안이나 키예프의 주민들이 단순한 자연력이나 자연
현상을 숭배하는 소박한 신앙을 그 종교적 기반으로 갖는 신화보다 훨
씬 진보된 신화를 갖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발트 해 지역의 슬라브인들-엘베 강 하구나 뤼겐 섬에 사는 슬라
브인들-은 스비아토비트라 불리는 신격을 숭배하고 있었다.
우리 주변에는 옛날의 몇몇 연대기 작가가 스비아토비트에 대해 쓴
거의 동시대의 증언이 남아 있다. 게다가 1857년에는 갈리치 지방의 즈
브루치 강변에서 스비아토비트의 조상(彫像) 이 발견되었다. 하긴 이것은
알코나 대사원에 있는 조상의 단순화된 조잡한 복제품에 지나지 않지만.
알코나의 스비아토비트의 조상은 화려하게 장식된 사원 속에 안치된,
키가 큰 상이었다. 각각 상반되는 네 방향을 바라보는 네 개의 머리를
지니고, 오른손에는 술이 가득 든 수소의 뿔을 지니고 있었다. 그 옆에
는 거대한 검과 안장과 마구(局員)가 매달려 있고, 나아가 사원 속에서
는 백마(白馬) 한 마리가 사육되고 있었다.
매년 대주교가 엄숙한 의식과 함께 스비아토비트가 손에 들고 있는
수소의 뿔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만약 그 안에 술이 많이 남아 있으면
그것은 좋은 전조(前兆)였다. 그해의 풍작과 행운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
다. 하지만 뿔 속의 술의 양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있다 해도 사람들은
단지 기근과 재난의 해에 대비하기만 하면 되었다.
사원의 비용으로 사육되며 그 신성한 주(主)로 경배받는 스비아토비
트의 백마도 마찬가지로 미래를 계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성직자
들이 지면에 창을 몇 줄로 꽃아 세우고 스비아토비트의 말로 하여금 그
사이로 지나가게 한다. 말이 어느 창에 발이 걸리지 않고 잘 지나가면
미래의 행운이 예고된다는 것이다.
깃발 하나가-전쟁용 군기 (軍旗)가 사원 안에 보존되어 있었다. 사
슬라브 신화 껄7
제들은 스비아토비트의 숭배자들이 전쟁에 나갈 때 그들에게 그것을 보
였다.
스비아토비트의 사원에는 사제들 외에 XK)명의 무장한 별동대 (別數隊)
가 부속되어 있었다.
옛날 연대기 작가들은 스비아토비트 외에 슬라브 세계의 서방 지맥
-料-의 여러 민족 사이에는 호전적인 성격을 갖춘 몇몇 신격이 있었다
고 말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인 루기에비트는 8개의 검으로 무장했는데,
그 가운데 7개는 혁대에 매고 나머지 하나는 손에 들고 있었다. 신성한
물건으로 경배받는 커다란 황금 방패를 든 이아로비트는 또한 자기 깃
발을 들고, 그 숭배자들은 전장에 나갈 때는 이 신의 방패와 깃발을 들
고 나갔다. 라디가스트는 손에 양날의 도끼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가
슴 위에는 수소의 머리를 늘어뜨리고, 곱슬머리로 뒤덮인 머리 위에는
날개를 펼친 백마를 올려놓고 있었다. 이 신은 신뢰할 수 있는 조언자
로 명예와 힘의 신이었다.
이 신들이 스비아토비트와 동일한 신이었는지, 아니면 거꾸로 독자적
인 별개의 신들이었는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무튼 그 신들은
모두 공통적인 특색을 지니고 있고, 거기에서 그들의 도시와 전쟁의 신
으로서의 성격이 생겨나고 있다.
어느 오래 된 '연대기'의 증언에 따르면, 스비아토비트는 '신들의
신' 으로 간주되고 있고, 다른 어떤 신도 그 앞에서는 반신(半神)에 불과
했다고 한다. 이 신은 또한 스바로그처럼 태양과 불의 아버지였다. 동
시에 그 상징(술을 채운 수소의 뿔)으로 알 수 있듯이 풍요의 신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신은 무엇보다 먼저 전사(戰士)이고, 전리품 중에는
언제나 그의 몫이 있었다.
슬라브 세계의 다른 변방 지역에는 스비아토비트와 비슷한 신격
페룬 신-이-존料하고 있었다. 페룰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가장 오래
된 아리아족 시대로-커슬러올라간다. 힌두교도들 사이에서는 인드라 신
은 페룬과 같은 어근을 지닌 파르자냐라는 이명 (賣名)으로 불리고 있었
-
448
다. '페룬' 이라는 말이 많은 슬라브계 언어에서 발견된다. 러시아어에
서는 페룬, 폴란드어에서는 표룬, 체코어에서는 페라운, 슬로바키아어
에서는 페른이다. 리투아니아인들 사이에서는 페르카우나스라는 이름이
종종 발견된다.
-언어모론(言語世論-속에서는 페룬은 주피터의 이름으로 번역되고
있다.
폴란드의 속어 (俗語)로 눈을 돌리면, 거기에서는 단지 페룬이라는 이
름의 의미상의 기원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이 신격의 신화적 성격을
밝혀 주는 설명이 발견된다. 폴란드어로는 '표룬' 은 번개란 뜻이다.
역사도 전승도 페룬의 신으로서의 모습에 대해 자세한 지식을 아무것
도 전해 주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10
세기 말경까지 키예프에서 나무에 새겨진 페룬의 우상이 있었다는 것뿐
이다. 하지만 이 신은 분명히 전쟁의 신이었다. 그것은 단지 번개가 이
교 시대의 슬라브인에게 가장 무서운 신의 무기로 여겨지고 있었다는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또찬 러시아의 옛 연대기가 전쟁과 페룬 사이에
있었던 직접적인 관계에 대해 명화히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키예프의 최초의 대공(大小)들이 그리스와의 전쟁을 명예로운 평화로 끝
맺을 때, 그들의 군대는 페룬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그들의 무기에 걸고
맹세를 했다.
"올가(키예프의 최초의 여성 군주 중 한 사람)는 전사들을 이끌고 전쟁터
로 향했다"고 옛 연대기는 쓰고 있다. "그들은 러시아의 규칙에 따라
페룬의 가호를 빌면서 무기에 걸고 맹세를 했다."
"이고르(키예프의 대공)는 페룬의 우상이 서 있는 언덕 위에 올라가 그
곳에 자기 무기와 방패와 황금을 놓았다."
6세기의 그리스의 역사가 프로코피우스의 기술 속에서 우리는 슬라브
종교에 관한 흥미진진한 증언을 발견한다. 이 증언은 아마도 페룬과 관
계가 있고, 이 길격을 다른 여러 신격 사이에 위치짓게 할 수 있을 것
이다.
슬라브 신화 449
"그 슬라브인들이 우주의 유일한 지배자로 인정하고 있는 것은 번개
를 만들어 내는 신이다."
여러 가지 이국적인 요소가 융합된-왜냐하면 키예프의 '공국' 이
바리아그, 즉 스칸디나비아의 전사들에 의해 건설된 나라라는 것을 잊
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이 전쟁에 관한 신화는, 그것과는 전혀
기원이 다른 전원(④~)의 신화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영향의 예로서 '가축의 신'인 볼로스(또는 벨레스) 신을 들 수 있
다. 전원의 기원과 성격을 지닌 이 신격이 이 영향의 결과로 뒤에 페룬
의 호전적인 행위와 결합된 것이다. 유명한 연대기의 작가인 수도승 네
스토르는, 여성 군주 올가의 전사들이 "그들의 신 페룬과 동물의 신 볼
로스에게 가호를 빌면서 그들의 무기에 걸고 맹세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스비아토스라프 대공과 그리스인들 사이에 맺어진 조약 속에서,
스비아토스라프 대공과 그 전사들은 "우리가 믿는 신-페룬-과
동물의 신 볼로스 앞에서 약속하는 맹세에 의해 우리가 서로 맺어지기
를" 하고 선언하고 있다.
다른 한 가지 예 또한 앞의 예에 못지않게 흥미로운 것인데, 앞에서
말한 조리아(오로라)의 모습의 변화이다. 조리아가 빛의 신 개양' 옆에
머물러 있는 한, 그녀는 단지 '태뜰의 황금 궁전 문을 지키는 여자 파
수꾼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전쟁의 신 페룬과 만날 때에는
우아한 여신 조리아는 무장하고 싸우는 처녀, 그 긴 베일로 전사들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어 나타났다, 이 여신에게 가호를 빌 때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이 주문은 19세기까지 실제로 사용되고 있었다) .
'정녀시여, 당신의 아버지의 성스런 검을 뽑아들고, 당신 조상의 갑
옷을 입고, 당신 것인 용사의 투구를 머리에 쓰고, 당신의 검은 말을
끌어낸 뒤 드넓게 펼쳐진 들판을 달리소서. 펼쳐진 들판에는 갖가지 무
기를 든 강력한 군대가 있습니다. 성녀시여, 당신의 베일로 저를 덮고
모든 적의 힘으로부터, 총과 화살로부터 부디 저를 지켜 주소서."
마찬가지로 '바람의 신 스트리보그의 자손들' 인 바람들도 전쟁의 신
450
격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바다 쪽에서 화살을 날려 보낸다".
몇몇 지방(라우디츠(동부 독일의 한 지방)라든가 보헤미아라든가 폴란드,
즉 슬라브인들이 게르만 민즉과 서로 접촉하고 있는 지역)의 슬라브인들은
그들의 숲에 '레시' 나 '루살괴' 들이 살게 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
다. 그들은 사냥의 여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준족-말에 올라
타고 한 떼의 사냥개를 거느린 젊고 아름다운 이 여신은, 손에 무기를
들고 엘베 강과 카르파치아 산맥의 숲 속을 신속히 달린다. 그 이름 자
체(라우디츠 지방의 세르비아인 사이에서는 디비카, 체코인 사이에서는 데바
나, 폴란드인 사이에서는 제보나)가, 이 여신이 다이아나(로마 신화의 달의
여신, 또 사냥의 여신)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알코나에서는 스비아토비트는 사원과 성직자를 지니고 있었지만, 다
른 여러 지방의 슬라브인들은 사원이나 성직자 계급을 몰랐다. 이것은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키예프에서는 페룬의 우상은 노천의
언덕 위에 세워지고, 성직자의 직무는 '도시' 의 군사상의 지도자인 '대
공' 에 의해 수행되고 있었다. '대공' 은 (그것이 키예프 대공 블라디미르에
서 비롯되고 있듯이) 그의 관리나 전사들이, 또 도시의 지배자 계충이 모
두 그의 모범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 주기 위해서는 종교를
바꾸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키예프 대공 블라디미르가 (988년에) 비잔틴
의 그리스 정교로 개종하려고 했을 때, 그는 그의 전사 전원에게 세례
를 받을 것을 명했다. 페룬의 우상은 쓰러뜨려 드네프르 강 속에 집어
던지고, 페룬의 신자들이 그 신을 위해 행했던 투쟁의 모든 흔적도 남
기지 않았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단 한 가지로만 설명될 수 있다. 1
설명이란, 이 신격과 그 신화가 민중 사이에 행해지고 있었던 신앙이
아니라 지배 계층인 전사들의 그것이었다는 것이다. 이 계층이 그들의
신앙을 포기했을 때, 더 이상 그것을 지괴려는 자는 하나는 없었던 것
이다.
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전원의 주민들 사이에 이 도시와 전쟁의 신화
가 막연한 기억으로 보존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들의 기호에 따라 신화
슬라브 신화 451
에 수정이 가해지고 있다. 즉 백러시아인들은 페룬에게 그 무기-활)는
남겨 주었지만, 전차 대신 공중을 이동할 때 타는 단순한 돌절구를 그
에게 주었다.
'동물의 신' 볼로스는 의기양양한 크리스트교에 점령된 키예프를 떠
날 때 그 호전적인 역할과 특성을 잃고 다시 전원 주민들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크리스트교가 슬라브 농민들의 흔 속에까지 파고들
어갈 때조차 볼로스는 그 농민의 공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세기의
러시아 농부(農業)들은 그 긍시 아직 '볼로스의 머리를 곱슬거리게 하
는' 풍습을 보존하고 있었다. 수확 때 그녀들은 이삭을 '곱슬거리게
꼰 보리 한 다발을 밭에 남겨 두었던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이교 시
대의 신에 바치는 회생의 흔적이다,
전쟁과 관련된 부속품을 조금씩 빼앗겨 간 볼로스는 단순한 목신(牧
神--가축 떼를 지키는 착한 수호신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페룬도 키예프
공국이 멸망한 뒤에도 슬라브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지만, 그것은
동천(f-에서 이상한 가래로 밭을 가는 힘센 신의 농부의 모습이었다.
환회의 신들
이상 보아 온 많은 신격 외에 슬라브 신화에는 그들과는 다른 아주
홍미진진하고 또 생기발랄한, 환회의 신들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일군
의 신이 포함된다.
그것은 야릴로와 쿠팔라이다.
학자들은 이 야릴로라는 이름을 에릴로라고 고쳐 쓰고 그리스어의 에
로스에서 그 기원을 찾으려 했다. 만약 이 설명을 시인할 수 있다면,
야릴로에 관한 신화학적 연구는 두드러지게 단순화될 것이다. 야릴로는
애욕의 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야릴로는 오히려 열렬한이라든가
열정적이라든가 미쳐 날뛴다라는 뜻을 지닌 형용사 야리에서 생긴 말이
452
다. 다른 한편으로 디마料울)라는 말에서 유래하고 가을 파종되는 밀을
의미하는 아디미와 대립적으로 봉에 파종되는 밀에 대해 사람들이 말할
때 그것은 야로보이라 불린다.
따라서 야릴로라는 말에는 봄의 재생의 관렴과 성의 정열의 관념이
결합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야릴로 숭배는 이교 시대에서 멀리 떨어진 뒷날에도 몇몇 슬라브 민
족 사이에 아주 널리 퍼지고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예컨대 18세
기 말경에 보로네지(러시아 공화국 서부의 주)의 그리스 정교의 주교 티
흔 좌하(座下, 그리스 정교에서의 주교 대주교 부-府)주교에 대한 존칭)가
이 신앙에 빠져 있는 그의 교구민들에게 엄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그의 설교에서 우리는 이교 시대의 슬라브인들 사이에
'예로부터의 우상' 야릴로가 있고, 이 신을 기려 며칠씩 계속해서 '축
제 土동과 악마적인 유희'를 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러시아의 민간 전설은 야릴로 신의 겉모습에 대해 흥미로운 서술을
전하고 있다. 거기에서는 이 신은 젊고 아름다운 신으로 나타난다. 백
마를 타고 횐 망토를 입고 머리에는 들꽃을 꽃고 있다. 왼손에는 한 줌
의 보리 이삭을 들고 맨발이다.
야릴로에게 회생물을 바치는 이교 시대의 제의 (料料에는, 또한 크리
스트교 시대가 되어서도 이 신을 기리며 행해진 민중의 제례에는 두 가
지 요소가 들어와 있었다.
봄과 풍요의 신인 야릴로의 제례는 슬라브의 몇몇 지역에서는 봄에
맨 처음 씨뿌리는 날을 골라 행해지고 있었다. 19세기의 백러시아에서
는 마을의 젊은 아가씨들이 모여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를 뽑
고, 야릴로의 횐옷을 입히고 머리에 화관을 씌우고 백마에 태운다. 그
리고 이 선택된 아가씨 주위를, 갓 딴 꽃으로 머리를 장식한 젊은 아가
뛰들이 길게 둘러싸고 춤을 춘다. 아가씨들이 춤추며 둘러싸는 원을
'호로보데' (고대 그리스의 코로스(가무단-에서 파생한 기묘한 슬라브어) 라고
했다. 제례는 마을의 남녀 노인들이 보는 앞에서 갓 씨가 뿌려진 밭에
슬라브 신화 453
서 행해졌다. 그리고 '호로보데' 는 신의 위대한 은혜를 71리는 노래를
큰소리로 불렀다.
신께서 밟으신 땅에서
보리가 자란다, 쑥쑥
신께서 시선을 던지신 땅에
보리 이삭이 드리운다, 꽃처럼---
여름이 오면 야릴로의 '장례식' 이 행해졌다. 동부와 서부 슬라브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이 의식은, 수세기 동안 크리스트교 설교사들의
온갖 공격에 계속 저항했다-특히 러시아에서.
이 제례가 게속되는 동안에는 남자나 여자나 젊은 아가씨나 모두 모
여 함께 먹거나 마시며 춤을 춘다. 날이 저물면 제례가 행해진 장소에
짚으로 만들어진 야릴로의 우상이 운반되어 온다. 이것이 신이 죽은 모
습으로, 술과 춤에 취한 여자들이 그 우상에 다가서며 흐느껴 운다.
"오, 신께서 돌아가셨다-신께서 돌아가셨다1"남자들도 달려와 우상을
붙잡고 흔들며 큰소리로 외친다. "그렇다, 여자들의 말은 거짓이 아니
다-여자들은 이 신을 잘 알고 있다. 이 신이 꿀보다 달콤하고 상냥하
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탄과 기도가 오래 계속되고, 그것이 끝나면
우상은 여자들의 시중을 받으며 매장지까지 운반되어 간다. 사람들은
우상이 매장되면 다시 먹고 마시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야릴로와 마찬가지로 쿠팔라도 환희의 신격이었다.
쿠팔라의 이름은 목욕한다는 뜻의 동사 쿠파치와 같은 어근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6월에 행해지고 있던 쿠팔라의 제례 동안, 사람들이 강에
서 목욕을 하교, 그곳에서 쿠팔라의 이슬, 즉 축제날 밤에 모인 이슬로
몸을 닦았다는 사실로 설명된다. 물에 대한 숭배, 그 신비적인 힘에 대
한 신앙이 쿠팔라 신앙을 성립시키는 몇몇 요소 중 하나였다.
이 신앙은 일반적으로 이교 시대의 슬라브인 사이에 아주 광범위하게
454
퍼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민간 전설에는 각각 불가사의한 힘
을 지닌 '죽은 물(고인 물)'과 "살아 있는 물(솟아나는 물-에 관한 이야
기가 종종 나온다. 어느 절설의 주인공이 적의 검에 맞아 비참하게 죽
고. 그 몸이 갈기갈기 찢겨 땅에 흩어졌을 때, 요정이 '죽은 물' 을 그에
게 붓자 갈기갈기 찢긴 손발이 다시 붙고, 이어서 '살아 있는 물'을 붓
자 다시 완전히 살아났다는 것이다.
고대 슬라브인들은 성스런 샘을 숭배하고, 그 곁에는 종종 기도와 회
생을 바치는 장소가 만들어졌다. 몇몇 지방에서는 19세기 말경 아직
'물에 용서를 청하는' 기묘한 풍습이 남아 있었다. 병자가 자기 병을
치료하기 위해 '물에 용서를 청하는' 데, 그 방식은 물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다음과 같은 옛날 주문을 세 번 입으로 외우면서 물 속에 한
조각의 빵을 바치는 것이다.
"저는 당신께 찾아왔습니다. 머리를 조아리고 죄를 참회하며. 경애하
는 어머니인 물이시여, 부디 저를 용서해 주소서. 물의 조부이시며 조
상이신 분들이여, 당신들께서도 부디 저를 용서해 주소서?
이 김에 여기에서 슬라브 여러 지방을 흐르는 큰 강-도나우, 드
네프르, 돈, 볼가-이 러시아의 '빌리니(서사시)'에 의해 반인반신
(平人半神)의 전설적인 영웅의 모습으로 찬미되고 의인화되며 거의 신으
로 숭배되고 있었던 것에 유의하자.
물에 대한 숭배는 쿠괄라 숭배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즉 목욕,
몸껏기, 화관(花冠)의 물 속으로 투입 등은 쿠팔라의 제의의 중요한 일
부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거기에서는 불에 대한 숭배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위치를 차
지하고 있었다. 쿠팔라의 성야(聖灰)에 밝혀지는 성스런 불은 정화-情
化)의 효력을 지니고 있고, 쿠팔라의 숭배자들은 이 불 주위에서 '호로
보데' 를 만들며 춤을 추거나 그 불 위를 뛰어넘었다.
이교가 공식적으로 사라진 뒷날의 쿠팔라 제례 속에서 우리는 여자
옷을 입고 리본이나 여성 목걸이 등으로 장식된, 짚으로 만들어진 쿠팔
슬라브 신화 455
라 우상을 만난다. 여기저기에서 만나는 이 짚으로 만들어진 우상은 나
무 팔을 지니고, 그 나무 팔에는 화관이나 여러 가지 여성 장식품이 매
달려 있었다,
날이 저물면 우상은 행렬을 따라 강으로 운반되어 그곳에서 물 속에
던져지든가, 혹은 성화가 있는 곳으로 운반되어 그곳에서 불태워지든가
했다.
이교 시대의 세르비아에서는 우상은 물 속에 던져지지 않고 단지 물
에 담그어질 뿐이었다,
쿠팔라 숭배의 기본적인 일부는 나무, 풀, 꽃에 대한 숭배였다,
쿠팔라 우상은 축제가 계속되는 동안 베어진 뒤 다시 땅속에 단단히
고정된 나무 밑에 놓여 있었다. 발트 해 지방의 슬라브인 사이에서는
자작나무가 성목(핼水)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여자들은 말을 짐마차에
매달고 행렬을 지어 숲으로 간 뒤, 그곳에서 자작나무를 골라 베고 그
것을 축제가 행해지는 장소로 엄숙한 분위기 속에 운반해 왔다. 꼭대기
주위에 일종의 왕관이 생기도록 위쪽 가지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잘
라 냈다, 그러고 나서 마찬가지로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나무를 땅속에
고정시키고, 이어서 그 나무에 화관을 매달았다. 이런 작업은 여자들에
의해서만 행해지고, 남자들은 이 성목에 손을 대서는 안 되게 되어 있
었다.
이 성목 앞에서 사람들은 닭을 죽여 회생으로 바쳤다.
하지만 쿠팔라 숭배의 가장 생기발랄하고, 또 가장 신비적인 측면은
분명히 성스런 마법의 풀 찾기였다,
쿠팔라 축제날 아침 새벽녘에 '플라쿤 트라바' , 즉 '눈물의 꽃' (식물
학상으로는 부처꽃)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뿌리에는 죄 많은 악마들
을 길들이고 억제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 풀을 지닌 주술사는 다
음과 같은 액막이 주문을 외우기만 하면 된다.
"눈물의 꽃이여! 눈물의 꽃이여! 너는 오랫동안 많은 눈물을 흘려 왔
지만, 네가 얻은 것은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더 이상 네 눈물이 이 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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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진 들에 흐르는 일이 없기를-네가 흐느껴 우는 소리가 푸른 해원(海
原) 위에 울려 퍼지는 일이 없기를-사악한 악마나 악마와 비슷한 놈들
이, 또 늙은 마녀들이 무서워 떨게 하기를-만약 놈들이 네게 복종치
않으면 놈들을 네 눈물 속에 빠뜨려 버려라. 만약 농들이 네 눈을 피하
려 한다면 심연과 소용돌이 속에 가두어 버려라. 내 말이 몇십 세기 동
안 오래도록 아주 확고하길 ?
'라즈리브 트라바' , 즉 '부수는 풀' (식물학상으로는 범의귀)은 낮 동안
에 채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풀에는 철, 금, 은, 동을 단지 대기만
해도 잘게 부수어 버리는 효력이 있다, 낫이 이 풀에 닿으면 낫이 부러
진다. 그럴 때에는 자른 풀을 전부 모아 물 속에 던지지 않으면 안 된
다. 그러면 수면에 떠오르는 것이 이 '부수는 풀' 인 것이다.
다른 '이름 없는 풀'에는 한층 더 불가사의한 힘이 있다. 이 풀을 몸에
지니고 있는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아맞힌다.
하지만 쿠팔라의 진짜 성스런 풀은 고사리이다, 왜냐하면 많은 신화
나 민간 전설에 따르면 이 풀은 1년에 한 번 쿠팔라의 밤에밖에 꽃을(보
다 정확히 말하면 꽃 하나를) 피우지 않기 때문이다. 이 꽃에는 무한한 힘
이 있다. 그리고 우연히 이 꽃을 꺾을 수 있는 자에게는 왕이나 가장
권력 있는 전제군주들조차 굴복한다. 그 남자는 악마들도 지배한다. 보
물이 있는 곳을 알고, 가장 귀중한 재보도, 가장 아름다운 여자들도 어
디서든 가까이할 수 있다.
그러나 쿠팔라의 꽃인 고사리의 '불의 꽃'은 악마들에 의해 주의 깊
게 지켜지고 있다. 이 꽃을 꺾기 위해서는 한밤중이 되기 전에, 마법의
꽃이 출현하는 시각 전에 숲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꽃봉오리는 줄
기를 따라 생물처럼 을라온다. 충분히 성숙하면 정확히 한밤중에 큰소
리를 내며 두 개로 쪼개지며 불꽃이 피어난다. 마침내 가만히 보고 있
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섬광을 내쏟으며 밝게 타오르는 불꽃이다,
이 꽃을 따려는 용기 있는 자는 꽃 주위에 마법의 원을 긋고 나서 그곳
에서 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에게 공포심을 안겨 주기 위해 악마
슬라브 신화 457
들이 가장한 여러 괴물들 쪽을 보아서는 안 된다. 또한 그에게 호소하
는 여러 가지 목소리에 대답해서도 안 된다. 만약 그러면 그의 모습은
곧 사라지고 만다,
쿠팔라의 밤에는 나무들이 자기가 자라고 있는 땅에서 나와 이동하며
서로 어떤 이상한 말로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다만 쿠팔라의
꽃, '불의 꽃' 을 손에 넣은 행운의 남자만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크리스트교 시대에 있어서의 슬라브의 이교 신화
이 연구 도중에 나는 슬라브인들 사이에 크리스트교 시대에 들어와서
도 이교가 뿌리 깊게 존속하고, 또 그것이 그들 속에 무의식적인 기억
으로 남아 있었던 것을 확인하는 많은 기회를 만났다,
그 주요한 성채 속에서-도시와 전쟁의 신들이 지배하는 왕국 속에
서-크리스트교에 패배한 이교 신화는 방대한 수의 전원의 주민들 정
신 속에 깊이, 그리고 아주 광범위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거기에서는,
특히 그리스 정교를 받드는 슬라브인들 사이에서는 이교와 크리스트교
의 공존, 양자의 일종의 공생 관계가 맺어졌다. 이 관계는 나아가 농촌
의 성직자들 자신이 이 종교적 공생, 이 '이중 신끙을 묵인하려는 태
도를 보이고 있던 러시아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크리스트교 시대의 슬라브인 사이에 있어서의 이교의 이러한 기묘한
존속 형태를 연구할 때 가장 풍부한 자료가 되는 것은 러시아 민족의
영웅서사시인 저 유명한 빌리니-일찍이 있었던 자'라는 의미를 지닌 말 빌
에서 나온 빌리나의 복수) 이다.
빌리니는 '늙은 보가티리 (용사들-에 관한 '이야기군' 과, '젊은 보가
티리'에 관한 이야기군,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전자의 '이야기군'은
기원이 좀더 오래 되고 신화적인 요소가 풍부하다.
용사 스비아토고르에 관한 빌리나는 이 용사를 자기 자신의 힘을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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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운 짐' 처럼 지고 있을 정도로 강한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자랑
하는 이야기 속에서 그는 대지의 무게를 전부 한 곳에 모을 수 있는 장
소가 발견된다면 '대지' 도 들어올려 보이겠노라고 공언한다. 그런 그가
대초원 속에서 작은 주머니를 발견하고 막대기로 건드려 보지만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 손가락으로 움직이려 해도 구르지도 않는다. 말에서
내리지 않고 손으로 주머니를 잡았지만, 주머니를 들어올릴 수 없다.
오랫동안 나는 세계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이런 불가사의한 일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
자그마한 주머니가
움직이지도 구르지도 않고, 들어올릴 수도 없다니 -
스비아토고르는 애마에서 내려 주머니를 두 손으로 잡고 무릎 위까지
들어올린다, 그리고 그 자신이 무릎까지 땅속에 묻힌다. 그때 그의 얼
굴에서 흐르는 것은 눈물이 아니라 피였다. 그는 이제는 자신이 묻힌
곳에서 일어날 수가 없다. 그것이 그의 최후였다.
'축축한 어머니 대지'가 지닌 불가사의한 신의 힘이 이 시를 통해 교
묘하게 묘사되고 있는 것이리라.
다른 빌리나 속에서 우리는 놀라운 기적을 보이는 농부, 용사 미쿨라
를 만난다. 그의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가래'는 한 떼의 용사들이 모두
달려들어도 들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데, 미쿨라는 이것을 한 손
으로 들어올린다. 미쿨라의 작은 말은 가장 빠른 준마보다 빠르다. 왜냐
하면 "미쿨라는 '축축한 어머니 대지' 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용사 볼흐 또는 볼가에 관한 빌리나는 이 인물을 '빛나는 매'로도,
'잿빛 이리'로도, '황금 뿔을 지닌 된 소'로도, 또 '아주 작은 개미'로
도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신화적인 존재로 그리고 있다. 이 빌리나는 이
주인공의 이름 그 자체만으로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즉 볼흐
-)는 이교 슬라브에 있어 제사장 겸 주술사를 의미하고 있던 볼흐
슬라브 신화 459
-
u
-대지' 의 무게가 담긴
흐(vo-khv,복수는
주머니를 끌어올리려 하는
Volkhvy-의 변형임에 틀림없다.
이런 인물들은 하나같이 명화히
여기에서는 이교 신화는 크리스트교적
예를 들어 -스비아토고르는 '대지' 의
,신-은 그 오만함 때문에 그에게 벌을
용사 스비아토고르
신화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인 요소도 또한 수반하고 있다,
무게를 똑똑히 알았다. 하지만
내리셨다-고 빌리나가 결론을 내
460
리고 있듯이.
기적의 힘을 지닌 농부 미쿨라는 그 스스로 '재가 땅을 갈고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신' 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낭인(後人, 밤에 이리 모습을 하고 산과 들을 헤매는 마법사)으로서의 모
든 특징을 구비하고 '마법을 쓸' 수 있는 용사 볼흐조차 그의 불가사의
한 재능을 '신'의 교회를 연기로 화하게 하려'는 '인도 황제'의 음험한
기도에서 그리스 정교의 성도 키예프를 지키기 위해 사용한다.
이런 이교적인 요소와 크리스트교적인 요소의 혼합은 젊은 보가투리
에 관한 빌리니에서도 마찬가지로 현저하다.
이 제2의 '이야기군' 속에서 가장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것은 '농
부의 아들' 일리아 무로메츠-일리아는 엘리아(기원 9세기의 이스라엘 예언
자)란 뜻. 무로메츠는 무롬I러시아 공화국 서부의 도시 이름)에서 유래한다)ol
다. 그에 관해 기록한 무수한 빌리니가 뇌신(雷神) 페룬과의 .유사성을
나타내는 몇 가지 특징을 그에게 부여하고 있다.
일리아 무로메츠의 말은 지상을 달리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숲 위
의, 그리고 하늘을 달리는 구름 약간 아래의' 하늘을 난다. 일리아 무
로메츠가 그 기적의 활로 쏘는 화살은 페룬의 신궁(神弓)에서 날아가는
화살과 비슷하게 교회의 등근 지붕을 부수고 단단한 떡갈나무도 갈가리
찢어 버린다,
일리아의 강한 힘의 유래는 신화적이다. 그는 신체 장애자로 태어나
33년간 '앉은 채' 일어설 수도 없었다. 어느 날 두 명의 나그네(방랑의
시인)가 들러 '꿀 음료'를 그에게 주었다. 그것을 마시자 그는 자기 안
에 '큰 힘' 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용사 일리아는 좋은 크리스트 교도이다. 그는 늙은 양친의 축
복을 받지 않으면 약간의 빛나는 무훈(武勳)도 세을 수 없다. 그는 믿지
않는 무리로부터 크리스트교 신앙을 지키고, 그리고 죽을 때가 다가오
자 키예프에 대성당을 짓는다, 이 최후의 공적을 이루어 낸 뒤에 일리
아는 '죽어서 돌로 화하고' , 그의 육체는 '오늘날까지 원래의 모습 그
슬라브 신화 461
대로 남아 있다' .
용사 포토크 미하일로 이바노비치에 관한 빌리나 속에서 우리는 이교
시대의 장례식의 흔적을 발견한다. 몇 가지 증거에 따르면 이교 시대의
슬라브인들 사이에서는 아내는 남편이 죽으면 자진해서 그 뒤를 따랐다
한다, 용사 포토크 미하일로 이바노비치가 결혼했을 때, 그와 신부는
두 사람 중 어느 한쪽이 먼저 죽으면 살아 남은 쪽도 자진해서 죽음에
몸을 맡기기로 맹세한다. 빌리나는 나아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포토크
의 젊은 아내가 결혼 후 1년 반밖에 되지 않아 죽어 버린다, 포토크는
'깊고 커다란' 묘를 파게 하고 '보조 사제를 동반한 사제들' 을 부르고,
아내를 묻고 나서 그 자신도 갑옷을 입고 말에 타고서 묘 안으로 뛰어
내려간다. "사람들은 사원의 종에 매인 밧줄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만
남기고 묘지 위에 떡갈나무로 만든 천장을 설치하고 누런 모래로 덮었
다." 그러고 나서 그 위에 나무 십자가를 세웠다. 용사 포토크는 그 용
감한 준마와 함께 정오부터 한밤중까지 묘 안에 가만히 있었다, 그는
"용기를 내기 위해 커다란 초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한밤중에 "그의
주위에 온갖 파충류 괴물이 모여들고= 이어서 "불꽃을 일렁이며 타오
르는" "거대한 '뱀' 이 다가왔다". 포토크는 그의 '날카로운 검' 으로
'뱀'을 죽이고 그 머리를 잘라 냈다. 그가 "그 뱀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
를 아내의 몸에 바全'자, 아내가 육체가 곧 되살아났다. 그래서 포토크
는 밧줄을 당겨 사원의 종을 울렸다. 사람들이 그와 그의 아내를 구출
해 냈다, 사제들은 두 사람에게 성수를 뿌리며 "본래대로 살아갈 것을
명했다". 고령에 이르러 포토크가 아내보다 먼저 죽자, 아내는 "그와
함께 축축한 대지 속에 산 채로 묻혔다".
젊은 보가투리에 관한 다른 빌리니 속에서 우리는 슬라브의 큰 강,
즉 도나우, 드네프르, 돈 등의 강이-전설적인 영웅의 모습으로-
의인화되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열거한 빌리니全 키예프의 용사들에 관해 이야기한
것이다. 노브고로드의 용사들에 관해 기록한 빌리니도 또한 크리스트교
462
사상과 혼합된 많은 이교적인 신화적 여러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예컨
대 '부자 상인' 용사 사드코에 관한 빌리니처럼 사드코는 자기 배로
'푸른 해원 (海原-을 항해하고 있다.
갑자기 사드코의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멈춘 채'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사드코는 자신이 12년간 푸른 바다 위를 항해해 왔지만 "'바다의
황제'에게 한 번도 공물을 바친 적이 없다"는 것을 떠올린다. 그래서
그는 커다란 공기 세 개를 늘어놓고 첫번째 공기는 '불순물이 없는 순
은' 으로, 두번째 공기는 '금과 동의 함금'으로, 세번째 공기는 '회귀한
진주'로 채운다. 그러고는 공기를 작은 판자 위에 올려 놓고 판자째 푸
른 바다 위에 던진다, 하지만 "작은 판자는 가라앉지 않고 떠 있는다".
사드코는 그것을 '바다의 황제'가 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목' 을 원하기 때문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제비를 뽑은 결과, '바다의
황제' 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은 사드코 자신이었
다. 그는 성 니콜라이의 성화상(聖書像)과 애용하는 '구슬리' (러시아 비
파-를 들고 배에서 내려가 작은 판자 위에 앉는다. 그대로 잠이 들어 눈
을 떴을 때에는 '순백의 돌 궁전' 속에 있었다. 그는 '바다의 황제' 앞
에서 '구슬리'를 연주한다. 그러자 황제가 춤을 추기 시작하고, 그 미
친 듯한 격렬한 춤 때문에 폭풍이 일어 "많은 죄없는 사람들이 폭풍의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 춤과 폭풍을 멈추기 위해 사드코는 자기 '구
슬리' 의 현을 자른다.
다행히도 기적적으로 육지로 돌아온 뒤 사드코는 그로부터 12년간 볼
가 강 위를 항행한다. 노브고로드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자, 그는
"빵을 크게 자르고 거기에 소금을 바른 뒤 볼가의 파도 위에 던진다"
볼가는 그의 친절에 감사해 인간의 말로 말을 걸고 자기 대리로 '자신
의 형제인 일리메니 호-에 인사하러 가달라고 말한다, 일리메니 호
늘보단O_필 시仁됐낄릴 굵스이 므 -길rl 11-,틴 -------
슬라브 신화 463
용사들의 최후도 또한 신비적이고 또 신화적이다. 그것은 정스런 루
시(러시아의 옛 이름)에게 어째서 이젠 용사들이 없는가' 라는 제목이 붙
은 빌리니 속에서 이야기된다.
어느 전쟁에서 다행히 이긴 뒤에 용사 한 명이 자랑삼아 이렇게 말했
다. "만약 지금 내 앞에 '저세상의 군대' 가 나타난다 해도 나는 그것을
때려부숴 보이겠다1(1그 순간 두 명의 낯선 전사가 나타나 용사들에게
도전했다, 한 용사가 그들에게 검으로 일격을 가해 각각 두 동강이로
만들어 보였다. 하지만 두 명의 전사 대신 네 명의 새 전사, '모두 괄팔
한' 전사들이 나타날뿐이었다. 그네 명 대신 다시 새 여덟 명의 전사,
'모두 팔괄한' 전사들이 나타나는 식으로 계속 마찬가지로 전사들의 수
가 끝없이 많아졌다. '사흘 3시간 3분 동안' 용사들은 변함없이 계속
늘어나는 '저세상 군대' 와 싸웠다. 그 대단한 힘센 용사들도 무서워졌
다. 그들은 "돌산과 어두운 동굴 속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그곳으로
도망친 용사들은 모두 돌로 변해 있었다.
"그 이후 이 성스런 루시에 더 이상 용사들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뇌신 페룬의 특징 대부분이 용사 일리아 무로메츠에게
전이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리스 정교를 받드는 슬라브인들 사이에
서는 그중에서도 특히 예언자 엘리아에게 페룬의 특징이 계숭되고 있
다. 슬라브 농민이 천등 소리를 들으면, 그것은 예언자 앨리아가 불마
차를 타고 하늘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동물의 신 볼로스는 그 역할과 특성이 성 블라스(또는 성 블라시, 즉
성 블레즈(아르메니아 세바토스의 주교, 316년 순교-에게 전해지고 있다.
성 블라스의 날(3윌 11일)에는 햇빛을 쬐며 '암소가 옆구리를 텁히기 시
작한다". 사람들은 성 블라스에게 옛 주문과 기묘하게 닳은 기도문을
바친다. '성 블라스여, 부디 저회에게 행운을 내려 주소서. 저회의 젊
은 암소가 윤기 있는 털을 지니고, 저회의 거세 수소가 잔뜩 살이 찌도
록
러시아에서는 가축 유행병이 돌면, 사람들은 성 블라스의 성화상을
464
손에 넣고 사제에게 수고를 끼칠 것도 없이 스스로 직접 그것을 병든
가축이 있는 곳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암양과 숫양과 수말과 암소를 한
마리씩 꼬리로 하나로 묶고 나서 함께 웅덩이로 데려가 그들을 돌로 때
려 죽인다(이것은 이교의 제의의 흔적이다). 이 '희생'을 바치는 동안 사
람들은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른다.
"너를 돌로 때려 죽이겠다. 너를 땅속에 묻겠다. 너를 땅속에 묻겠
다. 암소들의 사신(死神)이여, 너를 깊은 곳으로 쫓아 버리겠다. 너는
이젠 두 번 다시 우리 마을로 돌아을 수 없으리라?
그러고는 회생으로 바쳐진 짐승들의 시체 위에 짚과 땔나무를 쌓아
올리고 완전히 태워 버런다.
흥미로운 것으로 성 블라스를 모신 교회는 언제나 옛 목장 끝에 있다
는 사실에 주의하자.
많은 이교적 풍습이 크리스트 교도 슬라브인들의 종교적 의식 令인
그 기본적 부분으로 들어가 있다. 예를 들어 매장이 끝난 뒤에 고인의
친구들이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모임에 초대된다. 그들은 묘지에서 그
대로 모임 장소로 가서 실컷 마시고 먹는다. 이것은 이교 시대의 슬라
브인들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던 죽음의 정령에게 바치는 향연, 즉 옛날
의 '트리즈나' 의 흔적이다.
부활절 뒤 일주일 동안 많은 슬라브 여러 지방에서는 그리스 정교도
일가가 묘지로 가서 그들의 조상이나 친척들의 묘 위에서 마시고 먹는
다. 남은 음식은 묘지 위에 던진다.
또 종종 교회 내에까지 이교적인 미신이 강하게 남아 있다, 예컨대
쿠팔라의 날에 '눈물의 풀' 을 꺾은 행운의 소유자가 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주문이 교회 내의 성화상 앞에서 소리 높여 읖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같은 예가 무수히 많다.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그 이교적인 요소
대부분과 함께 보존되어 온 쿠팔라의 축제가 크리스트교의 도입 후에
하지 -윌 21일)에서 수세자(理法者) 이오안(세례 요한. 축제일은 6월 -일)
슬라브 신화 465
의 날과 아주 가까운 날로 옮겨진 것이 그 두드러진 예이다.
이오안은 많은 슬라브계 언어에서는 이반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많은 슬라브 여러 지방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교의 신인 쿠팔라의
축제가 이반 , 쿠팔라 축제가 되었다. 이 이교적 신격의 신화적인 이름
(쿠팔라)과 위대한 크리스트교 성자의 이름(이반)의 이상한 결합이, 어
떤 다른 사실보다 훌릉하게 크리스트교 시대에 이교가 살아 남을 때의
그 소박하고 단순화된 존재 방식과, 슬라브 세계의 민중 사이에 있어서
의 두 종교의 공존을 특징짓고 있다 하겠다.
466
신화론
1. 고대 그리스인과 신화
그리스 신화
피에르 그리말(파리 대학 교수)
최혁순(번역문학가) 옮김
원전(原典)과 유물이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그리스 신화란 기원전 -
세기, 즉 호메로스의 시편까지 거슬러올라가, '이교(異敎-세계의 종말
인 그리스도 탈생二추, 즉 기원후 卜4세기에 걸쳐서 그리스어를 사용하
는 여러 지방메 널리 퍼져 있던 갖가지 불가사의한 설화와 전설을 총괄
하여 붙인 명칭이다.
이것은 지극히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명확하게 규명하기는 어렴
지만, 복잡한 기원과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의 젖신사상 중요한 역
할을 해왔고 지금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모든 민족은 발전의 어느 시기에는 불가사의한 전설이나 설화를 갖게
되고, 한동안은 적어도 어느 정도 그것을 사실로 믿었다. 대개의 경우
전설에는 초자연적인 힘, 또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
에 그것은 종교의 영역에 속하게 되어 있다. 이런 경우 그것은 다소를
막론하고 세계를 해석하는 일관된 체계가 되고,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
의 사적 (事蹟)은 하나하나가 창조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그 결과 세
계 진체에 떳찬은 -치-릴rJ1小-- 1711" -'
신화론 467
다른 지방에서는 서사시적 요소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경우도 있다. 물
론 이런 경우에도 전설에는 신들이 나오고 그 힘이 과시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거기서는 세계의 시작이라고 하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다. 주인공은 커다란 칼을 휘두르기도 하고, 뭔지 기막힌 계략을 생각
해 내기도 하고, 불가사의한 나라에 여행을 할 뿐이므로, 가령 그에게
인간의 수준을 넘는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그는 인간인 것
이 다.
이 형에 속하는 것으로는 웨일스 지방의 설화로 알려져 있는 켈트 족
에 관한 일련의 전설이다. 또 다른 지방에서는 전설이 전하는 이야기가
거의 완전한 초자연적인 성격을 끈어버리고 역사적 사실을 가장하고 있
는 경우가 있다, 특히 로마인은 의심할 여지도 없는 전설적 사적을 가
장 오랜 연대기 속에 넣고 있는 것 같다. 침입자를 맞아 티베르 강의
다리를 들어 방어한 호라티우스 코클레스'리 영웅적인 모습은 실은 외
눈박이 신의 화산에 불과하다. 강가에 서 있었던 그 신상(챘-은 그 옛
날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마침내 로마인과 에트루리아인의 (일부는 역사적
인) 투쟁의 삽화를 만드는 자료가 된다.2)
.公理즈 신화는 모두 위와 같은 성격을 갖추고 있다.
역사적 색채를 띠고 도시나 가문의 고귀한 유래를 나타내는 것도 있
고, 또한 서사시로 발전한 것도 있으며, 종교상의 신앙이나 제사의식을
I)호라티우스 코클레스는 로마 북방에 있었던 대국 에트루리아, 쿨루시옴의 왕
포르센나(B.C.6새기)가 대군을 이끌고 로마에 쳐들어왔을 때, 두 사람의 친구
와 더불어 로마로 통하는 다릿목을 지키고, 다리가 파괴되고 있는 동안 적과
대항해서 싸우다가 두 친구를 먼저 돌려보내고 흔자 남아 싸운 뒤, 최후로 강
을 건너 귀환했다고 한다.
2)티베르 강에 걸려 있던 수블리키우스 다리의 맞은편에 있는 불의 신 불카누스
에게 바컥진 땅 위에 호라티우스 코를레스 상이라고 전해 오는 절름발이에 외
눈인 남자를 나타낸 오래 된 상이 있었으나, 이것은 외눈에 절름발이인 그리
스의 신 혜파이스토스였다고 한다.
468
권위 있게 만들고 그것을 설명하는 것도 있다. 말하자면 다른 여러 나
라에서 전설이 맡고 있는 역할은 하나도 알려져 있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더욱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신화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미토스' 는 사람이 하는 얘기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비극의 소재나 회
극의 줄거리는 물론 아이소포스(이솝 우화)의 주제도 미토스다. 미토스
는 '로고스' 에 대립한다. 그것은 공상과 이성 또는 이야기하는 말과 논
증하는 말의 대림인 것이다. 로고스와 미토스는 말의 양면이며, 양자
다같이 정신생활의 기본적 기능이다, 논증으로서의 로고스는 설득을 목
표로 하며 듣는 자의 판단을 요구한다. 그러나 로고스는 올바르고 논리
에 닿을 경우는 진실이지만 뭔가 속임수가 있을 경우는 허위가 된다.
그러나 미토스는 오로지 미토스 외에 아무 목적도 없다. 믿고 안 믿고
는 사람의 자유지만, 그것이 아름답거나 사실처럼 생각되기 때문에, 아
니면 그저 믿고 싶어서 믿는 것이다,
이리하여 미토스는 인간사의 비합리적인 모든 것을 그 주위에 끌어
모으는 것으로, 성질상 모든 창조적 작용에 있어 예술에 가까운 것이
다. 그래서 아마 여기에 그리스 신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있을 것
이다. 신화는 토든 정신분야에 끼여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조
형미술이건 문학이건 그리스 문화의 어떠한 영역에도 신화는 언제나 끼
여들게 마련이다. 이처럼 그리스인에게 신화는 어떤 특정한 경계가 없
다. 그것은 어디든지 끼여들어 간다.
그리스어로 된 가장 오래 된 서사시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다.
이것들은 넓은 의미에서의 신화로서, 인간적인 것과 초인간적인 것이
언제나 섞여 있는 것이 이 두 서사시의 특징이다. -일리아드-의 영웅들
의 조상, 때로는 그 양친에게도 한 명 내지 여러 명의 신이 있다. 아킬
레우스"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아들이며, 또한 그의 운명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신탁에 의해서 결정되어 있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
1, (일리아드-에 나오는 주인공.
신화론 469
던 헬레네는 제우스의 딸이며,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그녀를 찾아 스
파르타에 왔을 때, 그녀로 차여금 남편과 딸을 버리게 한 것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뜻이다.
이처럼 신들이나 여신들은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어져 싸운다. 파리
스의 수호신 아폴론은 자기를 숭배하는 신관이 아카이아인'씨기 때문에
크리세이스를 빼앗긴 원한도 있고 하여 아카이아군 사이에 질병을 발생
케 한다. 포세이돈, 아테나, 아레스도 전투에 참가한다. 그리고 아킬레
우스의 공적은 물론 영웅 자신의 힘을 나타내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또
한 끊임없이 그를 도와 주고 있는 신의 가호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디세이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디세우스가 신들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은 실로 아킬레우스의 경우처럼 명확하지는 않다. 그는 헤르메
스의 아들 아우톨리코스의 서자라는 설도 있으나 그 밖에 많은 이설이
있다. 그러나 아테나는 오디세우스의 수호신이 되어, 나중에 그가 바다
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과 미움에서 구원을 받게 되는 것도 이 여신
덕분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 서사시의 본질은 인간의 투쟁을 웅대하게
그려 내고 신화에 의해서 그것을 우주적인 규모로 확대하는 데 있다,
그 이야기는 문자 그대로만 취한다면 하나의 종교적인 신앙을 나타내고
있다.
제우스와 올림포스의 신들은 구체적으로 인간에 간섭한다. 그러므로
제물을 바쳐 신들을 공경하고 그 노여움을 풀게 하고 모든 수단을 다해
그들과 화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신화가 설명하는 바는 이미
이 협소한 물질세계를 초월하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트로이 성벽 아
래서 1대 1의 싸움을 벌이게 되어 있는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운명은,
제우스가 저울에 달아 잴 때 한쪽 저울접시는 천상으로 달하고 또 한쪽
1)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서는 그리스인의 총칭으로 아직 아카
이아인이 사용되고 있다.
小
470
은 명부의 암혹 속으로 몰락해 버린다.1)이러한 터무니없는 저을 이야
기를 오랜 고대의 그리스인이 진정으로 받아들였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다, 신화는 용어에 신경을 쓰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신화는 도
저히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실재의 영상을 상징적으로 그려 내는 것이
다, 사실 신들을 그리거나 조각한 벽화나 부조들은 그것을 노래한 시인
에게 있어서도 신비로운 세계를 이해시괴기 위한 표현수단이나 계시의
형식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며,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성질의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들을 위해서 세워진 신전 전면에는 그곳에 모신 남신
또는 여신에 관한 전설 중의 특징적인 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파르테논
신전 동쪽에는 아테나 탄생의 기적이 그려져 있다. 서쪽에는 아티괴'니
영유권을 사이에 두고 싸우는 포세이돈과 아테나의 모습이 보인다. 이
것들은 아테나인이 그 도시와 그들 자신에 대해서 품고 있던 감정을 전
체적으로 구상화하고 있는 것이어서 말에 대한 어떠한 분석보다도 그것
을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아테나는 어머니가 없고 전능한 아
버지 제우스의 머리에서 튀어나온다. 그것은 아티카 시민이 대지에서
태어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아테나는 언젠가 제우스와 정을 통한
'사려 (思-의 여신 메티스의 아들이다. 데메테르와 처녀 (페르세포네-
즉 대지와 번식의 여신은 조용히 기적적인 탄생의 고시 (告示)를 기다리
고 있다. 어언간 해조(海潮)에 썬기고 포세이돈이 날라다 준 소금과 해
풍이 스며든 대지 위에 아테나는 수목 중에서도 성장은 느리지만 결실
1)헥토르는 트로이 목의 대장(llu장 참조-일리아드-중에서 아킬레우스와 헥
토르가 1대 I로 싸우려 할 때 제우스는 거대한 거울로 양자의 운명을 쟀다.
-일리아드-제22권 18&247행.
아티카는 아테네를 수도로 하는 중부 그리스에서 에게 해 쪽으로 돌출해 있는
커다란 반도. 개지에서 태어나다(Autachthones) ~란 말은 고대 그리스에서는 외
지에서 이주해 온 것이 아니고. 아득한 옛날부터 같은 땅에서 계속 살고 있던
민족을 가리킨다,
신화론 471
이 풍요한 훌릉한 올리브나무를 자라게 한다. 이처럼 아테나의 신화는
이미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않게 되어 버린 시대에도. 그리고 몇 세기
가 지난 지금도 아직 소멸되어 버리지 않는 하나의 영감으로서, 깊은
반성을 불러일으킨다.
사상의 보고(賣價)인 신화는 곧 이성과 신앙의 중간에서 고유의 생명
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그리스인의 모든 고찰은, 그리고 또
한 그들의 먼 후계자들의 일체의 고찰은 신화에서 시작되고 있다. 비극
시인은 소재를, 서정시인은 이미지를 신화에서 구하고 있는 것이다. 프
로메테우스, 오이디푸스, 오레스테스 등은 우선 전설의 주인공이었다,
아킬레우스나 오디세우스, 광란의 아이아스'리 모습은 옹기나 단지, 술
잔 등과 같은 갖가지 기물 위에 무한히 되풀이되어 그려져서 신화를 일
상생활 속에 도입하고 누구에게나 친근한 것으로 만들었다. 집에 있거
나 극장에 가거나 간에 어디에서나 신화 속의 인물의 모습이 보이고,
그것이 사람들의 뇌리에 새겨져 상상을 자극하고 도덕적인 관념을 지배
한다. 게다가 철학자도 추론이 그 한계에 부딪혔을 때 알지 못하는 것
을 풀어 내는 방법으로서 신화의 도움을 구하는 수가 있다. 이러한 신
화의 일반화, 그 힘의 해방이야말로 그리스 문화가 인간사에 가져다 준
기본적인 기여, 아마 무엇보다도 더 본질적인 기여의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스 신화 덕분에 '신성불가침한 것' 에 대한 공
포감은 없어지고 정신의 로든 영역에 걸친 고찰의 길이 열리고, 시는
예지가 되었던 것이다.
아이아스는 텔라몬의 아들. 그는 살라미스인을 이끌고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
여 용감무쌍하게 싸웠으나, 아킬레우스가 죽은 후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놓고
오디세우스와 싸워 패하여 노여운 나머지 일시 발광하여 양의 무리를 자기의
원수로 알고 죽이다가 나중에 그것을 부1Z럽게 여겨 자살한다,
472
-. 신화와 그 집성
기존의 전설을 이용하거나 혹은 수집한 고대의 작가 및 학자의 노작
은 그것들이 보여 주는 놀랄 만한 다양성이나 무통일성을 은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호메로스: 헤시오도스: 핀다로스: 아이스킬로스" 등은
명확한 체계를 형성하는 신화에 근거를 두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며,
거기서는 신들과 영웅들이 뚜렷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서, 일정한 삽화를 포함하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
만 그러한 인상은 가장된 것이다.
이와 같은 그룻된 인상은 주로 위에 열거한 시인들-신통기-의 작가 헤
시오도스는 제외하고)이 거의 예외없이 암시적인 수법을 사용하고, 그들
이 의지하고 있는 신들의 계보나 설화를 교과서식으로 서술하고 있지
1)호메로스는 그리스 최고의 셔사시 -일리아드-와 g오디세이아-의 저자로 전해
내려오는 시인이다. 이 서사시가 씌어진 연대는 늦어도 기원전 8세기 이전으
로 생각되나, 호메로스에 대해서는 전설적인 구전 외에는 아무것도 판명되지
않고 있다.
2)호메로스보다는 역사적으로 약간 뒤에 나온 중부 그리스의 보이오티아의 교훈
적 서사시인이다. 노동의 덕과 길총의 일력을 노래한 g노동의 나날-및 신들의
계보를 천지의 성립에서부터 노래한 -신통기 (神統記-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3, B.C.522(또는 516년)-440년경. 보이오티아 출신의 그리스 최대의 서정시인. 많
은 장엄한 합창용 노래를 만들었으나, 그 중에서 올림피아 등의 경기에서의
승리를 축하하며 노래한 작품을 모은 4권만이 온전히 전해지고 있다. 그는 이
노래 속에서 수많은 신화를 승리자나 그의 가계 또는 그의 고향과의 관계에서
인용하고 있다.
4) B.C. 535-456. 아티카 엘레우시스 출신의 대비극 작가. 많은 작품 중 7편이 전
해지고 있다. 그는 깊은 종교적 입장에서 신화를 제우스의 세계 지배의 정의
실ol丸느 과긴애-껏1~11--- -' '
신화론 473
않은 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다소나마 주의 깊게 분석해 본다
면, 동일한 저서에서는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많은 저서들을 비교해
보면 곧 상이점이나 모순점을 발견하게 된다. 동일성은 단순히 인위
적 부차적인 것에 의해 도입되는 데 불과하다. 철학이나 신학 또는 과
학의 체계처럼 신화는 하나의 계통이 세워진 전체로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식물처럼 마음대로 싹을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들
의 과와 종 또는 변종 같은 것을 감별하는 것이 신화학자가 할 일이다.
신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제우스의 출생이라고 하는 극히 근본적인
점에 있어서까지도 다양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설에 의하면 그의 출생지는 크레타 섬의 이데 산으로 되어 있다. 그러
나 크레타 섬 안에서 딕테 산도 같은 명예를 요구하고 있으며, 또한 펠
로폰네소스 남부에서는 아직도 메세네 가까이에 클레프시드라라고 부르
는 섬이 있는데 제우스는 그 섬에서 탄생한 것으로 되어 있다.
신의 출생지가 여러 곳으로 알려짐에 따라 전설도 여러 가지가 있는
데, 그것들 사이의 모순은 크레타 섬에 제우스, 즉 이데의 신, 또는 딕
테의 신과 이토메'리 메세니아의 제우스를 동일시하려 할 때부터 느끼
게 된다. 모순은 신화가 전 그리스적인 것이 될 때 비로소 그 내부에
존재한다. 그런데 이러한 그리스 신화의 구성은 결코 원시적인 것이 아
니라 이미 신화에 대한 고찰의 결과인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보다 더 해결하기 곤란한 일에 부딪힌다. 그것은 전설
이 사회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상이한 여러 시대와 상태에서 발전했기
때문이다, 아트레우스 가의 계보는 미케네'비 영주, 티린스'리 영주, 아
1)메세니아 중심에 있는 바위산. 이 지방 주민의 활동의 중심지였다.
2)펠로폰네소스 동부에 있는 아르골리스 평야에 있는 옛 도시. 신화에서는 트로
이 원정의 총수인 아가멤논-그는 아트레우스 가에 속한다-의 성이며,
B.C. 15-12세기 사이에는 선사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였다.
3)미케네 시의 해변 방벽이 된 아르골리스 평원으로 돌기한 작은 고지. 여기에
474
르고스'리 영주 등에 대해서 운운하고 있지만, 때로는 이들 왕국을 구별
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티린스나 미케네의 응성기가 아르고
스의 것과 동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의문은 저절로 풀린다.
나라의 '왕'을 운운하는 미케네의 지방적 전설은 주권이 이미 미궤네
를 떠나서 아르고스에 있던 시대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말하
는 자는 필요한 대로 장소를 변경하지만 지방색이 강한 일부 요소는 여
전히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이것이 흔란의 근원이 된다, 테살리아-
의 일련의 전설은 펠로폰네소스에도 동형의 전설을 갖고 있는데, 여기
에서도 같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아폴론의 사랑을 받아 의약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어머니가 된 코로니스는 보통 테살리아의 플레기아스
의 딸로 되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플레기아스는 사실은 펠로폰네소
스의 에피다로스" 사람이라고도 일컬어져, 에퍼다로스에도 아스클레피
오스의 신앙이 성행했다고 하는 것이 이것으로 증명된다 하겠다. 이와
같은 이설은 실은 동일한 민족이 테살리아에서 에피다로스에 이르는 지
역을 점령하고 있던 시대 -흑은 테살리아에서 펠론폰네소스에 이주했
던 시대라고도 하는데, 어느 쪽 가정에 의해서도 사실은 증명된다-
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어서, 그후 이 민족은 잇따른침입자에 의해 압
도되써 그들이 동일민족이라는 감정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옛
날의 일체성은 공통의 전설과 공통의 지명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되
어 버리고 말았다.-에퍼다로스의 플레기아스와 테살리아의 플레기아스
서도 선사 그리스 시대의 장려한 유적과 성지가 발견되고 있으며, 그리스 신
화 중에서도 유명하파.
1)역사시대의 아르골리스 지방의 수도. 역시 선사시대의 유적이 있다,
2)그리스 최북부의 평원지대. 이 땅의 남동부도 또한 그리스 신화의 중심지로
되어 있다.
3)펠로폰네上士 동북부 반도에 있는 의약의 신 아스플레끽오스의 신전이 있었던
굿이 다.
4) B.C. 15-틴세기경에 그리스에서 미케네 문화라고 칭하는 동일 문화가 펼쳐져
신화론 475
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쪽은 테살리아의 도시 이름이요, 다른 한쪽
은 아르고스의 성산(輸出)의 이름으로서 두 개의 라리사I)라고 하는 지명
이 있다.
이와 같은 신화는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역사적 , 민족적 조건과 더불
어 발달하는 것이어서 때로 신화라고 하는 것이 없었다면 잊혀졌을지도
모를 상황의 뜻하지 않은 증거나 흔적을 보여 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것은 귀중한 연구 수단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벌써
100년 내지 200년 전에 단순하게 믿었던 바와 같이 신화를 '모든' 역사
의 왜곡이라는 따위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신화를 연구하여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와 환경을 신화로 하여금 설명하게 하고 있는 것
이다. 근대의 신화학자들은 옛 선인들에 비해 희소하지만 시사에 넘치
는 이 설에 더한층 주의 깊게 눈을 돌리고 지나치게 완전한 형태를 갖
춘 신화를 경계한다. 엄밀한 구성은 바로 후대인의 손질이 첨가되어 있
다는 것을 폭로하기 때문이다.
신화에 대한 연구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시작되어 왔기 때문에 대부분
의 경우 우리가 책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오랜 기간에 걸친 발전의 결과
에 불과한 것이다, 신화의 고전절 자료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대체로 그
러한 것이다. 이미 기원전 6세기 말경에 밀레토스인 헤카타이오스n는 -
있어, 이 무렵엔 테살리아에서 펠로폰네소스까지 동일한 그리스 민족이 점유
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기원전 12세기경부터 북방에서 드리스
인 등 새로운 그리스 민족이 이민족과 함께 남하하여 중부와 남부에 침입했기
때문에 미케네 문라는 파괴되고 그리스는 중세시대에 접어들었다.
1)이 이름은 본래 과리스 선사시대에 살던 민족의 지명으로, 이 두 곳뿐만 아니
라 에게 해역 전체에 걸쳐서 많은 라리사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테살리아의 수도 라리사와 아르고스의 아크로폴리스의 라리사이다.
2)소아시아 지방 이오니아의 수도 밀레토스 시의 역사와 지리지 (地理誌)의 연구
자. B.C. 약 500년 전후의 사람. 신화와 전설 속의 모든 왕가의 계보를 정리하
고 또 세계의 지리지를 쌨다.
476
권의 -계보(系譜-를 썼다. 그것은 단편적인 것밖에는 전해지지 않고 있
지만 그 설은 후계자들의 저작에 계승되어 있다. 그것은 최고의 역사가
인 아르고스의 아쿠실라오스: 아테네의 페리키데스2)등의 이론의 근거
가 되어 있으며 이들 역사가는 여러 가지 전설을 수집하여 이것을 그리
스사의 '제1장' 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페리키데스
는 아티카의 기원에 대한 신화를 조사하여 이 지방의 전통적인 왕의 리
스트를 작성한 최초의 사람이다. 이 리스트 속에는 에리크토니오스-또
는 그 별신인 에레크테우스"와 같은 전설에 나오는 대지의 주신과 역사
적으로 존재했다고 생각되는 인물이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나라에 구전되는 전설을 조사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과 아
르고스 지방의 전설을 조화시키려고 부심했던 것 같다. 아르고스 지방
의 전설은 그 무렵 벌써 그리스의 중세를 아는 데에는 불가결한 근본
자료가 되었던 것이다.5)이 점에 있어서 페리키데스는 후일 지극히 중
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 미틸레네의 헬라니코스6)라는 저자의 선구자가
1)혜시오도스의 -신통기-를 산문으로 고치면서 그 계보를 정정한 -계보-를 저술
했으며 페르시아 전쟁(B.C. 약 500次) 이전의 사람이라는 것 외엔 알려져 있지
않다.
2)신화적 계보학상의 대저작인 -역사-의 저자.
3)아티카의 전설적 영웅.
4)아테네의 전설적 왕. 아마도 에리크토니오스와 동일인이었던 것 같으며, 양자
는 흔히 흔돈되고 있다. 에레크테우스도 여신 아테나의 손에서 자라났다.
5)아르고스가 있었던 평원지대는 그리스의 선사시대, 즉 그리스의 영웅 전설시
대의 중심지이며 신화가 집증된 곳이다.
6)헬라니코스는 소아시아에 가까운 레스포스 섬의 수도 미틸레네 출신의 역사
가. 그 생애는 B.C.s세기의 대부분에 걸쳐 있다. 신화, 전설 및 많은 도시에
관한 역사상의 저작이 있으며, 또한 그의 아르고스에 있는 헤라 여신의 대신
전의 여신판 리스트와 그 연대 및 스파르타의 카르네이아계 숭리자 리스트는
연대학상 중요하다.
신화론 477
되었다, 헬라니코스도 또한 아르고스의 연대기의 연구에 몰두한 사람으
로 아르고스의 주신인 여신 헤라의 여신관(文理會)들의 연대 결정에 대
한 그의 저작은 주전되는 중요한 종교적인 전설을 수집한 것이지만 불
행히도 그 대부분은 없어지고 말았다. 로마 시의 이름을 최초로 기록한
명예도 헬라니코스에게 주어져 있지만, 그는 로마를 트로이의 승리자들
이 '귀환' I)한 후 그리스인들의 세력 팽창으로 건설된 그리스 식민시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 기원전 8세기에서 5세기 말에 나타난 이들 연구
와 수집의 근본적인 경향은 역사상 및 전설상 사건의 '연대' 를 결정하
려는 요구였다. 역사와 전설이라는 이 두 부문의 구별은 어떤 의미에서
는 순전히 근대적인 구별이 된다. 더구나 전설은 역사의 한 해석에 불
과하다는 설도 있을 수 있어, 쉽게 양자의 구분을 가능하게 하는 기준
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그것은 아주 구별이 애매하지만,
이 구별은 그 당시에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건의 분
류도 주로 가정적인 분류에 그치고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트로이 함
락이라든지 올림피아 경기의 창시 등과 같이-시대가 판명되어 있는 것
과 가정된 여러 가지 사건과의 시대적 관련을 결정하는 일인 것이다.
'세대' 3)라고 하는 개념의 틀은 가장 널리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서 사람
들은 사건이나 인물을 이 틀 속에 끼워 넣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거기에는 여러 가지 곤란한 일들이 생기는데, 특히 상한 것은 헤라클레
1)트로이 멸망 후, 그곳을 공격한 그리스의 여러 장군이 본국으로 귀환하는 길
에서의 모험과 귀국 후의 운명에 관해서는 많은 전설이 있었다. (오디세이아-
는 그 중의 하나를 노래한 것이라 하겠다.
2)트로이 함락은 전승에 의하면 B.C. 12세기, 올림피아 경기의 창시는 B.C. n6년
으로 되어 있다.
3)그리스인은 인물의 연대를 그 사람의 가장 한창인 해-대체로 40세-로
나타내고 또한 신화나 전설 속의 영웅들을 세대에 의해 구분하며, 동일 세대
의 사람들이 동일한 전설 속에 나오도록 하고 있다. 그리스의 영웅 전설시대
는 이에 의하면 약 5대 정도밖에는 없다.
478
스'비 모험으로, 그것은 마치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세계에서 행해지는
것이지만(전설에 혜라클레스와 다른 중요한 영웅들과의 해후라는 것은 나오지
않는다) 이 시기 결정은 특히 미묘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 까닭은
전설이 혜라클레스의 아이들의 이름을 듣고 그 아이들이 테세우스fl의
아이들과 함께 이것저것 집단적인 대사업에 참가하고 있다든지 하는 사
실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테세우스와 아르골리
스의 위대한 영웅(헤라클레스)은 서로 한 번도 만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영리한 그리스인은 이 대답에 조금도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테세우스가 활약한 것은 헤라클레스가 기디아에서 옴
팔레의 노예"로 있었던 무렴의 일이며, 반대로 헤라클레스의 만년에 해
당하는 시대에 테세우스는 명부에서 플루톤에게 잡혀 있었다.
이와 같이 전설적인 '전기' 속에는 필요한 일화가 나오게 마련이다.
이러한 일화는 물론 원시적인 것일 수가 없으며, 그것은 필요한 연대의
일치를 죄하기 위해서 끼워 넣은 것이다, 때로는 인물이 그렇게도 오랫
동안 살아 있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서 동형의 인물의 세대 전체를 일화로 보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도
있다. 트로이에서 싸웠던 아카이아인의 한 사람인 네스토르"비 나이가
고령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헤라클레스 전설 속에 단역으로 나온다는
사실에 의해서만 설명할 수 있다. 혜라클레스가 메세니아의 필로스에서
넬레우스" 및 그 아들들과 싸을 때 어린아이였던 네스토르가 아카이아
1)이 책의 제17장 참조.
2)이 책의 제18장 참조.
3)헤라를레스는 살인죄를 범했기 때문에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의 신탁에 의
해 1년간 아시아에 있는 리디아의 여왕 옴팔레의 노예가 되어 여자들이 하는
일을 하고, 여왕은 그의 사자 가죽옷을 입고 몽등이를 손에 쥐고 있었다.
4)네스토르는 트로이 전쟁 때에는 1인이 3대를 산 노왕으로 출정하고 있다.
5)펠로폰네소스의 서남 해안에 있는 필로스의 왕. 혜라클레스가 살인죄를 범한
후 왕에게 그 더러옴을 썬을 것을 첫핸읖 때 깃절닷理71렐므-
신화론 479
인의 트로이 원정 때도 생존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하여 그는 3세대
에 걸쳐 생존한 인물로. 현명하고 또한 회의석상에서는 모든 사람의 존
경을 받는 백발의 노인이 되어 전설적인 풍모를 상상하게 만든다. 이
점에서 말하면 연대학은 창조적인 역할을 다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여기
서 하나의 일화를 포착할 수가 있다.
고전의 시대가 시작될 무렵에 전설의 큼직한 분류는 이미 고정되어
있었고, 그때까지 남아 있던 모순은 그대로 후대에 남게 되었다. 전설
적인 시대의 '역사'는 이미 결정적이어서 사람들은 그저 그걸 좀더 잘
알려고 노력할 따름이다. 기원전 3세기 이래 이른바 '집성' 이 나타나고
때로는 잘못 요약된 것이 원저자의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그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러한 전설집의 대부븐이 일정한 형의 전설만을 모아
놓고 있다. 가령 -레네의 에라토스테네스I)는 기원전 3세기 후반에 -별
에의 변신-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에는 주인공이나 여주인공이 결국
은 별자리가 되었다는 갖가지 설화가 수집되어 있었다.
이러한 노작은 고대를 통해서 계속되었으며 연애담인 -제요(提要-베
르길리우스와 동시대인 니카이아의 파르테니오스'비 것이 전해지고 있다) 라든
지 -변신담(變身認-같은 것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스의 니칸로스는 기원전 2세기에 책을 쓴 사람인데: 이것이 직
제외하고 왕의 모든 아들들을 왕과 함께 죽였다.
1) Be 3세기 중엽--2세기 초엽. 아프리카 키레네 출신의 수학자며 지리학자. 그
밖에도 시를 쓰고 철학 , 역사 문학사 관계의 저작도 있다.
2) BC 1세기경 에레게이아의 시인. 그의 시는 없어졌지만, 산문으로 쐬어진 시
인이나 역사가들의 글을 모은 연애담집이 남아 있다.
3)'변신담(Metnarphoses) '이란 신화, 전설 중에서 어떤 이유로 주인공이 별 , 나
무 , 들 또는 새나 짐승 등과 같은 것으로 변한 얘기를 말한다. 뒤에 나온 오
비디우스의 것은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그리스 신화 전채를 다루고 있다.
4)소아시아의 코로본 시 출신으로 현존하는 작품은 없지만 그의 변신담은 유명
하다.
480
접 교본이 되어 오비디우스"는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변신담>>이라는 제
목으로 긴 시편을 발표했다.
그러나 때로 신화 서지가(書恣時들은 한층 더 야심적인 의도를 품고
어떤 이들은 전통적인 전설의 전체를 포괄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종
류의 시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폴로도로스'리 -비블리오테케
(sibliotheke)~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저작이다. 아폴로도로스는 기
원전 2세기경 아테네의 문법학자요 문헌학자로, 고대 시인들의 주해 -註
解)에 헌신했던 사람이다. 그의 저작으로 전해지고 있는 -비블리오테
케>>는 그 자신의 저작이 아니라 1세기경의 것을 요약한 것으로 생각되
고 있는데, 그 속에는 우주와 신들의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세대를 따라
전설의 최후의 시기, 즉 트로이의 함락 이후의 신화를 계통적으로 정리
했다. 이렇게 되면 신화는 향유를 바른 사체, 즉 살아 있는 원천에서
전달된 박식을 위한 단순한 재료에 불과한 것이 된다. 하지만 인위적인
생명 없는 통일성을 가져오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정통적인 집대성
티에 우리는 별개의 자료로 위의 것과는 완전히 대립되는 근대적인 사
고방식으로 기획된 노작을 찾아볼 수가 있다.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것
은 파우사니아스의 -그리스 안내기-이다. 거기에는 극히 풍부한 지방적
전설이 보존되어 있으나 이것들은 종합적인 저작에서는 배제되어 있는
것으로서, 전기한 이전(異傳-민간전승(民間傳承) 속에 살아 있는 이전
을 이루고 있다. 불행하게도 현존하는 파우사니아스의 저작은 그리스
전역에 걸친 것이 아니므로 약간의 지방에 관해선 분명하지 않은 점이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 그 점을 보완할 수 있었던 것은 시의 주석
1) B.C 3-AD. 18로마의 시인, 많은 시를 썼지만, 그 중에서도 (변신담-은 유명하
다. 그는 그리스 전설을 담시풍으로 재미있고 우스왐스럽게 노래하고 있다.
2)아폴로도로스(ApollodIs)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비블리오테케-는 그의 말대로
그의 저작은 아니지만 현존하는 고대 신화에 관한 저작으로 가장 완전한 것으
로 평가된다.
신화론 481
자高業者)들이 수집된 고대의 편찬자가 고전 작품에 붙인 주(註-스콜
리아(scholia)>>속에 포함되어 있는 단편적인 지시 덕분이다.
이러한 끈기를 필요로 하는 학구적인 작업은 특히 호메로스의 시에
행해졌으며, 이교 세계가 끝난 뒤에도 계속되었다. 12세기 비잔틴의 학
자 요하네스 및 이삭의 체제스 형제"는 때로 고대로 거슬러올라가는 사
실의 보고를 제공해 주고 있다.
총체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것들이 그리스 신화인 것이다. 지극히 복
잡한 기원을 가진 것, 인위적으로 종합되어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여러 단편, 학자나 작가나 시인의 오랜 세윌에 걸친 노작을 멋대로 덧
붙이고 깎아 놓은 것이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여전히 원시적인 민간 사
상이나 민간 신앙에서 생겨난 것 등이 뚜렷이 구분된다. 거기서는 학문
적인 것과 자연 발생적인 것, 살아 있는 것과 인공적인 것이 밀접하게
얽혀 있다. 그 분석을 꾀한 것은 근대 과학의 커다란 명예이며,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닐지라도 그것은 인간 정신의 본질적인 하나의 사고방식
에 진정한 의의와 능력을 부여해 주고 있다.
여기서 '고전적'인 신화, 즉 형성과 발전의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닌,
고정된 정통적인 형태의 그리스 신화를 생각해 보면,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갖가지 신화가 규모나 형태로 볼 때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가 있다. 어떤 것은 세계의 형성이나 '신들의 탄생'에 관한 얘기인데,
가장 은밀한 의미에서 신화라는 말은 이런 얘기들에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때에 따라서는 그것들을 '신들의 탄생에 관한 신화'
또는 '우주 생성 신화' 라고 한다. 그 얘기들은 헤시오도스가 수집하긴
했지만, 이것들은 물론 헤시오도스 훨씬 이전의 것들이며, 어떤 것은
1) 12세기 비잔틴의 학자. 방대한 주역, 고증적 연구, 문학사에 관한 저작이 있으
나 아주 부정확하고 무칠미하다. 하지만 그 속에는 그 저작이 없었다면 전해
지지 못했을 귀중한 자료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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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그리스적인 것이고, 어떤 것은 동양의 종교 또는 선사(先史) 그
리스적인 종교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원시적
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많은 경우, 그것은 극히 발
달한 관념의 소산으로 신관계급에서 형성되어 점차로 철학적인 요소가
주어져서 마침내 분명한 상징적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이들 신화는 고전시대가 한창 응성할 때도 또한 그 후까지
도 계속 생명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종교적 신앙의
지주가 되었으며, 마침내는 우리도 알고 있듯이 체계적인 종교도 그 신
비스런 궤적 속에 이것들을 따 넣게 되었다.
본래의 의미에 있어서의 신화와 나란히, 신들과 영웅을 주인공으로
하는 '전설권' 이 있다. 이것들은 일련의 일화나 신화들로 되어 있으며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언제나 같은 인물이라는 데서 겨우 통일성
을 유지하고 있다. 본래의 신화와는 달리 이들 설화에는 아무런 우주적
인 의미도 포함되꺼 있지 않다. 헤라클레스가 어깨로 하늘을 떠받친다
고 할 때, 그것은 오직 그의 육체적인 힘을 증명하고 있을 뿐으로. 하
늘도 우주도 그 때문에 뭔가 특별한 낙인을 받는 일은 없다.
이들 얘기의 주인공이 신이건(헤르메스나 아프로디테, 아니 제우스라 할
지라도) 반신적 (半神的) 인간이건 어느 쪽이라도 달라질 것은 없다.
신에 관한 어떠한 전설도 오직 주인공이 신이라는 것만으로는 신학적
인 규모를 갖지 못한다. 헤르메스가 소를 훔쳐 가지고는 발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土꼬리를 끌고 간다. 이것은 널리 알려진 민담일 뿐, 하등
의 특별한 종교적 의의를 제시하지 못한다.
이러한 전설권의 근본적 성격은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토막토막 잘라
져 있다는 것이다. 전설권이 결코 완성된 형태로 생겨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장기간에 걸친 발전의 산물이어서 본래는 독립체였던 여러 가지
일화가 어떻게 가지런히 놓여져 하나로 마무리지어진 것일 뿐이다. 예
를 들면 헤라클레스의 모험담 같은 것이 그런 것이혀, 그 개개의 이야
기는 오랫동안 서로 아무 연관성도 없었다. 그의 이른바 개사업'의 하
신화론 483
나하나는 일정한 장소나 성지와 결부되어 있다. 그 사업을 최초로 성취
한 자가 언제나 헤라클레스였다는 것도 화실하지 않다. 헤라클레스가
자기 이전에 있었던 일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메가라 왕을 위해 알카토의까 퇴치한 사자는 테스피오스
왕을 위해 헤라클레스가 퇴치한 키타이론의 사자와 이상할 정도로 똑같
다. 헤라클레스 전설 가운데 가장 새로운 서방 세력의 확장에 관해선
그 과정이 명백하다. 그리스 여행자는 물론이고, 로마의 여행자도 이탈
리아, 갈리아, 나아가서는 독일 경계 지방에서까지 헤라클레스와 마주
친 일이 있다지만, 이와 같은 그 나라 신과의 동화현상은, 처음에는 무
관한 것이었던 요소를 전설권 속으로 끌어넣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리
스의 헤라클레스 자신도 셈족의 길가메시(Giilgamesh) ,멜과르트
-등과 같이 오늘날에는 거의 잊혀지고 있는 신들과 비슷한 성
격을 갖고 있다.
전설적인 설화의 제3의 형은 때로는 '민담편' 이라는 명칭으로 표시된
다. 전설권과 같이 그것은 일정한 장소의 것이어서 이것들도 또한 우주
적 . 상징적 가치를 포함하고 있지 않지만, 전설권이 한 사람의 인물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데 반해서, 민담편은 순전히 문학적으로 통일되어
있고, 줄거리가 단일하다는 점에 의해 규정된다.
따라서 트로이 전쟁은 헬레네를 중심으로 하는 전설권도 아니고, 아
킬레우스를 중심으로 하는 전설권도 아니며, 또한 프리아모스'니 아들
들을 다 중심으로 하는 전설권도 아니다. 그것은 복잡한 삽화나 다양한
인물을 포함하는 장기간에 걸친 사건의 이야기인 것이다.
1)팰로푸스와 히포다메이아의 아들. 키타이론 산에 살며 메가라 왕의 아들을 죽
인 사자를 퇴치하였다.
2)셈족의 영응 전설 가운데 나오는 인물. 길가메시를 중심으로 한 유명한 서사
시가 있다.
3)페니키아의 신. 전쟁에서의 숭리자 , 항해자로서 묘사되어 있다.
4)트로이의 왕. 핵토르와 파리스 등의 아버지.
484
-일리아드)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호메로스의 시는 그 중의 근소
한 일부, 즉 아킬레우스의 노여움을 중심으로 한 부분을 전개하고 있는
데 불과한 것이다. 그 밖의 부분은 10년간에 걸친 포위, 아시아 여러
도시의 약탈, 제1차 원정의 실패, 아시아에의 불운한 상륙, 새로을 원
정, 출범을 방해한 무풍, 처녀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 신들의 마
음을 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일, 헥토르의 죽음, 아킬레우스의 죽음,
파리스의 죽음, 그 뒤를 이은 트로이의 함락, 예언과 예언자의 싸움 등
등 이것들은 모두 그저 암시되어 있는 데 불과하다. 이것들은 문학의
장르 속에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것들이다. 또 이들 삽화가 따로따
로 개별적인 음창가(吟唱歌)의 대상이 되었는지 어떤지도 명확하게는
알 수 없다. '트로이 전쟁'은 하나의 자유 주제며, 그것에는 모든 임의
로운 연장 또는 속편이 계속 첨가되어 온 것이다. 그것은 전설과 문학
적 창조의 중간에 위치한다. 하지만 전설적인 민담편과 소설가나 시인
이 만들어 낸 이야기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헬레네의 연애
사건은 그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로 믿어진 시대가 있었지만, 소설의 주
인공은 결코 신앙의 대상이 된 적은 없다. 그런데 헬레네는 격하된 신,
아마도 펠로폰네소스에 앞서 거주했던 민족의 종교와 결부된 달의 여신
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헬레네의 무덤' 이라는 것도 실제로 존
재하고 있어서 후대에 알렉산드로스는 '아킬레우스의 무덤' 에서 제의
保儀)를 거행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리스인의 눈에는, .시인의 공상
이 아무리 그것을 문학적으로 장식한다 할지라도 이것은 모두 역사로
보였던 것이다.
전설적 민담편의 주인공은 모든 공상의 재료가 될 수 있다고 하더라
도, 또한 그것을 소재로 한 작품이 아무리 천재적인 위대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그 주인공은 결코 공상의 산물과 같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더욱 분석을 진행시켜 나가면 다음에 우리가 대하는 것은 완
결된 전설이 아니라 단순히 어떤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설화, 말하자면
연기(쁩꾼 설화적인 일화이다. 즉 다시 말하면 현존에 존재하는 그 무
신화론 485
엇인가의 뜻밖의 사정, 이상한 종교적 제사의식이나 관습, 기괴한 바위
의 형태, 고유명사의 외형 등을 설명하기 위한 일화에 지나지 않는다.
가령 키프로스 섬에 있는 신전에는 몸을 앞으로 구부린 여자의 상이 있
었는데, 이것은 어떤 잊혀진 제사의식을 나타내는 것, 생식에 관계 있
던 어떤 공감적 마법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상의 이상한 자세
를 설명할 것 같으면 그것은 젊은 아가씨의 화석이다. 그 아가씨는 호
기심에 못 견며 창에서 바깥을 내다보다가 신들의 습격을 당한 것이라
는 따위의 얘기가 전해지고, 그것을 주제로 연애설화가 만들어지게 되
었다,
이것이 아낙사레테의 전설이다. 그녀는 자신의 무정한 태도로 말미
암아 연인이 죽었는데도,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연인의 장
례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창에서 바라보아 주겠다는 정도로밖에는 생각
하지 않았다고 한다. 독살스러운 마음을 가진 아낙사레테는 마침내 석
상이 되어, 불멸의 몸이 된 그녀의 화석은 아프로디테의 신전에 놓이
게 되었다.
지명에 대해서도 같은 설화가 많은데, 그것은 멋대로 한 어원적 고찰
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민중의 풍부한 상상력은
갖가지 생각을 다 짜내고 있다, 하천의 명칭이 여러 가지 있다는 것은
지리학자들이 잘 알고 있는 터이지만, 모든 하천은 그 유역의 주인에
따라서 몇 개의 호칭을 갖게 되는데. 이것은 풍부한 화제를 제공하고
있다. 별자리의 모양, 유성의 궤도 같은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이 경우엔 별로 변신한 인물이 생시에 일어났던 사건에서 유래하는 사
랑과 미움의 주제가 된다.
그러므로 신화는 몇 개의 범주로 분류할 수가 있고 그것에 의해서 분
석도 용이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분류에 속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아주 한계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 생성 신화가 전설
또는 민담편으로 격하되는 수가 있으며, 연기설 (緣起設)도 아주 용이하
게 위의 어느 것으로 끼여드는 수가 있다. 대상이 살아 있는 물건일 경
486
우 언제나 그렇듯이, 해부학적인 분석에 사로잡혀 신화의 궁극적인 모
습이 갈기갈기 찢겨진 몸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
를 거듭하고 있는 유기체 속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3. 올림포스의 신
제우스가 일으킨 천상의 혁명은 크로노스의 아들들을 권력의 자리에
앉혔는데, 그 새로운 우두머리인 제우스는 크로노스의 막내아들이었다.
크로노스의 자녀로는 최초에 탄생한 세 명의 여자, 혜스티아, 데메테
르, 헤라와 다음에 탄생한 세 명의 남자인 하이데스, 포세이돈, 제우스
가 있었다.
그들은 시초부터 각자의 운명에 의해 정해진 고유한 속성과 영역을
가지고 있었다. 세 명의 여신 중 헤스티아는 부엌의 신이었다. 인간의
주택에 있어서 부뚜막이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이 여신은 올림포스에서
부동의 자리를 점유하고 제우스로부터 영원한 처녀성이 허용되었다. 그
동생 데메테르는 경작되는 토지를 지배한다. 이것은 가이아와는 다른
여신이다. 가이아는 근원적인 어머니로서 그 가슴속에는 평탄한 토지도
있고, 산이나 사막도 있다. 데메테르도 다산(多産)의 어머勺이기는 하
나, 이 여신은 특히 밀에 관한 신화와 결부되어 있으며, 그 신앙은 주
로 밀이 생육되는 비옥한 평야에서 볼 수 있다. 헤라는 제우스의 정실
(王室)로서 결혼을 관장한다. 매년 이 두 사람의 결흔을 기념하는 축제
가 행해진다. 여신의 상(像)은 꽃다운 신부의 의상으로 장식하여 이를
매고 행렬을 지어 시가를 누비며 첫날밤의 침상이 설치된 신역(神-에
봉납된다. 이와 같이 하여 이 부부 신의 생식력이, 또한 그것을 통하여
모든 자연의 번식력이 새로이 소생하게 된다.
신화론 487
구적인 결정에 의하여 그들에게 귀속된 것이 아니라, 추첨의 결과라고
전해진다. 티탄들에 대한 승리 후에, 세 형제는 그와 같이 세계의 세
영역을 분담하였다는 것이다. 제우스는 하늘을, 포세이돈은 바다를, 하
이데스는 지하와 사자(使者)의 나라를 획득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그 이전에 티탄들과 전쟁을 하고 있을 동안에, 키클로프스로부터 그들
의 미래의 직분과 관계되는 무기를 각각 받았다. 즉 제우스는 천등을,
하이데스는 그것을 쓰면 자태가 보이지 않게 된다는 투구(죽음의 상징)
를, 포세이돈은 삼지창-어부가 생선을 찍는 데 사용하는 것 같은
것으로서, 포세이돈은 그것을 가지고 대지와 바다를 진동시켰다-을
받았던 것이다. 이 전설에는 역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야심에 기인
한 서술과 본래의 서술이 결합되어 있고, 후자는 명백히 연대적인 서술
과 모순되지만, 그런 것은 별로 문제시되고 있지 않은데, 예컨대 헤라
클레스가 탄생하기 전에 행해진 거인 전쟁에 이 영웅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크로노스의 자녀인, 이상 여섯 명의, 최초의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다른 새로운 신들이 가입하여 대신小術)의 '의회' 가 구성된다. 새로운
신들의 대부분은 제우스의 아들이나 딸들이다. 그 때문에 제우스는 종
종 신들의 아버지' 라고 불린다. 후대의 전설, 특히 에트루리아인의 영
향을 받은, 로마에서 발전한, 전설에서는 열두 명의 신의 이름이 나오
는데, 열둘은 티탄파 티타니스를 합한 수와 같다, 그 명부는 확정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천하였을 것이다. 제우스로부터 탄생한 신
으로서, 고전 시대의 올림포스의 신들의 '제2세대' 는 아프로디테, 아폴
론, 아르테미스, 헤파이스토스, 아테나, 아레스, .헤르메스 및 디오니소
스이다. 여기에 크로노스의 자녀 여섯을 더하면 전부 14명이 된다. 이
들 중에서 디오니소스는 호메로스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올림포
스의 신참자(新參者)인 것이다. 이쨌든 올림포스의 신을 전부 12項으로
하려면 하이데스와 포세이돈을 럴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들의 영역
은 천상에는 없기 때문이다. 디오니소스가 참가하기 이전에는 아마 하
488
이데스만이 올림포스로부터 제외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인 (公認)된 대
신(大神)의 명부에 끼치 않는 신들은 그 밖에도 여럿이 있다, 당연한 일
이지만, 페르세포네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녀는 데메테르와 제우스의
딸인데, 하이데스의 아내로서 남편에 의하여 명계(冥界)에 구류되어 있
기 때문이다. 또 포세이돈의 아내로서 네레우스와 도리스의 딸인 암피
트리테도 들어가지 않고, 다음에 열거하는 제우스의 다른 많은 자녀들
도 물론 제외되고 있다. 신들의 청춘을 상징하는 헤베, 출산의 수호신
에일레이티아, 계절을 지배하는 호라이, 때(시간) , 이해(利害)를 떠난
모든 정신적 활동을 관리하는 무사이, 매년 자연의 부활을 수호하는,
삶의 기쁨을 의인화한 카리테스, 우아의 여신 등이 그것이다. 이들 신
은 모두 대신들의 종자(後者)에 불과하고 시녀처럼 유력한 신들을 받들
고 있는데, 그들과 같은 특권을 향유하고 있지는 않다.
새로운 올림포스의 신들의 성격은 그들의 연장자들의 그것과 같이 명
확히 규정되어 있다. 아폴론은 예언, 병의 치료(또는 반대로 그 만연-
음악 등을 관장한다. 그는 무사이의 합창을 지휘하고 황금의 현금을 탄
다. 그러한 여러 직분의 배후에는 마술적인 '노래'의 힘이 잠재하고 있
기 때문에, 이것이 아폴론의 다양한 개성의 근거가 될 것이다. 그는 종
종 태양신이라고 생각되고 있으나, 이 생각은 물론 그의 속성(屬性)이
나, 그 제식(資式)에 있어서의 약간의 칭호에 어느 정도의 근거를 갖고
있으나. 태양신으로서의 성격은 그에게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확실히 그는 그의 어머니 레토에 의하여 직접 '성진적(星原的-성격의
티탄, 코이오스 및 포이베에 연결되어 있기는 하나, 앞에서도 말한 바
와 같이, 태양은 그리스 신화에 있어서는 명확한 존재를 가진 신이다.
이 신은 고유한 전설을 가지고, 최후까지 티탄이라고 불리었다. 그는
히페리온의 아들이라고 생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티탄이라는 칭
호는 아폴론에게는 절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아폴론은 올림포스의 신들
중의 한 사람이요, 티탄에 비하여 쵤씬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다.
레토가 델로스 섬에서 아폴론을 낳았을 때, 마침 그때는 그 달의 이
신화론 489
레째되는 날이었으므로, 신(神)인 백조(白鳥) 한 떼가 일곱 번 그 섬의
주위를 날아다녔다, 그리고 백조들은 아폴론을 대양 한구석에 있는 그
들의 섬으로, 영원히 맑게 갠 하늘 밑에 사는 북극인'끼 있는 곳으로 데
리고 갔다. 아폴론은 주민의 숭배를 받고, 그곳에 1년 동안 체류한 후
에 성하(盛夏)에 축제와 노래의 영접을 받으면서 그리스로 돌아왔다. 그
후 매년 델포이에서는 이 신의 귀환을 축하하는 축제가 베풀어졌다. 아
폴론이 그리스로 돌아와서 정착한 것은 델포이였다. 그는 우선 피톤
(Python)이라고 하는 용-륵을 화살로 公아 퇴치하기로 하였다. 이 용은
산중에서 살면서 옛 테미스의 신탁소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 지방을 방
약무인격으로 유린하고 있었다.
이 용을 퇴치한 아폴론은 그 기념으로 경기를 창설하고, 이를 피티아
제 (資)라고 명령하였다. 그는 또 테미스의 신탁소를 자기의 소유로 하
고, 델포이의 신역에 신성한 삼각대를 설치하였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아폴론의 회담을 고하는 임무를 띤 여신관(女神官)이 앉아 있던 삼각대
이다.
아폴론의 누이동생인 아르테미스는, 말하자면 아폴론을 여성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오빠처럼 활과 화살을 휴대하고, 그것으로
여성들, 특히 산욕(運轉)에 있는 여성들에게 갑작스런 죽음을 주었다,
아르테미스는 영구히 처녀로 머물렀다. 그녀는 사냥으로 나날을 보내고
개를 데리고 산중을 헤매었다. 아폴론이 태양신의 성격을 구비하고 있
는 것처럼, 아르테미스도 이미 옛날로부터 달의 신과 동일시되어 왔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셀레네의 자태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은 아니
다. 그녀는 하나의 천체를 상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야수의 여왕' 이
기도 하며, 숲 속에 있는 짐숭의 번식을 관장하는 신비스런 힘을 구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그녀의 일면 중 최초는 확실히 크레타 섬
1)그리스 전설 중 북극에 살면서 평화와 행복 속에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
되는 민족.
-'
490
의 대여신(大文神-떼 속하고 있던 성격이 인정된다. 처녀인 아르테미스
가 출산 때 기도의 대상이 되고, 위험 상태에 있는 젊은 어머니들의 공
포의 대상인 동시에 구제의 신으로도 생각된 것은 아주 기묘한 일이나,
그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이 여신의 복잡한 기원에 의하여 설명된
다. 출산의 수호신으로서의 아르테미스의 힘은 그녀 자신의 출산 때부
터 나타났다고 전하여진다. 그녀의 어머니 레토는 제우스의 사랑을 받
고 잉태하여 머지않아 쌍등이인 남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낳게 되었
을 때, 제우스의 정실인 헤라는 레토를 질투하여, 지상의 모든 토지에
게 레토가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장소의 제공을 금하였다. 절
망한 레토는 여러 나라를 방랑하고 모든 나라로부터 추방되었으나, 최
후로 델로스 섬이 그녀를 맞아 주었다. 왜냐하면 원래 이 섬 자체가 해
상의 방랑자일 뿐만 아니라, 매우 빈한한 불모의 토지였으므로 누구한
테서나 아무런 피해를 받을 우려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엾은 레
토는 섬 가운데 오직 하나 자라고 있던 종려나무 밑에서 아이를 낳았
다. 최초로 탄생한 것은 아르테미스였다. 그런데 아르테미스는 탄생하
자 바로 어머니의 출산의 시중을 들어, 다음 탄생할 아폴론을 무사히
이 세상에 나오게 하였다고 한다.
헤파이스토스는 불을 지배한다. 그러나 그는 불 자체의 신이 아니고
야금(合金-대장장이 일을 관장하는 신이다. 흔히 제우스의 아들이라고
하나, 아테나가 제우스의 머리로부터 출생하는 것을 본 헤라가, 져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자기도 남성의 힘을 빌리지 않고 흔자 낳은 것이
혜파이스토스라고도 전해진다. 그는 절름발이였다. -일리아드-는 그 이
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헤라가 헤라클레스에 관한 일로 제우
1)크레타 섬의 그리스 선주-민족이요 소위 미노아 문화의 소유자에게는 숲
속의 야수의 여신이 있었던 사실은, 출토품 중 이 여신을 표현한 것이나, 또
역사 시대의 크레타 섬의 전설 중의 아르테미스와 동일시되고 있는 브리토마
트리스 여신의 이야기 등에 의해서도 명백해진다.
신화론 491
스와 싸움을 했을 때 헤파이토스는 어머니의 편을 들었다. 그래서 제우
스는 헤파이스토스의 다리를 잡고 올림포스의 높은 봉우리에서 하계로
내던졌다. 헤파이스토스는 하루 종일 공중을 낙하해서, 저녁때가 되어
겨우 렘노스 섬에 떨어져 거의 기절하다시피 하면서 넘어졌다. 그는 불
사신이었기 때문에 죽지는 않았지만, 불치의 절름발이가 되었다는 전설
은 헤파이스토스를 신들 중의 직인 (職人)으로 그리고 있다. 그는 대장장
이인 키클로프스들을 상대로 일을 하고 다른 신들의 주문에 응하여 장
신구나 무기를 만든다.
헤파이스토스의 아내 아프로디테의 전설에는 매우 다양한 요소가 결
부되어 있다. 확실히 그녀는 처음에는 우주 전체를 지배하는 무서운 힘
으로 생각되었다. 그녀는 여성의 생식력을 표현하는 무서운 신이며, 그
러므로 또 자연의 번식력을 표현하는 신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점차로
아프로디테와 번식과의 결부, 그 근원적인 힘으로서의 성격은 잊혀지
고, 이 여신에게 관한 전설은 단순한 연애 유회의 이야기가 된다. 그녀
는 이데의 산에서 앙키세스를 사랑하였는데, 그때는 자기가 인간의 몸
이요, 헤르메스에 의하여 산 속으로 납치되어 숲 속에서 버림을 받은
프리기아의 왕녀라고 연인을 속였다. 그녀는 앙키세스에게 아들 아이네
이아스를 낳아 주었는데, 두 사람의 사랑을 영구히 비밀로 해둘 것을
그에게 서약시켰다.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와의 불의의 관계로부터는 두
남아가 탄생하였다. 그들이 바로 에로스(사랑)와 안테로스(서로 사랑하는
것)로, 알렉산드리아 시대의 예술가는 이들을 유아의 자태로 표현하여,
걱대의 저린 천사'의 모델이 된다. 폼페이의 벽화는 이러한 풍속도를
대중화한 것이다, 벌을 받은 에로스, 부상을 한 에로스 등의 그림에서
는 에로스는 모친 아프로디테의 곁에서 장난꾸러기다운 얼굴을 하고 있
거나 성낸 얼굴을 하거나 칭얼거리고 있다. 우주 창조설에서의 에로스
는 완전히 잊혀지고 모자(母子)가 모두 본래의 강력한 본원적인 자태를
상실하고 단순한 침실의 장식물이 되었다.
여신 아테나는 아프로디테와 좋은 대조가 된다. 제우스는 그 지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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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 오케아노스의 딸 메티스(이 말은 사려를 뜻함과 동시에 배신도 뜻한
다)를 처로 하여 임신케 하였다. 이때 가이아와 우라노스는 제우스에게
고하여 만약 메티스가 여아를 분만하는 경우에는 그 다음에는 장래에
세계의 통치자가 될 남아를 낳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운명의 여신
들의 의지였던 것이다. 그래서 제우스는 자기의 권력을 수호하기 위하
여 즉석에서 메티스를 삼켜 버렸다. 달이 차서 애기를 낳을 때가 되자
제우스는 헤파이스토스에게 명령하여 도끼로 자기의 머리를 쪼개도록
낌다 L러자 두개골 속으로부터 완전 무장한 자태로 여아가 뛰어나왔
다. 이것이 아테나이다, 출생지는 리비아의 트리토니스 호-湖-근방이
라고 전해진다.
아테나는 전쟁의 여신으로서 이 여신에 판한 이야기는 허탁한 공적을
말한고 있탁. 그려는 거인 (기가스)들과의 전투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거인 팔라스를 죽일.구 그 껍질을 섯격 씀옷을 만들었다.
그녀가 가진 물건은 방패와 창과 아에기스였고, 그 방패의 표면에는 페
르세우스로부터 선사받은, 보는 자로 하여금 돌로 화하게 한다는 메두
사의 머리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기묘한 대조이기는 하나 아테나는 또
평화의 여신이기도 하였다. 그녀는 기예에 능하여, 길쌈을 하거나 자수
를 하는 여자들의 수호신으로 되어 있고, 일면에서는 전차(戰車)의 발명
이며, 다른 면에서는 아티카에게 올리브나무를 주고, 그 열매로부터 기
름을 짜는 방법을 인간에게 가르쳐 준 것도 그녀였다. 요컨대 그녀는
용기 있는 자의 노력에 완전한 효과를 가지고 오는 정신과 이성 (理性)으
로서 전설 중에 나타나고 있다. 헤라클레스에게 무기를 주고 곤란한 경
우에 처했을 때에 그에게 힘을 주는 것도 아테나인 것이다. -오디세이
아-중에서는 그녀는 부단히 오디세우스를 돕는 일을 하고, 그가 가장
신중하고 현명한 행동을 하도록 지도한다.
헤르메스는 아테나의 남동생으로서, 제우스와 플레이아데스L)중에서
1)오리온에 쫓겨 도망가는 도중 별이 된 아틀라스와 플레이오네의 일곱 명의 딸,
신화론 493
가장 젊은 마이아와의 아들이다. 그는 아르카디아의 킬레네 산중의 어
떤 동굴에서 탄생하였다. 그는 탄생하자마자 그 시대의 갓난애가 다 그
러했듯이, 몸에 띠를 둘둘 감고, 요람 대신 궤 속에 넣어졌었는데, 이
갓난애는 함부로 몸을 움직이고 있는 동안에 어쩌다가 띠를 풀고, 흔자
테살리아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테살리아에서는 형 아폴론이 아드메토
스의 왕의 가축을 지키고 있었다. 헤르메스는 형이 멍하니 서 있을 때,
보통 크기의 암소 열두 필과, 새끼 암소 백 필, 황소 한 필을 훔쳐 내
어, 동물들의 꼬리에 나뭇가지를 매달아 그 발자국을 지우도록 연구하
여, 가축 메를 메세네의 필로스까지 끌고 왔다. 그리고 새끼 암소 중에
서 두 필을 잡아 12등분하여, 그 하나하나를 열두명의 신들에게 바쳤
다. 그리고 나머지 소를 감춰 놓고, 태연스럽게 동굴로 돌아가 자려고
하였다. 그때 그는 동굴의 입구에서 한 마리의 거북을 발견하고 그것을
붙잡아 몸을 도려 내고, 전에 회생한 소의 내장으로 만든 줄토.-을 귀갑
(龜甲)의 오목한 부분 위에 걸쳤다. 이와 같이 하여 수금(手琴)이 발명
된 것이다.
아레스는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로서, 피와 살육을 좋아하는 전쟁의
신이다, 그는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방괘를 갖고 창과 칼을 휴대하
고 있다. 그 주위에는 그의 종자로서 네 명의 신이 따르고 있다, 데이
모스(걱정)와 포보스(공포),에리스(불화) 및 전쟁의 여신 에니오가 그것
이다. 아레스에 관한 전설은 별로 많지 않다. 그는 테베에서 특히 숭배
되고, 그곳에는 옛날 그의 소유였던 우물이 있어, 그의 아들인 용이 그
것을 지키고 있었다, 시리아로부터 그리스로 온 카드모스"가 제식을 행
하려고 이 우물의 물을 푸려고 하였을 때, 용이 그것을 방해하려고 하
였다. 카드모스는 이 용을 퇴치하였는데, 그 죄를 껏기 위해 7년간 노
1)카드모스가 용을 퇴치하자, 그에게 아테나가 권하여 그 괴물의 이를 땅에 심
도록 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서 무장을 한 무사들이 나와 서로 살육하기 시작
하였다. 그 중 다섯 명만이 남아 스파르토이 (뿌려진 자)족의 시조가 되었다.
494
예로서 아레스에게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7년이 경과한 후에 신
들은 카드모스와 아레스의 딸 하르모니아와의 결흔을 축하하였다. 테베
왕가의 기원은 이곳에 있다고 전하여진다.
데메테르(케레스)는 제우스의 누이동생이며, 크로노스와 레아의 딸인
데, 이 여신은 그리스 신화 중에서도 특히 아름답고 감동적인 전설을
지니고 있다. I)
데메테르가 밀의 경작과 관련이 있는 것과 같이 더오니소스는 포도와
포도주의 효험을 의인화한 신이다. 그는 테베의 건설자인 영웅 카드모
스의 딸 세멜레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이 신의 신비적인
호칭(呼稱)의 하나는 '두 번 탄생한 자' 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의 출생
에 관련된 이야기로 설명되고 있다.
이 먼 나라에서, 그 아이는 새끼 산양으로 모습을 바꾸어 님프들의
손으로 키워졌다-새끼 산꽁 도 디오니소스의 제식 때에 사용되던 그의 호칭
의 하나였다). 성인이 되자, 그는 포도와 포도주를 발견하였다, 그러나
헤라는 그를 발광케 하여 세계의 여러 곳을 방황케 하였다. 그가 이집
트와 시리아를 거쳐 프리기아에 이르렀을 때, 여신 키벨레(신들의 모친
인 레아의 한 형태로 생각되었다)가 그를 정화-爭-하여 광증에서 해방시
키고, 자기의 비밀 의식을 전수(傳受)시켰다. 이로부터 디오니소스의 생
애에 있어서의 정복의 시기가 시작된다. 그 이후로 그는 한 무리의 남
성과 여성의 종자(從者) -이를 박코이, 박카이라고 한다-를 거느
리게 되는데, 나귀를 탄 늙은 세일레노스, 반인반양(本人半羊)의 형태를
하고, 대지와 술의 능동적인 정신을 나타내는 사티로스 등도 그 한패에
가담한다. 디오니소스는 표범을 타고, 손에는 솔방을 모양의 손잡이가
달리고, 댕댕이덩굴로 장식된 긴 막대기를 가지고 있다. 프리기아를 출
발하여 트라키아로 온 정복자의 자태는 이와 같았다. 트라키아의 왕 리
쿠르고스는 그를 환영하지 않고 감금하려고 했다. 디오니소스는 바다의
1)이 책 제7장 참조.
신화론 495
여신 테티스에게로 도망쳤다. 리쿠르고스는 그 분풀이로 박카이들을 붙
들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불가사의한 힘에 의하여 해방되고 리쿠르고스
자신이 발광해 버린다. 그는 발광 중에 도끼를 잡고 포도나무를 베어
버리려다가 자기의 아들의 수족에 상처를 입혔다. 제정신으로 돌아와
보니 나라는 불모의 토지로 변해 버렸다. 신탁에게 물으니, 디오니소스
의 분노는 죄를 지은 자의 죽음에 의해서만 진정될 수 있다는 것이었
다. 그래서 리쿠르고스는 시민들에 의해 능지처참을 당했다,
디오니소스는 트라키아를 출발하여 도중의 로든 나라를 그의 마력으
로 정복하면서 인도로 갔다, 고대의 화가나 조각가들은 종종 이 혁혁한
동방으로의 행진을 즐겨 작품의 제재로 삼았는데. 그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을 연상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인도로부터 개선하자, 디오니소스는 그의 모친의 고국인 보이오티아
로 갔다. 그러나 테베의 왕 펜테우스는 이 새로운 종교를 우려하였다.
이 종교는 여인들에게 무서운 발작을 일으키게 하고, 그 발작으로 여인
들은 마치 정신을 끊은 것같이 소리지르며, 들판을 뛰어다니는 것이었
다. 왕은 그와 같은 광란을 동반하는 신앙을 금지하였는데, 트라키아의
리쿠르고스와 마찬가지로 펜테우스도 그 불경 행위 (不敬行爲) 때문에 엄
벌을 받았다. 왕이 키타이론 산상에서 박카이들의 소란을 보고 있을 때
왕의 모친 아가우에가 다른 여인들과 합세하여 왕을 능지처참했다. 왕
을 사자(獅子)로 착각했던 것이다. 점차로 디오니소스의 신앙은 인근에
전파되고, 이에 반항하는 자는 모두 왕과 같은 운명에 처해졌다. 아르
고스에 이르러 신은 프로이토스 왕의 딸들을 혼란시켜 그녀들은 자기들
이 소가 된 것으로 생각하여 오랫동안 들판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마침
내는 자기들의 아이를 잡아먹었다. 디오니소스는 그리스 본토를 정복한
후에는 배를 타고 여러 섬으로 건너갔다.
최후로 천상으로 돌아가기 전에, 디오니소스에게는 아직도 편력해야
할 영토가 하나 남아 있었다, 그는 명부로 내려가 모친 세멜레를 만나
고, 자기의 영광을 모친과도 나눠 가졌다. 그래서 그는 모친과 더불어
P!
496
불사신의 지위를 획득하였던 것이다.
올림포스의 세대에 속하는 다른 신들에 관하여 확인한 바와는 반대로
이곳에는 하나의 맥락-이 있는 전설을, 디오니소스의 출생으로부터
신격화에 이르는 '전기'로써 알 수 있다. 이 '전기'가 지금까지의 여러
전설과는 상이한 기원을 가진 것이라는 것과 그것이 이미 완성된 형태
로 그리이스인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유년 시절에 관한
전설은 모두가 제식에서 출발하여 전개된 것이다. 세계 정복에 관한 삽
화는 디오니上士 신앙이 트라키아를 거쳐 전래해 온 당시의 추억과 그
신앙이 환기한 저항의 추억을 지니고 있다. 이 '복음'의 배후에는 하나
의 체계적인 종교가 존재함을 알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디오니소스에
서는 그리스의 다른 신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양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제우스는 올림포스 신들의 '조정자(調停者-와 '수장(官員-으로서 나
타난다. 그 권력은 때로는 음모나, 과거 시대의 어두운 잔재인 괴물의
존재에 의해 조성 (造成)되는 반란 때문에 위협을 받는 일은 있어도 결코
장기간 동요되는 일은 없으며, 그를 둘러싼 하나의 견고한 신화권이 존
재한다. 그의 출생 경위에 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다. 즉 모친에
의해 크레타 섬의 동굴에 은닉된 아이는 이데 산의 님프들의 손에 위탁
되어 젖과 꿀로 양육되고, 주위에는 무장을 한 젊은 전사(戰士),살벌한
무용(業體)의 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쿠레스들이 춤추며, 창을 회두르
고, 칼로 청동의 방패를 두드려 그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어린애의 을
음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였다고 전해진다. 또 그가 어떻
게 하여 권력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는가는 이미 기술한바, 그것은 명백
히 신화에 있어서의 새로운 단계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제우스에
관해 우리에게 가장 친근감을 주는 삽화는 물론 그의 여성과 관계된 이
야기이다.
정당한 관계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간에 제우스가 사귄 여성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시대순으로 열거하면, 최초에 메티수 다음에는 의
신화론 497
인화(類人化)된 '법 (法-, 또는 '세계의 항상성 (直賣性-을 표현하는 테
미스-그녀는 우선 세 명의 딸 호라이 -계절, 흑은 때(時)라는 뜻)를 낳
았다. 그들은 평화, 규율, 정의이다. 다음 탄생한 세 딸은 운명의 여신
들로서 아트로포스, 라케시스, 클로토이다. 그들은 명부-冥府)에서 모든
친간의 운명의 실을 잣는 세 명의 실잣는 여자인 것이다.
이 테미스와의 결합은 명백히 철학적인 신화로서 순전히 상징적인 의
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전능한 제우스가 영원한 질서를 체현하는
것이고, 또한 그가 따르는 운명도 그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 아님을
-운명은 결국 그 자신의 발현 (發現)에 지나지 않으므로-나타내고
있다.
제우스는 이어서 티타니스의 디오네와 사귀먼는데, 일설에 의하면 디
오네는 아프로디테를 낳았다고 한다. 그 다음은 므네모시네 (기억)로서,
그 딸들이 아흠 명의 무사인 것이다. 제우스는 오케아노스의 딸 에우리
노메로부터는 '우아' 의 세 여신인 아글라이에, 에우프로시네, 탈레이아
를 얻었다. 이 세 여신은 처음에는 번식과 봄의 여신이었다.
제우스와 그의 누이동생 헤라와의 결혼은 상기한 바와 같은 여신과의
결합의 한 예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관계는 결정적인 결혼이 됨으로
-모든 인간의 결흔의 보증이 되고, 규범(規範)이 되어 그 이후의 제
우스의 연애와 그 후의 인간의 여성과의 연애는 모두가 헤라에 대한 부
정 (不貞)한 행위로 간주되고 있다. 데메테르와의 결합과 페르세포네의
출생에 관해서는 이미 말한 바이지만, 제우스와 그의 누이동생 데메테
르와의 결합은 헤라의 질투를 받지 않은 것 같은데, 사실은 이 결합에
관한 전설은 엘레우시스의 두 여신(테메테르와 페르세포네)의 신화권에
포함되는 것으로서 제우스 본래의 신화권과는 응합되지 않았으며, 그것
은 또 하늘로부터 대지로 내리는 비가 식물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상
징화한 것이다.
인간의 여성과의 연애담은 이와는 성질이 달라, 앓에 말한 바와 같은
단순한 해석만으로는 설몃되지 안누C1 ol~~귀 -rl-" -' ' -
498
보를 정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서, 처음에는 순전히 지방적인 가
치를 가지고 있었음에 불과했다. 코린토스의 조상이 '제우스의 아들' 이
었다는 것과 괌은 코린토스인의 주장은, 그리스의 다른 지방에서는 조
소(패笑)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의 유명한 가문은 다 자기들을 제우스와 결부시켰다.
이는 특히 펠로폰네소스에서 그러했다. 아르골리스에서는, 아트레우스
가(家)의 선조인 탄탈로스는 제우스나 플루톤의 아들로 되어 있다. 아
르괴디아인의 선조 아르카스가 제우스와 님프인 칼리스토의 아들로 되
어 있다. 라케다이몬인 -스파르타)은 자기들이 제우스와 타이게토스 산의
여신 타이게토스와의 자손이라고 칭하였다. 아르고리스에서는 여러 번
제우스와의 연관이 일어났다. 아르고스는 제우스와 니오베와의 아들이
요, '전 (前) 아카이아' 민족 꿸라스고이인의 조상 펠라스고스도 그렇다.
다음 제우스와 다나에와의 결합은 페르세우스를 낳게 했고, 아르골리스
에 있어서의 제우스의 별개의 후예가 여기서 비롯한다. 테베에서는 카
드모스가 에파포스와 이오에 의해 제우스와 맺어지고 있다. 크레타 섬
사람은 에우로페와 그녀가 제우스와 맺어져 얻은 세 아들 미노스, 사르
페돈, 라다만티스의 이름을 들고 있다, 프티아 지방 및 아이기나 섬에
서는 펠레우스와 텔라몬의 혈통은 제우스와 님프인 아이기나와의 아들
아이아코스에서 유래한다. 트로이아인도 그 조상은 제우스와 플레이아
데스 중의 한 사람인 엘렉트라와의 연애로부터 탄생한 다르다노스라고
한다.
이들 계보는 바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리스의 최고의 종족, 혹은
왕족의 계보로서, 그들은 그것을 근거로 하여 귀족의 칭호와 그 주장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리스인의 각 민족의 조상 이름인 아카이오스, 이
온, 도로스, 아이올로스 등이 제우스를 조상으로 하지 않고, 데우칼리
온과 퍼라와의 직계임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 민족 중에서 최후로 도래 (到來)한 도리스인은 특수한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아직 그리스 본토 북방에 거주하고 있을
신화론 499
때, 그들의 왕 아이기미오스는 이웃 나라의 라피테스인과의 전투 때 헤
라클레스의 원조를 받았다. 그 보답으로서 왕은 헤라클레스에게 국토의
3분의 1을 주었는데, 헤라클레스는 이것을 자기의 자손에게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였다. 이런 관계로 헤라클레스의 아들 힐로스는 도리스인
의 세 부족 중 한 부족의 조상이 되고, 다른 두 부족은 아이기미오스의
두 아들, 디마스와 팜필로스의 이름으로 불리어졌다. 그래서 도리스인의
적어도 3분의 1은 힐로스를 통해 헤라클레스와 헤라클레스의 자손에게
연결되며, 따라서 헤라클레스의 부친 제우스에게까지 연결되고 있다.
제우스와 인간의 여성과의 사귐은 대개 동물의 자태를 빌려 행하여졌
다. 에우로페의 경우에는 황소가 되고, 레다의 경우에는 백조로 화하였
다. 혹은 제우스의 연인도 같은 변형을 경험하였다. 님프인 칼리스토는
곰이 되고, 이오I)는 암소가 되었다. 아마 이런 연애담에는 제우스의 이
름 아래 보다 오랜 신화(신이 동물의 형태로 나타나 있던 신화, 즉 일반적으
로 말하면 물신 숭배적인 신화)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유폐된 다나에를
임신시킨 제우스의 화신 '황금의 비' 도 마찬가지로 설명된다. 그리스인
이 말하는 것은 더 단순하여 제우스가 그와 같은 믿기 어려운 자태를
취한 것은, 헤라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이고, 또 헤라는 남편의 애인
을 벌하기 위하여 그녀들을 비천(卑-動한 동물의 형태로 변형시켰다는
것이다.
어쨌든 제우스에 관한 전설은 다양한 기원을 가진 요소를 그 가운데
함축시킨 것으로서, 그리스인의 종교의 가장 깊은 곳을 보여 주고 있
다. 크레타 섬의 제우스는 확실히 처음에는 아르카디아, 혹은 프리기아
의 제우스와 같지는 않았다. 이들 각각의 인격에 결부되어 있던 신화는
병존하기에 이르렀지만, 그것이 결코 통일적인 하나의 신화학에 도달된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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