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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16세기 영의정 서애 유성룡 씀. 징비록(懲秘錄) 2권. 懲秘錄 第 2 券 12월에 중국에서 크게 군사를 냈다. 병부 우시랑 송응창을 경략으로 삼고, 병부 원외랑 유황상과 주사 원황으로 찬획 군무를 맡게 하여 모두 요동에 머무르게 했다. 제독 이여송이 대장이 되어서 삼영장 이여백 장세작 양원과, 남쪽 장수낙상지 오유충 왕필적등을 거느리고 강을 건너니 군사의 수효는 4만을 넘었다. 이보다 앞서 심유경이 간 뒤에 적들은 과연 군사를 거두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50일이 지나도록 유경이 오지 않으므로 왜병들은 의심하여, 곧 압록강 물을 기어서 우리(왜)말에 먹이겠다고 큰소리쳤다. 적진에 잡혀갔다가 도망해 돌아온 자의 말을 들어도 모두들 적병이 우리 성을 크게 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여 인심이 갈수록 흉흉해졌다. 그러던 중 12월 초에 유경이 다시 와 성안에서 수.. 더보기
16세기 영의정 서애 유성룡 씀. 징비록(懲秘錄) 1권. 자서 징비록이란 무었인가? 임진왜란 뒤의 일을 기록한 글이다. 여기에 간혹 난 이전의 일까지 섞여 있는 것은 난의 발단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오호라, 생각하면 임진의 화야말로 참담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십여 년 동안에 도읍(서울, 개성, 평양)이 함락되었고 온 나라가 무너졌다. 이로 인하여 임금은 마침내 파천까지 했다. 그리고도 오늘날이 있다는 것은 진정 하늘이 도운 게 아니라고 누가 말하겠는가. 바꿔 생각하면 이것은 또한 조정의 어지신 은덕이 넓게 우리들 백성에게 미쳤던 것이기도 하다. 백성의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은 그치지 않았고 또 임금의 사대하는 마음이 명나라 황제를 감동시켰다. 이래서 중국은 몇 번이나 구원의 군사를 내보냈던 것이니 만일 그렇지 않았으면 필경 나라가 위태로웠을 것이다. 시경에.. 더보기
랜덤 박스 헤밍웨이는 사실이고 피카소는 지어낸 것. 피카소의 화법을 아니까 지어낼 수 있는 것. 동굴의 우상에 실컷 경배하라고~ 실제로는 나에게 하는데 징징 거리는 것들의 정신은 하늘의 어린 양 처럼 지 잘난 줄 아는 어리석은 것들 가진 것이 없으니 허세를 부리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