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 />호밀밭의 파숫꾼
Penguin Modern Classics
제 1장
정말 내 얘기를 꼭 듣고 싶다면, 내가 어디서 출생하고, 내 칠칠치 못한 어린 시절이 어땠고 부모님의 직업은 무엇이며 그들이 나를 낳기 전에 뭘 했다는 등의 데이비드 커퍼필드 식의 너저분한 이야기를 알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 그런 얘기를 늘어놓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우선 그런 얘긴 따분한데다가, 다음으로 내가 그 분들의 신상 얘기를 하면, 부모님은 두 번씩이나 뇌일혈을 일으킬 테니까. 그 분들은 그런 것엔 아주 민감하거든. 특히 아버지는 그렇다. 그 분들은 훌륭하고 또 뭐니 뭐니 하다 ? 하지만 그런 얘길 하자는 건 아니고 ― 어쨌든 지독하게 민감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내 자서전이나 뭐 그런 것을 얘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다만 지난 크리스마쓰 때, 내가 녹초가 되어 여기 돌아와 몸을 쉬기 전에 나한테 일어났던 저 미치광이 같은 일을 얘기하려는 것이다. 내 말은, 그 얘긴 D.B.한테 다 했다는 거야. D.B.는 내 형이니 뭐니 하는 사람이다. 그는 지금 할리웃에 있어. 거긴 이 지저분한 곳에서 별로 멀지 않다. 그래서 그는 거의 매주마다 날 보러 여기 온다. 아마 다음 주 정도에 내가 집에 갈 때도 태워 줄 거야. 그는 얼마 전에 쟈가를 샀다. 한 시간에 이 백 마일 정도 가는 저 영국산 고물차 같은 거 말야. 그는 그걸 사는 데 거의 사천 달라나 썼다. 지금은 돈이 꽤 있거든. 전엔 그렇지 않았지만. 그는 집에 있었을 땐 그냥 보통 작가였었다. 그는 굉장한 단편집을 썼다. 들어보지 못했다면, 「비밀 금붕어」라고 하는 책이다. 거기서 제일 나은 건 ‘비밀 금붕어’였어. 그건 자기 돈으로 금붕어를 샀다고 해서 아무도 그걸 보지 못하게 한다는 어떤 꼬마 얘기다. 난 거기엔 완전히 야코가 죽고 말았지. 지금 그는 할리웃에 나가 있어. D.B. 말이다, 창녀같이. 내가 싫어하는 게 하나 있다면, 그건 영화야. 내 앞에선 영화 얘긴 하지도 마.
난 내가 펜시를 떠난 날부터 얘기를 시작하고 싶다. 펜시는 펜실버니아, 애거스타운에 있는 학교다. 아마 들어봤을 거야. 어쨌든 광고는 봤겠지. 수천 걔나 되는 잡지에 광고를 내니까. 꽤 그럴 듯해 보이는 자식이 말을 타고 펜스 위를 뛰어넘는 광고 말야. 마치 펜시에선 매일 폴로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난 그 학교 근처에서 말이라곤 한 마리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말 탄 그림 밑엔 언제나 이렇게 써 있지: ‘1888년 이래 우리는 소년들을 총명하고 뛰어난 젊은이들로 교육해 오고 있다.’ 그 따위 말은 우습지 않은가.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펜시에서도 무슨 ‘교육‘같은 건 하지 않는다. 게다가 거기서 총명하니 뛰어나니 뭐니 한 놈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 아마 두 명 정도는 있을 거야. 많다고 해도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펜시에 오기 전에 벌써 그런 애들이었을 거다.
하여간 그 날은 쌕슨 홀과 축구 시합이 있는 토요일이었다. 쌕슨 홀과의 시합은 펜시 근처에선 아주 대단한 시합으로 되어 있다. 그건 그 해의 마지막 시합이라, 만일 펜시가 이기지 못하면 자살이나 뭐라도 할 정도였다. 나는 그 날 오후 세 시 쯤에 저 멀리 위 토마스 힐에서, 독립전쟁이나 뭐 그런 때 거라는 저 미치광이같은 대포 바로 옆에 서 있었던 게 기억난다. 거기선 축구장이 다 보인다. 또 두 팀이 서로 왔다갔다하면서 으르렁거리는 것도 보이지. 지붕이 있는 특별 관람석에서 흥분해서 날뛰는 건 잘 안 보이지만 거기서 다들 소리질러 대는 건 들린다. 펜시 쪽의 소리는 열광적이고 끔찍하다. 나 말고는 학교 전체가 거기 가 있으니까 말이다. 쌕슨 홀 쪽은 빈약하고 소심하다. 왜냐하면 방문 팀은 사람들을 많이 데리고 오는 법이 거의 없으니까.
여자 애들은 축구 시합에 많이 오지 않았다. 상급생들은 여자를 데리고 와도 괜찮게 되어 있었다. 어떻게 생각할 진 모르지만 끔찍한 학교였어. 나는 가끔 주위에 여자 애들이 몇 명 정도 있는 게 좋다. 그저 팔이나 긁지 않으면 코를 풀거나, 그것도 아니면 낄낄거리거나 뭐 그런 짓밖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말이다. 쎌마 터머는 ― 교장 딸이었는데 ― 시합에 자주 얼굴을 비쳤는데, 미치게 할만큼 쎅시한 그런 타입은 아니었다. 그래도 꽤 멋있는 계집애였어. 한번은 애거스타운에서 버스를 탔는데, 그 애 옆에 앉아서 얘기를 해 본 적이 있다. 그 때 내 마음에 든 점이 있었다. 그 계집애는 코가 크고 손톱은 다 물어뜯어서 피가 날 지경이었는데, 가슴 모양이 다 드러나 보이는 그런 브래지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좀 안되어 보이더군. 그 계집애가 마음에 들었던 점은, 자기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니 뭐니 하고 되먹쟎은 말을 지껄이지 않았던 점이다. 아마 자기 아버지가 얼마나 거짓말장이 얼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나 보다.
내가 시합을 보러 아래 내려가지 않고 멀리 토마스 힐에 있었던 이유는, 펜싱 부와 같이 뉴욬에서 금방 돌아온 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펜싱 부의 주장이었거든. 대단한 일이지 뭐냐. 우리는 그 날 아침 맥버니 학교와 펜싱 시합을 하러 뉴욬에 갔었다. 갔다 뿐이지 시합은 하지도 못했다. 펜싱 칼과 장비니 뭐를 전부 그 놈의 지하철에 놓고 내렸던 것이다. 그건 전적으로 내 잘못은 아니었다. 어디서 내려야 할 지 몰라서 지도를 보러 연방 일어났던 것이다. 그래서 우린 저녁때나 올 걸 두 시 삼십 분 정도 되어 펜시에 돌아온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부원 전체가 나를 상대도 하지 않았지 뭐냐. 어떻게 보면 참 웃기는 일이었다.
내가 아래 내려가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그건 역사 선생인 스펜서 선생한테 작별 인사를 하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선생은 독감이니 뭐니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크리쓰마쓰 휴가가 시작되기 전엔 아마, 다시 보지 못할 걸로 생각하고 있었다. 선생은 나한테 메모를 남겼는데, 내가 집에 가기 전에 한번 보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펜시에 다시 안 온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
이 말은 잊어 먹고 하지 않았는데, 난 퇴학당한 거야. 난 크리쓰마쓰 휴가 뒤에도 학교에 돌아가지 못하게 돼 있었다. 난 네 과목이나 낙제를 했는데도 학업에 전념하거나 뭐나 하지 않았거든. 부모님이 터머 교장과 얘기하러 학교에 나오자, 학교에선 공부에 전념하라고 빈번히 경고했지만 ― 특히 중간 시험이 다가오고 있을 때 ― 난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퇴학당한 것이다. 펜시에선 애들을 자주 퇴학시킨다. 거긴 정말 평판이 좋은 학교다. 펜시 말야. 정말 그렇다니까.
하여튼, 12월이니 뭐니 였는데, 특히 그 바보 같은 언덕 꼭대기는 정말 끔찍하게 추웠다. 난 장갑이니 뭐니 하는 것도 없이, 안팎 구별 없는 옷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저번 주에 어떤 놈이 내 방에서 낙타털 오바하고, 내 주머니 같은 데서 모피털 달린 장갑을 도둑질해 간 것이다. 펜시엔 도둑놈들이 우글거린다. 부잣집 자식들이 많지만 어쨋든 도둑놈들도 우글거린다. 학교에 부잣집 자식들이 많을수록, 도둑놈들도 많은 법이다 ― 이건 농담이 아냐. 어쨋든 난 그 미치광이같은 대포 옆에 서서 엉덩이가 얼어 터지면서 시합하는 걸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시합에 빠져서 그런 건 아니다. 내가 거기서 어슬렁거렸던 건, 뭔가 작별한다는 기분을 느껴 보려고 그런 것이다. 내 말은, 학교니 뭐니를 떠나가는데,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다는 거다. 난 그런 게 싫거든. 난 그게 슬픈 작별이나 좋지 않은 작별이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어떤 데를 떠날 땐, 내가 거기를 떠난다는 걸 느끼고 싶은 것이다. 만약 그런 생각도 안 든다면, 나보다 더 타락한 거야.
난 운이 좋았다. 갑자기 내가 거기를 떠난다는 걸 느끼도록 만들어 줄 일이 생각난 거야. 그 때가 10월 정도였는데, 로버트 티치너, 폴 켐벨과 함께 교사 앞에서 축구공을 차던 게 갑자기 생각난 것이다. 그들은 좋은 놈들이었다. 특히 티치너는 멋진 놈이다. 저녁 식사시간 바로 전이라서 밖이 꽤 어두웠는데도 우린 어쨋든 계속해서 공차기를 하고 있었다. 점점 어두워져서 공이 보이지도 않았는데도 우린 하고 있는 짓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던 거야. 하지만 결국 그만두었다. 생물을 가르쳤던 잠베지 선생이 교사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기숙사로 돌아가서 저녁 먹으라고 말했거든. 어쨋든 난 그런 종류의 일이 생각나면, 필요할 때 작별한다는 기분을 가질 수가 있다. 적어도 대부분은 그럴 수가 있다. 나는 그런 기분이 들자마자, 돌아서서 언덕 반대편 아래로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스펜서 선생의 집 쪽으로 말이다. 선생은 교내에 살지 않고 앤쏘니 웨인 에비뉴에 산다.
나는 선생 집 정문까지 내리 뛰어간 다음 숨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깐 기다렸다. 난 금방 숨이 차거든.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야. 먼저, 난 끔찍하게 담배를 많이 피운다. 내 말은, 전에 그랬다는 거야. 못 피우게 해서 끊었지 뭐냐. 또 하나는, 난 작년에 육 인치 반이나 자랐다. 그렇게 해서 난 폐결핵에 걸려서 이 무슨 검사니 뭐니 하는 걸 받으러 여기 온 것이다. 하지만 난 꽤 건강하다.
어쨋든 난 숨을 돌리자마자 204번 도로를 뛰어 건너갔다. 지독하게 미끄러워서 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내가 뭣 때문에 그렇게 뛰어갔는지 정말 모르겠다. 아마 그냥 그렇게 뛰고 싶은 기분이었던 것 같다. 길을 건너갔을 때 난 내가 사라져 버린다는 기분이 조금 들었다. 정말 미치광이 같은 그런 오후였다. 끔찍하게 추웠지. 해니 뭐니도 안 나오고, 길을 건너갈 때마다 사라지는 것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난 스펜서 선생 집에 오자, 초인종을 빨리 울렸다. 난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귀가 시리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빨리, 빨리,’ 난 거의 소리지르다시피 했다, ‘누구 문 좀 열어 줘요.’ 마침내 스펜서 부인이 문을 열었다. 그 분들은 하녀니 뭐니 하는 것도 두지 않고 항상 몸소 문을 연다. 그 분들은 돈이 많지 않거든.
‘홀든!’ 하고 스펜서 부인이 말했다. ‘어서 와라! 들어 와! 몸이 꽁꽁 언 거니?’ 부인은 날 정말 반가와했다고 생각한다. 부인은 날 좋아했다. 적어도 내 생각엔 그런 것 같았다.
정말이지, 난 집안으로 잽싸게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하고 내가 말했다. ‘스펜서 선생님도 안녕하세요?’ ‘나한테 오바를 줘,’ 하고 부인이 말했다. 부인은 내가 스펜서 선생 안부를 묻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귀가 좀 어둡거든.
부인은 벽장 안에 내 오바를 걸었다. 나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약간 뒤로 쓸어 넘겼다. 난 보통 머리를 바짝 자르기 때문에 빗질을 할 필요가 거의 없다. ‘그 동안 안녕하셨어요, 사모님?’ 하고 나는 부인이 들을 수 있도록 더 큰 소리로 다시 말했다.
‘잘 있었단다, 홀든.’ 부인이 벽장문을 닫았다. ‘넌 어땠니?’ 부인이 말하는 어조에서 나는 스펜서 선생이 내가 퇴학당했다는 얘기를 했다는 것을 즉각 알아차렸다.
‘괜찮아요,’ 하고 내가 말했다. ‘스펜서 선생님은 좀 어떠세요? 감기는 나셨어요?’
‘다 났단다! 홀든, 그 양반은 이제 건강하단다. 지금 뭘 하시는지... 방에 계시단다. 들어가 봐라.’
제 2장
그 분들은 각자 자기 방이니 뭐니를 갖고 있었다. 두 분 다 칠십 살 정도 되었다. 아니면 훨씬 더 됐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분들은 자잘한 물건들에서 대단한 희열을 찾는다. 약간 머리가 돈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면 상스럽게 들린다는 건 알지만 진짜 그렇다는 건 아니다. 내 말은, 단지 내가 스펜서 선생 생각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되면, 도대체 그의 삶의 목적이 무엇일까 하고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내 말은, 선생의 자세는 앞으로 구부정하고 정말 보기 끔찍했다는 것이다. 교실에서 선생이 분필을 떨어뜨리면 앞줄에 앉은 누군가 일어나서 그것을 집어서 갖다 드려야 했다. 그건 정말 지독한 일이다. 하지만 선생에 대해 너무 지나치지 않게 적당히 생각한다면, 선생 나름으로는 그리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예를 들면, 한번은 일요일이었는데, 내가 선생 댁에 가서 어떤 녀석들과 뜨거운 초콜렛을 먹고 있을 때, 선생은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서 어떤 인디안한테서 산 저 낡아빠진 나바호 담요를 보여주었다. 스펜서 선생이 그걸 산 데서 대단한 기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것이다. 누군가를 늙은이 취급해 버린다. 그런데 스펜서 선생처럼 낡은 담요 같은 것을 사는 데서 굉장한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선생의 방문은 열려 있었다. 하지만 난 어쨋든 예의를 차린다는 그런 것 때문에 약간 문을 두드렸다. 선생의 모습이 보이기까지 했다. 선생은 내가 방금 말한 저 담요를 뒤집어쓰고 커다란 가죽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내가 문을 두드렸을 때 선생이 나를 쳐다보았다. ‘누구냐?’ 선생이 소리질렀다. ‘코울필드냐? 들어와.’ 선생은 학교 밖에선 언제나 소리를 지른다. 그 때문에 가끔 신경을 건드릴 때도 있다. 나는 들어간 순간, 온 것을 후회했다. 선생은 ?애틀랜틱 먼쓸리?를 읽고 있었는데, 사방에 알약이니 다른 약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빅스 노즈 드롭스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기분이 우울해졌다. 어쨋든 난 아픈 사람들한테는 그리 호감을 가질 수 없다. 날 더욱 우울하게 만든 것은, 스펜서 선생이 아마 이 세상에 나거나 뭐 할 때 입고 있었던 것 같은 아주 낡고 초라한 실내복을 입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어쨋든 난 나이 많은 사람들이 파자마나 실내복 같은 것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쭈글쭈글한 늙은 가슴팍이 언제나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그 정강이라니. 늙은이들의 정강이는 해변이나 다른 데서 언제나 털 하나 없이 너무 희게 보인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하고 내가 말했다. ‘선생님이 쓴 쪽지 봤어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내가 다시 안 돌아오기 때문에, 크리쓰마쓰 휴가가 시작되기 전에 작별 인사라도 하러 들리라고 내게 저 쪽지를 써 놓았던 것이다. ‘뭐 그러실 필요까진 없었는데요. 어쨋든 인사하러 들릴 참이었어요.’
‘거기 앉아라, 얘야,’ 스펜서 선생이 말했다. 침대에 앉으라는 것이다.
나는 침대 위에 앉았다. ‘감기는 좀 어떠세요, 선생님?’
‘그래, 좀 더 나아지면 의사를 불러 와야겠어.’ 스펜서 선생이 말했다. 선생은 자기가 한 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미친 사람처럼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이윽고 선생은 몸을 똑바로 펴고 말했다. ‘왜 축구 시합 보러 가지 않았니? 오늘은 정말 큰 시합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정말 그렇죠. 가긴 갔었어요. 근데, 전 펜싱부하고 이제 막 뉴욬에서 돌아오는 길이에요.’ 하고 내가 말했다. 정말이지, 선생 침대는 돌덩어리처럼 딱딱했다.
선생은 끔찍하게도, 진지한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선생이 그럴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길 떠난다 이 말이지? 하고 선생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그럴 것 같아요.’
선생은 저 고개를 끄덕거리는 행동을 시작했다. 스펜서 선생만큼 고개를 많이 끄덕거리는 사람은 평생 보지 못했다. 선생은 자기가 고개를 많이 끄덕거리는지 어떤지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선생은 생각이니 뭐니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저, 선생이 자기 엉덩이니 팔꿈치 같은 것은 구별하지 않고 사는 호인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터머 박사가 너한테 무슨 얘길 했니? 둘이서 꽤 오래 얘기한 걸로 알고 있는데.’
‘네, 오래 얘기했습니다. 정말로 얘길 많이 했어요. 거의 두 시간 동안이나 그 선생님 방에 있었던 것 같애요.’
‘박사가 뭐라고 얘기했니?’
‘아... 네, 인생은 시합이니 뭐니 그런 얘길 했어요. 그리고 어떻게 규칙에 따라서 인생을 살아야 하느냐 하는 그런 얘기도 했구요. 박사님이 정말 좋은 얘길 해 주셨어요. 화내거나 그러시진 않았어요. 그저 인생은 시합이니 뭐니 그런 얘기만 하셨어요. 그래요.’
‘인생은 시합이야, 얘야. 인생은 우리가 규칙에 따라서 살아야 할 시합이지.’
‘그렇죠. 저도 그건 알아요. 알죠.’
시합이라구, 제기랄. 그래 시합이라 해 두자. 만일 누가 온갖 성공이 기다리고 있는 그런 쪽에 있다면, 그럼 인생은 시합이지, 맞아. 그건 인정하겠어. 그런데 만일 성공의 가망이라곤 조금도 없는 그런 쪽에 있다면, 그 땐 그게 무슨 시합인가? 아무 것도 아니야. 시합은 무슨 시합이야.
‘터머 박사가 네 부모님께 편지를 썼니?’ 스펜서 선생이 물었다.
‘월요일에 쓸 거라고 하시던데요.’
‘넌 부모님하구 얘기해 봤니?’
‘아니요, 선생님. 아직 얘길 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수요일 밤에 집에 가면 아마 만나 뵐 테니까요.’
‘그런데 네 부모님이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글쎄요... 꽤 속이 상하시겠죠,’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 그러실 거예요. 아마 이번으로 네 번째 정도 퇴학당하는 거니까요.’ 나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나는 머리를 많이 젓는다. ‘정말이지!’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또 ‘정말이지!’ 하는 말도 많이 한다. 그건 내가 아는 어휘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내가 가끔, 내 나이에 비해서 너무 어리게 행동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때 나는 열 여섯 살이었다. 지금은 열 일곱 살이다. 그런데 나는 열 세 살짜리처럼 행동하는 때가 있다. 내가 육 피트 이와 반 인치에다가 머리카락은 회색이기 때문에 이건 정말 아이러닠한 일이다. 내 머리의 반은 ― 오른 쪽인데 ― 온통 회색 머리카락이다. 내가 아주 꼬마였을 때부터 머리카락이 그랬다. 그런데도 난 마치 열 두 살짜리처럼 행동하는 때가 있다. 다들 그렇다고 말한다. 특히 아버지가 그런 말을 많이 한다.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어떤 것이 완전히 맞는다고 생각한다. 난 그 따위 것엔 조금도 관심이 없다. 사람들이 내 나이에 맞게 행동하라고 말할 때 가끔 지겨워지는 것만 아니라면. 가끔 난 나이보다 많게 행동할 때도 있다 ― 정말이야 ―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잘 눈치채지 못한다. 사람들은 결코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스펜서 선생은 다시 머리를 끄덕거리기 시작했다. 선생은 또 코를 후비기 시작했다. 선생은 그저 코를 집고 있는 체하고 있지만 사실은 엄지손가락을 콧구멍에 집어넣고 있는 것이다. 선생은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사실 방안엔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가 콧구멍을 후비는 게 정말 구역질이 나지 않는 한 그런 것엔 상관하지 않는다.
이윽고 선생이 말했다,‘네 부모님이 몇 주전에 터머 박사와 얘길 나눌 때 네 부모님을 만나 뵙는 영광을 가졌지. 정말 훌륭한 분들이더구나.’
‘네, 그래요. 정말 멋진 분들이시죠.’
훌륭하다구. 내가 정말 싫어하는 말이 있다. 그건 거짓말이다. 누가 거짓말을 하면 게울 것같다니까.
그런데 갑자기 스펜서 선생은 나한테 해 줄 정말 좋은 말, 아주 적절한 말이 생각났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은 의자에서 약간 몸을 일으키더니 이리저리 몸을 조금 흔들었다. 하지만 내 추측은 빗나갔다. 선생은 그저 ?애틀랜틱 먼쓸리?를 무릎에서 집어들더니 침대 위 내 옆으로 던졌다. 하지만 잡지는 침대 위에 떨어지지 않았다. 2 인치 정도 빗나가 바닥에 떨어졌는데 어쨋든 빗나간 건 매한가지다. 나는 일어나서 그걸 집어들어서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갑자기 나는 그 방에서 나가 버리고 싶은 생각이 솟구쳤다. 나는 끔찍한 설교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야길 듣는 건 상관없지만, 동시에 설교를 듣고, 빅스 노즈 드롭스 냄새를 맡고, 또 파자마니 실내복이니 하는 것을 입은 스펜서 선생의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정말 그랬다.
좋아, 시작되는구나. ‘어떻게 된 거니, 얘야?’ 하고 스펜서 선생은 말했다. 선생으로서도 그건 꽤 모진 어조로 말했다. ‘이번 학기에 몇 과목 들었지?’
‘다섯 과목입니다, 선생님.’
‘다섯 과목이라. 그런데 몇 과목이 낙제지?’
‘네 걔요.’ 나는 침대 위에서 엉덩이를 약간 움직였다. 그건 내가 앉아 본 중에 제일 딱딱한 침대였다. ‘영어는 잘 통과했어요,’ 하고 나는 말했다, ‘?베어울프?니 ?로드 랜들 내 아들?같은 건 우튼 학교에서 했거든요. 제 말은, 영어는 거의 할 게 없었단 말입니다. 가끔 작문 쓰는 거 말고는 요.’
선생은 듣고 있지도 않았다. 선생은 누가 말할 때 듣는 법이 거의 없다.
‘역사에서 널 낙제시킨 건 네가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야.’
‘그건 압니다, 선생님. 정말이지, 그건 알아요. 선생님도 어쩔 수 없으셨겠죠.’
‘하나도 없어,’ 하고 선생은 같은 말을 또 했다. 그런 건 정말 미치겠다니까. 처음에 인정했는데도 어떤 말을 두 번씩 할 때 말이다. 그런데 선생은 세 번째 똑같은 말을 했다. ‘정말 하나도 없어. 난 네가 학기 중에 단 한 번이라도 교과서를 펼쳐 봤는지 의심이 들 정도야. 사실대로 말해 봐, 얘야’
‘글쎼요, 몇 번은 좀 훑어봤는데요.’ 하고 나는 말했다. 난 선생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선생은 역사에 미친 분이니까.
‘그래, 훑어봤단 말이지?’ 하고 선생이 말했다. 그건 아주 냉소적인 어조였다. ‘네 시험지가 저기 장롱 위에 있다. 서류 뭉치 제일 위에. 그걸 이리 갖다 줄래?’
그건 정말 치사한 수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쪽으로 가서 시험지를 갖다 드렸다. 어떤 다른 방법이니 뭐니가 없었거든. 그리고 다시 그 시멘트 같은 침대 위에 앉았다. 정말이지, 내가 작별 인사를 드리려고 거기 들른 것을 얼마나 후회하고 있었는지 상상도 못할 거야.
선생은 내 시험지를 마치 무슨 더러운 물건이나 뭣처럼 다루기 시작했다. ‘우리가 11월 4일부터 12월 2일까지 이집트인들 공부를 했지,’ 하고 선생은 말했다. 넌 선택 작문 시험에서 이집트인에 대해 쓰는 걸 택했지. 네가 쓴 걸 들어보고 싶지 않아?‘
‘아니요, 선생님, 별로요,’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어쨋든 선생은 그걸 읽었다. 선생들이 뭘 하려고 하면 말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그냥 하고 만다.
‘?이집트인들은 아프리카 북부의 한 지역에 사는 코카서스족의 선조이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제일 큰 대륙이다.?’
나는 거기 앉아서 그 따위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했다. 그건 정말 치사한 수법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집트인들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매우 흥미가 있다. 현대 과학은, 이집트인들이 시체의 얼굴이 수세기 동안 썩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떤 물질을 사용하여 시체를 쌌는지 흥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흥미 있는 수수께끼는 20세기의 현대 과학에는 정말 도전 거리이다.?’
선생은 읽는 것을 멈추고 시험지를 내려놓았다. 난 선생에게 약간 반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너의 작문, 작문이라고 치면 말야, 그 뿐이야,’ 선생은 저 냉소적인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나이 많은 양반이 그렇게 냉소적이니 뭐니 한 태도를 취한다는 건 생각할 수 없을 거야. ‘그런데, 넌 시험지 아래에다 뭐라고 써 놓았지,’ 하고 선생이 말했다.
‘그건 압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선생이 그걸 큰소리로 읽는 걸 막으려고 아주 빨리 말했다. 하지만 선생을 어떻게 막나. 선생은 화약처럼 성질이 급한 분이야.
‘?스펜서 선생님,?’ 하고 선생은 큰소리로 읽었다. ‘?제가 이집트인들에 대해 아는 건 이것뿐입니다. 선생님의 강의는 아주 재미있지만, 전 거기에 그렇게 흥미를 가질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영어를 빼고는 전 과목에 낙제를 받았지만 선생님이 역사에서 절 낙제시켜도 전 괜찮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께, 홀든 코울필드.?’ 선생은 빌어먹을 시험지를 내려놓고는 탁구 시합이나 뭐나에서 날 때려눕힌 것처럼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선생이 그 따위 것을 큰소리로 읽은 것을 앞으로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선생이 그런 걸 썼다면 난 그런 것을 선생에게 큰소리로 읽어 주진 않았을 것이다. 정말 그런 짓은 하지 않았을 거야. 먼저, 난 내가 그 따위 메모를 쓴 것은 선생이 날 낙제시켜도 너무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널 낙제시켜서 날 원망하니, 얘야?’ 하고 선생이 말했다.
‘아닙니다, 선생님! 전혀 그렇지 않아요.’ 하고 나는 말했다. 제기랄, 날 ‘얘야’ 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나.
선생은 시험지를 다 보자, 침대 위로 휙 던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패했다. 당연하지. 나는 다시 일어나서 그걸 집어서 ?애틀랜틱 먼쓸리? 위에 놓아야 했다. 2 분마다 같은 짓을 하니 지겨워 죽겠다.
‘네가 나라면 어떻게 했겠니?’ 하고 선생은 말했다. ‘네 진심을 말해 봐, 얘야.’
보니까, 날 낙제시킨 게 꽤나 마음에 걸리나 보다. 그래서 난 허튼 소리를 지껄였다. 나는 내가 진짜 저능아이고, 또 뭐 그런 얘기를 했다. 나는 내가 선생의 처지에 있더라도 똑같이 했을 것이고, 대다수 사람들은 선생님이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는 둥 그런 얘기를 했다. 낡아빠진 허튼 얘기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내가 허튼 소리를 지껄이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거야. 난 뉴욬에 사는데, 쎈트럴 파크 남쪽 아래에 있는 호수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다. 나는 집에 갔을 때 그 호수가 얼어붙어 있을 지, 그리고 얼었다면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 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호수가 전부 얼어붙어 버리면 오리들은 어디로 갈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떤 친구가 트럭을 타고 와서 그들을 동물원이나 그런 데로 데리고 가는지 어떤 지가 궁금했다. 아니면 그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는 건가.
하지만 난 운이 좋았다. 내 말은, 내가 스펜서 선생한테 허튼 소리를 지껄이면서 동시에 그 오리들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거 말이다. 재미있는 일이다. 선생들하고 얘기할 땐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내가 돼먹지 않은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데, 갑자기 선생이 내 말을 막았다. 선생은 언제나 말을 가로막는다니까.
‘넌 이번 일을 어떻게 생각하니, 얘야? 난 정말 알고 싶어. 정말 그래.’
‘제가 펜시에서 낙제하는 거니 그런 거 말씀이세요?’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선생이 그 쭈글쭈글한 가슴을 좀 가려 주었으면 했다. 그건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넌 우튼이나 엘크톤 힐즈에서도 좀 어려웠을 거라고 보는데.’ 선생은 냉소적인 데다가 심술궂게까지 말했다.
‘엘크톤 힐즈에선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요,’ 하고 나는 말했다. ‘꼭 낙제하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내가 그냥 그만 두었으니까요, 말하자면.’
‘왜? 물어 봐도 될까?’
‘왜냐구요? 오, 글쎄요, 말하자면 길어요, 선생님. 제 말은, 꽤 복잡한 얘기란 겁니다.’ 나는 선생에게 그 얘기를 다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한다 해도 어쨋든 선생은 이해를 못 할 거다. 그건 선생의 취향에 전혀 맞는 얘기가 아니니까. 내가 엘크톤 힐즈를 나온 제일 큰 이유는, 거기에 엉터리 같은 놈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뭐 그 뿐이다. 정말 그런 놈들이 창문에 붙어서 밖을 내다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거기 하아스 교장은 내가 본 중에 제일 엉터리 같은 작자였다. 터머 교장보다 열 배는 더 나쁜 작자였다. 예를 들어, 일요일마다 학부모들이 차를 몰고 학교에 나오면 그들과 악수를 하며 돌아다닌다. 정말 지독하게 아양을 떤다니까. 그런데 만일 어떤 애의 부모가 늙고 조그만 데다가 우스꽝스럽게 생겼으면 안 그런다. 그가 우리 반 어떤 애 부모한테 하는 걸 봤어야 하는데. 내 말은, 어떤 애 엄마가 좀 뚱뚱하거나 초라해 보이거나 그러면, 또 어떤 애 아버지가 어깨가 아주 큰 양복을 입고 촌스러운 흑백 구두를 신은 그런 사람이면, 하아스 교장은 그저 간단히 악수나 하고 거짓된 미소를 한번 지어 보이고 말지만, 어떤 다른 애 부모한테 가서는 아마 삼십 분은 지껄이는 그런 걸 말하는 거야. 난 그런 건 정말 봐 줄 수 없다. 그런 건 사람 돌게 한다니까. 난 그런 걸 보면 우울해져서 참기 어려워진다. 난 그런 망할 놈의 엘크톤 힐즈 학교가 정말 싫었다.
그 때 스펜서 선생이 뭔가를 물은 모양인데, 난 듣고 있지 않았다. 하아스 교장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다. ‘뭐라구요, 선생님?’ 하고 나는 말했다.
‘펜시를 떠나는데 뭐 특별히 아쉬운 점이 있나?’
‘오, 좀 아쉽기두 합니다, 그럼요. 물론이지요... 하지만 뭐 별로 크게 그런 건 아녜요. 어쨋든 아직은 모르겠어요. 아직 실감이 안 나는 것 같애요. 전 실감을 느끼려면 좀 시간이 걸리거든요. 지금 전 수요일에 집에 갈 생각밖엔 안 나요. 전 저능아예요.’
‘얘, 넌 미래에 대해 정말 아무런 걱정도 안 든단 말이냐?’
‘오, 뭐 미래에 대해 좀 걱정도 되지요. 그럼요. 물론, 그렇죠.’ 난 잠깐 내 미래의 생각을 했다. ‘하지만, 뭐 그렇게 많이는 아닌 것 같애요. 뭐 그렇게 많이는. 그런 거 같애요.’
‘걱정을 해야지,’ 하고 스펜서 선생은 말했다. ‘얘, 걱정해야지. 그 땐 너무 늦었을 거야.’
나는 이제 선생 말이 듣기 싫었다. 선생의 설교에 난 완전히 넌더리가 나고 말았다. 난 정말 사기가 꺾여 버렸다. ‘그래야 하겠죠,’ 하고 나는 말했다.
‘얘, 난 너의 그 머리 속에 분별력을 좀 넣어 주고 싶다. 난 지금 널 도와주려는 거야. 할 수 있다면 널 도와주려는 거야.’
선생은 정말 그랬다. 그건 정말이야. 그런데, 다만 우리는 너무나 정반대 극에 서 있었다는 것뿐이다. ‘그건 잘 압니다, 선생님,’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진심이에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정말 그래요.’ 그 때 나는 침대에서 일어섰다. 정말이지, 거기에 십 분만 더 앉아있는다면 죽을 것 같았어. ‘그런데, 저, 이제 가 봐야겠습니다. 체육관에 집에 가져 갈 장비가 꽤 있거든요. 정말이에요.’ 선생은 나를 올려다보고 저 아주 심각한 표정을 뛰고 다시 머리를 끄덕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선생에 대해 정말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그렇게 정반대 극에 서서, 선생이 뭘 던질 때마다 항상 침대 밑으로 떨어지고, 가슴이 드러나는 그 초라한 실내복과 빅스 노즈 드롭스의 그 약냄새가 사방 진동하는데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 ‘뭐, 선생님, 그렇게 절 걱정하진 마세요.’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이에요, 전 괜찮을 거예요. 이 단계가 지나면 괜챃겠죠. 다들 단계 같은 걸 지나지 않아요?’
‘모르겠다, 얘야. 모르겠어.’
난 누가 그런 식으로 대답하는 게 싫다. ‘그래요. 그렇죠, 다들 그래요,’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이라구요, 선생님. 제발 절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손을 선생의 어깨 위에 약간 얹었다. ‘아셨죠?’ 하고 나는 말했다.
‘가기 전에 뜨거운 쵸콜렛 한 컵 마시고 싶지 않니? 마누라가 아마 ― ’
‘마시고 싶어요, 정말 마시고 싶은데, 근데 사실은, 전 인제 가 봐야 해요. 바로 체육관에 가야 돼요. 어쨋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리고 우리는 악수를 했다. 그리고 판에 박힌 그런 허튼 얘기를 나누었다. 정말 지독하게 우울하더군.
‘편지 쓸께요, 선생님. 이제 감기 조심하세요.’
‘잘 가라, 얘야.’
내가 문을 닫고 다시 거실 쪽으로 가는데, 선생이 뭐라고 소리질렀지만 정확하게 무슨 말이지는 듣지 못했다. 선생은 나한테 ‘행운을 빈다!’ 하고 소리지른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나는 그러지 않았기를 바란다. 정말 그러지 않았기를 바래. 나라면 누구한테 ‘행운을 빈다!’ 하고 소리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끔찍한 소리 아냐?
제 3장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지독한 거짓말장이야. 정말 끔찍하다. 내가 잡지를 사러 가게에 가는 중이라 해도 누가 어디 가느냐고 물으면 난 오페라 보러 간다고 말한다. 정말 지독하지 않아? 그래서 내가 장비 같은 걸 가지러 체육관에 가야 한다고 스펜서 선생한테 말한 건 순전히 거짓말이다. 난 체육관에 무슨 장비 같은 건 놔두지도 않는다.
내가 펜시에 있을 때, 내 방은 새 기숙사의 오쎈버거 메모리얼 윙에 있었다. 거긴 3학년과 4학년생들이 쓰는 쪽이다. 나는 3학년이었다. 나와 같은 방을 쓰는 놈은 4학년이었다. 오쎈버거라는 이름은 펜시에 다니던 오쎈버거라는 친구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그 친구는 펜시를 졸업한 후에 장의사를 해서 꽤 돈을 벌었다. 그 친구가 뭘 했냐 하면, 전국 사방 천지에 장의사를 열어서 누구 가족이 죽으면 한 사람당 대략 5딸라의 싼값으로 해 주었다. 오쎈버거 작자를 봐야 되는데. 그 작자는 십중팔구, 죽은 사람을 부대 자루에 넣어서 강에다 던져 버릴 거야. 어쨋든 그 친구가 펜시에 돈 다발을 갖다 줘서 그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게 된 것이다. 그 해 첫 번째 축구 시합이 있던 날인데, 그 작자는 저 망할 놈의 커다란 캐딜락을 타고 학교에 나타났는데 그 때문에 우린 모두 스탠드에서 일어서서 기관차 소리를 내야 했다. 박수 소리 말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예배 시간에 그는 10시간이나 설교를 늘어놓았다. 그 작자는 먼저 오십 가지 정도 시시한 농담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건 단지 자기가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인가 하는 걸 우리한테 보여주자는 수작이었다. 정말 대단한 인물 아냐? 그리고는 자기는 어떤 고난이나 뭐에 처했을 때는 아무런 스스럼없이 바로 무릎을 꿇고 하느님에게 기도한다는 그런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하더군. 그 작자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언제나 하느님에게 기도해야 한다, 하느님과 얘기니 뭐니를 해야 한다고 말하더군. 우리는 하느님을 우리의 친구니 그런 걸로 생각해야 한다는 거야. 자기는 언제나 하느님과 얘기한다는 거야. 차를 운전할 때도 그런 다는 거야. 정말 난 그 말엔 졌어. 나는 그 덩치 큰 엉터리 같은 작자가 1단 기어를 넣으면서 시체를 조금만 더 보내 달라고 하느님한테 바라는 게 눈에 선해. 그의 설교중 그래도 유일하게 좋았던 부분은 설교가 한참 진행되는 한가운데 부분이었다. 그 작자가 자기가 얼마나 멋장이며 수완가니 뭐니 하고 늘어놓고 있는데 갑자기 내 앞에 제일 앞줄에 앉아 있는 에드가 맛살라가 끔찍한 소리를 내며 방구를 뀐 것이다. 설교니 뭐니하는 중에 그런 짓을 한다는 건 정말 무례한 짓이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재미있는 일이기도 했다. 맛살라 자식. 그 놈의 방구소리 때문에 천장이 거의 날아갈 뻔했다. 거의 누구도 큰소리로 웃지 않았고 오쎈버거 작자도 못들은 체 했지만 연단이니 뭐니 하는 데에 그 작자 옆에 앉아 있는 터머 교장이 그 소리를 들었다는 게 뻔했다. 정말이지, 교장은 화났다. 교장은 그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다음 날 밤에 교사에서 우리한테 강제로 자습을 하게 하고는 잠시 뒤에 나타나서 일장 설교를 하였다. 교장은 예배 중에 분위기를 망친 그런 놈은 펜시에 다닐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터머 교장이 훈계를 하는 중에 다시 한 번 방구를 뀌라고 맛살라 놈한테 시켰지만 그 놈은 그럴 기분이 아닌 모양이었다. 어쨋든 펜시에서 내가 지내던 곳이 거기였다. 새 기숙사에 있는 저 오쎈버거 작자 기념관 말이다.
스펜서 선생과 작별 인사를 하고 다시 내 방에 돌아오니 꽤 기분이 좋았다. 다들 시합을 보러 아래 내려가 있었고 방엔 히터가 들어와서 기분 전환이 되었다. 일종의 아늑한 기분이었다. 나는 오바와 넥타이를 풀고 셔츠 칼라의 단추를 푸른 다음 그 날 아침에 뉴욬에서 산 모자를 썼다. 그건 챙이 아주 긴 그런 빨간 색 사냥 모자였다. 나는 망할 놈의 펜싱 도구를 죄다 잃어버렸다는 걸 알고 지하철에서 나왔을 때 스포츠 가게의 진열장에서 그걸 보았다. 그건 1딸라 밖에 하지 않았다. 내가 그걸 어떻게 썼냐 하면, 난 그 놈의 챙을 뒤로 돌려서 썼다. 정말 촌스러운 꼴이었다. 인정해. 하지만 난 그렇게 쓰는 게 좋았다. 그렇게 쓰고 있으면 괜찮아 보이거든. 그리고 나는 내가 읽고 있던 책을 집어들고 의자에 앉았다. 방마다 의자가 두 걔씩 있다. 하나는 내가 쓰고, 또 하나는 같은 방을 쓰는 워드 스트래드레이터가 쓴다. 다들 팔걸이 위에 걸터앉기 때문에 팔걸이 모양이 형편없이 됐지만 그래도 꽤 편안한 의자였다. 내가 읽고 있던 책은 도서관에서 잘못 가져온 책이었다. 내가 신청한 게 아닌 걸 줬는데 방에 올 때까지 그걸 몰랐던 것이다. 내가 가져온 건 이싸크 디네쎈이 쓴 ?아웃 오브 아프리카?였다. 시시껄렁한 책이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꽤 좋은 책이었다. 난 꽤 무식하지만 책을 많이 읽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내 형 D.B. 이고 다음은 링 라드너다. 내 형은 내가 펜시에 오기 바로 전에, 생일 선물로 링 라드너가 쓴 책을 한 권 줬었다. 거기엔 정말 우습고 미치광이 같은 희곡들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언제나 스피드를 내며 달리는 아주 귀여운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교통경찰의 얘기였다. 하지만 그는 결혼한 몸이었어. 경찰 말야. 그래서 그는 그 여자와 결혼이니 뭐니 할 수가 없는 거다. 그런데 그 여자는 언제나 스피드를 내며 달리기 때문에 사고로 죽게 된다. 이 얘긴 정말 감동적이었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적어도 가끔씩 우스운 책이다. 나는 토마스 하디의 ?귀향?이니 뭐니 하는 고전도 많이 읽는다. 나는 고전을 좋아한다. 나는 전쟁 이야기나 추리소설 같은 것도 많이 읽지만 그런 것들은 별로 나를 그렇게 감동시킬 수 없다. 날 정말로 감동시키는 책은, 내가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작가가 마치 내 친구인 것처럼 생각되어서 언제라도 전화하고 싶을 때 전화할 수 있는 그런 책이다. 하지만 그런 건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이싸크 데네쎈이라면 전화할 수 있을 것같다. 그리고 링 라드너도 그렇지만 D.B. 말로는 그는 죽었다는 것이다. 근데 써머셋 모옴의 ?인간의 굴레?를 한번 읽어 봐. 난 지난 여름에 그걸 읽었다. 그건 정말 좋은 책이고 그렇긴 하지만 써머셋 모옴한테 전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잘 모르겠다. 그 사람은 그저 전화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뿐이다. 차라리 토마스 하디라면 전화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는 저 유스타키아 바이가 좋거든.
어쨋든 나는 새 모자를 쓰고 앉아서 저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읽기 시작했다. 벌써 읽었지만 몇 부분을 다시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근데 세 페이지 정도 읽었을 때 누가 샤워 커튼을 제치고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난 고개를 들지 않아도 그게 누군지 알았다. 바로 내 옆방을 쓰는 저 로버트 애클리였다. 우리 쪽엔 방 두 걔마다 사이에 샤워가 있는데, 애클리 놈은 하루에도 여든 다섯 번이나 불쑥불쑥 들어온다. 그 놈은 아마 전체 기숙사에서 날 제외하곤 시합 보러 내려가지 않은 유일한 놈일 것이다. 그 놈은 어딜 나가는 법이 없다. 그 놈은 아주 괴상한 놈이다. 4학년인데, 4년 내내 펜시에 있어도 다들 그를 부를 때는 ‘애클리’ 라고 하지 다르게 부르는 사람이 없다. 같은 방을 쓰는 허브 게일 조차 그를 ‘밥’이니 ‘애크’니 하고 부르지 않는다. 그 놈이 만약 결혼한다면 아마 그 마누라조차 그를 부를 때 ‘애클리’라고 부를 것이다. 그 놈은 키가 껑충하게 크고 ― 6피트 4인치는 될 것이다 ― 등이 새우처럼 휘고 이빨이 지저분한 그런 타입이었다. 그 놈이 내 옆방을 쓰고 있는 동안, 나는 그가 이빨을 닦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 놈의 이빨은 언제나 이끼가 낀 것같고 끔찍했다. 그리고 그 놈이 식당에서 다진 감자니 콩이니 뭐니 하는 걸 입에 잔뜩 물고 있는 걸 보면 정말 게우고 싶을 정도다. 그 뿐 아니라 그 놈은 여드름이 잔뜩 있었다. 흔히 보듯이 이마나 턱에만 있는 게 아니라 얼굴 전체가 여드름 투성이였다. 그 뿐이 아니다. 그 놈은 성격도 더러웠다. 그 놈은 말하자면 비열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난 그 놈한텐 그리 호감을 가질 수가 없었다.
나는 그가 내 의자 바로 뒤 샤워실의 문턱에 서서, 스트래드레이터가 있지 않나 하고 살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놈은 스트래드레이터를 몹시 싫어해서 그가 주위에 있으면 절대 들어오지 않았다. 그 놈은 거의 모든 사람을 싫어했다.
그 놈의 샤워실 문턱에서 내려오더니 방안에 들어왔다. ‘여어,’ 하고 그가 말했다. 그 놈은 인사할 때 언제나 만사에 싫증이 났다는 듯한 티를 낸다. 그 놈은 자기가 누구를 일부러 찾아오거나 뭐 그런 게 아닌 체한다. 그 놈은, 제발 사람들이 자기가 잘못해서 우연히 들른 것이라고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여어,’ 하고 나는 말했지만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애클리같은 놈한테 고개를 들어 인사하면 말려들고 만다. 그래도 결국 말려들고 만다. 하지만 당장 고개를 쳐들지 않으면 당장 말려들지는 않으니까. 그 놈은 늘 그러듯이 책상이나 양복장에서 남의 물건들을 집어들면서 아주 느릿느릿하게 방안을 어정거리기 시작했다. 그 놈은 언제나 남의 물건을 집어들고 쳐다본다. 정말이지, 그 놈은 가끔씩 사람의 신경을 건드린다. ‘펜싱 시합은 어땠어?’ 하고 그가 말했다. 그 놈이 그렇게 물은 것은 내가 책을 보며 즐기는 것을 못하게 하자는 수작이었다. 그 놈은 펜싱 같은 건 조금도 관심이 없으니까 말야. ‘우리가 이겼어, 아니면?’ 하고 그가 말했다.
‘이기긴 누가 이겨?’ 하고 내가 말했다. 하지만 고개는 들지 않았다.
‘뭐라구?’ 하고 그가 말했다. 그 놈은 언제나 두 번씩 말하게 만든다.
‘이기긴 누가 이기냐구?’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그 놈이 내 양복장에서 뭘 만지작거리고 있는지 보려고 슬쩍 엿보았다. 그 놈은 내가 뉴욬에서 사귀던 샐리 헤이즈의 사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놈은 내가 그 망할 놈의 사진을 가져온 이후로 적어도 오천 번은 그걸 집어들고 쳐다보았을 것이다. 그 놈은 사진을 다 보고 나면 언제나 제자리에 갖다 놓는 법이 없다. 그 놈은 일부러 그러는 것이다. 확실해.
‘이기긴 누가 이겼냐구?’ 하고 그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저 망할 놈의 펜싱 칼이니 뭐니를 지하철에 두고 내렸단 말이다.’ 나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다.
‘지하철에, 제기랄! 그럼 넌 그걸 다 잃어버렸단 말이냐?’
‘지하철을 잘못 탔어. 그래서 벽에 붙어 있는 지도를 보러 연방 일어나야 했지.’
그가 가까이 와서 불빛을 가로막고 섰다. ‘어이,’ 하고 내가 말했다. ‘네가 들어와서 난 이 똑같은 구절을 스무 번은 더 읽고 있어.’
다른 사람이라면 그게 무슨 말이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놈은 안 그렇다. ‘그 놈들이 너한테 변상하라고 할 것같애?’하고 그가 말했다.
‘몰라 그리고 그딴 건 신경 안 써. 어디 앉거나 그러지, 애클리 꼬마. 넌 지금 불빛을 막고 있어.’ 그 놈은 누가 자기를 ‘애클리 꼬마’라고 부르면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열 여섯 살이고 자기는 열 여덟 살이기 때문에 그 놈은 언제나 내가 꼬마라고 말했다. 내가 자기를 ‘애클리 꼬마’라고 부르면 그 놈은 화가 나서 날뛴다.
그 놈은 여전히 그렇게 서 있었다. 그 놈은 누가 부탁을 하면 절대 비켜서지 않는 바로 그런 놈이다. 비키긴 하지, 결국엔. 그런데 누가 부탁을 하면 더 오래 끈다는 거야. ‘대체 뭘 보는 거냐?’ 하고 그가 말했다.
‘책이지 뭐야?’
그는 손으로 책을 밀어 넘겨서 제목을 보았다. ‘재미있냐?’ 하고 그가 말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귀절은 정말 굉장하지.’ 나는 그럴 기분만 나면 정말 냉소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말하는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다시 방안을 돌아다니면서 내 물건과 스트래드레이터의 물건을 집어들었다. 나는 마침내 책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애클리같은 놈이 옆에 있으면 절대 책을 읽지 못한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의자 깊숙이 몸을 낮춰서 애클리 놈이 제멋대로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뉴욬에 갔었기 때문에 좀 피곤함을 느끼며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는 좀 허튼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따분함을 느끼면 가끔 허튼 짓을 할 때가 있다. 내가 뭘 했냐 하면, 저 사냥 모자의 챙을 앞으로 돌려서 눈 위까지 덮이도록 푹 눌러 썼다. 그렇게 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장님이 되려나 본데,’ 나는 아주 쉰 목소리를 내서 말했다. ‘오 어머니, 아무 것두 안 보여요.’
‘넌 미친놈이야. 신에게 맹세할 수 있어.’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오 어머니, 절 도와 주세요. 제발 절 도와 주세요.’
‘제기랄, 유치하게 굴지 좀 마라.’
나는 눈 먼 사람처럼 내 앞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어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오 어머니, 왜 절 도와주지 않으세요?’ 하고 주절거렸다. 나는 그냥 허튼 수작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짓을 하면 흥분을 느낄 때가 있다. 게다가 애클리 놈이 그런 짓을 보면 참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놈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서 저 싸디스트적인 성질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그 놈하고 있으면 싸디스트적으로 될 때가 자주 있었다. 결국 나는 그딴 수작을 그만 주었다. 나는 다시 모자챙을 돌려쓰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거 누구 꺼냐?’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그는 스트래드레이터의 무릎 받침대를 들어올려서 나한테 보였다. 그 놈 애클리는 아무 거나 집어든다. 그 놈은 심지어 받침대니 뭐니 하는 것도 집어든다. 내가 그건 스트래드레이터의 것이라고 말해 주자 그는 그것을 스트래드레이터의 침대 위에 던졌다. 그는 그것을 스트래드레이터의 옷장에서 꺼냈는데 침대 위에 던지는 것이다.
그는 이쪽으로 와서 스트래드레이터의 의자 팔걸이 위에 걸터앉았다. 그 놈은 의자에 앉는 법이 없다. 언제나 팔걸이 위에만 앉는다. ‘그 모잔 어디서 났냐?’ 하고 그가 말했다.
‘뉴욬.’
‘얼마냐?’
‘1 딸라.’
‘바가지 쓴 거야.’ 그는 성냥걔비 끝으로 더러운 손톱을 후비기 시작했다. 그 놈은 언제나 손톱을 후빈다. 어떻게 보면 그건 재미있기도 했다. 이빨은 언제나 이끼가 잔뜩 끼고, 귓구멍은 지저분한데 손톱만은 언제나 깨끗이 하니 말이다. 그 놈은 그렇게 하면 자기가 아주 깨끗한 놈이 되는 줄로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손톱을 후비면서 내 모자를 또 한번 보았다. ‘우리 고향에선 사슴 사냥할 때 그런 모잘 써. 알아?’ 하고 그가 말했다. ‘그건 사슴 사냥 모자야.’
‘누가 뭐래냐?’ 나는 모자를 벗어서 보았다. 나는 한 눈을 조금 감고 총을 쏘는 시늉을 했다. ‘이건 사람 사냥하는 모자야,’ 하고 나는 말했다. ‘난 이 모잘 쓰고 사람을 쏘는 거야.’
‘집에서 니가 퇴학당한 거 아냐?’
‘아니.’
‘그런데 스트래드레이턴 대체 어디 가 있는 거냐?’
‘아래 시합하는 데. 그 놈은 데이트하고 있어.’ 나는 하품을 하였다. 나는 어디서나 하품을 한다. 게다가 방이 더럽게 더웠던 것이다. 그래서 졸렸던 것이다. 펜시에선 얼어죽지 않으면 너무 더워서 죽는다니까.
‘스트래드레이터 자식,’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야. 가위 좀 잠깐 빌려줄래? 지금 있냐?’
‘아냐. 벌써 싸 놨어. 저기 벽장 위에 있지.’
‘잠깐만 갖다 줄래?’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여기 손톱 남은 거 좀 깎으려구 그래.’
그 놈은 짐을 싸 놓았건 벽장 꼭대기에 있건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그 놈에게 가위를 갖다 주었다. 그러다가 난 거의 죽을 뻔했다. 내가 벽장문을 여는 순간, 스트래드레이터의 테니스 라켓과 나무로 된 고정 쇠니 뭐니가 내 머리 위로 떨어진 것이다. 엄청나게 큰 소리를 냈는데 무지하게 아팠다. 하지만 애클리 놈도 그 때문에 거의 죽을 뻔했다. 그 놈은 목소리를 꾸며서 높은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그 놈은 내가 여행 가방을 꺼내서 가위를 꺼내는 동안 내내 웃었다. 어떤 녀석이 돌이나 뭐로 머리를 맞는 그런 따위의 것을 보면 놈은 무척 좋아한다. ‘네 놈은 정말 더럽게 유머 감각이 좋구나, 애클리 꼬마야.’ 하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너 그거 알아?’ 나는 그에게 가위를 주었다. ‘내가 너 매니저 해 줄께. 널 라디오에 나오게 해 줄께.’ 나는 다시 의자에 앉고 그는 무슨 뿔껍데기처럼 생긴 손톱을 깎기 시작했다. ‘테이블 같은 데 위에서 하지 그래?’ 하고 나는 말했다. ‘테이블 위에서 깎으라구. 난 오늘 밤 너의 그 지저분한 손톱을 밟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는 여전히 바닥 위에서 손톱을 깎았다. 얼마나 더러운 매너인가. 정말이야.
‘스트래드레이터 데이트 상댄 누구냐?’ 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스트래드레이터를 지독하게 싫어하면서도 항상 그가 누구하고 데이트하는지 관심을 두고 있었다.
‘몰라. 왜 그러냐?’
‘그냥. 정말이지 난 그 자식은 봐 줄 수 없어. 그 놈은 내가 정말 싫어하는 자식이야.’
‘그 친군 너한테 호감을 갖고 있는데. 나한테 그러는데 니가 정말 왕자 같은 놈이라구 하더라.’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허튼 수작을 할 땐 왕자 같은 놈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러면 지루해지거나 뭐 그러지 않거든.
‘그 놈은 언제나 그렇게 잘난 체해.’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난 정말 그 자식은 못 봐 줘. 넌 그 놈이 ―’
‘테이블 위에 가서 좀 깎으면 안 돼냐, 응?’ 하고 나는 말했다. ‘너한테 오십 번은 부탁했어 ―.’
‘그 자식은 언제나 잘난 체해,’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난 그 자식이 뭐 똑똑하다곤 생각하지 않아. 자긴 그런 줄 알지. 그 놈은 자기가 거의 뭐―’
‘애클리! 제기랄! 테이블 위에 가서 지저분한 손톱 좀 깎아 줄래? 너한테 오십 번은 말했잖아.’
그 놈은 마지못해서 테이블로 가서 손톱을 깎기 시작했다. 그 놈한테 뭘 하게 하려면 언제나 소리를 질러야 한다.
나는 잠깐 그 놈을 쳐다보았다. 이윽고 내가 말했다. ‘니가 스트래드레이터한테 화내는 건 니가 어쩌다가 한 번 이빨 닦느니 뭐니 한다고 그가 말해서 그러는 거야. 그는 큰소리로 소문내서 널 모욕 주려고 그런 건 아냐. 그는 그게 옳다거니 뭐니 하는 게 아니고 뭐 널 모욕하려는 뜻은 아니었어. 그의 말은 그저 니가 좀 어쩌다 한 번 이빨을 닦으면 더 나아 보이고 더 기분 좋을 꺼란 뜻이야.’
‘난 이빨 닦아. 그런 말하지 마.’
‘아냐, 넌 안 그래. 내가 봤는데 넌 안 그래,’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구역질난다는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그에게 약간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내 말은, 만일 누군가가 나한테 이빨을 안 닦는다고 말하면 그건 과히 예의 있는 태도라고는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스트래드레이터는 괜찮은 놈이야. 그리 나쁜 놈은 아냐,’ 하고 내가 말했다. ‘넌 그를 잘 몰라, 그게 문제지.’
‘아냐, 그 놈은 형편없는 놈이야. 더럽게 잘난 체하는 자식이지.’
‘그 놈이 잘난 체하긴 해, 하지만 어떤 일엔 아주 사람 좋기도 하지. 정말 그래,’ 하고 나는 말했다. ‘자, 봐라, 예를 들어 스트래드레이터가 니가 좋아하는 넥타이나 뭐나를 했다고 치자. 니가 아주 마음에 드는 넥타이라고 말을 해 봐 ― 난 그냥 예를 들어서 말하는 거야. 그가 어떻게 할 것같애? 그 놈은 아마 그걸 풀러서 너한테 줄 껄. 정말 그럴 꺼라구. 아니면 ― 그가 어떻게 할 것같애? 니 침대니 뭐니 위에 두고 갈 껄. 정말 그는 너한테 그런 넥타이를 준다니까. 아마 다른 놈들 같으면 그저 ―.’
‘제기랄,’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내가 그 놈만큼 돈이 있으면 나도 그렇게 하겠다.’
‘아냐, 넌 그렇게 안 해.’ 나는 머리를 저었다. ‘아냐, 넌 그렇게 안 할 껄, 애클리 꼬마. 넌 다른 자식들처럼 ―’
‘날 ’애클리 꼬마‘라고 부르지마, 제기랄. 난 네 놈 아버지라 해도 좋을 나이란 말이다.’
‘아냐, 안 그렇지.’ 정말이지, 그 놈은 가끔 정말로 화나게 한다. 그 놈은 그럴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내가 열 여섯 살이고 자기는 열 여덟 살이란 걸 말하지 않고 넘기는 법이 없다. ‘무엇보다도, 난 네 놈을 우리 식구에 끼워 주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까,’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럼, 그렇게 부르지마 날 ―’
갑자기 문이 열리고 스트래드레이터놈이 굉장히 서두르며 불쑥 들어왔다. 그 놈은 언제나 굉장히 서두른다. 모든 일이 아주 큰 일이나 되는 것같았다. 그는 나한테 오더니 장난스럽게 내 뺨을 탁탁 쳤다. 그런데 그런 짓은 가끔 짜증나게 할 때가 있다. ‘야,’ 하고 그가 말했다. ‘너 오늘밤에 어디 특별히 나갈 데 있니?’
‘몰라. 그럴 지도 모르지. 도대체 밖이 어떻길래, 눈이라도 오나?’ 그의 오바는 눈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래. 이 봐. 너 오늘밤에 어디 특별히 갈 데 없으면, 그 사냥걔 이빨 자국 난 양복 좀 빌려주면 안 돼냐?’
‘시합은 누가 이겼어?’ 하고 내가 말했다.
‘반밖에 안 했어. 우리 나갈려구 그래,’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설마, 너 오늘밤에 그 양복 입으려는 건 아니겠지? 회색 플라넬 양복에 더러운 걸 쏟아서 그래.’
‘나가진 않아, 근데 니가 그걸 입어서 어깨를 넓혀 놓는 건 싫은데,’ 하고 내가 말했다. 우리는 거의 키는 같았지만, 그는 몸무게가 내 두 배는 되었다. 그는 어깨가 정말 굉장히 딱 벌어졌다.
‘넓혀 놓지 않을께.’ 그는 아주 서두르며 벽장 쪽으로 갔다. ‘어떻게 지내, 애클리?’ 하고 그가 애클리에게 말했다. 그는 적어도 꽤 친근하게 구는 녀석이었다. 스트래드레이터말이다. 그건 약간 거짓된 제스쳐같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언제나 애클리나 아무한테도 인사는 빠뜨리지 않았다.
그가 ‘어떻게 지내, 애클리?’ 하고 말했을 때 애클리는 그저 약간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는 대꾸하고 싶지 않았지만 적어도 뭐라고 웅얼거리지 않을 만한 용기는 없었다. 이윽고 그는 나한테 말했다. ‘이제 가 봐야겠다. 나중에 봐.’
‘그래.’ 하고 나는 말했다. 그는 나중에 돌아올 때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스트래드레이터 놈은 오바니 넥타이니 뭐니를 벗기 시작했다. ‘빨리 면도해야겠는데,’ 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수염이 꽤 많았다. 정말 많았다.
‘니 데이트 상댄 어딨어?’ 하고 내가 물었다.
‘걘 별관에서 기다리고 있어.’ 그는 면도 도구와 수건을 팔 밑에 끼고 방에서 나갔다. 셔츠나 뭐 그런 것도 입지 않은 채 말이다. 그는 자기가 꽤 몸매가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제나 웃통을 벗고 돌아다닌다. 하긴 그건 그랬다. 나도 그건 인정해야 돼.
제 4장
나는 특별히 할 일도 없어서 아래 샤워 실에 내려가서 그가 면도하는 동안 그와 지껄였다. 다들 아래서 아직 시합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샤워 실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끔찍하게 더워서 창문엔 수증기가 끼어 있었다. 세면기는 열 걔 정도가 벽에 있었다. 스트래드레이터는 가운데 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옆에 있는 샤워기에 앉아서 찬물을 틀었다 껐다 하기 시작했다. 난 그런 신경질적인 버릇이 있다. 스트래드레이터는 면도하는 동안 줄곧 ‘인도의 노래’를 휘파람으로 불렀다. 그 놈의 휘파람 소리는 정말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데, 절대로 음이 맞는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놈은 아무리 휘파람을 잘 부는 사람이라 해도 불기 어려운 ‘인도의 노래’라든지 ‘10번가의 살인’같은 노래를 부른다. 그 놈은 정말 노래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
애클리가 습관이 너저분한 녀석이라고 전에 말한 걸 기억하나? 그런데 말야 스트래드레이터도 그랬다. 그런데 그 놈은 다른 면에서 그렇다. 스트래드레이터는 남들이 잘 모르는 점에서 너저분한 면이 있다. 그 놈은 언제나 괜찮은 놈으로 보였다. 스트래드레이터말이다. 근데 예를 들어 그 놈이 쓰는 면도칼을 봤어야 한다. 그건 언제나 지독하게 녹이 슬어 있고 비누 거품이니 머리카락이니 지저분한 것이 잔뜩 끼어 있다. 그 놈은 그걸 닦거나 뭐 그런 법이 없다. 그는 멋을 부리고 나오면 언제나 괜찮게 보이지만 그가 어떻게 하는 지 안다면 어쨋든 그는 남이 잘 모르는 너저분한 놈이다. 그 놈이 멋을 부리는 이유는 미치광이같이 자기 도취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 놈은 자기가 지구의 반을 통털어서 제일 잘 생긴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긴 꽤 잘 생기긴 했다. 그건 인정하겠어. 하지만 그는 주로, 만일 어떤 부모가 연감을 들여다 볼 때 ‘이 앤 누구냐?’ 하고 이내 물어 볼 그런 식으로 잘 생긴 놈이었다. 내 말은, 그는 주로 연감 같은 데서 눈에 띄는 놈이란 뜻이다. 내가 보기에 펜시엔 스트래드레이터보다 훨씬 잘생긴 놈들이 많았지만 연감에 난 사진을 보면 잘생긴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코가 크거나 귀가 툭 튀어나온 모습으로 보인다. 그런 경우는 흔히 있었다.
어쨋든 나는 스트래드레이터가 면도하고 있는 옆의 샤워기에 앉아서 물을 틀었다 잠갔다 했다. 나는 여전히 사냥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챙을 뒷쪽으로 돌려놓고 있었다. 난 그 모자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야,’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너 내 부탁 하나 들어줄래?’
‘뭐야?’ 하고 내가 말했다. 별로 재미없는데. 그 놈은 언제나 자기 부탁을 들어 달라고 한다. 여기 어떤 아주 잘생긴 놈 혹은 자기가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놈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그 놈은 언제나 무슨 부탁을 들어 달라고 한다. 자기가 자기에게 반했다고 해서 남들도 자기에게 반했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건 약간 재미있는 일이다.
‘너 오늘밤 나가니?’ 하고 그가 말했다.
‘나갈 지도 모르지. 안 나갈 지도 모르고. 모르겠어. 왜?’
‘월요일까지 역사 시간에 책을 백 페이지 정도는 읽어 가야 되는데 말야,’ 하고 그가 말했다. ‘영어 시간에 준비해 가야 되는데 작문 하나만 써 줄래? 월요일까지 준비 안하면 큰일 나. 그래서 부탁하는 거야. 어때?“
그건 정말 아이로닠한 일이었다. 정말 그랬다.
‘난 여기서 퇴학당해 가는 놈이야, 근데 나보고 빌어먹을 작문을 써 달라구 하는 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그래, 그건 알아. 근데, 사실은 그걸 준비 안하면 큰일 난단 말야. 제발 좀 해 주라. 부탁이야. 해 줄래?’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시간을 주면 스트래드레이터같은 자식한테 넘어간다.
‘뭐에 관한 건데?’ 하고 내가 말했다.
‘아무 거나 괜찮아. 묘사하는 거면 어떤 것도 돼. 방이나 아니면 집. 아니면 니가 전에 살았던 곳 뭐 그런 거면 돼. 그저 뭔가를 묘사하는 거면 된다구.’ 그 놈은 그렇게 말하면서 크게 하품을 했다. 정말 엉덩이가 쓰라리게 만드는 일이 아니고 뭐냐. 내 말은, 누구한테 무슨 빌어먹을 부탁이니 뭐니를 하면서 하품을 한다는 거 말이다. ‘뭐 아주 잘 쓰지 않아두 돼.’ 하고 그가 말했다. ‘저 하트젤 자식이 그러는데 니가 영어는 도사라구 하쟎아 그리고 니가 나하고 같은 방을 쓰는 걸 아니까 말야. 그래서 내 말은, 뭐 콤마니 뭐 그런 걸 정확하게 붙이지 않아두 된다는 말야.’
그런 말도 엉덩이를 쓰라리게 만드는 일이다. 내 말은, 어떤 사람이 작문을 잘한다고 하자, 그런데 누가 콤마니 뭐니 하고 애기하는 거 말이다. 스트래드레이터는 언제나 그런 짓을 한다. 그 놈은 자기가 작문을 못하는 건 순전히 콤마를 엉뚱한 데다 붙이기 때문이라고 다른 사람이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 놈은 그런 면에선 애클리하고 좀 비슷하다. 전에 나는 농구시합때 애클리 옆자리에 앉은 적이 있다. 우리 팀에 하우이 코일이라는 대단한 놈이 있었는데, 그 놈은 마루 한 가운데서 공을 던져서 백보드니 뭐니 하는 걸 건드리지 않고 골인시킬 수 있었다. 애클리는, 그 망할 놈의 시합 내내 코일이 농구하기에 완벽한 체격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제기랄, 내가 그딴 말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아?
나는 조금 있다가 그 샤워기에 있는 게 따분해져서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탭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그냥 해 본 거지. 난 그냥 따분함을 벗어나려고 그런 것이다. 난 탭 댄스니 그런 건 하지도 못한다. 근데 샤워 실 바닥은 돌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탭 댄스 하기엔 좋았다. 나는 영화에 나오는 그런 작자들을 모방해서 댄스를 하였다. 저 뮤지컬 같은 거 말이다. 난 영화는 정말 지독하게 싫어하지만 그래도 모방할 때는 흥분되기도 한다. 스트래드레이터놈은 면도를 하면서 거울로 내가 그 짓을 하는 걸 보았다. 나는 그저 누군가 봐 줄 사람이 있으면 됐다. 난 노출증 환자다. ‘난 주지사 아들이야,’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댄스를 추었다.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탭 댄스를 추었다. ‘아버진 내가 탭 댄서가 되는 걸 바라지 않아. 아버진 내가 옥스포드에 가기를 바라지. 하지만 그게 내 핏속에 흐르고 있단 말야. 탭 댄스 말야.’ 스트래드레이터가 웃었다. 그 놈은 그렇게 유머 감각이 없는 놈이 아니거든. ‘지그펠트 막이 올랐다.’ 나는 숨이 차서 죽을 지경이었다. 나는 숨이 금방 차거든. ‘주인공이 계속할 수 없네. 그는 미친놈처럼 술에 취했단 말야. 그래서 주인공 대신으로 누굴 데려올까? 나야, 내가 주인공이 되었어. 제기랄 저 난장이 같은 주지사의 아들놈아.’
‘그 모잔 어디서 났냐?’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내 사냥 모자 말이다. 전에 못 보던 거거든. 난 숨이 차서 장난질을 그만 두었다. 나는 모자를 벗어서 보았다. 아마 이번이 아홉 번째 정도 될 거다. ‘오늘 아침에 뉴욬에서 샀지. 1 딸라에. 괜찮냐?’
스트래드레이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멋있는데,’ 하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내 비위를 맞춰 주려는 것이었다. 왜냐 하면 이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야. 너 작문 써 줄꺼냐? 그걸 알아야 하거든.’
‘시간 있으면 해 줄께. 없으면 안 하구,’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다시 샤워대로 가서 그 옆에 앉았다.‘너 데이트 상댄 누구냐?’ 라고 내가 말했다. ‘핏제랄드냐?’
‘뭐라구, 아냐! 내가 말했잖아, 그 돼지 하군 끝났어.’
‘그래? 걘 나한테 줘라, 꼬마야. 농담 아냐. 걘 나하구 맞는 타입이야.’
‘가져라...너한텐 좀 나이가 많은데.’
갑자기 뭐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그저 장난질을 좀 치고 싶은 기분에서 나는 샤워 대에서 뛰어내려 스트래드레이터 놈을 목누르기 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뭔지 모르지만 그건 레슬링에 나오는 그런 건데, 딴 녀석의 목을 잡고 뭐 그러고 싶으면 숨을 못 쉬게 해서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장난을 친 것이다. 나는 퓨마 새끼처럼 그에게 덮쳤다.
‘그만 해, 홀든, 제기랄!’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그는 장난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면도니 뭐니를 하고 있었으니까. ‘넌 내가 머리통을 베면 좋겠냐?’
하지만 나는 그를 놔주지 않았다. 나는 그의 목을 꽤 단단히 조였다. ‘내가 바이스같이 죄고 있는데서 한번 빠져나와 봐,’ 하고 내가 말했다.
‘제엔장.’ 그는 면도날을 내려놓고 갑자기 팔을 홱 올려서 내 팔을 약간 풀었다. 그는 아주 힘센 놈이거든. 난 아주 힘이 없는 놈이다. ‘자, 이제 그 멍청한 짓 좀 그만 둬,’ 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다시 면도하기 시작했다. 그 놈은 언제나 면도를 두 번씩 한다. 더욱 잘나 보이려고 그러는 거지. 그 지저분한 낡아빠진 면도날을 가지고 말이다.
‘핏제랄드가 아니면 니 데이트 상댄 누구냐?’ 하고 내가 다시 물었다. 나는 그의 옆에 있는 샤워 대에 다시 앉았다. ‘저 필리스 스미쓰냐?’
‘아니, 그렇게 될 뻔했지. 근데 일이 엉키다 보니 안 됐어. 지금은 버드 토우 여자애하구 같이 방 쓰는 애야... 이봐, 잊어 먹을 뻔했다. 걔가 널 알던데.’
‘누가 안다구?’ 하고 내가 말했다.
‘나하구 데이트하는 애.’
‘그래?’하고 내가 말했다. ‘걔 이름이 뭔데?’ 나는 꽤 흥미가 생겼다.
‘가만 있자... 어, 쟌 갤러허.’
정말이지, 그 놈이 그렇게 말했을 때 난 죽는 줄 알았다.
‘제인 갤러허,’ 하고 내가 말했다.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난 샤워기에서 일어나기까지 했다. 제기랄, 죽는 줄 알았다니까. ‘제기랄, 니 말이 맞아. 걔 알아. 지난 여름에 걘 바로 우리 옆집에 살았어. 저 망할 놈의 도베르만 걔를 기르고 있었구. 그 놈 때문에 내가 걔를 알게 된 거지. 걔네 집 걔가 맨날 우리 집으로 ─ ’
‘너 지금 불을 가리고 있잖아, 홀든, 제기랄,’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너 거기 꼭 있어야겠냐?’ 정말이지, 난 흥분했다. 정말 그랬다.
‘지금 어딨어?’ 하고 내가 물었다. ‘’내려가서 인사나 뭐라두 해야겠다. 어딨어? 별관에?‘
‘그래.’
‘어떻게 해서 내 이름이 나왔지? 지금 의대 다닌 대냐? 거기 갈 지도 모른다구 했는데. 또 씨플리에 갈지도 모른다구 했구. 어떻게 해서 내 이름이 나왔을까?’ 난 아주 흥분했다. 정말이야.
‘몰라, 제기랄. 엉덩이 좀 들어. 내 수건 위에 앉아 있잖아,’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나는 그의 바보 같은 수건 위에 앉아 있었다.
‘제인 갤러허,’ 하고 내가 말했다. 난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그럴 수가.’
스트래드레이터 놈은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있었다. 내 껀데.
‘걘 댄서야,’ 하고 내가 말했다. ‘발레니 뭐니를 하지. 지독하게 더운 날씨에 한낮에도 매일 두시간 씩 연습하곤 했는데. 그 때문에 다리가 형편없이 될까 봐 걱정하곤 했는데 ─ 뭐 두꺼워지니 뭐니 하는 거 말야. 난 걔하구 늘 체스를 했었어.’
‘걔하구 늘 뭘 했다구?’
‘체스.’
‘체스라구, 제기랄!’
‘그래, 걘 왕은 하나두 움직이지 않아. 어떻게 하냐 하면 말야, 왕을 하나 잡으면 그건 꼼짝두 안 해. 그냥 제일 뒷줄에 놔두는 거야. 뒷줄에 쭉 세워 놓는 거야. 그리곤 하나두 쓰질 않지. 걘 그것들이 그냥 서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거야.’
스트래드레이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따위의 얘기는 아무도 재미있어 하지 않는다.
‘걔네 엄만 우리 엄마하구 같은 클럽에 속해 있었지,’ 하고 내가 말했다. ‘가끔씩 돈을 좀 벌려구 캐디 노릇을 하곤 했지. 걔네 엄마 캐디 노릇두 몇 번 했지. 걔네 엄만 홀을 아홉 걔 가는 데 백칠십번 정돈 쳤지.’
스트래드레이터는 듣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 놈은 자기의 근사한 머리카락을 빗고 있었다.
‘내려가서 걔한테 인사라두 해야겠는데,’ 하고 내가 말했다.
‘그러든지.’
‘그래야겠다. 빨리 가야지.’
그는 다시 머리카락을 가르기 시작했다. 그 놈은 머리 빗는 데 한시간은 걸린다.
‘걔네 엄마 하구 아버진 이혼했어. 걔네 엄만 어떤 술고래 하구 재혼했어,’ 하고 내가 말했다. ‘삐쩍 마른 작잔데 다리엔 털이 무지 많더라. 생각나는데. 맨날 짧은 바지만 입고 다니구. 제인이 그러는데 극작가나 뭐 그딴 게 될 거라구 했는데, 근데 내가 보기엔 맨날 술에 취해 가지구 라디오에서 추리극 같은 거나 빼 놓지 않고 듣는 것밖엔 하는 일이 없더라. 그리구 벌거벗구 집 근처나 뛰어다니구 말야. 제인이 옆에 있는데두 말야.’
‘그래?’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그 얘기가 그 놈의 흥미를 끈 게 분명했다. 주정뱅이가 벌거벗고 집 주위를 뛰어다닌다는 것 말이다. 제인이 보고 있는 데서 말이다. 스트래드레이터는 정말이지, 섹스 이야기라면 귀가 솔깃하는 자식이다.
‘걘 어린 시절이 좀 데데했어. 농담이 아냐.’
하지만 그 말엔 스트래드레이터 놈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놈은 오직 섹스에 관한 얘기에만 흥미를 보인다.
‘제인 갤러허, 제기랄.’ 나는 마음으로부터 그녀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정말 그랬다. ‘내려가서 적어도 인사라두 해야 되는데.’
‘말만 하지 말구 하지 그래.’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나는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샤워 실 안에 너무 수증기가 꽉 차서 밖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냐,’ 하고 내가 말했다. 전에도 그럴 기분은 아니었다. 그런 일은 기분이 나야 하는 법이다. ‘쉬플리에 간 줄 알았는데. 틀림없이 쉬플리에 갈 거라구 믿었는데.’ 나는 샤워실 안을 좀 어슬렁거렸다. 다른 할 일이 없었으니까.‘걔가 체스 하는 거 재밌었다구 하냐?’ 하고 내가 말했다.
‘응, 그런 거 같애. 잘 몰라.’
‘우리가 맨날 체스 했다는 말 하지 않아, 아니면 뭐 다른 말이나?’
‘몰라. 제기랄, 난 그냥 만난 것 뿐이야,’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그는 이제 자기의 근사한 머리카락 빗질을 끝냈다. 그는 자기의 지저분한 화장 도구들을 치우고 있었다.
‘야, 걔한테 내 안부 좀 전해 줄래?’
‘알았어,’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하지만 난 그 놈이 아마 전해 주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스트래드레이터같은 놈들은 절대로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해 주는 법이 없다.
그는 방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잠깐 샤워 실에 남아서 제인 계집애를 생각했다. 잠시 후 나도 방으로 올라갔다.
내가 방에 들어갔을 때, 스트래드레이터는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그 놈은 아마 자기 인생의 반은 거울 앞에서 보낼 것이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잠깐 그를 보고 있었다.
‘야,’ 하고 내가 말했다. ‘내가 퇴학당했다는 말은 하지 않을 거지?’
‘알았어.’
스트래드레이터한테 좋은 점은 그거 한가지였다. 애클리한테는 그래야 하지만, 그 놈한테는 모든 것을 자잘한 것까지 설명해 주지 않아도 된다. 뭐, 그런 일이 그 놈한테는 흥미 없는 일이기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그게 진짜 이유다. 애클리 자식, 그 놈은 다르다. 애클리는 정말 참견하기 좋아하는 놈이다
그는 사냥걔 이빨자국 난 내 쟈켓을 입었다.
‘젠장, 야, 그걸 그렇게 늘려 놓으면 안돼,’ 하고 내가 말했다. 난 그걸 두 번 정도밖에는 입지 않았다.
‘그러지. 도대체 내 담배가 어디 갔지?’
‘책상 위에.’ 그 놈은 자기가 뭐든 어디 놓았는 지 아는 법이 없다. ‘니 마후라 밑에 말야.’ 그는 자기의 오바 주머니에 담배를 넣었다. 사실은 내 오바지만.
나는 기분 전환을 위해서, 갑자기 사냥 모자 챙을 앞으로 돌렸다. 나는 갑자기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난 정말 신경질적인 놈이다. ‘야, 너 오늘 어디로 데이트하러 갈 거냐?’ 하고 내가 물었다.‘아직 몰라?’
‘몰라. 뉴욬에 갈까, 시간 있으면. 아홉시 반에 들어가기로 하구 나왔다니까, 제기랄.’
나는 그 놈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걔가 그런 건, 아마 니가 얼마나 잘 생기고 매력적인 자식인 줄 몰랐기 때문일 거야. 알았다면 아마 다음 날 아침 열시 반에 돌아온다구 말했겠지.’
‘그건 맞는 말이야.’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그 놈은 쉽게 놀려먹을 수가 없다. 그 놈은 또 자만심에 빠졌다. ‘자 이제 농담하지 말구. 그 작문 좀 해라,’ 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오바를 다 입고 이제 나가려고 하였다. ‘뭐 너무 무리하거나 그러진 말구, 그저 묘사만 하면 돼. 알았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이렇게 말했다. ‘걔한테, 아직도 왕들을 뒷줄에 늘어놓는지 물어 봐.’
‘알았어,’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하지만 난 그 놈이 물어보지 않으리라는 것을 것을 알고 있었다. ‘자 이제 수고해.’ 그는 문을 꽝하고 닫고 방에서 나갔다.
나는 그가 나간 뒤로 약 삼십분 정도 거기 앉아 있었다. 내 말은, 아무 짓도 하지 않고 그냥 의자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제인과, 또 스트래드레이터가 제인하고 데이트하는 거니 뭐니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짜증이 나서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다. 스트래드레이터가 얼마나 쎅시한 놈인지는 내가 벌써 말한 적 있지.
갑자기,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애클리가 저 샤워 커튼을 제치고 급하게 들어왔다. 내 바보 같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그 놈을 보니까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그 놈이 그런 생각으로부터 내 마음을 떨쳐 주었다.
그 놈은 저녁 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늘어붙어 가지고는, 턱에 난 커다란 뾰두락지를 짜면서 펜시에서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놈들 애기를 지껄여 댔다. 그 놈은 손수건도 쓰지 않는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난 그 놈이 손수건을 가져 본 적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쨋든 난 그 놈이 손수건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까.
제 5장
펜시에선 토요일 저녁에 언제나 똑같은 것을 먹었다. 스테이크를 주니까 뭐 대단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들이 그러는 이유는, 학부모들이 일요일에 많이 학교에 나오기 때문이다. 난 거기에 천 딸라 걸 수도 있다. 터머 교장은 아마, 애들의 부모가, 어제 저녁에 뭘 먹었니 하고 귀여운 자식들에게 물으면 ‘스테이크요.’ 하고 대답할 거라는 점을 예상했을 것이다. 얼마나 가증한 일이냐. 스테이크를 봤어야 하는데. 딱딱하고 말라빠진 걸 조금 주는데 칼로 간신히 잘라먹어야 한다. 그리고 스테이크와 함께 저 울퉁불퉁한 으깬 감자를 주고, 디저트로는 브라운 베티를 주는데, 아마 더 좋은 건 먹어 본 적이 없는 저 하급 학교의 꼬마들이나 뭐든지 먹어 치우는 애클리를 빼고는 아무도 먹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식당에서 나왔을 때는 정말 멋있었다. 운동장에 눈이 삼인치는 왔는데, 아직도 미치광이처럼 내리고 있었다. 정말 멋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눈을 던지고 사방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건 꽤 유치한 일이었지만, 우리는 정말로 재미있었다.
나는 여자 친구니 뭐니 하는 게 없었기 때문에, 레슬링 팀에 있는 친구인 저 맬 브로싸드와 같이 버스를 타고 애거스타운에 나가서 햄버거를 먹고 아마 시시껄렁한 영화나 하나 보기로 하였다. 우리 둘 중 아무도 밤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맬에게 애클리를 같이 데리고 가도 괜찮겠냐고 물어 보았다. 내가 그렇게 물어 본 건, 애클리는 토요일 밤엔, 방에 죽치고 앉아서 여드름을 짜거나 그런 짓 외에는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맬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런 생각에 별로 달가와 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는 애클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준비니 뭐니를 하러 각자 방으로 갔다. 나는 고무 장화니 다른 너절한 것을 입으면서 애클리한테 영화 보러 가겠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샤워 커튼 너머로 내 말을 분명히 들었을 텐데 바로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는 누가 뭘 물어 보면 바로 대답하는 걸 싫어하는 놈이다. 이윽고 그가 이 쪽으로 넘어와서 문턱에 서서는 내가 누구 하구 가는지 물었다. 만일 이 놈이 탄 배가 난파되어서 누가 보트로 구해 주면, 맹세코 말하지만, 이 놈은 보트에 타기 전에 누가 노를 젓는지 알려고 하는 그런 놈일 것이다. 나는 맬 브로싸드가 간다고 말해 주었다. 그가 말했다. ‘그 새끼?...좋아. 잠깐 기다려.’ 누가 보면 무슨 큰 호의나 베풀어 주는 걸로 알 것이다.
그 놈이 준비하는데 다섯 시간은 걸렸다. 그가 준비하는 동안, 나는 창문 쪽으로 가서 창을 열고 맨 손으로 눈덩이를 뭉쳤다. 눈은 잘 뭉쳐졌다. 하지만 난 눈덩이를 어디다 던지지는 않았다. 난 눈덩이를 던지려고 했다. 길거리 건너편에 주차해 있는 차에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바꾸었다. 그 차는 하얀 색의 멋진 차였다. 다음엔 소화전에다 던지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흰 눈에 덮여서 멋있게 보였다. 결국 나는 눈을 어디 다도 던지지 않았다. 나는 그냥 창문을 닫고 손에 쥔 눈을 더욱 단단하게 뭉치면서 방안을 어슬렁거렸다. 얼마 후에, 나는 브로싸드하구 애클리와 같이 버스에 오를 때까지도 손에 눈을 들고 있었다. 버스 운전사는 문을 열고 눈을 밖으로 던지게 했다. 나는 누구한테 눈을 던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고 운전사한테 말했지만 그는 내 말을 믿어 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절대로 남의 말을 믿는 법이 없다.
브로싸드와 애클리 둘 다 지금 상영되는 영화를 봤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햄버거를 몇 걔 먹고 핀볼 게임을 조금 하다가 버스를 타고 펜시로 돌아왔다. 어쨌든 나는 영화를 보지 못했다고 실망하지는 않았다. 그건 캐리 그란트나 뭐 그런 작자들이 나오는 코메디 영화니까. 나는 전에 애클리와 브로싸드하구 영화관에 간 적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도 우습지 않은 걸 보고 하이에나처럼 웃어댔다. 나는 극장 안에서 그들 옆에 앉아 있는 것조차 싫었었다.
우리가 기숙사로 돌아왔을 때는 겨우 여덟시 사십 오분 정도 되었었다. 브로싸드 놈은 브릿지 게임 광이어서 게임을 하려고 기숙사를 돌아다녔다. 애클리 놈은 기분 전환을 위해서 내 방에 진을 치고 앉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트래드레이터의 의자 팔걸이에 앉지 않고 얼굴을 내 베걔니 뭐니 쪽으로 들이대고 내 침대 위에 누워 버렸다. 그는 저 아주 단조로운 어조로 얘기를 하면서 여드름을 짜기 시작했다. 내가 내려가라는 암시를 천번은 주었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놈은, 저번 여름에 자기가 같이 잤다고 하는 어떤 계집애 얘기를 내내 지껄였다. 그 얘기를 백번은 했을 것이다. 그 얘기는 할 때마다 달랐다. 어떤 때는 그의 사촌 차인 뷬에서 했고, 다른 때는 해변에 있는 널빤지 아래서 했다. 물론, 그건 전부 싸구려 너저분한 얘기였다. 내가 숫총각을 봤다면 그 놈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그가 어떤 여자한테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켰을 지 하는 것도 의심이 간다. 마침내 나는, 스트래드레이터가 부탁한 작문을 써야 하니까 정신 집중 좀 하게 나가 달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꾸물대다가 결국 나갔다. 그가 나가자, 나는 파자마와 목욕복 그리고 사냥 모자를 쓰고 작문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스트래드레이터가 부탁한 것처럼 방이나 집 또는 그런 걸 묘사하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어쨌든 방이나 집을 묘사하는 건 별로 마음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뭘 했냐 하면, 나는 내 동생인 앨리의 야구 글러브에 대해 썼다. 그건 정말 묘사할 게 많은 주제였다. 정말 그랬다. 내 동생 앨리는 왼손잡이 글러브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왼손잡이였으니까. 하지만 거기에 묘사할 게 뭐가 있냐 하면, 그는 손가락 나오는 데나 공 받는 데나 어디나 시를 써 놓았다. 초록색 잉크로. 그는 외야에 나가서 아직 아무도 배타 박스에 나오지 않았을 때 뭔가 읽으려고 거기에다 시를 써 놓았다. 그는 지금은 죽었다. 그는 폐결핵에 걸려서 우리가 1946년 7월 18일 메인에 갔을 때 죽었다. 누구라도 그를 좋아했을 거야. 그는 나보다 두 살이 어렸지만 나보다 오십 배나 똑똑했다. 그는 끔찍하게 똑똑했다. 그의 선생들은, 앨리같은 아이가 자기들 반에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지 모른다며 언제나 어머니한테 편지를 썼다. 그런데 그들이 허풍을 떠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말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는 단지 집에서 가장 총명한 애라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여러 가지 면에서 가장 좋은 아이였다. 그는 누구한테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빨강 머리를 한 사람들은 쉽게 화를 낸다고 하지만, 그는 절대 그러지 않았다. 그는 머리카락이 굉장히 빨간 색이었다. 그의 머리카락이 얼마나 빨간 색인지 얘기해 볼까. 나는 열 살밖에 안 되었을 때 골프를 치기 시작했다. 한번은, 내가 열 두살 정도 되었을 때의 여름으로 기억되는데, 공을 치다가 나는, 갑자기 뒤에 앨리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그랬다. 아니나 다를까, 앨리는 담장 너머에서 ― 코스 주위를 따라 담장이 둘러져 있었는데 ― 내 뒤에 백 오십 야드나 떨어진 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앉아 내가 공을 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정말 그의 머리카락은 그렇게 빨간 색이었다. 하지만, 정말이지, 그는 좋은 아이였다. 그는 저녁 식사 테이블에서 뭔가를 생각하고는 너무나 웃다가 테이블 아래로 떨어질 뻔하곤 했다. 내가 열한 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 차고에 있는 유리창을 죄다 깼기 때문에, 부모님은 나에게 정신분석이니 뭐니를 받게 하였다. 나는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정말로 원망하지 않는다. 나는 그날 밤 차고에서 잠을 잤는데, 나는 그저 그러고 싶은 마음에서 망할 놈의 유리창을 주먹으로 죄다 깨 버렸다. 나는 우리가 그해 여름에 산 스테이션 웨곤의 유리창도 깨 버리려고 했지만, 이미 내 손은 다 부러지고 그래서 그러지 못하였다.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건 인정하겠어. 하지만 난 내가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도, 비가 오거나 뭐 그럴 때는 가끔 손이 아프다. 나는 이제 주먹을 쥐지 못한다 ― 꽉 쥐는 것 말이다 ― 하지만 그것 말고는 나는 별로 걔의치 않는다. 내 말은, 내가 뭐 어쨌든 빌어먹을 외과 의사나 바이올리니스트나 그딴 게 될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쨌든, 내가 스트래드레이터의 작문을 쓴 것은 그런 얘기이다. 저 앨리의 야구 글러브 말이다. 우연히 내 슈트케이스에 그 글러브가 있어서, 그걸 꺼내서는 거기 적혀 있는 시들을 옮겨 적었다. 나는 다만, 아무도 그것이 앨리의 것이라는 것을 모르게 하려고 앨리의 이름만을 바꾸었다. 나는 그런 것을 쓰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별달리 묘사할 만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어느 정도는 그걸 쓰는 게 좋기도 하였다. 그걸 다 쓰는 데 삼십 분은 걸렸다. 나는 스트래드레이터의 데데한 타이프라이터를 사용했는데, 그것이 계속해서 걸렸기 때문이다. 내가 내 타이프라이터를 쓰지 않은 것은, 아래쪽에 있는 놈한테 그걸 빌려 줬기 때문이다.
내가 작문을 끝냈을 때는 거의 열시 반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피곤하지도 않아서 잠시 창 밖을 내다보았다. 이제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차가 출발하지 못하는 소리가 가끔씩 들렸다. 또 애클리가 코를 고는 소리도 들렸다. 그 망할 놈의 샤워 커튼을 통해서 그 놈의 소리가 바로 들리는 것이다. 그는 코에 무슨 이상이 있어서 잠들어 있을 때에도 고르게 숨을 쉬지 못하였다. 그 놈은 거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코 이상, 여드름, 지저분한 이빨, 입에서 나는 악취, 지저분한 손가락 등. 그 미친 녀석한텐 약간 동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제 6장
기억해 내기 어려운 일도 있다. 나는 지금 스트래드레이터가 제인하구 데이트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내 말은, 그 놈의 빌어먹을 구두 소리가 복도를 따라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을 때 내가 정확하게 뭘 하고 있었나 하는 것이다. 아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맹세코, 난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지독하게 걱정에 싸여 있었다. 그게 진짜 이유이다. 내가 정말로 뭔가를 걱정할 땐, 나는 절대 빈둥거리지 않는다. 나는 뭔가를 걱정할 땐, 화장실에라도 가야 한다. 하지만 난 가지 않는다. 너무 걱정에 싸여 있으면 가지 않는다. 거기 감으로써 내 걱정을 중단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스트래드레이터를 안다면, 누구라도 걱정했을 것이다. 나는 그 자식과 함께 여러 번 쌍쌍으로 데이트를 나간 적이 있었다. 내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냐 하면, 그 자식은 도대체 방탕하기 짝이 없는 놈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
어쨌든, 복도는 전부 리놀륨이니 뭐니 였기 때문에 그의 망할 놈의 구두 소리가 방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는 소리가 다 들렸다. 나는 그가 방에 들어왔을 때,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 창문에 가 있었는지, 아니면 내 의자 아니면 그의 의자에 앉아 있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맹세코,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밖이 너무 춥다고 투덜거리며 들어왔다. 이어서 그가 말했다, ‘대체 다들 어디 간 거냐? 이 근처가 꼭 무슨 시체 안치소 같은데.’ 나는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토요일 밤이라 다들 나가거나 잠자지 않으면 집에 간다는 것도 모를 만큼 그 놈이 멍청한 자식이라면, 그런 말에 뭐하러 대답할 필요가 있느냐 말이다. 그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는 제인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단 한마디도 말이다. 나도 제인 얘기는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를 지켜보았다. 그는 다만 내 사냥걔 이빨 자국 난 쟈켓을 빌려 준 데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쟈켓을 양복 걸이에 걸어서 벽장 안에 넣었다.
그리고, 넥타이를 푸르면서, 자기가 부탁한 작문을 썼냐고 물었다. 나는 그 놈의 침대 위에 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쪽으로 걸어가서 셔츠 단추를 푸르면서 그걸 읽었다. 그는 거기 서서 작문을 읽으면서, 저 멍청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 가슴과 배를 약간 쓰다듬었다. 그 놈은 언제나 자기 배나 아니면 가슴을 쓰다듬는다. 그 놈은 정말이지, 자기 도취에 빠진 자식이다.
갑자기 그가 말했다, ‘제기랄, 홀든. 이건 망할 야구 글러브 얘기잖아.’
‘그래서 뭐?’ 하고 내가 말했다. 아주 냉정한 어조로.
‘뭐라구 ― 그래서 뭐라니? 방이나 집 아니면 그런 얘길 쓰라고 했잖아.’
‘넌 뭔가 묘사하는 얘길 쓰라구 했잖아. 그게 야구 글러브 얘기면 뭐가 어떠냐?’
‘빌어먹을.’ 그는 더럽게 성마른 놈이다. 그는 정말로 화가 나 있었다. ‘넌 항상 뭐든지 삐딱하게 하더라.’ 그가 나를 쳐다보았다. ‘니가 여기서 낙제하는 것도 당연하지.’ 하고 그가 말했다. ‘넌 하나도 누가 하라는 데로 하지 않는 놈이야. 정말이야. 단 하나두 말야.’
‘좋아, 그럼 그걸 나한테 다시 줘,’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그 쪽으로 가서 그 놈의 손에서 작문을 빼앗았다. 그리고 그걸 찢어 버렸다.
‘대체 왜 그러냐?’ 하고 그가 말했다.
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종이 조각들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나는 침대 위에 누웠다.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셔츠까지 모두 벗고, 나는 침대에 누워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기숙사에선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되어 있었지만, 전부 잠들어 있거나 밖에 나가서 아무도 담배 연기를 맡을 수 없는 늦은 밤엔 피울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일부러 스트래드레이터를 화나게 하려고 담배를 피우는 것이다. 누가 규칙을 어기면 그 놈은 미친 듯이 화를 낸다. 그는 절대 방안에선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러는 건 나밖에 없었다.
그는 여전히 제인에 관한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걔가 아홉시 반에 들어오기로 하고 나갔다더니 넌 왜 이렇게 늦게 왔냐? 니가 걔를 늦게 들어가게 만들었냐?’
내가 그렇게 물었을 때, 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서 자기의 빌어먹을 손톱을 깎고 있었다. ‘잠깐,’ 하고 그가 말했다. ‘대체 어떤 놈이 토요일 밤에 아홉시 반에 들어오기로 하고 나온대냐?’ 정말이지, 얼마나 밉살스러운 놈이냐.
‘뉴욬엔 갔나?’ 하고 내가 말했다.
‘미쳤냐? 걔가 아홉시 반에 들어오기로 하고 나왔는데 어떻게 뉴욬에 가냐?’
‘지독하다.’
그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야,’ 하고 그가 말했다. ‘담밸 피우려면 샤워실에 가서 피우는 게 어떠냐? 넌 지금 여기서 나가도 돼지만 난 졸업할 때 까진 여기 늘어붙어 있어야 한단 말야.’
난 그의 말을 무시했다. 정말로 무시해 버렸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계속해서 담배를 피워 댔다. 나는 그저, 옆으로 약간 자세를 바꿔서 그가 발톱을 깎는 걸 바라보았다. 이게 학교라니. 언제나 발톱을 깎지 않으면 여드름을 짜거나 그런 짓을 하는 놈들밖엔 안 보인다.
‘걔한테 내 안부 전해 줬어?’ 내가 그에게 물었다.
‘응.’
잘도 그랬겠다, 걔새끼.
‘뭐라구 그러든?’ 하고 내가 물었다. ‘아직도 왕을 뒷줄에 늘어놓느냐고 물어 봤어?’
‘아니, 그건 안 물어 봤어. 대체 넌 우리가 밤새 뭘 했다구 생각하냐 ― 체스나 한 줄 알라, 제기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밉살스러운 놈이야.
‘뉴욬에 안 갔으면 걔하구 어디 간 거야?’
조금 있다가 내가 물었다. 나는 목소리가 온통 떨리는 걸 억제할 수 없었다. 정말, 나는 초조해지고 있었다. 나는 뭔가 이상하게 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손톱을 다 깎았다. 그리고 셔츠니 뭐니를 입고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이상하게 장난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 침대 쪽으로 오더니 내 위로 몸을 숙이고 내 어깨를 만지며 장난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만 해.’ 하고 내가 말했다. ‘뉴욬에 안 갔으면 어디 갔냐?’
‘아무 데두. 우린 그냥 차안에 앉아 있었어.’ 그 놈이 다시 내 어깨에 대고 저 데데한 장난질을 했다.
‘그만 해,’ 하고 내가 말했다. ‘누구 차에?’
‘에드 뱅키.’
에드 뱅키는 펜시의 농구팀 코치였다. 스트래드레이터 놈은 팀의 쎈터였기 때문에 그가 귀여워하는 놈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에드 뱅키는 그가 말만 하면 언제라도 자기 차를 빌려 줬다. 학생이 선생의 차를 빌리는 건 허용되지 않는데 운동하는 놈들은 자기들끼리는 잘 뭉친다. 내가 다녀 본 어떤 학교에서도 운동하는 새끼들은 자기들끼리는 잘 봐 주었다.
스트래드레이터는 계속해서 내 어깨에다 가볍게 주먹질을 해 댔다. 그는 칫솔을 들고 있다가 입 속에 넣었다. ‘뭘 했냐?’ 하고 내가 말했다. ‘에드 뱅키의 차 속에서 걔한테 한번 줬냐?’ 내 목소리는 약간 끔찍하게 떨리고 있었다.
‘무슨 그런 소릴 하나? 니 놈의 입을 비누로 문질러 줄까?’
‘했어?’
‘그건 직업상의 비밀이네, 친구.’
다음 부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아는 건 다만, 샤워실이니 뭐니에 내려갈 때처럼 침대에서 일어나서, 그 놈의 주둥아리가 벌어지도록, 있는 힘을 다해서 칫솔을 정통으로 갈기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난 못 맞췄다. 득점과 연결시키지 못했다. 나는 그저, 그 놈의 머리통이니 뭐니의 옆쪽을 쳤다. 아마 그 놈은 조금 아팠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마음먹은 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통으로 맞았다면 놈은 꽤 아팠을 텐데, 나는 오른손으로 쳤던 것이다. 나는 그 손으로는 좋은 펀치를 날릴 수가 없는 것이다. 전에 얘기한 적이 있는 그 상처 말이다.
어쨌든, 다음으로 내가 기억하는 건, 내가 바닥에 넘어졌는데 놈이 얼굴이 온통 시뻘걔 가지고 내 가슴팍 위에 올라타고 앉아있었다는 것이다. 그 놈은 무릎팍을 내 가슴위에 대고 누르고 있었는데 몸무게가 대략 1톤은 되는 것 같았다. 그는 또 내 손목을 꽉 쥐고 있어서 나는 그 이상 주먹을 날릴 수가 없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난 그 놈을 죽였을 것이다.
‘대체 왜 이 지랄이야?’ 하고 그가 계속해서 지껄였는데 얼굴이 점점 더 시뻘걔졌다.
‘네 놈의 더러운 무릎팍을 내 가슴에서 치워,’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거의 소리를 질러댔다. 정말 그랬다. ‘빨리, 내려와, 이 더러운 자식아.’
하지만 그 놈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놈은 계속해서 내 손목을 누르고 있어서, 나는 거의 열시간 정도는 그 놈한테 걔새끼니 뭐니하고 욕을 퍼부었다. 내가 그 놈한테 한 말을 전부 기억할 수는 없다. 너란 놈은 그러고 싶으면 어느 놈한테라도 한 번 줄 것이다, 그리고, 계집애가 왕을 뒷줄에 놓는지 아닌지 너란 놈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데, 상관하지 않는 이유는 니가 형편없는 바보 천치이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 놈은 누가 자기를 천치라고 부르면 싫어했다. 천치들은 누가 자기를 천치라고 부르면 싫어하는 법이다.
‘닥쳐, 이제, 홀든.’ 하고 그가 바보같이 시뻘걔진 입으로 말했다. ‘닥쳐, 이제.’
‘넌 걔 이름이 제인인지 준인지도 모르지, 이 멍청한 천치야!’
‘자, 닥쳐, 홀든, 빌어먹을 ― 지금 경고하는 거야,’ 하고 그가 말했다. 나는 그 놈을 정말 돌게 만들었다. ‘닥치지 않으면, 한 방 먹인다.’
‘네 놈의 더럽게 냄새나는 천치 무릎팍을 가슴에서 치워.’
‘내가 널 일어나게 해 주면 네 놈의 입을 닥칠래?’
나는 대답하지도 않았다.
그가 다시 말했다. ‘홀든, 내가 널 일어나게 해 주면 네 놈의 입을 닥칠 거야?’
‘그래.’
그는 내려왔고 나도 일어났다. 내 가슴팍은 그 놈의 더러운 무릎팍 때문에 무지하게 아팠다. ‘넌 더럽고 멍청한 바보 천치야,’ 하고 하고 나는 말했다.
그 말이 그 놈을 정말 화나게 했다. 그는 멍청하게 큰 손가락을 내 얼굴에 대고 흔들어 댔다. ‘홀든, 빌어먹을, 지금 경고하는 거야. 마지막으로, 네 놈의 입을 닥치지 않으면, 그 땐 ―’
‘내가 왜 그래야 되지?’ 하고 내가 말했다 ― 나는 거의 꽥꽥대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너희 천치들은 바로 그게 문제야. 너희들은 결코 상의하려고 하지 않지. 그걸로 천치를 알아 볼 수 있거든. 너희들은 지적인 건 결코 얘기하고 싶지 ―’
그러자 그 놈은 정말로 한 방을 먹였다. 내가 다음에 기억나는 건 다시 바닥에 자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 놈이 나를 완전히 K.O. 시켰는지 어떤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내가 완전히 K.O. 당한 것 같지는 않다. 영화 같은 데가 아니면 완전히 K.O. 시킨다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내 코는 사방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내가 고개를 들어보니까, 스트래드레이터 놈은 바로 내 위에 서 있었다. 그는 팔 아랫 부분을 화장지로 감고 있었다. ‘내가 그만 두랄 때 그만 두지 않구?’ 하고 그가 말했다. 그 놈의 목소리도 꽤 흥분해 있었다. 내가 바닥에 부딪혔을 때, 내 머리니 뭐니가 깨지지 않았나 하고 꽤나 겁먹었을 것이다. 머리가 깨지지 않은 게 유감이다. ‘니가 그렇게 시킨 거야, 제기랄,’ 하고 그가 말했다. 정말이지, 굉장히 겁먹은 표정이었다.
나는 일어나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바닥에 누워서 여전히 천치 걔새끼라고 욕을 해댔다. 나는 정말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나는 거의 발악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봐, 가서 얼굴 닦아,’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내 말 안 들려?’
나는 그에게, 가서 네 천치 얼굴이나 닦으라고 말했다. 사실 그런 말을 하는 게 유치한 짓이었지만 나는 미칠 정도로 화가 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샤워실에 가다가 쉬미트 부인한테 가서 한 번 주라고 말해 주었다. 쉬미트 부인은 수위의 마누라였는데 예순 다섯 살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나는 스트래드레이터 놈이 문을 닫고 샤워실에 가려고 복도를 내려가는 소리가 날 때까지 바닥에 그냥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나는 일어났다. 빌어먹을 사냥 모자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것을 찾았다. 침대 밑에 있었다. 나는 모자를 쓰고, 내가 좋아하는 식으로 챙을 한바퀴 돌려 뒤로 가게 하고는 거울 쪽으로 가서 내 멍청한 얼굴을 한 번 보았다. 그렇게 피가 많이 난 건 일생에 보지 못할 거야. 입과 턱 그리고 파자마와 목욕복까지 온통 피투성이였다. 좀 끔찍하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매력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그런 모습이 나를 좀 야성적으로 보이게 했다. 나는 일생에 두 번 정도 싸움을 했는데 두 번 다 졌다. 난 야성적인 놈이 아니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난 반전 주의자다.
나는 애클리 놈이 아마 그 소동을 다 들었고 지금 깨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놈이 지금 뭘 하고 있나 보려고 샤워 커튼을 재치고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놈의 방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 놈은 습관이 굉장히 지저분해져서 언제나 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제 7장
샤워 커튼 사이와 우리 방에서 빛이 조금 비쳐서 나는 그가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가 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애클리?’ 하고 내가 말했다. ‘안 자냐?’
‘응.’
꽤 어두웠기 때문에 바닥에 있는 누군가의 구두를 밟아서, 제기랄, 거의 거꾸로 처박힐 뻔했다. 애클리가 조금 일어나 앉아서 한쪽 팔에 몸을 기대었다. 그는 여드름 때문에 얼굴에 하얀 것을 잔뜩 바르고 있었다. 어두운 데서 보니 좀 유령 같아 보였다. ‘뭐하고 있는 거냐?’ 하고 내가 말했다.
‘내가 뭘 하고 있냐구? 네 놈들이 시끄럽게 굴기 전에 잠자려구 하고 있었다. 도대체 뭣땜에 싸운 거야?’
‘불은 어디 있어?’ 나는 불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벽에 대고 손을 더듬었다.
‘뭣땜에 불을 찾아?... 니 손 바로 옆에.’
나는 마침내 불을 찾아서 스위치를 돌렸다. 애클리 놈은 불빛 때문에 손을 눈에 갖다 댔다.
‘뭐야!’ 하고 그가 말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는 피니 뭐니 하는 걸 말하는 것이었다.
‘스트래드레이터하구 말다툼을 좀 했지,’ 하고 내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바닥에 앉았다. 방에는 의자라곤 하나도 없었다. 대체 의자들을 어떻게 했는지 모른다. ‘이봐,’ 하고 내가 말했다. ‘카나스타 좀 할까?’ 그는 카나스타 광이었다.
‘아직도 피가 나쟎아, 제기랄. 뭘 좀 갖다 대는 게 낫겠는데.’
‘멈추겠지. 이봐. 카나스타 좀 할래 안 할래?’
카나스타라구, 맙소사. 도대체 지금이 몇 신지 아냐?‘
‘늦지 않았어. 열 한시나 열 한시 반 정도밖에 안 됐어’
‘정도밖에 안 됐다구!’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이봐, 난 아침에 일어나서 미사에 가야 돼, 제기랄. 너희 놈들은 한 밤중에 소리지르고 싸움을 하고 ― 대체 뭣 때문에 싸운 거냐?’
‘얘기하자면 길지. 난 널 지루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애클리. 난 니 행복을 생각하고 있는 거야,’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내 걔인적인 얘기를 그와 한 적이 없다. 첫째, 그 놈은 스트래드레이터보다 훨씬 더 멍청하기 때문이다. 스트래드레이터는 그 놈에다 대면 정말 천재다. ‘야,’ 하고 내가 말했다. ‘내가 오늘밤 엘리의 침대에서 자도 되냐? 걘 내일 밤까진 돌아오지 않지?’ 나는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엘리는 매주 주말만 가까이 오면 집에 갔다.
‘난 걔가 언제 돌아올 지 몰라,’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정말이지, 그런 말엔 짜증이 났다. ‘대체 무슨 말이야 ― 걔가 언제 돌아올 지 모른다니? 걘 일요일 밤까진 돌아오지 않잖아?’
‘그야 그렇지, 헌데 제기랄, 누가 자구 싶다구 해서 걔 침대에서 자라구 말할 순 없지.’
정말 미치게 만드네. 나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넌 멋진 놈이야, 애클리 꼬마,’ 하고 내가 말했다. ‘너 그거 알아?’
‘아니, 내 말은 정말이야 ― 누가 자구 싶다구 해서 걔 침대에서 ―’
‘넌 정말 멋진 놈이야. 넌 신사구 학구파라구, 꼬마야,’ 하고 내가 말했다. 그는 정말 그렇다니까. ‘혹시 담배 있어? 없다구 해 안 그러면 죽어 버릴 거야.’
‘아니, 없어, 사실은. 이봐, 대체 뭣땜에 싸운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일어나서 창가로 가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나는 갑자기 너무 외로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거의, 죽는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뭣땜에 싸운 거야?’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거의 열 다섯 번은 말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확실히 그는 지겨운 놈이었다.
‘너 때문에,’ 하고 내가 말했다.
‘나 때문이라구, 제기랄?’
‘그래. 내가 너의 빌어먹을 자존심을 지켜 주려구 그랬다. 스트래드레이터가 그러쟎아, 니가 성격이 더럽다구. 난 그런 말을 듣고 참을 수가 없었지.’
그 말이 그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그 놈이 그랬다구? 설마? 그랬어?’
나는 농담이라고 말해 주고는 엘리의 침대로 가서 누웠다. 정말이지, 우울했다. 나는 정말 더럽게 외로웠다.
‘이 방은 냄새가 나는데,’ 하고 내가 말했다. ‘여기서도 니 양말 냄새가 난다. 넌 양말을 세탁하러 보내지두 않냐?’
‘싫으면 어떻게 할 지 알 텐데,’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정말 재치있는 친구 아냐? ‘저 놈의 불을 끄는 게 어때?’
하지만 나는 즉시 불을 끄지는 않았다. 나는 제인이니 뭐니를 생각하면서 거기 엘리의 침대에 계속 누워 있었다. 그 계집애가 스트래드레이터와 같이 저 엉덩이가 디룩디룩한 에드 뱅키의 차 구석에 앉아 있는 걸 생각하니 정말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그걸 생각할 때마다 창 밖으로 뛰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실, 아무도 스트래드레이터를 모른다. 나는 그 놈을 안다. 펜시에 있는 놈들 대부분이 계집애와 성적 관계를 갖는 것에 대해 늘 지껄이지만 ― 예를 들어 애클리처럼 말야 ― 스트래드레이터 놈은 실제로 그걸 하는 놈이다. 나는 그가 관계를 가진 계집애들 중에 적어도 두 명과 알고 지냈다. 그건 사실이다.
‘나한테 너의 그 아름다운 인생 얘기 좀 해 봐, 애클리 꼬마,’ 하고 내가 말했다.
‘저 놈의 불 좀 끄지 그래? 아침에 미사에 가야 되거든.’
그가 행복해진다면, 나는 일어나서 불을 껐다. 그리고 나는 엘리의 침대에 누웠다.
‘너 뭐 할 거야 ― 엘리 침대에서 잘 거야?’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정말이지, 그는 손님 접대하는 덴 끝내 주는 놈이었다.
‘그럴 수도 있구. 안 그럴 수도 있구. 걱정하지 마.’
‘난 걱정하는 건 아냐. 그저 엘리가 갑자기 들어와서 어떤 놈이 자기 침대에 있는 걸 보는 게 싫은 거지.’
‘진정해. 난 여기서 안 자. 너의 그 망할 놈의 환대에 배은망덕한 짓은 안 할 거니까.’
몇 분 있다가 그는 미친 듯이 코를 골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두운 데 거기에 누워서, 제인 계집애와 스트래드레이터가 저 빌어먹을 에드 뱅키의 차 안에 있었던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했다. 문제는, 내가 저 스트래드레이터 놈의 기술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더 어렵게 만들었다. 우리가 한번은 에드 뱅키의 차 안에서 더블로 데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스트래드레이터는 자기 계집애와 뒷자리에 있었고 나는 내 계집애와 앞자리에 있었다. 정말 그 놈은 대단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하냐 하면 말야, 아주 차분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계집애를 녹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 마치 자기는 그저 얼굴만 잘 생긴 그런 놈이 아니고, 성격도 좋고 진지한 놈이라는 듯이 말야. 나는 그 놈 말을 듣고 있다가 거의 게울 뻔했다. 계집애는 계속해서 ‘안 돼 ― 제발. 제발, 하지 마. 제발.’ 이러더군. 하지만 스트래드레이터 놈이 계속해서, 저 애이브러햄 링컨같이 진정에서 우러나온 듯한 목소리로 계집애를 녹이니까, 결국 뒷자리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게 되더군. 나는 정말 당황했어. 그 날 밤에 그 놈이 계집애한테 줬다고 생각하진 않아 ― 하지만, 제기랄, 거의 할 단계까지 갔을 거야. 거의 가까이 갔을 거라구, 제기랄.
내가 거기 누워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스트래드레이터 놈이 샤워실에서 돌아와서 방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그 놈이 지저분한 세면 도구들을 치우고 창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놈은 틈만 나면 창문을 연다. 이윽고 조금 있다가 그가 불을 껐다. 그는 내가 어디 있나 하고 둘러보지도 않았다.
밖의 거리도 우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 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너무 외롭고 우울한 생각이 들어서 애클리를 깨우고 싶었다.
‘야, 애클리,’ 스트래드레이터가 샤워 커튼 너머로 듣지 못하게, 나는 약간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애클리는 듣지 못했다.
‘야, 애클리!’
그는 아직도 듣지 못했다. 그는 돌덩어리처럼 잠에 빠져 있었다.
‘야, 애클리!’
그가 들었다, 옳지.
‘대체 왜 그래?’ 하고 그가 말했다. ‘자고 있는데, 제기랄.’
‘이봐. 수도원에 들어가면 뭘 하냐?’ 하고 내가 물었다. 나는 수도원에 들어가면 어떨까 하고 장난 삼아 생각을 좀 하고 있었다. ‘캐톨릭이니 뭐니 여야 돼냐?’
‘물론 캐톨릭이야지. 이 자식아 그런 멍청한 걸 물어 보려고 날 ―’
‘아, 다시 자. 어쨌든 난 거긴 안 들어가니까. 내가 운 좋게 들어간다 해도, 난 아마 괴상한 중들만 있는 수도원에 들어가겠지. 전부 다 멍청한 새끼들만 있는. 아니면 그냥 못된 새끼들만 있던가.’
내가 그런 말을 하자, 애클리 놈은 벼락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야,’ 하고 그가 말했다, ‘니가 나나 다른 걸 가지고 뭐라 말하든 상관 안해, 하지만 내 종교를 가지고 농담을 하면, 제기랄 ―’
‘진정해,’ 하고 내가 말했다. ‘아무도 네 몸의 종교를 가지고 농담하는 사람은 없어.’ 나는 엘리의 침대에서 뛰쳐나와서 문 쪽으로 갔다. 나는 그런 바보 같은 분위기에서 더 이상 붙어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도중에 걸음을 멈추고 애클리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거창하게 일부러 꾸며서 악수를 했다. 그는 내 손을 뿌리쳤다. ‘무슨 짓이야?’ 하고 그가 말했다.
‘아무 것도 아냐. 난 그냥 니가 그렇걔 멋진 놈이라는 데 대해 감사하고 싶은 거야, 그것뿐이지,’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저 아주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멋있어, 애클리 꼬마,’ 하고 내가 말했다. ‘너 그거 알아?’
‘교활한 놈. 언젠가는 누군가가 니 주둥아릴 ―’
나는 그의 말에 이제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나는 문을 꽝하고 닫아 버리고 복도로 나갔다.
다들 자고 있거나 집에 가 버려서 복도는 정말 조용하고 우울했다. 리히와 호프만의 방 앞에 빈 콜리노스 치약 상자가 있어서 나는 계단 쪽으로 가는 동안, 신고 있던 양가죽을 댄 슬리퍼로 내내 그것을 차고 갔다. 내가 뭘 하려고 했냐 하면, 나는 내려가서 맬 브로싸드 놈이 뭘 하고 있는지 보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나는 마음을 바꿨다. 갑자기, 나는 정말 뭘 할 지를 결정했다, 지금 바로 펜시에서 나가 버리자. 내 말은, 수요일이니 뭐니 까지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여기에 붙어 있고 싶지 않았다. 너무도 우울하고 외로웠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결심했냐 하면, 뉴욬에 가서 호텔에 방을 잡는 것이다 ― 아주 싼 호텔이나 뭐 그런 데 말이다 ― 그리고 수요일까지 거기서 쉬는 것이다. 그리고 수요일이 되면 푹 쉬고 아주 가벼운 기분으로 집에 가는 것이다. 부모님은, 아마 화요일이나 수요일까지는 내가 퇴학당했다는 터머 교장의 편지를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이 편지를 받고 화가 완전히 풀릴 때까지는 집이니 뭐니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편지를 처음 받아봤을 때 거기 있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굉장히 히스테릭한 성격이거든. 하지만, 엄마는 무슨 일이든 완전히 지나고 나면 그리 심하진 않다. 게다가 난 휴식이 좀 필요했다. 내 신경은 있는 데로 쇠약해 있었다. 정말 그랬다니까.
어쨋든, 난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그래서 나는 짐을 싸거나 뭐 그런 걸 하려고 방으로 돌아와서 불을 켰다. 이미 많이 싸 놓았었다. 스트래드레이터 놈은 깨지도 않았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옷을 다 입은 다음, 저 글래드스톤 가방 두 걔를 쌌다. 이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나는 짐을 무지 빨리 싼다.
짐을 싸는데 한가지가 마음을 좀 우울하게 했다. 나는 엄마가 거의 이삼일 전에 보내 준 새 스케이트를 싸야 했다. 그 때문에 좀 우울했다. 나는 엄마가 스폴딩 가게에 들어가서 점원에게 수백만 가지나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것이 상상이 됐다 ― 그런데 나는 여기서 다시 퇴학을 당하고 있다니. 그런 생각을 하니 정말 슬퍼졌다. 엄마는 스케이트를 잘못 샀다 ― 나는 경주용 스케이트를 원했는데, 엄마는 하키용 스케이트를 사 준 것이다 ― 하지만 어쨋든 슬픈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나한테 선물을 사 줄 땐 거의 언제나 슬퍼지게 된다.
짐을 다 싸고 나는 돈을 좀 세어 보았다. 정확하게 얼마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꽤 많이 가지고 있었다. 할머니가 일주일 전에 꽤 많이 보내 줬던 것이다. 내 할머니는 돈에 대해선 아끼지 않는 분이다.할머니는 이제 정신이 성하지 않으시다 ― 할머니는 상당히 늙으셨다 ― 그래서 할머니는 일년에 네 번 정도는 언제나 생일 선물로 돈을 보내 주신다. 어쨋든, 돈이 꽤 있었지만, 나는 언제든지 몇 딸라 정도는 더 쓸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앞일을 누가 아나.
그래서 내가 뭘 했냐 하면, 복도를 내려 가서, 타이프라이터를 빌려 준 프레데릭 우드러프를 깨웠다. 나는 그에게 타이프라이터를 빌려 준 데 대해 얼마 낼 거냐고 물었다. 그는 꽤 돈이 많은 놈이거든. 그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걸 별로 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엔 그걸 샀다. 나는 그걸 구십 딸라 정도는 주고 샀는데 그는 겨우 이십 딸라에 샀다. 내가 자기를 깨워서 화가 났던 것이다.
가방이니 뭐니를 들고, 떠날 준비가 다 되자, 나는 계단 옆에 잠시 서서 저 복도를 마지막으로 한번 보았다. 나는 눈물을 좀 흘리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나는 빨간색 사냥 모자를 쓰고 내가 좋아하는 식으로 챙을 한바퀴 돌렸다. 그리고 나는 목이 터져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잘 자라, 이 천치 새끼들아!’ 그 때문에 그 층에 있는 새끼들은 전부 깼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어떤 멍청한 새끼가 계단 사방에 땅콩 껍질을 흘려 놓아서, 제기랄, 하마터면 모가지가 부러질 뻔했다.
제 8장
택시니 뭐니를 부르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나는 기차역까지 내내 걸어갔다. 별로 멀지는 않았지만 지독하게 추웠다. 게다가 눈 때문에 걷기가 어려웠고 글래드스톤 가방이 계속해서 다리에 부딪쳤다. 하지만 나는 바깥 공기니 뭐니가 약간 좋았다. 단 한가지 문제는, 너무 추워서 코 아래, 스트래드레이터 놈이 때린 윗입술 바로 아래 부분이 아팠다. 그 놈이 이빨 있는 데 입술을 때려서 거기가 굉장히 쓰라렸다. 하지만 귀는 따뜻하고 좋았다. 내가 산 모자는 귀마걔가 있어서 나는 그것을 내려 덮고 있었다 ― 나는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어쨋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잠자리에 들어가 있었으니까.
내가 역에 도착했을 때는 운이 좋았다, 왜냐 하면, 기차가 떠날 때까지 10분만 기다리면 되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기다리는 동안 손에 눈을 뭉쳐서 얼굴을 문질렀다. 아직도 얼굴에 피가 많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보통, 나는 기차 타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밤에 타는 게 좋은데, 차 안에 불이 켜지고 창문은 깜깜한데, 장삿꾼들이 통로를 따라 와서 커피니 샌드위치니 잡지들을 파는 것이다. 나는 대걔 햄 샌드위치하고 잡지를 네 권 정도 산다. 밤에 기차를 타고 가면, 나는 잡지에 실린 저 멍청한 얘기들도 대게 게우지 않고 읽을 수가 있다. 알지? 데이빗이니 하는 저 사깃꾼 같이 턱이 훌쪽한 놈하구 린다니 마르시아니 하는 역시 사깃꾼 같은 계집들이 나와서 언제나 데이빗의 파이프에 불을 붙여 준다는 그런 얘기 말야. 나는 또 기차에서는 저 너저분한 애기들도 대걔 읽을 수가 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나는 그런 따위를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나는 그냥 앉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사냥 모자를 벗어서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다.
갑자기, 트렌톤에서 어떤 부인이 타서 내 옆에 앉았다. 아주 늦은 시간이고 그래서, 차 안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는데, 그 부인은 빈 자리에 앉지 않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왜냐 하면 그 여자는 아주 큰 가방을 들고 있었고 또 내가 앞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가방을 바로 통로 한 가운데 놓아서 차장이나 다른 사람들이 넘어 다녀야 할 판이었다. 그 여자는 마치 큰 파티나 어디서 오는 것처럼, 난초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 여자는 마흔이나 마흔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였는데, 매우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나는 여자들을 보면 기분이 좋다. 정말 그래. 내가 성욕이 과잉이라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 내가 꽤 성적이긴 하지만. 내 말은, 그냥 여자들이 좋다는 것이다. 여자들은 항상 그 놈의 가방을 통로 한 가운데 놓는다.
어땟든, 우리는 거기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그 여자가 나한테 말했다. ‘잠깐, 저거 펜시 학교 마크 아녜요?’ 그 여자는 선반에 놓은 내 수트케이스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네, 그래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 여자 말이 맞았다. 나는 내 글래드스톤 가방 하나에 망할 놈의 펜시 마크 딱지를 붙여 놓았었다. 정말 촌스러운 짓이지, 그건 인정하겠어.
‘오, 펜시에 다녀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그 여자는 멋있는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대걔는 전화로 들을 때 멋있게 들리는 그런 목소리 말이다. 그 여자는 전화기를 가지고 다니면 좋을 것이다.
‘네. 그래요,’ 하고 내가 말했다.
‘오, 그래요! 그렇다면 혹시 내 아들을 알 지도 모르겠네. 어네스트 모로운데? 걔도 펜시에 다녀요.’
‘네, 알아요. 걘 우리 반이에요.’
그 여자의 아들은 그 학교의 너저분한 역사 전체를 통털어서, 지금까지 펜시에 다닌 놈들 중에서 가장 걔자식이었다. 그 놈은 샤워를 한 뒤에 언제나, 젖은 수건으로 다른 애들의 엉덩이에 때리면서 복도를 다녔다. 그 놈은 바로 그런 자식이었다.
‘오, 잘 됐네!’ 하고 그 부인이 말했다. 하지만 촌스럽지는 않았다. 그 여자는 멋있고 괜찮았다. ‘어네스트한테 우리가 만난 얘기를 해야지,’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학생 이름을 물어 봐도 되나?’
‘루돌프 쉬미트예요,’ 하고 나는 그 여자한테 말했다. 나는 그 여자한테 내 인생 얘기를 다 하고 싶지는 않았다. 루돌프 쉬미트는 우리 기숙사의 수위 이름이었다.
‘학생은 펜시가 좋은가?’ 하고 그 여자가 나한테 물었다.
‘펜시요? 그리 나쁘지 않아요. 천국이니 뭐니는 아니지만, 다른 학교들처럼 좋아요. 선생님들 중에는 양심적인 분들도 있구요.’
‘어네스트는 학교를 정말 좋아해요.’
‘저도 알고 있어요,’ 하고 하고 내가 말했다. 이어서 나는 저 낡아빠진 허튼 수작을 좀 부리기 시작했다. ‘걔는 무엇이나 잘 적응해요. 정말 그래요. 제 말은, 걔는 예의가 바르다는 말예요.’
‘그렇게 생각하나?’ 하고 그 여자가 나한테 물었다. 그 여잔 아주 흥미를 느낀 것 같았다.
‘어네스트요? 그럼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여자가 장갑을 벗는 것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그 여자의 손은 울퉁불퉁한 게 지저분했다.
‘손톱이 부러졌어요, 택시에서 내리다가,’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그 여자는 나를 보고 약간 미소를 지었다. 그 여자는 정말 멋진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정말 그랬다. 대부분 사람들은 거의 미소를 짓지 않거나 아니면 데데한 미소밖에는 지을 줄 모른다. ‘어네스트의 아빠와 난 가끔 어네스트가 걱정이 돼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우린 가끔, 걔가 별로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글쎄. 걔는 아주 민감한 애예요. 걔는 다른 애들하구 잘 어울려 본 적이 별루 없어요. 아마 걔는 자기 나이에 비해 사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거 같애요.’
민감하다. 그 말엔 졌다. 모로우란 놈은 저 놈의 화장실 의자만큼 민감했다.
나는 그 여자한테 좋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여자는 나한테 바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 여자는 자기가 얼마나 얼간이의 엄마인지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걸 알 수는 없다 ― 누구의 엄마라면 말이다. 엄마들은 모두 약간은 제 정신이 아니니까. 하지만 사실은, 나는 모로우 놈의 엄마가 마음에 들었다. 그 여자는 괜찮았다. ‘담배 피우실래요?’ 하고 나는 그 여자한테 물었다.
그 여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흡연차가 아닌 것 같은데, 루돌프,’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루돌프라. 그 말이 정말 나를 웃겼다.
‘괜찮아요. 사람들이 우리한테 소리지를 때 까진 피울 수 있쟎아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 여자는 나한테서 담배를 받았다. 나는 불을 주었다.
그 여자가 담배 피우는 모습은 멋있었다. 그 여자는 연기를 들이마시고 뭐 그랬지만, 그 여자 나이의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러듯이 걔걸스럽게 빨아대지는 않았다. 그 여자는 여러 가지로 매력적이었다. 정말로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인데, 그 여자는 성적인 매력도 풍부했다.
그 여자는 나를 약간 야릇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잘못 본 지 모르지만, 학생 코에서 피가 나는 것 같은데,’ 하고 그 여자가 갑자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눈에 맞았어요,’ 하고 내가 말했다. ‘얼어서 딱딱한 거 있죠?’ 나는 일어난 일을 사실대로 그 여자에게 말하려고도 했지만, 그러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여자가 좋았다. 나는, 그 여자에게 내 이름이 루돌프라고 말한 걸 약간 후회하기 시작했다. ‘어니 자식,’ 하고 하고 내가 말했다. ‘걔는 펜시에서 제일 인기있는 애들 중의 하나예요. 그거 아셨어요?’
‘아니, 몰랐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애들이 걔를 알기까진 정말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걔는 재미있는 애예요. 여러 가지 면에서 이상한 애지요 ― 무슨 말이지 아세요? 내가 걔를 처음 봤을 땐, 좀 속물적인 애라고 생각했어요. 바로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걔는 아주 독창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알려면 시간이 좀 걸리죠.’
모로우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이지, 그 여자를 봤어야 하는데. 나는 그 여자를 그 자리에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었지. 여기 누구 엄마가 있다고 하자, 그들이 듣고 싶은 것은, 자기 아들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가 하는 것 밖에 없다.
그리고 나서 나는, 본격적으로 저 낡아빠진 허튼 수작을 풀어 놓기 시작했다. ‘어니가 선거 얘길 했어요?’ 하고 나는 그 여자한테 물었다. ‘학급 선거 말이예요.’
그 여자는 아니라고 머리를 가로 저었다. 나는 그 여자를 완전히 정신 못차리게 만들어 놓았다, 말하자면. 내가 정말 그랬다니까. ‘우리들은 어니가 반장이 되었으면 했어요. 제 말은, 반 전체가 걔를 만장일치로 뽑았단 말예요. 제 말은, 학급 일을 할 수 있는 애는 어니 밖에 없다는 거예요.’ 하고 내가 말했다 ― 정말이지, 대단한 수작 아냐? ‘근데, 저 해리 펜서라는 애가 반장이 됐지요. 걔가 반장이 된 이유는, 간단하고도 분명한 이유지만요, 어니가 우리한테 자기를 추천하지 말라구 고집을 부려서 그런 거예요. 왜냐 하면, 걘 정말 수줍음을 타고 겸손하고 또 뭐니 뭐니 하고 그래서죠. 걘 안 한다고 딱 잘랐어요... 정말이지, 갠 정말 수줍음이 많아요. 그걸 극복하도록 노력하게 만드셔야 할 거예요.’ 나는 그 여자를 보았다. ‘어니가 그런 애기 안 했나요?’
‘아니, 안 했어.’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니는 그런 애예요. 말 안 할 거예요. 그게 단 하나 흠이죠 ― 너무 수줍음이 많고 겸손해요. 가끔 마음을 편히 가지도록 만드셔야 할 거예요.’
바로 그때, 차장이 모로우 부인의 차표를 검사하러 들어와서, 이제 그런 수작을 그만 둘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나는, 잠시 그런 수작을 풀은 게 후련했다. 언제나 목욕 수건으로 다른 애들의 엉덩이를 치는 모로우 같은 놈이 있다고 하자, 일부러 누군가를 아프게 하려고 그러는 놈 말야, 그런 놈들은 어릴 때만 그렇게 쥐새끼 같은 짓을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일생 동안 그런 쥐새끼 같은 짓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내기를 걸어도 좋아. 내가 그런 허튼 소리를 지껄여 댔기 때문에, 모로우 부인은 이제 자기 아들에 대해, 우리한테 절대로 자기를 반장으로 추천하지 말라고 고집을 부린 저 부끄럼 많고 겸손한 아이라고 계속 생각할 것이다. 그 여자는 그럴 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엄마들이란 그런 일엔 눈치가 별로 빠르지 않으니까.
‘칵테일 한잔 드실래요?’ 하고 나는 그 여자에게 물었다. 나는 칵테일을 한잔 마시고 싶었다. ‘식당 차에 가면 돼요. 좋으세요?’
‘저런, 그런 걸 마셔도 되나?’ 하고 그 여자가 나에게 물었다. 하지만 거만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 여자는 거만하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이고 또 뭐 그랬다.
‘글쎄요, 안 되겠죠, 엄밀하게 말하면요, 근데 전, 대걔는 건강 때문에 그걸 마시기도 해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리고 전 머리가 많이 세었어요.’ 나는 비스듬히 자세를 돌려서 내 회색 머리카락을 그 여자에게 보여 주었다. 거기엔 그 여자도 졌다. ‘자, 같이 가세요, 나 가실래요?’ 하고 내가 말했다. 같이 갔으면 좋았을 뻔했다.
‘나는 별로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하여간 고마워요, 학생,’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어쨌든, 식당 차는 아마 닫혀 있을 것 같은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그 여자 말이 맞았다. 그 때가 몇 시인지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 여자는 나를 보더니 그 여자가 물어 볼까 봐 걱정하고 있던 질문을 하였다. ‘어네스트가 편지에 썼는데, 수요일에 집에 올 거라고 하던데, 크리쓰마스 휴가가 수요일에 시작한다구.’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집안에 누가 아프셔서 갑자기 집에 가는 건 아니겠지.’ 그 여자는 정말로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단순히 호기심에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녜요, 집엔 별일 없어요,’ 하고 내가 말했다. ‘제 일 때문이에요. 여기를 수술해야 하거든요.’
‘오! 정말 안됐어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그 여자는 정말로 안됐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런 말을 한 게 정말로 미안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별로 심각한 건 아녜요. 머리에 종기가 조금 난 거예요.’
‘오, 저런!’ 하고 그 여자는 입이니 뭐니에 손을 갖다 댔다.
‘오, 전 괜찮을 거예요! 바깥쪽이니까요. 그리고 아주 쪼그만 거예요. 이분 정도면 떼어 낼 수 있어요.’
그리고 나서, 나는 주머니에서 시간표를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이제 거짓말을 그만 해야겠다고 생각돼서 말야. 나는 일단 책에 빠지면, 마음만 먹으면 몇 시간이라도 계속 읽을 수 있다. 이건 농담이 아냐. 몇 시간이라두 말야.
우리는 그 뒤로는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여자는 가지고 탄 「보그」지를 보기 시작했고 나는 잠시 창밖을 보았다. 그 여자는 뉴앜에서 내렸다. 그 여자는 수술이니 뭐니에 대해 행운을 빌어 주었다. 그 여자는 나를 줄곧 루돌프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서, 여름 중으로 메사추세프의 글루체스터로 어니를 찾아 오라고 초대하였다. 그 여자는, 집이 바로 해변에 있는데, 테니스 코트니 뭐니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감사하다고 말하고, 할아버지와 같이 남미에 갈 거라고 그 여자에게 말했다. 그건 정말로 웃기는 일이었는데, 왜냐 하면 할아버지는, 어쩌다가 무슨 연극이니 그런 데가 아니면 거의 집밖에 나오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다급한 처지에 있더라도 그 놈의 모로우 새끼한테는 절대 찾아가지 않을 거야.
제 9장
내가 펜 역에 내려서 제일 먼저 뭘 했냐 하면, 나는 전화 박스에 들어갔다. 나는 누군가한테 전화를 하고 싶었다. 나는 안에서 볼 수 있게 전화 박스 바로 밖에다 내 가방들을 놓았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자마자, 누구한테 전화해야 할 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 형 D.B.는 할리웃에 있었다. 누이동생 피비는 아홉시 정도에 잠자리에 드니까 전화할 수 없었다. 걔는 내가 깨운다고 해도 뭐 화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피비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전화를 받을 것이다. 그러니 안되는 것이다. 다음엔, 제인 갤러허의 엄마한테 전화해서 제인의 휴가가 시작되었는지 알아볼까 생각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전화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다음으론, 전에 자주 같이 다니던 저 쌜리 헤이즈한테 전화할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쌜리의 크리쓰마스 휴가가 시작된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쌜리가 크리쓰마스 이브에 와서 트리를 자르는 걸 도와 달라느니 뭐니 하고 아주 긴 되먹지 않은 편지를 보냈었기 때문이다 ― 하지만 난 걔네 엄마가 전화받을까봐 두려웠다. 걔네 엄마가 우리 엄마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다리를 부러뜨려 가며 전화기로 달려가서, 내가 뉴욬에 있다고 우리 엄마한테 전화할 게 뻔했다. 게다가, 난 저 헤이즈 부인하고 전화로 얘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여자가 쌜리한테, 내가 거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여자는, 내가 거칠고 또 삶에 목표도 없다고 말했다. 나는 이어서, 내가 우튼에 있을 때 같이 다녔던 저 칼 루쓰한테 전화할까 하고도 생각했지만 나는 그 놈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난 아무한테도 전화하지 않았다. 나는 이십 여분 정도 있다가 나와서, 가방들을 집어들고 택시들이 있는 터널로 가서 택시 한 대를 잡았다.
나는 너무 방심하고 있어서 그냥 습관적으로 운전사한테 우리 집 주소를 말해 주었다. 내 말은, 호텔에서 이삼일 정도 묵으면서 크리쓰마스가 시작될 때까지는 집에 안 간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택시가 공원 한가운데 올 때까지도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여봐요, 기회를 봐서 돌아가면 안되요? 내가 주소를 잘못 알려 줬어요. 시내로 가고 싶은데.’
운전사는 좀 교활한 친구였다. ‘여기선 돌리지 못해요. 여긴 일방통행이거든. 90번가까지는 내내 가야 할 거요.’
나는 말다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좋아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 때,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다. ‘이봐요,’ 하고 내가 말했다. ‘쎈트랄 파크 남쪽 바로 근처 호수에 있는 오리들을 알아요? 쪼그만 호수요. 혹시, 그 호수가 꽁꽁 얼면 오리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요?’ 혹시 알아요?‘ 나는 백만명 중 하나 정도가 그런 걸 알 거라는 생각이 그 때 들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서, 무슨 미친 사람 보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지금 뭐하자는 거요?’ 하고 그가 말했다. ‘농담하는 건가?’
‘아니 ― 그냥 궁금해서 그래요, 다른 건 아니구.’
그가 더 이상 아무 말도 없기에 나도 입을 다물었다. 90번가에서 나올 때까지. 그 때 그가 말했다. ‘자, 이제. 어디로 가요?’
‘글쎼, 사실은, 동쪽에 있는 호텔엔 가고 싶지 앟은데, 거긴 혹시 내가 아는 놈들을 만날 지도 몰라서요. 나 지금 신분을 숨기고 다니는 중이거든요,’ 하고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신분을 숨기고’ 하는 따위의 진부한 말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부한 작자와 같이 있을 땐, 나도 언제나 진부하게 행동한다. ‘혹시, 태프트나 뉴요커에 지금 어떤 밴드가 나왔는지 알아요?’
‘몰라요.’
‘그럼 ― 에드먼트로 가요,’ 하고 내가 말했다. ‘중간에 어디 들러서 칵테일 한잔 하지 않을래요?’ 내가 살께요, 나한테 돈이 좀 있어요.‘
‘그렇겐 못해요. 미안해요.’ 이런 친구와 같이 있으면 재미있을 거야. 정말 감탄할 만한 성격 아냐?
나는 에드먼트에 도착해서 방을 잡았다. 나는 택시에 타고 있을 때 그저 심심해서 빨간색 사냥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방을 잡기 전에 나는 모자를 벗었다. 괴짜나 뭐 그런 거로 보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정말 아이러닠한 일일 것이다. 알고 봤더니, 그 빌어먹을 호텔엔 괴상한 놈들과 멍청이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어디 가나 괴상한 인간들만 있다니까.
나는 아주 지저분한 방을 받았는데, 호텔 건너편 말고는 창밖에 볼 게 없었다. 나는 별로 걔의치 않았다. 나는 너무나 우울해서 전망이 좋고 나쁜 걸 가지고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나를 방으로 안내한 벨 보이는 예순 다섯 살 정도 된 아주 늙은 노인이었다. 방보다도 그 영감을 보는 게 훨씬 더 우울했다. 그는, 대머리를 가리기 위해서 얼마 안 되는 머리카락을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빗어 넘기는 그런 친구들 중의 하나였다. 나라면, 그런 짓을 하느니 차라리 그냥 대머리로 다닐 것이다. 어쨌든, 예순 다섯 살 정도 된 늙은이한텐 얼마나 훌륭한 직업이냐. 사람들의 수트케이스를 나르고 팁을 바라고 어슬렁거리는 거 말야. 나는 그 작자가 별로 영리하거나 뭐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어쨋든 끔찍한 일이었다.
그가 나간 뒤에, 나는 오바니 뭐니를 그대로 입고 잠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난 별로 할 일이 없었으니까. 그 때 호텔 건너편에서 벌어지는 일을 봤다면 놀랬을 거야. 그들은 구태여 커튼을 잡아 내리지도 않았다. 머리카락이 회색빛에, 꽤 잘 생긴 어떤 친구가 짧은 바지 하나만 입고 있는 게 보였는데, 그가 뭘 했는지 내가 얘기해 주면 믿지 않을 거야. 먼저 그는 침대 위에 수트케이스를 올려 놓더군. 그리고는 여자 옷들을 죄다 꺼낸 다음 그것들을 입었어. 그건 진짜 여자 옷들이었어 ― 실크 스타킹, 하이 힐, 브래지어, 끈이니 뭐니가 달린 저 코르셋 같은 것들 말야. 그리고는, 몸에 꽉 끼는 검은 색 이브닝 드레스를 입었지. 하늘에 맹세코 이건 사실이야. 그 다음엔 여자들이 하는 식으로 아주 조그만 걸음걸이로 방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거울을 들여다 보더군. 그도 역시 완전히 혼자였어. 누군가가 화장실에 있지 않다면 말야 ― 그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다음에, 그의 창문 너머에 있는 어떤 방을 보니까, 어떤 남녀가 상대방한테 입으로 물을 뿜어대는 게 보였다. 그건 물이 아니라 아마 하이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컵에 뭐가 들었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어쨋든, 처음에 남자가 그걸 한 모금 입에 넣었다가 여자 온몸에 뿜고, 다음엔 여자가 같은 짓을 남자한테 하는 거다 ― 제기랄, 교대로 그런 짓을 했다니까. 그들을 봤어야 하는 건데. 그들은, 마치 그 짓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이라는 듯이, 내내 히스테리까지 일으키더군. 난 지금 농담하는 게 아냐, 그 호텔은 괴상하고 너저분한 인간들로 꽉 차 있었다구. 거기서 유일하게 정상인 놈팽이는 나밖에 없었을 거야 ― 그리고 이건 자랑하는 게 아냐. 제기랄, 나는 스트래드레이터 놈한테 뉴욬행 첫번째 기차를 타고 오라고 거의 전보를 칠 뻔했다. 그 놈이 오면, 아마 그 호텔에서 왕 대접을 받았을 거야.
문제는 뭐냐 하면, 그런 너저분한 광경은, 정말 보고 싶지 않다 해도 어느 정도 마음을 끄는 데가 있다는 거야. 예를 들어, 얼굴에 온통 물을 뒤집어 쓴 그 여자 말이다. 그 여자는 꽤 잘 생겼었다. 내 말은 그게 내가 가진 큰 문제라는 말이다. 내 마음을 보면, 나는 아마 지금까지 보아 온 최대의 섹스광일 것이다. 가끔 나는, 만약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주저하지 않고 할 그런 아주 지저분한 짓을 생각할 때가 있다. 만일 둘 다 술에 취했거나 뭐 그렇다면, 어떤 여자를 데려다 서로 얼굴에다 물이니 뭐니를 뿜어대는 것도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상상도 한단 말이다. 뭐 지저분한 일이지만 말야. 근데, 사실은, 난 그런 생각을 좋아하지 않는다. 잘 따져보면 그건 구역질나는 일이지 않은가. 내 생각엔, 어떤 여자를 정말로 좋아하지 않으면, 그 여자와 희롱이니 뭐니를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어떤 여자를 좋아한다면, 아마 그 여자의 얼굴을 좋아하는 걸거야, 그리고 얼굴을 좋아한다면, 얼굴에 물을 뿜어대느니 하는 그런 너저분한 짓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정말 유감스러운 건, 대걔 지저분한 짓들이 가끔 굉장히 재미있다는 거다. 만일 너저분해지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땐, 그리고 정말 좋은 것을 망쳐 놓으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을 땐, 여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몇 년 전에 나보다 훨씬 더 지저분한 어떤 계집애를 알고 지냈었다. 정말이지, 그 년은 지저분했어! 하지만 우린 얼마 동안 꽤 재미있게 지냈다. 지저분하게 말야. 섹스는 내가 과히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도대체 갈피를 못잡게 한단 말야. 나는 스스로 섹스의 규칙을 계속해서 만들어 낸다, 그리고는 그걸 금방 어기는 거다. 작년에 난, 나를 몹시 애타게 만들던 계집애들과 이제 희롱질을 그만하겠다고 규칙을 만들었었다. 하지만 난 그걸 만든 바로 그 주에 ― 사실은 그날 밤이지만 ― 그걸 어겼다. 나는 저 앤 루이즈 셔먼이라는 되먹지 않은 계집애하고 밤새 껴안고 애무했었다. 섹스는 정말 이해하지 못해. 하늘에 맹세코, 정말 이해하지 못해.
나는 거기 내내 서 있으면서, 제인 년한테 전화해 볼까 하는 생각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 내 말은, 걔가 언제 집에 오나 알아보려고 걔네 엄마한테 전화한다는 게 아니라, 걔가 다니는 B.M. 에 장거리 전화를 한다는 말이다. 학생한텐 밤 늦게 전화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지만 난 계산을 다 해 놓았다. 누가 전화를 받으면 삼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숙모가 자동차 사고로 죽어서 당장 통화해야 한다고 하는 거다. 그렇게 하면 통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은 건, 다만 그런 짓을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럴 기분이 아니면, 그런 짓은 잘 할 수 없다.
잠시 후에 나는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몇 걔 피웠다. 나는 몸이 꽤 달아올랐다. 그건 인정해야 돼. 그런데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지갑을 꺼내서, 지난 여름에 어떤 파티에서 만난, 프린스턴에 다닌다는 친구가 준 주소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걸 찾았다. 지갑 때문에 온통 이상한 색깔의 물이 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알아 볼 수는 있었다. 그건, 정확하게 말해서 갈보나 뭐 그런 건 아니었지만 가끔 그런 짓을 서슴없이 한다고 그 프린스턴 친구가 말해 준 어떤 여자의 주소였다. 그는 그 여자를 프린스턴의 댄스파티에 한번 데리고 간 적이 있었는데, 그 여자 때문에 하마터면 쫓겨날 뻔했다. 그 여자는 저속한 스트립쇼의 스트립 댄서니 뭐 그런 거였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전화기 쪽으로 가서 그 여자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 여자의 이름은 페이스 캐번디쉬였고 65번가와 브로드웨이의 스탠포드 암즈 호텔에 살고 있었다. 보나마나 너저분한 곳일 거야.
잠시 나는, 그 여자가 집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더니 마침내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그 여자가 내 나이니 그런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아주 저음으로 꾸몄다. 어쨌든 나는 꽤 목소리가 저음이거든.
‘여보세요,’ 하고 여자의 목소리가 말했다. 별로 다정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페이스 캐번디쉬 양입니까?’
‘누구세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누가 전화질을 하는 거예요?’
그 말에 나는 좀 겁을 먹었다. ‘저, 꽤 늦었는 줄은 압니다,’ 하고 나는, 저 아주 노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용서해 주기 바래요, 하지만 난 당신과 무척 연락하고 싶었습니다.’
‘누구세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글쎄, 당신은 나를 모를 거예요 하지만 난 에디 버드쎌의 친굽니다. 내가 언제 여기 오면 당신과 칵테일이나 한잔하라고 하더군요.’
‘누구요? 누구 친구라구요?’ 정말이지, 전화기 너머 그 여자는 정말 암호랑이 같았다. 제기랄, 그 여자는 나한테 거의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에드먼드 버드쎌이요. 에디 버드쎌,‘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그의 이름이 어드먼든지 에드워든지 기억나지 않았다. 어떤 멍청한 파티에서 한번 밖에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이름 가진 사람은 몰라요. 그리고 이 한밤중에 누가 깨우는 걸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
‘에디 버드쎌. 프린스턴 출신인데.’ 하고 내가 말했다.
그 여자가 머릿속에서 그 이름을 기억해 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버드쏄, 버드쎌이라.... 프린스턴 출신.... 프린스턴 대학 말예요?’
‘맞습니다.’ 하고 내가 말했다.
‘당신 프린스턴 출신이에요?’
‘뭐, 비슷하지요.’
‘오.... 에디는 어떻게 지내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근데, 지금은 누구한테 전화 걸기엔 좀 이상한 시간인데. 내 참!‘
‘그 친군 잘 지내요. 당신한테 안부 전해 달라고 하더군요.’
‘네, 고마워요. 그 사람한테도 내 안부 전해 줘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그는 굉장한 사람이에요. 지금 뭘 하고 있어요?’ 그 여자는 갑자기 친근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오, 있잖아요. 항상 그렇죠 뭐,’ 하고 내가 말했다. 그가 뭘 하는지 대체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이냐? 나는 그 친구를 거의 모르는데. 나는, 그가 아직 프린스턴에 다니는 지도 몰랐다. ‘이봐요,’ 하고 내가 말했다. ‘어디서 만나서 칵테일 한잔 안 하겠어요?’
‘도대체 지금 몇 신지 알고 하는 말이에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하여간 당신 이름이 뭐지요. 실례가 안된다면?’ 그 여자는 갑자기 영국식 발음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좀 어린 것 같은데.’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칭찬해 줘서 고마워요.’ 하고 내가 말했다 ― 더럽게 얌전한 어조로 말이다. ‘내 이름은 홀든 코울필드예요.’ 그 여자한테 가짜 이름을 댈 걸 그랬는데, 그런 생각을 못했다.
‘근데, 이봐요, 코플씨. 난 한밤중에 무슨 약속은 안하는데. 난 직장이 있어요.’
‘내일은 일요일인데요,’ 하고 나는 그 여자에게 말했다.
‘뭐, 글쎄요. 난 미용을 위해서 잠을 자야 되요. 무슨 말인지 알죠?’
‘난 우리가 같이 칵테일 한잔 정도는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별로 늦지 않았어요.’
‘이런. 꽤 귀엽게 나오시는군,’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어디서 전화하는 거예요? 지금 어딨어요?’
‘나요? 난 전화박스 안에 있어요.’
‘오,’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그리고는 한동안 잠자코 있었다. ‘언제 한번 당신과 만나고 싶은데, 코플씨. 꽤 매력있는 친구 같군요. 당신은 꽤 매력있는 사람 같애. 하지만 너무 늦었어요.’
‘당신 있는 데로 갈 수도 있어요.’
‘글쎄 별루, 아니 대단하군요. 내 말은, 당신이 여기 와서 칵테일 한잔 하는 것도 좋지만 내 룸 메이트가 지금 아파요. 그 친군 밤새 한잠도 눈을 못 붙이고 누워 있다가 이제 막 눈을 붙였어요. 정말이예요.’
‘오, 그거 유감이군요.’
‘어디 묵고 있어요? 아마, 내일은 칵테일 한잔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일은 내가 안되요,’ 하고 나는 말했다. ‘오늘 밤 밖에 시간이 없어요.’ 나도 참 멍청이다. 그런 말은 하지 말걸.‘
‘오, 그럼 참 유감이에요.’
‘에디한테 당신 안부 전해 줄께요.’
‘그래 줄래요? 뉴욬에서 즐겁게 보내길 바래요. 여긴 굉장한 곳이에요.’
‘알아요. 고맙습니다. 잘 자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정말이지, 난 일을 완전히 망쳐 놓았다. 적어도 칵테일이나 뭐나를 같이 하기로 약속을 했었야 하는데 말이다.
제 10장
아직 꽤 이른 시간이었다. 몇 신진 확실히 몰랐지만 과히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내가 싫어하는 게 하나 있는데, 그건 피곤하지도 않는데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트케이스들을 열어서 깨끗한 셔츠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욕실에 들어가서 샤워를 한 다음, 셔츠를 갈아입었다. 내가 뭘 하려고 했냐 하면, 나는 아래층에 내려가서 라벤더 룸이 대체 어떤 덴가 알아보자고 생각했다. 그 호텔에는 라벤더 룸이라는 나이트 클럽이 있었다.
하지만 셔츠를 갈아입는 동안, 제기랄, 하마터면 피비한테 전화를 할 뻔했다. 나는 그 애한테 전화를 걸어서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쎈스니 뭐니가 있는 누군가한테 말이다. 하지만 나한텐 그 애하고 전화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애는 아직 어린 꼬마 애이고, 전화기 옆에 있는 건 고사하고 깨어 있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전화를 받으면 나는 아마 전화를 끊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잘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분들은 난 줄 알 테니까. 엄마는 언제나 나라는 걸 안다. 엄마는 감응력이 있는 분이다. 하지만 피비라면 잠시 허튼 수작을 늘어놓아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 애를 봤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 애처럼 예쁘고 똑똑한 꼬마는 본 적이 없을 거야. 그 애는 정말 똑똑하다. 내 말은, 걔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후로 내내 A만 받았다는 말이다. 사실, 우리 집에서 멍청한 놈은 나 하나밖에 없다. 내 형 D.B.는 작가니 뭐니이고, 전에 얘기했던 죽은 내 동생 앨리는 놀라운 애였다. 나만이 정말 멍청한 놈이다. 하지만 피비를 봤어야 하는데. 그 애는 저 앨리하고 약간 비슷하게 빨간 머리를 하고 있는데, 여름엔 아주 짧게 자른다. 여름엔, 머리를 귀 뒤에 착 붙이고 다닌다. 그 애의 귀는 조그마한 게 아주 예쁘게 생겼다. 하지만 겨울엔, 머리를 아주 길게 기른다. 엄마가 가끔 걔의 머리를 따 주기도 하는데, 안 따 줄 때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근사한 모양이야. 걔는 아직 열 살밖에 안 되었다. 걔는 나처럼 꽤 여위었는데 하지만 멋있게 여위었다. 롤러 스케이트 타기에 멋있게 여위었지. 걔가 5번가를 지나서 공원에 가는 걸 창문을 통해 본 적이 있는데, 그게 걔의 진짜 모습이야. 롤러 스케이트에 맞게 여윈 모습 말야. 걔를 좋아하게 될 거야. 내 말은, 누가 피비한테 무슨 얘기를 하면 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를 정확하게 안다는 거야. 내 말은, 걔는 어디에도 데리고 갈 수 있다는 말이야. 예를 들어, 그 애한테 너저분한 영화를 보여 주면, 걘 그게 너저분한 영환지 알아. 걔한테 꽤 괜찮은 영화를 보여 주면, 갠 그게 꽤 괜찮은 영환지 알아 본다구. D.B.와 내가, 레무가 나오는 저 프랑스 영화 「빵장수의 마누라」를 보여 준 적이 있었어. 피비는 그 때 깜빡 죽었지. 하지만 그 애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로버트 도나트가 나오는 「39개의 계단」이야. 그 영화를 보러 나하고 열 번은 같이 다녔으니까 갠 그 놈의 줄거리를 다 외우고 있어. 예를 들어, 저 도나트가 경찰이니 뭐니에 쫓겨서 스코틀랜드의 농가에 나타날 때, 저 스코틀랜드 농부가 ‘청어 먹을 줄 알아요?’ 하고 말하거든. 그 때 피비도 같이, 똑같은 대사를 큰 소리로 떠들어댄단 말야. 걔는 대사 전체를 몽땅 외우고 있거든. 그리고 영화속에서 저 교수가, 사실은 독일 스파이지만, 중간관절을 숨기고 새끼 손가락을 치켜서 로버트 도나트에게 보여 줄 때, 피비는 그 보다 먼저 똑같은 시늉을 한다. 걔는 깜깜한 데서 바로 내 얼굴 앞에다 자기의 새끼 손가락을 들이대는 거야. 정말 괜찮은 애야. 그 애를 좋아하게 될 거야. 한 가지 문제는, 가끔씩 좀 감정이 넘친다는 것이다. 어린애치고는 정말 감정이 풍부하거든. 걔는 정말 그렇다니까. 걔가 또 뭘 하냐 하면, 걔는 언제나 책을 쓰고 있어. 근데, 그 책을 완성한 적은 없어. 무슨 책이냐 하면 헤이즐 웨더필드라는 어떤 꼬마애에 대한 이야기야 ― 뭐 피비는 ‘헤즐’이라고 쓰지만. 헤이즐 웨더필드란 여자 애는 꼬마 탐정이지. 걔는 고아인 것 같은데, 항상 아버지가 나타난다. 그 애의 아버지는 언제나 ‘스물 다섯 살 정도 나이에 키가 크고 멋있는 신사’지. 정말 웃긴다니까. 피비 계집애 말이다. 하늘에 맹세코, 걔를 좋아하게 될 거야. 걔는 아주 조그만 어린애였을 때도 똑똑했다. 피비가 아주 어린애였을 때, 앨리와 나는, 특히 일요일에, 걔를 데리고 공원에 가곤 했다. 앨리는 돛배를 가지고 있었는데, 일요일에는 그걸 가지고 빈둥거리며 놀기를 좋아해서 우리는 피비를 같이 데리고 다녔다. 피비는 하얀 장갑을 끼고, 마치 무슨 귀부인이니 뭐니처럼 우리 사이로 똑바로 걸어 오곤 하였다. 그리고 앨리와 내가 일반적인 일을 가지고 얘기를 하고 있을 땐, 피비 계집애는 듣고만 있었다. 가끔 그 애가 옆에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곤 하는데, 그건 걔가 너무 어린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걔는 자기의 존재를 알리기도 한다. 줄곧 얘기에 끼어드는 것이다. 앨리나 나를 밀거나 그러지 않으면 ‘누가? 누가 그런 말을 했어? 바비야 아니면 그 아줌마야?’ 하고 참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누가 그랬다고 말해 주면 걔는 ‘아,’ 하고는 다시 귀를 기울이거나 그러는 것이다. 앨리도 걔한텐 졌다. 내 말은, 앨리도 걔를 좋아했다는 말이야. 그 애는 이제 열 살이고 그 전처럼 그렇게 어리지는 안다.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을 깜빡 죽게 만든다 ― 어쨋든 쎈스가 있는 사람들은 그렇다는 말이다.
어쨌든, 걔는 언제든지 전화로 얘기하고 싶은 그런 애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이 전화를 받을까 봐 그게 걱정이었다. 그러면 내가 뉴욬에 있다는 것과 내가 펜시에서 쫓겨나니 뭐니 했다는 걸 아시게 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셔츠를 다 입고 준비를 한 다음에, 아래가 궁금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갔다.
로비에는, 갈봇집 주인같이 생긴 놈들과 창녀같이 생긴 금발 머리 여자 몇몇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라벤더 룸에서 밴드가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사람들이 북적이지는 않았는데 놈들은 뒤쪽에 있는 지저분한 테이블을 나에게 주었다. 헤드 웨이터 낯짝에다 일 딸라 짜리 한 장을 흔들걸 그랬다. 정말이지, 뉴욬에선 돈이 정말 효과가 있다니까 ― 이건 농담이 아냐.
밴드는 너저분했다. 버디 싱거 밴드였다. 겉만 번지르르했다. 멋지게 번지르르한 게 아니고 촌스럽게 번지르르했다. 그리고 거기엔 내 나이 정도 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사실은, 하나도 없었다. 대걔 나이가 들고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옷을 입은 사람들로, 하나씩 짝을 데리고 있었다. 내 바로 옆의 테이블만 빼놓고는. 내 바로 옆 테이블에는 서른 정도 되는 여자 셋이 앉아 있었다. 세 명 모두 하나같이 못생겼는데, 뉴욬에 사는 사람이라면 쓰지 않는 그런 모자를 전부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 한 명은 금발인데 썩 나쁘지 않았다. 그 금발 여자는 좀 귀엽기도 해서 내가 추파를 좀 던지기 시작하는데 웨이터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나는 스카치와 소다를 섞지 말고 가져오라고 말했다 ― 나는 재빨리 주문을 하였는데, 그건 좀 더듬거리면 스물 한 살 아래인 줄 알아차리고 독한 술은 팔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좀 있었다. ‘실례지만, ’ 하고 하고 그가 말했다. ‘나이를 증명할 수 있는 게 뭐 있습니까? 운전 면허증 혹시?’
나는, 그가 나를 무지하게 모욕했다는 듯이 그를 매우 날카롭게 째려보고 물었다, ‘내가 스물 한 살이 안된 걸로 보이시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나름대로 ―’
‘알았어요, 알았어요,’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이제 다 틀렸다고 생각했다. ‘콜라 갖다 줘요.’ 그가 가려고 하자 나는 그를 다시 불렀다. ‘거기다 럼이니 뭐니를 좀 넣어 줄 수 없어요?’ 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나는 매우 점잖은 태도로 물었다. ‘이렇게 촌스러운 데선 그냥 냉랭하게 맨 정신으로 있지 못해서 그래요. 거기다 럼이니 뭐니를 좀 넣어 줄 수 없어요?’
‘정말 죄송하지만...’ 하고 말하고는 그는 그냥 가 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만일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다 걸리면 그들은 일자리를 잃는 것이다. 나는, 제기랄, 미성년자인 것이다.
나는 옆 테이블에 있는 마귀 할멈 같은 세 여자에게 다시 눈짓을 보내기 시작했다. 사실은, 금발 머리말이다. 다른 두 여자는, 정확하게 말하면 굶주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그 여자한테만 보내지는 않았다. 나는 그냥 세 여자 모두한테 아주 냉정한 눈길을 건냈다. 하지만 그들이 뭘 했냐 하면 말야, 내가 그런 짓을 하자, 세명이 모두 천치처럼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마, 내가 그런 짓을 하기엔 너무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정말 짜증나게 하는 일이다 ― 누가 보면, 내가 뭐 자기들하고 결혼이니 뭐니를 하고 싶은 걸로 생각하는 줄 알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킥킥거리는 걸 보니까, 그런 짓을 한 게 후회됐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춤을 추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가끔가다 춤추는 걸 좋아한다. 정말 일생에 한번쯤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그들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말했다, ‘누가 나하고 춤추지 않을래요?’ 나는 무례하니 뭐니하게 말하지 않았다. 사실, 아주 점잖게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제기랄, 그들은 그것도 역시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아까보다 더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농담이 아냐, 정말 천치들이라니까. ‘자.’ 하고 하고 나는 말했다. ‘한번에 한 사람씩 춤출께요. 좋아요? 어때요? 어서요!’ 나는 정말로 춤을 추고 싶었다.
마침내, 금발 머리가 나하고 춤을 추자고 일어섰다. 왜냐 하면 말야, 내가 정말은 자기한테 말을 거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말야. 그래서 우리는 춤을 추러 플로어로 걸어나갔다. 우리가 나가는 걸 보고, 다른 두 천치들은 거의 히스테리를 일으켰다. 그 여자들하고 상대했다간 난 정말 애 좀 먹었을 거야.
하지만 그건 쓸데없는 짓은 아니었다. 금발 머리는 꽤 춤을 잘 추었다. 그 여자는, 내가 같이 춤 춰 본 여자들중에 제일 잘 추는 급에 속했다. 이건 농담이 아닌데, 멍청한 계집애들 중에선 춤출 땐 정말 끝내주는 애들이 있다니까. 여기 정말로 스마트한 계집애가 있다고 하자, 그럼 걔네들은 플로어에서 남자를 리드하는 시늉이나 좀 하지 않으면 춤 솜씨가 정말 형편없거든. 그래서 걔네들하고는, 기껏해야 테이블에 앉아서 그저 술에 취하는 것밖엔 할 일이 없다.
‘정말 춤출 줄 아는데요,’ 하고 내가 금발 머리한테 말했다. ‘프로 같은데요. 정말이예요. 한번 프로하구 춤춘 적이 있었는데, 당신은 그 여자보다 두 배는 더 잘 추는데. 마르코와 미란다라구 들어 본 적 있어요?’
‘뭐라구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그 여자는 내 말을 듣고 있지도 않았다. 그 여자는 줄곧 주위를 돌아다 보고 있었다.
‘마르코와 미란다라구 들어 본 적 있냐구요?’
‘몰라요. 네. 몰라요.’
‘뭐, 댄서들이죠, 그 여잔 댄서예요. 하지만 뭐 그렇게 열광적으로 추진 않아요. 무슨 춤이든 다 추지요 근데 그렇게 광적으로 추는 건 아네요. 어떤 여자가 진짜 춤을 잘 추는 건지 알아요?’
‘뭐라 그랬어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그 여자는 또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 여자의 마음은 그 안을 헤매고 있었다.
‘어떤 여자가 진짜 춤을 잘 추는 건지 아냐구요?’
‘글쎄-’
‘내 손이 당신 등에 가 있다고 해요. 그 때, 내 손 아래로 아무 것두 없다고 생각한다면 ― 엉덩이두 없구, 다리두 없구, 발두 없구 아무 것두 없다구 생각하면, 그 때 그 여자는 정말로 춤을 잘 추는 거에요.’
하지만 그 여자는 듣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잠시 그 여자를 무시했다. 우리는 그냥 춤만 췄다. 버디 싱거와 그의 너저분한 밴드는 ‘옛날이여 다시 한번’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그들조차 그 노래를 완전히 망쳐놓지는 못했다. 그건 굉장한 노래거든. 나는 춤추는 동안, 무슨 기교같은 건 부리지 않았다 ― 나는 플로어에서 온갖 기교를 늘어 놓는 그런 놈들을 싫어한다 ― 하지만 나는 그 여자를 충분히 리드해 나갔고 그 여자도 거기 응했다. 웃기는 건, 그 여자도 춤추는 걸 즐기고 있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그 여자가 저 아주 멍청한 말을 불쑥 입밖에 내는 것이다. ‘나하구 친구들하고 어제 밤에 피터 로르를 봤어요,’ 하고 그 여자는 말했다. ‘영화 배우 말에요. 직접이요. 신문 사고 있는 걸요. 아주 귀엽던데요.’
‘운이 좋네요,’ 하고 내가 말했다. ‘정말 운이 좋은 거에요. 그거 알아요?’ 그 여자는 정말 천치였다. 하지만 춤은 기막히게 췄다. 나는 정말 그 여자의 멍청한 이마에다 입을 맞추고 싶었다 ― 알지 ― 거기 말야. 내가 입을 맞추자 그 여자는 바락 화를 냈다.
‘이봐요! 뭘 하려는 거예요?’
‘아무 것두 아녜요. 그냥 그런 거예요. 당신은 정말 춤을 잘 춰요,’ 하고 내가 말했다. ‘나한테 여동생이 있는데, 이제 겨우 4학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당신은 걔만큼 잘 춰요, 걔는 세상 누구보다도 춤을 잘 추지요.’
‘말 조심해요, 괜찮다면.’
정말이지, 대단한 귀부인 아냐? 제기랄, 여왕이라니까.
‘어디서들 살아요?’ 하고 나는 그 여자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그 여자는 저 피터 로르가 나타나지 않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정신이 팔린 것 같았다.
‘어디서들 살아요?’ 하고 나는 그 여자에게 다시 물었다.
‘뭐라구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어디서들 살아요? 대답하기 싫으면 말아요. 귀찮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시애틀, 워싱턴,’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그 여자는 나한테 커다란 은혜나 베풀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신은 참 애기를 잘 하네요,’ 하고 나는 그 여자에게 말했다. ‘그거 알아요?’
‘뭐라구요?’
나는 그만 집어치우고 말았다. 어쨋든 그 여자는 그런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빠른 음악이 나오면 좀 빠르게 추지 않을래요? 촌스럽게 추거나 뛰거나 그런 거 말구 ― 그냥 멋지구 쉽게 추는 거 말예요. 빠른 음악이 나오면 전부들 자리에 가 앉을 거예요, 저 노인네들 하구 뚱뚱한 사람들만 뺴곤, 그러면 우리가 넓게 쓸 수 있을 거니까. 좋아요?’
‘나는 그런 거 싫어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이봐요 ― 그런데 몇 살이에요?’
왜 그런지 그런 질문엔 짜증이 났다. ‘오, 정말. 분위기 좀 망치지 말아요,’ 하고 내가 말했다. ‘난 열 두 살이에요, 제기랄. 내 나이에 비해 몸이 좀 크죠.’
‘이봐요. 내가 말했죠? 난 그런 투로 말하는 거 좋아하지 않는다구,’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계속 그런 식으로 말하려면, 난 친구들 자리로 갈 거예요, 알죠?’
나는 미친 사람처럼 사과했다. 왜냐하면 밴드가 빠른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나하고 빠른 춤을 추기 시작했다 ― 하지만 촌스럽지 않고, 멋있고 쉽게 추었다. 그 여자는 정말 춤을 잘 추었다. 그냥 그 여자를 붙잡고만 있으면 되었다. 그리고 그 여자가 회전할 때는, 조그맣고 예쁜 엉덩이가 씰룩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난 그 여자한테 완전히 녹았다. 정말이야. 우리가 자리에 앉을 때쯤 되서 나는 그 여자에게 반쯤은 빠져 있었다. 여자들이란 그렇다. 여자들이 무슨 예쁜 짓을 하면, 별로 볼 게 없는 여자나 좀 멍청한 여자라도 반쯤은 빠진다. 그렇게 되면 거의 정신을 못 차리게 되는 것이다. 여자들이란. 젠장. 그들은 남자를 얼빠지게 할 수 있다. 정말 그렇다니까.
그들은 나보고 자리에 앉으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 아마 너무 무식해서 그랬겠지만 ― 하지만 나는 그들 자리에 앉았다. 내가 같이 춤춘 여자는 이름이 버니스 뭐 ― 크랩슨지 크렙슨지 했다. 못생긴 두 여자는 마티하고 래번이었다. 나는 그냥 아무렇게나, 이름이 짐 스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들을 좀 지적인 대화로 유도하려고 했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려면 손목을 비틀어야 할거다. 셋중에 누가 제일 멍청한 지 가려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무슨 영화배우 같은 놈들이라도 한 떼거리가 금방 들어오기나 할 것처럼, 세 명 다 하나같이 그 놈의 홀 안을 계속해서 두리번거렸다. 그들은 아마도, 자기들이 뉴욬에 왔을 때, 스톸 클럽이니 엘 모로코니 그런 데가 아니고 라벤더 룸에는 항상 영화배우들이 죽치고 있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쨋든, 그들이 시애틀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뭐 그런 걸 알아내는데 삼십 분은 걸렸다. 그들은 모두 같은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들한테 자기 일이 마음에 드냐고 물어 보았다. 하지만 그런 멍청이들한테서 어떤 지적인 대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 나는 못생긴 두 여자, 마티와 래번말이다, 그들이 자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그러냐고 물어 보니까 그들은 대단한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둘다, 자기들이 닮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게 분명했는데, 그렇다고 그들이 잘못이라고 탓할 수도 없었다. 어쨋든 그건 아주 재미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들 모두 ― 세 명 다 말이다 ― 하고 한번에 하나씩 춤을 다 추었다. 못생긴 한 여자, 레번 말야, 그 여자는 과히 못 추지 않았다. 그런데, 저 마티 년은 마치 자유의 여신상을 바닥에 끌고 다니는 것 같았다. 내가 그 여자를 끌고 다니면서 반쯤이라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게리 쿠퍼, 영화배우 말야, 그를 금방 플로어 저쪽에서 봤다고 말해 주었다.
‘어디요?’ 하고 그 여자가 나에게 물었다 ― 더럽게 흥분해서 말야. ‘어디에요?’
‘오, 금방 놓쳤어요. 금방 나갔는데. 내가 말할 때 보지 않구서.’
그 여자는 사실 이제 춤을 딱 멈추고, 그를 찾기 위해서 이리저리 사람들의 머리 너머로 둘러보기 시작했다. ‘오, 제기랄!’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내 거짓말 때문에 그 여자는 거의 상심할 지경이었다 ― 정말 그랬어. 난 그 여자를 놀린 게 정말 미안했다. 어떤 사람들은 놀리면 못쓴다, 놀려 줄 만한 사람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건 정말 재미있는 일이었다. 우리가 다시 테이블로 돌아오자, 마티 년은 다른 두 여자들에게 게리 쿠퍼가 방금 나갔다고 말했다. 정말이지, 레번과 버니스 년은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거의 자살이라도 할 지경이었다.
그들은 완전히 흥분해서 마티에게 정말 그를 봤느니 뭐니 하고 물었다. 마티 년은 그저 그를 흘깃 보았다고 말했다. 거기엔 완전히 졌다.
바가 끝날 시간이 다 되어서, 나는 문 닫기 전에 그들에게 두 잔씩을 사 주고 나는 콜라 두 잔을 시켰다. 망할 놈의 테이블은 유리잔들로 너저분했다. 내가 콜라만 마신다고 저 못생긴 레번은 나를 계속 놀렸다. 그 년은 정말 대단한 유머 감각을 갖고 있었다. 그 년과 마티 년은 탐 콜린스를 마셨다 ―12월 중순인데 말야, 제기랄. 그들은 그 이상은 모르니까. 금발 머리는, 버니스 년 말야, 버번과 물을 마셨다. 그 년도 게걸스럽게 마셔 대기는 마찬가지였다. 셋 다 영화배우들을 찾느라고 내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들은 거의 말도 하지 않았다 ― 자기들끼리도 말야. 마티 년은 다른 둘보다 말이 더 많았다. 그 년은, 화장실을 ‘꼬마 계집애들의 방’이라 부르는 식의, 저 촌스럽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얘기들을 계속 늘어놓았는데, 버디 싱거의 저 늙은 클라리넷 연주가가 일어나서 몇 차례 별 볼일 없는 소절을 연주할 땐 굉장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 년은 그의 클라리넷을 ‘감초 막대기’라고 불렀다. 정말 촌스럽지 않아? 또 다른 못생긴 년은, 레번 말이다, 자기가 꽤 재치가 있는 여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우리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오늘밤엔 뭘 하고 계시는지 물어 보라고 계속 조르는 것이다. 그 년은 우리 아버지가 데이트를 하고 있는지 아닌지 하고 계속 물었다. 그런 걸 네 번은 물어 보았을 것이다. 정말 재치 있는 여자 아냐? 금발의 저 버니스 년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뭘 물어 볼 때마다, ‘뭐라구요?’ 하고 묻는 것이다. 그런 것도 몇 번하고 나면 짜증난다니까.
갑자기, 그들은 마실 것을 다 마시자 모두 일어나더니, 자러 가야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래디오 씨티 뮤직 홀에서 첫 번째 쇼를 보려면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을 잠시 거기에 붙잡아 두려고 했지만 그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잘 가라니 뭐니 하고 작별을 했다. 나는 만일 씨애틀에 가게 되면 그들을 찾아보겠다고 말했지만, 내가 그럴 지는 나도 의심이 든다. 그들을 찾아본다는 것말이다.
담배니 뭐니 해서 계산은 거의 십삼 딸라 정도 나왔다. 내가 오기 전에 자기들이 마신 건 자기들이 내겠다고 적어도 말은 해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 물론 난 그들이 그런 말을 했어도 내가 계산했을 것이지만, 그들은 적어도 그렇게 말은 해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별로 걔의치 않았다. 그들은 너무나 무식했고, 또 저 초라한 장식 모자니 뭐니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래디오 씨티 뮤직 홀에서 첫 번째 쇼를 보러 일찍 일어난다는 얘기가 내 기분을 우울하게 했다. 만일 누가 말이다, 예를 들어, 괴상하게 생긴 모자를 쓴 어떤 계집애가 워싱턴의 씨애틀에서, 제기랄, 뉴욬까지 내내 달려 온 목적이 저 래디오 씨티 뮤직 홀의 빌어먹을 첫 번째 쇼를 보러 아침 일찍 일어나기 위한 것뿐이라면, 그건 참을 수 없을 만큼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일이다. 만일 그들이 나한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세 명 모두에게 백 잔씩 사 주었을 것이다.
그들이 나가고 나서 얼마 안 있어, 나는 라벤더 홀을 나왔다. 어쪳든 문을 닫고 있었고 밴드는 벌써 떠나고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 곳은, 같이 춤출 사람이 없거나, 웨이터가 콜라가 아니라 진짜 술을 마시게 하지 않는다면 죽치고 있기에는 너무 끔찍한 곳이다. 이 세상에는, 적어도 술을 마시고 취하지 않는다면,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나이트 클럽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아니면, 정말 굉장한 어떤 계집애와 같이 있지 않다면 말야.
제 11장
갑자기, 로비로 나오는 중에, 다시 제인 계집애 생각이 났다. 걔 생각이 나자,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로비에 있는 게우고 싶어지는 의자에 앉아서 그 계집애와 스트래드레이터가 저 에드 뱅키 새끼의 차 안에 앉아 있는 생각을 하였다. 스트래드레이터 놈이 그 계집애한테 주지는 않았을 거라고 확신이 가긴 했지만 ― 나는 제인 계집애를 잘 알고 있으니까 ― 그래도 그 계집애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정말 그랬던 것이다. 내 말은, 걔가 체스 외에도 온갖 운동을 좋아해서 내가 걔를 알고 지낸 뒤에도 우리는 여름 내내 오전에는 테니스를 하고 오후에는 골프를 치고 지냈다는 말이다. 나는 정말로 그 계집애를 가까이 알았었다. 내 말은, 뭐 육체적이니 뭐니 하는 게 아니라 ― 그건 아니었다 ― 우리가 항상 서로 만났다는 것이다. 계집애를 알기 위해서 반드시 성적인 관계를 가질 필요는 없다.
내가 그 계집애를 어떻게 알았냐 하면, 걔는 우리 집 잔디에 와서 쉴 때 저 도베르만 핀셔를 데리고 오곤 했는데, 우리 엄마는 그 개를 무척 싫어했다. 엄마는 제인의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서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우리 엄마는 그런 일로 아주 대판 소동을 벌일 수 있는 그런 분이거든. 그래서 어떻게 됐냐 하면, 이삼일 뒤에 클럽의 수영장 옆에서 제인이 엎드려 있는 걸 보고 내가 인사를 했다. 걔가 우리 옆집에 사는 것은 알았지만 전에 한번도 얘기니 뭐니를 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그 날 인사를 하자 그 계집애는 얼굴을 있는 대로 찌푸리더군. 나는 걔한테, 개를 어디서 쉬게 하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듣게 하는데 얼마나 시간을 들였는지 모른다. 개가 우리 집 거실에 들어와서 쉰다 해도 난 전혀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쨋든, 그 후로는 제인과 나는 친구니 뭐니가 되었다. 나는 그날 오후에 그 계집애와 골프를 쳤다. 내가 기억하기론, 걔가 여덟 걔를 못 쳤다. 여덟 개나 말야. 나는, 걔가 공을 칠 때 어떻게 하는지 조금 가르쳐 주는데도 엄청나게 힘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걔의 골프 실력을 엄청나게 높여 주었다. 나는 골프엔 꽤 일가견이 있거든. 내가 얼마나 마음을 빨리 바꾸는지 애기해 주면, 아마 믿지 않을 걸. 나는 일생에 거의 한번인가 단편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꿨다. 나는, 나만큼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내가 출연하는 영화를 보러 오게 한다면 그건 사기라고 생각한 거다.
걔는 재미있는 애였다. 제인 계집애 말야. 엄밀하게 말해서 걔는 예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난 그 계집애한테 반했다. 걔는 좀 말이 많았다. 내 말은, 걔가 얘기하다가 뭔가에 흥분하면, 입이 마구 씰룩거린다는 것이다. 입술이니 뭐니가 다 말야. 거기엔 졌지. 그리고 걔는 입을 내내 다물고 있는 법이 없었어, 입말이야. 입이 항상 조금은 열려 있었어, 특히 골프 공을 칠 때하구 책을 읽고 있을 땐 그랬다. 걔는 항상 책을 읽고 있었는데, 아주 좋은 책을 읽었다. 걔는 시니 뭐니를 많이 읽었다. 걔는, 우리 식구말구 내가 앨리의 야구 글러브를 보여 준 유일한 애였다, 거기에 쓴 시들 하구 같이 말이다. 걔는 앨리를 만나거나 뭐나 한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걔가 메인에서 여름을 보낸 건 그 때가 처음이었으니까 ― 그 전에는 케이프 코드로 갔었다 ― 하지만 내가 앨리 얘기는 무지 많이 해 주었다. 걔는 그런 따위의 일에 관심을 가지거든.
엄마는 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 말은, 제인이나 걔네 엄마가 우리 엄마한테 인사하지 않으면 엄마는 자기를 무시하는 걸로 생각했다는 말이다. 제인이 자기 엄마하고 저 라쌀 컨버터블을 타고 시장에 자주 다녔기 때문에 엄마는 그들을 읍내에서 많이 보았거든. 엄마는 제인이 예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제인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나는 제인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렇다는 것이다.
어느 날 오후가 생각난다. 그건 제인 계집애 하구 내가 생전 처음으로 키쓰까지 할 뻔한 때였다. 토요일이었는데, 밖에는 비가 무지하게 많이 오고 있었다. 나는 제인 네 집에 가서 같이 현관에 나와 있었다 ― 걔네 집엔 철망이 달린 커다란 현관이 있었다. 우리는 체스를 하고 있었다. 나는, 걔가 왕들을 뒷줄에서 앞으로 내 놓으려고 하지 않아서 가끔 놀려 주곤 했었다. 하지만 뭐 심하게 놀리진 않았다. 제인은 심하게 놀려 주고 싶은 애는 아니었다. 기회가 생겨서 계집애를 놀려 줄 수 있을 때 제일 놀려 주고 싶지만 그건 웃기는 일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집애들은 별로 놀려 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그런 애들이다. 가끔, 계집애들은 놀림 당하는 걸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 사실 그렇다는 걸 나는 안다 ― 꽤 오래 사귄 상태에서 한번도 놀려 본 적이 없다면 그런 걸 시작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어쨋든, 우리가 거의 키쓰까지 할 뻔한 저 오후 얘기를 하자. 비가 무지하게 내리고 있고 우리가 현관에 나와 있는데, 갑자기 걔네 엄마하고 결혼한 저 주정뱅이가 현관에 나오더니 집에 담배 없냐고 제인한테 묻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을 잘 알거나 하지는 않지만, 자기가 뭐 필요한 게 없으면 별로 얘기를 하지 않는 그런 사람같이 생겼었다. 그는 성격이 너저분했거든. 어쨋든, 제인은 그가 담배가 어디 있냐고 묻는데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작자가 다시 물었는데 제인은 여전히 대꾸하지 않았다. 걔는 체스 판에서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결국 그 작자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내가,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걔는 나한테도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걔는 다음에 어떤 말을 움직일까를 생각하느라고 몰두한 체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체스 판에 눈물이 떨어졌다. 빨간 사각형 안에 ― 정말이지, 지금도 그게 눈에 선하다. 걔는 다만 체스 판을 손가락으로 문질러서 닦았다. 왜 그런 지 모르지만 말할 수 없이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뭘 했냐 하면, 난 제인 쪽으로 건너가서, 제인을 흔들의자에서 옆으로 조금 옮겨 앉게 한 다음 내가 그 옆에 앉았다. 사실 난 거의 무릎에 앉은 거나 다름이 없었다. 이윽고 걔는 정말로 울기 시작했는데, 내가 다음에 기억나는 것은, 내가 걔의 얼굴에 온통 키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어디나 ― 눈, 코, 이마, 눈썹이니 뭐니 그리고 귀에도 ― 입이니 뭐니만 빼곤 얼굴 전체에 말이다. 그 계집에는 내가 입에다 키쓰하는 건 허락하지 않았다. 어쨋든, 그 때가 우리가 키쓰까지 제일 가까이 갔던 때였다. 잠시 후에 걔는 일어나서 안으로 들어가더니 하얗고 빨간 무늬의 스웨터를 입고 나왔다, 난 그 모습에 완전히 반했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를 보러 갔다. 나는, 오는 길에, 커다히씨 ― 그게 주정뱅이의 이름이었다 ― 가 걔한테 무슨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한 적이 있냐고 물어 보았다. 제인은 아주 예쁘고 또 몸매도 굉장했기 때문에 저 커다히같은 놈이 무슨 짓을 할 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걔는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어떤 계집애들은 무슨 일이 있는지 절대 알아내지 못한다.
우리가 끌어안거나 희롱질을 많이 하지 않았다고 해서 걔를 무슨 얼음장같이 찬 계집애로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걔는 그런 계집애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나는 언제나 걔와 손을 잡고 다녔다. 생각해 보면 그런 건 별 건 아니지만, 걔는 손을 잡으면 정말 좋았다. 대부분 계집애들은, 손을 잡으면 아무런 느낌도 없거나 아니면, 남자를 지루하게 하거나 뭐할까 봐, 계속해서 손을 꼼지락거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인은 달랐다. 우리가 제기랄 무슨 영화나 뭘 보러간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는 곧바로 손을 잡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손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자세를 바꾼다거나 손을 가지고 무슨 수작을 하지도 않는다. 제인이라면, 손이 축축한지 아닌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느끼는 감정이란 행복하다는 것밖에 없었다. 정말 그랬다.
금방 또 한가지가 생각난다. 한번은, 영화관에서였는데, 내가 까무라칠 뻔한 일을 제인이 한 것이다. 뉴스 영환지 뭔지가 나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목에 손이 닿는 것을 느껴서 보니까 제인의 손이었다. 그런 짓은 재미있는 짓이기도 했다. 내 말은, 제인은 아직 젊거나 뭐 그랬는데, 대부분 여자들이 손을 누군가의 목에 대는 것을 보면 스물 다섯이나 서른 정도가 아니면, 대걔 자기 남편이나 애들한테 그런다는 것이다 ― 예를 들면, 난 누이동생 피비한테 가끔 그렇게 한다. 하지만 아직 젊거나 뭐 한 계집애가 그런다면, 정말 예쁘고 거의 녹아난다니까.
어쨋든, 나는 로비의 그 게울 것같은 의자에 앉아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인 계집애. 나는 제인이 저 에드 뱅키 새끼의 차에서 스트래드레이터와 데이트한 생각을 할 때마다, 거의 돌아버릴 것 같았다. 나는 제인이 그 놈에게 그 짓을 못하게 했을 건 알고 있었지만, 어쨋든,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난 그딴 얘기는 하고 싶지도 않다.
이제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 창녀같이 생긴 금발머리들도 어디로 가 버리고 없었다, 그 때 갑자기 나는 거기서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우울했던 것이다. 나는 피곤하거나 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 방으로 올라가서 오바를 입었다. 나는 또 저 변태 새끼들이 아직도 그런 짓을 하는지 창밖을 내다 보았는데, 불이니 뭐니가 전부 꺼져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서 택시를 잡아 타서 운전사한테 어니의 가게로 가자고 말했다. 어니의 가게는, 내 형 D.B.가 헐리웃에 나가서 창녀같은 글을 쓰기 전에 자주 다니던,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나이트 클럽이다. 그는 가끔 나를 데리고 가곤 했었다. 어니는 피아노를 치는 몸집이 거대한 뚱보 유색인종이다. 그 작자는 대단한 속물이어서 대단한 사람이나 유명인사나 뭐가 아니면 거의 말을 거는 법이 없다, 하지만 피아노는 제법 칠 줄 안다. 사실은, 너무 잘 쳐서 촌스러운 느낌이 든다. 내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어쨋든 그런 뜻이다. 나는 정말로 그 작자가 피아노치는 걸 듣기 좋아한다, 하지만 어떤 때는 그 작자의 빌어먹을 피아노를 엎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내 생각엔, 그 작자가 피아노를 칠 때, 나는 당신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면 당신과 상대하지 않겠어 하고 으스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인 것같다.
제 12장
내가 탄 택시는 정말 낡은 것이었는데, 누가 과자를 금방 토한 것같은 냄새가 났다. 나는 밤늦게 어디 갈 땐, 항상 그 놈의 토한 냄새가 나는 택시를 타게 된다. 더 나쁜 것은, 토요일 밤이었는데도 밖이 너무 조용하고 적막했다. 거리엔 거의 한 사람도 없었다. 가끔 남자와 여자가 서로 팔을 허리니 뭐니에 끼고 거리를 건너가거나, 한 떼거리의 건달 같은 놈들과 그들의 여자들이 하나도 우습지 않을 것같은 걸 보고 하이에나처럼 웃는 것이 보일 뿐이었다. 누군가 밤늦게 거리에서 웃을 때 뉴욬은 끔찍하다. 수마일이나 떨어져 있어도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외롭고 우울해지는 것이다. 나는, 집에 가서 피비와 잠시 허튼 소리나 나누었으면 하는 마음 뿐이었다. 하지만 결국, 어느 정도 가다가, 택시 운전사와 나는 대화를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호로비츠였다. 그는 먼저 탔던 운전사보다는 훨씬 좋은 사람이었다. 어쨋든, 나는 그가 오리들에 대해서 알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봐요, 호로비츠,’ 하고 내가 말했다. ‘쎈트랄 파크에 있는 호수를 지나간 적 있어요? 쏀트랄 파크 남쪽 아래 말예요?’
‘뭐라구요?’
‘호수 말예요. 작은 호수요, 거기 있는. 오리들이 있는 호수 있잖아요.’
‘그래요, 그게 어쨌는데?’
‘그럼, 거기서 헤엄치고 다니는 오리들 알아요?’ 봄이나 언제나 말예요? 혹시, 그 놈들이 겨울엔 어디로 가는지 알아요?‘
‘누가 어디로 간대요?’
‘오리들이요. 혹시, 알아요? 내 말은, 누군가 트럭이니 뭐니를 타고 와서 그 놈들을 데리고 간다든지, 아니면 자기들이 남쪽이니 어디로 날아 가냐 하는 가 말예요?’
호로비츠는 고개를 홱 돌리더니 나를 보았다. 그는 매우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도대체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소?’ 하고 그가 말했다. ‘도대체 내가 그따위 바보 같은 일을 어떻게 알아요?
‘뭐, 화내지 말아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는 화났거나 뭐 그런 것 같았다.
‘누가 화를 내요? 아무도 화내지 않았어요.’
그가 그런 일에 대해 그렇게 민감하게 나온다면, 나는 그와 얘기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가 얘기를 시작했다. 그가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고기는 아무 데로두 안 가요. 그저 거기 있지, 고기 말예요. 바로 그 놈의 호수에 말요.’
‘고기는 ― 다르지요. 고기는 달라요. 난 오리 얘길 하는 거예요.’ 하고 내가 말했다.
‘뭐가 다른데요? 다를 건 아무 것두 없어요,’ 하고 호로비츠가 말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그는 뭔가에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겨울이니 뭐니엔 오리보다는 고기한테 더 어려운 거요, 제기랄. 생각해 봐요, 체.’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내가 말했다. ‘좋아요. 그 놈들은 뭘하지요, 고기니 하는 것들 말예요, 호수가 전부 꽁꽁 얼어붙어서 사람들이 그 위에서 스케이트니 뭐니를 타면 말예요?’
호로비츠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요, 그 놈들이 뭘하다니?’ 그는 나한테 소리를 질러 댔다. ‘자기들 있는 데 그냥 있는 거지 뭐, 제기랄.’
‘얼음이 있는데 어떻게 해요? 얼음을 무시할 순 없어요.’
‘누가 그걸 무시한대요? 아무도 그걸 무시하는 사람은 없어요!’ 하고 호로비츠가 말했다. 그는 굉장히 흥분해 있어서, 나는 그가 가로등이나 뭐나에 차를 부딪칠까 봐 겁이 났다. ‘그 놈들은 바로 그 놈의 얼음 속에서 사는 거요. 그게 그들의 본성이니까, 제기랄. 그 놈들은 겨울 내내 바로 한 자리에서 꽁꽁 얼어붙어 있는 거요.’
‘그래요? 그럼 뭘 먹어요? 내 말은, 그 놈들이 꽁꽁 얼어붙어 있으면 먹이니 뭐니를 찾으러 헤엄쳐 다니지 못할 게 아니냐 말예요.’
‘그 놈들 몸이 있잖소, 체 ― 그게 형씨와 무슨 상관이 있단 거요? 그 놈들 몸이 영양이니 뭐니를 빨아들이는 거지, 무슨 해초니 얼음 속에 있는 찌꺼기 같은 걸 통해서 말야. 그 놈들은 구멍을 내내 열어 놓는다구. 그게 그들의 본성이니까, 제기랄. 무슨 말인지 이제 알아요?’ 그가 다시 고개를 홱 돌려서 나를 보았다.
‘오,’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얘기를 중단했다. 나는 그가 그 놈의 택시를 어디다 부딪칠까 봐 겁이 났다. 게다가, 그는 정말 성마른 사람이어서 그하고는 무슨 얘기를 나누는 게 즐겁지 않았던 것이다. ‘어디 차를 세우고 뭘 한잔 마실래요?’ 하고 내가 말했다.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물어 보았다.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아주 재미있고 뭐 그랬단 말이다.
‘난 무슨 술 같은 걸 마실 시간이 없는데,’ 하고 그가 말했다. ‘그런데, 대체 나이가 몇이요? 왜 집에 가서 잠자지 않는 거요?’
‘피곤하지 않아서 그래요.’
내가 어니의 가게 앞에서 차를 내려서 차비를 낼 때, 호로비츠는 다시 그 고기 얘기를 꺼냈다. 그는 분명히 그 얘기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들어 봐요,’ 하고 그가 말했다. ‘만일 형씨가 고기라면, 어머니 자연이 형씨를 보살펴 주는 거요, 그렇지 않겠소? 그래요? 겨울이 되도 그 놈 고기들이 죽는다구 생각하지 않겠지, 이젠?’
‘알았어요, 근데 ―’
‘그렇다니까, 그 놈들은 죽지 않아,’ 하고 말하고는 호로비츠는 미치광이처럼 차를 몰고 가버렸다. 그는 아마 내가 만난 중에서 제일 성질 급한 사람이었다. 무슨 얘기든지 화를 낸다니까.
늦은 시간이었지만 어니의 가게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대부분 예비 학교와 대학에 다니는 애송이들이었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학교는 내가 다니는 학교보다 크리쓰마스 휴가를 일찍 시작한다. 오바를 보관할 수 없을 정도로 북적이고 있었다. 하지만, 어니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조용했다. 그가 피아노 앞에 앉으면, 제기랄 무슨 엄숙한 분위기를 잡아야 하는 것처럼 되어 있었다. 아무도 그처럼 잘 치지는 못한다는 듯이 말야. 내 옆에는 세 쌍 정도가 자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가 피아노 치는 것을 한번 보려고 서로 밀치고 발끝으로 서 있었다. 그는 피아노 앞에 커다란 거울을 갖다 놓아서, 자기한테 저 큰 스포트라이트가 비칠 때 모든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그가 연주하는 동안 커다랗고 늙은 얼굴은 보였지만 손가락은 볼 수 없었다. 대단하지 뭔가. 내가 들어갔을 때 그가 연주하는 노래의 제목이 뭔진 잘 몰랐지만, 그게 뭐든 간에 그는 정말 바람 날리고 있었다. 그는 둔해 보이는 손가락을 과장되게 움직이며 높은 음조를 치고 있었는데, 그 밖에도 다른 온갖 기교를 부리는 게 정말 보기 거북하였다. 하지만 그가 연주를 끝냈을 때 사람들을 봤어야 하는데. 그걸 봤더라면 게웠을 거야. 그들은 정신이 나가 있었다. 우습지도 않은 영화를 보면서 하이에나처럼 웃어대는 저 멍청이들하고 똑같았다니까. 나는 신에게 맹새코, 내가 만일 피아노 연주가거나 영화배우 아니면 뭐여서 저 모든 얼간이들이 나를 굉장하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혐오스러울 거야. 나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박수치는 것조차 미워할 거야. 사람들은 늘 얼간이 같은 일에 박수를 보낸다. 내가 피아노 연주가라면, 나는 벽장 속에서 피아노를 칠 것이다. 어쨋든, 그가 연주를 끝내서 모두들 머리가 터져라 하고 박수를 치자, 어니는 의자에 앉은 체로 자세를 돌리고는 저 겸손한 체하는 가식적인 태도로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였다. 마지 자기는 굉장한 피아니스트일 뿐 아니라 지극히 겸손한 사람이라는 듯이 말야. 그건 정말 되먹지 않은 짓이었다 ― 내 말은, 그 작자가 정말 더러운 속물이니 뭐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가 연주를 끝냈을 때 그가 좀 안되어 보이기도 했다. 그가 자기의 연주가 정말 훌륭한 건지 아니지를 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오로지 그의 잘못만은 아니다. 머리가 터져라고 박수를 치는 저 얼간이들한테도 잘못이 있는 것이다 ―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누구나 멍청이로 만들어 놓으니까. 어쨌든 그걸 보니 다시 우울해지고 메스꺼워져서 오바를 다시 찾아서 호텔로 돌아가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 일렀고 혼자 있고 싶지 않아서 그러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냄새나는 테이블을 하나 안내 받았는데, 벽에 딱 붙어 있고 바로 앞에는 기둥이 있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건, 만일 누가 지나가려는데 옆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 그런데 사람들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걔새끼들 ― 의자를 타고 넘어가야 하는 그런 테이블이다. 나는 다이커리 얼은 것을 먼저 시킨 다음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카치와 소다를 시켰다. 어니의 가게에선, 여섯 살 짜리라도 술을 먹을 수 있다, 거긴 너무 어둡거든, 그리고 누가 나이 같은 건 상관하지도 않는다. 거기선 마약을 먹을 수도 있어, 아무도 상관하지 않으니까.
사방에는 애송이들밖에 없었다. 정말이라니까. 내 왼쪽에 있는 작은 테이블에는, 실제로는 내 윗자리지만, 우습게 생긴 사내놈과 우습게 생긴 계집애가 있었다. 그들은 내 나이 정도 아니면 나보다 조금 더 먹어 보였다. 웃기는 애들이었다. 조금 남은 술을 너무 빨리 먹어 없애지 않으려고 꽤나 조심하고 있었다. 나는 달리 할 일이 없어서 그들의 얘기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그 놈은 그 날 오후에 본 어떤 프로 축구 시합 얘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 놈은 시합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자질구레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 거짓말이 아니라니까. 그 놈은 내가 얘기를 들어 본 중에 제일 지루한 놈이었다. 그리고 그 계집애는 그딴 시합에는 관심도 없다는 게 뻔히 보였지만 자기가 그 놈보다 훨씬 더 우습게 생겼기 때문에, 아마 그런 애기를 듣는 체라도 해야 할 것이다. 정말 못생긴 계집애들은 운이 없는 것이다. 가끔은 못생긴 년들이 안됐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가끔 그런 애들을 차마 쳐다보지 못할 때가 있다, 특히 걔네들이 축구시합 얘기를 너저분하게 늘어 놓는 그런 얼간이 같은 놈하고 같이 있을 땐 그렇다. 그런데, 오른쪽에서 나누는 얘기는 더 심했다. 오른쪽에는, 회색 플란넬 양복에다 저 유치한 모양의 테더솔 조끼를 입은 전형적인 모범생같은 놈이 앉아 있었다. 아이비 리그 새끼들은 죄다 비슷하게 생겼다니까. 아버지는 내가 예일이나 프린스턴 같은 데 가기를 바라지만, 난 맹세코, 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다 해도 제기랄, 그런 아이비 리그 대학엔 절대 가지 않을 거야. 어쨋든, 저 모범생 같이 생긴 놈은 근사하게 생긴 계집애와 같이 있었다. 정말이지, 잘 생긴 계집애였다. 하지만 그들이 나누는 얘기를 들었어야 하는데. 먼저, 그들은 둘다 좀 취해 있었다. 그 놈이 뭘 하고 있었냐 하면, 테이블 아래로 계집애의 다리를 더듬으면서, 자기 기숙사에서 아스피린 한 병을 거의 다 먹고 자살하려고 했다는 어떤 놈 얘기를 늘어 놓고 있었다. 계집애는 그 놈한테 계속해서 이러더군, ‘어쩜 그럴 수가..... 하지마. 제발, 그러지 마. 여기선 안 돼.’ 다리를 더듬으면서 동시에 자살을 기도한 놈의 얘기를 하는 걸 상상해 봐! 그 놈들한텐 정말 졌다.
하지만 거기 혼자 앉아 있으려니까 정말 우스꽝스러운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웨이터를 불러서, 어니한테 한잔 하지 않겠냐고 물어보라고 부탁했다. 내가 D.B.의 동생이라는 것을 말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웨이터가 내 말을 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새끼들은 남의 말을 전해주는 법이 절대 없다.
갑자기, 어떤 여자가 나한테 와서 말했다, ‘홀든 코울필드!’ 그 여자의 이름은 릴리안 시몬즈였다. 내 형 D.B.는 한 동안 그 여자와 같이 다닌 적이 있었다. 그 여자는 입이 꽤 거칠었었다.
‘여어,’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려고 했지만 그런 데서는 일어나는 것도 어려웠다. 그 여자 옆에는, 마치 엉덩이를 부지깽이로 찔린 것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해군 장교가 서 있었다.
‘만나서 정말 반가워!’ 하고 릴리안 시몬즈가 말했다. 분명히 마음에도 없는 말이었다. ‘형은 어떻게 지내?’ 그 여자가 알고 싶은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잘 지내고 있어. 지금 할리웃에 가 있지.’
‘할리웃에! 정말 굉장한데! 거기서 뭘 하는데?’
‘잘 몰라. 글을 쓰는가 봐,’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그런 얘길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여자는 그게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 형이 할리웃에 있다는 것 말야. 거의 전부 다 그렇게 생각하지.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소설은 읽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야. 정말 그런 게 화나게 한다니까.
‘정말 대단해.’ 하고 릴리안이 말했다. 그리고는 나를 그 해군 친구한테 소걔했다. 그는 블럽 중령인지 뭔지였다. 그 친구는 누구하고 악수할 때, 손가락을 사십 개정도 부러뜨리지 않으면 계집애 같은 남자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제기랄, 내가 그런 걸 얼마나 싫어하는데. ‘혼자 있는 거야?’ 하고 릴리안은 나한테 물었다. 그 여자는 통로에 서서 길을 완전히 막고 있었다. 그 여자는 길을 막고 있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웨이터는 그 여자가 길을 비켜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여자는 그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웨이터가 그 여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해군 친구도, 자기가 데이트를 하고 있지만 그 여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그 여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떤 면에선, 그 여자에게 동정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같이 온 여자 없어?’ 하고 그 여자는 나에게 물었다. 나는 이제 서 있었지만 그 여자는 나한테 앉으라고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여자는 사람을 몇 시간씩 서 있게 하는 그런 타입이었다. ‘얘 잘 생기지 않았어?’ 하고 그 여자는 그 해군 친구한테 말했다. ‘홀든, 넌 점점 멋있어지는구나.’ 해군 친구는 그 여자한테, 이제 그만하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들이 길을 막고 있다고 그 여자에게 말했다. ‘홀든, 이리 와서 우리하고 같이 어울리자.’ 하고 릴리안이 말했다. ‘너 마실 걸 갖고 와.’
‘난 금방 나가려고 하는 중이었는데,’ 하고 내가 말했다. ‘누굴 만나야 하거든.’ 그 여자가 단지나한테 잘 보이려고 그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면 내가 D.B.한테 그 애길 할 거니까 말야.
‘그래, 요 꼬마야. 좋아. 형 만나면 내가 미워한다고 말해 줘.’
그리고 나서 그 여자는 가 버렸다. 그 해군 친구와 나는, 만나서 반갑다는 말을 주고 받았다. 그런 일엔 졌다니까. 나는 만나서 하나도 반갑지 않은 사람한테도 항상,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고 말한다. 하지만, 살아 있고 싶다면 그런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그 여자한테 누굴 만나야 한다고 말한 이상, 거기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거기 눌러 앉아서 어니가 그래도 좀 점잖은 곡을 연주하는 것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릴리안 시몬즈와 그 해군 친구하고 같이 앉아서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거기서 나왔다. 하지만 오바를 다시 찾을 때는 정말 화가 났다. 사람들은 항상 일을 망쳐 놓는다니까.
제 13장
나는 호텔까지 내내 걸어서 돌아왔다. 마흔 한 걔나 되는 블록을 말야. 내가 걷거나 뭐나 하는 걸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또 택시를 타고 내리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게 가끔 싫증이 나는 것처럼, 택시를 타는 것도 싫증이 날 때가 있다. 그러면 아무리 멀거나 높아도 걸어가야 한다. 내가 아주 어린애였을 때, 나는 우리 아파트 층까지 자주 걸어서 올라가곤 했다. 12층이나 되는 높이였다.
눈이 왔던가 하는 것도 모를 뻔했다. 보도에는 이제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워서 나는 주머니에서 빨간색 사냥 모자를 꺼내어 썼다 ― 나는 내 모습이 어떨까 하는 건 하나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나는 귀마걔까지 내려 덮었다. 손이 꽁꽁 얼어붙어서, 펜시에서 누가 내 장갑을 훔쳐갔는지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걸 알았다 해도 뭘 어쩌진 못했을 것이다. 나는 저 소심한 그런 친구들 중의 하나이다. 나는 그런 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다. 예를 들어, 펜시에서 내 장갑을 훔쳐간 놈을 알았다 해도, 나는 그 도둑놈의 방으로 내려가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좋아. 그 장갑을 돌려 주지 그래?.’ 그러면 장갑을 훔쳐 간 놈은 아주 태연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무슨 장갑?’ 그러면 내가 뭘 할 거냐 하면, 나는 그의 벽장 안에 들어가서 어디선가 장갑을 찾아낼 것이다. 예를 들어, 고무 덧신이나 뭐나에 숨겨 두었을 것이다. 나는 그걸 꺼내서 그 놈한테 보여 주면서 말할 것이다, ‘이게 아마 네 장갑인가?’ 그러면 그 도둑놈은 아마 저 태연한 표정을 꾸며서 말할 것이다, ‘전에 그런 장갑은 본 적이 없는데. 그게 네 꺼면 가져 가. 난 그런 건 필요없으니까.’ 그러면 난 거기에 한 오분 정도 버티고 서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놈의 장갑을 손이니 뭐니 안에 잡고 그 놈의 턱이니 뭐니를 갈겨야 할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 그 놈의 턱주가리를 부숴 놔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용기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제법 터프한 놈처럼 보이려고 애를 쓰면서 그냥 거기 서 있을 것이다. 나는 아마, 그 놈의 턱을 갈기지는 못하고, 그 놈의 성질을 돋구기 위해서 아주 통렬한 욕을 해 줄 것이다. 어쨋든, 내가 꽤 통렬한 욕을 해 주면, 놈은 아마도 일어서서 나한테 와서 말할 것이다. ‘야, 코울필드. 지금 나를 도둑놈이라고 부르는 거냐?’ 그러면 나는, ‘잘 봤어, 그러는 거야, 넌 더러운 도둑놈 새끼야!’ 이렇게 말하지는 못하고, 기껏해야, ‘내 말은, 내 장갑이 니 고무 덧신 속에 있다는 거야.’ 그러면 놈은 내가 자기를 때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야. 말을 돌리지 말고 말해 보자. 지금 나를 도둑놈이라고 부르는 거냐구?’ 그러면 나는, ‘누가 너를 도둑놈이라구 부른대냐? 내 말은 그저, 내 장갑이 니 고무 덧신 속에 있다는 거지.’ 하고 말할 것이다. 이런 식의 대화가 몇 시간씩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를 한방 때리지도 못하고 방을 나오고 말 것이다. 나는 아마 샤워장에 들어가서 몰래 담배를 피우면서 거울을 보며 터프한 표정이나 지을 것이다. 어쨋든, 내가 호텔로 돌아오면서 생각한 것은 그런 거였다. 소심하다는 것은 즐거운 일은 아니다. 아마 난 완전히 소심한 놈은 아닐지도 모른다. 잘 모르겠다. 나는 약간 소심하기도 하고 또 장갑을 잃어버려도 별로 걔의치 않는 그런 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문제가 뭐냐 하면, 뭘 잃어버려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 내가 아주 어린애였을 때 엄마는 그 때문에 속이 상하곤 했다. 어떤 놈들은 뭘 잃어버리면, 며칠을 걸려 그것을 찾아다닌다. 잃어버려도 그렇게 걱정을 할 게 나한테는 없는 것같다. 아마 그래서 내가 좀 소심한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변명이 될 수 없다. 정말 변명이 되지 못한다. 어떻게 되어야 하냐 하면, 조금도 소심해서는 안된다는 거다. 어떤 놈의 턱을 때려야 할 때는, 그리고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것을 해야 하는 거다. 하지만, 난 그런 걸 잘 못한다. 어떤 놈의 턱을 갈기느니, 창밖으로 밀어 버리거나 도끼로 놈의 머리를 찍는 편이 오히려 쉬울 것이다. 나는 주먹 싸움을 싫어하거든. 나는 얻어맞는 게 무서운 게 아니다 ― 그렇다고 내가 맞는 걸 좋아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 하지만 주먹 싸움에서 제일 무서운 게 놈의 얼굴이다. 나는 놈의 얼굴을 차마 쳐다볼 수가 없다. 그게 내 문제인 거다. 둘이 다 눈가리걔나 뭐나를 한다면 그렇게 나쁘진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그건 좀 웃기는 소심함이긴 하지만 그래도 소심하다는 건 마찬가지다. 지금 우스운 소리를 하는 게 아냐.
장갑하고 소심함에 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우울해져서, 나는 걷거나 뭐나를 하다가 어디 잠깐 들어가서 한잔 마시기로 작정했다. 어니의 가게에서 세 잔밖에 안 마셨거든, 그런데 마지막 잔은 다 마시지도 못했다. 나한테 한가지 장점이 있는데, 그건 나의 엄청난 주량이다. 나는 기분만 내키면 밤새 마시고도 조금도 표시를 내지 않을 수가 있다. 한번은, 우튼 학교에 다닐 때, 토요일 밤이었는데, 저 레이몬드 골드파브란 놈하고 스캇치 한 파인트를 사서 교회 안에 아무도 보지 않는 데서 마신 적이 있다. 그 놈은 곤드레만드레 취했지만 나는 거의 멀쩡했다. 나는 그저 아주 냉정해지고 기운이 없어졌을 뿐이다. 나는 자러 가기 전에 토했는데 ―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 억지로 토한 거야.
어쨋든, 호텔로 가기 전에 어떤 너절한 술집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두 녀석이 더럽게 취해 가지고 나오면서 지하철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그 중의 한 놈은 저 쿠바인처럼 생겼는데, 내가 방향을 가리켜 주고 있는데 내 얼굴에 대고 계속 구린내를 풍겨 댔다. 결국 난 그 놈의 술집엔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그냥 호텔로 돌아왔다.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가를 오천만걔나 피운 것같은 냄새가 났다. 정말 그랬다니까. 나는 졸리거나 뭐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좀 더러웠다. 우울하니 뭐니 해서 죽어 버릴까 하는 생각이 났다.
그 때, 갑자기 저 더러운 일을 만났다.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엘리베이터 보이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재미 좀 보지 않으려우? 아니면 좀 시간이 눚었나?’
‘무슨 말이요?’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그 작자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몰랐다.
‘오늘 밤 계집질을 좀 안하려우?’
‘나 말이오?’ 하고 내가 말했다. 그건 아주 멍청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누가 갑자기 다가와서 그런 질문을 한다면 정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몇살이우, 아저씨?’ 하고 엘리베이터 보이가 말했다.
‘왜요?’ 하고 내가 말했다. ‘스물 두살인데.’
‘어-어. 그럼 어떻수? 생각 있우? 한번 하는 데 5 딸라. 밤새는 15 딸라구.’ 그는 자기의 손목시계를 봤다. ‘오전 열 두시까지 말야. 한번에 5 딸라, 오전 열 두시까지 15 딸라라구.’
‘좋아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건 내 주의니 뭐니에 어긋나는 것이었지만, 나는 너무도 우울해서 생각 같은 건 할 수 없었다. 문제는 그런 것이다. 아주 우울할 땐, 생각 같은 건 할 수 없는 것이다.
‘뭐로 할 건데? 한번? 아니면 오전 열 두시까지 하는 거? 그걸 알아야 하거든.’
‘그냥 한번하는 거.’
‘그러슈, 방이 몇 호실인데?’
나는 열쇠에 번호가 적혀 있는 걸 보았다. ‘1222호,’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그런 짓을 시작한 걸 벌써 조금 후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알았어. 십오분 정도 있으면 여잘 하나 올려 보내지.’ 그가 문을 열어 주어 나는 내렸다.
‘이봐요, 여자가 잘 생겼어요?’ 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난 늙은 여잔 싫어요.’
‘늙은 여잔 없어. 그런 걱정은 마슈.’
‘돈은 누구한테 내요?’
‘그 여자한테,’ 하고 그가 말했다. ‘자 갑시다.’ 그는 거의 내 얼굴에 대고 문을 닫아 버렸다.
나는 방에 들어가서 머리에 물을 조금 적셨다, 하지만 짧은 머리를 빗거나 뭐나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담배 냄새나 어니의 가게에서 마신 스카치와 소다 냄새가 안 나는지 숨을 내쉬어 보았다. 그건, 그저 손을 입 아래쪽에 대고 콧구멍 쪽으로 숨을 불어 보면 된다. 별로 냄새가 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이빨을 닦았다. 그리고 나서 깨끗한 셔츠로 갈아 입었다. 창녀나 그런 여자 때문에 그렇게 모양을 낼 필요는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뭔가를 하기는 해야 했다. 나는 좀 초조한 기분이 되었다. 꽤 흥분되거나 뭐나 한 기분이 되었지만 어쨋든 좀 초조해지기도 했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인데, 나는 경험이 없다. 정말이야. 그런 경험을 할 기회는 꽤 많이 있었지만 아직 해 보지는 않았다. 꼭 무슨 일이 생기거든. 예를 들어, 어떤 계집애의 집에 있다고 하면, 부모가 엉뚱한 시간에 돌아오거나 ― 아니면 그럴까 봐 겁이 나서 못하게 된다. 아니면, 어떤 차의 뒷자리에 있을 때는, 항상 앞자리에 누군가 있단 말야 ― 어떤 계집애가 있다는 거야 ― 그래서 차 안에서 무슨 일이 있지 않나 하고 궁금하게 여기거든. 내 말은,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그 계집애가 계속해서 뒤를 돌아 본다는 것이다. 꼭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난 몇번은 거의 할 때까지 갔었다. 특히 한번인가 기억나는데, 하지만 일이 되게 잘못 돼버렸다 ― 그 이상은 잘 기억이 안 난다. 문제는 뭐냐 하면 ― 대부분 경우에, 어떤 계집애하고 거의 할 때까지 가까이 가면 ― 창녀니 뭐니가 아닌 계집애 말야 ― 계집애가 꼭 하지 말라고 그러거든. 나한테 문제는, 난 그만 둔다는 것이다. 대부분 자식들은 안 그런다. 난 도리가 없다. 계집애들이 정말 그런 걸 하고 싶지 않은지, 아니면 그냥 무서워서 그러는 건지, 또 아니면 그만하라고 계속해서 말을 해야, 남자가 그래도 할 때 책임을 자기가 아니라 남자들에게 씌우려고 그러는 건지 누가 아냐? 어쨋든, 나는 매번 그만 둔다. 문제는 계집애들이 좀 가엽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내 말은, 대부분의 계집애들은 그렇게 멍청하니 뭐니 하다는 것이다. 얼마 동안 계집애를 껴안고 있어 봐, 그럼 정신을 잃고 멍청해진다니까. 계집애가 정말로 몸이 달았을 때 껴안아 봐, 그럼 그 년은 정신이고 뭐고가 없어진다니까. 잘 모르겠다. 그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난 안한다. 계집애를 집에 데려다 준 뒤에는, 할 걸 그랬다 하고 후회하지만 여전히 같은 짓을 되풀이한다.
어쨋든, 나는 깨끗한 셔츠로 갈아입는 동안, 어떤 면에선 이번이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자가 창녀니 뭐니라면, 내가 장래 결혼이니 뭐니를 할 경우에 좀 연습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게 가끔 걱정된다. 우튼 학교에 있을 때, 꽤 세련되고 멋쟁이이고 섹시한 친구가 나오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이름이 블랑샤르였다. 너저분한 책이었지만 그 블랑샤르란 작자는 꽤 괜찮았다. 그는 유럽, 리비에라에 커다란 샤토니 뭐니를 갖고 있었는데 그가 한가한 시간에 하는 일이란 건, 몽등이로 여자를 패는 것이었다. 그는 진짜 난봉꾼이니 뭐니였어, 하지만 여자를 꼼짝 못하게 했지. 그가 어디선가 말하는데, 여자의 몸이란 바이올린과 같아서 그걸 잘 연주하려면 굉장한 음악가가 필요하다는 거야. 그건 아주 시시한 책이었는데 ― 이제 생각해 보니 말야 ― 어쨋든 그 바이올린 얘기는 잊혀지지가 않더군. 어떤 면에서, 내가 연습을 좀 하고 싶어진 것도 그 때문이야, 내가 혹시 결혼할 경우에 말이다. 코울필드와 그의 마법 바이올린, 제기랄. 진부하지, 알아, 하지만 그렇게 진부한 건 아냐. 나는 그런 면에 도가 튼다고 해도 별로 챙피하다는 생각이 안들 것 같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인데, 나는 여자와 희롱을 할 때 거의 언제나, 내가 이 여자와 뭐하러 이런 짓을 하나 하고 생각한다, 제기랄,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면 말야. 내가 금방 얘기한 그 계집애, 거의 할 뻔했다는 그 계집애만 해도 그렇다. 그 년의 브래지어를 벗기는 데 만도 삼십분이 걸렸다. 다 벗겼을 때, 그 년은 내 얼굴에 침이라도 뱉을 것 같았다니까.
어쨋든, 나는 방 안을 어슬렁거리면서 그 창녀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그 여자가 잘 생겼기를 계속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 쓴 건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 일을 빨리 끝내버리자 하고 생각했다. 마침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문을 열려고 갈 때, 길목에 수트케이스를 놓아 둔 바람에 그걸 넘어가려다가 하마터면 무릎을 부러뜨릴 뻔했다. 수트케이스니 뭐니에 걸려 고꾸라질 때도, 꼭 이럴 때 그런다니까.
내가 문을 열었을 때, 그 창녀가 거기에 서 있었다. 여자는 폴로 오바를 입고 모자는 쓰지 않고 왔다. 머리가 약간 금발이었는데, 염색한 머리라는 게 눈에 보였다. 하지만 늙어빠진 여자는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하고 내가 말했다. 정말이지, 더럽게 점잖은 말투로 말야.
‘모리스가 말한 사람이에요?’ 하고 여자가 나에게 말했다. 별로 싹싹해 보이지 않는 여자였다.
‘엘리베이터 보이 말예요?’
‘그래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네, 맞아요. 들어와요.’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점점 더 그럴 기분이 나지 않았다. 정말 그랬다.
여자는 들어오자 바로 오바를 벗어서는 침대 위에다 집어던지는 식으로 놓았다. 안에는 초록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여자는 책상에 달린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서 위아래로 발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창녀치고는 아주 초조해 보였다. 정말 그랬다. 그건 그 여자가 아주 어리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는 내 나이 정도밖에는 안되었다. 나는 여자 옆에 큰 의자에 앉은 다음에 담배를 권하였다. ‘난 담배 안 피워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그 여자는 목소리가 아주 작고 가냘펐기 때문에 거의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뭘 권해도 절대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걸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내 소걔를 좀 할까요? 나는 짐 스틸이라구 해요,’ 하고 내가 말했다.
‘시계 가지고 있어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내 이름이 뭔지 따위는 하나도 관심없었다, 당연하지만 말야. ‘이봐요, 나이가 몇이에요?’
‘나요? 스물 둘이요.’
‘그런 것같지 않은데요.’
그렇게 말하는 건 우스운 일이었다. 꼭 어린애가 말하는 듯한 말투였다. 창녀라면, ‘그런 것같지 않은데요.’ 하고 말하지 않고 ‘웃기네.’ 라고 하거나 ‘그딴 수작은 말아요.’ 라고 말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몇 살이예요?’ 하고 나는 여자에게 물었다.
‘먹을 만큼은 먹었어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정말 재치있는 여자였다니까. ‘시계 있어요?’ 하고 여자는 다시 묻고는 일어나서 머리 위로 드레스를 벗었다.
그 여자가 그런 행동을 할 때 정말 기분이 이상했다. 내 말은, 그런 행동을 그렇게 갑자기 하는 것 말이다. 누군가가 일어나서 머리 위로 옷을 벗을 땐 꽤 섹시한 기분이 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정말이지, 섹시한 기분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나는 섹시하기 보다는 더욱 우울해졌다.
‘이봐요, 시계 있냐구요?’
‘아니. 아니, 없어요,’ 하고 내가 말했다. 정말이지,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름이 뭐예요?’ 하고 나는 여자에게 물었다. 여자는 이제 핑크색 슬립밖에 걸치지 않았다. 정말 당황스런 기분이었다. 정말 그랬다.
‘써니,’ 하고 여자가 말했다. ‘자, 해요?’
‘잠깐 얘기하지 않을래요?’ 하고 내가 여자에게 물었다. 그런 말을 하는 건 유치했지만, 난 정말 기분이 더럽게 이상했다. ‘무슨 급한 일 있어요?’
여자는 마치 미친 사람 보듯이 나를 쳐다 보았다. ‘대체 무슨 얘길 하자는 거예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냥 당신이 얘길 좀 하고 싶지 않나 하고 생각했어요.’
여자는 다시, 책상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그 여자가 못마땅한 기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자는 다시 발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 정말이지, 신경질적인 여자였어.
‘이제 담배 좀 피울래요?’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그 여자가 담배를 안 피운다는 걸 잊어버렸다.
‘담배 안 피워요 이봐요, 얘기하려면 해요. 난 할 일이 있어요.’
‘하지만 난 무슨 애길 해야 할 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그 여자가 어떻게 해서 창녀니 뭐니가 되었는지 물어 볼까 하다가 그런 걸 물어 보기가 겁이 났다. 대답하지 않을테니까.
‘당신은 뉴욬 출신이 아니죠?’ 하고 나는 마침내 말했다. 나는 기껏해야 그런 생각 밖에 나지 않았다.
‘할리웃이에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침대 위, 드레스를 놓은 데로 갔다. ‘옷걸이 있어요? 드레스가 주름지는 건 싫으니까. 새 거라구요.’
‘그럼요,’ 하고 나는 급히 말했다. 일어나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너무 기뻤다. 나는 드레스를 가지고 벽장으로 가서 옷걸이에 걸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나는 옷걸이에 드레스를 걸 때 좀 슬픈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 여자가 가게에 들어가서 그 드레스를 사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여자가 창녀니 뭐니라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 여자가 그 옷을 살 때 점원은 아마 보통 평범한 여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나를 무지 슬프게 했다 ―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얘기를 계속 이어 나가려고 했다. 그 여자는 더럽게 얘기할 줄을 모르는 여자였다. ‘매일 밤 일해요?’ 하고 나는 여자에게 물었다 ― 그런 걸 묻고 나니 좀 어색하게 들렸다.
‘그래요.’ 여자는 방 안을 왔다갔다 했다. 여자는 책상에서 메뉴를 집어 들고 읽었다.
‘낮에는 뭘 해요?’
여자는 어깨를 좀 으쓱했다. 그 여자는 되게 말랐었다. ‘자고. 영화 보러 가구.’ 그 여자는 메뉴를 내려 놓고 나를 보았다. ‘이봐요, 안 할 거예요? 난 이런 걸로 ―’
‘이봐요,’ 하고 나는 말했다. ‘난 오늘밤 기분이 좀 이상해요. 기분 좋지 않게 보냈어요. 정말로. 돈 같은 건 줄께요, 하지만 안 하면 안 돼요? 그래도 괜찮아요?’ 문제는, 내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는 거였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난 섹시한 기분보다는 우울한 기분이었다. 그 여자가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벽장이니 뭐니에 걸려 있는 그 여자의 초록색 드레스말이다. 게다가, 나는 하루 종일 멍청한 영화나 보며 앉아 있는 그런 여자와 그걸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정말로 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여자는,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우스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로 가까이 왔다. ‘무슨 문제가 있어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문제는 없어요.’ 정말이지 나는 신경질적인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난 최근에 수술을 받았어요.’
‘그래요? 어디?’
‘거기에 ― 쇄골.’
‘그래요? 대체 그게 어딘데요?’
‘쇄골말예요?’ 하고 내가 말했다. ‘뭐, 사실은 그건 척추 안에 있는 거예요. 내 말은, 척추에서 아래로 많이 내려간 데 있는 거예요.’
‘그래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그거 안 됐네요.’ 그리고 나서 여자는 내 무릎팍에 올라 앉았다. ‘당신 귀여운데.’
그 여자는 내 신경을 몹시 건드려서 나는 그냥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있었다. ‘지금은 회복되는 중이에요,’ 하고 나는 여자에게 말했다.
‘당신 영화에 나오는 사람같이 생겼는데, 그거 알아요? 누구더라. 누구 말인지 알 거예요. 그 사람 이름이 뭐더라?’
‘몰라요,’ 하고 내가 말했다. 여자는 내 무릎 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알면서. 멜빈 더글라스와 같이 피처로 나왔죠? 멜빈 더글라스 동생으로 나온 사람이었나? 저 보트에서 떨어진 사람인가? 누구 말인지 알 거예요.’
‘아니, 몰라요. 나는 되도록 극장엔 안 가요.’
그러자 여자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유치하니 뭐 그런 태도 말이다.
‘그만하면 어떨까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럴 기분이 아녜요. 방금 말한 것처럼. 수술 받은 지 얼마 안됐어요.’
여자는 내 무릎이니 뭐니 에서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무섭게 화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이봐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저 모리스 놈이 날 깨우지 않았으면 난 잘 자고 있었을 거예요. 당신은 내가 뭐 ―’
‘여기 온 거는 돈이니 뭐니를 준다고 했잖아요. 정말이에요. 돈은 충분히 있어요. 그저, 내가 아주 중한 수술에서 지금 ―’
‘그럼, 도대체 뭣 때문에 모리스한테 여자를 보내 달라고 말한 거예요? 당신의 그 거긴가에 무슨 놈의 수술을 받았다면 말예요? 허?’
‘지금보다는 기분이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좀 잘못 생각한 거 같애요. 농담하는 건 아녜요. 미안해요. 지금 일어난다고 해도, 돈은 주겠어요. 정말로.’
여자는 더럽게 화를 내고 있었지만, 내가 양복장에 가서 지갑을 가져오도록 내 무릎에서 일어났다. 나는 오딸라 짜리 지폐를 꺼내서 여자에게 주었다. ‘고마와요,’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 고맙게 생각해요.’
‘이건 5 딸라잖아요. 10 딸라예요.’
여자는 정말이지, 우습게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런 일이 생길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 정말 걱정했다.
‘모리스는 5 딸라라고 했어요,’ 하고 나는 여자에게 말했다. ‘오전 열두 시까지는 10 딸라, 한번은 5딸라라고 했어요.’
‘한번 하는데 10 딸라예요.’
‘그가 5 딸라라고 했어요. 미안해요 ― 정말 미안해요 ― 하지만 그것밖에 못 줘요.’
여자는 전처럼 어깨를 좀 으쓱하고는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내 오바 좀 갔다 줄래요? 너무 폐를 끼치는 건가요?’ 정말 무서운 계집애였다. 비록 어린애같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조금 무서운 느낌이 났다. 만일 여자가 얼굴이니 뭐니에 화장을 쳐바른 어른 창녀였다면, 그 반도 무섭지 않았을 거야.
나는 가서 여자의 오바를 갖다 주었다. 여자는 그것을 입고 나서 침대에서 폴로 코트를 집어들었다. ‘안녕, 멍충이,’ 하고 여자가 말했다.
‘안녕,’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여자에게 고맙다거나 뭐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안 한 건 다행이야.
제 14장
써니 년이 나가고 난 뒤, 나는 잠시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몇 걔 피웠다. 밖은 벌써 환해지고 있었다. 정말이지, 나는 비참한 기분이었어. 나는 무지하게 우울했다,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야. 그래서 내가 뭘 했냐 하면, 난 앨리하고 조금 큰 소리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주 우울할 땐 가끔 그런 짓을 한다. 나는 앨리한테, 집에 가서 자전거를 갖고 와, 보비 팰론의 집 앞에서 만나자 하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보비 팰론은 메인에서 우리하고 아주 가까운 데서 살았었다 ― 몇 년전에 말야. 어쨋든,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말야, 한번은 보비하고 난 자전거를 타고 쎄데베고 호수로 가기로 했다. 우리는 점심이니 뭐니하고 BB 총을 가지고 가기로 했지 ― 우린 아주 어린애였기 때문에 그 BB 총을 가지고 아무 거나 쏠 수 있다고 생각했지. 어쨋든, 앨리는 우리가 그 얘길 하는 걸 듣고 같이 가자고 했는데 난 끼워 주지 않았어. 앨리한테, 넌 아직 어린애야 하고 말해 주었지. 그래서 지금처럼, 아주 우울할 땐 난 앨리한테 이렇게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거야. ‘좋아. 집에 가서 자전거를 갖고 와, 보비의 집 앞으로 나와. 빨리.’ 내가 어디를 갈 때 앨리를 데리고 다니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앨리를 데리고 다니곤 했다. 하지만 그 날은 그러지 않았다. 앨리는 그 때문에 화를 내지는 않았다 ― 앨리는 무슨 일이고 화를 내는 법이 없다 ― 하지만 아주 우울할 땐 어쨋든 그 일이 계속해서 생각난다.
하지만 결국, 난 옷을 벗고 침대에 들어갔다. 침대에 들어가자, 기도같은 걸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하지 못했다. 난 기도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먼저, 난 약간 무신론자이다. 난 예수니 뭐니는 좋아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다른 것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제자들을 보자. 사실을 알고 싶다면, 그들한텐 정말이지 짜증이 난다. 예수가 죽거나 뭐니 한 후에 그들은 잘 했다, 하지만 예수가 살아 있을 땐 그들은 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들이 한 거라곤 계속해서 예수를 실망만 시킨 것밖에 없었다. 나는 그 제자들 외에는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 다 좋아한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성경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친구는, 동굴속에서 살면서 돌로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저 미치광이니 뭐니 하는 사람이다. 나는 제자들보다는 그가 열 배는 더 좋다, 정말 가련한 친구야. 나는 우튼 학교에 있을 때, 복도 아래쪽에 방을 쓰고 있던 저 아더 차일즈하고 그 문제를 놓고 무지하게 말싸움을 하곤 했었다. 차일즈 놈은 퀘이커니 뭐니였는데, 항상 성경을 읽고 있었지. 그는 꽤 좋은 놈이어서 나는 그 놈을 좋아했었다,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것중에서는 그 놈과 생각이 다른 게 많이 있었다, 특히 그 제자들 말야. 그 놈의 의견으로는, 내가 제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예수니 뭐니도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예수가 제자들을 택했기 때문에 그들을 좋아해야 마땅하다는 거였다. 나는 예수가 그들을 택한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예수는 그들을 아무렇게나 택한 거라고 말했다. 나는 예수가 제자들을 전부 살펴 볼 시간이 없었던 거라고 말했다. 내가 예수니 뭐니가 잘못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에게 시간이 없었던 건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나는 차일즈한테, 저 예수니 뭐니를 배반한 유다가 자살한 뒤에 지옥에 갔을 거라고 셍각하는지 어떤지를 물어봤던 거로 기억난다. 차일즈는 그건 명백한 거라고 말했다. 내가 그와 생각이 다른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나는, 예수가 유다를 지옥에 보내지 않았을 거라는데 1000 딸라 걸어도 좋다고 말했다. 나한테 1000 딸라가 있으면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럴 것이다. 제자들이라면 그를 지옥이니 뭐니에 보냈으리라고 생각한다 ― 그것도 바로 말야 ― 하지만 예수는 절대 그러지 않았다고 나는 확신한다. 차일즈 놈은, 나한테 문제는 내가 교회니 뭐니에 다니지 않은 거라고 말했다. 어떤 면에서 그의 말은 옳았다. 나는 교회에 다니지 않으니까. 먼저, 부모님은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고, 우리 집 형제들은 다 무신론자이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난 목사들한텐 참을 수가 없다. 내가 다닌 학교란 학교에 있는 목사들 말이다, 그들은 죄다 설교를 시작할 때 저 거룩한 체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정말이지, 난 그게 싫다. 왜 그들은 자연스런 목소리로 말하지 못하는 지 알 수가 없다. 그들이 얘기할 땐 정말 사기꾼같이 들린다.
어쨋든, 침대에 누웠을 때 나는 기도같은 건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기도를 시작해 보려고 하면, 써니 년이 나보고 멍충이라고 부른 일이 자꾸 떠올랐다. 결국 나는 침대에 일어나 앉아서 담배를 하나 더 피웠다. 입맛이 더러웠다. 펜시를 떠난 후로 두 갑은 피웠을 것이다.
갑자기, 담배를 피우면서 누워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다. 나는 그게 내 문이 아니기를 하고 바랬지만, 분명히 그게 내 문을 두드리는 소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왜 내가 그렇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어쨋든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나는 또 그게 누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런 영감이 있다.
‘누구세요?’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꽤 겁이 났다. 나는 그런 일엔 아주 소심하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문을 두드렸다. 이번엔 더 크게.
마침내 나는 파자마만 입은 채로 침대에서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벌써 환해졌기 때문에 방에 불을 켤 필요는 없었다. 써니 년과 저 뚜장이 엘리베이터 보이 모리스가 거기 서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무슨?’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이지, 내 목소리는 더럽게 떨리고 있었다.
‘별 거 아니우.’ 하고 모리스 놈이 말했다. ‘그냥 5 딸라만 내면 되.’ 써니 년 대신에 그가 얘기를 다 했다. 써니 년은 그 옆에서 입을 벌리고 그냥 서 있었다.
‘벌써 돈은 냈어요. 이 여자한테 5 딸라 줬는데요. 물어 봐요,’ 하고 내가 말했다. 정말, 내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10 딸란데. 아까 말했는데. 한번 하는데 10 딸라, 오전 열두시까진 15 딸라라구. 말했잖아.’
‘그런 얘긴 안했잖아요. 한번에 5 딸라라구 했잖아요, 오전까진 15 딸라라구 그랬구요, 그래요, 난 분명히 그렇게 들었어요 ―’
‘문 여시지.’
‘뭣 때문에?’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이지, 심장이 터져 나갈 것같았다. 적어도 옷이라도 입고 있었으면 했다. 그런 파자마 차림으로 무슨 일이 생기는 건 끔찍한 일이다.
‘자 갑시다.’ 하고 모리스 놈이 말했다. 그리고 그는 지저분한 손으로 나를 한번 세게 밀었다. 나는 거의 엉덩방아를 찔 뻔했다 ― 그 놈은 몸집이 거대한 놈이었거든. 내가 다음에 기억하는 건, 그와 써니 년이 방안에 들어와 있다는 거였다. 그들은 마치 자기들이 그 방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했다. 써니 년은 창턱에 앉았다. 모리스 놈은 큰 의자에 앉아서 칼라니 뭐니를 풀어 놓고 있었다 ― 그는 저 엘리베이터 보이 제복을 입고 있었다. 정말이지 난 초조해졌다.
‘좋아, 자 내놓으시지. 난 일하러 가봐야 하거든.’
‘열번은 말했잖아요. 당신한테 1 쎈트도 빚진 게 없어요. 이미 저 여자한테 5 딸라를 ―’
‘이제 그런 수작은 그만 둬. 내 놔.’
‘내가 왜 5 딸라를 더 내야 해요?’ 하고 내가 말했다. 내 목소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당신은 지금 날 속이려 하고 있어요.’
모리스는 제복의 단추를 죄다 풀었다. 그가 안에 입은 건 가짜 셔츠 칼라만 있었지 셔츠니 뭐니는 입고 있지 않았다. 그의 커다란 배에는 털이 나 있었다. ‘누가 누굴 속이나,’ 하고 그가 말했다, ‘자. 주지 그래.’
‘안돼요.’
내가 그 말을 하자, 그는 위자에서 일어나서 나한테 걸어왔다. 그는 아주 지쳐 있다거나 아주 싫증이 났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나는 겁이 났다. 그 때 나는 두 팔을 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파자마만 입고 있지 않았더라도 별로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자 주시지.’ 그는 내가 서 있는 데까지 왔다. 그는 그저 그 말만 할 줄 아는 것같았다. ‘자 주시지.’ 그는 정말 천치였다.
‘안돼요.’
‘이봐, 그렇게 나오면 자넬 거칠게 다룰 수밖에 없는데. 난 그런 건 싫은데, 근데 그렇게 보이는데,’ 하고 그가 말했다. ‘자넨 우리한테 5 딸라 빚이 있어.’
‘난 당신한테 5 딸라 빚지지 않았어요,’ 하고 내가 말했다. ‘날 거칠게 다루면 소릴 막 지를 거예요. 호텔에 있는 사람들을 다 깨울 거예요. 경찰이니 뭐니를 다.’ 내 목소리는 더럽게 떨리고 있었다.
‘해 보시지. 머리가 다 터지도록 소릴 질러 봐. 좋지,’ 하고 모리스 놈이 말했다. ‘자네가 여기서 창녀하구 밤을 보낸 걸 부모님이 알면 좋겠나? 자네같은 상류층 자제가 말야?’ 그는 교활하게도 머리가 잘 돌아갔다. 정말 그랬다.
‘날 내버려 둬요. 10 딸라라구 그랬으면 달랐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분명히 ―’
‘우리가 가져갈까?’ 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나를 문에다 밀어붙였다. 그는 거의 내 꼭대기에 올라 있어서 그의 더러운 털투성이 배니 뭐니가 내 얼굴에 닿았다.
‘날 내버려 둬요. 내 방에서 나가요,’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여전히 두 팔을 서로 끼고 있었다. 정말이지, 난 얼마나 얼간이인가.
그 때 써니가 처음으로 뭐라고 말하였다. ‘이봐요, 모리스. 내가 지갑을 가져올까?’ 하고 여자가 말했다. ‘바로 그 위에 있는데.’
‘그래, 가져 와.’
‘내 지갑을 놔 둬요.’
‘벌써 가져왔어,’ 하고 써니가 말했다. 그 여자는 내 얼굴에 오딸라를 흔들어 댔다. ‘봤죠? 난 오딸라만 가져가요. 난 도둑이 아녜요.’
갑자기 나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소리를 안 질렀다면 무슨 짓이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래요, 당신은 도둑이 아녜요. 당신은 그저 오딸라를 도둑질 ―’
‘닥쳐,’ 하고 모리스 놈은 나를 한번 밀었다.
‘그 사람을 놔 줘요,’ 하고 써니가 말했다. ‘가요. 이제 빚진 돈을 가졌으니까. 가요. 빨리.’
‘그러지,’ 하고 모리스 놈은 말했지만 가지 않았다.
‘가자니까요, 모리스. 그 사람을 놔 줘요.’
‘누가 사람을 다친대?’ 하고 그가 아주 천진하게 말했다. 그리고 나서 그가 뭘 했냐 하면, 내 파자마 위를 손가락으로 강하게 훑었다. 그 놈이 어디를 훑었는진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무지하게 아팠다. 나는 그에게, 너는 더러운 천치라고 말해 주었다. ‘그게 뭔데?’ 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마치 귀머거리처럼 두 손을 자기 귀에 갖다 댔다. ‘뭐라구? 내가 뭐라구?’
나는 여전히 소리를 좀 지르고 있었다. 나는 무지하게 화가 나고 신경질이 났다. ‘넌 더러운 천치야,’ 하고 나는 말했다. ‘넌 멍청한 사깃꾼 천치야, 넌 이년 정도 지나면 지금 거리에서 너한테 와서 커피값으로 동전이나 달라구 구걸하는 저 말라빠진 그런 인간이 될 거야. 니 더러운 오바에 사방 콧물을 질질 흘리고, 또 ―’
그 때, 그가 나를 갈겼다. 나는 옆으로 피하거나 숨거나 그러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배에 끔찍한 펀치를 맞은 걸 느꼈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나가 떨어지거나 그러진 않았다, 왜냐 하면 바닥에 누운 채로 올려다 보니 그들이 나가면서 문을 닫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스트래드레이터하고 그랬던 것처럼 꽤 오랫동안 바닥에 누운 채로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랬다니까. 나는 물에 빠져 죽는다거나 그런 생각을 하였다. 문제는, 거의 숨을 쉴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마침내 일어났을 때, 나는 완전히 몸을 구부리고 배니 뭐니를 움켜 잡은 채로 욕실까지 걸어가야 했다.
하지만 난 미친 놈이야. 하늘에 맹세코 난 미친 놈이야. 욕실까지 반쯤 갔을 때, 나는 배애 총을 맞은 시늉을 했다. 모리스 놈이 내 배에다 총알을 박아 넣은 것이다. 지금 나는 신경을 가라앉히고 행동을 걔시하기 위해서 버번이니 뭐니를 한 모금 마시려고 화장실로 가는 것이다. 나는 옷을 다 입고 주머니에 자동 피스톨을 넣은 채 욕실에서 나오면서 이리저리 조금 비틀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이어서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서 아래 층으로 내려 간다. 나는 난간이니 뭐니를 움켜 잡고 있고 옆구리에서는 조금씩 피가 떨어진다. 내가 뭘 하냐 하면, 나는 배를 움켜 잡고, 피는 사방에 흐르는데, 몇 층을 걸어 내려와서 엘리베이터 벨을 울린다. 모리스 놈은 문을 열자 마자, 내가 손에 자동 피스톨을 쥐고 있는 걸 보고 저 찢어질 듯한 겁먹은 목소리로 자기를 가만 내버려 달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나는 그 놈의 몸에 총알을 박는다. 그의 털투성이 배에다 여섯 방을. 나는 총에서 지문이니 뭐니를 전부 닦은 다음에 엘리베이터 축 아래로 총을 던진다. 다음에 나는 내 방으로 다시 기어 올라와서 제인한테 전화를 해서, 이리 와서 내 배에 붕대를 감아 달라고 말한다. 나는, 내가 피니 뭐니를 흘리고 있는 동안 제인이 손에 든 담배를 내가 피우는 모습을 상상했다.
빌어먹을 영화들. 그런 영화 때문에 사람이 망친다니까. 이건 농담이 아냐. 나는 샤워니 뭐니를 하면서 한 시간 정도 욕실에 있었다. 그 다음에 나는 침대로 올라갔다. 잠이 드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 피곤하지 않았으니까 ― 하지만 결국 잠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뭘 하고 싶었냐 하면 말야, 나는 자살이나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내가 땅에 떨어졌을 때 누군가가 내 몸을 덮어 주기만 한다면 나는 그랬을 것이다. 내가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호기심 많은 멍청한 작자들이 뗴거리로 몰려 와서 나를 구경하는 건 싫었기 때문이다.
제 15장
나는 별로 오래 자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잠에서 깨었을 때 열시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던 걸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담배를 한걔 피우고 나자 무지하게 배가 고팠다. 내가 마지막으로 뭘 먹은 건, 브로싸드, 애클리하고 애거스 타운에서 극장에 갔을 때 햄버거 두 걔를 먹은 게 전부였다. 그건 오래 전이었다. 마치 오십 년전의 일같았다. 전화기가 바로 옆에 있어서 나는 아래에다 전화를 걸어 아침 식사를 좀 보내 달랠까 하고 생각했지만 모리스 놈이 식사를 가져올까 봐 좀 겁이 났다. 내가 그 놈을 다시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미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침대에서 잠시 빈둥거리며 담배를 한걔 더 피웠다. 나는 제인이 집에 왔는지 알려고 전화를 걸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뭘 했냐 하면, 나는 샐리 헤이즈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 계집애는 메어리 A. 우드러프에 다니고 있었는데, 몇 주전에 그 계집애한테서 편지를 받았기 때문에 지금 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계집애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몇 년동안 알고 지낸 적이 있었다. 나는 멍청하게도 그 계집애가 무지 똑똑한 줄로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던 건, 그 계집애가 연극이니 희극이니 문학이니 하는 것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누군가가 그런 것들을 많이 알고 있으면, 그들이 정말 멍청한지 아니지를 알려면 꽤 시간이 걸린다. 쌜리 년의 경우에는 그걸 아는 데 몇 년은 걸렸다. 그 계집애하고 그렇게 많이 껴안고 그러지 않았다면, 그걸 훨씬 빨리 알아챘을 것이다. 내 큰 문제가 뭐냐 하면, 나는 언제나, 내가 껴안고 그러는 계집애들은 꽤 똑똑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게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닌데도 나는 어쨋든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어쨋든 나는 그 계집애한테 전화를 걸었다. 처음엔 식모가 전화를 받았다. 다음엔 아버지가 나왔다. 이어서 그 계집애가 나왔다. ‘쌜리?’ 하고 내가 말했다.
‘응 ― 누구야?’ 하고 계집애가 말했다. 그 계집애는 정말 되먹지 않았다. 벌써 아버지한테 내가 누구라고 말했는데 말이다.
‘홀든 코울필드야. 잘 있었어?’
‘홀든! 난 잘 있었지! 넌 어떻게 지내니?’
‘좋아. 근데. 어떻게 지내고 있어? 내 말은 학교 다니는 게 어떻냐구?’
‘좋아,’ 하고 계집애는 말했다. ‘내 말은 ― 알지.’
‘좋아. 자 내 말 들어 봐. 혹시 오늘 니가 바쁘지 않나 하고 생각했었지. 일요일이잖아, 일요일엔 언제나 영화 한 두개 정도는 하구. 자선 공연이니 뭐 그런 거. 안 갈래?’
‘갈께. 굉장하겠는데.’
굉장하겠다구. 내가 싫어하는 말이 있다면, 그건 굉장하다는 말이다. 그건 너무 엉터리 같은 말이다. 순간적으로 나는, 영화 같은 건 그냥 해 본 말이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시시껄렁한 얘기를 좀 지껄였다. 내 말은, 계집애가 그랬다는 것이다. 한마디도 뭐라고 끼어 들을 수가 없이 말이다. 먼저 계집애는 어떤 하바드에 다니는 작자 얘기를 했는데 ― 아마 신입생일 거다, 하지만 물론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 자기를 끔찍하게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밤낮으로 전화를 건다는 것이다. 밤낮으로 말야 ― 거기엔 정말 졌다. 다음엔 웨스트 포인트 생도라는 작자 얘긴데, 그 작자도 역시 자기를 위해서는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다. 대단한 일 아냐? 나는 계집애한테, 영화가 두시 반에 시작하니까 빌트모어 극장, 시계 아래서 두 시까지 늦지 않게 나오라고 말했다. 그 계집애는 항상 늦으니까 말야. 그리고 나서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 계집애는 좀 아니꼽긴 하지만, 정말 예쁘긴 했다. 나는 쌜리 계집애하고 약속을 한 뒤에, 침대에서 내려와서 옷을 입고 가방을 쌌다. 하지만 방에서 나가기 전에, 저 변태자들이 뭘 하고 있나 보려고 창 밖을 한번 보았다. 하지만 커튼이 모두 내려져 있었다. 그런 작자들은 아침엔 최고로 얌전하다니까.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호텔에서 나왔다. 주위에 모리스 놈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물론 그를 찾으려고 안달을 하지는 않았다. 거지같은 새끼.
나는 호텔 밖에서 택시를 탔는데, 어디로 가야 할 지를 전혀 몰랐다. 나는 갈 곳이 없었다. 일요일밖에 되지 않아서 수요일까지는 ― 아니 빨라도 화요일까지는 ― 집에 갈 수가 없었다. 물론 다른 호텔에 가서 골치 아픈 일을 겪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뭘 했냐 하면, 나는 운전사한테 그랜드 쌘트랄 스테이션으로 가자고 말했다. 거긴, 쌜리를 만나기로 약속한 빌트모어 극장 근처였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할까를 생각했다. 가방들을 저 열쇠 달린 로커에 보관하고 아침을 먹자. 나는 조금 배가 고팠다. 나는 택시 안에서 지갑을 꺼내서 돈을 좀 세어 보았다. 정확하게 얼마가 남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별로 대단한 돈은 아니었다. 나는 데데하게 지낸 이주 동안에 엄청난 돈을 써 버렸다. 정말 그랬다. 나는 알고 보면 더럽게 낭비가 심하다. 쓰지 않는 돈은 잃어버린다. 나는 레스토랑이나 나이트 클럽 같은 데 가면 잔돈을 받아 오지 않을 때가 반은 된다. 그 때문에 부모님은 돌아버리신다. 하지만 부모님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돈이 상당히 많다. 아버지가 얼마를 버는 지는 모르지만 ― 어버지는 그런 것을 나한테 얘기한 적이 없다 ― 꽤 많을 거라고 상상은 간다. 아버지는 어느 회사의 법률 일을 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 돈을 많이 끌어 모은다. 아버지가 돈이 많은 것을 내가 아는 다른 이유는, 아버지는 항상 브로드웨이의 연극에 돈을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연극들은 항상 실패해서 엄마는, 아버지가 그런 일을 하면 화를 낸다. 내 동생 앨리가 죽은 뒤로 엄마는 건강이 별로 좋지 않다. 엄마는 굉장히 신경이 날카롭다. 그 때문에 나는, 내가 퇴학당한 걸 엄마가 알까 봐 걱정이 되는 것이다.
나는 역에서 가방들을 로커에 넣은 다음에 조그만 쌘드위치 바에 들어가서 아침을 먹었다. 오렌지 쥬스, 베이컨과 달걀, 토스트와 커피까지 나로서는 꽤 많이 먹은 편이었다. 나는 보통 때는 오렌지 쥬스를 조금 먹는다. 나는 아침을 조금밖에 먹지 않는다. 정말 나는 그렇다. 내가 이렇게 마른 건 그 때문이다. 살을 찌우니 뭐니 하려면 전분이니 뭐니 하는 걸 많이 먹어야 할 판이지만 나는 그런 짓을 절대 하지 않는다. 나는 어디 밖에 나갈 때는, 보통 스위스 치즈 썐드위치하고 맥아 우유를 먹는다. 많이 먹지는 않지만 맥아 우유에는 비타민이 상당히 많이 들어 있다. H.V. 코울필드. 홀든 비타민 코울필드.
내가 달걀을 먹고 있는데, 수트케이스니 뭐니를 든 수녀 두 사람 ― 보니까 다른 수녀원이니 뭐니로 가려고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 이 들어와서 카운터 바로 내 옆에 앉았다. 그들은 수트케이스니 뭐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아서 내가 도와 주었다. 수트케이스는 저 싸구려같이 보이는 그런 것이었다 ― 진짜 가죽이니 뭐니가 아닌 것 말이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걸 나도 알지만, 난 누가 싸구려 수트케이스를 들고 다니는 걸 보면 짜증이 난다. 되먹지 않은 소리로 들릴 지 모르겠지만, 누가 싸구려 수트케이스를 들고 다니면 그 사람까지 싫어진다. 언젠가 있었던 일인데 말야. 내가 엘크톤 힐즈 학교에 다닐 때, 딬 슬레이글이라고 아주 싸구려 수트케이스를 가지고 있던 놈하고 같은 방을 썼었다. 그 놈은 그게 내 거하고 나란히 있는 걸 남들이 볼까 봐 선반 위에 두지 않고 침대 밑에 두었다. 그게 나를 더럽게 우울하게 만들어서 나는 내 걸 밖으로 던져 버리거나 그 놈 거하고 바꿀 생각을 계속 했었다. 내 건 마크 크로스 제품이었는데, 진짜 암소 가죽이니 뭐니 하는 거여서 꽤 비싼 걸 거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따위 것은 웃기는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냐 하면 말야. 나는 내 수트케이스를 선반에서 내려서 침대 밑에 두었다. 그 슬레이글 놈이 열등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말야. 그런데 그 놈이 뭘 했는지 알아? 내가 내 수트케이스를 침대 밑에 놓은 다음 날, 그 놈은 자기 것을 침대 밑에서 꺼내서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아는데 꽤 시간이 걸렸는데, 그건 사람들이 내 수트케이스를 자기 거로 알았으면 하고 바랬기 때문이다. 그 놈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 면에서 그 놈은 아주 웃기는 놈이었다. 그 놈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예를 들어, 수트케이스 같은 것 말야, 언제나 되먹지 않은 말을 지껄였다. 그 놈은 항상, 내 수트케이스가 너무 새 거고 부르조아 냄새가 난다고 투덜거렸다. 부르조아란 말은 그 놈이 제일 애용하는 말이었다. 그 말을 어디서 읽었거나 들었을 것이다. 내가 가진 건 전부 더럽게 부르조아적이라고 말했다. 내 만년필까지도 부르조아적이었다. 우리는 두달 정도를 같이 방을 썼다. 그 후에 우리는 다른 방을 달라고 신청했다. 그런데 웃기는 건, 우리가 다른 방으로 간 뒤에 그 놈이 좀 그리워졌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놈한테는 굉장한 유머 감각이 있었고 또 우리도 가끔 같이 재미있게 지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놈도 마찬가지로 나를 그리워한다고 해도,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처음에, 그 놈은 내 물건을 부르죠아적이니 하고 말하면서 그저 장난 삼아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따위 말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 사실 그런 건 좀 웃기는 일이었다. 그런데 얼마 있으니까 그 놈이 이젠 농담으로 그러는 게 아닌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같이 방을 쓰는데 자기 수트케이스가 남의 것보다 더 좋은 것이면 ― 자기 건 정말 좋은 것인데 방 친구 것은 나쁜 것이면 말이다 ― 같이 방을 쓰기가 어려운 것이다. 다른 친구가 뭐 똑똑하니 뭐니 하면 그리고 유머 감각이 좋다면, 누구 수트케이스가 더 좋고 나쁘고 하는 따위에는 하나도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신경을 쓰는 것이다. 내가 스트래드레이터같은 멍청한 새끼하고 같이 방을 쓴 건 그런 이유도 있다. 적어도 그 놈의 수트케이스는 내 거하고 거의 비슷하니까 말야.
어쨋든, 그 수녀들이 내 옆에 앉아서 우리는 얘기를 좀 나누게 되었다. 바로 내 옆에 앉은 수녀는, 저 구세군들이 크리스마쓰 무렵에 기금을 모을 때 흔히 보는, 밀짚으로 만든 바구니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특히 5번가의 큰 백화점 같은 데 앞에 많이 서 있다. 어쨋든, 내 옆에 앉은 수녀가 바닥에 바구니를 떨어뜨려서 내가 그것을 집어 주었다. 나는 수녀에게, 자선단체니 뭐니를 위해 기금을 모으려고 나와 있냐고 물어 보았다. 수녀는 아니라고 말했다. 수녀는, 짐을 쌀 때 바구니가 수트케이스 안에 들어가지 않아서 들고 다니는 거라고 말했다. 수녀는 사람을 쳐다볼 때, 아주 멋진 미소를 지었다. 수녀는 코가 크고, 별로 멋이 없는 철테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굉장히 친절한 인상을 풍겼다. ‘전 수녀님들이 기금을 모으고 계신 줄 알았죠,’ 하고 나는 수녀에게 말했다. ‘제가 조금 기부를 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나중에 기부금을 모을 때 그 돈을 쓰실 수 있을 거예요.’
‘오, 정말 고마운 말이에요,’ 하고 수녀가 말했다. 그 수녀의 친구인 다른 수녀가 나를 넘어다 보았다. 그 수녀는 커피를 마시면서 조그만 책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성경 같이 보였지만 성경치고는 너무 얇았다. 하지만 그건 성경 비슷한 책이었다. 두 사람은 토스트와 커피만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게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내가 베이컨과 달걀 또 그밖에 뭘 먹고 있는데 다른 누군가는 토스트와 커피를 먹고 있다면 난 그게 싫다.
그들은 내가 기부금으로 10 딸라를 내는 것을 허락했다. 그들은 내가 그 만한 돈을 내도 되냐고 계속 물었다. 나는 돈을 꽤 많이 가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내 말을 믿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내 돈을 받았다. 두 사람이 너무 고맙다고 계속해서 말하는 바람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나는 얘기를 일반적인 화제로 돌려서 지금 어디 가시는 길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들은, 자기들은 학교 선생들이고 방금 시카고에서 오는 길이며, 168번가나 186번가 아니면 위쪽에 있는 어떤 수도원에 선생으로 부임하러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철테 안경을 쓴 내 옆의 수녀는, 자기는 영어를 가르치고 자기 친구는 역사와 미국 정치를 가르친다고 말했다 그 때 나는 갑자기, 영어를 가르친다는 그 수녀가 어떤 영문 작품을 읽을 때 수녀니 뭐니로서 어떤 생각을 하는 지가 몹시 궁금해졌다. 반드시 어떤 성적인 내용이 담긴 책이 아니라 연인들이니 뭐니 하는 게 나오는 책 말이다. 예를 들어, 토마스 하디가 쓴「귀향」에 나오는 유스타시아 바이를 보자. 그녀는 뭐 별로 쎅시하거나 그렇진 않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수녀라면 저 유스타시아 바이의 애기를 읽을 때 어떤 생각을 할 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물론 나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영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라고 말했다.
‘오, 그래요? 오, 기분 좋은데요.’ 하고 영어를 가르치는 안경 낀 수녀가 말했다. ‘올핸 무슨 책을 읽었어요? 정말 알고 싶은데요.’ 그 수녀는 정말 좋은 분이었다.
‘글쎄요, 대부분 앵글로 쌕슨 계통의 책을 읽었어요. 「베어 울프」, 그리고 「그렌델」 또 「로드 랜달 내 아들」 그런 것들이죠. 하지만 가끔 과외 학점을 따려고 다른 책들도 읽었죠. 토마스 하디의「귀향」하고 「로미오와 쥴리엣」을 읽었어요.’
‘오,「로미오와 줄리엣」! 멋져라! 그 책 좋지 않았어요?’
그 수녀는 정말이지, 보통 수녀같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네, 좋았어요. 정말 좋은 책이었어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로 마음에 남는 책이었어요.’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기억나요?’
사실을 말하자면, 수녀와「로미오와 줄리엣」얘기를 한다는 게 좀 당황스러웠다. 내 말은, 그 희곡은 몇몇 부분에서는 꽤 쎅시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은 수녀니 뭐니이다. 하지만 나한테 물어 봤으니 잠시 그것에 대해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글쎄요, 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요,’ 하고 나는 말했다. ‘제 말은, 그들이 좋긴 하지만 ― 잘 모르겠어요. 어떤 때는 정말 짜증나게 만들기도 하거든요. 재 말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었을 때보다는 머큐티오가 죽었을 때 더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은, 저 머큐티오가 그 다른 사람 ― 쥴리엣의 사촌인데 ― 이름이 뭐더라 ― 그 사람한테 죽고 난 뒤로는 로미오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던데요.’
‘티볼트.’
‘맞아요. 티볼트,’ 하고 내가 말했다 ― 나는 언제나 그 친구의 이름을 잊어버린다. ‘그건 로미오의 잘못이었어요. 제 말은, 내가 그 희곡에서 제일 마음에 든 사람은 저 머큐티오라는 거예요. 잘 모르겠어요. 저 몬태규니 캐플릿이니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괜찮아요 ― 특히 쥴리엣이 그렇지만 ― 그런데 저 머큐티오는 ―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그 사람은 아주 멋있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재미도 있고 그렇거든요. 사실은, 전 누가 죽음을 당하면 미치겠어요 ― 특히 아주 멋있고 재미있고 그런 사람이 죽으면 그래요 ― 그런데 그건 그 사람이 잘못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거든요.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은 건, 적어도 자기들 잘못이에요.’
‘어느 학교에 다니고 있지요? 하고 수녀가 나에게 물었다. 그 분은 아마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제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나 보다.
나는 펜시라고 말했는데, 그 분은 그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 것같았다. 그 분은 아주 좋은 학교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학교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자 다른 수녀, 저 역사와 정치를 가르친다는 수녀가 이제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분들의 계산서를 빼앗았지만 그 분들은 내가 돈을 내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안경을 쓴 수녀는 억지로 내게서 계산서를 빼앗았다.
‘잘 해 줘서 고마와요,’ 하고 그 분은 말했다. ‘정말 아주 멋있는 학생이에요.’ 그 분은 정말 멋있는 분이었다. 그 분은 기차에서 만난 저 어네스트 모로우의 엄마하고 좀 닮았다. 그 분이 미소지을 땐 특히 그랬다. ‘학생하고 정말 재미있게 얘기했어요.’ 하고 그 분은 말했다.
나도, 그 분들하고 얘기한 게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내 말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 분들하고 얘기하면서 줄곧, 그 분들이 갑자기 내가 카톨릭 신자인지 아니지 물어보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재미있게 얘기를 했을 것이다. 카톨릭 신자들은 항상, 누가 카톨릭이 아닌가 하고 알아내려 하거든. 나한텐 그런 경우가 많이 있었다, 왜냐하면 내 성이 아일랜드 계통이고 아일랜드 계통의 사람들은 대부분 카톨릭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우리 아버지가 한 때 카톨릭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엄마와 결혼하면서 카톨릭을 떠났다. 하지만 카톨릭 신자들은 성을 몰라도 그가 카톨릭인지 아닌지를 항상 알아 내려고 든다. 나는 우튼 학교에 있을 때 루이스 고만이라고 하는 카톨릭 친구를 안 적이 있다. 그는 내가 거기서 처음 알게 된 아이였다. 학교가 시작하던 날, 우리는 양호실 밖에 있는 두 걔의 의자에 앉아서 신체검사를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테니스 얘기를 좀 하게 되었다. 그는 테니스에 무척 관심을 갖고 있었고 나도 또한 그랬다. 그는 여름마다 포리스트 힐즈에서 열리는 전국 대회를 보러 갔었다고 말했는데 나도 여름마다 거기에 갔었다. 이어서 우리는 잠시 몇몇 잘하는 테니스 선수 얘기를 했다. 그는 나이에 비해서 테니스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었다. 정말 그랬다. 그리고 나서 그는 얘기를 하는 중에 갑자기 나한테 물었다. ‘혹시 시내에 카톨릭 성당이 어디 있는 지 아니?’ 사실은, 그가 물어보는 말투로 볼 때, 내가 카톨릭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 분명했다. 정말 그랬다. 그가 무슨 편견을 가졌다거나 그래서가 아니라, 그저 알고 싶어서 그런 것이었다. 그는 테니스니 뭐니를 가지고 얘기를 나누는 게 재미있는 것 같았는데, 내가 카톨릭이니 뭐니였다면 더욱 얘기를 즐겼을 것이다. 이런 게 나를 짜증나게 만든다니까. 그 때문에 얘기를 망치거나 그랬다는 게 아니다 ― 그렇지 않았다 ― 하지만 그딴 건 전혀 얘기에 도움이 안된다는 얘기를 하자는 것뿐이다. 그래서, 수녀들이 내가 카톨릭인지 어떤지를 물어 보지 않은 게 좋았다는 것이다. 그 분들이 그런 걸 물어 보았다 해도 얘기를 망쳐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카톨릭 신자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는 건 아니다. 나는 그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카톨릭 신자라면 아마 그들과 비슷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전에 얘기했던 저 슈트케이스 얘기와 비슷한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건 얘기를 나누는데 아무런 쓸 데도 없다는 것이다. 내 말은 그저 그런 것이다.
그들이 가기 위해서 일어났을 때, 수녀들 말이다, 나는 정말 멍청하고도 당황스런 짓을 했다. 나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인사를 하려고 일어났을 때 실수로 그만 그 분들의 얼굴에 연기를 뿜었던 것이다. 그럴려고 그런 게 아닌데 그런 것이다. 나는 미친 듯이 사과를 했고 그 분들은 그 일에 대해서 아주 관대한 태도를 보여 주었다. 그래도 어쨋든 무지 미안한 일이었다.
그 분들이 가고 난 뒤에, 나는 기부금으로 10 딸라밖에 내지 않은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실은, 쌜리 헤이즈 그 계집애하고 영화보러 약속을 해 놓았기 때문에 극장 표니 뭐니를 위해서 약간 돈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도 미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돈. 그 놈의 돈이 항상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니까.
제 16장
아침을 먹고 나니 오전 열두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두시에 쌜리 계집애를 만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어서 나는 좀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수녀들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 분들이 학교에서 수업이 없을 때는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기부금을 모을, 저 낡아빠진 밀짚 바구니 생각을 했다. 나는 엄마나 또 누구, 이모, 아니면 저 쌜리 헤이즈의 미치광이 같은 엄마가 낡아빠진 밀짚 바구니를 들고 어떤 백화점 앞에 서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부금을 모으는 광경을 상상하려고 애를 썼다.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엄마는 쉽게 상상이 되었는데, 저 두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이모는 자선단체의 일을 꽤 잘한다 ― 이모는 적십자니 뭐니 에서 일을 많이 한다 ― 하지만 이모는 옷을 잘 차려입고 다닌다, 자선적인 일을 할 때는 언제나 좋은 옷을 입고 립스틱이니 뭐니를 잔뜩 바른다. 나는, 그런 일을 할 때 검은 옷을 입어야 하고 립스틱을 바르면 안된다고 한다면, 이모가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저 쌜리 헤이즈의 엄마는 어떤가. 체, 그 여자가 바구니를 들고 그런 일을 하려면, 사람들마다 기부금을 내면서 그 여자의 엉덩이에다 입을 맞춰 줘야 할 거다. 만일 사람들이 그냥 바구니 안에다 돈만 집어넣고 그 여자를 무시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버린다면, 그 여자는 삼십 분도 안되서 그만 두고 말 것이다. 싫증이 나서 바구니를 돌려 주고는 어떤 아니꼬운 데로 점심이나 먹으러 갈 것이다. 내가 그 수녀들이 좋은 점이 바로 그거다. 한가지만 말하면, 그 분들은 점심을 먹으러 그런 아니꼬운 데로는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마음이 되게 우울해졌다. 그 분들이 점심이나 뭐나를 먹으러 그런 아니꼬운 데로는 가지 않는다는 것말이다. 그런 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어쨋든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브로드웨이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저 몇 년 동안 거기 가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밖에, 일요일에 여는 레코드 가게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내가 피비한테 사 주고 싶은 ‘리틀 셜리 빈즈’ 라는 레코드가 있었다. 그것은 아주 구하기 어려운 레코드였다. 그것은 앞니 두 걔가 튀어나온 게 부끄러워서 집밖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는 어떤 꼬마 여자 애를 노래한 것이었다. 나는 펜시에서 그 노래를 들은 적이 있었다. 윗층에 있는 어떤 놈이 그것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그걸 갖다 주면 피비가 깜박 죽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에게서 그걸 사려고 애를 썼지만 그 놈은 그것을 팔지 않았다. 그건, 저 흑인 여자 가수 에스텔 플레쳐가 약 이십년 쯤 전에 만든 거로, 아주 오래된 좋은 레코드였다. 그 여자는 노래를 딕시랜드 풍으로 매춘부 냄새가 나게 부르지만, 전혀 감상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만일 백인 여자가 그 노래를 불렀다면, 가능하면 귀엽게 부르려고 애를 썼겠지만 저 에스텔 플레쳐는 그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정말 내가 들어 본 중에서 제일 좋은 레코드 중의 하나였다. 나는, 그걸 어떤 가게에서 사 가지고 공원까지 가지고 갈 생각이었다. 피비는 일요일에는 롤러 스케이트를 타러 공원에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피비가 주로 어디서 노는 지 알고 있었다.
전날처럼 그렇게 춥진 않았지만, 아직 해가 나오지 않아서 산책하기에 별로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 교회에서 금방 나온 것같은 어떤 가족 ―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여섯 살 정도 된 꼬마 ― 이렇게 셋이서 바로 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좀 가난한 사람들 같았다. 아버지는 가난한 사람들이 멋을 내고 싶을 때 많이 쓰는 저 진주빛깔 나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와 그의 부인은 애한테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얘기를 나누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어린애는 꽤 멋을 냈다. 아이는 보도가 아니라 가장자리 돌 바로 옆에 내려서서 찻길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아이는, 꼬마들이 늘 그러듯이, 아주 똑바로 걸어가고 있다는 듯이 걸어가면서 내내 노래를 부르거나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 무슨 노래를 부르나 하고 그 아이 가까이 다가갔다. 그 아이는, ‘한 아이가 호밀밭을 지나서 오는 한 아이를 잡으면,’ 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이는 아주 작고 예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가 그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때, 차 한 대가 옆으로 오는 게 보이더니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났다. 하지만 부모는 아이 쪽으로 돌아보지도 않았고 아이는 포석 옆에서 ‘한 아이가 호밀밭을 지나오는 아이를 잡으면,’ 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계속 걸어갔다. 그것을 보았을 때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이제 기분이 우울하지 않았다.
브로드웨이는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서 혼잡했다. 일요일이고 아직 열 두시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로 들끓고 있었다. 사람들은 파라마운트니 애스터니 스트랜드니 캐피탈이니 하는 극장으로 몰려가는 중이었다. 저마다 잘 차려 입고 있었는데, 그건 일요일이니 그런 것이었다. 그게 더욱 짜증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제일 아니꼬운 것은, 전부들 영화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누군가 할 일이 없어서 영화를 보러간다는 건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영화를 보고 싶어서 그것도 빨리 가려고 잰 걸음으로 가는 건 정말 더럽게 우울한 일이다. 특히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한 블록이나 되는 길이로 끔찍하게 긴 줄을 서 가지고 자리니 뭐니를 잡으려고 참고 서 있는 걸 볼 땐 그렇다. 정말이지, 그 놈의 브로드웨이에서 빨리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나는 운이 좋았다. 내가 처음 들어간 레코드 가게에 ‘리틀 셜리 빈즈’가 한 장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구하기 어렵다고 5 딸라나 내라고 했지만 나는 걔의치 않았다. 정말이지, 나는 갑자기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걸 빨리 피비한테 주고 싶어서 공원까지 가는 시간을 기다릴 수가 없었다.
레코드 가게에서 나와서 나는 약방을 지나치다가 거기에 들어갔다. 나는, 제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직 집에 오지 않았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전화박스에 들어가서 전화를 걸었다. 문제는, 엄마가 전화를 받아서 전화를 끊어야 했던 것이다. 나는 걔네 엄마하고 길게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어쨋든, 계집애 엄마하고 전화로 얘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제인이 집에 왔는지는 물어봤어야 했다. 그런 걸 물어본다고 해서 걔네 엄마가 날 죽이진 않았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런 일은 정말 기분이 나야 하는 법이다.
아직 표를 사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신문을 사서 무슨 영화를 하는 지를 찾아 보았다.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세 걔 정도밖에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뭘 했냐 하면, 「내 사랑을 난 알아요」라는 연극의 표를 아래층 앞자리로 두 장 샀다. 그것은 자선 공연이니 그런 거였다. 별로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표를 샀다고 말하면 허영심의 여왕인 저 쌜리 계집애가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허튼 소리를 지껄일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런트니 뭐니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계집애는 런츠니 뭐니가 나오면서 꽤 잘난 체하고 현학적인 연극을 좋아한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나는 연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만큼 나쁜 것은 아니지만 뭐 크게 좋다고 할 건 없다. 무엇보다도 나는 배우들이 싫다. 그들은 절대로 보통 사람들이 행동하듯이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런다고 생각한다. 몇몇 좋은 배우들은 조금 그렇게 행동하기도 하지만 결코 자연스럽게 그러지는 않는다. 그리고 만일 어떤 배우가 정말 좋은 배우라면 그는 자기가 좋은 배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게 그의 행동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로렌스 올리비에 경을 보자. 나는 「햄릿」에서 그를 본 적이 있다. 작년에 D.B.가 나하고 피비를 데리고 갔었다. 그는 먼저 우리한테 점심을 사 준 다음에 영화를 보러 갔다. 그는 벌써 그걸 본 적이 있었는데, 점심을 먹으면서 그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나도 그게 굉장한 연극이러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로렌스 올리비에 경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지 난 잘 모르겠다, 그저 그 뿐이다. 그는 멋진 목소리를 가졌고, 굉장히 잘 생긴 배우이다. 그리고 그가 걷거나 결투를 하거나 그럴 때는 보기에도 멋이 있다, 하지만 D.B가 말한 햄릿의 모습과는 전혀 닮지 않았다. 그는 저 무슨 장군의 모습이지, 우울하고 고민하는 그런 모습은 아니다. 그 영화에서 제일 좋은 부분은, 저 오필리아의 오빠 ― 제일 끝에 햄릿과 결투하는 사람 말이다 ― 가 길을 떠날 때 아버지가 그에게 여러 가지 충고를 해 주는 그런 대목이다. 어버지가 오빠에게 충고를 늘어 놓고 있는데, 오필리아는 자기 오빠의 칼집에서 칼을 꺼내서 그를 놀리며 오빠하고 장난질을 하고 있는 대목이다, 오빠는 아버지가 늘어 놓는 허튼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체하고 있고. 그 장면은 멋있었다. 정말 그 장면에선 한 방 먹었다니까. 하지만 그런 장면은 별로 많지 않다. 피비가 제일 좋아한 대목은 햄릿이 걔의 머리를 두드려 주고 있는 데였다. 피비는 그게 재미있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랬다. 내가 뭘 할 건가 하면 그 희곡을 한 번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 하면, 언제나 그런 걸 혼자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우가 연기할 땐, 나는 거의 귀를 기울이지도 않는다. 나는 그가 순간마다 무슨 되먹지 않은 행동을 하지 않나 하고 신경을 쓰는 것이다.
나는 런츠 연극 표를 산 다음에 공원에 가려고 택시를 잡았다. 돈이 좀 떨어져 가기 때문에 지하철이나 뭐나를 탈 걸 하고 생각했지만, 나는 망할 놈의 브로드웨이를 가능하면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공원은 지저분했다. 날씨는 그렇게 춥진 않았지만, 아직 해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공원 안에는 걔똥이나 침 뱉어 놓은 거나 늙은이들이 버린 담배 꽁초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같았다. 그리고 벤치들은 죄다 거기 앉으면 엉덩이가 젖을 것같이 보였다. 그런 게 기분을 우울하게 했다. 그리고 걸어가는 동안에, 왜 그런지 모르게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크리쓰마스가 별로 남지 않은 것같은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뭐가 오고 있다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산책길 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왜냐 하면 피비는 공원에 나오면 항상 거기서 놀기 때문이다. 피비는 음악당 근처에서 스케이트 타는 걸 좋아한다. 우스운 일이다. 나도 어렸을 때는 거기서 스케이트를 타면서 놀았다.
하지만 내가 거기 갔을 때는 피비는 그 주변에 없었다. 꼬마 아이들이 몇 명 스케이트니 뭐니를 타고 놀고 있었고 남자 아이 두명이 플라이 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피비는 없었다. 나는 나이가 피비 정도 되 보이는 여자 아이가 벤치에 혼자 앉아서 스케이트 끈을 매고 있는 걸 보았다. 나는, 어쩌면 그 애가 피비를 알아서 지금 피비가 어디 있는지 뭐 그런 걸 물어보려고 그 아이한테 가서 옆에 앉아서 물어 보았다, ‘혹시 피비 코울필드 아니?’
‘누구요?’ 하고 그 애가 말했다. 그 아이는 블루 진에다 쉐타를 스무 걔나 껴입고 있었다. 모양이 울퉁불퉁한 걸 보니 그 아이의 엄마가 뜨걔질해 준 것 같았다.
‘피비 코울필드. 칠십 일번가에 사는데. 사학년이야, 저기 ―’
‘피비를 알아요?’
‘응, 내가 오빠야. 지금 어디 있는 지 아니?’
‘그 앤 미쓰 콜린스 반이죠?’ 하고 그 아이가 말했다.
‘몰라. 그래. 그런 거 같애.’
‘그럼 박물관에 있을 거예요. 지난 토요일에 우리가 거기 갔었어요,’ 하고 그 아이가 말하였다.
‘어느 박물관이니?’ 하고 나는 그 아이한테 물었다.
그 아이는 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몰라요,’ 하고 그 아이는 말했다. ‘박물관이예요.’
‘알아, 한데, 그림이 있는 박물관이니, 아니면 인디안이 있는 박물관이니?’
‘인디안이 있는 거예요.’
‘고맙다,’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일어나서 가려고 하다가 갑자기, 오늘이 일요일이란 게 생각났다. ‘오늘은 일요일이쟎아,’ 하고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그 아이는 나를 올려다 보더니 말했다. ‘아, 그럼 거기 없어요.’
그 꼬마는 스케이트 끈을 매는 데 무지하게 정성을 들이고 있었다. 손에 장갑이나 뭐니를 끼고 있지 않아서 손이 온통 빨갛게 얼어 있었다. 나는 꼬마가 끈 매는 것을 도와 주었다. 정말이지, 지난 몇 년 동안 스케이트를 만져 보지 못했다. 하지만 어색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마오십년 뒤에라도 내 손에 스케이트를 쥐어 주면 나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끈을 맬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스케이트 끈을 다 매 주자, 꼬마는 나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다. 그 아이는 아주 예의바르고 다감한 꼬마였다. 꼬마의 스케이트 끈을 매 주거나 뭐를 할 때 꼬마가 예의를 차려서 인사를 하는 것을, 정말이지 나는 좋아한다. 대부분 아이들이 그렇다. 정말 그렇다. 내가 아이한테, 핫 초콜릿이나 뭐나를 먹으러 같이 가지 않을래 하고 묻자 꼬마는 고맙지만 괜찮다고 말했다. 친구를 만나러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언제나 친구를 만나러 간다. 거기엔 졌다니까.
일요일이고 피비는 거기 없었지만, 그리고 날씨가 축축하고 지저분했지만, 나는 공원을 지나서 자연사 박물관 쪽으로 걸어갔다. 스케이트 끈을 매던 꼬마가 말하는 박물관이 거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그 박물관을 손바닥 보듯이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피비는 나와 같은 학교에 다녔는데, 우리는 항상 거기 갔기 때문이다. 미쓰 에이글팅거라는 선생이 거의 매주 토요일 마다 우리를 데리고 거기 갔었다. 어떤 때는 동물들을 구경하고, 어떤 때는 옛날에 인디안들이 만든 물건들을 구경했다. 도기니 밀짚 바구니니 그런 물건들 말이다. 그 생각을 하면 무척 행복해진다. 지금도 기억나는데, 우리는 인디안 물건들을 구경하고 난 뒤에는 보통 큰 극장에서 하는 영화를 보러 갔다. 콜럼버스 영화였다. 영화는 늘, 콜럼버스가 미국을 발견하는 이야기며,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를 졸라서 배를 살 돈을 얻어내는 이야기며 이어서 선원들이 콜럼버스에 대항하여 폭동을 일으키는 이야기 같은 것을 보여 주었다. 콜럼버스 애기 따위에 흥미를 갖는 아이는 하나도 없고, 사탕이나 껌같은 것을 가지고 들어갔기 때문에 극장 안은 정말 맛있는 냄새가 났다. 밖에 비가 오지 않는데도 꼭 비가 오는 것같은 냄새가 나서, 그 안에 있으면 이 세상에서 제일 안락하고 멋지고 물기없는 그런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박물관이 정말 좋았다. 극장에 가려면 인디안 룸을 지나가야 했던 게 생각난다. 그 곳은 아주 긴 방이어서 차례대로 들어가야 했다. 선생님이 먼저 들어가고 이어서 아이들이 들어가는 것이다. 두 줄로 서서 들어가야 하므로 짝이 있게 마련이었다. 대부분 내 짝은 거루트루드 레빈이라는 계집애였다. 그 계집애는 손을 잡기를 좋아했는데, 손이 언제나 끈적끈적하거나 땀이 나거나 그랬었다. 뱌닥은 온통 돌로 되어 있어서, 공기돌이라도 떨어뜨리면 바닥에 사방으로 뛰어 돌아다녀서 선생이 진행을 멈추고, 대체 무슨 일이 났나 하고 돌아 올 정도였다. 하지만 선생은 화를 내지는 않았다, 미쓰 에이글팅거 말이다. 다음에는 저 무지하게 긴 인디안 카누 옆을 지나가는데, 그건 캐딜락 세 대가 쭉 늘어선 만큼이나 길었다. 그 안에는 약 이십 명 정도나 되는 인디안이 타고 있었는데, 몇몇은 노를 젓고, 몇몇은 둘레에 서 가지고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인데, 그 자들은 하나같이 얼굴에 페인트를 칠하고 있는 것이었다. 카누 제일 뒤에는 얼굴에 가면을 쓴 무시무시하게 생긴 자가 있었다. 그 자는 마법사였다. 그 자를 보면 온 몸이 오싹해지곤 했지만, 그래도 나는 그 자가 마음에 들었었다. 또 한가지가 기억나는데, 지나가면서 누가 노나 뭐나를 건드리면, 감시인 중에서 한 사람이 ‘얘들아, 그런 걸 건드라면 못써,’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무슨 경찰이나 그런 사람같이 하는 게 아니고 언제나 아주 멋진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다음엔, 커다란 유리박스를 지나가는데, 그 안에는 인디안들이 막대기를 비벼서 불을 피우고 있고 인디안 여자가 담요를 짜고 있었다. 담요를 짜고 있는 여자는 앞으로 몸을 좀 숙이고 있어서 유방이니 뭐니가 다 보였다. 우리는 언제나 그걸 살짝 보곤 했는데, 여자애들도 그랬다. 하긴 걔네들은 그저 어린애이고 우리처럼 가슴이 없기는 마찬가지니까. 그 다음에는,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여러 걔의 문들 바로 옆에 있는 저 에스키모를 지나갔다. 그는 얼음 호수에 있는 구멍 옆에 앉아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구멍 옆에는 벌써 잡은 고기가 두 마리 정도 있었다. 정말이지, 그 극장은 온통 유리박스였다. 이층으로 된 박스도 있어서, 그 안에는 물웅덩이에서 물을 마시는 사슴들과, 겨울을 지내기 위해서 남쪽으로 날아가는 새들이 있었다. 제일 가까이 있는 새들은 박제를 한 것으로, 전선 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뒤에 있는 것들은 벽에다 그려 놓은 거지만, 진짜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머리를 거꾸로 해서 보면, 그것들은 훨씬 더 서둘러서 날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박물관이 제일 좋은 건, 모든 것들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 거였다. 움직이는 건 하나도 없었다. 거기에 백번이나 간다 하더라도, 그 에스키모는 이제 막 고기 두 마리를 잡아 놓았고, 새들은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으며, 사슴들은 예쁜 뿔과 날씬하고 예뿐 다리를 하고 물웅덩이에서 물을 마시고 있고, 유방이 다 보이는 인디안 여자는 똑같은 담요를 짜고 있을 것이다.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달라지는 게 있다면, 그건 우리 자신이다. 나이가 더 많아지거나 그런 게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우리 자신이 달라진다는 것 뿐이다. 이번엔 오바를 입고 간다거나, 마지막에 같이 줄을 서서 들어갔던 아이가 성홍열에 걸려서 다른 아이가 짝이 되는 그런 것이다. 아니면 미쓰 에이글팅거 대신에 다른 선생이 아이들을 인솔하고 있다든지. 또는 아버지와 엄마가 목욕탕에서 끔찍한 싸움을 하는 소리를 들었다거나, 아니면 길에서 기름이 새어 나와서 무지걔 무늬가 만들어진 물웅덩이를 지나갔다거나 그런 것이다. 내 말은,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지 달라진다는 것이다 ― 그걸 설명하지는 못한다. 또 만약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그러고 싶은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나는 걸어가다가 주머니에서 사냥 모자를 꺼내서 썼다. 나는 거기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날씨가 꽤나 축축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걸어가면서, 옛날에 내가 그런 것처럼 피비가 토요일에 박물관에 가는 생각을 내내 했다. 나는, 내가 보았던 그 똑같은 것들을 피비라면 어떻게 볼까, 그리고 거기 갈 때마다 피비가 어떻게 달라질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게 기분을 우울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뭐 기분이 좋아지지도 않았다. 어떤 것들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야 한다. 그런 것들은 저 커다란 유리박스에 놓고 그대로 놔 두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닌 것이다. 어쨋든, 나는 걸어가면서 그런 생각을 하였다.
나는 놀이터르 지나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아주 조그만 아이들 둘이서 씨이소를 타는 것을 바라보았다. 한 아이는 좀 뚱뚱해서 나는 군형을 맞춰 주려고 마른 아이가 있는 쪽 끝에 손을 갖다 댔다. 하지만 빨리 가 주었으면 하는 것같아서 나는 그냥 거기를 떠났다.
그 때 웃기는 일이 일어났다. 박물관에 도착했을 때, 나는 갑자기 백만 딸라를 준다고 해도 그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든 것이다 ― 그 놈의 공원을 내내 걸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갑자기 박물관이 마음이 내키지 않은 것이다. 만일 피비가 있었다면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피비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박물관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빌트모어로 달려갔다.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쌜리와 빌어먹을 데이트 약속을 해 놓은 것이다.
제 17장
거기 도착했을 때 시간이 좀 남아서, 나는 로비의 시계 옆에 있는 가죽 의자에 앉아서 여자들을 쳐다보았다. 벌써 많은 학교가 방학을 해서, 백만명이나 되는 계집애들이 주위에 앉거나 서서 데이트 상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리를 꼬고 앉은 계집애들과 다리를 꼬지 않고 앉은 계집애들, 다리가 죽여주는 계집애들과 다리가 너저분한 계집애들, 멋쟁이처럼 보이는 계집애들과 사실 알고 보면 되먹지 않을 그런 계집애들. 그건 정말 좋은 구경거리였어, 내 말이 무슨 뚯인지 안다면 말야. 어떤 의미에서는 좀 우울한 일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대체 저 애들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으니까 말이다. 그들이 학교나 대학을 나왔을 때 말이다. 아마 대부분은 멍청한 자식들하고 결혼할 것이다. 자기들 차는 1갤론으로 몇 마일이나 갈 수 있다는 그런 애기만 하는 자식들. 골프나, 아니면 탁구같은 멍청한 시합에서 지기라도 하면 화를 내는 유치한 자식들. 더럽게 비열한 자식들. 책은 하나도 읽지 않는 자식들. 더럽게 따분한 자식들. ― 하지만 이건 조심해야 한다. 내 말은, 어떤 자식들을 따분한 놈들이라고 부르느냐 하는 것 말이다. 나는 따분한 자식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정말이야. 내가 엘크톤 힐즈에 있었을 때, 해리스 매클린이라는 놈하고 두 달 정도 같은 방을 쓴 적이 있다. 그 놈은 머리가 좋으니 뭐니 했지만, 내가 지금까지 만난 중에 제일 따분한 놈이었다. 그 놈은 아주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거의 쉬지 않고 지껄여댔다. 그 놈은 계속해서 지껄이는데, 끔찍한 게 뭐냐 하면, 그 중에서 들을 만한 얘기는 하나도 없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 놈도 할 줄 아는 게 한가지 있었다. 그 새끼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휘파람을 잘 불었다. 그 놈은 침대를 정돈하거나 벽장 속에 뭔가를 건다 ― 그 놈은 항상 벽장에 뭔가를 건다 ― 그게 사람을 짜증나게 한다니까 ― 그런데 그런 걸 하면서, 그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로 지껄이지 않으면 언제나 휘파람을 분다. 그 놈은 클래식 음악까지도 휘파람을 불었는데, 대부분은 재즈를 불어댔다. 그 놈은, ‘양철지붕 블루스’와 같은 아주 재즈풍의 노래까지 멋지고 수월하게 불어댔기 때문에 ― 벽장에 뭔가를 걸면서 말야 ― 거기엔 깜박 죽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그 놈한테 넌 참 무지하게 휘파람을 잘 분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내 말은, 누구한테 가서, ‘휘파람을 무지하게 잘 부는데.’ 하고 말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비록 그 놈은, 내가 반쯤은 미칠 지경이 될만큼 따분한 놈이었지만, 그래도 휘파람 하나는 정말 끝내 주게 불었기 때문에, 내가 들어 본 중에서 제일 훌륭했다, 그와 거의 두 달이나 같은 방을 쓴 것이다. 그래서 난 따분한 놈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을 삼가야 한다. 그래서 멋진 계집애들이 그런 놈들과 결혼하는 걸 보더라도 과히 유감스럽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남 모르게 휘파람을 엄청나게 잘 부른다거나 그럴지도 모른다. 도대체 누가 그런 걸 안단 말이냐? 적어도 나는 모른다.
마침내, 쌜리 계집애가 계단을 올라오기 시작해서 나는 그녀를 맞으러 내려갔다. 그 계집애는 멋진 모습이었다. 정말 그랬어. 그 계집애는 검정색 오바에, 약간 검은색의 베레모를 쓰고 있었다. 베레모를 쓰는 법이 없는 계집애지만 그 베레모는 근사해 보였다. 웃기는 일이 뭐냐 하면, 그 계집애를 보는 순간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난 미친 놈이다. 나는 그 계집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그 계집애와 사랑에 빠지고 싶은 생각이 들고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정말 하늘에 맹세코, 나는 미친 놈이야. 그건 인정해.
‘홀든!’ 하고 계집애가 소리를 질렀다. ‘만나서 반가워! 이게 몇 년만이니.’ 계집애는 어디서 누구를 만나면 당황할 정도로 큰소리로 떠들었다. 그 계집애는 더럽게 잘 생겼기 때문에 그걸 탓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언제나 당황했다.
‘만나서 반갑다,’ 하고 나는 말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어떻게 지내니?’
‘물론 잘 지내지. 내가 늦었니?’
나는 계집애한테 아니라고 말했지만 사실, 십분 정도는 늦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건 조금도 걔의치 않았다. 「쌔터데이 이브닝 포스트」니 그런 데 나오는 만화를 보면 하나 같이, 여자가 늦게 나온다고 길모퉁이에서 남자들이 더럽게 화를 내며 서 있는 게 나오는데. 그런 건 부질없는 이야기다. 계집애가 나타났을 때 근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면, 누가 늦는다고 뭐라 그러겠는가?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빨리 가야겠다,’ 하고 나는 말했다. ‘연극이 두시 사십오분에 시작하거든.’ 우리는 택시를 타려고 게단을 내려갔다.
‘우리 뭘 보지?’ 하고 계집애가 말했다.
‘모르겠어. 런츠. 그거 밖에 표를 사지 못했거든.’
‘런츠라구! 오, 멋지다.’
그 계집애는 런츠 연극이라면 환장한다고, 전에 말했었지?
우리는 극장으로 가는 택시안에서 조금 희롱질을 했다. 계집애는 루즈를 칠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내가 끈질기게 구니까 저도 어쩌는 수가 없었다. 택시가 교통 때문에 갑자기 서는 바람에, 두 번이나 의자에서 고꾸라질 뻔했다. 망할 놈의 운전사들은 절대 다른 차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차를 몬다, 하늘에 맹세코, 그들은 다른 차엔 신경을 안 쓴다. 이윽고 나는, 계집애를 한동안 끌어안고 있다가, 내가 얼마나 미친 놈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계집애를 사랑하느니 뭐니하고 지껄여댔다. 물론, 그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런 말을 한 순간에는 진정으로 그런 마음이었던 것이다. 난 미친 놈이야. 하늘에 맹새코, 난 미친 놈이다.
‘오, 나도 널 사랑해,’ 하고 계집애가 말했다. 그리고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약속해, 머릴 기르겠다구. 짧은 머린 이제 촌스럽게 보여. 하지만 네 머린 정말 멋있어.’ 멋있다구? 젠장.
연극은 내가 본 것만큼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너저분하긴 마찬가지였다. 저 부부가 나오는 게 벌써 오십만 번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젊으니 뭐니 할 때부터 연극이 시작하는데, 여자의 부모는 여자가 남자하고 결혼하는 걸 반대하지만, 여자는 어쨋든 그와 결혼한다. 그 다음에 그 부부는 늙어간다. 남편은 전쟁터로 나가고, 부인은 술주정뱅이인 오빠가 있다. 나는 과히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내 말은, 가족중에 누가 죽거나 뭐하면 별로 재미가 없다는 말이다. 그들은 전부 다 배우들인 것이다. 남편하고 부인은 꽤 멋있는 부부이다 ― 아주 재기가 있고 그렇다 ― 하지만 난 그들한테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한가지 예를 들면, 그들은 연극 내내 차나 뭐를 계속 마신다. 그들을 볼 때마다, 어떤 시종이 그들 앞에 차를 갇다 놓거나 부인이 누군가에게 차를 따라 준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는 것이다 ― 사람들이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걸 보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알프레드 런트와 린 폰태인은 멋진 부부였지만 난 그들이 별로 마음애 들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달랐다는 건 인정하겠어.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행동하지도 않고 또 배우들처럼 행동하지도 않는다. 무슨 말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긴 하다. 그들은 자기들이 명사니 뭐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다. 내 말은, 그들은 괜찮은 사람들이라는 거지만, 지나치게 괜찮다는 말이다. 그 중에 하나가 일장 연설을 마치면 다른 하나가 바로, 무슨 말인지 재빠르게 지껄이는 것이다. 마치 그 사람들은 지껄이고 또 남의 말을 가로채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문제는 뭐냐 하면, 그들이 너무 그런 걸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말이다. 그들은, 그리니치 빌리지의 저 어니가 피아노를 치는 것하고 좀 비슷했다. 만일 누가 너무 멋진 일을 했다고 치자, 그런데 조금 있다가 자제하지 않으면 좀 잘난 체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땐 이미 멋진 게 아니다. 하지만 어쨋든, 그들은, 런츠 부부 말이다, 그 연극에서 그래도 유일하게 영리한 것처럼 보였다. 그건 인정해야 돼.
1막이 끝나고 우리는, 거기 온 다른 얼간이들처럼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 그건 정말 장관이었어. 일생에 아니꼬운 작자들이 그렇게 많은 건 본 적이 없을 거야, 하나같이 귀청이 떨어져 나가라 하고 담배를 피워대면서 자기들이 얼마나 똑똑하다는 걸 남들이 들으라고, 연극에 대해서 떠들어대는 거야. 어떤 멍청한 영화배우 하나가 우리 옆에서 담배를 피우며 서 있었어. 이름은 모르겠는데, 전쟁 영화에서 진짜 전투가 벌어지기도 전에 항상 겁을 먹는 그런 역할을 하는 작자였다. 그 작자는 무지하게 멋있는 어떤 금발머리하고 같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있는 걸 모른 체하면서 따분해서 못견디겠다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더군. 정말 무지하게 겸손하지 않아? 거기엔 정말 졌어. 쌜리 계집애는 런츠 부부를 열심히 칭찬하는 것외엔 별로 말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그건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서 멋있게 보이려고 열심히 꾸미고 있기 때문이었지. 그러다가, 갑자기 로비 건너 편에 자기가 아는 어떤 멍청한 자식이 있는 걸 보았다. 흑회색 플란넬 양복에 체크 무늬 조끼를 입고 다니는 그런 자식들 있잖아. 아이비 리그 자식들 말이다. 정말 대단하지 않아! 그 놈은 벽 옆에 서서 미친 듯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아주 지루해서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쌜리 계집애는, ‘어디서 쟤를 본 적이 있는데.’ 하고 계속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그 계집애는 어딜 가든지 누군가 아는 작자가 있었다, 아니면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계집애가 정말 지겨울 정도로 그딴 소리를 계속해서 지껄이길래, 나는, ‘저 놈을 알면, 가서 열렬하게 키쓰라도 해 주지 그러냐? 좋아할 텐데.’ 하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계집애는 더럽게 화를 내더군. 마침내, 그 얼간이가 계집애를 알아 보고 이쪽으로 와서 인사를 하였다. 그들이 인사하는 걸 봤어야 하는데. 아마 이십년은 만나지 못한 줄 알았을 거야. 어렸을 때 같은 목욕통에서 목욕이나 뭐나를 하고 지낸 줄 알았을 것이다. 정말 진부한 짓 아냐? 구역질이 났다니까. 웃기는 건 뭐냐 하면, 그들은 어떤 아니꼬운 파티에선가 아마 딱 한번 만났다는 것이다. 마침내, 그들이 찧고 까부는 짓을 다 했을 때, 쌜리 계집애가 우리를 인사시켰다. 그 작자의 이름은 조지 뭐였다 ―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 그리고 앤도버에 다니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일 아냐! 쌜리 계집애가 그 작자한테 연극이 어땠냐고 물었을 때 그 작자를 봤어야 하는데. 그 작자는, 어떤 물음에 대답을 하기 전에 무슨 말을 할 지를 꾸미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사깃꾼같은 작자였다. 그 작자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다가 뒤에 있는 어떤 여자의 발을 밟았다. 아마 그 여자의 발톱이 하나도 성하지 못했을 거야. 그 작자는 연극 자체는 별 건 아니지만, 런츠 부부는 말할 것도 없이 천사 그 자체라고 말했다. 천사라. 제기랄. 천사라구! 거기엔 졌다. 그 다음에 그 작자와 쌜리 계집애는 자기들이 아는 사람들 얘기를 죽 늘어 놓기 사작했다. 그건 정말,지금까지 들어 본 대화중에서 제일 아니꼬운 대화였다. 그들은 계속해서 가능하면 빨리 어떤 곳과, 거기 사는 사람들 생각을 하고 그들의 이름을 주어 섬기는 것이었다. 다시 들어 갈 시간이 되었을 땐 정말 게우고 싶은 기분이었다. 정말 그랬어. 그리고 다음 막이 끝났을 때, 그들은 다시 그 빌어먹을 지루한 애기를 늘어 놓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더 많은 곳과 거기 사는 사람들을 생각해 내는 것이었다. 가장 나쁜 건 뭐냐 하면, 그 얼간이가 저 아니꼬운 아이비 리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었다. 아주 싫증나 있고 속물같은 저 목소리말야. 그 자식은 꼭 무슨 계집애같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 자식은 내 데이트 상대에게 지분덕거리는 짓도 서슴치 않았다, 걔새끼. 연극이 끝나고 그 자식이 우리하고 두 불럭이나 같이 걷길래, 나는 잠시나마, 그 자식이 우리하고 같이 택시를 타려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자식은 자기와 비슷한 아니꼬운 자식들과 칵테일을 마실 약속이 돼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자식들이 체크 무늬 조끼들을 입고 무슨 바아에 들어 앉아서, 저 피곤하고 속물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연극이나 책 또는 여자들을 비평하고 있을 게 상상이 됐다. 그런 자식들은 정말 구역질이 난다니까.
거의 열 시간이나 그 아니꼬운 앤도버 자식의 얘기를 듣고 난 뒤에, 우리가 택시에 탈 때 쯤 되어서, 나는 쌜리 년이 좀 싫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계집애를 집에 데려다 줘 버리자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 정말 그랬어 ― 하지만 계집애는, ‘좋은 생각이 났다!’ 하고 말했다. 그 계집애는 언제나 좋은 생각이 난다니까. ‘들어 봐,’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저녁 먹으려면 몇시까지 집에 가야 돼니? 내 말은, 지금 뭐 바쁜 일이 없냐 하는 거야. 정해진 시간에 집에 들어가야 돼?’
‘나 말야? 아니. 그런 시간은 없어,’ 하고 내가 말했다. 정말이지 마음 속의 말은 결코 하지 못한다. ‘왜?’
‘래디오 시티에 스케이트 타러 가자!‘
그 계집애는 항상 그런 생각을 한다.
‘래디오 시티에 스케이트 타러 가자구? 지금 당장 말야?’
‘한 시간 정도. 가고 싶지 않아? 가고 싶지 않다면 ―’
‘가고 싶지 않다군 하지 않았어,’ 하고 나는 말했다. ‘좋아. 니가 가고 싶다면.’
‘정말이니? 가고 싶지 않으면 그렇다구 해. 내 말은, 가든 안가든 난 별로 상관없어.’
하지만 별로 그런 것 같지 않았다.
‘거기선 멋있는 스케이트 옷도 빌려 줘,‘ 하고 쌜리 계집애가 말했다. ‘쟈넷 컬츠도 지난 주에 빌렸대.‘
계집애가 그렇게 가려고 하는 이유도 거기 있었다. 계집애는 엉덩이 위까지 내려오는 그런 조그만 옷을 입고 자기를 과시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거기 갔는데, 우리한테 스케이트를 주고 나서, 쌜리한테는 엉덩이를 위로 들어올리는 그런 파랑색 옷을 주었다. 그런데, 계집애는 그런 옷을 입으니까 정말 예뻤다. 그건 인정해야 돼. 그리고 자기도 그걸 알고 있었다. 계집애는, 자기의 조그만 엉덩이가 얼마나 귀여운지 나보고 보라고 내 앞에서 계속 걸어다녔다. 계집애는 정말 엉덩이도 귀여웠다. 그것도 인정해야 돼.
그런데 웃기는 건 뭐냐 하면, 우리가 거기서 제일 스케이트를 못탄다는 거였다. 정말이야, 제일 못탔어. 게다가 쇼를 했지 뭐냐. 쌜리 년은 발목이 자꾸 안으로 굽어서 거의 얼음에 닿을 지경이었다. 그건 바보같이 보일 뿐만 아니라 아마 되게 아팠을 거야. 내 발도 아팠다. 발이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우린 정말 대단하게 보였을 거야. 그리고 더 나쁜 건 뭐냐 하면, 거기 있는 수백명이나 되는 구경꾼들 말인데, 그 자들은 사방에 서 가지고 누가 고꾸라지지나 않나 하고 둘러보는 것밖에는 다른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안쪽에 테이블에 가서 뭐 좀 마시지 않을래?‘ 하고 마침내 내가 말했다.
‘니가 오늘 하루 종일 한 생각중에 그게 제일 나은 생각이다,‘ 하고 계집애가 말했다. 몹시 힘든 모양이었다. 정말 안됐다. 나는 정말로 계집애가 딱했다.
우리는 빌어먹을 스케이트를 벗어 버리고, 양말만 신고 마실 거나 마시면서 다른 스케이트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바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 마자, 쌜리 계집애는 장갑을 벗고 나는 담배를 하나 주었다. 계집애는 별로 기분이 좋은 것같지 않았다. 웨이터가 와서 나는 쌜리한테는 코카콜라를 시키고 ― 나는 스캇치와 소다를 시켰다. 하지만 그 자식이 갖다 주지 않아서 나도 코카콜라를 마셨다. 이어서 나는 성냥으로 불을 좀 켜기 시작했다. 나는 기분이 좀 그럴 때, 그런 짓을 많이 한다. 성냥이 타 들어가서 더 이상 붙잡고 있지 못할 때까지 잡고 있다가 재떨이에 떨어뜨린다. 그건 신경질적인 버릇이다.
이윽고 갑자기, 난데 없이 섈리가 말했다. ‘이봐. 좀 알아야겠는데. 크리쓰마스 이브에 트리 자르는데 도와주러 올 거니 안 올거니? 그걸 알아야 돼.‘ 계집애는 스케이트 탈 때 발목이 그런 것때문에 아직도 좀 기분이 상해 있었다.
‘간다고 편지에 썼잖아. 스무 번은 물어봤겠다. 확실히 갈께.’
‘정말 알아야 한다니까,’ 하고 계집애는 말했다. 계집애는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는 성냥에 불붙이는 짓을 멈추고, 테이블 너머로 계집애한테 좀 가까이 상체를 숙였다. 나는 마음 속에 할 얘기가 꽤 많았다. ‘이봐, 쌜리’ 하고 애가 말했다.
‘왜?’ 하고 계집애가 말했다. 계집애는 반대 편에 있는 어떤 계집애를 보고 있었다.
‘너 넌더리가 난 적 있니?’ 하고 내가 말했다. ‘내 말은, 니가 무슨 일인가 하지 않으면 모든 게 더럽게 될 것같아서 무서운 생각이 든 적이 있냐 말야. 내 말은, 넌 학교니 뭐니 하는 게 좋으냐 말이다.’
‘학교는 정말 끔찍하게 따분해.’
‘내 말은, 니가 학교를 정말 싫어하냐는 거야. 나도 학교가 끔찍하게 따분하다는 건 알아, 한데 니가 정말 학교가 싫으냐는 거다.’
‘글쎼, 뭐 아주 그렇다는 건 아니구, 넌 맨날 ―’
‘난 학교가 싫어. 정말이지, 난 학교가 싫어,’ 하고 내가 말했다. ‘그것만이 아냐. 난 모든 게 다 싫어. 뉴욬이니 뭐니에 사는 것도 싫어. 택시도 그렇구, 뒷문으로 내리라느니 뭐니하고 늘 운전사가 소리지르는 저 매디슨 스퀘어 버스, 런츠를 천사라고 부르는 아니꼬운 놈들한테 소걔받는 것도 그렇구, 밖으로 나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하구, 브룩스 백화점에서 항상 바지를 재어 주는 그런 작자들도 그래. 그리고 늘 ―’
‘소리지르지 마, 제발,’ 하고 쌜리 년이 말했다. 그건 웃기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조금도 소리지르지 않았으니까.
‘자동차 얘기를 해 볼까,’ 하고 나는 저 아주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야, 전부 자동차에 미쳐 있어. 자동차에 조금만 상처가 날까 봐 걱정하고, 자기 자동차가 1 갤론에 몇 마일이나 갈 수 있나 하는 얘기만 하고 있고, 또 새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면, 더 새 차로 바꾸려고 벌써 생각하고 있다구. 난 오래된 자동차도 좋아하지 않아. 내 말은, 그런 것들은 하나도 관심없다는 말이야. 난 차라리 말을 가지겠어. 말은 적어도 인간적이거든, 제기랄. 말을 가지곤 적어도 ―’
‘난 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하고 쌜리 년이 말했다. ‘넌 이 얘길 하다가 갑자기 ―’
‘너 이거 알아?’ 하고 나는 말했다. ‘내가 지금 뉴욬에 있는 건, 아니 다른 데 있더라도 아마 너 때문일거야. 니가 여기 없다면 난 아마 다른 데 있을 거야. 숲속이나 어떤 거지같은 데 있겠지. 사실, 내가 여기 붙어 있는 건 너 때문이지.’
‘넌 귀여워,’ 하고 계집애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계집애가 내가 화제를 바꿔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언젠가 남자 학교에 한번 가 봐야 돼. 언제 한번 가 봐,’ 하고 나는 말했다. ‘거긴 되먹지 않은 놈들 투성이야, 그리고 공부 밖엔 하는 게 없지, 그래야 언젠가 그 놈의 캐딜락을 살 수 있을 만큼 영리해 질 테니까 말야, 그리고 축구 팀이 지면 무슨 큰일이나 난 것같은 표정을 지어야 하고 말야, 또 하루 종일 하는 얘기라니, 계집애들, 술 그리고 섹스 얘기밖엔 없어, 그리고 자기들끼리 무슨 지저분한 그룹을 만들어서 뭉치고 말야. 야구 팀에 있는 놈들은 자기들끼리 뭉치고, 캐톨릭들은 자기들끼리 뭉치고, 제기랄, 똑똑하다는 놈들은 자기들끼리 뭉치고, 브릿지 게임하는 놈들은 자기들끼리 뭉친다 이 말이야. 심지어는 무슨 「이달의 책」클럽에 속한 놈들도 자기들끼리 뭉쳐. 조금이라도 지성이란 걸 가져 보려고 생각만 해도―’
‘이제, 내 말 좀 들어 봐,’ 하고 쌜리 계집애가 말했다. ‘학교에서 그런 것보다도 다른 걸 배우는 애들도 많아.’
‘그건 그래! 그렇지, 일부는 그렇지! 하지만 내가 학교에서 배우는 건 그게 다란 말야. 알아? 그게 내 말이야, 그게 정확하게 내가 말하는 거라구,’ 하고 내가 말했다. ‘난 어떤 것에서도 거의 아무 것도 배우는 게 없어. 난 지금 상태가 나빠. 지금 더러운 심정이라구.’
‘정말 그래 너는.’
그 때, 갑자기 나는 이런 생각이 났다.
‘이봐,’ 하고 나는 말했다. ‘생각이 났어. 여기서 나가는 게 어때? 내 생각은 이래. 그리니치 빌리지에 아는 작자가 하나 있는데, 이 삼주 정도 차를 빌릴 수 있어. 그 작잔 나하고 같은 학교애 다녔거든, 그리고 나한테 10 딸라 빚진 게 있어. 우리가 뭘 하냐 하면 말야, 내일 아침에 매사추세츠나 버몬트로 가서 거길 사방 돌아 다니는 거야, 구경하는 거지. 거긴 정말 무지하게 멋있단 말야. 정말이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굉장히 흥분되었다, 그래서 나는 좀 앞으로 손을 내밀어 쌜리 계집애의 손을 잡았다. 난 정말 더럽게 멍청이다. ‘농담이 아냐,’ 하고 나는 말했다. ‘난 은행에 180 딸라 정도 있어. 아침에 은행이 문 열면 찾을 수 있어, 그럼 거기 가서 그 작자의 차를 얻는 거야. 농담이 아냐. 저 오두막집이나 그런 데서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있는 거야. 그 다음에, 돈이 다 떨어지면, 어디 가서 일자리를 하나 얻어서 시냇물이나 뭐 그런 게 있는 데서 살 수 있겠지. 그리고, 나중에 우리 결혼이니 뭐니를 하는 거야. 겨울이나 뭐 그런 땐 내가 나무를 잘라 올 수도 있구. 정말이지, 우린 재미있게 지낼 거야. 어떻게 생각해? 자아! 어떻게 생각해? 나하구 그렇게 할래? 어서 말해 봐!’
‘그런 건 하지 못해,’ 하고 쌜리 계집애가 말했다. 계집애는 더럽게 화가 난 목소리였다.
‘왜 안 돼? 도대체 왜 안 돼?’
‘소리 좀 지르지 마, 제발,’ 하고 계집애가 말했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계집애한테 소리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안 돼? 왜 안 돼냐구?’
‘넌 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먼저, 우린 둘 다 어린애야. 그리고 돈이 다 떨어졌을 때 일자릴 얻지 못하면 어떻게 할 건지 생각이나 해 봤어? 우린 굶어 죽을 거야. 니 얘긴 다 현실성이 없어, 심지어는―’
‘현실성이 없는 게 아냐. 난 일자릴 얻을 거야.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왜 그래? 나랑 가고 싶지 않아? 그렇다면 그렇다고 말해.’
‘그런 게 아냐. 전혀 그런 건 아냐,’ 하고 쌜리 계집애가 말했다. 나는 어쩐지 계집애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우린 그런 일들을 할 시간이 많아 ― 그런 일들 말야. 내 말은, 니가 대학이나 그런 델 들어가고 난 뒤에 말야, 그리고 우리가 결혼이나 그런 걸 해야 한다면 말야. 그 땐 멋진 데도 많이 갈 수 있을 거야. 넌 아직 ―’
‘아냐, 그렇지 않을 거야. 하나도 갈 데가 없을 거야. 그 땐 완전히 달라질 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다시 더럽게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뭐라구?’ 하고 계집애가 말했다. ‘무슨 말하는지 안 들려. 아깐 소릴 지르더니, 지금은 ―’
‘아니라고 했어, 내가 대학이니 뭐니에 들어가고 난 뒤엔 뭐 멋진 데 같은 덴 없을 거라구. 잘 들어. 그 땐 완전히 다를 거라구. 수트 케이스니 뭐니 다 가지고 엘리베이털 타고 아래로 내려 가자. 그리고 호텔이니 뭐니에서 사람들한테 전화해서 작별을 하고 우편엽서를 보내는 거야. 그리고 난 무슨 사무실에서 일해서, 돈을 많이 벌고, 택시니 메디슨 애비뉴 버스니를 타고 일하러 나가고, 신문을 보고, 또 항상 브릿지 게임을 하고, 그리고 영화관에 가서 멍청한 단편영화나 무슨 멋진 영화의 예고편이나 뉴스 영화를 보겠지. 뉴스영화라. 제기랄. 거긴 늘 멍청한 경마나, 어떤 마누라가 배 위에서 병을 깨거나, 침팬지가 바지를 입고 빌어먹을 자전거를 타는 게 나오지. 절대로 똑같진 않단 말야. 넌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 하나도 몰라.’
‘그럴 지도 모르지! 너도 모를 걸.’ 하고 쌜리 계집애가 말했다. 그 땐 우리 둘 다 서로가 미워 죽을 지경이었다. 무언가 지적인 대화를 나누는 게 하나도 의미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얘기를 꺼낸 걸 더럽게 후회하였다.
‘자, 여기서 나가자,’ 하고 나는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너 때문에 똥구멍이 아플 지경이야.’
정말이지, 내가 그런 말을 하자, 계집애는 화가 나서 죽으려고 했다. 그런 말은 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리고 보통때라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계집애는 나를 더럽게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보통 그런 야비한 말은 계집애들한텐 하지 않는다. 정말이지, 계집애는 화가 나서 미치려고 했다. 나는 미치광이처럼 사과했지만 계집애는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계집애는 울기까지 했다. 나는 그게 좀 겁이 났는데, 왜냐하면 계집애가 집에 가서, 자기 아버지한테 내가 자기더러 똥구멍을 아프게 했다고 일러 바칠까 봐 조금 겁이 났기 때문이다. 계집애 아버지는 말은 없지만 덩치가 엄청나게 큰 그런 종류의 인간이거든, 게다가 나를 별로 탐탁하게 생각치 않고 있었다. 그 작자는 언젠가 쌜리한테, 내가 너무 말이 많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진심이야. 미안해,’ 하고 나는 연방 말했다.
‘미안하다구. 미안하다구. 그것 참 웃긴다,’ 하고 계집애가 말했다. 계집애는 여전히 조금 울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는 그런 말을 한 게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자, 내가 집에 데려다 줄께. 정말이야.’
‘나 혼자도 집에 갈 수 있어, 고맙지만. 내가 너보고 집에 데려다 달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넌 미쳤어. 지금까지 어떤 남자애도 나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
생각해 보면, 이런 일 자체가 어떻게 보면, 좀 웃기는 일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나는 그러지 말아야 하는 짓을 했다. 나는 웃음을 터뜨린 것이다. 그것도 저 머저리같이 커다랗게 웃었던 것이다. 내 말은, 내가 만일 극장이나 그런 데 앉아 있었다면, 난 아마 앞으로 고개를 내밀고 제발 좀 닥쳐라 하고 자기한테 말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게 쌜리 계집애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나는 어느 정도 거기에 붙어 앉아서, 사과하고 날 용서해 달라고 연방 말했지만 계집애는 들어 주지 않았다. 계집애는 나보고 빨리 가 버려라, 자기를 혼자 내버려 달라고 말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렇게 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서, 신발이니 뭐니를 찾아서 혼자 밖으로 나왔다. 그래서는 안됐지만, 그 때쯤엔 나도 꽤 지쳐 있었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내가 왜 그 따위 얘기를 계집애한테 시작했는지 모른다. 내 말은, 매사추세츠니 버몬트니 하고 어디로 간다는 얘기 말이다. 계집애가 따라간다고 했어도 나는 아마 데리고 가지 않았을 거다. 간다고 해도 그 계집애하곤 안 갔을 것이다. 그런데, 끔찍한 건 뭐냐 하면, 내가 계집애한테 가자고 졸랐을 땐, 진심으로 그랬다는 거야. 그게 끔찍하다는 거다. 하늘에 맹세코, 난 미친 놈이야.
제 18장
스케이트장에서 나왔을 때 배가 좀 고파서 나는 약국에 들어가서 스위스 치즈 쌘드위치하고 맥아우유를 먹었다. 그 다음에 전화박스에 들어갔다. 제인 계집애한테 전화를 해서 집에 왔나 한번 알아보려고 생각한 것이다. 내 말은 저녁 내내 할 일도 없고 해서 계집애한테 전화해 보자, 만일 집에 왔으면, 춤추러 가거나 아니면 어디 가서 뭐든 하려는 것이었다. 계집애하고 알고 지냈지만, 그동안에 같이 춤추러 가거나 뭐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계집애가 춤추는 것을 본 적은 한번 있다. 굉장히 춤을 잘 추는 것 같았다. 그건 클럽에서의 저 독립기념일 댄스 파티였다. 그 때는 계집애를 잘 몰랐었고, 내가 계집애한테 춤추자고 끼어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계집애는 쇼아트에 다니는 알 피크라는 끔찍한 작자하고 데이트를 하는 중이었다. 그 작자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항상 수영장 근처에서 어슬렁 거리는 놈이었다. 그 작자는 라스텍스 종류로 만든 수영 팬티를 입었고, 늘 높은 데서 다이빙을 하였다. 그 작자는 하루 종일 앞으로 뛰어서 뒤로 돌아 떨어지는 다이빙만 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그것 밖에 없었는데도 그 작자는 자기가 굉장히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체격만 볼 품 있지 머리 속은 텅 빈 작자였다. 어쨋든, 제인이 그 날 밤에 데이트하는 게 그 작자였다. 나는 그게 이해되지 않았다. 정말이야, 그게 이해되지 않았어. 나는 제인하고 몇바퀴 정도 돌다가, 어떻게 알 피크같은 허풍장이 놈하고 데이트를 할 수 있냐고 물어 보았다. 제인은 그 작자가 허풍장이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 작자는 열등의식이 있다는 것이었다. 계집애는 그 작자에게 동정이나 뭐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이 보였는데, 그냥 그런 체하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그런 것이었다. 계집애들은 그런 게 웃긴다. 어떤 걔자식 ― 아주 비열하거나 잘난 체하거나 그런 작자 ― 얘기를 계집애들한테 하면, 열등의식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마 그런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그렇더라도 그 놈이 걔자식이라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다. 계집애들이란. 계집애들이 무슨 생각을 할 지는 절대로 알 지 못한다. 한번은 내 친구한테, 로버타 월시라는 계집애의 같은 방 친구를 데이트 상대로 소걔해 준 적이 있다. 그 친구 이름은 밥 로빈슨이었는데 진짜 열등의식이 있는 놈이었다. 그가 자기 부모를 되게 창피하게 생각한다는 걸 누구나 금방 알 수 있었는데, 왜냐하면 그의 부모들은 ‘그 사람이가’ 또는 ‘그 여자이가’ 또는 그런 식으로 말을 하고 또 별로 잘 살지도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걔자식이나 뭐 그런 놈은 아니었다. 그는 아주 멋있는 놈이었다. 하지만 로버타 월시의 방 친구는 그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 계집애는 로버타에게, 그가 너무 잘난 체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 그런데 그가 너무 잘난 체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계집애한테 자기가 토론클럽의 회장이라고 우연히 말한 것 때문이었다. 그런 사소한 일을 가지고 그 계집애는 그가 잘난 체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계집애들한테 끔찍한 게 뭐냐 하면, 그들이 어떤 꼬마를 좋아하고 있다면, 그가 아무리 걔자식이라도 그가 열등 의식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가 아무리 멋있는 놈이라고 해도 잘난 척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똑똑한 계집애들도 그렇다.
어쨋든, 나는 제인 계집애한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아서 그냥 끊어야 했다. 다음에 나는, 도대체 누가 지금 이 저녁 시간에 전화를 받을 지 하고 주소록을 훑어 보았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 하면, 내 주소록엔 대충 세 명 밖에 없었다는 거다. 제인, 엘크톤 힐즈에서의 내 선생이었던 앤쏠리니 선생, 그리고 아버지 사무실 전화번호였다. 나는 사람들 전화번호를 적어 놓는 걸 늘 잊어버린다. 그래서 결국 내가 뭘 했냐 하면, 칼 루쓰 놈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내가 나가고 난 뒤에 우튼 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나보다 세 살 정도 나이가 많았는데,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저 똑똑하다는 그런 놈들 중의 하나였다 ― 그는 우튼에서 I. Q. 가 제일 높았다 ― 나는 그가 어디에서 나하고 저녁이나 같이 먹으면서 약간 지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어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놈은 어쩌다가 굉장히 흥미있는 얘기를 할 줄 아니까. 그래서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지금 콜럼비아 대학에 다니고 있었지만, 65번가나 어디에 살고 있었다. 나는 그가 집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에게 전화를 했을 때, 그는 같이 저녁은 먹지 못하지만, 54번가에 있는 위커 바에서 열 시에 한 잔 정도 마실 수는 있다고 말했다. 내가 전화를 걸어서 그 놈이 꽤 놀랐을 거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그 놈을 되먹지 않은 머저리라고 부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열 시까진 시간이 꽤 남아 있어서, 내가 뭘 했냐 하면, 래디오 씨티에 쇼를 보러 갔다. 그건 아마 내가 한 일 중에 제일 형편없는 짓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극장이 가까이 있었고 다른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내가 들어갔을 때는 엉터리같은 쇼가 한창이었다. 로켓트 패거리는 서로 상대의 허리에 총을 갖다 대고 있을 땐 늘 그렇듯이 머리통에 총을 쏘아대고 있었다. 관객들은 미친 둣이 박수를 쳐 댔다, 그리고 내 뒤에 앉은 어떤 작자는 자기 마누라한테 쉬지 않고 지껄여 댔다, ‘저게 뭔지 알아? 정확성이란 거야.’ 그 말엔 졌다. 로켓트 패거리가 나가고 난 뒤에는, 어떤 친구가 턱시도를 입고 롤러 스케이트를 타고 나와서, 작은 테이블 밑으로 스케이트를 타면서 끊임없이 죠크를 늘어 놓았다. 그는 스케이트를 굉장히 잘 탔지만, 마치 자기는 무대 위에서 롤러 스케이트 타는 연습을 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별로 재미있지 않았다. 그건 정말 멍청해 보였다. 그저 내가 그런 즐길 기분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다음에, 그가 나가고 나자, 래디오 시티에서 해마다 하는 저 크리쓰마스 공연이 벌어졌다. 무슨 천사란 천사는 다 상자니 뭐니에서 나오고, 남자 놈들은 십자가니 뭐니를 매고 사방 돌아다니면서 같이 한데 뭉쳐서 ― 전부 합쳐 천 명은 되었을 거다 ― “경건한 자들이여 모두 나와라!” 하는 노래를 미친 듯이 불러대는 것 말이다. 정말 대단한 광경 아냐? 그런 게 뭐 굉장히 거룩하고 또 굉장히 멋있는 광경으로 여겨지게 돼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난, 제기랄, 한 뗴거리의 배우들이 십자가를 매고 사방 돌아다니는 것에서 무슨 거룩하거나 멋있는 건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그들이 공연을 전부 마치고 다시 무대 밖으로 뛰어나갈 때 보면, 담배를 피우거나 뭔가를 마시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작년에 나는 쌜리 헤이즈 계집애하고 같이 그걸 봤었는데, 계집애는 참 멋있다고 연방 말하는 것이었다, 의상이니 뭐니가 말야. 나는, 예수가 그걸 봤다면 아마 게웠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 저 장식 달린 옷이니 뭐니를 말이다. 그러자 쌜리는 내가 천벌을 받을 무신론자라고 말했다.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 예수의 마음에 들었을 친구가 단 하나 있다면, 오케스트라에서 큰 북을 치는 친구였을 것이다. 나는 거의 여덟 살 때부터 그 친구를 보아 왔다. 내 동생 앨리와 나는 ― 만일 부모님이나 누구와 같이 왔다면, 그 친구를 보려고 자리를 옮겨서 아래 쪽으로 내려가곤 했었다. 그는 내가 본 중에서 제일 북을 잘 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두 세번 밖에는 북을 치지 않지만, 북을 치지 않을 때도 절대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지 않는다. 그러다가 북을 칠 때가 되면, 그는 얼굴에 긴장된 표정을 보이며 아주 근사하고 유쾌하게 북을 치는 것이다. 한번은 앨리와 내가 아버지와 함께 워싱턴에 간 적이 있는데, 앨리는 그에게 엽서를 보냈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그 엽서를 받지 못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그 때 엽서를 어떻게 보내는 건 지 잘 몰랐었으니까.
저 크리쓰마스 공연이 끝나고 빌어먹을 영화가 시작됐다. 얼마나 엉터리같은 영환지 거기서 눈을 땔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알렉 뭔가하는 어떤 영국 작자의 얘긴데, 전쟁에 나갔다가 병원이니 뭐니에서 기억을 상실한다. 그는 병원에서 지팡이를 하나 집고 나와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상태에서 런던을 사방 돌아다닌다. 사실 그는 공작이지만 그걸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그는, 버스에 타려고 하는 어떤 상냥하고, 편안하고 진지한 처녀를 만난다. 그 여자의 모자가 바람에 날려 떨어지자 그가 집어 주는 것이다. 그들은 같이 이층으로 올라가서 자리에 앉아서는 챨스 디킨즈 이야기를 한다.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챨스 디킨즈다. 둘이 다 「올리버 트위스트」를 한 권씩 들고 있다. 나는 거의 게울 뻔했다. 어쨋든, 그들은 챨즈 디킨즈를 좋아한다는 것 때문에 금방 사랑에 빠지고, 그가 여자가 출판업을 꾸려 나가는 것을 도와 준다. 여자는 출판업자인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별로 일에 열성을 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정뱅이 여자의 오빠가 그들의 돈을 다 써 버리기 때문이다. 그는 아주 신랄한 친구이다, 오빠 말이다, 왜냐하면 그는 군의관이었는데 신경쇠약증이 있어 이젠 수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술에 취해 살지만 그래도 꽤 재치니 뭐니가 있다. 어쪳든 알렉은 책을 쓰고, 여자는 그 책을 출판해서 두 사람은 돈을 좀 번다. 그들이 막 결혼하려고 할 때, 마르시아라는 여자가 나타난다. 마르시아는, 그가 기억상실증에 걸리기 전에 알렉의 약혼녀였다. 알렉이 가게에서 책에 서명을 하고 있을 때 그 여자가 나타나서 그를 알아 본다. 여자는 알렉에게 그가 사실은 공작이니 뭐니라고 말해 주지만 그는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다. 여자가 그의 엄마니 뭐니를 만나러 같이 가자고 말해도 듣지 않는다. 그의 엄마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다른 여자는, 그 편안한 여자 말이다, 그를 가게 만든다. 그 여자는 매우 숭고하니 뭐니하다. 그래서 그는 간다. 그가 기르던 걔는 반갑다고 그에게 달려 들고 그의 엄마는 손으로 온통 그의 얼굴을 더듬고, 그가 꼬마였을 때 귀여워하던 곰 인형을 갖다 줘도 그는 기억을 되살리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날,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크리켓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크리켓 공에 머리를 세게 얻어 맞는다. 그는 갑자기 기억을 되찾아서 집 안으로 들어가서 엄마의 이마니 뭐니에 입을 맞춘다. 다음부터 그는 다시 공작의 생활을 되찾고 출판업을 하는 그 여자의 일은 까맣게 잊어 버린다. 나머지도 얘기해 줄께, 하지만 그러면 게울 것 같다. 그러면 얘기를 망치니 뭐니해서가 아니다. 제기랄, 망칠 게 뭐가 있냐 말야. 어쪳든, 알렉과 그 여자는 결혼하고, 그 주정뱅이 오빠는 신경쇠약을 고치고 알렉의 엄마를 수술해서 시력을 되찾아준다. 그리고 오빠와 마르시아는 서로 좋아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은, 모든 식구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걔가 강아지들과 함께 들어와서 온 식구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는 것으로 끝난다. 왜냐하면, 내 생각인데, 모두들 그 걔가 숫놈이나 뭐로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게우고 싶지 않으면 그걸 보지 말라는 것이다.
신경 거슬린 게 뭐냐 하면, 내 옆에 어떤 여자가 앉았는데, 그 놈의 영화를 보면서 내내 훌쩍거리는 거다. 영화가 점점 엉터리같아질수록 더 많이 우는 것이다. 그 여자가 운 건, 굉장히 마음이 다정다감해서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바로 옆에 앉아 있었는데, 그건 아니다. 그 여자는 꼬마애를 데리고 왔는데, 지루해서 화장실에 데려다 달라고 졸라도 여자는 애를 데리고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얌전히 앉아 있으라고만 하는 것이다. 그 여잔 제기랄, 늑대만큼이나 다정다감했다니까. 영화관에서 어떤 같지 않은 걸 보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면, 열에 아홉은 마음이 비열한 자들이다. 이건 농담이 아니야.
영화가 끝난 뒤에 나는, 칼 루스 놈을 만나기로 한 위커 바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걸으면서 전쟁이니 뭐니에 대해 좀 생각했다. 전쟁 영화를 보면 항상 생각을 좀 하게 된다. 내가 만일 전쟁터에 나가게 된다면 잘 견디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 것같다. 그냥 어디 나가서 뭘 쏘거나 그러면 과히 나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군대에 너무 오래 있어야 하는 게 문제다. 내 형 D.B.는, 제기랄, 4년이나 군대에 있었다. 그는 전쟁에도 나갔었다 ― 그는 D-데이니 뭐니에 상륙작전에 참가했었다 ― 하지만 나는 그가 전쟁보다도 군대를 더 싫어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때 꼬마였지만, 그가 휴가니 뭐니해서 집에 오면 아무 것도 안하고 거의 침대에 누워 있기만 하던 걸 기억한다. 그는 거실에도 거의 들어오지 않았었다. 나중에, 바다 건너서 전쟁터에 나갔을 때도 그는 부상이니 뭐니도 입지 않았고 누굴 쏠 필요도 없었다. 그가 하는 일이란, 카우보이같은 장군을 태우고 온종일 돌아 다니는 일이었으니까. 그는 언젠가 앨리하고 나한테, 만일 누군가를 쏘아야 했어도 자기는 어느 방향으로 쏴야 할 지를 몰랐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군대는 걔자식들이 우글거리는데, 나찌보다 나을 것도 없다고 말했다. 또 기억나는데, 앨리가 그에게 형은 작가니까 전쟁터에는 쓸 만한 얘기가 많아서 좀 좋은 점도 있지 않냐고 물어 본 적이 있다. 그는 앨리한테, 가서 야구 글러브를 가져 오게 한 다음에 루퍼트 브루크하고 에밀리 디킨슨 중에서 누가 더 훌륭한 전쟁 시인이냐고 물었다. 앨리는 에밀리 디킨슨이라고 말했다. 나는 시를 많이 읽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선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만일 군대에 애클리나 스트래드레이터 또는 모리스 같은 놈들하고 같이 있어서 그런 놈들하고 행군이니 뭐니를 해야 한다면 정신 이상이 될 거라는 건 안다. 한번은, 일주일 정도 보이 스카우트에 있던 적이 있는데 앞에 있는 놈의 목덜미를 계속 쳐다 보는 게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맹세하건데, 만일 전쟁이 또 한번 터진다면 차라리 나는 총살대 앞에 묶여 있는 게 나을 거다. 나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D.B.한테 화가 나는 건 뭐냐 하면, 그가 전쟁을 그렇게 혐오하면서도 나 보고는 지난 여름에 「무기여 잘있거라」를 읽으라고 한 거다. 그의 말로는 그 소설이 대단하다는 거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게 그거다. 거기엔 헨리 중위라는 친구가 나오는데, 그가 멋있는 친구라는 것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그가 군대니 전쟁이니를 그렇게 혐오하면서 어떻게 그런 되먹지 않은 책을 좋아하냐는 점이다. 내 말은, 예를 들어, 그가 그런 되먹지 않은 책을 좋아하면서, 링 라드너의 책이나 그가 그렇게 좋아하는 저 「위대한 갯츠비」를 동시에 좋아할 수 있냐는 것이다. 내가 그런 말을 하자, D.B.는 화를 내면서, 내가 그런 걸 이해하기엔 너무 어리니 뭐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나도 링 라드너와 「위대한 갯츠비」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도 그런 걸 좋아했다. 난 「위대한 갯츠비」엔 깜박 죽었다. 갯츠비 자식. 괜찮은 놈이다. 그 소설엔 졌다니까. 어쪳든, 원자 폭탄이 발명된 건 잘 된 일이다. 만일 또 한번 전쟁이 일어난다면, 나는 그 꼭대기에 올라 앉아서 떨어지겠어. 자원할 거야, 하늘에 맹세코 그럴 거다.
제 19장
뉴욬에 살지 않는다면 말인데, 위커 바는 세턴 호텔이라는 저 약간 멋부린 호텔 안에 있다. 전엔 거기에 많이 가곤 했지만 지금은 가지 않는다. 조금씩 끊었다. 거기는 소위 아주 세련된 그런 곳으로 알려져 있고, 같지 않은 작자들이 들락날락 거린다. 전에는 티나와 재닌이라는 프랑스 여자 둘이서, 하루에 세 번 정도 나와서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그들 중 한 여자는 피아노를 치고 ― 되게 형편없는 솜씨로 말야 ― 다른 여자는 노래를 불렀는데, 대부분의 노래가 꽤 지저분하지 않으면 불어로 불렀다. 노래 부르는 여자는, 재닌 말인데, 노래를 부르기 전에 언제나 마이크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뭐라고 말하냐 하면, ‘자 이제 불리 부 프란세에 대한 우리의 인상을 전해드리려 합니다. 이건 뉴욬같이 큰 도시에 온 어린 프랑스 소녀의 얘기랍니다. 그 애는 브루클린 출신의 어린 소년을 사랑하게 됩니다. 여러 분이 이 얘기를 좋아하길 바랍니다.’ 그 여자는 속삭여 대고 아양을 떨어 대고 하는 짓을 마치고는, 반은 영어로 반은 프랑스어로 멍청한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그러면 거기 있는 엉터리같은 작자들은 좋아서 날뛰곤 했다. 거기 앉아서 그런 작자들이 박수치고 뭐고 하는 짓을 봤다면, 세상 사람들이 전부 싫어졌을 거야, 분명히 그랬을 거야. 바텐더 또한 더러운 놈이었다. 그 작자는 더럽게 속물이었다. 그 작자는 대단한 인물이나 유명한 그런 사람이 아니면 절대 말을 걸지 않는다. 만일 대단한 인물이나 유명한 사람일 경우엔, 훨씬 더 메쓰겁게 굴었다. 그 작자는 가까이 가서 말한다. 자기를 알고 보면 굉장히 멋있는 사람이라는 듯이 저 굉장히 매력적인 웃음을 지으면서 말이다, ‘근데, 코네티컷은 어떻습니까?’ 아니면 ‘플로리다는 어떻습니까?’ 하고 말야. 거긴 정말 끔찍한 곳이었다, 농담이 아냐. 나는 조금씩 거기 가는 걸 그만 두었다.
내가 거기 도착했을 때는 꽤 일렀다. 나는 바에 앉아서 ― 꽤 사람이 많았다 ― 루쓰 놈이 나타나기 전에 스카치와 소다를 시켰다. 나는 서서 주문을 했는데, 그건 일부러 크게 보여서 날 미성년자로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거였다. 다음에 나는 엉터리같은 작자들을 잠시 바라 보았다. 내 옆에 있는 놈은, 같이 있는 여자를 온갖 감언이설로 속이고 있었다. 그 작자는 여자의 손이 정말 귀족같이 고상하다고 연방 추켜 세우고 있었다. 그런 짓엔 정말 졌다. 바의 다른 쪽을 보니 온통 변태들 뿐이었다. 겉 모습은 별로 변태들같지 않았지만 ― 내 말은 머리를 길게 기른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이다 ― 어쨋든 한 눈에 변태들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마침내 루쓰 놈이 나타났다.
루쓰 자식. 정말 대단한 놈이다. 그 놈은 내가 우튼에 있을 때, 소위 내 「학생 주임」으로 통했다. 하지만 그 놈이 한 일이라고는, 밤 늦게 자기 방에 애들이 한 뗴거리 모여 있을 때, 쎽스 얘기나 그런 애기를 한 것밖에 없다. 그 놈은 쎅스에 관해 꽤 많이 알고 있었다, 특히 변태나 그런 인간들에 관해서 말이다. 그 놈은 우리한테 언제나, 양하고 쎅스를 하고 돌아 다니는 너절한 인간들 얘기 아니면, 계집애 팬티를 모자니 뭐니 안에다 꽤매어 쓰고 돌아 다니는 작자들 얘기를 했다. 그리고 속물들하고 여자 호모들 얘기도 하고 말이다. 루쓰 놈은 미국에 살고 있는 온갖 변태와 여자 호모들을 알고 있었다. 그 놈한테 어떤 사람 ― 누구라도 말야 ― 의 이름을 말하면, 놈은 그가 변탠지 아닌지를 금방 아는 것이다. 가끔은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였는데, 그 놈이 변태니 호모니 영화 배우니 하고 말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 놈이 변태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결혼한 사람도 있었다. 제기랄. 놈한테, ‘넌 조 블로우가 변태란 거냐? 조 블로우가? 맨날 갱이나 카우보이로 나오는 저 덩치 크고 거친 사람이 말야?’ 그럼 루쓰 자식은 말하는 것이다. ‘물론이지.’ 그 놈은 언제나 ‘물론이지’ 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 놈은 누가 결혼했는지 안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결혼한 사람의 반은 변태인데 자기들은 그걸 모른다는 거였다. 또한, 그런 기질이나 뭐나를 가지고 있으면 단 하룻밤 사이에도 변태로 변하게 된다는 거였다. 그 놈은 늘, 나를 놀라 자빠지게 하곤 했다. 나는 늘, 변태니 뭐니로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루쓰 놈한테 웃기는 게 뭐냐 하면, 나는 그 놈 자신도 어떤 면에서는 약간 변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 번 이렇게 해 봐,’ 하고 놈은 말하고는, 복도를 걸어가게 하고는 뒤에서 엉덩이를 찌르는 것이다. 그 놈은, 샤워장에 들어갈 땐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 놓고는, 누가 이빨을 닦거나 뭐를 하는 동안 말을 걸었다. 그런 건 좀 변태같은 짓이 아닌가. 정말 그렇다. 나는 학교니 뭐니에서 진짜 변태들을 좀 안 적이 있는데, 그런 놈들은 늘 그런 짓을 하는 것이다. 내가 루쓰 놈을 항상 수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 놈은 꽤 영리한 녀석이었다. 그건 정말이었다.
그 놈은 사람을 만나도, 인사니 뭐니를 하는 법이 없었다. 그 놈은 자리에 앉으면서 처음 무슨 말을 했냐 하면, 자기는 몇 분 밖엔 앉아 있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데이트가 있다는 것이다. 다음에 그 놈은 마티니를 시켰다. 놈은 바텐더한테 마티니를 아주 드라이하게 해 오고, 올리브는 넣지 말라고 말했다.
‘야, 네 놈한테 맞는 변태가 하나 있는데,’ 하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저 끝에 말야. 지금 보진 말구. 널 위해서 아껴 둔 놈이야.’
‘아주 재밌는데,’ 하고 그가 말했다. ‘코울필드는 여전하군. 넌 언제나 철이 들을래?’
그 놈은 내가 무지하게 따분한 것 같았다. 정말이었다. 하지만 놈은 날 재미있게 했다. 놈은 사람을 재미있게 할 줄 아는 그런 놈이었다.
‘성 생활은 어떻구?’ 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는 누가 그런 따위의 질문을 하는 걸 싫어했다.
‘긴장 풀어,’ 하고 그는 말했다. ‘그냥 느긋하게 앉아서 긴장을 풀라구, 제기랄.’
‘난 긴장하지 않았어,’ 하고 나는 말했다. ‘그래, 콜럼비아는 어때? 마음에 드나?’
‘물론 마음에 들지. 마음에 안 들면 거기 가지도 않았을 거야,’ 하고 그는 말했다. 그 놈도 가끔은 싱겁게 말을 하는 때도 있다.
‘뭘 전공하지?’ 하고 나는 말했다. ‘변태 성욕인가?’ 나는 그저 희롱질을 하였다.
‘너 지금 뭘 하려는 거냐 ― 웃기려는 거야?’
‘아니. 그저 농담하는 거야,’ 하고 내가 말했다. ‘야, 내 말 좀 들어 봐, 루쓰. 넌 똑똑한 놈이니까. 네 충고가 필요하다. 난 지금 꽤 어려운 ―’
그는 아주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봐, 코울필드. 여기 앉아서 조용하게 한 잔 하면서 조용하게 얘길하고 싶으면 ―’
‘알았어, 알았어,’ 하고 내가 말했다. ‘진정해. 그 놈은 나하고 무슨 진지한 얘기를 나누고 싶지는 않은 기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저 똑똑하다는 놈들의 문제는 바로 그거다. 놈들은 그럴 기분이 아니면 절대로 진지한 얘기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니까. 그래서 난 그저, 일반적인 얘기나 하기 시작했다. ’농담이 아니라, 너의 성 생활은 어떻냐?‘ 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지금도 저 우튼에서 사귀던 계집애하고 같이 다니냐?‘ 저 굉장한 ―’
‘뭐라구, 아냐,’ 하고 그가 말했다.
‘왜? 걘 뭘 하는데?’
‘내가 알 게 뭐냐. 니가 물어 보니까 말인데, 걘 아마 지금쯤 뉴 햄프셔에서 제일 가는 창녀가 돼 있을 걸.’
‘그렇게 말해선 안되지 않나? 니가 항상 데리고 놀도록 얌전하게 내버려 뒀는데, 적어도 걔를 그런 식으로 말해선 안 되지 않아.’
‘오, 그러냐!’ 하고 루쓰 자식은 말했다. ‘이제 전형적인 코울필드식 대화가 되려나 본데. 그런가?’
‘아니,’ 하고 나는 말했다. ‘어쨋든 그렇게 말하는 건 아냐. 걔가 얌전하게 니가 하자는 대로 ―’
‘지금 우리가 이런 얘기를 계속 해야 하는 건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얘기를 하다간 그 놈이 날 두고 가 버릴 까 조금 겁이 났다. 그래서 나는 그저 술을 한 잔 더 시켰다. 나는 곤죽이 되도록 술에 취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누구랑 사귀고 있냐?’ 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나한테 얘기하고 싶지 않냐?’
‘넌 모르는 여자야.’
‘그래, 누구야? 내가 알 지도 모르쟎아.’
‘그리니치 빌리지에 살아. 조각가지. 니가 알아야 한다면 말야.’
‘그래?농담이 아니구? 몇 살이냐?’
‘그런 건 물어 본 적 없어, 제기랄.’
‘그냥, 어느 정도 됐어?’
‘마흔 살 가까이 된 것 같은데,’ 하고 루쓰 놈이 말했다.
‘마흔 살 가까이 됐다구? 그래? 그게 좋아?’ 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늙은 여자가 좋냐구?’ 내가 그런 걸 물어 본 이유는, 그 놈은 섹스니 뭐니에 대해 정말 많이 알고 있는 놈이었기 때문이다. 그 놈은, 내가 아는 중에, 그런 놈 중의 하나였다. 그 놈은 열 네 살 때 벌써 넌티에서 동정을 잃었다. 정말이라니까.
‘난 성숙한 여자가 좋아, 니가 말하는 게 그거라면 말야. 물론이지.’
‘그러냐? 왜? 농담이 아니구 말인데, 그들이 쎅스니 뭐니를 더 잘해서 그래?’
‘이봐, 한가지 분명히 하자. 난 오늘 밤에 너의 그 코울필드식의 질문엔 대답하지 않겠어. 도대체 넌 언제 철이 날거냐?’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상태로 그냥 있었다. 그러자 루쓰 놈은 마티니를 한 잔 더 시키고 바텐더에게 훨씬 더 드라이하게 해서 가져 오라고 말했다.
‘이봐, 그 여자하고 얼마나 알았냐, 그 조각가 말야?’ 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나는 정말로 알고 싶었던 것이다. ‘우튼에 있을 때도 알고 지냈냐?’
‘그렇진 않지. 그 여잔 이 나라에 몇 달 전에야 왔으니까.’
‘그랬어? 어느 나라 여잔데?’
‘샹하이에서 왔나 본데.’
‘정말이야? 중국 여자라구, 맙소사.’
‘그럼.’
‘정말이냐? 그게 좋냐? 그 여자가 중국 사람인 것 말야?’
‘그럼’
‘왜? 정말 알고 싶은데 ― 정말이야.’
‘난 그저 서양 철학보단 동양철학이 더 마음에 드는 것 같아서 말야. 물어 보니까 하는 말인데.’
‘그러냐? 너 ’철학‘ 얘길 하는 거야? 너 쎽스니 뭐니가 그렇다는 거냐? 중국이 그런게 더 낫단 말야? 그 말이야?’
‘반드시 중국이 그렇다는 건 아니구, 제기랄. 동양이라구 그랬지. 우리가 이런 멍청한 얘길 계속 해야 하냐?’
‘이봐, 난 진지하게 얘기하는 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농담이 아니라구, 그게 왜 동양이 낫냐구?’
‘얘길 하려면 길어져, 제기랄,’ 하고 루쓰 놈이 말했다. ‘그 사람들은 쎅스를 그냥 신체적, 정신적인 체험으로 간주하는 거지, 내가 뭐 ―’
‘나도 그래! 나도 그걸 뭐 그런 거로 ― 신체적, 정신적 체험이니 뭐니로 생각한다구. 정말이야. 하지만 누구하고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만일 내가 그걸 누구하고 한다면, 그건 ―’
‘그렇게 크게 떠들지마, 제기랄, 코울필드. 조용하게 얘기하지 못하겠다면, 이런 얘긴 ―’
‘알았어, 근데 들어 봐,’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흥분하여 조금 큰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흥분할 땐, 좀 크게 말하는 때가 있다. ‘하지만, 내 말은 이런 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그게 신체적, 정신적 또 무슨 예술적이니 뭐니하다는 건 알아. 하지만 내 말은 뭐냐 하면, 아무나 하고 그걸 할 때 ― 아무 계집애하고나 껴안고 뭐할 때 ―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순 없다는 거야. 넌 그럴 수 있어?’
‘그만 하자,’ 하고 루쓰 놈은 말했다. ‘계속 할거야?’
‘알았어, 근데 들어 봐. 너하고 그 중국 여자를 예로 들어 보자. 너희 둘이 뭐가 그렇게 좋다는 거냐?’
‘그만 하자구 그랬어.’
나는 조금 너무 걔인적으로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느낌이 들긴 했다. 하지만 루쓰 놈한테 짜증나는 게 그런 거다. 우리가 우튼에 있을 때, 그 놈은 누구한테 신상 얘기를 하게 만들지만, 누가 그 놈한테 신상에 관해 물어 보면 화를 내는 것이었다. 똑똑하다는 놈들은 자기들이 얘기를 끌고 가지 않을 땐, 누구하고 지적인 얘기같은 걸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놈들은 항상, 자기들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입을 다물어 주기를 바라고, 자기들이 방으로 돌아갈 땐, 남들도 자기 방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니까. 내가 우튼에 있을 때, 루쓰 놈은 그런 걸 싫어했었다 ― 정말이야 ― 자기 방에서 우리들한테 쎅스 얘기를 다 지껄인 뒤에, 우리가 둘러 앉아서 그 얘기를 재잘거리고 있는 것 말이다. 다른 놈들하고 내가 어떤 놈의 방에서 그러는 걸 말이다. 루쓰 놈은 그런 걸 싫어했다. 그 놈은 자기가 한바탕 잘난 체를 하고 난 뒤엔, 다른 놈들은 모두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입을 닥치고 있기를 바랬다. 그 놈이 두려워하고 있는 게 뭐냐 하면, 어떤 놈이 자기보다 더 근사한 얘기를 하면 어쩌나 하는 거였다. 그 놈은 정말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중국에나 가야 겠다. 내 성 생활은 너저분하거든,’ 하고 내가 말했다.
‘당연하지. 넌 아직 덜 여물었으니까.’
‘사실이야. 정말 그래. 나도 알아,’ 하고 나는 말했다. ‘너 내 문제가 뭔지 알아?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계집애한텐 절대로 정말 쎅시해지지 못한다는 거야 ― 정말로 쎅시해지는 거 말야. 내 말은, 내가 계집애를 되게 좋아해야 한다는 거야. 그렇지 않을 땐, 계집애한테 흥미니 뭐니가 좀 없어지는 거지. 정말이지, 그런 게 내 성 생활을 끔찍하게 만들어 놓거든. 내 성 생활은 더럽다니까.’
‘당연하지, 제기랄. 지난 번에 널 만났을 때 너한테 필요한 게 뭔지 말했었지.’
‘정신과 위사니 뭐니한테 가 보라는 거 말이냐?’ 하고 내가 말했다. 그 놈은 그런 게 나한테 필요하다고 말했었다. 그 놈 아버지는 정신과 의사니 뭐니였다.
‘그건 니가 알아서 할 일이지, 제기랄. 니가 니 인생을 어떻게 하든 내 알 바는 아냐.’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무슨 생각을 좀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니 아버지한테 가서 정신분석을 받는다 치자,’ 하고 나는 말했다. ‘니 아버지가 날 어떻게 한다는 거냐? 내 말은, 니 아버지가 나한테 뭘 해 준다는 거냐구?’
‘너한테 뭘 해 주냐? 그저 너한테 얘기를 시키고 그럼 넌 얘기를 하는 거지, 제기랄. 예를 들어, 니가 니 정신의 패턴을 깨닫는 걸 도와 주는 거야.’
‘정신의 뭐라구?’
‘니 정신의 패턴 말이다. 니 정신이란 건 ― 이 봐. 난 지금 정신분석 기초 강의를 하는 게 아냐. 니가 관심있으면, 전활 해서 약속을 하라구. 아니면 하지 말구. 솔직히, 난 관심 없어.’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정말이지, 그 놈은 재미있는 놈이라니까. ‘넌 정말 좋은 놈이야,’ 하고 내가 말했다. ‘너 그거 아냐?’
그는 손목시계를 보고 있었다. ‘이제 가야겠다,’ 하고 그는 일어섰다. ‘만나서 반가왔다.’ 그는 바텐더를 불러서 계산서를 가져 오라고 말했다.
‘야,’ 그가 떠나기 전에 내가 말했다. ‘너 너의 아버지한테 정신분석 받아본 적 있냐?’
‘나 말야? 그건 왜 물어?’
‘그냥. 받아 본 적 있어?’
‘정식으로는 아니구. 아버지는 어느 정도 내가 방향을 잡는 걸 도와 줬지, 하지만 정식으로 그런 걸 받을 필요는 없었어. 그건 왜 물어?
‘그냥. 그저 궁금해서.’
‘자, 수고해,’ 하고 그는 말했다. 그는 팁을 놓고 가려고 했다.
‘한 잔만 더 해,’ 하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부탁이야, 난 더럽게 외롭단 말야. 진심이야.’
그는 그럴 순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늦었다고 말하고 가버렸다.
루쓰 자식. 그 놈은 정말 아니꼬운 놈이긴 했지만, 어휘 구사가 뛰어난 놈이었다. 그 놈은 우튼에서 제일 어휘가 풍부한 놈이었다. 어휘 시험을 본 적이 있었거든.
제 20장
나는 술에 취한 채 거기 계속 죽치고 앉아서 티나와 재닌 년이 나와서 노래니 뭐니를 부르기를 기다렸지만 오늘은 나오지 않았다. 머리가 출렁거리는 속물같은 녀석이 나와서 피아노를 치고, 이어서 저 발렌시아라는 새로 온 여자가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그 여자는 별로 잘하지는 않았지만 티나와 재닌 년 보다는 나았다. 적어도, 좋은 노래를 불렀으니까. 피아노가 내가 앉아 있는 바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발렌시아는 바로 내 옆에 서 있었다. 나는 그 여자에게 좀 추파를 던져 보았지만 날 못 본 체 했다. 그런 짓은 하지 말았어야 할 걸 그랬나 본데, 하지만 난 더럽게 취해 있었던 거다. 여자가 노래를 끝내자마자 바로 나가버렸기 때문에 나는 한잔 하자고 청할 기회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웨이터를 불렀다. 나는 그 자에게, 발렌시아가 혹시 나하고 한잔 하지 않겠는지 물어봐 달라고 말했다. 그 녀석은 그러겠다고 말했지만, 아마 전하지도 않았을 거다. 사람들은 절대로 남의 말을 전하는 법이 없으니까.
정말이지, 나는 거지같이 취해서 1시 정도까지 그 놈의 바에 앉아 있었다. 나는 거의 똑바로 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허풍이나 그런 짓은 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나는 누가 나를 알아 보거나, 아니면 나이가 몇인지 물어보거나 하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정말이지 앞을 똑바로 볼 수도 없었다니까. 나는 정말 술에 취하자, 배에 총 맞은 사람같은 저 멍청한 짓을 다시 했다. 빠 안에서, 배에 충 맞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나는 웃도리 속으로 배니 뭐니에 손을 계속 갖다 대고 피가 사방에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는 시늉을 했다. 나는 부상당한 사실을 사람들이 알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자기가 상처입은 걔자식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 중이었다. 마침내 내가 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냐 하면, 제인 계집애한테 전화를 걸어서 집에 왔는지 알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계산이니 뭐니를 치루었다. 다음에 나는 빠를 나와서 전화가 있는 데로 갔다. 나는 여전히 웃도리 속에 손을 넣고 피가 흐르지 않도록 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난 취한 것이다.
하지만 전화박스 안에 들어가니까, 제인 년한테 전화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나지 않았다. 아마 너무 취해서 그랬던 것같다. 그래서 내가 뭘 했냐 하면, 나는 쌜리 헤이즈한테 전화를 했다.
나는 제대로 다이알을 돌리기 전에 스무 번 정도는 더 돌려야 했다. 정말이지, 나는 앞이 하나도 안 보였다.
‘여보세요,’ 하고, 누군가 그 놈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말했다. 나는 좀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너무 술에 취했던 것이다.
‘누구에요?’ 아주 냉담한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예요. 홀든 코울필드. 쌜리 좀 바꿔 주세요.’
‘쌜리는 자는데. 난 쌜리 할머니요. 이 시간에 전화하는 게 누구라구, 홀든? 지금 몇신지 알아요?’
‘네. 쌜리하구 얘기좀 하고 싶어서요.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쌜리 좀 바꿔 주세요.’
‘쌜리는 잔다구, 학생. 내일 전화해요. 그럼.’
‘깨워 주세요! 깨워 달라구요.’
그러자 갑자기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홀든, 나야.’ 그건 쌜리이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쌜리? 너니?‘
‘그래 ― 소리지르지 마. 너 취했니?’
응, 이봐. 잠깐만. 크리스마스 이브에 갈께. 내가 크리스마스 트리 잘라 줄께, 알았지? 알았어, 야, 쌜리야?‘
‘알았어, 넌 취했어. 이제 자. 어디 있는 거야? 누구하고 있어?’
‘쌜리? 내가 가서 크리스마스 트리 잘라 줄께, 알았니? 알았냐구, 쌜리?
‘그래. 이제 가서 자. 어디 있어? 누구랑 있는 거야?’
‘아무도 없어. 나밖에, 나 뿐이라구.’ 정말이지, 난 무지 취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여전히 배를 움켜 쥐고 있었다. ‘놈들이 날 쐈어. 로키 패거리들이 날 쐈어. 그거 알아? 쌜리, 그거 아냐구?’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이제 자라니까. 난 자야 돼. 내일 전화해.’
‘이봐, 쌜리! 내가 크리스마스 트리 잘라 줄까? 그럴까? 응?’
‘그래. 잘 자. 집에 가서 자.’
쌜리는 전화를 끊었다.
‘잘 자. 잘 자, 쌜리 귀염둥이. 쌜리 내 사랑,’ 하고 나는 말했다. 내가 얼마나 취했는지 상상할 수 있겠어? 나도 전화를 끊었다. 나는, 쌜리가 금방 데이트에서 돌아온 것이라고 추측했다. 나는 쌜리가 그 앤도버 자식하고 런츠니 뭐니를 보러 갔을 거라고 상상했다. 제기랄, 차 한잔 시켜 놓고서 서로 현학적인 얘기나 늘어 놓으면서 멋있게 보이며 거짓말이나 늘어 놓는 놈들 말이다. 계집애한테 전화를 걸지 말 걸 하고 후회했다. 난 술에 취하면, 미친 놈이 된다니까.
나는 그 놈의 전화박스 안에 잠깐 더 있었다. 나는, 완전히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전화기를 좀 붙들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거기서 나와서 바보처럼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가서 세면대중의 하나를 차가운 물로 채웠다. 그리고 나는 거의 귀에까지 물이 오도록 그 속에 머리를 처박았다. 나는 일부러 머리를 말리려고 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나는 머리에서 물이 흘러내리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다. 다음에 나는 창가에 있는 라디에이터로 가서 그 위에 앉았다. 거긴 따뜻하고 좋았다. 나는 미친 놈처럼 떨고 있었기 때문에 그건 기분이 좋았다. 웃기는 일이지만, 나는 술에 취하면 정말 언제나 미친 놈처럼 떤다니까.
나는 달리 별로 할 일도 없고 해서, 그냥 라디에이터 위에 앉아서 바닥에 있는 작은 흰색 타일들을 세었다. 나는 흠뻑 젖어 있었다. 거의 일 갤론이나 되는 물이 목 아래로 흘러 내려서 칼라니 뭐니가 다 젖었지만 나는 그런 것엔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데 신경쓰기엔 너무 취해 있었으니까.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발렌시아 년의 피아노 반주를 하던 저 머리가 파도처럼 구불거리고 변태처럼 생긴 친구가 들어와서 황금 빛깔의 머리를 빗었다. 그 작자가 머리를 빗는 동안, 우린 조금 얘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 작자는 별로 친절하진 않았다.
‘이봐, 빠로 돌아가면 발렌시아를 다시 볼 건가?’ 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러겠지,’ 하고 그가 말했다. 정말 재치있는 자식 아냐? 난 어딜 가나 재치있는 자식들만 만나다니까.
'이봐. 내가 칭찬한다고 전해 주게. 그 놈의 웨이터가 내 말을 전해 줬는지도 물어 봐 주고.'
'왜 집에 안가는 거야, 친구? 그런데 몇 살인가?
'여든 여섯. 이봐 내가 칭찬하더란 말 전해 주게.'
'왜 집에 안가냐구, 친구.'
'내 걱정은 말구. 정말이지, 당신은 피아노를 칠 줄 아는데,'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그저 추켜서 말했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인데, 그 작잔 피아노를 더럽게 못 쳤다. '당신은 라디오에 나가야 돼,' 하고 나는 말했다. '당신같이 잘 난 친군 말야. 저 황금빛 나는 머리카락 좀 보게. 매니저가 필요하지 않나?'
'집에나 가게, 친구, 착하지. 집에 가서 잠이나 자라구.'
'갈 집도 없다네. 이건 진심이야 ― 매니저가 필요한가?'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나가버렸다. 그 작잔 머리를 빗고 두드리고 하던 짓을 다 하고 나서 나가 버렸다. 스트래드레이터 처럼 말야. 잘 난 친구들은 다 한결같다니까. 그 놈의 머리카락을 다 빗고 나면 그냥 홱 나가버린다.
나는 라디에이터에서 내려와서 휴대품 보관실로 나갔을 때 울거나 뭐 그러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어쨋든 난 울고 있었다. 아마 내가 더럽게 우울하고 외롭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한다. 내가 보관실에 갔을 때 나는 내 꼬리표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거기서 일하는 여자는 꽤 영리했다. 어쪳든 내 코트를 갖다 주었다. 그리고 “리틀 셜리 빈즈” 레코드도 ― 나는 여전히 그걸 가지고 다니고 있었다. 나는 잔소리없이 내 물건을 내 준데 대해 1 딸라를 주었지만 여자는 받으려 하지 않았다. 여자는 그냥 집에 가서 자라는 말만 하였다. 나는 그 여자의 일이 끝나면 데이트를 해 보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여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자는, 자기는 내 엄마니 뭐니 정도 될 만큼 나이가 많다고 말하였다. 나는 여자에게 내 회색 빛 머리카락을 보여 주고, 내가 마흔 두 살이라고 말하였다 ― 물론, 그건 장난질을 해 본 거였다. 하지만, 여자는 걔의치 않은 태도를 보였다. 내가 여자에게 내 빨간색 사냥 모자를 보여 주었더니 마음에 들어 했다. 여자는, 내가 나가기 전에 모자를 쒸워 주었다. 아직도 내 머리는 꽤 많이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은 여자였다.
밖에 나왔을 때는, 이제 별로 취한 기분이 없었다. 하지만 다시 추워지기 시작해서 이빨이 무섭게 덜덜거렸다. 나는 그걸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매디슨 애비뉴로 걸어 올라가서 버스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이제 돈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아서 택시니 뭐니는 타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놈의 버스를 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뭘 했냐 하면, 나는 공원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 작은 호수를 지나가면서 도대체 오리들이 뭘 하고 있는지, 그 놈들이 거기에 있는지 어떤지 보자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는, 그 놈들이 거기에 있는지 어떤지 몰랐다. 공원을 건너가면 별로 멀지도 않았고, 별로 갈 만한 데도 없었던 것이다 ― 나는 어디서 잠을 잘 지도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그래서 나는 갔다. 나는 피곤하거나 뭐하지는 않았다. 나는 다만 더럽게 우울했다.
내가 공원에 들어갔을 때,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피비의 낡은 레코드를 떨어뜨린 것이다. 그건 거의 다섯 조각으로 부서졌다. 레코드는 껍데기니 뭐니에 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부서져 버렸다. 나는 거의 울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 때문에 그만큼 우울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껍데기에서 조각들을 꺼내서 코트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그것들은 아무 데도 쓸모가 없었지만 그것들을 그냥 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나는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이지, 거긴 어두웠다.
나는 지금까지 뉴욬에 살았기 때문에, 쎈트랄 파크를 손바닥처럼 잘 안다. 왜냐하면, 나는 어렸을 때, 늘 거기서 롤러 스케이트를 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밤엔 그 호수를 찾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 나는 호수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 그건 바로 쎈트랄 파크 남쪽 근처에 있었다 ― 하지만 나는 거길 찾지 못했다. 나는 생각보다 더 취했던 게 틀림없다. 나는 계속해서 걸었는데, 점점 더 깜깜해지고 더 으시으시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공원에 들어온 이후로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그건 참 다행이었다. 누구 한사람이라도 보았더라면 아마 놀라서 일 마일은 펄쩍 뛰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호수를 찾았다. 어똈냐 하면, 그건 얼어붙은 데도 있었고, 얼지 않은 데도 있었다. 하지만 오리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놈의 호수 주위를 한바퀴 돌았다 ― 제기랄, 사실은, 한번 호수에 빠질 뻔했다 ― 하지만 오리는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어쩌면 근처 어딘가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가, 풀밭이나 어디에서 자거나 뭐나 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호수에 빠질 뻔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마리도 보지 못했다.
결국 나는, 별로 어둡지 않은 벤치에 앉았다. 나는 더럽게 떨고 있었다, 그리고 사냥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머리 뒤엔 작은 얼음 덩어리가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게 걱정스러웠다. 아마 폐렴에 걸려서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백만명이나 되는 얼간이들이 내 장례식이니 뭐니에 오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같이 버스에 타면, 언제나 거리에 매겨진 번호들을 큰 소리로 읽는 디트로이트의 할아버지니 숙모들이니 ― 난 숙모가 오십명은 된다 ― 너절한 사촌들이니 말이다. 얼마나 대 군중이 거기 모일 것인가. 앨리가 죽었을 때도 그들은 다 왔었다, 그 멍청한 친척들 전부 말이다. 입냄새가 되게 나는 멍청한 숙모가 하나 있는데, D.B.가 한 말이지만, 거기 누워있으면 얼마나 평화스러울까 하고 늘 얘기한다는 것이다. 나는 거기 있지는 않았다. 나는 아직 병원에 있었다. 나는 손을 다친 이후로 그 병원이니 뭐니에 들어가야 했다. 어쨋든, 머리털 속에 그런 얼음 덩어리들이 있으니 폐렴에 걸려서 죽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나는 엄마하고 아버지에 대해 되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특히 엄마는 그렇다, 엄마는 아직도 앨리를 잊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가 내 양복이니 운동기구니 뭐니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고 있는 모습이 계속 상상이 되었다. 한가지 좋은 건, 피미가 아직 어린애이기 때문에, 엄마가 피비를 내 장례식에 오지 못하게 할 거라는 거였다. 그게 유일하게 좋은 점이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묘석이니 뭐니에 내 이름을 새기고, 그들이 묘지니 뭐니에 나를 묻는 상상을 하였다. 죽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말이다. 정말이지, 누가 죽으면 사람들은 그를 정리해 버리는 것이다. 진정 바라건대, 내가 죽으면 양식 있는 누군가 나를 강이나 뭐나에 그냥 던져 버렸으면 한다. 그 놈의 묘지에 묻는 것이 아니면 뭐라도 좋다. 일요일이면 사람들이 와서 꽃다발을 배 위에 올려 놓는 것이라니, 그 무슨 엉터리같은 짓이란 말인가. 죽었는데 누가 꽃을 올려 놓기를 바라겠는가? 아무도 없는 것이다.
날씨가 좋으면, 부모님은 자주 나가서 앨리의 무덤에 꽃다발을 갖다 놓곤 한다. 나는 몇번은 그들과 함께 가곤 하다가 그 짓을 그만 두었다. 먼저, 나는 앨리가 무덤 속에 들어가 있는 걸 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들과 묘석이니 뭐니에 둘러 싸여 있는 것 말이다. 해가 나왔을 때는 그래도 별로 나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두 번인가 ― 두 번 그랬다 ― 우리가 거기 있을 때 비가 오기 시작했다. 정말 끔찍했다. 앨리의 지저분한 무덤 위에, 그리고 그의 배 위에 있는 풀 위에 비가 내렸다. 사방에 비가 내렸다. 그러자 무덤을 찾아 왔던 사람들이 죄다 차 있는 데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는 거의 머리가 돌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자기들 차 속으로 들어가서 라디오니 뭐니를 켜고는 어디 근사한 데로 가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 앨리만 빼곤 다들 말이다. 나는 그런 게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무덤 속에 있는 건 그저 그의 몸이니 뭐니밖에 없고 그의 영혼은 천국이나 무슨 엉터리같은 데 가 있다는 건 안다, 그래도 나는 그런 걸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앨리가 천국에 가 있지 않았으면 한다. 사람들은 앨리를 잘 알 지 못했다. 앨리를 알았다면 내 말을 알 것이다. 해가 나올 때는 별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해는 나오고 싶을 때만 나오는 것이다.
조금 있다가, 나는 폐렴이니 뭐니에 걸리는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돈을 꺼내서 가로등에서 비치는 더러운 불빛에 비추어 세기 시작했다. 남은 돈은, 1 딸라 짜리 세 장, 25 쎈트 동전 다섯개와 5 쎈트 동전 한개밖에 없었다 ― 정말이지, 펜시에서 나온 뒤로 엄청나게 많이 써 버린 것이다. 그래서 내가 뭘 했냐 하면, 나는 호숫가로 내려가서 물이 얼지 않은 데다가 25쎈트와 5쏀트 동전을 튀겨서 던졌다. 나는 왜 그런 짓을 했는 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랬다. 아마 그렇게 하면 폐렴이니 그런 것에 걸린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지는 못했다.
나는, 내가 폐렴에 걸려서 죽는다면 피비의 마음이 어떨까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건 유치했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일이 생기면, 피비는 무척 마음이 아플 것이다. 피비는 나를 무척 좋아하니까 말야. 내 말은, 피비가 나를 무척 따른다는 말이다. 어쨋든, 나는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해서, 마침내 어떻게 할까 생각했냐 하면, 내가 죽거나 뭐할지 모르기 때문에 집에 몰래 들어가서 피비를 보자 하고 생각했다. 나한테 문 열쇠니 뭐니가 있기 때문에, 나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게 아파트에 몰래 들어가서, 피비하고 잠깐 아무 얘기나 하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만 마음이 쓰인 건 앞문인데, 그게 더럽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되게 오래된 아파트인데다 수위가 더럽게 게으른 작자라서 모든 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다. 나는, 부모님이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어쩻든 들어가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나는 공원에서 나와서 집으로 갔다. 나는 내내 걸어갔다. 집은 별로 멀지 않았고 이제 피곤하거나 취해 있지 않았다. 날씨는 아주 추웠고 주위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제 21장
집에 도착했을 때 천만다행인 것은, 보통 밤에 엘리베이터 보이를 하는 피트가 엘리베이터 안에 없었다는 것이다.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 온 친구가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이나 누구나와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는다면, 피비한테 인사나 하고 내뺄 수 있겠지, 그러면 아무도 내가 이 근처에 와 있다는 걸 모를 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정말 다행이었다. 더욱 좋은 게 뭐냐 하면, 그 엘리베이터 보이가 약간 모자랐다는 것이다. 나는, 아주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딕스타인씨네 까지 태워다 달라고 말했다. 딕스타인네란, 우리하고 같은 층이지만 다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다음에 나는, 의심스럽게 보이지 않으려고 사냥 모자를 벗고, 아주 급한 듯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 친구는 엘리베이터 문을 닫으니 뭐니 하고 위로 올라갈 준비를 한 다음에, 돌아서서 나를 보며 말했다, ‘그 사람들은 지금 집에 없어요. 14층에 파티하는데 갔는데.’
‘괜찮아요’ 하고 나는 말했다. ‘뭐 기다리기로 하고 온 거니까. 난 조카예요.’
그 친구는 나한테, 약간 바보같기도 하고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했다. ‘로비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같은데,’ 하고 그는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 정말 그러고 싶지만,’ 하고 나는 말했다. ‘근데, 다리가 편치 않아서요. 다리를 일정하게 하고 있어야 되요. 문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게 좋을 것같은데요.’
그는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몰랐다, 그래서 그냥 ‘오’ 하고는 나를 태워다 주웠다. 정말이지, 그건 괜찮은 일이었다. 우스운 일이기도 하였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쪽에서 원하는 걸 거의 다 해 주는 것이다.
나는 우리 층에서 내렸다 ― 걔처럼 절뚝거리면서 말야 ― 그리고는 딕스타인네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는, 돌아서서 우리 집쪽으로 갔다. 나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제 술도 완전히 깨었다. 나는 문 열쇠를 꺼내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아주 아주 조심하면서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나는 정말이지, 꼭 도둑놈같았다니까.
현관은 완전히 깜깜했지만, 물론 난 불을 켤 수 없었다. 나는 뭔가에 부딪혀서 소리를 낼까 봐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집에 왔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집 현관은, 다른 어떤 집에서도 나지 않는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이다. 난, 도대체 그게 무슨 냄새인지 모른다. 그건 꽃양배추도 아니고 향수 냄새도 아니다 ― 도대체 그게 무슨 냄샌지는 모른다 ― 하지만 집에 왔다는 걸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오바를 벗어서 현관의 벽장에 있는 옷걸이에 걸었다. 하지만 옷장문을 열었을 때 벽장안에 있는 옷걸이들이 미친 듯이 달그락거려가지고 그냥 열어 놓은 채로 놔두었다. 이어서 나는, 아주 천천히, 천천히 피비의 방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나는, 식모가 한쪽 귀밖에 없기 때문에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젠가 식모가 나한테 말했는데, 어렸을 때 자기 오빠가 귓속에 밀짚을 쑤셔 넣었다는 것이다. 식모는 정말 아주 귀가 멀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특히 엄마가 그렇지만, 귀가 꼭 무슨 경찰 걔같다. 그래서 그 분들 방문 앞을 지날 땐, 아주, 아주 조심하였다. 제기랄, 숨조차 쉬지 않았다니까. 아버지는 의자로 머리를 때려도 깨지 않을 거야, 하지만 엄마는 다르다, 시베리아 어디에선가 기침을 한번 해봐, 그럼 그 소리를 듣는다니까. 엄마는 아주 신경이 날카로우니 뭐니 하다. 밤새도록 일어나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때가 많다.
결국, 나는 한시간이나 지나서 피비의 방에 갈 수 있었다. 근데, 피비는 방에 없었다. 내가 그 생각을 못했는데, 피비는 D.B.가 할리웃이나 어디에 나가 있을 땐 늘 D.B.의 방에서 잔다. 그 방이 집에서 제일 크기 때문에 피비는 그 방을 좋아한다. 그건 또, D.B.가 필라델피아에서 어떤 주정뱅이 부인한테서 산 굉장히 큰 미치광이같은 책상과, 양쪽으로 십마일이나 되는 엄청나게 큰 침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그 침대를 어디서 샀는지는 모른다. 어쨋든, 피비는 D.B.가 집에 없을 땐 그 방에서 자는 걸 좋아하는데, D.B.는 그렇게 하라고 허락한다. 피비가 그 미치광이같은 책상에서 숙제나 뭐나를 하는 걸 봐야 하는데. 그것도 침대만큼이나 크다. 피비가 거기서 숙제를 할 땐,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피비는 그런 걸 좋아한다. 자기 방은 너무 작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지를 쫙 펴는 걸 좋아한다는 것이다. 정말 웃기지 않아? 피비같은 꼬마애가 뭘 쫙 핀다는 건지 말야.
어쨋든, 나는 아주 조용히 피비의 방에 들어가서 책상 위에 있는 전등을 켰다. 피비는 깨지도 않았다. 불이 들어왔을 때, 나는 잠깐 피비의 얼굴을 보았다. 피비는 얼굴을 벼걔 옆쪽으로 하고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입을 좀 벌리고 있었다. 그건 우스웠다. 어른들을 보자, 그들이 잠들어 있을 때, 입을 좀 벌리고 있으면 너저분해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조금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벼걔에다 사방 침을 흘리고 자도 괜찮아 보이는 것이다.
나는 아주 조용하게 방안을 어슬렁거리면서 잠시 물건들을 쳐다 보았다. 그러니 기분전환이 되었다. 나는 이제 폐렴이니 뭐니에 걸린 것같은 기분이 안들었다. 나는 기분이 꽤 좋아졌다. 피비의 옷은 침대 바로 옆에 있는 의자에 있었다. 피비는, 어린애치고는 아주 단정한 편이다. 내 말은, 보통 아이들처럼 피비는 자기 물건을 아무 데나 던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비는 너저분한 애가 아니다. 피비는 엄마가 캐나다에서 산 갈색 양복 윗도리도 의자 등에 걸어 놓았다. 블라우스니 그런 것도 의자 위에 놓아 두었다. 신발과 양말은 의자 바로 아래 바닥에 서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 신발은 전에 보던 게 아니었다. 그건, 내가 신은 것과 같은, 짙은 갈색 간편화였는데 엄마가 캐나다에서 사 준 양복과 아주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엄마는 피비한테 옷을 잘 입힌다. 정말 그렇다. 엄마는 어떤 것엔 굉장히 까다로운 편이다. 엄마는 아이스 스케이트나 그런 걸 고르는 데는 소질이 없지만, 옷을 고르는 덴 완벽하다. 내 말은, 피비는 언제나 굉장히 잘 어울리는 옷을 입는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을 보면, 부모가 부자니 뭐니 해도 대걔는 끔찍한 옷을 입고 다닌다. 엄마가 캐나다에서 산 옷을 입은 피비의 모습을 봤어야 하는데. 이건 농담이 아니다.
나는 피비의 책상에 앉아서 그 위에 있는 물건들을 보았다. 그건 대부분 학교니 뭐니에서 쓰는 피비의 물건이었다. 대부분 책이었다. 제일 위에 있는 건 「산수는 재미있다!」였다. 나는 첫 페이지를 펴서 살펴 보았다. 거기다 피비는 이렇게 써 놓았다.
피비 웨더필드 코울필드
4 B-1
그게 웃기는 일이었다. 피비의 가운데 이름은 웨더필드가 아니라, 조세핀이다. 하지만 피비는 그 이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피비를 볼 때마다, 피비는 매번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쓰는 것이다.
산수책 아래에는 지리책이 있었고, 지리책 아래에는 철자법 책이 있었다. 피비는 철자법을 잘 안다. 피비는 모든 과목을 잘하지만, 철자법을 제일 잘한다. 철자법 책 아래에는, 노트가 여러 권 있었다. 피비는 노트가 오천권은 된다. 나는 제일 위에 있는 노트를 펼쳐서 1페이지를 보았다. 거기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버니스, 쉬는 시간에 날 봐,
너한테 중요한 말이 있어.
1페이지엔 그게 전부였다. 다음 페이지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왜 알래스카 남동쪽엔 그렇게 많은 통조림 공장이 있는가?
그건, 거기에 연어가 많기 때문이다.
왜 거기엔 좋은 숲이 있는가?
그건, 거기 날씨가 좋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알래스카 에스키모의 생활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
그건 내일 알아 봐야겠다!!!
피비 웨더필드 코울필드
피비 웨더필드 코울필드
피비 웨더필드 코울필드
피비 웨더필드 코울필드
피비 W. 코울필드
피비 웨더필드 코울필드 님
셜리한테 전해 줘!!!
셜리, 넌 니가 궁수자리라고 말했지.
하지만, 너 우리 집에 올 땐,
니 스케이트를 가지고 와.
나는 거기 피비의 책상에 앉아서 노트를 다 읽었다. 그건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그런 건 읽을 수 있다, 어떤 아이의 노트 같은 거 말이다, 피비니 어떤 다른 아이의 거나 말야, 그런 건 하루 종일이라도 읽을 수 있다. 아이들의 노트는 정말 웃긴다. 다음에,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 그건 마지막 담배였다. 나는 그 날, 아마 세 갑은 피웠을 것이다. 조금 있다가, 결국 나는 피비를 깨웠다. 내 말은, 내가 죽을 때까지 거기 피비의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없다는 거고, 게다가 나는 부모님이 갑자기 들어오실까 봐 겁이 났고, 그러기 전에 적어도 피비한테 인사라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피비를 깨웠다.
피비는 잘 일어난다. 내 말은, 피비한텐 소리지르거나 뭐할 필요가 없단 말이다. 그냥, 피비 옆에 앉아서 ‘피비, 일어나,’ 하면 된다. 그러면 벌서 깬다.
‘홀든!’ 하고 피비는 이내 말했다. 피비는 내 목이니 뭐니를 끌어 안았다. 피비는 아주 다정하다. 내 말은, 피비는 어린애치고는 아주 정이 많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너무 다정할 정도이다. 내가 약간 입을 맞춰 주자 피비가 말했다, ‘언제 왔어?’ 피비는 나를 보자 아주 반가와했다. 정말이었다.
‘그렇게 큰소리 내지 마. 금방 왔어. 잘 있었니?’
‘잘 있었어. 내 편지 받았어? 오 페이지 ―’
‘응 ― 조용히 해. 고맙다.’
피비는 나한테 편지를 보냈던 것인데, 나는 답장을 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건, 자기가 학교에서 출연하는 연극에 관한 것이었다. 피비는, 금요일에 연극을 보러 와야 하니까 데이트나 뭐나를 하지 말라고 썼던 것이다.
‘연극은 어떻게 돼 가니? 하고 나는 물었다. ’제목이 뭐랬지?‘
‘「미국인을 위한 크리스마스 행진」이야. 평범하지만, 내가 베네딕트 아놀드야. 거의 제일 큰 역이야.’ 하고 피비는 말했다. 정말이지, 피비는 완전히 깨어 있었다. 피비는 그런 얘기를 할 땐 굉장히 흥분한다. ‘내가 죽으려고 할 때, 연극이 시작돼. 크리쓰마스 이브에 망령이 찾아와서 창피하지 않냐고 물어 보지. 있잖아. 내가 조국이니 뭐니를 배반했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보러 올거야?’ 피비는 침대에 완전히 일어나 앉아 있었다. ‘내가 그것 때문에 편지 쓴거야. 올거야?’
‘그럼, 가지. 정말 갈께.’
‘아빤 오지 못하셔. 캘리포니아에 가야 된대,’ 하고 피비가 말했다. 정말이지, 피비는 완전히 깨어 있었다. 피비는, 완전히 깨려면 2초면 된다. 피비는 앉아서 ― 약간 무릎을 꿇고 있었다 ― 내 손을 쥐고 있었다. ‘근데. 엄마가 그러는데, 오빤 수요일에 온다 그랬잖아?’ 하고 피비가 말했다. ‘엄마가 수요일이라고 그랬어.’
‘빨리 왔어 ― 그렇게 큰소리 내지 마. 다 깨겠어.’
‘지금 몇시야? 늦게나 오신다고 엄마가 그랬어. 코네티컷, 노워크에 파티에 가셨거든,’ 하고 피비는 말했다. ‘내가 오늘 오후에 뭐했는지 맞춰 봐! 내가 무슨 영화 봤나 맞춰 봐!’
‘몰라 ― 근데. 몇시에 오신다고 ―’
‘「의사」라는 영화야,’ 하고 피비는 말했다. ‘리스터 재단에서 특별히 보여 준 거야. 하루만 보여 줬는데 ― 오늘이 바로 그날이야. 켄터키니 뭐니에 사는 어떤 의사 얘긴데, 다리가 불구라 걷지 못하는 자기 아이 얼굴 위에다 담요를 뒤집어 씌운대. 그래서 그 사람은 감옥이나 어디로 끌려가지. 정말 재미있는 영화였어.’
‘잠깐만. 몇시에 오신다는 ―’
‘그 사람은 그 일을 뉘우치지, 의사 말야. 그래서 그는 여자 애의 얼굴이니 뭐니에 담요를 씌워서 질식시키는 거야. 그래서 그는 감옥에 끌려가서 종신형을 살게 돼, 하지만 머리에 담요를 뒤집어 쓴 애는 늘 그 의사를 찾아와서 그가 한 일에 대해 감사하지. 그 사람은 안락사 의사였어. 하지만, 그 사람은 자기가 감옥에 갈 만한 죄를 지었다는 걸 알아, 왜냐하면 의사는 하나님한테서 아무 것도 빼앗아 가면 안되기 때문이야. 우리 반에 있는 애 엄마가 데리고 갔어. 앨리스 홈즈란 애야. 걘 나하고 제일 친한 애야. 걘 유일하게 ―’
‘잠깐만 좀,’ 하고 나는 말했다. ‘너한테 뭘 물어보잖아. 몇시에 오신다는 얘기 했니, 아니면 안했니?’
‘아니, 근데 아주 늦게 오시진 않을 거야. 아빠는 기차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차니 뭐니를 가지고 가셨어. 이제 차 안에 무전기 달아 놨어! 근데 엄마는, 차가 가고 있을 땐 그걸 쓰지 말랬어.’
나는 좀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내 말은, 부모님이 갑자기 들이닥치지 않나 하는 걱정을 안하게 됐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걱정을 했던 것이다. 갑자기 들이닥친다면 나는 꼼짝하지 못하고 잡힐 것이었다.
피비를 봤어야 하는데. 피비는 칼라에 빨간 코끼리 그림이 있는 파란색 파자마를 입고 있었다. 피비는 코끼리라면 깜빡 죽거든.
‘그래 영화가 재미있었니?’ 하고 나는 말했다.
‘아주 좋았어, 앨리스가 감기에 걸려서, 걔네 엄마가 계속해서 몸이 안 좋니 하고 물어보는 것만 빼놓곤. 영화가 제일 재미있는 데서 말야. 언제나 영화 한가운데서, 걔네 엄만 내쪽으로 몸을 숙이고는 앨리스한테 너 몸이 안 좋은 거 아니니 하고 묻는 거야. 정말 신경질 났어.’
이어서 나는 피비한테 레코드 얘기를 했다. ‘근데, 너 주려고 레코드를 샀는데,’ 하고 나는 말했다. ‘근데, 오다가 그걸 깨뜨렸어.’ 나는 오바 주머니에서 조각들을 꺼내서 피비한테 보여 주었다. ‘큰 손해 봤지,’ 하고 나는 말했다.
‘그걸 이리 줘,’ 하고 피비가 말했다. ‘가지고 있을께.’ 피비는 내 손에서 조각들을 받아서 나이트 테이블 서랍에 넣었다. 정말 귀엽지 않아?
‘D.B.는 크리쓰마스때 온대?’ 하고 나는 물었다.
‘올지도 모르고 안 올지도 모른대, 엄마가 그랬어. 사정에 따라서. 할리웃에 남아서 애너폴리스 이야기 영화 대본을 써야 할지도 모른대.’
‘애너폴리스라구? 체!’
‘연애 이야기니 뭐니래. 거기 누가 나오는지 알아? 어떤 영화 배운지? 밪춰 봐.’
‘난 관심없어. 애너폴리스라구, 체, 제기랄, D.B.가 애너폴리스에 대해 뭘 알아? 그게 자기가 쓰는 얘기하구 무슨 상관이 있어?’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이지, 그런 건 화가 난다.빌어벅을 할리웃. ‘니 팔은 왜 그러니?’ 하고 나는 피비에게 물었다. 나는 피비가 팔꿈치에 커다란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걸 보았다. 내가 그걸 발견한 건, 피비의 파자마는 소매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애 때문이야, 커티스 웨인트라우브말야, 우리 반에 있는 앤데, 내가 공원에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날 밀었어,’ 하고 피비가 말했다. ‘볼래?’ 피비는 팔꿈치에서 미치광이같은 반창고를 떼기 시작했다.
‘그냥 놔 둬. 걔가 널 왜 밀었대?’
‘몰라. 날 미워하나 봐,’ 하고 피비가 말했다. ‘쎌마 애터배리하고 내가 걔 잠바에 잉크니 뭐니를 부어 주었지.’
‘그건 잘 한 게 아닌데. 너희들은 ― 도대체 어린애가?’
‘아냐. 걘 내가 공원에 나갈 때마다, 날 졸졸 쫓아 다녀. 언제나 날 따라 다녀. 걔한텐 짜증난다니까.’
‘걔가 아마 널 좋아하나 보다. 그런 걸 가지고 잉크를 ―’
‘난 걔가 날 좋아하는 건 싫어,’ 하고 피비는 말했다. 그러더니 나를 이상한 표정으로 보기 시작했다. ‘홀든,’ 하고 피비는 말했다, ‘왜 수요일에 오지 않고?
‘뭐라구?’
정말이지, 피비는 늘 찬찬히 봐야 한다. 피비가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미친 거다.
‘왜 수요일에 오지 않은 거야?’ 하고 피비가 물었다. ‘쫓겨 나거나 그런 건 아니지?’
‘말했잖아. 일찍 보내 줬다구. 전부 다 ―’
‘오빤 쫓겨 난거야! 쫓겨 났다구!’ 하고 피비는 말했다. 그러더니 피비는 주먹으로 내 무릎을 때렸다. ‘그랬지? 오, 홀든!’ 피비는 손이니 뭐니를 입에 갖다 댔다. 피비는 정말 감정적이다, 하늘에 맹세해.
‘내가 쫓겨났다구 누가 그러냐? 아무도 내가 ―’
‘오빤 쫓겨난 거야. 쫓겨난 거라구,’ 하고 피비는 말했다. 그리고 다시 주먹으로 나를 때렸다. 내가 아프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미친 거다. ‘아빠가 오빨 죽이려구 그럴 거야!’ 하고 피비는 말했다. 그러더니 피비는 침대 위에 배를 깔고 엎드린 다음 얼굴을 벼개로 덮었다. 피비는 그런 짓을 자주 한다. 어떤 땐 미치광이 같다니까.
‘이제 그만 둬,’ 하고 나는 말했다. ‘아무도 날 죽이지 않아. 아무도 심지어 ―자, 피브, 그 놈의 걸 얼굴에서 떼. 아무도 날 안 죽여.’
하지만 피비는 벼개를 떼려고 하지 않았다. 피비가 고집을 부릴 땐 아무도 그걸 막을 수없다. 피비는 계속해서, ‘아빠가 오빨 죽이려구 그럴거야.’ 하고 말했다. 하지만 그 놈의 벼개를 얼굴에 덮고 있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는 않았다.
‘아무도 날 안 죽여. 생각해 봐라. 먼저, 난 멀리 가니까. 내가 뭘 하려냐 하면 말야, 당분간 목장이니 뭐니에서 일자릴 얻을 지도 몰라. 할아버지가 콜로라도에 목장이 있는 친굴 알거든. 거기서 일자릴 얻을 지도 몰라,’ 하고 나는 말했다. ‘가게 된다면, 거기 가서도 너하고 계속 연락할께. 자아. 얼굴에서 그걸 떼라니까. 빨리. 야, 피브. 어서, 어서.’
하지만 피비는 벼개를 떼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벼개를 떼려고 했지만 피비는 꿈쩍도 안했다. 피비하고 다투면 피곤해진다니까. 정말이지, 피비가 계속해서 벼개를 얼굴에 대고 있으려고 한다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제발, 피브. 이리 와,’ 하고 나는 계속 말했다. ‘자아, 야...야, 웨더필드. 어서.’
하지만 피비는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어떤 땐 피비한텐 설득도 안 통한다. 결국, 나는 일어나서 거실로 나왔다. 나는 테이블 위에 있는 담배 상자에서 담배를 몇 걔 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내 건 다 피웠거든.
제 22장
내가 다시 방에 들어갔을 때, 피비는 벼개를 떼고 있었다 ― 나는 그렇 줄 알고 있었다 ― 하지만 피비는 똑바로 누워 있으면서도 나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침대 가장자리를 돌아서 다시 앉았을 때, 피비는 반대쪽으로 얼굴을 획 돌렸다. 피비는 무섭게 나를 배척하고 있었다. 내가 그 무슨 펜시 장비를 지하철에 두고 내렸을 때, 펜시의 그 펜싱팀처럼 말야.
‘헤이즐 웨더필드는 어떻게 지내고 있니?’ 하고 내가 말했다. ‘지금도 그 애에 대해 새로운 얘기를 쓰니? 니가 보내 준 얘기는 내 수트 케이스 안에 있어. 저기 역에 말야. 그거 참 재미있는 얘기더라.’
‘아빠가 오빨 죽일 거야.’
정말이지, 피비는 어떤 걸 마음 속에 품고 있으면 정말로 거기서 마음을 뗴지 않는다.
‘아냐, 아버진 안 그래. 아버진 제일 심하게 한다 해도, 날 혼내 주고 나서는, 그 놈의 육군 사관학교에 보내겠지. 아마 그 정도일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난 여기 있지도 않을 거야. 난 멀리 갈 거야. 그럴 거야 ― 콜로라도 목장에 가 있을 거야.’
‘웃기지마. 오빤 말도 못 타잖아.’
‘누가 못 탄대? 난 탈 수 있어. 그럼 탈 수 있지. 그런 건 2분 정도면 배워,’ 하고 나는 말했다. ‘그거 좀 잡아 당기지마.’ 피비는 팔에 붙인 반창고를 잡아 당기고 있었다. ‘근데 누가 니 머릴 그렇게 잘라 줬니?’ 하고 나는 물었다. 나는, 피비가 우스꽝스러운 머리를 하고 있는 걸 그 때 알아챘다. 머리가 좀 너무 짧았던 것이다.
‘상관마,’ 하고 피비는 말했다. 피비는 어떤 땐, 굉장히 골을 낼 때가 있다. 피비도 꽤 화를 낼 줄 안다. ‘오빤 또 전 과목에서 낙제한 거지,’ 하고 피비가 말했다 ― 아주 화가 난 말투였다. 어떤 면에선 우습기도 하였다. 피비는 가끔 무슨 학교 선생같은 말투를 쓴다, 겨우 어린애인 주제에 말이다.
‘아냐, 그런 건 아냐,’ 하고 나는 말했다. ‘영어는 통과했어.’ 그리고, 나는 그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피비의 엉덩이를 꼬집어 주었다. 피비가 옆으로 누워 있는 모습이 좀 아니꼬왔던 것이다. 피비는 엉덩이랄 것도 거의 없다. 세게 꼬집은 것도 아닌데, 피비는 내 손을 때리려고 했지만 맞치지는 못했다.
그러자 갑자기 피비가 말했다, ‘오, 왜 그랬어?’ 무슨 말이냐 하면, 왜 또 쫓겨났냐는 것이다. 피비의 그런 말투가 나를 좀 우울하게 했다.
‘오, 제발, 피비, 나한테 묻지 마. 모두들 그런 걸 묻는데 신물이 난다,’ 하고 나는 말했다. ‘이유야 수만가지나 돼. 거긴 내가 다닌 중에서 제일 형편없는 학교야. 같지 않은 놈들만 다닌다구. 그리고 너절한 놈들도 많구. 평생에 그렇게 너절한 놈들이 많이 모인 것도 본 적이 없어. 예를 들어, 누군가의 방에서 잡담을 하고 있다 치자, 그런데 누가 들어오려고 한단 말야. 그런데 그 놈이 멍청하고 또 여드름 투성이면 들여 보내지 않는다구. 누군가 들어오려고 하면 다들 문을 걸어 잠그고 말야. 그런데 놈들은 무슨 비밀 결사같은 걸 가지고 있다구. 나는 더러워서 가입하지 않았지만 말야. 거기 끼려고 애쓰는, 저 여드름 투성이에다 따분한 로버트 애클리란 놈이 있었어. 그 놈은 계속 거기 끼려고 애썼지만 놈들은 허락하질 않았지. 단지 그 놈이 따분하고 여드름 투성이라는 이유로 말야. 난 그런 얘긴 하고 싶지도 않다. 거긴 더러운 학교였어. 내 말은 진짜야.’
피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목덜미를 보고 피비가 내 말을 듣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피비는, 누가 무슨 얘기를 하면 언제나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우스운 게 뭐냐 하면, 피비는 무슨 얘길 하는 지를 태반은 알아 듣는다는 것이다.
나는 펜시 얘기를 계속했다. 나는 좀 그러고 싶은 기분이었다.
‘몇 사람은 좋은 선생이 있기도 해, 근데 그들도 엉터리긴 마찬가지야,’ 하고 나는 말했다. ‘스펜서라는 선생이 있었어. 선생 부인은 늘 핫 초콜렛이니 뭐니를 주지, 그분들은 정말 꽤 좋은 분들이었어. 하지만 터머, 교장인데, 그가 역사시간에 들어와서 뒷쪽에 앉는 걸 봤어야 하는데. 그는 늘 들어 와서는 교실 뒷쪽에 30분 정도 앉아 있어. 자기는 자리에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생각해 달라는 거야. 조금 있다가 그는 스펜서 선생의 말을 막고는 시시한 농담을 늘어 놓는 거야. 그럼 스펜서 선생은 낄낄거리고 웃겨서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거야, 마치 교장이 무슨 제기랄 왕자니 뭐니라도 된다는 것처럼 말야.’
‘그렇게 욕하지마.’
‘그걸 봤다면 너 게웠을 거야, 맹세해 틀림없이 그랬을 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다음에, 재향군인의 날엔 말야, 그런 날이 있어, 재향군인의 날이라구 말야, 그 땐 1776년 정도에 펜시를 졸업한 멍청이들이, 마누라니 애들을 데리고 죄다 몰려 와서는 사방을 어슬렁거리지. 50살 정도 된 어떤 사람을 봤어야 하는데. 그 사람이 뭘 했냐 하면 말야, 우리 방에 들어와서 문을 노크하고는 화장실을 좀 써도 되냐고 묻더군. 화장실은 복도 끝에 있었거든 ― 우린 왜 그가 우리한테 그런 걸 양해를 구하는지 몰랐어. 그 사람이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 옛날에 자기가 화장실 문에 써 넣었던 이니셜이 지금도 있는지 알고 싶다는 거야. 그가 뭘 했었냐 하면, 자기는 90년 전 쯤에 자기 이니셜을 화장실 문에 파 놓았는데, 그게 지금도 있는지 보고 싶다는 거야. 그래서 나하고 방친구는 그 사람을 데리고 화장실까지 가서는, 그 사람이 화장실 문마다 자기 이니셜을 찾는 동안 거기 서 있었지. 그 동안 그 사람은 내내 우리한테 얘기를 하더군, 자기가 펜시에 있을 때가 자기 일생에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말하면서, 우리한테 미래니 뭐니에 대해 충고를 늘어 놓더군. 정말이지, 그 사람이 얼마나 날 우울하게 했는지 몰라!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란 말이 아냐 ― 그렇진 않았어. 하지만 꼭 나쁜 사람이 사람을 우울하게 하지는 않아 ― 좋은 사람이면서도 사람을 우울하게 할 수가 있어. 누구를 우울하게 하려면 말야, 그저 화장실 문에서 자기 이니셜을 찾으면서 엉터리같은 충고를 늘어 놓기만 하면 돼 ― 그러면 된다구. 모르겠어. 그 사람이 그렇게 완전히 숨이 차서 헐떡꺼리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나쁘진 않았을지도 몰라. 그 사람은 사다리를 올라가면서부터 완전히 숨이 차서 자기 이니셜을 찾는 내내 헐떡거리더군, 콧구멍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더라, 그 동안 스트래드레이터하고 나한테, 우리가 펜시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모두 얻으라고 말하는 거야. 제기랄, 피비! 난 설명하지 못하겠어. 난 펜시에서 일어나는 건 어떤 것도 좋아하지 않았어. 왜 그런 진 설명하지 못하겠어.’
피비가 그 때 뭐라고 말을 했지만, 난 알아들을 수 없었다. 피비는 입을 약간 벼개에 처박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뭐라구?’ 하고 내가 말했다. ‘입을 떼. 니가 입을 그러구 있으니까 알아들을 수가 없잖아.’
‘오빤 무슨 일이건 좋아하는 게 하나도 없다구.’
피비가 그런 말을 했을 때 나는 한층 더 우울해졌다.
‘아냐. 나도 좋아하는 게 있어. 물론 있지. 그렇게 말하지 마.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하는거야?’
‘왜냐하면 오빤 하나도 좋아하는 게 없으니까. 오빤 어떤 학교도 좋아하지 않잖아. 오빤 이 세상 일을 하나도 좋아하지 않아.’
‘좋아해! 그게 니가 잘못 알고 있는 점이야 ― 바로 그게 니가 잘못 알고 있는 거라구. 도대체 넌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이지, 피비는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오빤 하나도 좋아하는 게 없으니까,’ 하고 피비가 말했다. ‘하나만 말해 봐.’
‘하나만? 내가 좋아하는 거 하나만?’ 하고 나는 말했다. ‘좋아.’
문제는 뭐냐 하면, 나는 마음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는 거다. 어떤 땐 마음을 집중하기가 어렵다.
‘내가 무지 좋아하는 거 하나만 말이지?' 하고 나는 피비에게 물었다.
하지만, 피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피비는 침대 다른 쪽에 비스듬하게 앉아 있었다. 피비는 거의 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었다. ‘자아, 대답해 봐,’ 하고 내가 말했다. ‘내가 무지 좋아하는 거, 아니면 내가 그냥 좋아하는 거 말야?’
‘오빠가 무지 좋아하는 거.’
‘좋아,’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뭐냐 하면, 집중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건 다만, 저 낡아빠진 밀짚 바구니를 들고 기부금을 모으고 있던 저 두명의 수녀들밖에 없었다. 특히 저 철테 안경을 쓰고 있던 수녀 말이다. 그리고 엘크톤 힐즈에 있던 어떤 놈하구. 엘크톤 힐즈에, 제임스 캐슬이라는 이름을 가진 놈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필 스타빌이라는 아주 잘난체 하는 놈한테 뭔가를 돌려 주지 않으려고 했었다. 제임스 캐슬은 그 놈을 아주 잘난체 하는 놈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스타빌의 너저분한 친구 놈 중 하나가 스타빌한테 가서 캐슬러 얘기를 했다. 그래서 스타빌이, 너저분한 놈들 여섯 명하고 같이 제임스 캐슬의 방으로 몰려 가서 문을 잠그고는 그에게서 말한 걸 뺏으려고 했지만 캐슬러는 돌려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놈들은 그를 손봐주기 시작했다. 그 놈들이 어떤 짓을 했는 진 말하지 않겠어 ― 너무 너저분한 얘기니까 ― 그래도 그는 돌려 주려고 하지 않았지, 제임스 캐슬 말야. 그런데 그를 봤어야 하는데. 그 놈은 작고 빼빼 말랐는데, 손목은 연필만큼이나 굵었지. 결국, 그 놈이 뭘 했냐 하면, 말한 걸 돌려 주는 대신에 창 밖으로 뛰어 내렸어. 나는 그 때 샤워니 뭐니를 하고 있었는데, 그 놈이 밖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난 그 땐, 무슨 물건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라디오나 책상이나 뭐나가 말야, 어떤 아이나 뭐나가 아니고 말야. 그 때, 모두들 복도를 지나 우르르 몰려가서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나도 목욕옷을 입고 아래로 내려갔다, 제임스 캐슬이 돌 계단이니 뭐니에 자빠져 있었다. 그는 죽어 있었다, 이빨이니 피니가 사방에 흩어져 있었는데, 아무도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빌려 준 자라목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방에 그와 같이 있었던 그 놈들이 무슨 벌을 받았냐 하면 그저 퇴학당한 것뿐이다. 그 놈들은 감옥에 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게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전부였다. 아침시간 때 본 그 두명의 수녀와 엘크톤 힐즈의 제임스 캐슬 말이다. 웃기는 건 뭐냐 하면,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인데, 나는 제임스 캐슬을 거의 잘 알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 놈은 아주 조용한 놈이었거든. 그는 나하고 같이 수학 시간에 들었었다, 자리가 교실 저쪽 끝에 있었는데 뭘 암송하러 일어나거나 칠판에 나가서 뭐나를 쓰거나 하는 적이 거의 없었다. 학교에서 어떤 놈들은 일어나서 뭘 암송하거나 칠판에 나가는 법이 거의 없다. 생각해 보면, 내가 그 놈하고 얘기를 했던 적이 단 한번 있었는데, 그가 나한테 자라목 스웨터를 빌릴 수 있냐고 물었던 때이다. 그 놈이 나한테 물었을 때 나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나는 너무 놀랐었다. 기억으론, 그 때 샤워실에서 이빨을 닦고 있었다. 그의 말은, 자기 사촌이 드라이브니 뭐니를 시켜 주러 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내가 자라목 스웨터를 가지고 있는 걸 아는 지도 몰랐다. 내가 그 놈에 대해 아는 건, 출석을 부를 때 그의 이름이 바로 내 앞에 있다는 것밖에 없었다. R. 캐벌, W. 캐벌, 캐슬, 코울필드 ― 난 지금도 그 순서를 왼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이지만. 나는 그에게 거의 내 스웨터를 빌려주려고 하지 않았었다. 그를 별로 잘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뭐라구?’ 하고 나는 피비에게 말했다. 피비가 나한테 뭐라고 말을 했는데,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오빤 한가지도 생각해 낼 수 없잖아.’
‘아냐, 생각할 수 있어. 있다구.’
‘그럼, 해 봐.’
‘난 앨리를 좋아해,’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걸 좋아하구, 여기에 너하고 앉아서 얘기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하고, 또 ―’
‘앨리는 죽었어. 오빤 언제나 그런 얘기만 해! 누군가가 죽었거나 뭐해서 하늘나라에 있으면, 그건 사실은 ―’
‘앨리가 죽은 건 나도 알아! 내가 그걸 모를 줄 알아? 그래도 난 앨리를 여전히 좋아할 수 있는 거야, 그렇지 않아? 누가 죽어도 그를 좋아할 수 있는 거야, 내 참 ― 특히 그가 살아 있으니 뭐니한 사람들 보다도 백만배는 더 나은 사람일 경우에는 그렇지.’
피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피비는 할 말이 하나도 없을 때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어쨋든, 난 지금이 좋아,’ 하고 나는 말했다. ‘내 말은, 바로 지금말야. 그냥 너하고 여기 앉아서 농담하고 그러는 거―’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그런 게 정말 중요한 거야! 바로 그런 게 중요한 거라구! 대체 왜 아니라는 거야? 사람들은 정말 중요한 건 생각하지 않아. 난 제기랄, 그딴 데 넌더리가 나.’
‘욕 좀 하지마. 좋아, 다른 걸 말해 봐. 오빠가 되고 싶은 걸 말해 봐. 과학자라든지. 아니면 변호사나 뭐 그런 거말야.’
‘난 과학자가 되지 못해. 난 과학에 소질이 없거든.’
‘그럼, 변호사는 ― 아빠나 누구처럼 말야.’
‘변호사는 괜찮은 거 같애 ― 하지만 그런 건 별로 관심없어,’ 하고 나는 말했다. ‘내 말은, 그들이 죄없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러 다니거나 뭐나 하면 괜찮다는 거야, 하지만 변호사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아. 변호사들이 하는 일이란 건, 돈이나 많이 벌고 골프나 브릿지 게임을 하고, 자동차를 사고 마티니를 마시고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뿐이지. 그리고 또 말인데. 설사 사람들의 생명이나 뭐나를 구하고 다닌다 해도 말야, 그게 진짜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싶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사실은 그저 유명한 변호사가 되서, 공판이 끝났을 때 무슨 영화에서처럼, 기자들이니 뭐니들이 뒤에서 박수를 치고 축하를 하는 걸 꿈꾸는 건지 어떻게 아니? 누가 엉터리가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아? 문제는, 그걸 알 수 없다는 거야.’
도대체 내 얘기를 피비가 이해할 거라고는 별로 확신하지 않는다. 내 말은, 피비가 어린애니 뭐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비는 적어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만일 누군가가 귀를 귀울이고 있다면 그렇게 나쁜 건 아니다.
‘아빤 오빠를 죽이려고 그럴 거야. 오빨 죽일 거야.’ 하고 피비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듣고 있지 않았다. 나는 뭔가 다른 걸 생각하고 있었다 ― 어떤 미치광이 같은 걸 말이다. ‘넌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아니?’ 하고 나는 말했다. ‘내가 뭐가 되고 싶은 지 알아? 내 말은, 만일 나한테 무슨 빌어먹을 선택권이 있다면 말야?’
‘뭐라구? 욕 좀 그만해.’
‘너 이런 노래 알아 “어떤 애가 호밀밭을 지나 오는 다른 애를 잡으면”? 나는 그런 ―’
‘그건 “어떤 애가 호밀밭을 지나 오는 다른 애를 만나면”이야!’ 하고 피비가 말했다. ‘그건 시야. 로버트 번즈가 쓴.’
‘그게 로버트 번즈가 쓴 시라는 건 알아.’
하지만 피비 말이 맞았다. 그건 “어떤 애가 호밀밭을 지나 오는 다른 애를 만나면”이다. 하지만 그 땐 그걸 몰랐었다.
‘난 그게 “어떤 애가 다른 애를 잡으면”인 줄 알았지,’ 하고 나는 말했다. ‘어쨋든 난 그런 어린애들이 넓은 호밀밭이니 뭐니에서 무슨 놀이를 하고 있는 걸 계속 생각하는 중이야. 수천명이나 되는 어린애들이 있는데,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 ― 내 말은, 어른이 아무도 없다는 거야 ― 나 말고는 말야. 그런데 나는 어떤 미치광이같은 벼랑 가장자리에 서 있는 거야. 내가 뭘 하냐 하면 말야, 아이들이 벼랑을 넘어가려고 하면 그들을 잡는 거야 ― 내 말은, 아이들이 어디로 가는 지 보지도 못하고 달려갈 때 내가 어디선가 나와서 그들을 잡는다는 거야. 내가 하루 종일 하는 일은 그것뿐이야. 나는 그저, 호밀밭이니 뭐니에서 파수꾼이 되고 싶어. 그게 미친 짓인 줄은 알아, 하지만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건 그것밖에 없어. 그게 미친 짓인 줄은 알아.’
피비는 오래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피비가 뭐라고 말을 했는데, 피비는 그저, ‘아빤 오빨 죽이려고 그럴 거야.’라고 했다.
‘아버지가 그래도 난 상관 안해,’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왜냐하면 내가 뭘 하고 싶었냐 하면 말야, 나는 엘크톤 힐즈에서 내 영어 선생이었던 앤쏠리니선생한테 전화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지금 뉴욬에 살고 있었다. 엘크톤 힐즈를 그만 두었던 것이다. 그는 뉴욬대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가지고 있었다. ‘전활 해야겠다,’ 하고 나는 피비한테 말했다. ‘금방 돌아올께. 잠자지 마.’ 나는. 내가 거실에 있는 동안 피비가 잠들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피비가 자지 않는다는걸 알았지만, 그저 다짐을 하려고 그렇게 말했다. 내가 문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피비가 말했다. ‘홀든!’ 그래서 나는 돌아섰다.
피비는 침대에서 약간 일어나 있었다. 피비는 정말 예뻐 보였다. ‘난 지금 필리스 마굴리스한테 웅변 수업을 듣고 있어,’ 하고 피비가 말했다. ‘들어 봐.’
나는 귀를 기울였다. 무슨 얘긴가 들었지만 별로 대단한 건 아니었다. ‘좋은데,’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나는 거실로 나가서 앤쏠리니 선생한테 전화를 걸었다.
제 23장
나는, 부모님이 전화하는 중에 들이닥칠까봐 걱정이 되서 빨리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앤쏠리니 선생은 아주 좋은 분이다. 선생은 내가 그러고 싶으면 지금 바로 와도 된다고 말했다. 아마 선생과 그의 부인을 깨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전화를 받기까지 꽤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선생은 나한테 먼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펜시에서 퇴학당했다는 말은 했다. 나는, 선생한테 말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런 말을 하자, 선생은 ‘저런’ 하고 말했다. 선생은 유머 감각이니 뭐니가 있었다. 선생은, 내가 오고 싶으면 바로 와도 좋다고 말했다.
선생은, 내가 만났던 중에서 제일 좋은 선생이었다, 앤쏠리니 선생 말이다. 선생은, 내 형 D.B.보다 별로 나이가 많지 않은, 아주 젊은 사람이었는데, 선생하고는 농담을 해도 존경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선생은 내가 말한, 창 밖으로 뛰어 내린 그 녀석을 안아 올린 사랍이었다, 제임스 캐슬 말이다. 앤쏠리니 선생은 그의 맥박을 짚어 보고 나서는, 자기 오바를 벗어서 제임스 캐슬에게 덮고는 그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었다. 선생은, 자기 오바가 온통 피로 물들어도 하나도 걔의치 않았다.
내가 D.B.의 방으로 돌아왔을 때, 피비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있었다. 댄스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피비는, 식모가 듣지 못하도록 낮게 틀어놓고 있었다. 피비를 봤어야 하는데. 피비는 이불 밖에서, 저 요가하는 친구들처럼 다리를 포걔고 침대 한 가운데 앉아 있었다. 피비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정말 웃긴다니까.
‘이런,’ 하고 나는 말했다. ‘너 춤추고 싶니?’ 피비가 아주어린 애였을 때 나는 피비에게 춤추는 법이니 뭐니를 가르쳐 준 적이 있다. 피비는 춤을 아주 잘 춘다. 내 말은, 그저 피비에게 몇가지만 가르쳐 줬다는 것이다. 피비는 대부분은 자기 혼자서 배웠다. 춤추는 법은 사실 가르쳐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오빤 신발을 신고 있잖아,’ 하고 피비가 말했다.
‘벗을께. 자아.’
피비는 침대에서 거의 뛰어 내렸다. 그리고 내가 신발을 벗는 동안 기다렸다. 나는 잠시 피비와 춤을 추었다. 피비는 정말 잘 춘다. 나는 어린애들과 춤추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데, 대걔의 경우 끔찍해 보이기 때문이다. 내 말은, 레스토랑이니 뭐니에서 어떤 늙은 사람이 어린애를 댄스 플로어로 데리고 나가는 걸 말한다. 보통 그들은 잘못해서 어린애의 옷을 뒤에서 계속 위로 잡아당긴다, 게다가 어린애는 같이 춤을 추어서는 안되는 거고, 끔찍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 있는 데선 피비건 누구건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집 안에서 장난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피비하고는 다르다, 피비는 정말 춤을 추는 것이다. 피비는 무엇을 하든지 따라할 줄 안다. 내 말은, 다리가 더 길어서 피비를 바싹 가까이 잡아당겨야 할 경우에도 그렇다는 것이다. 피비는 바로 따라 온다. 크로스 오버니, 우스꽝스러운 드롭이니 지루박같은 걸 해도 피비는 바로 따라 한다. 탱고조차 따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네 곡 정도 춤을 추었다. 곡 사이에도 피비는 되게 웃긴다. 피비는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말이나 뭐나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자세 그대로 다음 곡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웃기지 않아? 웃거나 뭐나 하면 안되는 것이다.
어쨋든 우리는 네 곡 정도 춤을 추고 나자, 나는 라디오를 껐다. 피비는 다시 침대 위로 팔짝 뛰어 올라가서 이불을 덮었다. ‘나아지지 않았어?’ 하고 피비는 나에게 물었다.
‘대단한데,’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침대 위에 피비 옆에 앉았다. 나는 좀 숨이 찼다. 나는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서 거의 숨을 쉴 수 없었다. 피비는 조금도 숨이 차지 않았다.
‘이마를 만져 봐,’ 하고 피비가 갑자기 말했다.
‘왜?’
‘만져 봐. 한 번만 만져 봐.’
나는 이마를 만졌다. 하지만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꽤 뜨겁지 않아?’ 하고 피비가 말했다.
‘아니. 뜨거워야 되니?’
‘응 ― 지금 그렇게 만드는 중이야. 다시 만져 봐.’
나는 다시 만졌지만 여전히 아무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말했다.
‘뜨거워지는 것같은데, 이제.’ 나는 피비가 그 놈의 열등감을 갖지 않게 해 주고 싶었다.
피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온도계 눈금 이상으로 온도를 올릴 수 있어.’
‘온도계. 누가 그런 말을 하니?’
‘앨리스 홈버그가 어떻게 하는지 알려 줬어. 다리를 포걔고 숨을 멈춰 봐, 그리고 아주, 아주 뜨거운 걸 생각해 봐. 라디에이터나 뭐나 말야. 그러면 이마 전체가 너무 뜨거워져서 손을 태울 수도 있게 돼.’
그게 웃기는 일이었다. 나는 마치 무서운 위험에 처하기라도 한 듯이 피비의 이마에서 손을 떼었다. ‘말해 줘서 고마워,’ 하고 나는 말했다.
‘오, 오빠 손을 태우면 안되지. 그래서 내가 너무 뜨거워지기 전에 그만 두었어 ― 쉬이!’ 그리고는, 피비는 재빠르게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피비가 그렇게 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왜 그러니?’ 하고 내가 말했다.
‘앞문이야!’ 하고 피비는 큰소리로 말했다. ‘오셨어!’
나는 재빨리 벌떡 일어나서 건너 편으로 넘어가서 책상 위의 불을 껐다. 그리고 나는 담배를 신발 위에 뭉걔서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리고 나서는 담배 연기를 내 보내려고 미친 듯이 공기를 휘저었다 ―제기랄, 담배를 피우지 말았어야 하는데. 다음에 나는 신발을 잡아 들고 벽장 속으로 들어간 다음 문을 닫았다. 정말이지, 심장이 더럽게 뛰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방에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피비?’ 하고 엄마가 말했다. ‘이제, 그만 해. 불빛을 봤다.’
‘이제 오세요!’ 나는 피비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잠이 안 왔어요. 재미있으셨어요?’
‘그럼,’ 하고 엄마는 말했지만 그 말이 진심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외출할 떈 별로 재미있게 보내지 못한다. ‘왜 깨어 있었지, 물어봐도 될까? 방은 따뜻했니?’
‘방은 따뜻했어요, 그저 잠이 오지 않았어요.’
‘피비, 여기서 담배 피웠니? 사실대로 말해, 응.’
‘네?’ 하고 피비가 말했다.
‘담배 피웠냐구?’
‘잠깐 하나 피웠어요. 그저 후 하고 내뿜었어요. 그리곤 창 밖으로 던져 버렸어요.’
‘왜, 물어봐도 될까?’
‘잠이 오지 않아서요.’
‘그건 좋지 않아, 피비. 그건 전혀 좋지 않아,’ 하고 엄마가 말했다. ‘담요를 한장 더 줄까?’
‘아녜요.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피비는 말했다. 피비가 엄마에게서 벗어나려고 하는 게 역력했다.
‘영화는 어땠니?’ 하고 엄마가 말했다. ‘좋았어요. 앨리스 엄마만 빼면요. 걔네 엄만 영화를 보는 내내, 앨리에게 몸을 숙이고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냐고 물었어요. 집에 올 떈 택시를 탔어요.’
‘이마 좀 만져 보자.’
‘아무렇지도 않아요. 앨리스도 그렇구요. 그저 걔네 엄마만 감기 걸린 거예요.’
‘그럼, 이제 자라. 저녁밥은 어땠니?’
‘형편 없었어요,’ 하고 피비는 말했다.
‘너 아빠가 그런 말을 쓰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들었지? 뭐가 형편없다는 거야? 넌 맛있는 양고기를 먹었잖아. 난 그걸 사러 렉싱톤 애비뉴를 온통 ―’
‘양고기는 좋았어요, 근데 샬린은 뭘 내려 놓을 땐 언제나 나한테 숨을 내뿜어요. 샬린은 음식이니 뭐니에다 온통 숨을 내뿜어요. 정말 아무 데나 숨을 내 뿜어요.’
‘자아, 이제 자라. 엄마한테 키쓰해 주고. 기도는 했니?’
‘화장실에서 했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잘 자거라. 바로 자야 돼. 엄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하고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자주 머리가 아프다. 그건 정말이다.
‘아스피린을 좀 드세요,’ 하고 피비는 말했다. ‘홀든은 수요일에 오죠?’
‘내가 알기로는 그래. 이제 들어가라. 쏙 들어가.’
엄마가 나가고 문을 닫는 소리가 났다. 나는 이삼분 정도 기다렸다. 이어서 나는 벽장에서 나왔다. 그 때 나는 피비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왜냐하면 너무 어두웠는데 피비는 침대에서 나와서 나한테 말해 주려고 이쪽으로 오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쳤니?’ 하고 내가 말했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오셨기 때문에 이젠 소근소근 말해야 했다. ‘이젠 가 봐야겠다,’ 하고 나는 말했다. 어둠속에서 침대 모서리가 보여서, 나는 거기 앉아서 신발을 신기 시작했다. 나는 꽤 걱정이 되었다, 그건 인정해야 돼.
‘지금 가지 마,’ 하고 피비가 속삭였다. ‘주무실 때까지 기다려!’
‘아냐, 지금 가야 돼. 지금이 제일 좋은 때야,’ 하고 나는 말했다. ‘엄마는 목욕을 하실 거고 아버지는 뉴스니 뭐니를 보려고 텔레비젼을 켤테니까. 지금이 제일 좋은 때지.’ 나는 신발 끈을 매는 것도 어려웠다, 나는 그 정도로 불안했던 것이다. 부모님이 나를 잡아서 죽이거나 뭐나 할까봐 그런 게 아니고, 그저 부모님 눈에 띄는 게 싫었던 것이다. ‘대체 너 어디 있는 거니?’ 하고 나는 피비에게 말했다. 너무 깜깜해서 피비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야.’ 피비는 바로 내 옆에 서 있었다. 나는 피비가 보이지도 않았다.
‘가방들을 역에 놓고 왔어,’ 하고 나는 말했다. ‘피비, 돈 좀 있니? 난 거의 돈이 바닥났어.’
‘크리쓰마스 때 쓸 돈밖엔 없는데. 선물이나 뭐나를 살 건데. 아직 쇼핑이나 뭐나를 안 했거든.’
‘오.’ 나는 피비의 크리쓰마스 돈은 가져가고 싶지 않았다.
‘좀 줄까?’ 하고 피비가 말했다.
‘니 크리쓰마스 돈은 가져가고 싶지 않아.’
‘어느 정도 빌려 줄 순 있어.’ 하고 피비가 말했다. 나는 피비가 D.B.의 책상에 가서 수백만걔나 되는 서랍을 열어 손으로 더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완전히 깜깜했다, 방이 너무 깜깜했던 것이다. ‘오빠가 가면, 내가 연극에 나오는 거 보지 못하는데,’ 하고 피비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피비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렸다.
‘아냐, 보러 갈 거야. 그 전엔 안 가. 넌 내가 연극도 안 보고 갈 줄 아니?’ 하고 나는 말했다. ‘내가 뭘 할 거냐 하면 말야, 아마 화요일 밤까지는 앤쏠리니 선생의 집에 있을 거야. 그 다음엔 집에 올께. 기회가 있으면 너한테 전화하고.’
‘여기 있다,’ 하고 피비가 말했다. 피비는 나한테 돈을 주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내 손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야?’
피비는 돈을 내 손에 놓았다.
‘야, 난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어,’ 하고 내가 말했다. ‘그냥 2 딸라만 줘. 정말이야 ― 여기 있어.’ 나는 돈을 돌려 주려고 했지만 피비는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다 가져도 돼. 갚으면 되잖아. 연극 보러 올 때 가지고 와.’
‘근데, 얼마냐?’
‘8 딸라 85 쎈트. 아니 65 쏀트네. 좀 썼거든.’
그 때 갑자기 나는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도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울자 피비는 깜짝 놀라서 나한테 와서는 눈물을 막으려고 했지만, 일단 울기 시작한 이상 금방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침대 모서리에 앉아 있었다. 피비는 내 목을 끌어 안았다. 나도 피비를 끌어 안았지만, 그래도 나는 오래 동안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숨이 막혀 죽을 것같았다. 정말이지, 나는 피비를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이다. 창문이 열려 있어서, 나는 피비가 떨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피비는 파자마만 입고 있었으니까 말야. 나는 피비를 침대로 들어가게 하려고 했지만 피비는 그러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울음을 멈췄지만, 정말 그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음에 나는 단추니 뭐니를 다 채웠다. 나는 피비에게, 계속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피비는, 내가 그러고 싶다면 자기하고 같이 자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지금 가는 게 좋다, 앤쏠리니 선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느니 뭐니 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오바 주머니에서 사냥 모자를 꺼내서 피비에게 주었다. 피비는 그런 미치광이같은 모자를 좋아한다. 피비는 받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억지로 주었다. 피비는 그걸 쓰고 잤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피비는 그런 모자를 정말 좋아하거든. 그리고 나는 다시, 기회가 있으면 전화하겠디고 말하고는 집을 나왔다.
집에 들어가기보다는 나오기가 훨씬 쉬었다. 우선, 나는 부모님이 나를 잡든지 말든지 이제 걱정되지 않았다. 정말 그랬던 것이다. 나는, 잡을테면 잡아라 하고 생각했다. 어떤 면에선, 잡혔으면 하고 바라기까지 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걸어서 내려왔다. 나는 뒷계단으로 내려왔다. 나는 거의 천만걔나 되는 쓰레기통에 걸려서 모가지가 부러질 뻔 했지만, 무사히 나왔다. 엘리베이터 보이는 나를 보지도 못했다. 그 친구는 아마 내가 딕스타인네 집에 있을 것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제 24장
앤쏠리니 선생 부처는 써튼 플레이스에 있는 굉장히 멋진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두 계단만 내려가면 거실이 있는데, 거긴 빠니 뭐니 해서 없는 게 없다. 나는 선생의 집에 여러번 갔었는데, 그건 내가 엘크톤 힐즈를 나온 후에 선생이 내가 어떻게 지내나 보려고 저녁을 먹으로 우리 집에 아주 자주 왔었기 때문이다. 선생은 그 땐 결혼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선생이 결혼하고 나서, 나는 롱 아일랜드, 포레스트 힐즈에 있는 웨스트 사이드 테니스 클럽에서 선생 부처와 테니스를 치러 자주 다녔었다. 앤쏠리니 선생 부인이 거기 속해 있었거든. 부인은 돈에 대해서는 인색하다. 부인은 선생보다 6년 정도 나이가 많지만, 선생 부처는 꽤 사이가 좋은 것 같이 보였다. 우선, 두 분 다 아주 지적인 사람들이었다, 특히 앤쏠리니 선생이 그랬다, 선생은 같이 있을 떈, 지적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재치가 있었다, D.B.하고 좀 비슷했다. 앤솔리니 선생 부인은 대걔는 진지한 편이었다. 부인은 심한 천식에 걸려 있었다. 두 분 다 D.B.의 소설을 읽었다 ― 선생 부인도 읽었다 ― 그리고 D.B.가 할리웃에 가려고 할 때, 선생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서 가지 말라고 하였다. D.B.는 가고 말았지만, 선생은 D.B같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할리웃에 갈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건 내가 말한 것과 같은 말이었다.
나는 피비가 나에게 준 크리쓰마스 돈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선생의 집에 걸어서 가려고 했지만, 밖으로 나왔을 때 기분이 이상했다. 좀 현기증이 났다. 그래서 나는 택시를 탔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어쨋든 택시를 탔다. 나는 택시를 잡는데도 무지하게 시간이 걸렸다.
내가 벨을 울렸을 때 앤쏠리니 선생이 문을 열었다 ― 엘리베이터 보이 녀석이 태워서 올려 준 뒤에 말이다. 선생은 목욕복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한 손에는 하이볼을 들고 있었다. 선생은 아주 세련된 사람이었고 또한 굉장히 술을 좋아했다. ‘홀든, 여어!’ 하고 선생은 말했다. ‘이런, 20인치는 더 자랐구나. 널 보니 반갑다.’
‘안녕하세요, 앤쏠리니 선생님? 사모님께서도 안녕하세요?’
‘우린 다 잘 있지. 그 오바 줘.’ 선생은 오바를 받아서 걸었다. ‘난 니가 갓난 아기를 안고 온 줄 알았는데. 어쩔 수가 없구나. 니 눈썹에도 벌써 눈서리가 내렸는데.' 선생은 어떤 때는 아주 제치있는 사람이다. 선생은 돌아서서 부엌쪽으로 소리를 질렀다. ‘릴리안! 커피는 어떻게 됐소?’ 릴리안이란 부인의 이름이다.
‘다 됐어요,’ 하고 부인이 소리쳤다. ‘홀든이니? 안녕, 홀든!’
‘안녕하세요, 사모님!’
선생 집에 가면 늘 소리를 질러대게 된다. 두 분이 동시에 같은 방에 있는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그건 좀 웃기는 일이다.
‘앉아라, 홀든,’ 하고 앤쏠리니 선생이 말했다. 선생이 약간 들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방은 마치 금방 파티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유리잔이며 땅콩이 담긴 접시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방이 지저분해서 미안한데.’ 하고 선생이 말했다. ‘버팔로에서 온 마누라 친구들을 대접했었거든, 사실 몇몇 친구는 진짜 버팔로지만 말야.’
나는 웃었다, 그 때 부인이 부엌에서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무슨 소린지 듣지는 못했다. ‘뭐라고 하신 거예요?’ 하고 나는 앤솔리니 선생에게 물었다.
‘자기가 들어 올 때 보지 말라고 한 거야. 금방 일어났거든. 담배 피워라. 지금도 담배 피우니?’
‘고맙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선생이 내 민 담배갑에서 담배를 한 걔 집었다. ‘가끔 피웁니다. 전 담배를 별로 많이 안 피워요.’
‘그럴 거야,’ 하고 선생은 말했다. 선생은 테이블에서 커다란 라이터를 집어서 불을 붙여 주었다. ‘그래. 이제 너하고 펜시는 하나가 아니란 말이지.’ 선생은 늘 그런 식으로 말을 했다. 어떤 때는 그런 게 재미있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그렇지도 않았다. 선생은 좀 지나치다 싶을 만큼 그랬다. 선생이 재치가 없다느니 뭐니 하다는 말이 아니다 ― 선생은 재치가 있는 분이다 ― 하지만 누군가가 언제나 ‘이제 너하고 펜시는 하나가 아니란 말이지.’ 하는 식으로 말할 땐 가끔 신경이 거슬리기도 한다. D.B.도 어떤 때는 좀 지나치게 그런다.
‘뭐가 문제였나?’ 하고 앤쏠리니 선생이 물었다. ‘영어는 어땠니? 영어에 낙제했다면 내가 잘하는 비결을 간단하게 알려 줄께. 넌 영어 작문은 잘 하는데 말야.’
‘오, 영어는 잘 통과했어요. 하지만 문학이 주로 문제였어요. 학기 내내 두번 정도 밖에 작문을 내지 못했어요,’ 하고 나는 말했다. ‘전 「구술 표현법」에서 낙제했어요. 거기선 「구술 표현법」이니 하는 걸 들어야 했거든요. 거기서 낙제했어요.’
‘왜?’
‘오, 모르겠어요.’ 나는 그런 얘기를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머리가 좀 어지러웠는데, 갑자기 두통을 느꼈던 것이다. 정말 그랬다. 하지만 선생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거기에 대해 얘기를 좀 했다. ‘그건 하나씩 일어나서 연설을 하는 과목이었어요. 아시죠. 자발적이니 뭐니 하는 거요. 그리고 얘기가 주제에서 벗어나면, 재빠르게 “탈선!” 하고 소리를 질러야 하는 거예요. 거기서 F를 받았어요.’
‘왜?’
‘오, 모르겠어요. 그런 짓을 하는 게 제 신경에 거슬렸거든요. 모르겠어요. 제 문제가 뭐냐 하면요, 누군가가 얘기를 벗어나거나 하는 걸 좋아한다는 거예요. 그게 더 재미있어요.’
‘넌 누가 너한테 어떤 얘기를 할 때, 그 한가지 얘기만 하는 게 싫으냐?’
‘오, 아녜요! 전 누군가 한가지 얘기를 물고 늘어지는 걸 좋아해요. 하지만 너무 한가지 얘기만 하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모르겠어요. 전, 누군가 언제나 한가지 얘기만 하는 건 좋아하지 않나 봐요. 「구술 표현법」에서 제일 좋은 점수를 받은 애들은 한가지 얘기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애들이었어요 ― 그건 인정해요. 하지만 리차드 킨젤라라는 애가 있었어요. 걔는 별로 한가지만 물고 늘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애들이 걔한테 계속해서 “탈선!” 하고 소리질렀지요. 그건 끔찍한 일이었어요, 왜냐하면 우선 걔는 굉장히 소심한 애였거든요 ― 정말로 걔는 굉장히 소심한 애였어요 ― 걔는 자기가 얘기를 할 때가 되면 입술을 와들와들 떨었어요, 그래서 뒷쪽에 앉아 있으면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어느 정도 입술이 떨리지 않게 되면 전 걔 얘기가 다른 애들보다 더 좋았어요. 하지만 걔도 거기서 거의 낙제했어요. 애들이 계속해서 “탈선!” 하고 소리를 질러대서 D-플러스를 받았어요. 예를 들어, 걔는 자기 아버지가 버몬트에 샀다는 농장 얘기를 했어요. 걔가 얘기를 하는 동안 애들은 내내 “탈선!”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리고 선생은, 빈슨씨인데, 농장이니 뭐니에서 무슨 동물이니 식물이니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고 F를 줬어요. 걔가 뭘 했냐 하면요, 리차드 킨젤라 말예요, 그런 얘기를 하고 있다가 갑자기 자기 삼촌이 엄마한테 쓴 편지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삼촌이 마흔 두 살이 되었을 때 소아마비니 뭐니에 걸린 얘기하고, 입원해 있을 때 자기가 부목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아무도 문병을 오지 못하게 한 얘기를 했어요. 그건 농장 얘기하곤 별로 관계도 없는 얘기였어요 ― 그건 인정해요 ― 하지만 그건 재미있는 얘기였어요. 누군가 자기 삼촌 얘기를 하는 건 재미있어요. 특히, 자기 아버지 농장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삼촌 얘기를 할 때 말예요. 제 말은, 걔가 진지하게 얘기에 열중하고 있는데, “탈선!” 하고 계속 소리를 지르는 건 더러운 짓이라는 거예요... 모르겠어요. 그걸 설명하기는 어려워요.’ 나는 또 별로 얘기하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다. 우선, 갑자기 머리가 굉장히 아팠다. 앤쏠리니 선생 부인이 빨리 커피를 갖고 들어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정말 짜증나는 게 그런 거였다 ― 무슨 말이냐 하면, 커피가 다 됐다고 하면서 사실은 안 된 거 말이다.
‘홀든... 한가지 약간 딱딱한 질문을 하나 할까. 모든 일에는 그에 맞는 때와 장소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니? 누군가 자기 아버지의 농장 얘기를 시작했으면 그 얘기를 어느 정도 하다가, 다음에 삼촌의 부목 얘기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니면, 삼촌의 부목 얘기가 그렇게 호기심 있는 얘기라면, 먼저 그 얘기를 주제로 잡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 농장이 아니라?’
나는 생각이니 대답이니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머리가 아팠고 더러운 기분이었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배도 좀 아팠다.
‘그렇게 생각해요 ― 모르겠어요. 그렇게 했어야겠지요. 제 말은, 그게 제일 관심있다면 농장 대신에 자기 삼촌을 주제로 삼았어야 된다는 거예요. 하지만 제 말은, 대걔 사람은 자기에게 가장 흥미있는 건 아닌 어떤 얘기를 시작할 때 비로소, 자기에게 뭐가 제일 흥미있는 지를 알게 된다는 거예요. 제 말은, 어떤 때는 자기도 어쩔 수 없다는 거지요. 제가 생각하는 건요, 적어도 뭔가에 흥미가 생겨 열중하게 되기까지는 그냥 내버려 둬야 된다는 거예요. 저는, 누군가 뭔가에 열중해 있을 때가 좋아요. 선생님은 그 분을 모르셔서 그래요, 빈슨 선생 말예요. 그 선생은 가끔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요, 자기도 그렇고 반 전체도 그렇구요. 제 말은, 그 선생은 늘 통일시키라느니 단순화하라느니 하고 말해요. 어떤 건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데 말예요. 제 말은, 누가 통일이니 단순화니 하는 걸 원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말예요. 선생님은 그 분을 모르셔서 그래요. 빈슨씨 말예요. 제 말은, 그 분은 굉장히 지적이니 뭐니 해요, 하지만 별로 머리가 좋은 것 같진 않아요.’
‘커피들 드세요,’ 하고 앤솔리니 선생 부인이 말했다. 부인은 커피니 과자니 하는 걸 담은 접시를 들고 들어왔다. ‘홀든, 날 보지 마. 꼴이 엉망이니까.’
‘안녕하세요, 사모님,’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일어나니 뭐니 하려고 했지만 선생은 내 양복을 잡고 다시 앉혔다. 선생 부인은 머리에 컬러니 뭐니 하는 걸 잔뜩 붙이고, 립스틱이니 뭐니 하는 것도 바르지 않고 있었다. 부인은 과히 보습이 보기 좋은 게 아니었다. 아주 나이가 많아 보였다.
‘여기 놓고 갈께요. 잡수세요,’ 하고 부인이 말했다. 부인은 유리잔들을 모두 치우고 담배 테이블 위에 접시를 올려 놓았다. ‘어머니는 안녕하시니, 홀든?’
‘잘 있으세요, 감사합니다. 최근에 어머니를 보진 못했지만, 마지막으로 ―’
‘여보, 홀든한테 뭐 필요한 게 있으면, 옷장 속에 다 있어요. 제일 윗 칸에요. 난 자러 가요. 너무 피곤해서.’ 하고 부인은 말했다. 부인은 정말 피곤한 모습이었다. ‘잠자리는 알아서 까실 수 있겠죠?’
‘우리가 다 알아서 할께. 당신은 자러 가요,’ 하고 앤쏠리니 선생이 말했다. 선생은 부인에게 키쓰를 해 주고, 부인은 나한테 인사를 하고는 침실로 들어갔다. 그 분들은 사람들 있는 데서 늘 키쓰를 한다.
나는 커피를 조금 마시고 과자를 반 정도 먹었는데 마치 돌덩어리처럼 딱딱했다. 하지만 앤쏠리니 선생은 그저 하이볼을 한 잔 더 마셨다. 선생은 하이볼을 굉장히 강하게 해서 마신다. 조심하지 않으면 알콜 중독자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몇 주 전에 아버지와 점심을 같이 먹었다,’ 하고 선생이 갑자기 말했다. ‘그거 알고 있었니?’
‘아녜요, 몰랐어요.’
‘너도 물론, 알고 있겠지, 아버지가 네 걱정을 굉장히 하고 계시다는 거 말이다.’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러시는 거 알지요.’ 하고 나는 말했다.
‘보니까, 나한테 전화하시기 전에, 최근 교장 선생한테서 좀 언짢은 편지를 받으신 거같더라. 네가 전혀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는 취지의 편지 말야. 수업을 빼먹고. 수업에 하나도 준비를 하지 않고 온다는. 대체로, 전반적으로 ―’
‘전 수업을 빼먹은 적은 없는데요. 수업을 빼먹으면 안되게 되어 있거든요, 가끔 들어가지 않은 게 몇개 정돈 있었지만요, 말씀드린 「구술 표현법」 같은 거 말예요, 하지만 수업을 빼먹은 적은 한번도 없어요.’
나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커피를 먹어서 배가 좀 나아지긴 했지만 두통은 여전했다.
앤쏠리니 선생은 또 하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선생은 마치 중독자처럼 담배를 피웠다. 이윽고 선생이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너한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홀든.’
‘알고 있습니다. 전 뭐라 얘기하기가 어려운 상태예요. 그건 깨닫고 있어요.’
‘난, 니가 뭔가 끔찍하게 추락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게 어떤... 내 말 듣고 있니?’
‘네.’
선생이 마음을 집중시키려고 애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건 아마 이런 건지도 몰라, 서른 살이 되어서 어떤 빠에 앉아서, 아마 대학에서 축구선수를 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 올 때마다 경멸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지도 모른다는 거야. 그러다간 다시, “그건 자네와 나만의 비밀이야.” 하고 말하는 그런 사람들을 경멸할 만한 정도의 교양을 쌓을 지도 모르고. 아니면 결국엔 어떤 사무실에 들어가게 될 지도 모르지, 가까이 있는 속기사한테 서류 뭉치를 던져 주고 하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넌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는 알지?’
‘네, 그럼요,’ 하고 나는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말했다. ‘하지만 일을 싫어한다는 말씀은 잘못 아신 거예요. 아니, 축구 선수니 뭐니를 싫어한다는 것 말예요. 정말 잘못 아시는 거예요. 제가 뭐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건 아녜요. 전 어떠냐 하면요, 얼마 동안은 싫어하지요, 펜시에 있는 저 스트래드레이터나 로버트 애클리. 어쩌다 한 번씩 그 놈들이 싫어지곤 했어요 ― 그건 인정해요 ― 하지만 그런 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어요, 제 말은 그런 거예요. 얼마 있다가 그 놈들이 보이지 않거나, 방에 들어오지 않거나 아니면 식당에서 몇번 보이지 않으면 약간 그 놈들이 그리워지기도 했어요. 정말로 그 놈들이 그리워졌다는 거예요.’
앤쏠리니 선생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선생은 일어나서 큰 얼음 덩어리를 가지고 와서 하이볼에 넣고는 다시 앉았다. 선생이 무슨 생각에 몰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선생이 지금 말고 아침에 다시 얘기를 시작했으면 하고 바랬지만 선생은 얘기를 계속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 쪽에서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을 때 얘기를 하려고 한다니까.
‘좋아, 잠깐 내 얘기를 들어 봐... 지금은 하고 싶은 말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겠는데, 하루 이틀 내로 너한테 편지를 쓸께. 그러면 넌 모든 걸 똑바로 이해하게 될 거야. 어쨋든 들어 봐.’ 선생은 다시 애기를 시작했다. 이윽고 선생이 말했다. ‘이런 추락은, 난 니가 어떤 끔찍한 ― 이런 건 별난 추락인데 ― 그런 추락에 빠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추락하는 사람은, 자기가 바닥에 떨어지는 걸 느끼지도 듣지도 못해. 그냥 계속해서 추락해 가는 거지. 그런 사람들은, 인생 어느 시점에서, 자기들의 환경에서 찾을 수 없는 어떤 것을 찾으려고 하는 거야. 아니면 자기들의 환경은 그런 걸 줄 수 없다고 생각하던가. 그래서 그들은 찾기를 포기하게 돼. 그들은 실제로 시작도 해 보기 전에 포기하는 거야. 내 말 듣고 있니?’
‘네, 선생님.’
‘정말로.’
‘네.’
선생은 일어나서 유리잔에 술을 더 따랐다. 그리고 다시 앉았다. 선생은 꽤 오래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에게 겁을 주려고 하는 건 아냐,’ 하고 선생은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니가 어떤 별로 가치도 없는 이상을 위해 고결하게 죽어가고 있는 게 보여.’ 선생은 나에게 재미있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편지를 쓰면 그걸 잘 읽어 보겠니? 그리고 보관할 거니?’
‘네. 그럼요,’ 하고 나는 말했다. 실제로도 나는 편지를 보관한다. 나는 지금도 선생이 나한테 준 메모를 보관하고 있다.
선생은 방 건너편에 있는 책상으로 가서, 앉지도 않고 종이 위에 뭔가를 썼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손에 종이를 들고 앉았다. ‘이상하지만, 이건 현재 시인이 쓴 건 아냐. 이건 빌헬름 쉬테켈이라는 정신분석학자가 쓴 거야. 여기 그가 ― 너 아직도 내 말 듣고 있는 거니?’
‘네, 그럼요.’
‘이게 그 사람이 쓴 거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의 특징은, 이상을 위해 죽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성숙한 사람의 특징은, 이상을 위해 겸손하게 살아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선생은 앞으로 몸을 숙여서 나에게 그것을 건네 주었다. 나는, 선생이 그것을 건네 주었을 때 바로 읽은 다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선생이 그런 수고를 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별로 정신을 집중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이지, 나는 갑자기 더럽게 피곤하였다. 하지만 선생은 별로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꽤 흥분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요즘,’ 하고 선생은 말했다. ‘너도 이제 진로를 정해야 할 것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 다음엔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것도 바로 말야, 넌 지금 우물쭈물할 여유가 없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선생이 나를 정면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선생이 말하는 것에 대해 별로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나는 분명히 알고 있기는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별로 확신할 수가 없었다. 나는 너무나 피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기는 싫지만,’ 하고 선생은 말했다. ‘니가 일단 어디로 가야 할 지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 먼저 학업에 전념해야 할 거야. 그렇게 해야 할 거야. 넌 학생이야 ― 니가 관심이 있든 아니든 간에 말야. 넌 지식을 사랑하고 있잖니. 그리고 난, 니가 빈즈 선생이니 그 「구술 뭐」니 하는 걸 통과한다면 내 말의 뜻을 알 거라고 생각한다.’
‘빈슨 선생이에요,’ 하고 나는 말했다. 선생은 빈즈 선생이 아니고 빈슨 선생을 의미했을 것이다. 어쪳든 나는 선생의 말을 막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 ― 빈슨 선생. 일단 니가 빈슨 선생의 수업을 통과한다면, 넌 조금씩 아주 귀중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거야 ― 즉, 니가 그걸 원하고 추구하고 기다린다면 말야. 무엇보다도, 인간의 행동에 대해 혼란을 느끼고 놀라고 또 구역질을 느낀 사람이 니가 처음은 아니란 걸 알게 될 거야. 그 점에선 넌 혼자가 아냐, 그리고 넌 그걸 알게 되면 관심이 생기고 더 알고 싶을 거야. 아주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너처럼 윤리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고뇌를 겪었지. 다행이,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의 고뇌를 기록으로 남겨 놓았지. 넌 거기서 배우는 게 있을 거야 ― 니가 원한다면 말야. 언젠가 니가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남겨 놓는다면, 그들이 너한테서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것처럼 말야. 그건 아름다운 상호 합의지. 그건 교육이 아니야. 그건 역사야. 그건 시지.’ 선생은 말을 멈추고 하이볼을 한잔 크게 들이켰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 얘기를 이었다. 정말이지, 선생은 정말 흥분해 있었다. 나는 선생의 말을 중단시키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겼다. ‘난 지금 너한테,’ 하고 선생은 말했다. ‘교육 받고 학식이 있는 사람들만이 세상에 가치있는 뭔가를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아니야. 그렇지는 않아. 내 말은, 교육 받고 학식있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똑똑하고 창조성이 있다면 ―불행히도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지만 ― 단순히 총명하고 창조성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기록을 남기는 경우가 많아. 그런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을 더 명확하게 표현하고, 또 자기의 사상을 끝까지 추구하는 정열을 가지고 있지. 그리고 ― 가장 중요한 건 ― 열에 아홉은, 그들은 학식이 없는 사색가보다는 더 겸손한 자세를 갖고 있지. 내 말 듣고 있니?’
‘네, 선생님.’
선생은 다시 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 경험이 있는 지는 모르지만, 누가 생각이니 뭐니를 하는 동안 무슨 말을 하기를 기다리는 건 좀 힘들다. 정말 그렇다. 나는 하품이 나오려는 것을 막으려고 계속 애를 쓰고 있었다. 나는 따분하거나 그런 기분이었다 ― 그렇지는 않았다 ― 하지만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교육은 또 다른 걸 주기도 해. 한 동안 교육을 받다 보면, 넌 자신의 머리가 어느 정도 되는 지를 알게 될 거야. 자신의 머리가 어디에 맞는지 또 맞지 않는지를 말야. 얼마 있으면, 자신의 머리로는 어떤 종류의 사상을 가져야 하는 지를 알게 된다. 예를 들어, 교육은, 자기한테 맞지 않는, 어울리지 않는 사상을 가지려고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게 해 준다. 자기의 정확한 치수를 알고 거기 따라서 사상을 갖추게 되는 거야.’
그 때, 갑자기 나는 하품을 하고 말았다. 얼마나 무례한 놈인가, 하지만 자신도 그걸 억제하지 못했다!
하지만 앤쏠리니 선생은 그저 웃었다. ‘이런,’ 하고 선생은 말하고는 일어섰다. ‘잠자리를 마련해야겠구나.’
나는 선생을 따라갔다. 선생은 벽장으로 가서, 제일 윗칸에 있는 시트니 담요니 하는 것들을 내리려고 애를 썼지만 손에 하이볼 잔을 들고는 잘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생은 하이볼을 마셔버리고는 잔을 바닥에 내려 놓고 다시 잠자리를 내려 놓았다. 나는 선생이 그것들을 침대 위에 까는 것을 도와 드렸다. 우리는 같이 잠자리를 깔았다. 선생은 그런 것에 별로 소질이 없었다. 선생은 잠자리를 아주 반듯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서서라도 잠이 들 판이었으니까.
‘니 여자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나?’
‘다들 잘 있어요.’ 정말 더럽게 얘기를 잘 하지 않아? 하지만 나는 얘기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
‘쌜리는 어떻게 지내고 있니?' 선생은 쌜리 헤이즈를 알고 있었다. 언젠가 선생에게 인사를 시킨 적이 있었던 것이다.
‘잘 있습니다. 오늘 오후에 걔하고 데이트를 했어요.’ 정말이지, 그 일이 20년 전의 일같이 생각되었다! ‘저희는 이제 공통점이 별로 없어요.’
‘참 예쁜 애지. 그 다른 애는 어떤가? 저번에 얘기한 적 있는, 메인에 산다는.’
‘오 ― 제인 갤러허요. 걔도 잘 있지요. 아마 내일 걔한테 전화를 할 것 같애요.’
우리는 그 때 잠자리를 다 만들었다. ‘이제 여기서 자라.’ 하고 앤쏠리니 선생은 말했다. ‘니 긴 다리는 어떻게 할 지 모르겠는데.’
‘괜찮습니다. 전 짧은 침대에 익숙해 있어요,’ 하고 나는 말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과 사모님은 정말 오늘 밤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욕실이 어디 있는 지는 알지? 뭐 필요한 게 있으면, 그냥 소리를 질러. 난 잠시 부엌에 있을 거니까 ― 불빛 때문에 자는데 방해가 될까?’
‘아녜요 ― 천만에요, 아니예요. 정말 고맙습니다.’
‘좋아. 잘 자라.’
‘안녕히 주무세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은 부엌으로 들어가고 나는 욕실로 들어가서 옷을 벗었다. 칫솔이 없었기 때문에 이빨을 닦을 수는 없었다. 나는 파자마도 없었는데, 앤쏠리니 선생은 빌려 주는 걸 잊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거실로 돌아가서 침대 옆에 있는 작은 등을 끄고 바지를 입은 채로 침대속으로 들어갔다. 그건 나한테 너무 짧았다, 침대말이다, 하지만 나는 눈 한번 깜짝도 하지 않고 선 채로라도 잘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앤쏠리니 선생이 한 말을 생각하면서 몇 초동안 깨어 있는 채 누워 있었다. 자기 머리의 치수를 깨달으니 뭐니 하는 것 말이다. 선생은 정말 재치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눈을 뜬 채로 있을 순 없어서 잠이 들었다.
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났다. 그 얘기는 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갑자기 잠이 깼다. 그 때가 몇 시였지는 모르지만 어쨋든 잠이 깬 것이다. 뭔가 이마를 만지는 느낌이 있었다, 그건 누군가의 손이었다. 정말이지,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게 뭐였냐 하면, 그건 앤쏠리니 선생의 손이었다. 선생이 뭘 하고 있었냐 하면, 선생은 침대 옆 바닥에 앉아서 내 이마를 만지작거리는지 두드리는지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천 피트는 뛰어 올랐을 것이다.
‘대체 뭘 하고 계세요?’ 하고 나는 말했다.
‘아냐! 그냥 여기 앉아서 널 ―’
‘아니, 뭘 하고 계신데요?’ 하고 나는 다시 말했다.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몰랐다 ― 내 말은, 당황했다는 말이다.
‘목소릴 좀 낮춰라. 난 여기 앉아서 ―’
‘가야겠어요, 어쨋든,’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이지, 나는 얼마나 겁이 났는지 모른다! 나는 캄캄한 데서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바지가 잘 입혀지지도 않았다, 난 정말 겁이 났던 것이다. 나는 학교니 뭐니에서 누구보다도 변태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내가 옆에 있을 때 꼭 변태 짓을 한다니까.
‘어디 가야 한다는 거니?’ 하고 앤쏠리니 선생은 말했다. 선생은 아주 아무렇지도 않고 침착한 채 하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냉정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내말은 정말이다.
‘가방이니 뭐니를 역에 놓고 왔어요. 거기 가서 그걸 가져 오는 게 좋을 것같아요. 그 안에 내 물건들이 다 있거든요.’
‘아침에 가도 그대로 있을 거야. 자, 이제 그만 자라. 나도 잘 거니까. 뭐가 잘못됐니?’
‘잘못된 건 없어요. 그저 돈이니 뭐니가 가방에 있어서 그래요. 금방 올께요. 택시를 타고 돌아올께요,’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이지, 나는 깜깜한 데서 애를 쓰고 있었다. ‘사실은, 그게 내 거가 아니에요, 돈 말이에요. 엄마 거고 나는 ―’
‘우스운 소리 하지 마라, 홀든. 이제 가서 자. 나도 자러 가겠다. 돈은 아침에도 거기 안전하게 ―’
‘아니에요, 이건 진짜예요. 가 봐야 돼요. 정말이에요.’ 나는 넥타이만 어디 있는지 찾지 못했지, 옷은 거의 다 입었다. 나는 넥타이를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넥타이를 매지 않고 양복이니 뭐니를 입었다. 앤쏠리니 선생은 나한테서 좀 떨어진 커다란 의장 앉아서 나를 보고 있었다. 너무 깜깜해서 선생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날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선생은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선생의 충실한 하이볼이 손에 들려 있는 게 보였다.
‘넌 아주 이상한 애구나.’
‘알아요,’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넥타이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넥타이를 매지 않은 채였다. ‘안녕히 계십시오, 선생님,’ 하고 나는 말했다. ‘고맙습니다. 진심으로요.’
선생은, 내가 현관으로 나갈 때 바로 따라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벨을 울릴 때도 현관에 서 있었다. 그는 여전히, 내가 ‘이상한 애니 뭐니 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상한 애라구? 제기랄. 선생은 엘리베이터가 올 때까지 현관에서 기다리고 서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가 오기를 그렇게 기다려 본 적도 없었다. 하늘에 맹세코 하는 말이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거기 서 있는 선생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이렇게 말했다. ‘이제 좋은 책을 좀 읽어야겠어요. 정말 그러야겠어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는 말이다. 정말 당황했다니까.
‘가방을 찾으면 바로 돌아와라. 문을 열어 놓겠다.’
‘고맙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안녕히 계세요!’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왔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서 아래로 내려갔다. 정말이지, 나는 미친 놈처럼 떨고 있었다. 나는 땀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이런 변태적인 일을 당하면 정말 더럽게 땀을 흘린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런 일이 스무 번은 일어났다. 나는 이런 일은 정말 참을 수 없다.
제 25장
내가 밖으로 나갔을 때, 불들이 막 꺼지고 있었다. 또 무지하게 추웠지만 나는 땀을 많이 흘리고 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상쾌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랐다. 나는 또 호텔로 가서 피비의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렉싱턴으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그랜드 쎈트럴역으로 갔다. 내 가방들이 거기에 있어서, 거기 미치광이같은 대합실의 벤치에서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얼마동안은 과히 나쁘지 않았는데, 그건 사람들도 별로 많지 않았고 발을 올려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얘긴 하고 싶지 않다. 과히 좋은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짓은 해 볼 생각도 하지 마, 이건 정말이다. 기분이 우울해지니까 말이다.
나는 아홉시 정도까지 밖에는 자지 못했다. 백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대합실에 들어와서 발을 내려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발을 바닥에 내려 놓고는 잘 자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일어나 앉았다. 여전히 머리가 아팠다. 아까보다 더 아팠다. 그리고 내 일생 어느 때보다도 우울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앤쏠리니 선생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거기서 자지 않은 걸 알았을 때, 선생이 부인에게 뭐라고 말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그 부분은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는데, 그건 선생은 아주 영리해서 뭐라고 할 말을 꾸며 낼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집에 갔느니 뭐니 하고 얘기했을 것이다. 그 부분은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정말 신경이 쓰인 건,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선생이 내 이마니 뭐니를 만지작 거리는 걸 알게 된 부분이다. 내 말은, 선생이 나에게 수상한 짓을 한 거라고 생각한 게 오해를 한 게 아닐까 한 것이다. 나는, 선생은 누가 잠들어 있을 때 단순히 이마를 만지작거리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말이지, 그런 짓에 대해 누가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도 그러지는 못한다. 나는 심지어는, 아까 말한대로 가방을 집어들고 다시 돌아갔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 말은, 선생이 설령 변태라 해도, 나한테 아주 잘 해 주지 않았냐 하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그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를 했을 때도, 오고 싶으면 바로 와도 좋다고 선생이 말한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선생은 일부러 신경을 써 주어서, 내 머리의 치수니 뭐니를 발견하라는 충고를 해 준 것과, 제임스 케슬이라고 전에 말한 친구가 죽었을 때 그 아이 옆에 갔었던 유일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다. 나는 그런 모든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욱 더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내 말은, 선생의 집으로 돌아갔어야 하지 않았냐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아마 선생은 아무런 뜻도 없이 그저 내 이마를 만지작거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우울해지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더욱 나쁜 것은, 눈이 무지하게 아팠다. 잠을 충분히 자지 않았기 때문에 눈이 쑤시고 타는 것 같았다. 게다가, 감기도 좀 걸린 것 같았는데, 나는 손수건도 없었다. 수트테이스에 조금 있긴 했지만, 그 철제 가방에서 그것을 꺼내서 사람들 있는 데서 펼치거나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가 내 옆의 벤치에 놓아 둔 잡지가 있어서, 나는 그것을 읽는 동안 잠시나마 앤쏠리니 선생이니 백만가지 다른 일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잡지를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읽기 시작한 그 기사는 내 기분을 훨씬 더 불쾌하게 했다. 그건 온통 호르몬 이야기였다. 호르몬이 좋은 상태에 있으면, 얼굴이니 눈이니 뭐니가 어떤 모습이니 하고 써 놓은 것이었는데, 나는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그 기사에서 호르몬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의 모습과 정확하게 맞았다. 그래서 나는 내 호르몬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다음에 나는, 암에 걸렸는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방법에 관한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거의 이주일 동안 입술 안쪽이 따끔따끔거리는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암에 걸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잡지는 정말이지 기분을 복돋아 주었다니까. 나는 마침내 잡지 읽는 것을 중단하고 좀 걷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다. 나는 암에 걸렸기 때문에 이삼 걔월 지나면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니까. 나는 그것을 확신하기까지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확실히 과히 즐거운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어쩐지 비가 올 것 같았지만 나는 어쨋든 걷기 시작했다. 우선 나는, 아침을 좀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도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 말은, 비타민이 들어 있는 걸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돈을 많이 쓰지 않으려고, 싸구려 식당들이 있는 동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걸어가다가, 트럭에서 커다란 크리스마쓰 트리를 내리고 있는 두 사람 옆을 지나갔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한테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 놈의 걸 위로 들고 있어! 제기랄 들고 있으라니까!’ 크리스마쓰 트리를 가지고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정말 훌륭하지 않아? 하지만, 그건 끔찍하긴 하지만 조금 우습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는 조금 웃음이 나왔다. 그건 아마 내가 한 짓 가운데서 제일 나쁜 짓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웃음이 나오자마자, 게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으니까 말이다.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웃었지만 게우지는 않았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내 말은, 내가 뭔가 상한 거나 그런 걸 먹은 적이 없고, 또 보통 나는 소화를 잘 시킨다는 말이다. 어쨋든, 그런 생각은 사라졌고, 뭔가를 먹으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싸구려로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서 도너츠와 커피를 먹었다. 하지만 도너츠는 먹지 않았다. 잘 삼킬 수가 없었다. 사실, 무슨 일로 아주 우울한 상태에선, 음식을 삼키는 일이 아주 힘드는 법이다. 하지만 웨이터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돈을 내라고 하지 않고 그것들을 도로 가져갔다. 나는 커피만 마셨다. 다음에 나는 거기를 나와서 5번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월요일이니 뭐니였는데, 크리스마쓰가 아주 가까웠기 때문에 가게들은 전부 열려 있었다. 그래서 5번가를 따라 걷는 것도 별로 나쁘지는 않았다. 요정같은 크리스마쓰였다. 저 울퉁불퉁한 싼타 클로스들은 그 놈의 벨을 울리면서 길모퉁이에 서 있었고, 립스틱이니 뭐니도 바르지 않은 구세군 여자들도 벨을 울리고 있었다. 나는 전날 아침 식사시간에 만났던 저 두명의 수녀들이 있나 하고 둘러보았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없을 줄은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학교 선생이 되기 위해 뉴욬에 온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쨋든 나는 계속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어쨋든, 갑자기 굉장한 크리스마쓰가 된 것이다. 백만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시내에 나와서, 버스에서 내리거나 타지 않으면, 가게에 들어가거나 나오고 있었다. 나는 피비가 근처에 있었으면 했다. 피비는 이제 장난감 가게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할 만큼 그렇게 어린애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장난을 하거나 사람들을 쳐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작년 크리스마쓰 때는 피비를 데리고 시내에 나와서 쇼핑을 했었다. 우리는 그때 재미있게 보냈다. 블루밍스데일 백화점에서였다고 기억한다. 우리는 구두 가게에 들어갔는데, 피비는 굽이 아주 높은 구두를 사려고 했었다. 저 백만걔나 되는 구멍이 있는 구두 말이다. 우리는 점원을 무지하게 짜증나게 만들었었다. 피비는 거의 스무걔나 되는 구두를 신어 보았는데, 그때마다 그 친구는 신발끈을 매어주어야 했던 것이다. 그건 비열한 장난이었지만 어쨋든 그런 짓을 하는 게 피비는 재미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마침내 모카신 구두를 한 켤레 사고 계산을 했다. 그 점원은 아주 친절했다. 나는, 피비가 계속해서 낄낄거렸기 때문에 그 친구가 우리가 장난질을 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쨋든, 나는 넥타이니 뭐니도 매지 않고 5번가를 따라서 계속 걸어 올라갔다. 그 때 갑자기, 뭔가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나는 블록 끝에 와서 보도에서 내릴 때마다, 길 반대쪽으로 가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그냥 계속해서 길을 따라 내려 가자, 그러면 아무도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거다, 하는 생각을 하였다. 정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자,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야. 나는 더럽게 땀을 흘리고 있었다 ― 내 셔츠와 속옷이니 뭐니가 전부 젖어 있었다. 그 때 나는 갑자기 다른 짓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블록 끝에 올 때마다, 내 동생 앨리한테 얘기를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나는 앨리한테 말을 하는 것이다. ‘앨리, 날 사라지게 하지 마. 앨리, 날 사라지게 하지 마. 앨리, 날 사라지게 하지 마. 제발, 앨리.’ 그리고 나는 길 건너편까지 사라지지 않고 건너가면, 앨리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리고 다음 모퉁이에 이르면, 그런 짓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걸어갔다. 나는, 걸음을 멈추기가 두려웠다고 생각한다 ― 잘 생각나지는 않는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야. 나는 60번가를 지나서 동물원이니 뭐니까지 가기 전에는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을 안다. 나는 어떤 벤치에 앉았다. 나는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였고 무지하게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마 한 시간은 거기 앉아 있었을 것이다. 마침내, 내가 뭘 하려고 결심했냐 하면, 나는 가 버리자고 결심했다. 나는 집에도 가지 않고 다른 학교에도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나는, 다만 피비를 만나서 작별 인사니 뭐니를 하고 크리스마쓰 돈을 돌려 주고 자동차를 얻어 타고 서부로 가자고 결심했다. 뭘 할 거냐 하면, 홀랜드 터널로 내려가서 차를 하나 얻어 타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차를 바꿔 타는 것이다, 그러면 며칠이 지나면 서부 어딘 가에 가 있겠지, 거기 가면 날씨가 아주 좋겠지, 아무도 날 알지 못하고 그러면 거기서 일자리를 하나 얻느 것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어딘가 주유소 일자리를 하나 얻어서 사람들 차에 걔스니 기름이니를 넣어 주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어떤 일이라도 상관 없었다. 그저,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할 거냐 하면, 나는 귀머거리 벙어리인 체 하리라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 아무하고도 무슨 바보같은 쓸데없는 애기를 주고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만일 누가 나한테 말을 걸려면, 종이에 써 가지고 나한테 줘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얼마 후에는 그런 짓에 싫증이 나게 되고, 나는 일생동안 얘기 같은 걸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누구나, 내가 불쌍한 귀머거리 벙어리라고 생각하고 나를 혼자 내버려 둘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바보같은 자동차에 걔스니 기름을 넣으라고 하고, 월급이나 그런 것을 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내가 번 돈으로 어딘가에 작은 오두막집을 짓고 거기서 일생동안 사는 것이다. 집은 숲속은 아니고 숲 가까운 데 지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햇빛이 비치는 걸 좋아하니까. 나는 혼자서 음식을 요리해 먹고, 나중에 결혼이니 뭐니를 하고 싶으면 나처럼 귀머거리 벙어리인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서 결혼하는 거다. 그 여자는 와서 나하고 같이 사는 거다, 그리고 나한테 할 말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처럼 종이에다 그걸 써야 한다. 만일 애기를 낳으면 어딘가에 애기를 숨겨 놓을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한테 책을 잔뜩 사다 주고, 우리 스스로 읽고 쓰는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굉장히 흥분되었다. 정말 그랬다. 나는 귀머거리 벙어리 행세를 하는 부분은 미친 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 나는 정말 서부나 어디로 가겠다고 결심했다. 그 전에 먼저 하고 싶은 일은, 피비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은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갑자기 나는 미친 사람처럼 길 건너로 뛰어갔다 ― 나는 거의 차에 치어 죽을 뻔했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인데 ― 그리고 문방구에 들어가서 편지지와 연필을 샀다. 나는, 피비한테 작별 인사를 하고 크리스마쓰 돈을 돌려 줄 수 있게 어디에서 만나자 하는 메모를 써서, 피비의 학교에 그걸 가지고 가서는 교장실에 있는 아무한테 그걸 피비한테 주라고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편지지와 연필을 주머니에 넣고 피비의 학교로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 문방구 안에서 메모를 쓰기엔 나는 너무나 흥분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피비가 점심을 먹으러 집에 가기 전에 그걸 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빨리 걸았다. 그리고 나한텐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피비의 학교에 간 적이 있었기 때문에 물론 학교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교 안이 어떤 지 잘 기억할 수 있을까 하였지만 기억을 해냈다. 학교 안의 모습은 내가 옛날에 갔을 때하고 똑같았다. 안에는 그 때와 똑같은 약간 어두운 큰 마당이 있었는데, 공에 맞아도 깨지지 않게 전등들은 철골로 싸 놓았다. 바닥은 시합이니 뭐니에 사용하기 위해 그 때와 똑같이 원 모양들을 칠해 놓았다. 그리고 망이 없이 백보드와 링만 남아 있는 저 낡은 농구 골대도 있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그건 아마 휴식시간이 아니고 또 아직 점심시간이 되지 않앗기 때문일 것이다. 조그만 흑인 아이 하나만 보였는데 화장실에 가는 모양이었다. 아이의 뒷주머니에서 나무로 만든 통행증이 삐죽이 나와 있었는데, 우리도 전에는 그런 걸 가지고 다녔다. 그건 화장실에 가도 된다는 허가증 같은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아까같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나는 층계로 가서 첫 번째 계단에 앉아서 아까 산 편지지와 연필을 꺼냈다. 층계에서는 옛날에 내가 왔을 때와똑같은 냄새가 났다. 마치 누군가 거기다 금방 오줌을 눈 것같은 그런 냄새 말이다. 학교 계단에서는 항상 그런 냄새가 난다. 어쪳든 나는 거기 앉아서 메모를 적었다.
사랑하는 피비,
수요일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오늘 오후에는 아마 자동차를 얻어 타고 서부로 갈 것같다. 올 수 있으면 12시 15분에 박물관 정문으로 와. 너한테 크리스마쓰 돈을 돌려 줄께. 많이 쓰지는 않았어.
사랑하는 오빠 홀든.
피비의 학교는 바로 박물관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점심을 먹으러 집에 가려면 어쩃든 거기를 지나야 하기 때문에, 나는 피비가 나를 만나는데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음에 나는, 아무한테나 메모를 주어서 교실에 있는 피비한테 전해 줄 수 있도록 교장실로 가는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도 그걸 볼 수 없게 열번 정도는 접었다. 그 놈의 학교에서는 아무도 믿을 수가 없거든. 하지만 내가 피비의 오빠니 뭐니라면 그들이 피비한테 그것을 전해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계단을 올라가다가 갑자기 다시 게울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게우지는 않았다. 잠깐 앉아 있으니까 기분이 좀 나아졌다. 하지만 나는 앉아 있다가 머리를 돌게 만드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가 벽에다 ‘X나 해라’ 하고 써 놓은 것이다. 그게 정말 내 머리를 거의 돌게 만든 것이다. 나는, 피비나 다른 어린애들이 그걸 보고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하고 궁금하걔 여기다가, 어떤 너저분한 녀석이 ― 그 놈은 물론 미친 놈일 거야 ― 그들에게 그 의미를 말해 주면 아이들은 며칠 동안 그 생각을 하고 어쩌면 고민까지 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것을 써 놓은 자식은 누구라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나는, 어떤 변태 부랑자 새끼가 오줌이나 뭐나를 누려고 밤 늦게 몰래 학교에 들어 왔다가 벽에다 그런 걸 써 놓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자식을 쫓아가서, 그 놈이 완전히 뻗어서 피가 철철 날 때까지 대가리를 돌계단에다 짓이기는 상상을 계속 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런 짓을 할 만한 용기가 없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었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더 우울해졌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나는 내 손으로 벽을 문질러서 그걸 지울 용기도 없었다. 나는, 그걸 지우고 있는 걸 어떤 선생이 보고 내가 그걸 쓴 거라고 생각할까 봐 무서웠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걸 문질러서 지웠다. 그리고 교장실로 올라갔다.
교장 선생은 보이지 않았지만 백살 정도는 된 어떤 부인이 타자를 치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에게, 나는 4B-1반의 피비 코울필드의 오빠라고 말하고, 피비한테 메모를 좀 전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그 메모가 아주 중요한 거라고 말하고, 엄마가 아파서 피비한테 점심을 차려 주지 못하기 때문에, 약국에서 나하고 만나서 점심을 먹어야 할 거라고 말했다. 그 부인은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그 부인은 나한테서 메모를 빼앗아서 옆 사무실에 있는 다른 여자를 불렀다. 그 여자는 메모를 피비한테 전해 주려고 갔다. 이어서 그 백살쯤 된 부인과 나는 잠깐 허튼 소리를 나누었다. 그 부인은 아주 좋은 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하고 내 동생들도 그 학교를 다녔다는 얘기를 하였다. 그 부인이, 지금은 어디에 다니냐고 물어서 내가 펜시라고 대답하자 그 부인은, 펜시는 아주 좋은 학교라고 말했다. 나는 그 부인이 잘못 알고 있다고 바로 잡아 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할 용기가 없었다. 게다가, 그 부인이 펜시를 아주 좋은 학교로 알고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라고 해 두는 게 좋다. 백살 쯤 된 사람한테 새로운 얘기를 해 주는 건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들은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으니까. 얼마 있다가 나는 거기를 나왔다. 우스운 일이었다. 그 부인은, 내가 펜시를 떠날 때 스펜서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행운을 빌어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제기랄, 내가 어디를 떠날 때, 누가 나한테 ‘행운을 빌어요!’ 하고 소리를 지르는 걸 나는 정말 싫어한다.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거든.
나는 다른 계단으로 내려왔는데, 벽에 ‘X나 해라.’ 하고 쓴 걸 또 보았다. 나는 손으로 문질러 지우려고 했지만 그건 칼이나 뭐나를 가지고 벽에다 긁어 놓은 것이었다. 그건 잘 지워질 것같지 않았다. 어쨋든 그런 짓은 소용없는 일이다. 그런 건 백만년이나 걸려서 지우려고 해도 이 세상의 반도 지우지 못할 것이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구석진 마당에 있는 시계를 보았는데, 아직 열한 시 사십 분밖에 되지 않아서 피비를 만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어쨋든 나는 박물관 쪽으로 갔다. 달리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 도중에 전화박스라도 있으면 서부로 가기 전에 제인 갤러허한테 전화라도 한번 할까 했지만 그런 기분이 아니었다. 우선, 나는 계집애가 방학을 해서 집에 왔는 지 어떤 지도 잘 몰랐다. 그래서 나는 그냥 박물관으로 가서 어슬렁거렸다.
문 안쪽에서 피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꼬마 애들 둘이서 오더니 미이라는 어디 있냐고 물었다. 그 중에 한 꼬마는, 나한테 물어 본 아인데, 바지 단추가 열려져 있었다. 나는 그 꼬마한테 그걸 말해 주었다. 그러자 꼬마는 그 자리에서 단추를 올렸다 ― 꼬마는 기둥이나 뭐나 뒤로 가지도 않았다. 거기엔 졌다. 나는 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다시 게울 것같은 기분이 들어서 웃지 않았다. ‘미이란 어디 있어요, 아저씨?’ 그 꼬마는 다시 물었다. ‘알아요?’
나는 꼬마들과 잠깐 장난을 하였다. ‘미이라라구? 그게 뭔데?’하고 나는 그 꼬마한테 물었다.
‘있잖아요. 미이라요 ― 죽은 사람들 말예요. 저기 toon이나 그런 데 묻힌 사람들 말예요.’
toon이라구? 그게 웃겼다. 꼬마는 무덤(tomb)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왜 학교에 가지 않았니?’ 하고 나는 말했다.
‘오늘은 수업이 없어요.’ 하고 혼자 얘기를 다 하는 꼬마가 말했다. 그 놈은 거짓말을 하는 게 분명했다, 꼬마 악당 놈같으니. 하지만 나는 피비가 올 때까지 할 일도 없고 해서, 꼬마들과 같이 미이라를 찾으러 다녔다. 정말이지, 예전에는 미이라가 어디 있는지 정확하게 알았었다, 하지만 박물관에 오지 않은 지도 몇 년은 되었다.
‘너희들은 미이라가 그렇게 재미있니?’ 하고 내가 말했다.
‘네.’
‘네 친구는 말을 못하니?’ 하고 나는 말했다.
‘친구가 아니에요. 내 동생이에요.’
‘동생은 말을 못하니? 나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꼬마를 쳐다 보았다. ’넌 말을 못하니?‘ 하고 나는 그 꼬마한테 물었다.
‘아니에요,’ 하고 꼬마는 말했다. ‘말하고 싶은 기분이 아녜요.’
마침내, 우리는 미이라가 있는 곳을 찾아서 안으로 들어갔다.
‘너희들, 이집트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어떻게 묻었는지 알아?’ 나는 한 꼬마한테 물었다.
‘아니요.’
‘저런, 그런 건 알아야지. 아주 재미있어. 그 사람들은 특수한 약품으로 처리한 천으로 얼굴까지 올라오게 쌌어. 그렇게 하면, 수천년 동안 무덤 속에 있어도 얼굴이 썩거나 그러지 않았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는 이집트 사람들을 빼놓고는 아무도 몰라. 현대 과학도 몰라.’
미이라가 있는 데로 가려면, 파라오의 무덤이니 뭐니에서 가져 왔다는 돌들을 양쪽에 늘어 놓은 아주 좁은 통로를 지나가야 했다. 꽤 으시시했는데, 같이 있는 두 놈의 꼬마가 별로 재미있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꼬마들은 나한테 바짝 달라붙어 있었는데, 말이 없는 놈은 내 소매에 거의 매달려 있었다. ‘가자,’ 하고 그 꼬마가 자기 형한테 말했다. ‘난 벌써 봤거든. 자아, 빨리.’ 꼬마는 돌아서서 달아났다.
‘되게 빨리 도망가네,’ 하고 다른 꼬마가 말했다. ‘나도 갈께요!’ 그 놈도 달아나 버렸다.
그래서 나는 거기 혼자 남았다. 어떤 점에서는, 그게 약간 마음에 들기도 했다. 거긴 정말 근사하고 평화스러웠거든, 그 때, 갑자기 내가 벽에서 뭘 봤는지 상상도 못할 거야. 또 ‘X나 해라’ 하는 낙서였다. 그건 돌 아래 유리가 있는 부분 바로 밑에, 빨간 크레용 같은 걸로 씌어 있었다.
그게 문제인 것이다. 근사하고 평화스러운 곳은 절대로 찾지 못할 거야, 그런 곳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곳이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그런 데 가 봐, 그러면 보지 않는 사이에 누군가 몰래 와서는 코 밑에다 ‘X나 해라’ 하고 써 놓을 거야. 언젠가 한번 해 보기 바란다.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나를 무덤 속에 집어 넣고 비석이니 뭐니를 세우고는, 거기다 ‘홀든 코울필드’ 라고 쓴 다음에, 내가 몇 년도에 나고 몇 년도에 죽었다고 쓴 다음에 바로, ‘X나 해라’ 하고 쓸 거야. 정말이지 난 그걸 확신해.
나는 미이라가 있는 데서 나와서, 화장실에 들어가야 했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인데, 난 약간 설사를 자주 하는 편이거든. 나는 설사니 뭐니 하는 건 별로 마음에 쓰지 않고 있었지만, 다른 일이 일어났다. 나는 화장실에서 나와서 문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약간 의식을 잃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운이 좋았다. 내 말은, 바닥에 넘어졌을 때, 죽을 수도 있었단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옆으로 넘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우스운 일이었다. 의식을 잃은 다음엔 기분이 더 나아졌다. 정말 그랬다. 넘어질 때 부딪친 팔이 좀 아프기는 했지만 이제 그렇게 현기증이 나지는 않았다.
그 때가 열 두시 십 분 정도 되었기 때문에, 나는 다시 문 옆으로 가서 피비를 기다렸다. 나는 그게 피비를 마지막으로 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 말은, 친척중에 말이다. 나는 아마 친척들을 다시 만나기는 하겠지만 몇 년 내에는 다시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생각하기를, 아마 서른 다섯 살 정도 됐을 때, 누가 병에 걸려서 죽기 전에 날 보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집에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 외에는 결코 내 오두막집을 떠나서 집에 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굉장히 신경이 날카롭기 때문에 울며 불며, 다시 내 오두막집으로 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사정을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쨋든 가버리는 것이다. 나는 더럽게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를 취할 것이다. 나는 엄마를 진정시켜 놓고는, 거실 다른 쪽으로 가서 아주 냉정하게, 담배 상자를 꺼내서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오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언제 나를 찾아 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뭘 할 거냐 하면 말야, 여름 방학이나 크리쓰마스 때 그리고 부활절 휴가 때 피비한테 나를 찾아오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D.B.한테도, 만일 글을 쓰기에 좋고 조용한 곳이 필요하면 잠시 나한테 와도 좋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내 오두막집에서는 소설이나 이야기를 써야지, 영화같은 건 쓰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나는, 누가 나를 찾아 오면 아무도 되먹지 않은 엉터리같은 짓은 하지 못한다는 규칙을 만들 것이다. 만일 누가 그런 되먹지 않은 짓을 하려고 하면, 내 집에서는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갑자기 나는 휴대품 보관소에 있는 시계를 보았다. 열두시 삽십 오분이었다. 나는, 학교의 그 할머니가 다른 여자한테 메모를 피비한테 주지 말라고 말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할머니가 여자한테 메모를 불태워 버리거나 하라고 말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정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길을 떠나기 전에 정말로 피비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내 말은, 피비한테 크리쓰마스 돈이니 뭐니를 줘야 한다는 말이다.
마침내, 피비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유리창을 통해서 피비의 모습을 보았다. 피비의 모슴이 보인 건, 피비가 내가 준 미치광이 같은 사냥 모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 놈의 모자는 십 마일 밖에서도 볼 수 있다니까.
나는 피비를 맞이하기 위해서, 문을 열고 나가서 돌계단을 내려갔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피비가 커다란 수트케이스를 들고 있었던 것이다. 피비는 5번가를 지나서 그 커다란 수트케이스를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피비는 그걸 거의 끌지도 못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건 내가 우튼에 다닐 때 사용하던 낡은 수트케이스였다. 나는, 도대체 피비가 그걸 가지고 뭘 하려고 그러는지 몰랐다. ‘오빠,’ 하고 가까이 왔을 때 피비가 말했다. 피비는 그 미치광이같은 수트케이스 때문에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니가 안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하고 나는 말했다. ‘대체 그 가방에 뭐가 들은 거니? 난 아무 것두 필요 없는데. 나는 그냥 이대로 갈 거야. 나는 역에 놔 둔 가방도 가지고 가지 않는데. 그 안에 대체 뭐가 있니?’
피비는 수트케이스를 내려 놓았다. ‘내 옷이야,’ 하고 피비는 말했다. ‘나도 같이 갈래. 그래도 돼? 괜찮아?’
‘뭐라구?’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피비가 그렇게 말했을 때 거의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하늘에 맹세코 정말 그랬다. 나는 좀 현기증이 나고 다시 기절이니 뭐니 할 것같은 기분이었다.
‘샬린이 보지 못하게 뒤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왔어, 무겁진 않아. 여기 든 건 그저, 옷 두 벌하구 모카신 구두, 속옷, 양말 그리고 다른 것들이야. 만져 봐. 무겁지 않아. 한번 만져 봐.... 같이 가면 안돼? 홀든? 안 돼? 제발.’
‘안 돼. 입 다물어.’
나는 기절할 것같은 기분이었다. 내 말은, 피비한테 입 다물라느니 하는 말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다시 기절할 것 같았다.
‘왜 안돼? 제발, 홀든! 난 아무 것두 안 할거야 ― 오빠하구 그냥 갈거야! 오빠가 같이 가자구 안하면 옷두 안 가지고 갈거야 ― 난 그냥 ―’
‘넌 아무 것두 가지고 갈 수 없어. 넌 가지 않으니까. 난 혼자 가는 거야. 그러니 입 다물어.’
‘제발, 홀든. 나하구 같이 가. 난 정말, 정말 ― 오빤 ―’
‘넌 가지 않아. 이제 입 다물어! 그 가방 줘,’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피비한테서 가방을 빼앗았다. 나는 거의 피비를 때리려고 했다. 나는 잠깐, 피비를 때리려고 생각했었다. 정말 그런 생각을 했다.
피비는 울기 시작했다.
‘난 니가, 학교에서 연극이니 뭐니를 해야 한다구 생각했었어. 니가 그 연극에서 베네딕트 아놀드니 뭐니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구,’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거의 심술궂은 말투로 말했다. ‘너 뭐하려구 그러는 거야? 제기랄, 연극은 안하구?’ 그 말이 피비를 더욱 울게 만들었다. 나는 쾌감을 느꼈다. 나는 갑자기, 피비가 눈물을 떨어뜨릴 만큼 울었으면 했다. 나는 거의 피비가 미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피비가 나와 같이 가면 연극에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미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만 해,’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다시 박물관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뭘 하려고 했냐 하면, 학교가 끝나고 피비가 찾아 가도록, 그 미치광이같은 가방을 보관소에 맡기자 하고 생각했다. 나는 피비가 그걸 학교에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아, 가자,’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피비는 나와 같이 계단을 올라가려고 하지 않았다. 피비는 나와 가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쨋든 나는 가방을 보관소에 가지고 가서 맡기고 다시 내려왔다. 피비는 여전히 보도에 서 있었지만 내가 가까이 가자 나한테 등을 돌렸다. 피비는 그런 짓을 할 수 있다. 피비는 그러고 싶으면 나한테 등을 돌릴 수 있는 아이다.
‘난 아무 데두 안 가. 생각을 바꿨어. 그러니 울지 말고 가만히 있어,’ 하고 나는 말했다. 웃기는 건 뭐냐 하면, 내가 그런 말을 했을 때는 피비는 울고 있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어쨋든 나는 그런 말을 하였다. ‘자아, 이제, 내가 학교까지 널 데려다 줄께. 자아, 빨리. 늦겠다.’
피비는 내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좀 피비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피비는 내 손을 뿌리쳤다. 피비는 여전히 나한테 등을 돌리고 있었다.
‘너 점심 먹었어? 점심 아직 안 먹었어?’ 하고 나는 피비한테 물었다.
피비는 내 말에 대답하려고 하지 않았다. 피비는 그저, 내 빨간색 사냥 모자를 벗어서 ― 내가 준 것 말이다 ― 거의 내 얼굴에 댈 정도로 팽걔쳤다. 그리고는 다시 등을 돌렸다. 그게거의 날 슬프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모자를 집어서 오바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왜 그래, 야. 내가 학교까지 널 데려다 줄께.’
‘난 학교에 안 가.’
피비가 그런 말을 했을 때 나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나는 몇 분동안 거기 그냥 서 있었다.
‘학교에 가야 돼. 너 그 연극에 나가고 싶지 않아? 베네디트 아놀드 역 하고 싶지 않아?’
‘싫어.’
‘아냐, 넌 하고 싶잖아. 넌 정말 그 역을 하고 싶잖아. 자, 가자,’ 하고 나는 말했다. ‘먼저, 난 아무 데두 안 가, 내가 그랬지? 난 집에 가는 거야. 난 니가 학교에 가자마자 집으로 갈 거야. 먼저 난 역에 가서 가방들을 찾아 가지고 다음엔 곧장 집으로 ―’
‘학교에 안 간다고 했잖아. 오빤 하고 싶은 대로 해, 하지만 난 학교에 안 가,’ 하고 피비는 말했다. ‘그러니까 입 좀 다물어.’ 피비가 나한테 입을 다물라고 말한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 말은 정말 끔찍하게 들렸다. 정말이지, 끔찍하게 들렸다. 그건 욕을 하는 것보다 더 나쁜 말로 들렸다. 피비는 여전히 나를 보려고 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깨에 약간 손을 올려 놓으려고 할 때마다 뿌리쳤다.
‘야, 우리 좀 걸어 갈까?’ 하고 나는 피비에게 물었다. ‘동물원까지 걸어가지 않을래? 너 보고 오늘 오후에 학교에 가라고 하지 않고 좀 산책이나 하면, 화 풀거야?’
피비는 여전히 대꾸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말했다. ‘오늘 오후에 학교 빼먹고 좀 산책이나 하면 화 풀거냐구? 내일은 착한 어린애답게 학교에 갈거야?’
‘그럴 지도 모르고 안 그럴 지도 몰라,’ 하고 피비는 말했다. 그러더니 피비는 차가 오나 보지도 않고 바로 길 건너로 달려갔다. 피비는 가끔 미친 사람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피비를 따라가지 않았다. 나는 피비가 나를 따라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원쪽 길을 따라 동물원을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비는 길 건너편에서 시내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피비는 나를 보려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피비가 내가 어디로 가는지보려고 아마 잔뜩 화난 눈으로 나를 힐끔힐끔 볼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해가 된 건, 이층 버스가 옆을 지나갈 때였다. 그 때는 길 건너편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대체 피비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기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동물원에 도착했을 때, 나는 피비에게 소리를 질렀다, ‘피비! 난 동물원에 들어간다! 빨리 와!’ 피비는 나를 보려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피비가 내 말을 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동물원으로 가는 계단을 내려갈 때, 나는 고개를 돌리고, 피비가 길을 건너서 나를 따라오고 있는 걸 보았다.
날시가 좀 우중충했기 때문에 동물원 안에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았다. 하지만 바다사자 우리니 뭐니에는 몇 명이 있었다. 내가 그 옆을 지나치려고 할 때, 피비는 걸음을 멈추고 바다사자들이 먹이를 받아 먹는 것을 보는 체했다 ― 한 친구가 바다사자들에게 고기를 던져주고 있었다 ― 그래서 나는 되돌아 갔다. 나는, 그 때가 피비 옆으로 갈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피비에게 다가가서 약간 뒤에 서서 피비의 어깨에 손을 좀 댔지만, 피비는 무릎을 굽혀서 빠져 나갔다 ― 피비는 한 번 마음 먹으면 굉장히 골이 날 수가 있다는 건 말한 적 있지? 피비는 바다사자들이 먹이를 받아먹는 동안 거기 계속 서 있었고 나도 피비 바로 뒤에 서 있었다. 나는 이제 피비의 어깨에 손을 갖다 대거나 뭐하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피비가 바로 도망가 버릴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우습다. 아이들한테는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바다사자 우리를 떠날 때도 피비는 내 옆에서 걸으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 멀리서 걷지도 않았다. 피비는 약간 다른 쪽 인도로 걷고 나는 반대쪽에서 걸었다. 그건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었지만, 아까처럼 일마일이나 떨어져서 걷는 것보다는 나았다. 우리는 윗쪽으로 걸어 올라가서 잠깐동안 작은 언덕 위에 있는 곰을 보았지만 그 놈은 별로 볼 만한 게 없었다. 한마리만 밖에 나와 있었다, 북극곰 말이다. 다른 놈은, 갈색 곰 말인데, 동굴 속에 들아가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 놈은 엉덩이만 이쪽으로 보이고 있었다. 내 옆에는 카우보이 모자를 귀까지 눌러 쓴 꼬마가 있었는데, 자기 아버지한테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다. ‘아빠, 곰이 나오게 해. 곰이 나오게 해.’ 나는 피비를보았지만 피비는 웃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골이 나면 어떤 지 알지? 아이들은 웃거나 뭐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곰 우리를 떠나서, 동물원을 나와서 공원 안에 있는 작은 길을 건너갔다. 다음에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 오줌을 눈 것 같은 냄새가 나는 작은 터널로 들어갔다. 그건 회전목마 타는 데로 가는 길이었다. 피비는 여전히 나하고 얘기니 뭐니도 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이제 약간 내 곁에서 걷고 있었다. 나는 그저 장난으로 피비의 오바 뒤에 있는 벨트를 잡았지만 피비는 그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피비는 말했다, ‘손 좀 가만히 있어, 부탁이야.’ 피비는 여전히나한테 골이 나 있었다. 하지만 아까처럼 그렇게 골이 난 건 아니었다. 어쨋든 우리는 회전목마 쪽으로 점점 가까이 갔는데, 항상 거기서 돌리는 미치광이같은 노래가 들려왔다. 그건 “오, 마리!” 라는 노래였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오십 년 전에도, 똑같은 노래를 돌리고 있었다. 회전목마가 한가지 좋은 점은, 언제나 똑같은 노래를 돌린다는 것이다.
‘겨울엔 회전목마 안 하는 줄 알았는데.’ 하고 피비가 말했다. 피비가 무슨 말을 한 건 그게 처음이었다. 피비는 아마, 나한테 화를 내고 있어야 한다는 걸 잊어버린 것같았다.
‘아마 크리쓰마스 때니까 그렇겠지,’ 하고 내가 말했다.
내가 말을 하자 피비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피비는 아마, 나한테 화를 내고 있어야 한다는 게 생각난 것같았다.
‘저거 한번 타고 싶니?’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피비가 아마 그걸 타고 싶어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피비가 아주 어린 꼬마였을 때, 앨리와 D.B. 그리고 내가 피비를 데리고 공원에 가면, 피비는 회전목마 타는 걸 미치게 좋아했다. 그 놈의 것에서 피비를 내리게 할 수가 없었다니까.
‘난 너무 커,’ 하고 피비가 말했다. 나는 피비가 내 말에 대꾸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피비는 대꾸했다.
‘아냐, 그렇지 않아. 타 봐, 내가 기다려 줄께. 타 봐,’ 하고 내가 말했다. 이어서 우리는 바로 그리로 갔다.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는데, 대부분 아주 어린애들이었다. 그리고 부모들은 바깥쪽에서 벤치니 뭐니에 앉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뭘 했냐 하면, 나는 표를 파는 창구로 가서 피비의 표를 한 장 샀다. 그리고 표를 피비에게 주었다. 피비는 바로 내 옆에 서 있었다. ‘여기,’ 하고 나는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 니 돈 남은 것도 받아.’ 나는 피비가 나한테 빌려 준 돈을 주려고 하였다.
‘오빠가 가지고 있어. 내 대신 가지고 있어,’ 하고 피비는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부탁이야.’
누군가가 ‘부탁이야’ 하고 말하면 정말 우울해진다. 내 말은, 피비나 누가 그런다면 말이다. 그 말이 나를 무지하게 우울하게 했다. 하지만 나는 돈을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오빠도 타지 않을래?’ 하고 피비는 나에게 물었다. 피비는 약간 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이제 피비는 나한테 화를 내지 않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음에 타지 뭐. 널 보고 있을께,’ 하고 나는 말했다. ‘표 받았지?’
‘응.’
‘그럼 가 ― 난 여기 벤치에 앉아 있을께. 널 봐줄께.’ 나는 벤치로 가서 앉고, 피비는 회전목마를 타러 갔다. 피비는 회전목마 주위를 돌았다. 내 말은, 피비가 회전목마 주위를 완전히 한바퀴 돌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피비는 지쳐 보이는 커다랗고 늙은 갈색 말 위에 올라탔다. 그러자 회전목마가 돌기 시작했고, 나는 피비가 회전목마를 타고 돌아가는 걸 바라보았다. 회전목마 위에는 아이들이 대여섯 명밖에 없었는데, “당신의 눈에 눈물이 고일 때”라는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노래는 아주 묘하면서도 재즈풍으로 연주되고 있었다. 아이들은 황금빛 손잡이 고리를 잡으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피비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피비가 말에서 떨어질까 봐 좀 걱정이 되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아이들이 황금빛 손잡이 고리를 잡으려고 하면, 하고 싶은 대로 놔 두고 아무 말도 해서는 안된다. 떨어지면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회전목마가 멈추자, 피비는 말에서 내려서 나한테로 왔다. ‘이번에 오빠도 한번 타 봐,’ 하고 피비가 말했다.
‘아냐, 난 그냥 널 보고 있을께. 그냥 널 바라보고 있을 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피비에게 돈을 좀 더 주었다. ‘여기. 표를 좀 더 사.’
피비는 나한테서 돈을 받았다. ‘이제 오빠한테 화 안나,’ 하고 피비는 말했다.
‘알아. 빨리 가 ―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데.’
그러자 갑자기 피비는 나한테 입을 맞췄다. 그리고 피비는 손을 내밀었다. ‘비가 올 것같애. 비가 오는데.’
‘알아.’
이어서 피비가 뭘 했냐 하면 ― 그게 나를 놀라게 했다 ― 피비는 내 오바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내 빨간색 사냥 모자를 꺼내서 내 머리에 씨워 주었다.
‘너 이거 안 가질래?’ 하고 내가 말했다.
‘잠깐 쓰고 있어도 돼.’
‘알았어. 빨리 가, 이제. 놓치겠다. 니 말이니 뭐니를 말야.’
하지만 피비는 가지 않고 그냥 있었다.
‘오빠가 아까 한 말 정말이야? 정말 아무 데도 안 가는 거야? 정말 이제 집에 갈 거야?’ 하고 피비는 나에게 물었다.
‘응,’ 하고 나는 말했다. 내 말은 진심이었다. 나는 피비한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나중에 집으로 갔다. ‘이제 빨리 가,’ 하고 나는 말했다. ‘돌아가기 시작하는데.’
피비는 달려가서 표를 샀다. 그리고 회전목마가 돌아가기 바로 전에 거기 도착했다. 피비는 자기 말을 찾아서 자기 말을 찾았다. 그리고는 거기 올라탔다. 피비는 나에게 손을 흔들었고 나도 피비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정말이지, 미치광이처럼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빠께쓰로 쏟아 붓는 것같았다, 이건 농담이 아냐. 부모니 엄마니 모두들 비에 젖지 않으려고 회전목마 지붕 아래로 가서 섰다. 하지만 나는 꽤 얼마동안 거기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나는 완전히 비에 젖었다, 특히 목과 바지가 흠뻑 젖었다. 사냥 모자를 쓰고 있어서 그래도 비로부터 보호가 되었지만 그래도 비에 젖었다. 하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피비가 회전목마에 타고 돌아가는 모습에서 나는 갑자기 행복한 느낌에 젖었다. 나는 거의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나는 정말 광장히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인데. 왜 그런 지는 모른다. 그저, 피비가 청색 오바니 뭐니를 입고 회전목마에서 돌아가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던 것이다. 정말이지, 그 모습을 봤어야 하는데.
제 26장
내가 얘기하려는 건 이것뿐이다. 내가 집에 돌아 오고 나서 뭘 했으며, 병이니 뭐니에 걸리고, 여기서 나가면 다음 가을에는 어느 학교에 가기로 되었다느니 하는 얘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정말 그런 얘기는 하고 싶지가 않다. 지금은 그런 얘기가 별로 흥미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사람들이 여기서 알고 지내는 정신분석학자라는 친구는, 내가 다음 9월에 학교에 가게 되면 공부에 전념할 것인지를 끈덕지게 물었다. 내 생각엔, 그건 정말 멍청한 질문이다. 내 말은, 누가 어떤 걸 하기 전까지는 뭘 할 건지를 어떻게 아냐 하는 말이다. 그건 아무도 모른다. 나는 공부에 전념하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내가 그럴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다. 하늘에 맹세코 그건 멍청한 질문이야.
D.B.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지만, 그도 나한테 여러 가지 질문을 끊임없이 한다. 지난 토요일에는, 그는 자기가 쓰고 있는 새 영화에 나오는 영국 여자하고 드라이브를 했다. 그 여자는 굉장히 태도를 꾸미는 그런 여자였지만 아주 미인이기는 했다. 어쨋든, 한번은 그여자가 복도 저 쪽 끝에 있는 화장실에 갔을 때, D.B.는 나한테 내가 이제 말한 그런 얘기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몰랐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인데, 나는 그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른다.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한테 그 얘기를 한 걸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내가 아는 건, 내가 얘기한 모든 사람들이 약간 그리워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스트래드레이터와 애클리까지도 그렇다. 저 모리스 새끼까지도 그리워지는 것같다. 그건 우스운 일이다. 절대로 아무한테도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러면 모두를 그리워하게 될 테니까 말야.
Penguin Modern Classics
제 1장
정말 내 얘기를 꼭 듣고 싶다면, 내가 어디서 출생하고, 내 칠칠치 못한 어린 시절이 어땠고 부모님의 직업은 무엇이며 그들이 나를 낳기 전에 뭘 했다는 등의 데이비드 커퍼필드 식의 너저분한 이야기를 알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 그런 얘기를 늘어놓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우선 그런 얘긴 따분한데다가, 다음으로 내가 그 분들의 신상 얘기를 하면, 부모님은 두 번씩이나 뇌일혈을 일으킬 테니까. 그 분들은 그런 것엔 아주 민감하거든. 특히 아버지는 그렇다. 그 분들은 훌륭하고 또 뭐니 뭐니 하다 ? 하지만 그런 얘길 하자는 건 아니고 ― 어쨌든 지독하게 민감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내 자서전이나 뭐 그런 것을 얘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다만 지난 크리스마쓰 때, 내가 녹초가 되어 여기 돌아와 몸을 쉬기 전에 나한테 일어났던 저 미치광이 같은 일을 얘기하려는 것이다. 내 말은, 그 얘긴 D.B.한테 다 했다는 거야. D.B.는 내 형이니 뭐니 하는 사람이다. 그는 지금 할리웃에 있어. 거긴 이 지저분한 곳에서 별로 멀지 않다. 그래서 그는 거의 매주마다 날 보러 여기 온다. 아마 다음 주 정도에 내가 집에 갈 때도 태워 줄 거야. 그는 얼마 전에 쟈가를 샀다. 한 시간에 이 백 마일 정도 가는 저 영국산 고물차 같은 거 말야. 그는 그걸 사는 데 거의 사천 달라나 썼다. 지금은 돈이 꽤 있거든. 전엔 그렇지 않았지만. 그는 집에 있었을 땐 그냥 보통 작가였었다. 그는 굉장한 단편집을 썼다. 들어보지 못했다면, 「비밀 금붕어」라고 하는 책이다. 거기서 제일 나은 건 ‘비밀 금붕어’였어. 그건 자기 돈으로 금붕어를 샀다고 해서 아무도 그걸 보지 못하게 한다는 어떤 꼬마 얘기다. 난 거기엔 완전히 야코가 죽고 말았지. 지금 그는 할리웃에 나가 있어. D.B. 말이다, 창녀같이. 내가 싫어하는 게 하나 있다면, 그건 영화야. 내 앞에선 영화 얘긴 하지도 마.
난 내가 펜시를 떠난 날부터 얘기를 시작하고 싶다. 펜시는 펜실버니아, 애거스타운에 있는 학교다. 아마 들어봤을 거야. 어쨌든 광고는 봤겠지. 수천 걔나 되는 잡지에 광고를 내니까. 꽤 그럴 듯해 보이는 자식이 말을 타고 펜스 위를 뛰어넘는 광고 말야. 마치 펜시에선 매일 폴로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난 그 학교 근처에서 말이라곤 한 마리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말 탄 그림 밑엔 언제나 이렇게 써 있지: ‘1888년 이래 우리는 소년들을 총명하고 뛰어난 젊은이들로 교육해 오고 있다.’ 그 따위 말은 우습지 않은가.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펜시에서도 무슨 ‘교육‘같은 건 하지 않는다. 게다가 거기서 총명하니 뛰어나니 뭐니 한 놈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 아마 두 명 정도는 있을 거야. 많다고 해도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펜시에 오기 전에 벌써 그런 애들이었을 거다.
하여간 그 날은 쌕슨 홀과 축구 시합이 있는 토요일이었다. 쌕슨 홀과의 시합은 펜시 근처에선 아주 대단한 시합으로 되어 있다. 그건 그 해의 마지막 시합이라, 만일 펜시가 이기지 못하면 자살이나 뭐라도 할 정도였다. 나는 그 날 오후 세 시 쯤에 저 멀리 위 토마스 힐에서, 독립전쟁이나 뭐 그런 때 거라는 저 미치광이같은 대포 바로 옆에 서 있었던 게 기억난다. 거기선 축구장이 다 보인다. 또 두 팀이 서로 왔다갔다하면서 으르렁거리는 것도 보이지. 지붕이 있는 특별 관람석에서 흥분해서 날뛰는 건 잘 안 보이지만 거기서 다들 소리질러 대는 건 들린다. 펜시 쪽의 소리는 열광적이고 끔찍하다. 나 말고는 학교 전체가 거기 가 있으니까 말이다. 쌕슨 홀 쪽은 빈약하고 소심하다. 왜냐하면 방문 팀은 사람들을 많이 데리고 오는 법이 거의 없으니까.
여자 애들은 축구 시합에 많이 오지 않았다. 상급생들은 여자를 데리고 와도 괜찮게 되어 있었다. 어떻게 생각할 진 모르지만 끔찍한 학교였어. 나는 가끔 주위에 여자 애들이 몇 명 정도 있는 게 좋다. 그저 팔이나 긁지 않으면 코를 풀거나, 그것도 아니면 낄낄거리거나 뭐 그런 짓밖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말이다. 쎌마 터머는 ― 교장 딸이었는데 ― 시합에 자주 얼굴을 비쳤는데, 미치게 할만큼 쎅시한 그런 타입은 아니었다. 그래도 꽤 멋있는 계집애였어. 한번은 애거스타운에서 버스를 탔는데, 그 애 옆에 앉아서 얘기를 해 본 적이 있다. 그 때 내 마음에 든 점이 있었다. 그 계집애는 코가 크고 손톱은 다 물어뜯어서 피가 날 지경이었는데, 가슴 모양이 다 드러나 보이는 그런 브래지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좀 안되어 보이더군. 그 계집애가 마음에 들었던 점은, 자기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니 뭐니 하고 되먹쟎은 말을 지껄이지 않았던 점이다. 아마 자기 아버지가 얼마나 거짓말장이 얼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나 보다.
내가 시합을 보러 아래 내려가지 않고 멀리 토마스 힐에 있었던 이유는, 펜싱 부와 같이 뉴욬에서 금방 돌아온 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펜싱 부의 주장이었거든. 대단한 일이지 뭐냐. 우리는 그 날 아침 맥버니 학교와 펜싱 시합을 하러 뉴욬에 갔었다. 갔다 뿐이지 시합은 하지도 못했다. 펜싱 칼과 장비니 뭐를 전부 그 놈의 지하철에 놓고 내렸던 것이다. 그건 전적으로 내 잘못은 아니었다. 어디서 내려야 할 지 몰라서 지도를 보러 연방 일어났던 것이다. 그래서 우린 저녁때나 올 걸 두 시 삼십 분 정도 되어 펜시에 돌아온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부원 전체가 나를 상대도 하지 않았지 뭐냐. 어떻게 보면 참 웃기는 일이었다.
내가 아래 내려가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그건 역사 선생인 스펜서 선생한테 작별 인사를 하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선생은 독감이니 뭐니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크리쓰마쓰 휴가가 시작되기 전엔 아마, 다시 보지 못할 걸로 생각하고 있었다. 선생은 나한테 메모를 남겼는데, 내가 집에 가기 전에 한번 보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펜시에 다시 안 온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
이 말은 잊어 먹고 하지 않았는데, 난 퇴학당한 거야. 난 크리쓰마쓰 휴가 뒤에도 학교에 돌아가지 못하게 돼 있었다. 난 네 과목이나 낙제를 했는데도 학업에 전념하거나 뭐나 하지 않았거든. 부모님이 터머 교장과 얘기하러 학교에 나오자, 학교에선 공부에 전념하라고 빈번히 경고했지만 ― 특히 중간 시험이 다가오고 있을 때 ― 난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퇴학당한 것이다. 펜시에선 애들을 자주 퇴학시킨다. 거긴 정말 평판이 좋은 학교다. 펜시 말야. 정말 그렇다니까.
하여튼, 12월이니 뭐니 였는데, 특히 그 바보 같은 언덕 꼭대기는 정말 끔찍하게 추웠다. 난 장갑이니 뭐니 하는 것도 없이, 안팎 구별 없는 옷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저번 주에 어떤 놈이 내 방에서 낙타털 오바하고, 내 주머니 같은 데서 모피털 달린 장갑을 도둑질해 간 것이다. 펜시엔 도둑놈들이 우글거린다. 부잣집 자식들이 많지만 어쨋든 도둑놈들도 우글거린다. 학교에 부잣집 자식들이 많을수록, 도둑놈들도 많은 법이다 ― 이건 농담이 아냐. 어쨋든 난 그 미치광이같은 대포 옆에 서서 엉덩이가 얼어 터지면서 시합하는 걸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시합에 빠져서 그런 건 아니다. 내가 거기서 어슬렁거렸던 건, 뭔가 작별한다는 기분을 느껴 보려고 그런 것이다. 내 말은, 학교니 뭐니를 떠나가는데,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다는 거다. 난 그런 게 싫거든. 난 그게 슬픈 작별이나 좋지 않은 작별이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어떤 데를 떠날 땐, 내가 거기를 떠난다는 걸 느끼고 싶은 것이다. 만약 그런 생각도 안 든다면, 나보다 더 타락한 거야.
난 운이 좋았다. 갑자기 내가 거기를 떠난다는 걸 느끼도록 만들어 줄 일이 생각난 거야. 그 때가 10월 정도였는데, 로버트 티치너, 폴 켐벨과 함께 교사 앞에서 축구공을 차던 게 갑자기 생각난 것이다. 그들은 좋은 놈들이었다. 특히 티치너는 멋진 놈이다. 저녁 식사시간 바로 전이라서 밖이 꽤 어두웠는데도 우린 어쨋든 계속해서 공차기를 하고 있었다. 점점 어두워져서 공이 보이지도 않았는데도 우린 하고 있는 짓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던 거야. 하지만 결국 그만두었다. 생물을 가르쳤던 잠베지 선생이 교사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기숙사로 돌아가서 저녁 먹으라고 말했거든. 어쨋든 난 그런 종류의 일이 생각나면, 필요할 때 작별한다는 기분을 가질 수가 있다. 적어도 대부분은 그럴 수가 있다. 나는 그런 기분이 들자마자, 돌아서서 언덕 반대편 아래로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스펜서 선생의 집 쪽으로 말이다. 선생은 교내에 살지 않고 앤쏘니 웨인 에비뉴에 산다.
나는 선생 집 정문까지 내리 뛰어간 다음 숨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깐 기다렸다. 난 금방 숨이 차거든.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야. 먼저, 난 끔찍하게 담배를 많이 피운다. 내 말은, 전에 그랬다는 거야. 못 피우게 해서 끊었지 뭐냐. 또 하나는, 난 작년에 육 인치 반이나 자랐다. 그렇게 해서 난 폐결핵에 걸려서 이 무슨 검사니 뭐니 하는 걸 받으러 여기 온 것이다. 하지만 난 꽤 건강하다.
어쨋든 난 숨을 돌리자마자 204번 도로를 뛰어 건너갔다. 지독하게 미끄러워서 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내가 뭣 때문에 그렇게 뛰어갔는지 정말 모르겠다. 아마 그냥 그렇게 뛰고 싶은 기분이었던 것 같다. 길을 건너갔을 때 난 내가 사라져 버린다는 기분이 조금 들었다. 정말 미치광이 같은 그런 오후였다. 끔찍하게 추웠지. 해니 뭐니도 안 나오고, 길을 건너갈 때마다 사라지는 것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난 스펜서 선생 집에 오자, 초인종을 빨리 울렸다. 난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귀가 시리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빨리, 빨리,’ 난 거의 소리지르다시피 했다, ‘누구 문 좀 열어 줘요.’ 마침내 스펜서 부인이 문을 열었다. 그 분들은 하녀니 뭐니 하는 것도 두지 않고 항상 몸소 문을 연다. 그 분들은 돈이 많지 않거든.
‘홀든!’ 하고 스펜서 부인이 말했다. ‘어서 와라! 들어 와! 몸이 꽁꽁 언 거니?’ 부인은 날 정말 반가와했다고 생각한다. 부인은 날 좋아했다. 적어도 내 생각엔 그런 것 같았다.
정말이지, 난 집안으로 잽싸게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하고 내가 말했다. ‘스펜서 선생님도 안녕하세요?’ ‘나한테 오바를 줘,’ 하고 부인이 말했다. 부인은 내가 스펜서 선생 안부를 묻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귀가 좀 어둡거든.
부인은 벽장 안에 내 오바를 걸었다. 나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약간 뒤로 쓸어 넘겼다. 난 보통 머리를 바짝 자르기 때문에 빗질을 할 필요가 거의 없다. ‘그 동안 안녕하셨어요, 사모님?’ 하고 나는 부인이 들을 수 있도록 더 큰 소리로 다시 말했다.
‘잘 있었단다, 홀든.’ 부인이 벽장문을 닫았다. ‘넌 어땠니?’ 부인이 말하는 어조에서 나는 스펜서 선생이 내가 퇴학당했다는 얘기를 했다는 것을 즉각 알아차렸다.
‘괜찮아요,’ 하고 내가 말했다. ‘스펜서 선생님은 좀 어떠세요? 감기는 나셨어요?’
‘다 났단다! 홀든, 그 양반은 이제 건강하단다. 지금 뭘 하시는지... 방에 계시단다. 들어가 봐라.’
제 2장
그 분들은 각자 자기 방이니 뭐니를 갖고 있었다. 두 분 다 칠십 살 정도 되었다. 아니면 훨씬 더 됐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분들은 자잘한 물건들에서 대단한 희열을 찾는다. 약간 머리가 돈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면 상스럽게 들린다는 건 알지만 진짜 그렇다는 건 아니다. 내 말은, 단지 내가 스펜서 선생 생각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되면, 도대체 그의 삶의 목적이 무엇일까 하고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내 말은, 선생의 자세는 앞으로 구부정하고 정말 보기 끔찍했다는 것이다. 교실에서 선생이 분필을 떨어뜨리면 앞줄에 앉은 누군가 일어나서 그것을 집어서 갖다 드려야 했다. 그건 정말 지독한 일이다. 하지만 선생에 대해 너무 지나치지 않게 적당히 생각한다면, 선생 나름으로는 그리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예를 들면, 한번은 일요일이었는데, 내가 선생 댁에 가서 어떤 녀석들과 뜨거운 초콜렛을 먹고 있을 때, 선생은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서 어떤 인디안한테서 산 저 낡아빠진 나바호 담요를 보여주었다. 스펜서 선생이 그걸 산 데서 대단한 기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것이다. 누군가를 늙은이 취급해 버린다. 그런데 스펜서 선생처럼 낡은 담요 같은 것을 사는 데서 굉장한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선생의 방문은 열려 있었다. 하지만 난 어쨋든 예의를 차린다는 그런 것 때문에 약간 문을 두드렸다. 선생의 모습이 보이기까지 했다. 선생은 내가 방금 말한 저 담요를 뒤집어쓰고 커다란 가죽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내가 문을 두드렸을 때 선생이 나를 쳐다보았다. ‘누구냐?’ 선생이 소리질렀다. ‘코울필드냐? 들어와.’ 선생은 학교 밖에선 언제나 소리를 지른다. 그 때문에 가끔 신경을 건드릴 때도 있다. 나는 들어간 순간, 온 것을 후회했다. 선생은 ?애틀랜틱 먼쓸리?를 읽고 있었는데, 사방에 알약이니 다른 약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빅스 노즈 드롭스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기분이 우울해졌다. 어쨋든 난 아픈 사람들한테는 그리 호감을 가질 수 없다. 날 더욱 우울하게 만든 것은, 스펜서 선생이 아마 이 세상에 나거나 뭐 할 때 입고 있었던 것 같은 아주 낡고 초라한 실내복을 입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어쨋든 난 나이 많은 사람들이 파자마나 실내복 같은 것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쭈글쭈글한 늙은 가슴팍이 언제나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그 정강이라니. 늙은이들의 정강이는 해변이나 다른 데서 언제나 털 하나 없이 너무 희게 보인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하고 내가 말했다. ‘선생님이 쓴 쪽지 봤어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내가 다시 안 돌아오기 때문에, 크리쓰마쓰 휴가가 시작되기 전에 작별 인사라도 하러 들리라고 내게 저 쪽지를 써 놓았던 것이다. ‘뭐 그러실 필요까진 없었는데요. 어쨋든 인사하러 들릴 참이었어요.’
‘거기 앉아라, 얘야,’ 스펜서 선생이 말했다. 침대에 앉으라는 것이다.
나는 침대 위에 앉았다. ‘감기는 좀 어떠세요, 선생님?’
‘그래, 좀 더 나아지면 의사를 불러 와야겠어.’ 스펜서 선생이 말했다. 선생은 자기가 한 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미친 사람처럼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이윽고 선생은 몸을 똑바로 펴고 말했다. ‘왜 축구 시합 보러 가지 않았니? 오늘은 정말 큰 시합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정말 그렇죠. 가긴 갔었어요. 근데, 전 펜싱부하고 이제 막 뉴욬에서 돌아오는 길이에요.’ 하고 내가 말했다. 정말이지, 선생 침대는 돌덩어리처럼 딱딱했다.
선생은 끔찍하게도, 진지한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선생이 그럴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길 떠난다 이 말이지? 하고 선생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그럴 것 같아요.’
선생은 저 고개를 끄덕거리는 행동을 시작했다. 스펜서 선생만큼 고개를 많이 끄덕거리는 사람은 평생 보지 못했다. 선생은 자기가 고개를 많이 끄덕거리는지 어떤지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선생은 생각이니 뭐니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저, 선생이 자기 엉덩이니 팔꿈치 같은 것은 구별하지 않고 사는 호인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터머 박사가 너한테 무슨 얘길 했니? 둘이서 꽤 오래 얘기한 걸로 알고 있는데.’
‘네, 오래 얘기했습니다. 정말로 얘길 많이 했어요. 거의 두 시간 동안이나 그 선생님 방에 있었던 것 같애요.’
‘박사가 뭐라고 얘기했니?’
‘아... 네, 인생은 시합이니 뭐니 그런 얘길 했어요. 그리고 어떻게 규칙에 따라서 인생을 살아야 하느냐 하는 그런 얘기도 했구요. 박사님이 정말 좋은 얘길 해 주셨어요. 화내거나 그러시진 않았어요. 그저 인생은 시합이니 뭐니 그런 얘기만 하셨어요. 그래요.’
‘인생은 시합이야, 얘야. 인생은 우리가 규칙에 따라서 살아야 할 시합이지.’
‘그렇죠. 저도 그건 알아요. 알죠.’
시합이라구, 제기랄. 그래 시합이라 해 두자. 만일 누가 온갖 성공이 기다리고 있는 그런 쪽에 있다면, 그럼 인생은 시합이지, 맞아. 그건 인정하겠어. 그런데 만일 성공의 가망이라곤 조금도 없는 그런 쪽에 있다면, 그 땐 그게 무슨 시합인가? 아무 것도 아니야. 시합은 무슨 시합이야.
‘터머 박사가 네 부모님께 편지를 썼니?’ 스펜서 선생이 물었다.
‘월요일에 쓸 거라고 하시던데요.’
‘넌 부모님하구 얘기해 봤니?’
‘아니요, 선생님. 아직 얘길 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수요일 밤에 집에 가면 아마 만나 뵐 테니까요.’
‘그런데 네 부모님이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글쎄요... 꽤 속이 상하시겠죠,’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 그러실 거예요. 아마 이번으로 네 번째 정도 퇴학당하는 거니까요.’ 나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나는 머리를 많이 젓는다. ‘정말이지!’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또 ‘정말이지!’ 하는 말도 많이 한다. 그건 내가 아는 어휘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내가 가끔, 내 나이에 비해서 너무 어리게 행동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때 나는 열 여섯 살이었다. 지금은 열 일곱 살이다. 그런데 나는 열 세 살짜리처럼 행동하는 때가 있다. 내가 육 피트 이와 반 인치에다가 머리카락은 회색이기 때문에 이건 정말 아이러닠한 일이다. 내 머리의 반은 ― 오른 쪽인데 ― 온통 회색 머리카락이다. 내가 아주 꼬마였을 때부터 머리카락이 그랬다. 그런데도 난 마치 열 두 살짜리처럼 행동하는 때가 있다. 다들 그렇다고 말한다. 특히 아버지가 그런 말을 많이 한다.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어떤 것이 완전히 맞는다고 생각한다. 난 그 따위 것엔 조금도 관심이 없다. 사람들이 내 나이에 맞게 행동하라고 말할 때 가끔 지겨워지는 것만 아니라면. 가끔 난 나이보다 많게 행동할 때도 있다 ― 정말이야 ―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잘 눈치채지 못한다. 사람들은 결코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스펜서 선생은 다시 머리를 끄덕거리기 시작했다. 선생은 또 코를 후비기 시작했다. 선생은 그저 코를 집고 있는 체하고 있지만 사실은 엄지손가락을 콧구멍에 집어넣고 있는 것이다. 선생은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사실 방안엔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가 콧구멍을 후비는 게 정말 구역질이 나지 않는 한 그런 것엔 상관하지 않는다.
이윽고 선생이 말했다,‘네 부모님이 몇 주전에 터머 박사와 얘길 나눌 때 네 부모님을 만나 뵙는 영광을 가졌지. 정말 훌륭한 분들이더구나.’
‘네, 그래요. 정말 멋진 분들이시죠.’
훌륭하다구. 내가 정말 싫어하는 말이 있다. 그건 거짓말이다. 누가 거짓말을 하면 게울 것같다니까.
그런데 갑자기 스펜서 선생은 나한테 해 줄 정말 좋은 말, 아주 적절한 말이 생각났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은 의자에서 약간 몸을 일으키더니 이리저리 몸을 조금 흔들었다. 하지만 내 추측은 빗나갔다. 선생은 그저 ?애틀랜틱 먼쓸리?를 무릎에서 집어들더니 침대 위 내 옆으로 던졌다. 하지만 잡지는 침대 위에 떨어지지 않았다. 2 인치 정도 빗나가 바닥에 떨어졌는데 어쨋든 빗나간 건 매한가지다. 나는 일어나서 그걸 집어들어서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갑자기 나는 그 방에서 나가 버리고 싶은 생각이 솟구쳤다. 나는 끔찍한 설교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야길 듣는 건 상관없지만, 동시에 설교를 듣고, 빅스 노즈 드롭스 냄새를 맡고, 또 파자마니 실내복이니 하는 것을 입은 스펜서 선생의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정말 그랬다.
좋아, 시작되는구나. ‘어떻게 된 거니, 얘야?’ 하고 스펜서 선생은 말했다. 선생으로서도 그건 꽤 모진 어조로 말했다. ‘이번 학기에 몇 과목 들었지?’
‘다섯 과목입니다, 선생님.’
‘다섯 과목이라. 그런데 몇 과목이 낙제지?’
‘네 걔요.’ 나는 침대 위에서 엉덩이를 약간 움직였다. 그건 내가 앉아 본 중에 제일 딱딱한 침대였다. ‘영어는 잘 통과했어요,’ 하고 나는 말했다, ‘?베어울프?니 ?로드 랜들 내 아들?같은 건 우튼 학교에서 했거든요. 제 말은, 영어는 거의 할 게 없었단 말입니다. 가끔 작문 쓰는 거 말고는 요.’
선생은 듣고 있지도 않았다. 선생은 누가 말할 때 듣는 법이 거의 없다.
‘역사에서 널 낙제시킨 건 네가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야.’
‘그건 압니다, 선생님. 정말이지, 그건 알아요. 선생님도 어쩔 수 없으셨겠죠.’
‘하나도 없어,’ 하고 선생은 같은 말을 또 했다. 그런 건 정말 미치겠다니까. 처음에 인정했는데도 어떤 말을 두 번씩 할 때 말이다. 그런데 선생은 세 번째 똑같은 말을 했다. ‘정말 하나도 없어. 난 네가 학기 중에 단 한 번이라도 교과서를 펼쳐 봤는지 의심이 들 정도야. 사실대로 말해 봐, 얘야’
‘글쎼요, 몇 번은 좀 훑어봤는데요.’ 하고 나는 말했다. 난 선생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선생은 역사에 미친 분이니까.
‘그래, 훑어봤단 말이지?’ 하고 선생이 말했다. 그건 아주 냉소적인 어조였다. ‘네 시험지가 저기 장롱 위에 있다. 서류 뭉치 제일 위에. 그걸 이리 갖다 줄래?’
그건 정말 치사한 수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쪽으로 가서 시험지를 갖다 드렸다. 어떤 다른 방법이니 뭐니가 없었거든. 그리고 다시 그 시멘트 같은 침대 위에 앉았다. 정말이지, 내가 작별 인사를 드리려고 거기 들른 것을 얼마나 후회하고 있었는지 상상도 못할 거야.
선생은 내 시험지를 마치 무슨 더러운 물건이나 뭣처럼 다루기 시작했다. ‘우리가 11월 4일부터 12월 2일까지 이집트인들 공부를 했지,’ 하고 선생은 말했다. 넌 선택 작문 시험에서 이집트인에 대해 쓰는 걸 택했지. 네가 쓴 걸 들어보고 싶지 않아?‘
‘아니요, 선생님, 별로요,’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어쨋든 선생은 그걸 읽었다. 선생들이 뭘 하려고 하면 말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그냥 하고 만다.
‘?이집트인들은 아프리카 북부의 한 지역에 사는 코카서스족의 선조이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제일 큰 대륙이다.?’
나는 거기 앉아서 그 따위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했다. 그건 정말 치사한 수법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집트인들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매우 흥미가 있다. 현대 과학은, 이집트인들이 시체의 얼굴이 수세기 동안 썩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떤 물질을 사용하여 시체를 쌌는지 흥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흥미 있는 수수께끼는 20세기의 현대 과학에는 정말 도전 거리이다.?’
선생은 읽는 것을 멈추고 시험지를 내려놓았다. 난 선생에게 약간 반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너의 작문, 작문이라고 치면 말야, 그 뿐이야,’ 선생은 저 냉소적인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나이 많은 양반이 그렇게 냉소적이니 뭐니 한 태도를 취한다는 건 생각할 수 없을 거야. ‘그런데, 넌 시험지 아래에다 뭐라고 써 놓았지,’ 하고 선생이 말했다.
‘그건 압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선생이 그걸 큰소리로 읽는 걸 막으려고 아주 빨리 말했다. 하지만 선생을 어떻게 막나. 선생은 화약처럼 성질이 급한 분이야.
‘?스펜서 선생님,?’ 하고 선생은 큰소리로 읽었다. ‘?제가 이집트인들에 대해 아는 건 이것뿐입니다. 선생님의 강의는 아주 재미있지만, 전 거기에 그렇게 흥미를 가질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영어를 빼고는 전 과목에 낙제를 받았지만 선생님이 역사에서 절 낙제시켜도 전 괜찮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께, 홀든 코울필드.?’ 선생은 빌어먹을 시험지를 내려놓고는 탁구 시합이나 뭐나에서 날 때려눕힌 것처럼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선생이 그 따위 것을 큰소리로 읽은 것을 앞으로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선생이 그런 걸 썼다면 난 그런 것을 선생에게 큰소리로 읽어 주진 않았을 것이다. 정말 그런 짓은 하지 않았을 거야. 먼저, 난 내가 그 따위 메모를 쓴 것은 선생이 날 낙제시켜도 너무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널 낙제시켜서 날 원망하니, 얘야?’ 하고 선생이 말했다.
‘아닙니다, 선생님! 전혀 그렇지 않아요.’ 하고 나는 말했다. 제기랄, 날 ‘얘야’ 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나.
선생은 시험지를 다 보자, 침대 위로 휙 던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패했다. 당연하지. 나는 다시 일어나서 그걸 집어서 ?애틀랜틱 먼쓸리? 위에 놓아야 했다. 2 분마다 같은 짓을 하니 지겨워 죽겠다.
‘네가 나라면 어떻게 했겠니?’ 하고 선생은 말했다. ‘네 진심을 말해 봐, 얘야.’
보니까, 날 낙제시킨 게 꽤나 마음에 걸리나 보다. 그래서 난 허튼 소리를 지껄였다. 나는 내가 진짜 저능아이고, 또 뭐 그런 얘기를 했다. 나는 내가 선생의 처지에 있더라도 똑같이 했을 것이고, 대다수 사람들은 선생님이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는 둥 그런 얘기를 했다. 낡아빠진 허튼 얘기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내가 허튼 소리를 지껄이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거야. 난 뉴욬에 사는데, 쎈트럴 파크 남쪽 아래에 있는 호수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다. 나는 집에 갔을 때 그 호수가 얼어붙어 있을 지, 그리고 얼었다면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 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호수가 전부 얼어붙어 버리면 오리들은 어디로 갈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떤 친구가 트럭을 타고 와서 그들을 동물원이나 그런 데로 데리고 가는지 어떤 지가 궁금했다. 아니면 그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는 건가.
하지만 난 운이 좋았다. 내 말은, 내가 스펜서 선생한테 허튼 소리를 지껄이면서 동시에 그 오리들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거 말이다. 재미있는 일이다. 선생들하고 얘기할 땐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내가 돼먹지 않은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데, 갑자기 선생이 내 말을 막았다. 선생은 언제나 말을 가로막는다니까.
‘넌 이번 일을 어떻게 생각하니, 얘야? 난 정말 알고 싶어. 정말 그래.’
‘제가 펜시에서 낙제하는 거니 그런 거 말씀이세요?’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선생이 그 쭈글쭈글한 가슴을 좀 가려 주었으면 했다. 그건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넌 우튼이나 엘크톤 힐즈에서도 좀 어려웠을 거라고 보는데.’ 선생은 냉소적인 데다가 심술궂게까지 말했다.
‘엘크톤 힐즈에선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요,’ 하고 나는 말했다. ‘꼭 낙제하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내가 그냥 그만 두었으니까요, 말하자면.’
‘왜? 물어 봐도 될까?’
‘왜냐구요? 오, 글쎄요, 말하자면 길어요, 선생님. 제 말은, 꽤 복잡한 얘기란 겁니다.’ 나는 선생에게 그 얘기를 다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한다 해도 어쨋든 선생은 이해를 못 할 거다. 그건 선생의 취향에 전혀 맞는 얘기가 아니니까. 내가 엘크톤 힐즈를 나온 제일 큰 이유는, 거기에 엉터리 같은 놈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뭐 그 뿐이다. 정말 그런 놈들이 창문에 붙어서 밖을 내다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거기 하아스 교장은 내가 본 중에 제일 엉터리 같은 작자였다. 터머 교장보다 열 배는 더 나쁜 작자였다. 예를 들어, 일요일마다 학부모들이 차를 몰고 학교에 나오면 그들과 악수를 하며 돌아다닌다. 정말 지독하게 아양을 떤다니까. 그런데 만일 어떤 애의 부모가 늙고 조그만 데다가 우스꽝스럽게 생겼으면 안 그런다. 그가 우리 반 어떤 애 부모한테 하는 걸 봤어야 하는데. 내 말은, 어떤 애 엄마가 좀 뚱뚱하거나 초라해 보이거나 그러면, 또 어떤 애 아버지가 어깨가 아주 큰 양복을 입고 촌스러운 흑백 구두를 신은 그런 사람이면, 하아스 교장은 그저 간단히 악수나 하고 거짓된 미소를 한번 지어 보이고 말지만, 어떤 다른 애 부모한테 가서는 아마 삼십 분은 지껄이는 그런 걸 말하는 거야. 난 그런 건 정말 봐 줄 수 없다. 그런 건 사람 돌게 한다니까. 난 그런 걸 보면 우울해져서 참기 어려워진다. 난 그런 망할 놈의 엘크톤 힐즈 학교가 정말 싫었다.
그 때 스펜서 선생이 뭔가를 물은 모양인데, 난 듣고 있지 않았다. 하아스 교장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다. ‘뭐라구요, 선생님?’ 하고 나는 말했다.
‘펜시를 떠나는데 뭐 특별히 아쉬운 점이 있나?’
‘오, 좀 아쉽기두 합니다, 그럼요. 물론이지요... 하지만 뭐 별로 크게 그런 건 아녜요. 어쨋든 아직은 모르겠어요. 아직 실감이 안 나는 것 같애요. 전 실감을 느끼려면 좀 시간이 걸리거든요. 지금 전 수요일에 집에 갈 생각밖엔 안 나요. 전 저능아예요.’
‘얘, 넌 미래에 대해 정말 아무런 걱정도 안 든단 말이냐?’
‘오, 뭐 미래에 대해 좀 걱정도 되지요. 그럼요. 물론, 그렇죠.’ 난 잠깐 내 미래의 생각을 했다. ‘하지만, 뭐 그렇게 많이는 아닌 것 같애요. 뭐 그렇게 많이는. 그런 거 같애요.’
‘걱정을 해야지,’ 하고 스펜서 선생은 말했다. ‘얘, 걱정해야지. 그 땐 너무 늦었을 거야.’
나는 이제 선생 말이 듣기 싫었다. 선생의 설교에 난 완전히 넌더리가 나고 말았다. 난 정말 사기가 꺾여 버렸다. ‘그래야 하겠죠,’ 하고 나는 말했다.
‘얘, 난 너의 그 머리 속에 분별력을 좀 넣어 주고 싶다. 난 지금 널 도와주려는 거야. 할 수 있다면 널 도와주려는 거야.’
선생은 정말 그랬다. 그건 정말이야. 그런데, 다만 우리는 너무나 정반대 극에 서 있었다는 것뿐이다. ‘그건 잘 압니다, 선생님,’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진심이에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정말 그래요.’ 그 때 나는 침대에서 일어섰다. 정말이지, 거기에 십 분만 더 앉아있는다면 죽을 것 같았어. ‘그런데, 저, 이제 가 봐야겠습니다. 체육관에 집에 가져 갈 장비가 꽤 있거든요. 정말이에요.’ 선생은 나를 올려다보고 저 아주 심각한 표정을 뛰고 다시 머리를 끄덕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선생에 대해 정말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그렇게 정반대 극에 서서, 선생이 뭘 던질 때마다 항상 침대 밑으로 떨어지고, 가슴이 드러나는 그 초라한 실내복과 빅스 노즈 드롭스의 그 약냄새가 사방 진동하는데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 ‘뭐, 선생님, 그렇게 절 걱정하진 마세요.’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이에요, 전 괜찮을 거예요. 이 단계가 지나면 괜챃겠죠. 다들 단계 같은 걸 지나지 않아요?’
‘모르겠다, 얘야. 모르겠어.’
난 누가 그런 식으로 대답하는 게 싫다. ‘그래요. 그렇죠, 다들 그래요,’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이라구요, 선생님. 제발 절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손을 선생의 어깨 위에 약간 얹었다. ‘아셨죠?’ 하고 나는 말했다.
‘가기 전에 뜨거운 쵸콜렛 한 컵 마시고 싶지 않니? 마누라가 아마 ― ’
‘마시고 싶어요, 정말 마시고 싶은데, 근데 사실은, 전 인제 가 봐야 해요. 바로 체육관에 가야 돼요. 어쨋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리고 우리는 악수를 했다. 그리고 판에 박힌 그런 허튼 얘기를 나누었다. 정말 지독하게 우울하더군.
‘편지 쓸께요, 선생님. 이제 감기 조심하세요.’
‘잘 가라, 얘야.’
내가 문을 닫고 다시 거실 쪽으로 가는데, 선생이 뭐라고 소리질렀지만 정확하게 무슨 말이지는 듣지 못했다. 선생은 나한테 ‘행운을 빈다!’ 하고 소리지른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나는 그러지 않았기를 바란다. 정말 그러지 않았기를 바래. 나라면 누구한테 ‘행운을 빈다!’ 하고 소리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끔찍한 소리 아냐?
제 3장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지독한 거짓말장이야. 정말 끔찍하다. 내가 잡지를 사러 가게에 가는 중이라 해도 누가 어디 가느냐고 물으면 난 오페라 보러 간다고 말한다. 정말 지독하지 않아? 그래서 내가 장비 같은 걸 가지러 체육관에 가야 한다고 스펜서 선생한테 말한 건 순전히 거짓말이다. 난 체육관에 무슨 장비 같은 건 놔두지도 않는다.
내가 펜시에 있을 때, 내 방은 새 기숙사의 오쎈버거 메모리얼 윙에 있었다. 거긴 3학년과 4학년생들이 쓰는 쪽이다. 나는 3학년이었다. 나와 같은 방을 쓰는 놈은 4학년이었다. 오쎈버거라는 이름은 펜시에 다니던 오쎈버거라는 친구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그 친구는 펜시를 졸업한 후에 장의사를 해서 꽤 돈을 벌었다. 그 친구가 뭘 했냐 하면, 전국 사방 천지에 장의사를 열어서 누구 가족이 죽으면 한 사람당 대략 5딸라의 싼값으로 해 주었다. 오쎈버거 작자를 봐야 되는데. 그 작자는 십중팔구, 죽은 사람을 부대 자루에 넣어서 강에다 던져 버릴 거야. 어쨋든 그 친구가 펜시에 돈 다발을 갖다 줘서 그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게 된 것이다. 그 해 첫 번째 축구 시합이 있던 날인데, 그 작자는 저 망할 놈의 커다란 캐딜락을 타고 학교에 나타났는데 그 때문에 우린 모두 스탠드에서 일어서서 기관차 소리를 내야 했다. 박수 소리 말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예배 시간에 그는 10시간이나 설교를 늘어놓았다. 그 작자는 먼저 오십 가지 정도 시시한 농담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건 단지 자기가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인가 하는 걸 우리한테 보여주자는 수작이었다. 정말 대단한 인물 아냐? 그리고는 자기는 어떤 고난이나 뭐에 처했을 때는 아무런 스스럼없이 바로 무릎을 꿇고 하느님에게 기도한다는 그런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하더군. 그 작자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언제나 하느님에게 기도해야 한다, 하느님과 얘기니 뭐니를 해야 한다고 말하더군. 우리는 하느님을 우리의 친구니 그런 걸로 생각해야 한다는 거야. 자기는 언제나 하느님과 얘기한다는 거야. 차를 운전할 때도 그런 다는 거야. 정말 난 그 말엔 졌어. 나는 그 덩치 큰 엉터리 같은 작자가 1단 기어를 넣으면서 시체를 조금만 더 보내 달라고 하느님한테 바라는 게 눈에 선해. 그의 설교중 그래도 유일하게 좋았던 부분은 설교가 한참 진행되는 한가운데 부분이었다. 그 작자가 자기가 얼마나 멋장이며 수완가니 뭐니 하고 늘어놓고 있는데 갑자기 내 앞에 제일 앞줄에 앉아 있는 에드가 맛살라가 끔찍한 소리를 내며 방구를 뀐 것이다. 설교니 뭐니하는 중에 그런 짓을 한다는 건 정말 무례한 짓이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재미있는 일이기도 했다. 맛살라 자식. 그 놈의 방구소리 때문에 천장이 거의 날아갈 뻔했다. 거의 누구도 큰소리로 웃지 않았고 오쎈버거 작자도 못들은 체 했지만 연단이니 뭐니 하는 데에 그 작자 옆에 앉아 있는 터머 교장이 그 소리를 들었다는 게 뻔했다. 정말이지, 교장은 화났다. 교장은 그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다음 날 밤에 교사에서 우리한테 강제로 자습을 하게 하고는 잠시 뒤에 나타나서 일장 설교를 하였다. 교장은 예배 중에 분위기를 망친 그런 놈은 펜시에 다닐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터머 교장이 훈계를 하는 중에 다시 한 번 방구를 뀌라고 맛살라 놈한테 시켰지만 그 놈은 그럴 기분이 아닌 모양이었다. 어쨋든 펜시에서 내가 지내던 곳이 거기였다. 새 기숙사에 있는 저 오쎈버거 작자 기념관 말이다.
스펜서 선생과 작별 인사를 하고 다시 내 방에 돌아오니 꽤 기분이 좋았다. 다들 시합을 보러 아래 내려가 있었고 방엔 히터가 들어와서 기분 전환이 되었다. 일종의 아늑한 기분이었다. 나는 오바와 넥타이를 풀고 셔츠 칼라의 단추를 푸른 다음 그 날 아침에 뉴욬에서 산 모자를 썼다. 그건 챙이 아주 긴 그런 빨간 색 사냥 모자였다. 나는 망할 놈의 펜싱 도구를 죄다 잃어버렸다는 걸 알고 지하철에서 나왔을 때 스포츠 가게의 진열장에서 그걸 보았다. 그건 1딸라 밖에 하지 않았다. 내가 그걸 어떻게 썼냐 하면, 난 그 놈의 챙을 뒤로 돌려서 썼다. 정말 촌스러운 꼴이었다. 인정해. 하지만 난 그렇게 쓰는 게 좋았다. 그렇게 쓰고 있으면 괜찮아 보이거든. 그리고 나는 내가 읽고 있던 책을 집어들고 의자에 앉았다. 방마다 의자가 두 걔씩 있다. 하나는 내가 쓰고, 또 하나는 같은 방을 쓰는 워드 스트래드레이터가 쓴다. 다들 팔걸이 위에 걸터앉기 때문에 팔걸이 모양이 형편없이 됐지만 그래도 꽤 편안한 의자였다. 내가 읽고 있던 책은 도서관에서 잘못 가져온 책이었다. 내가 신청한 게 아닌 걸 줬는데 방에 올 때까지 그걸 몰랐던 것이다. 내가 가져온 건 이싸크 디네쎈이 쓴 ?아웃 오브 아프리카?였다. 시시껄렁한 책이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꽤 좋은 책이었다. 난 꽤 무식하지만 책을 많이 읽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내 형 D.B. 이고 다음은 링 라드너다. 내 형은 내가 펜시에 오기 바로 전에, 생일 선물로 링 라드너가 쓴 책을 한 권 줬었다. 거기엔 정말 우습고 미치광이 같은 희곡들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언제나 스피드를 내며 달리는 아주 귀여운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교통경찰의 얘기였다. 하지만 그는 결혼한 몸이었어. 경찰 말야. 그래서 그는 그 여자와 결혼이니 뭐니 할 수가 없는 거다. 그런데 그 여자는 언제나 스피드를 내며 달리기 때문에 사고로 죽게 된다. 이 얘긴 정말 감동적이었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적어도 가끔씩 우스운 책이다. 나는 토마스 하디의 ?귀향?이니 뭐니 하는 고전도 많이 읽는다. 나는 고전을 좋아한다. 나는 전쟁 이야기나 추리소설 같은 것도 많이 읽지만 그런 것들은 별로 나를 그렇게 감동시킬 수 없다. 날 정말로 감동시키는 책은, 내가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작가가 마치 내 친구인 것처럼 생각되어서 언제라도 전화하고 싶을 때 전화할 수 있는 그런 책이다. 하지만 그런 건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이싸크 데네쎈이라면 전화할 수 있을 것같다. 그리고 링 라드너도 그렇지만 D.B. 말로는 그는 죽었다는 것이다. 근데 써머셋 모옴의 ?인간의 굴레?를 한번 읽어 봐. 난 지난 여름에 그걸 읽었다. 그건 정말 좋은 책이고 그렇긴 하지만 써머셋 모옴한테 전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잘 모르겠다. 그 사람은 그저 전화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뿐이다. 차라리 토마스 하디라면 전화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는 저 유스타키아 바이가 좋거든.
어쨋든 나는 새 모자를 쓰고 앉아서 저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읽기 시작했다. 벌써 읽었지만 몇 부분을 다시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근데 세 페이지 정도 읽었을 때 누가 샤워 커튼을 제치고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난 고개를 들지 않아도 그게 누군지 알았다. 바로 내 옆방을 쓰는 저 로버트 애클리였다. 우리 쪽엔 방 두 걔마다 사이에 샤워가 있는데, 애클리 놈은 하루에도 여든 다섯 번이나 불쑥불쑥 들어온다. 그 놈은 아마 전체 기숙사에서 날 제외하곤 시합 보러 내려가지 않은 유일한 놈일 것이다. 그 놈은 어딜 나가는 법이 없다. 그 놈은 아주 괴상한 놈이다. 4학년인데, 4년 내내 펜시에 있어도 다들 그를 부를 때는 ‘애클리’ 라고 하지 다르게 부르는 사람이 없다. 같은 방을 쓰는 허브 게일 조차 그를 ‘밥’이니 ‘애크’니 하고 부르지 않는다. 그 놈이 만약 결혼한다면 아마 그 마누라조차 그를 부를 때 ‘애클리’라고 부를 것이다. 그 놈은 키가 껑충하게 크고 ― 6피트 4인치는 될 것이다 ― 등이 새우처럼 휘고 이빨이 지저분한 그런 타입이었다. 그 놈이 내 옆방을 쓰고 있는 동안, 나는 그가 이빨을 닦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 놈의 이빨은 언제나 이끼가 낀 것같고 끔찍했다. 그리고 그 놈이 식당에서 다진 감자니 콩이니 뭐니 하는 걸 입에 잔뜩 물고 있는 걸 보면 정말 게우고 싶을 정도다. 그 뿐 아니라 그 놈은 여드름이 잔뜩 있었다. 흔히 보듯이 이마나 턱에만 있는 게 아니라 얼굴 전체가 여드름 투성이였다. 그 뿐이 아니다. 그 놈은 성격도 더러웠다. 그 놈은 말하자면 비열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난 그 놈한텐 그리 호감을 가질 수가 없었다.
나는 그가 내 의자 바로 뒤 샤워실의 문턱에 서서, 스트래드레이터가 있지 않나 하고 살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놈은 스트래드레이터를 몹시 싫어해서 그가 주위에 있으면 절대 들어오지 않았다. 그 놈은 거의 모든 사람을 싫어했다.
그 놈의 샤워실 문턱에서 내려오더니 방안에 들어왔다. ‘여어,’ 하고 그가 말했다. 그 놈은 인사할 때 언제나 만사에 싫증이 났다는 듯한 티를 낸다. 그 놈은 자기가 누구를 일부러 찾아오거나 뭐 그런 게 아닌 체한다. 그 놈은, 제발 사람들이 자기가 잘못해서 우연히 들른 것이라고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여어,’ 하고 나는 말했지만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애클리같은 놈한테 고개를 들어 인사하면 말려들고 만다. 그래도 결국 말려들고 만다. 하지만 당장 고개를 쳐들지 않으면 당장 말려들지는 않으니까. 그 놈은 늘 그러듯이 책상이나 양복장에서 남의 물건들을 집어들면서 아주 느릿느릿하게 방안을 어정거리기 시작했다. 그 놈은 언제나 남의 물건을 집어들고 쳐다본다. 정말이지, 그 놈은 가끔씩 사람의 신경을 건드린다. ‘펜싱 시합은 어땠어?’ 하고 그가 말했다. 그 놈이 그렇게 물은 것은 내가 책을 보며 즐기는 것을 못하게 하자는 수작이었다. 그 놈은 펜싱 같은 건 조금도 관심이 없으니까 말야. ‘우리가 이겼어, 아니면?’ 하고 그가 말했다.
‘이기긴 누가 이겨?’ 하고 내가 말했다. 하지만 고개는 들지 않았다.
‘뭐라구?’ 하고 그가 말했다. 그 놈은 언제나 두 번씩 말하게 만든다.
‘이기긴 누가 이기냐구?’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그 놈이 내 양복장에서 뭘 만지작거리고 있는지 보려고 슬쩍 엿보았다. 그 놈은 내가 뉴욬에서 사귀던 샐리 헤이즈의 사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놈은 내가 그 망할 놈의 사진을 가져온 이후로 적어도 오천 번은 그걸 집어들고 쳐다보았을 것이다. 그 놈은 사진을 다 보고 나면 언제나 제자리에 갖다 놓는 법이 없다. 그 놈은 일부러 그러는 것이다. 확실해.
‘이기긴 누가 이겼냐구?’ 하고 그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저 망할 놈의 펜싱 칼이니 뭐니를 지하철에 두고 내렸단 말이다.’ 나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다.
‘지하철에, 제기랄! 그럼 넌 그걸 다 잃어버렸단 말이냐?’
‘지하철을 잘못 탔어. 그래서 벽에 붙어 있는 지도를 보러 연방 일어나야 했지.’
그가 가까이 와서 불빛을 가로막고 섰다. ‘어이,’ 하고 내가 말했다. ‘네가 들어와서 난 이 똑같은 구절을 스무 번은 더 읽고 있어.’
다른 사람이라면 그게 무슨 말이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놈은 안 그렇다. ‘그 놈들이 너한테 변상하라고 할 것같애?’하고 그가 말했다.
‘몰라 그리고 그딴 건 신경 안 써. 어디 앉거나 그러지, 애클리 꼬마. 넌 지금 불빛을 막고 있어.’ 그 놈은 누가 자기를 ‘애클리 꼬마’라고 부르면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열 여섯 살이고 자기는 열 여덟 살이기 때문에 그 놈은 언제나 내가 꼬마라고 말했다. 내가 자기를 ‘애클리 꼬마’라고 부르면 그 놈은 화가 나서 날뛴다.
그 놈은 여전히 그렇게 서 있었다. 그 놈은 누가 부탁을 하면 절대 비켜서지 않는 바로 그런 놈이다. 비키긴 하지, 결국엔. 그런데 누가 부탁을 하면 더 오래 끈다는 거야. ‘대체 뭘 보는 거냐?’ 하고 그가 말했다.
‘책이지 뭐야?’
그는 손으로 책을 밀어 넘겨서 제목을 보았다. ‘재미있냐?’ 하고 그가 말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귀절은 정말 굉장하지.’ 나는 그럴 기분만 나면 정말 냉소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말하는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다시 방안을 돌아다니면서 내 물건과 스트래드레이터의 물건을 집어들었다. 나는 마침내 책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애클리같은 놈이 옆에 있으면 절대 책을 읽지 못한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의자 깊숙이 몸을 낮춰서 애클리 놈이 제멋대로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뉴욬에 갔었기 때문에 좀 피곤함을 느끼며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는 좀 허튼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따분함을 느끼면 가끔 허튼 짓을 할 때가 있다. 내가 뭘 했냐 하면, 저 사냥 모자의 챙을 앞으로 돌려서 눈 위까지 덮이도록 푹 눌러 썼다. 그렇게 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장님이 되려나 본데,’ 나는 아주 쉰 목소리를 내서 말했다. ‘오 어머니, 아무 것두 안 보여요.’
‘넌 미친놈이야. 신에게 맹세할 수 있어.’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오 어머니, 절 도와 주세요. 제발 절 도와 주세요.’
‘제기랄, 유치하게 굴지 좀 마라.’
나는 눈 먼 사람처럼 내 앞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어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오 어머니, 왜 절 도와주지 않으세요?’ 하고 주절거렸다. 나는 그냥 허튼 수작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짓을 하면 흥분을 느낄 때가 있다. 게다가 애클리 놈이 그런 짓을 보면 참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놈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서 저 싸디스트적인 성질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그 놈하고 있으면 싸디스트적으로 될 때가 자주 있었다. 결국 나는 그딴 수작을 그만 주었다. 나는 다시 모자챙을 돌려쓰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거 누구 꺼냐?’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그는 스트래드레이터의 무릎 받침대를 들어올려서 나한테 보였다. 그 놈 애클리는 아무 거나 집어든다. 그 놈은 심지어 받침대니 뭐니 하는 것도 집어든다. 내가 그건 스트래드레이터의 것이라고 말해 주자 그는 그것을 스트래드레이터의 침대 위에 던졌다. 그는 그것을 스트래드레이터의 옷장에서 꺼냈는데 침대 위에 던지는 것이다.
그는 이쪽으로 와서 스트래드레이터의 의자 팔걸이 위에 걸터앉았다. 그 놈은 의자에 앉는 법이 없다. 언제나 팔걸이 위에만 앉는다. ‘그 모잔 어디서 났냐?’ 하고 그가 말했다.
‘뉴욬.’
‘얼마냐?’
‘1 딸라.’
‘바가지 쓴 거야.’ 그는 성냥걔비 끝으로 더러운 손톱을 후비기 시작했다. 그 놈은 언제나 손톱을 후빈다. 어떻게 보면 그건 재미있기도 했다. 이빨은 언제나 이끼가 잔뜩 끼고, 귓구멍은 지저분한데 손톱만은 언제나 깨끗이 하니 말이다. 그 놈은 그렇게 하면 자기가 아주 깨끗한 놈이 되는 줄로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손톱을 후비면서 내 모자를 또 한번 보았다. ‘우리 고향에선 사슴 사냥할 때 그런 모잘 써. 알아?’ 하고 그가 말했다. ‘그건 사슴 사냥 모자야.’
‘누가 뭐래냐?’ 나는 모자를 벗어서 보았다. 나는 한 눈을 조금 감고 총을 쏘는 시늉을 했다. ‘이건 사람 사냥하는 모자야,’ 하고 나는 말했다. ‘난 이 모잘 쓰고 사람을 쏘는 거야.’
‘집에서 니가 퇴학당한 거 아냐?’
‘아니.’
‘그런데 스트래드레이턴 대체 어디 가 있는 거냐?’
‘아래 시합하는 데. 그 놈은 데이트하고 있어.’ 나는 하품을 하였다. 나는 어디서나 하품을 한다. 게다가 방이 더럽게 더웠던 것이다. 그래서 졸렸던 것이다. 펜시에선 얼어죽지 않으면 너무 더워서 죽는다니까.
‘스트래드레이터 자식,’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야. 가위 좀 잠깐 빌려줄래? 지금 있냐?’
‘아냐. 벌써 싸 놨어. 저기 벽장 위에 있지.’
‘잠깐만 갖다 줄래?’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여기 손톱 남은 거 좀 깎으려구 그래.’
그 놈은 짐을 싸 놓았건 벽장 꼭대기에 있건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그 놈에게 가위를 갖다 주었다. 그러다가 난 거의 죽을 뻔했다. 내가 벽장문을 여는 순간, 스트래드레이터의 테니스 라켓과 나무로 된 고정 쇠니 뭐니가 내 머리 위로 떨어진 것이다. 엄청나게 큰 소리를 냈는데 무지하게 아팠다. 하지만 애클리 놈도 그 때문에 거의 죽을 뻔했다. 그 놈은 목소리를 꾸며서 높은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그 놈은 내가 여행 가방을 꺼내서 가위를 꺼내는 동안 내내 웃었다. 어떤 녀석이 돌이나 뭐로 머리를 맞는 그런 따위의 것을 보면 놈은 무척 좋아한다. ‘네 놈은 정말 더럽게 유머 감각이 좋구나, 애클리 꼬마야.’ 하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너 그거 알아?’ 나는 그에게 가위를 주었다. ‘내가 너 매니저 해 줄께. 널 라디오에 나오게 해 줄께.’ 나는 다시 의자에 앉고 그는 무슨 뿔껍데기처럼 생긴 손톱을 깎기 시작했다. ‘테이블 같은 데 위에서 하지 그래?’ 하고 나는 말했다. ‘테이블 위에서 깎으라구. 난 오늘 밤 너의 그 지저분한 손톱을 밟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는 여전히 바닥 위에서 손톱을 깎았다. 얼마나 더러운 매너인가. 정말이야.
‘스트래드레이터 데이트 상댄 누구냐?’ 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스트래드레이터를 지독하게 싫어하면서도 항상 그가 누구하고 데이트하는지 관심을 두고 있었다.
‘몰라. 왜 그러냐?’
‘그냥. 정말이지 난 그 자식은 봐 줄 수 없어. 그 놈은 내가 정말 싫어하는 자식이야.’
‘그 친군 너한테 호감을 갖고 있는데. 나한테 그러는데 니가 정말 왕자 같은 놈이라구 하더라.’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허튼 수작을 할 땐 왕자 같은 놈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러면 지루해지거나 뭐 그러지 않거든.
‘그 놈은 언제나 그렇게 잘난 체해.’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난 정말 그 자식은 못 봐 줘. 넌 그 놈이 ―’
‘테이블 위에 가서 좀 깎으면 안 돼냐, 응?’ 하고 나는 말했다. ‘너한테 오십 번은 부탁했어 ―.’
‘그 자식은 언제나 잘난 체해,’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난 그 자식이 뭐 똑똑하다곤 생각하지 않아. 자긴 그런 줄 알지. 그 놈은 자기가 거의 뭐―’
‘애클리! 제기랄! 테이블 위에 가서 지저분한 손톱 좀 깎아 줄래? 너한테 오십 번은 말했잖아.’
그 놈은 마지못해서 테이블로 가서 손톱을 깎기 시작했다. 그 놈한테 뭘 하게 하려면 언제나 소리를 질러야 한다.
나는 잠깐 그 놈을 쳐다보았다. 이윽고 내가 말했다. ‘니가 스트래드레이터한테 화내는 건 니가 어쩌다가 한 번 이빨 닦느니 뭐니 한다고 그가 말해서 그러는 거야. 그는 큰소리로 소문내서 널 모욕 주려고 그런 건 아냐. 그는 그게 옳다거니 뭐니 하는 게 아니고 뭐 널 모욕하려는 뜻은 아니었어. 그의 말은 그저 니가 좀 어쩌다 한 번 이빨을 닦으면 더 나아 보이고 더 기분 좋을 꺼란 뜻이야.’
‘난 이빨 닦아. 그런 말하지 마.’
‘아냐, 넌 안 그래. 내가 봤는데 넌 안 그래,’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구역질난다는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그에게 약간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내 말은, 만일 누군가가 나한테 이빨을 안 닦는다고 말하면 그건 과히 예의 있는 태도라고는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스트래드레이터는 괜찮은 놈이야. 그리 나쁜 놈은 아냐,’ 하고 내가 말했다. ‘넌 그를 잘 몰라, 그게 문제지.’
‘아냐, 그 놈은 형편없는 놈이야. 더럽게 잘난 체하는 자식이지.’
‘그 놈이 잘난 체하긴 해, 하지만 어떤 일엔 아주 사람 좋기도 하지. 정말 그래,’ 하고 나는 말했다. ‘자, 봐라, 예를 들어 스트래드레이터가 니가 좋아하는 넥타이나 뭐나를 했다고 치자. 니가 아주 마음에 드는 넥타이라고 말을 해 봐 ― 난 그냥 예를 들어서 말하는 거야. 그가 어떻게 할 것같애? 그 놈은 아마 그걸 풀러서 너한테 줄 껄. 정말 그럴 꺼라구. 아니면 ― 그가 어떻게 할 것같애? 니 침대니 뭐니 위에 두고 갈 껄. 정말 그는 너한테 그런 넥타이를 준다니까. 아마 다른 놈들 같으면 그저 ―.’
‘제기랄,’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내가 그 놈만큼 돈이 있으면 나도 그렇게 하겠다.’
‘아냐, 넌 그렇게 안 해.’ 나는 머리를 저었다. ‘아냐, 넌 그렇게 안 할 껄, 애클리 꼬마. 넌 다른 자식들처럼 ―’
‘날 ’애클리 꼬마‘라고 부르지마, 제기랄. 난 네 놈 아버지라 해도 좋을 나이란 말이다.’
‘아냐, 안 그렇지.’ 정말이지, 그 놈은 가끔 정말로 화나게 한다. 그 놈은 그럴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내가 열 여섯 살이고 자기는 열 여덟 살이란 걸 말하지 않고 넘기는 법이 없다. ‘무엇보다도, 난 네 놈을 우리 식구에 끼워 주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까,’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럼, 그렇게 부르지마 날 ―’
갑자기 문이 열리고 스트래드레이터놈이 굉장히 서두르며 불쑥 들어왔다. 그 놈은 언제나 굉장히 서두른다. 모든 일이 아주 큰 일이나 되는 것같았다. 그는 나한테 오더니 장난스럽게 내 뺨을 탁탁 쳤다. 그런데 그런 짓은 가끔 짜증나게 할 때가 있다. ‘야,’ 하고 그가 말했다. ‘너 오늘밤에 어디 특별히 나갈 데 있니?’
‘몰라. 그럴 지도 모르지. 도대체 밖이 어떻길래, 눈이라도 오나?’ 그의 오바는 눈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래. 이 봐. 너 오늘밤에 어디 특별히 갈 데 없으면, 그 사냥걔 이빨 자국 난 양복 좀 빌려주면 안 돼냐?’
‘시합은 누가 이겼어?’ 하고 내가 말했다.
‘반밖에 안 했어. 우리 나갈려구 그래,’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설마, 너 오늘밤에 그 양복 입으려는 건 아니겠지? 회색 플라넬 양복에 더러운 걸 쏟아서 그래.’
‘나가진 않아, 근데 니가 그걸 입어서 어깨를 넓혀 놓는 건 싫은데,’ 하고 내가 말했다. 우리는 거의 키는 같았지만, 그는 몸무게가 내 두 배는 되었다. 그는 어깨가 정말 굉장히 딱 벌어졌다.
‘넓혀 놓지 않을께.’ 그는 아주 서두르며 벽장 쪽으로 갔다. ‘어떻게 지내, 애클리?’ 하고 그가 애클리에게 말했다. 그는 적어도 꽤 친근하게 구는 녀석이었다. 스트래드레이터말이다. 그건 약간 거짓된 제스쳐같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언제나 애클리나 아무한테도 인사는 빠뜨리지 않았다.
그가 ‘어떻게 지내, 애클리?’ 하고 말했을 때 애클리는 그저 약간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는 대꾸하고 싶지 않았지만 적어도 뭐라고 웅얼거리지 않을 만한 용기는 없었다. 이윽고 그는 나한테 말했다. ‘이제 가 봐야겠다. 나중에 봐.’
‘그래.’ 하고 나는 말했다. 그는 나중에 돌아올 때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스트래드레이터 놈은 오바니 넥타이니 뭐니를 벗기 시작했다. ‘빨리 면도해야겠는데,’ 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수염이 꽤 많았다. 정말 많았다.
‘니 데이트 상댄 어딨어?’ 하고 내가 물었다.
‘걘 별관에서 기다리고 있어.’ 그는 면도 도구와 수건을 팔 밑에 끼고 방에서 나갔다. 셔츠나 뭐 그런 것도 입지 않은 채 말이다. 그는 자기가 꽤 몸매가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제나 웃통을 벗고 돌아다닌다. 하긴 그건 그랬다. 나도 그건 인정해야 돼.
제 4장
나는 특별히 할 일도 없어서 아래 샤워 실에 내려가서 그가 면도하는 동안 그와 지껄였다. 다들 아래서 아직 시합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샤워 실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끔찍하게 더워서 창문엔 수증기가 끼어 있었다. 세면기는 열 걔 정도가 벽에 있었다. 스트래드레이터는 가운데 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옆에 있는 샤워기에 앉아서 찬물을 틀었다 껐다 하기 시작했다. 난 그런 신경질적인 버릇이 있다. 스트래드레이터는 면도하는 동안 줄곧 ‘인도의 노래’를 휘파람으로 불렀다. 그 놈의 휘파람 소리는 정말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데, 절대로 음이 맞는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놈은 아무리 휘파람을 잘 부는 사람이라 해도 불기 어려운 ‘인도의 노래’라든지 ‘10번가의 살인’같은 노래를 부른다. 그 놈은 정말 노래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
애클리가 습관이 너저분한 녀석이라고 전에 말한 걸 기억하나? 그런데 말야 스트래드레이터도 그랬다. 그런데 그 놈은 다른 면에서 그렇다. 스트래드레이터는 남들이 잘 모르는 점에서 너저분한 면이 있다. 그 놈은 언제나 괜찮은 놈으로 보였다. 스트래드레이터말이다. 근데 예를 들어 그 놈이 쓰는 면도칼을 봤어야 한다. 그건 언제나 지독하게 녹이 슬어 있고 비누 거품이니 머리카락이니 지저분한 것이 잔뜩 끼어 있다. 그 놈은 그걸 닦거나 뭐 그런 법이 없다. 그는 멋을 부리고 나오면 언제나 괜찮게 보이지만 그가 어떻게 하는 지 안다면 어쨋든 그는 남이 잘 모르는 너저분한 놈이다. 그 놈이 멋을 부리는 이유는 미치광이같이 자기 도취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 놈은 자기가 지구의 반을 통털어서 제일 잘 생긴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긴 꽤 잘 생기긴 했다. 그건 인정하겠어. 하지만 그는 주로, 만일 어떤 부모가 연감을 들여다 볼 때 ‘이 앤 누구냐?’ 하고 이내 물어 볼 그런 식으로 잘 생긴 놈이었다. 내 말은, 그는 주로 연감 같은 데서 눈에 띄는 놈이란 뜻이다. 내가 보기에 펜시엔 스트래드레이터보다 훨씬 잘생긴 놈들이 많았지만 연감에 난 사진을 보면 잘생긴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코가 크거나 귀가 툭 튀어나온 모습으로 보인다. 그런 경우는 흔히 있었다.
어쨋든 나는 스트래드레이터가 면도하고 있는 옆의 샤워기에 앉아서 물을 틀었다 잠갔다 했다. 나는 여전히 사냥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챙을 뒷쪽으로 돌려놓고 있었다. 난 그 모자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야,’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너 내 부탁 하나 들어줄래?’
‘뭐야?’ 하고 내가 말했다. 별로 재미없는데. 그 놈은 언제나 자기 부탁을 들어 달라고 한다. 여기 어떤 아주 잘생긴 놈 혹은 자기가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놈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그 놈은 언제나 무슨 부탁을 들어 달라고 한다. 자기가 자기에게 반했다고 해서 남들도 자기에게 반했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건 약간 재미있는 일이다.
‘너 오늘밤 나가니?’ 하고 그가 말했다.
‘나갈 지도 모르지. 안 나갈 지도 모르고. 모르겠어. 왜?’
‘월요일까지 역사 시간에 책을 백 페이지 정도는 읽어 가야 되는데 말야,’ 하고 그가 말했다. ‘영어 시간에 준비해 가야 되는데 작문 하나만 써 줄래? 월요일까지 준비 안하면 큰일 나. 그래서 부탁하는 거야. 어때?“
그건 정말 아이로닠한 일이었다. 정말 그랬다.
‘난 여기서 퇴학당해 가는 놈이야, 근데 나보고 빌어먹을 작문을 써 달라구 하는 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그래, 그건 알아. 근데, 사실은 그걸 준비 안하면 큰일 난단 말야. 제발 좀 해 주라. 부탁이야. 해 줄래?’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시간을 주면 스트래드레이터같은 자식한테 넘어간다.
‘뭐에 관한 건데?’ 하고 내가 말했다.
‘아무 거나 괜찮아. 묘사하는 거면 어떤 것도 돼. 방이나 아니면 집. 아니면 니가 전에 살았던 곳 뭐 그런 거면 돼. 그저 뭔가를 묘사하는 거면 된다구.’ 그 놈은 그렇게 말하면서 크게 하품을 했다. 정말 엉덩이가 쓰라리게 만드는 일이 아니고 뭐냐. 내 말은, 누구한테 무슨 빌어먹을 부탁이니 뭐니를 하면서 하품을 한다는 거 말이다. ‘뭐 아주 잘 쓰지 않아두 돼.’ 하고 그가 말했다. ‘저 하트젤 자식이 그러는데 니가 영어는 도사라구 하쟎아 그리고 니가 나하고 같은 방을 쓰는 걸 아니까 말야. 그래서 내 말은, 뭐 콤마니 뭐 그런 걸 정확하게 붙이지 않아두 된다는 말야.’
그런 말도 엉덩이를 쓰라리게 만드는 일이다. 내 말은, 어떤 사람이 작문을 잘한다고 하자, 그런데 누가 콤마니 뭐니 하고 애기하는 거 말이다. 스트래드레이터는 언제나 그런 짓을 한다. 그 놈은 자기가 작문을 못하는 건 순전히 콤마를 엉뚱한 데다 붙이기 때문이라고 다른 사람이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 놈은 그런 면에선 애클리하고 좀 비슷하다. 전에 나는 농구시합때 애클리 옆자리에 앉은 적이 있다. 우리 팀에 하우이 코일이라는 대단한 놈이 있었는데, 그 놈은 마루 한 가운데서 공을 던져서 백보드니 뭐니 하는 걸 건드리지 않고 골인시킬 수 있었다. 애클리는, 그 망할 놈의 시합 내내 코일이 농구하기에 완벽한 체격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제기랄, 내가 그딴 말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아?
나는 조금 있다가 그 샤워기에 있는 게 따분해져서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탭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그냥 해 본 거지. 난 그냥 따분함을 벗어나려고 그런 것이다. 난 탭 댄스니 그런 건 하지도 못한다. 근데 샤워 실 바닥은 돌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탭 댄스 하기엔 좋았다. 나는 영화에 나오는 그런 작자들을 모방해서 댄스를 하였다. 저 뮤지컬 같은 거 말이다. 난 영화는 정말 지독하게 싫어하지만 그래도 모방할 때는 흥분되기도 한다. 스트래드레이터놈은 면도를 하면서 거울로 내가 그 짓을 하는 걸 보았다. 나는 그저 누군가 봐 줄 사람이 있으면 됐다. 난 노출증 환자다. ‘난 주지사 아들이야,’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댄스를 추었다.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탭 댄스를 추었다. ‘아버진 내가 탭 댄서가 되는 걸 바라지 않아. 아버진 내가 옥스포드에 가기를 바라지. 하지만 그게 내 핏속에 흐르고 있단 말야. 탭 댄스 말야.’ 스트래드레이터가 웃었다. 그 놈은 그렇게 유머 감각이 없는 놈이 아니거든. ‘지그펠트 막이 올랐다.’ 나는 숨이 차서 죽을 지경이었다. 나는 숨이 금방 차거든. ‘주인공이 계속할 수 없네. 그는 미친놈처럼 술에 취했단 말야. 그래서 주인공 대신으로 누굴 데려올까? 나야, 내가 주인공이 되었어. 제기랄 저 난장이 같은 주지사의 아들놈아.’
‘그 모잔 어디서 났냐?’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내 사냥 모자 말이다. 전에 못 보던 거거든. 난 숨이 차서 장난질을 그만 두었다. 나는 모자를 벗어서 보았다. 아마 이번이 아홉 번째 정도 될 거다. ‘오늘 아침에 뉴욬에서 샀지. 1 딸라에. 괜찮냐?’
스트래드레이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멋있는데,’ 하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내 비위를 맞춰 주려는 것이었다. 왜냐 하면 이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야. 너 작문 써 줄꺼냐? 그걸 알아야 하거든.’
‘시간 있으면 해 줄께. 없으면 안 하구,’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다시 샤워대로 가서 그 옆에 앉았다.‘너 데이트 상댄 누구냐?’ 라고 내가 말했다. ‘핏제랄드냐?’
‘뭐라구, 아냐! 내가 말했잖아, 그 돼지 하군 끝났어.’
‘그래? 걘 나한테 줘라, 꼬마야. 농담 아냐. 걘 나하구 맞는 타입이야.’
‘가져라...너한텐 좀 나이가 많은데.’
갑자기 뭐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그저 장난질을 좀 치고 싶은 기분에서 나는 샤워 대에서 뛰어내려 스트래드레이터 놈을 목누르기 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뭔지 모르지만 그건 레슬링에 나오는 그런 건데, 딴 녀석의 목을 잡고 뭐 그러고 싶으면 숨을 못 쉬게 해서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장난을 친 것이다. 나는 퓨마 새끼처럼 그에게 덮쳤다.
‘그만 해, 홀든, 제기랄!’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그는 장난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면도니 뭐니를 하고 있었으니까. ‘넌 내가 머리통을 베면 좋겠냐?’
하지만 나는 그를 놔주지 않았다. 나는 그의 목을 꽤 단단히 조였다. ‘내가 바이스같이 죄고 있는데서 한번 빠져나와 봐,’ 하고 내가 말했다.
‘제엔장.’ 그는 면도날을 내려놓고 갑자기 팔을 홱 올려서 내 팔을 약간 풀었다. 그는 아주 힘센 놈이거든. 난 아주 힘이 없는 놈이다. ‘자, 이제 그 멍청한 짓 좀 그만 둬,’ 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다시 면도하기 시작했다. 그 놈은 언제나 면도를 두 번씩 한다. 더욱 잘나 보이려고 그러는 거지. 그 지저분한 낡아빠진 면도날을 가지고 말이다.
‘핏제랄드가 아니면 니 데이트 상댄 누구냐?’ 하고 내가 다시 물었다. 나는 그의 옆에 있는 샤워 대에 다시 앉았다. ‘저 필리스 스미쓰냐?’
‘아니, 그렇게 될 뻔했지. 근데 일이 엉키다 보니 안 됐어. 지금은 버드 토우 여자애하구 같이 방 쓰는 애야... 이봐, 잊어 먹을 뻔했다. 걔가 널 알던데.’
‘누가 안다구?’ 하고 내가 말했다.
‘나하구 데이트하는 애.’
‘그래?’하고 내가 말했다. ‘걔 이름이 뭔데?’ 나는 꽤 흥미가 생겼다.
‘가만 있자... 어, 쟌 갤러허.’
정말이지, 그 놈이 그렇게 말했을 때 난 죽는 줄 알았다.
‘제인 갤러허,’ 하고 내가 말했다.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난 샤워기에서 일어나기까지 했다. 제기랄, 죽는 줄 알았다니까. ‘제기랄, 니 말이 맞아. 걔 알아. 지난 여름에 걘 바로 우리 옆집에 살았어. 저 망할 놈의 도베르만 걔를 기르고 있었구. 그 놈 때문에 내가 걔를 알게 된 거지. 걔네 집 걔가 맨날 우리 집으로 ─ ’
‘너 지금 불을 가리고 있잖아, 홀든, 제기랄,’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너 거기 꼭 있어야겠냐?’ 정말이지, 난 흥분했다. 정말 그랬다.
‘지금 어딨어?’ 하고 내가 물었다. ‘’내려가서 인사나 뭐라두 해야겠다. 어딨어? 별관에?‘
‘그래.’
‘어떻게 해서 내 이름이 나왔지? 지금 의대 다닌 대냐? 거기 갈 지도 모른다구 했는데. 또 씨플리에 갈지도 모른다구 했구. 어떻게 해서 내 이름이 나왔을까?’ 난 아주 흥분했다. 정말이야.
‘몰라, 제기랄. 엉덩이 좀 들어. 내 수건 위에 앉아 있잖아,’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나는 그의 바보 같은 수건 위에 앉아 있었다.
‘제인 갤러허,’ 하고 내가 말했다. 난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그럴 수가.’
스트래드레이터 놈은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있었다. 내 껀데.
‘걘 댄서야,’ 하고 내가 말했다. ‘발레니 뭐니를 하지. 지독하게 더운 날씨에 한낮에도 매일 두시간 씩 연습하곤 했는데. 그 때문에 다리가 형편없이 될까 봐 걱정하곤 했는데 ─ 뭐 두꺼워지니 뭐니 하는 거 말야. 난 걔하구 늘 체스를 했었어.’
‘걔하구 늘 뭘 했다구?’
‘체스.’
‘체스라구, 제기랄!’
‘그래, 걘 왕은 하나두 움직이지 않아. 어떻게 하냐 하면 말야, 왕을 하나 잡으면 그건 꼼짝두 안 해. 그냥 제일 뒷줄에 놔두는 거야. 뒷줄에 쭉 세워 놓는 거야. 그리곤 하나두 쓰질 않지. 걘 그것들이 그냥 서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거야.’
스트래드레이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따위의 얘기는 아무도 재미있어 하지 않는다.
‘걔네 엄만 우리 엄마하구 같은 클럽에 속해 있었지,’ 하고 내가 말했다. ‘가끔씩 돈을 좀 벌려구 캐디 노릇을 하곤 했지. 걔네 엄마 캐디 노릇두 몇 번 했지. 걔네 엄만 홀을 아홉 걔 가는 데 백칠십번 정돈 쳤지.’
스트래드레이터는 듣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 놈은 자기의 근사한 머리카락을 빗고 있었다.
‘내려가서 걔한테 인사라두 해야겠는데,’ 하고 내가 말했다.
‘그러든지.’
‘그래야겠다. 빨리 가야지.’
그는 다시 머리카락을 가르기 시작했다. 그 놈은 머리 빗는 데 한시간은 걸린다.
‘걔네 엄마 하구 아버진 이혼했어. 걔네 엄만 어떤 술고래 하구 재혼했어,’ 하고 내가 말했다. ‘삐쩍 마른 작잔데 다리엔 털이 무지 많더라. 생각나는데. 맨날 짧은 바지만 입고 다니구. 제인이 그러는데 극작가나 뭐 그딴 게 될 거라구 했는데, 근데 내가 보기엔 맨날 술에 취해 가지구 라디오에서 추리극 같은 거나 빼 놓지 않고 듣는 것밖엔 하는 일이 없더라. 그리구 벌거벗구 집 근처나 뛰어다니구 말야. 제인이 옆에 있는데두 말야.’
‘그래?’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그 얘기가 그 놈의 흥미를 끈 게 분명했다. 주정뱅이가 벌거벗고 집 주위를 뛰어다닌다는 것 말이다. 제인이 보고 있는 데서 말이다. 스트래드레이터는 정말이지, 섹스 이야기라면 귀가 솔깃하는 자식이다.
‘걘 어린 시절이 좀 데데했어. 농담이 아냐.’
하지만 그 말엔 스트래드레이터 놈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놈은 오직 섹스에 관한 얘기에만 흥미를 보인다.
‘제인 갤러허, 제기랄.’ 나는 마음으로부터 그녀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정말 그랬다. ‘내려가서 적어도 인사라두 해야 되는데.’
‘말만 하지 말구 하지 그래.’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나는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샤워 실 안에 너무 수증기가 꽉 차서 밖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냐,’ 하고 내가 말했다. 전에도 그럴 기분은 아니었다. 그런 일은 기분이 나야 하는 법이다. ‘쉬플리에 간 줄 알았는데. 틀림없이 쉬플리에 갈 거라구 믿었는데.’ 나는 샤워실 안을 좀 어슬렁거렸다. 다른 할 일이 없었으니까.‘걔가 체스 하는 거 재밌었다구 하냐?’ 하고 내가 말했다.
‘응, 그런 거 같애. 잘 몰라.’
‘우리가 맨날 체스 했다는 말 하지 않아, 아니면 뭐 다른 말이나?’
‘몰라. 제기랄, 난 그냥 만난 것 뿐이야,’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그는 이제 자기의 근사한 머리카락 빗질을 끝냈다. 그는 자기의 지저분한 화장 도구들을 치우고 있었다.
‘야, 걔한테 내 안부 좀 전해 줄래?’
‘알았어,’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하지만 난 그 놈이 아마 전해 주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스트래드레이터같은 놈들은 절대로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해 주는 법이 없다.
그는 방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잠깐 샤워 실에 남아서 제인 계집애를 생각했다. 잠시 후 나도 방으로 올라갔다.
내가 방에 들어갔을 때, 스트래드레이터는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그 놈은 아마 자기 인생의 반은 거울 앞에서 보낼 것이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잠깐 그를 보고 있었다.
‘야,’ 하고 내가 말했다. ‘내가 퇴학당했다는 말은 하지 않을 거지?’
‘알았어.’
스트래드레이터한테 좋은 점은 그거 한가지였다. 애클리한테는 그래야 하지만, 그 놈한테는 모든 것을 자잘한 것까지 설명해 주지 않아도 된다. 뭐, 그런 일이 그 놈한테는 흥미 없는 일이기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그게 진짜 이유다. 애클리 자식, 그 놈은 다르다. 애클리는 정말 참견하기 좋아하는 놈이다
그는 사냥걔 이빨자국 난 내 쟈켓을 입었다.
‘젠장, 야, 그걸 그렇게 늘려 놓으면 안돼,’ 하고 내가 말했다. 난 그걸 두 번 정도밖에는 입지 않았다.
‘그러지. 도대체 내 담배가 어디 갔지?’
‘책상 위에.’ 그 놈은 자기가 뭐든 어디 놓았는 지 아는 법이 없다. ‘니 마후라 밑에 말야.’ 그는 자기의 오바 주머니에 담배를 넣었다. 사실은 내 오바지만.
나는 기분 전환을 위해서, 갑자기 사냥 모자 챙을 앞으로 돌렸다. 나는 갑자기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난 정말 신경질적인 놈이다. ‘야, 너 오늘 어디로 데이트하러 갈 거냐?’ 하고 내가 물었다.‘아직 몰라?’
‘몰라. 뉴욬에 갈까, 시간 있으면. 아홉시 반에 들어가기로 하구 나왔다니까, 제기랄.’
나는 그 놈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걔가 그런 건, 아마 니가 얼마나 잘 생기고 매력적인 자식인 줄 몰랐기 때문일 거야. 알았다면 아마 다음 날 아침 열시 반에 돌아온다구 말했겠지.’
‘그건 맞는 말이야.’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그 놈은 쉽게 놀려먹을 수가 없다. 그 놈은 또 자만심에 빠졌다. ‘자 이제 농담하지 말구. 그 작문 좀 해라,’ 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오바를 다 입고 이제 나가려고 하였다. ‘뭐 너무 무리하거나 그러진 말구, 그저 묘사만 하면 돼. 알았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이렇게 말했다. ‘걔한테, 아직도 왕들을 뒷줄에 늘어놓는지 물어 봐.’
‘알았어,’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하지만 난 그 놈이 물어보지 않으리라는 것을 것을 알고 있었다. ‘자 이제 수고해.’ 그는 문을 꽝하고 닫고 방에서 나갔다.
나는 그가 나간 뒤로 약 삼십분 정도 거기 앉아 있었다. 내 말은, 아무 짓도 하지 않고 그냥 의자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제인과, 또 스트래드레이터가 제인하고 데이트하는 거니 뭐니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짜증이 나서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다. 스트래드레이터가 얼마나 쎅시한 놈인지는 내가 벌써 말한 적 있지.
갑자기,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애클리가 저 샤워 커튼을 제치고 급하게 들어왔다. 내 바보 같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그 놈을 보니까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그 놈이 그런 생각으로부터 내 마음을 떨쳐 주었다.
그 놈은 저녁 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늘어붙어 가지고는, 턱에 난 커다란 뾰두락지를 짜면서 펜시에서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놈들 애기를 지껄여 댔다. 그 놈은 손수건도 쓰지 않는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난 그 놈이 손수건을 가져 본 적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쨋든 난 그 놈이 손수건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까.
제 5장
펜시에선 토요일 저녁에 언제나 똑같은 것을 먹었다. 스테이크를 주니까 뭐 대단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들이 그러는 이유는, 학부모들이 일요일에 많이 학교에 나오기 때문이다. 난 거기에 천 딸라 걸 수도 있다. 터머 교장은 아마, 애들의 부모가, 어제 저녁에 뭘 먹었니 하고 귀여운 자식들에게 물으면 ‘스테이크요.’ 하고 대답할 거라는 점을 예상했을 것이다. 얼마나 가증한 일이냐. 스테이크를 봤어야 하는데. 딱딱하고 말라빠진 걸 조금 주는데 칼로 간신히 잘라먹어야 한다. 그리고 스테이크와 함께 저 울퉁불퉁한 으깬 감자를 주고, 디저트로는 브라운 베티를 주는데, 아마 더 좋은 건 먹어 본 적이 없는 저 하급 학교의 꼬마들이나 뭐든지 먹어 치우는 애클리를 빼고는 아무도 먹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식당에서 나왔을 때는 정말 멋있었다. 운동장에 눈이 삼인치는 왔는데, 아직도 미치광이처럼 내리고 있었다. 정말 멋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눈을 던지고 사방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건 꽤 유치한 일이었지만, 우리는 정말로 재미있었다.
나는 여자 친구니 뭐니 하는 게 없었기 때문에, 레슬링 팀에 있는 친구인 저 맬 브로싸드와 같이 버스를 타고 애거스타운에 나가서 햄버거를 먹고 아마 시시껄렁한 영화나 하나 보기로 하였다. 우리 둘 중 아무도 밤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맬에게 애클리를 같이 데리고 가도 괜찮겠냐고 물어 보았다. 내가 그렇게 물어 본 건, 애클리는 토요일 밤엔, 방에 죽치고 앉아서 여드름을 짜거나 그런 짓 외에는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맬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런 생각에 별로 달가와 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는 애클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준비니 뭐니를 하러 각자 방으로 갔다. 나는 고무 장화니 다른 너절한 것을 입으면서 애클리한테 영화 보러 가겠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샤워 커튼 너머로 내 말을 분명히 들었을 텐데 바로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는 누가 뭘 물어 보면 바로 대답하는 걸 싫어하는 놈이다. 이윽고 그가 이 쪽으로 넘어와서 문턱에 서서는 내가 누구 하구 가는지 물었다. 만일 이 놈이 탄 배가 난파되어서 누가 보트로 구해 주면, 맹세코 말하지만, 이 놈은 보트에 타기 전에 누가 노를 젓는지 알려고 하는 그런 놈일 것이다. 나는 맬 브로싸드가 간다고 말해 주었다. 그가 말했다. ‘그 새끼?...좋아. 잠깐 기다려.’ 누가 보면 무슨 큰 호의나 베풀어 주는 걸로 알 것이다.
그 놈이 준비하는데 다섯 시간은 걸렸다. 그가 준비하는 동안, 나는 창문 쪽으로 가서 창을 열고 맨 손으로 눈덩이를 뭉쳤다. 눈은 잘 뭉쳐졌다. 하지만 난 눈덩이를 어디다 던지지는 않았다. 난 눈덩이를 던지려고 했다. 길거리 건너편에 주차해 있는 차에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바꾸었다. 그 차는 하얀 색의 멋진 차였다. 다음엔 소화전에다 던지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흰 눈에 덮여서 멋있게 보였다. 결국 나는 눈을 어디 다도 던지지 않았다. 나는 그냥 창문을 닫고 손에 쥔 눈을 더욱 단단하게 뭉치면서 방안을 어슬렁거렸다. 얼마 후에, 나는 브로싸드하구 애클리와 같이 버스에 오를 때까지도 손에 눈을 들고 있었다. 버스 운전사는 문을 열고 눈을 밖으로 던지게 했다. 나는 누구한테 눈을 던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고 운전사한테 말했지만 그는 내 말을 믿어 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절대로 남의 말을 믿는 법이 없다.
브로싸드와 애클리 둘 다 지금 상영되는 영화를 봤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햄버거를 몇 걔 먹고 핀볼 게임을 조금 하다가 버스를 타고 펜시로 돌아왔다. 어쨌든 나는 영화를 보지 못했다고 실망하지는 않았다. 그건 캐리 그란트나 뭐 그런 작자들이 나오는 코메디 영화니까. 나는 전에 애클리와 브로싸드하구 영화관에 간 적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도 우습지 않은 걸 보고 하이에나처럼 웃어댔다. 나는 극장 안에서 그들 옆에 앉아 있는 것조차 싫었었다.
우리가 기숙사로 돌아왔을 때는 겨우 여덟시 사십 오분 정도 되었었다. 브로싸드 놈은 브릿지 게임 광이어서 게임을 하려고 기숙사를 돌아다녔다. 애클리 놈은 기분 전환을 위해서 내 방에 진을 치고 앉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트래드레이터의 의자 팔걸이에 앉지 않고 얼굴을 내 베걔니 뭐니 쪽으로 들이대고 내 침대 위에 누워 버렸다. 그는 저 아주 단조로운 어조로 얘기를 하면서 여드름을 짜기 시작했다. 내가 내려가라는 암시를 천번은 주었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놈은, 저번 여름에 자기가 같이 잤다고 하는 어떤 계집애 얘기를 내내 지껄였다. 그 얘기를 백번은 했을 것이다. 그 얘기는 할 때마다 달랐다. 어떤 때는 그의 사촌 차인 뷬에서 했고, 다른 때는 해변에 있는 널빤지 아래서 했다. 물론, 그건 전부 싸구려 너저분한 얘기였다. 내가 숫총각을 봤다면 그 놈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그가 어떤 여자한테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켰을 지 하는 것도 의심이 간다. 마침내 나는, 스트래드레이터가 부탁한 작문을 써야 하니까 정신 집중 좀 하게 나가 달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꾸물대다가 결국 나갔다. 그가 나가자, 나는 파자마와 목욕복 그리고 사냥 모자를 쓰고 작문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스트래드레이터가 부탁한 것처럼 방이나 집 또는 그런 걸 묘사하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어쨌든 방이나 집을 묘사하는 건 별로 마음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뭘 했냐 하면, 나는 내 동생인 앨리의 야구 글러브에 대해 썼다. 그건 정말 묘사할 게 많은 주제였다. 정말 그랬다. 내 동생 앨리는 왼손잡이 글러브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왼손잡이였으니까. 하지만 거기에 묘사할 게 뭐가 있냐 하면, 그는 손가락 나오는 데나 공 받는 데나 어디나 시를 써 놓았다. 초록색 잉크로. 그는 외야에 나가서 아직 아무도 배타 박스에 나오지 않았을 때 뭔가 읽으려고 거기에다 시를 써 놓았다. 그는 지금은 죽었다. 그는 폐결핵에 걸려서 우리가 1946년 7월 18일 메인에 갔을 때 죽었다. 누구라도 그를 좋아했을 거야. 그는 나보다 두 살이 어렸지만 나보다 오십 배나 똑똑했다. 그는 끔찍하게 똑똑했다. 그의 선생들은, 앨리같은 아이가 자기들 반에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지 모른다며 언제나 어머니한테 편지를 썼다. 그런데 그들이 허풍을 떠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말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는 단지 집에서 가장 총명한 애라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여러 가지 면에서 가장 좋은 아이였다. 그는 누구한테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빨강 머리를 한 사람들은 쉽게 화를 낸다고 하지만, 그는 절대 그러지 않았다. 그는 머리카락이 굉장히 빨간 색이었다. 그의 머리카락이 얼마나 빨간 색인지 얘기해 볼까. 나는 열 살밖에 안 되었을 때 골프를 치기 시작했다. 한번은, 내가 열 두살 정도 되었을 때의 여름으로 기억되는데, 공을 치다가 나는, 갑자기 뒤에 앨리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그랬다. 아니나 다를까, 앨리는 담장 너머에서 ― 코스 주위를 따라 담장이 둘러져 있었는데 ― 내 뒤에 백 오십 야드나 떨어진 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앉아 내가 공을 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정말 그의 머리카락은 그렇게 빨간 색이었다. 하지만, 정말이지, 그는 좋은 아이였다. 그는 저녁 식사 테이블에서 뭔가를 생각하고는 너무나 웃다가 테이블 아래로 떨어질 뻔하곤 했다. 내가 열한 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 차고에 있는 유리창을 죄다 깼기 때문에, 부모님은 나에게 정신분석이니 뭐니를 받게 하였다. 나는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정말로 원망하지 않는다. 나는 그날 밤 차고에서 잠을 잤는데, 나는 그저 그러고 싶은 마음에서 망할 놈의 유리창을 주먹으로 죄다 깨 버렸다. 나는 우리가 그해 여름에 산 스테이션 웨곤의 유리창도 깨 버리려고 했지만, 이미 내 손은 다 부러지고 그래서 그러지 못하였다.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건 인정하겠어. 하지만 난 내가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도, 비가 오거나 뭐 그럴 때는 가끔 손이 아프다. 나는 이제 주먹을 쥐지 못한다 ― 꽉 쥐는 것 말이다 ― 하지만 그것 말고는 나는 별로 걔의치 않는다. 내 말은, 내가 뭐 어쨌든 빌어먹을 외과 의사나 바이올리니스트나 그딴 게 될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쨌든, 내가 스트래드레이터의 작문을 쓴 것은 그런 얘기이다. 저 앨리의 야구 글러브 말이다. 우연히 내 슈트케이스에 그 글러브가 있어서, 그걸 꺼내서는 거기 적혀 있는 시들을 옮겨 적었다. 나는 다만, 아무도 그것이 앨리의 것이라는 것을 모르게 하려고 앨리의 이름만을 바꾸었다. 나는 그런 것을 쓰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별달리 묘사할 만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어느 정도는 그걸 쓰는 게 좋기도 하였다. 그걸 다 쓰는 데 삼십 분은 걸렸다. 나는 스트래드레이터의 데데한 타이프라이터를 사용했는데, 그것이 계속해서 걸렸기 때문이다. 내가 내 타이프라이터를 쓰지 않은 것은, 아래쪽에 있는 놈한테 그걸 빌려 줬기 때문이다.
내가 작문을 끝냈을 때는 거의 열시 반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피곤하지도 않아서 잠시 창 밖을 내다보았다. 이제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차가 출발하지 못하는 소리가 가끔씩 들렸다. 또 애클리가 코를 고는 소리도 들렸다. 그 망할 놈의 샤워 커튼을 통해서 그 놈의 소리가 바로 들리는 것이다. 그는 코에 무슨 이상이 있어서 잠들어 있을 때에도 고르게 숨을 쉬지 못하였다. 그 놈은 거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코 이상, 여드름, 지저분한 이빨, 입에서 나는 악취, 지저분한 손가락 등. 그 미친 녀석한텐 약간 동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제 6장
기억해 내기 어려운 일도 있다. 나는 지금 스트래드레이터가 제인하구 데이트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내 말은, 그 놈의 빌어먹을 구두 소리가 복도를 따라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을 때 내가 정확하게 뭘 하고 있었나 하는 것이다. 아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맹세코, 난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지독하게 걱정에 싸여 있었다. 그게 진짜 이유이다. 내가 정말로 뭔가를 걱정할 땐, 나는 절대 빈둥거리지 않는다. 나는 뭔가를 걱정할 땐, 화장실에라도 가야 한다. 하지만 난 가지 않는다. 너무 걱정에 싸여 있으면 가지 않는다. 거기 감으로써 내 걱정을 중단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스트래드레이터를 안다면, 누구라도 걱정했을 것이다. 나는 그 자식과 함께 여러 번 쌍쌍으로 데이트를 나간 적이 있었다. 내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냐 하면, 그 자식은 도대체 방탕하기 짝이 없는 놈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
어쨌든, 복도는 전부 리놀륨이니 뭐니 였기 때문에 그의 망할 놈의 구두 소리가 방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는 소리가 다 들렸다. 나는 그가 방에 들어왔을 때,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 창문에 가 있었는지, 아니면 내 의자 아니면 그의 의자에 앉아 있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맹세코,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밖이 너무 춥다고 투덜거리며 들어왔다. 이어서 그가 말했다, ‘대체 다들 어디 간 거냐? 이 근처가 꼭 무슨 시체 안치소 같은데.’ 나는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토요일 밤이라 다들 나가거나 잠자지 않으면 집에 간다는 것도 모를 만큼 그 놈이 멍청한 자식이라면, 그런 말에 뭐하러 대답할 필요가 있느냐 말이다. 그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는 제인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단 한마디도 말이다. 나도 제인 얘기는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를 지켜보았다. 그는 다만 내 사냥걔 이빨 자국 난 쟈켓을 빌려 준 데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쟈켓을 양복 걸이에 걸어서 벽장 안에 넣었다.
그리고, 넥타이를 푸르면서, 자기가 부탁한 작문을 썼냐고 물었다. 나는 그 놈의 침대 위에 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쪽으로 걸어가서 셔츠 단추를 푸르면서 그걸 읽었다. 그는 거기 서서 작문을 읽으면서, 저 멍청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 가슴과 배를 약간 쓰다듬었다. 그 놈은 언제나 자기 배나 아니면 가슴을 쓰다듬는다. 그 놈은 정말이지, 자기 도취에 빠진 자식이다.
갑자기 그가 말했다, ‘제기랄, 홀든. 이건 망할 야구 글러브 얘기잖아.’
‘그래서 뭐?’ 하고 내가 말했다. 아주 냉정한 어조로.
‘뭐라구 ― 그래서 뭐라니? 방이나 집 아니면 그런 얘길 쓰라고 했잖아.’
‘넌 뭔가 묘사하는 얘길 쓰라구 했잖아. 그게 야구 글러브 얘기면 뭐가 어떠냐?’
‘빌어먹을.’ 그는 더럽게 성마른 놈이다. 그는 정말로 화가 나 있었다. ‘넌 항상 뭐든지 삐딱하게 하더라.’ 그가 나를 쳐다보았다. ‘니가 여기서 낙제하는 것도 당연하지.’ 하고 그가 말했다. ‘넌 하나도 누가 하라는 데로 하지 않는 놈이야. 정말이야. 단 하나두 말야.’
‘좋아, 그럼 그걸 나한테 다시 줘,’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그 쪽으로 가서 그 놈의 손에서 작문을 빼앗았다. 그리고 그걸 찢어 버렸다.
‘대체 왜 그러냐?’ 하고 그가 말했다.
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종이 조각들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나는 침대 위에 누웠다.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셔츠까지 모두 벗고, 나는 침대에 누워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기숙사에선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되어 있었지만, 전부 잠들어 있거나 밖에 나가서 아무도 담배 연기를 맡을 수 없는 늦은 밤엔 피울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일부러 스트래드레이터를 화나게 하려고 담배를 피우는 것이다. 누가 규칙을 어기면 그 놈은 미친 듯이 화를 낸다. 그는 절대 방안에선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러는 건 나밖에 없었다.
그는 여전히 제인에 관한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걔가 아홉시 반에 들어오기로 하고 나갔다더니 넌 왜 이렇게 늦게 왔냐? 니가 걔를 늦게 들어가게 만들었냐?’
내가 그렇게 물었을 때, 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서 자기의 빌어먹을 손톱을 깎고 있었다. ‘잠깐,’ 하고 그가 말했다. ‘대체 어떤 놈이 토요일 밤에 아홉시 반에 들어오기로 하고 나온대냐?’ 정말이지, 얼마나 밉살스러운 놈이냐.
‘뉴욬엔 갔나?’ 하고 내가 말했다.
‘미쳤냐? 걔가 아홉시 반에 들어오기로 하고 나왔는데 어떻게 뉴욬에 가냐?’
‘지독하다.’
그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야,’ 하고 그가 말했다. ‘담밸 피우려면 샤워실에 가서 피우는 게 어떠냐? 넌 지금 여기서 나가도 돼지만 난 졸업할 때 까진 여기 늘어붙어 있어야 한단 말야.’
난 그의 말을 무시했다. 정말로 무시해 버렸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계속해서 담배를 피워 댔다. 나는 그저, 옆으로 약간 자세를 바꿔서 그가 발톱을 깎는 걸 바라보았다. 이게 학교라니. 언제나 발톱을 깎지 않으면 여드름을 짜거나 그런 짓을 하는 놈들밖엔 안 보인다.
‘걔한테 내 안부 전해 줬어?’ 내가 그에게 물었다.
‘응.’
잘도 그랬겠다, 걔새끼.
‘뭐라구 그러든?’ 하고 내가 물었다. ‘아직도 왕을 뒷줄에 늘어놓느냐고 물어 봤어?’
‘아니, 그건 안 물어 봤어. 대체 넌 우리가 밤새 뭘 했다구 생각하냐 ― 체스나 한 줄 알라, 제기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밉살스러운 놈이야.
‘뉴욬에 안 갔으면 걔하구 어디 간 거야?’
조금 있다가 내가 물었다. 나는 목소리가 온통 떨리는 걸 억제할 수 없었다. 정말, 나는 초조해지고 있었다. 나는 뭔가 이상하게 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손톱을 다 깎았다. 그리고 셔츠니 뭐니를 입고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이상하게 장난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 침대 쪽으로 오더니 내 위로 몸을 숙이고 내 어깨를 만지며 장난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만 해.’ 하고 내가 말했다. ‘뉴욬에 안 갔으면 어디 갔냐?’
‘아무 데두. 우린 그냥 차안에 앉아 있었어.’ 그 놈이 다시 내 어깨에 대고 저 데데한 장난질을 했다.
‘그만 해,’ 하고 내가 말했다. ‘누구 차에?’
‘에드 뱅키.’
에드 뱅키는 펜시의 농구팀 코치였다. 스트래드레이터 놈은 팀의 쎈터였기 때문에 그가 귀여워하는 놈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에드 뱅키는 그가 말만 하면 언제라도 자기 차를 빌려 줬다. 학생이 선생의 차를 빌리는 건 허용되지 않는데 운동하는 놈들은 자기들끼리는 잘 뭉친다. 내가 다녀 본 어떤 학교에서도 운동하는 새끼들은 자기들끼리는 잘 봐 주었다.
스트래드레이터는 계속해서 내 어깨에다 가볍게 주먹질을 해 댔다. 그는 칫솔을 들고 있다가 입 속에 넣었다. ‘뭘 했냐?’ 하고 내가 말했다. ‘에드 뱅키의 차 속에서 걔한테 한번 줬냐?’ 내 목소리는 약간 끔찍하게 떨리고 있었다.
‘무슨 그런 소릴 하나? 니 놈의 입을 비누로 문질러 줄까?’
‘했어?’
‘그건 직업상의 비밀이네, 친구.’
다음 부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아는 건 다만, 샤워실이니 뭐니에 내려갈 때처럼 침대에서 일어나서, 그 놈의 주둥아리가 벌어지도록, 있는 힘을 다해서 칫솔을 정통으로 갈기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난 못 맞췄다. 득점과 연결시키지 못했다. 나는 그저, 그 놈의 머리통이니 뭐니의 옆쪽을 쳤다. 아마 그 놈은 조금 아팠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마음먹은 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통으로 맞았다면 놈은 꽤 아팠을 텐데, 나는 오른손으로 쳤던 것이다. 나는 그 손으로는 좋은 펀치를 날릴 수가 없는 것이다. 전에 얘기한 적이 있는 그 상처 말이다.
어쨌든, 다음으로 내가 기억하는 건, 내가 바닥에 넘어졌는데 놈이 얼굴이 온통 시뻘걔 가지고 내 가슴팍 위에 올라타고 앉아있었다는 것이다. 그 놈은 무릎팍을 내 가슴위에 대고 누르고 있었는데 몸무게가 대략 1톤은 되는 것 같았다. 그는 또 내 손목을 꽉 쥐고 있어서 나는 그 이상 주먹을 날릴 수가 없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난 그 놈을 죽였을 것이다.
‘대체 왜 이 지랄이야?’ 하고 그가 계속해서 지껄였는데 얼굴이 점점 더 시뻘걔졌다.
‘네 놈의 더러운 무릎팍을 내 가슴에서 치워,’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거의 소리를 질러댔다. 정말 그랬다. ‘빨리, 내려와, 이 더러운 자식아.’
하지만 그 놈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놈은 계속해서 내 손목을 누르고 있어서, 나는 거의 열시간 정도는 그 놈한테 걔새끼니 뭐니하고 욕을 퍼부었다. 내가 그 놈한테 한 말을 전부 기억할 수는 없다. 너란 놈은 그러고 싶으면 어느 놈한테라도 한 번 줄 것이다, 그리고, 계집애가 왕을 뒷줄에 놓는지 아닌지 너란 놈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데, 상관하지 않는 이유는 니가 형편없는 바보 천치이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 놈은 누가 자기를 천치라고 부르면 싫어했다. 천치들은 누가 자기를 천치라고 부르면 싫어하는 법이다.
‘닥쳐, 이제, 홀든.’ 하고 그가 바보같이 시뻘걔진 입으로 말했다. ‘닥쳐, 이제.’
‘넌 걔 이름이 제인인지 준인지도 모르지, 이 멍청한 천치야!’
‘자, 닥쳐, 홀든, 빌어먹을 ― 지금 경고하는 거야,’ 하고 그가 말했다. 나는 그 놈을 정말 돌게 만들었다. ‘닥치지 않으면, 한 방 먹인다.’
‘네 놈의 더럽게 냄새나는 천치 무릎팍을 가슴에서 치워.’
‘내가 널 일어나게 해 주면 네 놈의 입을 닥칠래?’
나는 대답하지도 않았다.
그가 다시 말했다. ‘홀든, 내가 널 일어나게 해 주면 네 놈의 입을 닥칠 거야?’
‘그래.’
그는 내려왔고 나도 일어났다. 내 가슴팍은 그 놈의 더러운 무릎팍 때문에 무지하게 아팠다. ‘넌 더럽고 멍청한 바보 천치야,’ 하고 하고 나는 말했다.
그 말이 그 놈을 정말 화나게 했다. 그는 멍청하게 큰 손가락을 내 얼굴에 대고 흔들어 댔다. ‘홀든, 빌어먹을, 지금 경고하는 거야. 마지막으로, 네 놈의 입을 닥치지 않으면, 그 땐 ―’
‘내가 왜 그래야 되지?’ 하고 내가 말했다 ― 나는 거의 꽥꽥대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너희 천치들은 바로 그게 문제야. 너희들은 결코 상의하려고 하지 않지. 그걸로 천치를 알아 볼 수 있거든. 너희들은 지적인 건 결코 얘기하고 싶지 ―’
그러자 그 놈은 정말로 한 방을 먹였다. 내가 다음에 기억나는 건 다시 바닥에 자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 놈이 나를 완전히 K.O. 시켰는지 어떤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내가 완전히 K.O. 당한 것 같지는 않다. 영화 같은 데가 아니면 완전히 K.O. 시킨다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내 코는 사방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내가 고개를 들어보니까, 스트래드레이터 놈은 바로 내 위에 서 있었다. 그는 팔 아랫 부분을 화장지로 감고 있었다. ‘내가 그만 두랄 때 그만 두지 않구?’ 하고 그가 말했다. 그 놈의 목소리도 꽤 흥분해 있었다. 내가 바닥에 부딪혔을 때, 내 머리니 뭐니가 깨지지 않았나 하고 꽤나 겁먹었을 것이다. 머리가 깨지지 않은 게 유감이다. ‘니가 그렇게 시킨 거야, 제기랄,’ 하고 그가 말했다. 정말이지, 굉장히 겁먹은 표정이었다.
나는 일어나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바닥에 누워서 여전히 천치 걔새끼라고 욕을 해댔다. 나는 정말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나는 거의 발악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봐, 가서 얼굴 닦아,’ 하고 스트래드레이터가 말했다. ‘내 말 안 들려?’
나는 그에게, 가서 네 천치 얼굴이나 닦으라고 말했다. 사실 그런 말을 하는 게 유치한 짓이었지만 나는 미칠 정도로 화가 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샤워실에 가다가 쉬미트 부인한테 가서 한 번 주라고 말해 주었다. 쉬미트 부인은 수위의 마누라였는데 예순 다섯 살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나는 스트래드레이터 놈이 문을 닫고 샤워실에 가려고 복도를 내려가는 소리가 날 때까지 바닥에 그냥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나는 일어났다. 빌어먹을 사냥 모자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것을 찾았다. 침대 밑에 있었다. 나는 모자를 쓰고, 내가 좋아하는 식으로 챙을 한바퀴 돌려 뒤로 가게 하고는 거울 쪽으로 가서 내 멍청한 얼굴을 한 번 보았다. 그렇게 피가 많이 난 건 일생에 보지 못할 거야. 입과 턱 그리고 파자마와 목욕복까지 온통 피투성이였다. 좀 끔찍하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매력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그런 모습이 나를 좀 야성적으로 보이게 했다. 나는 일생에 두 번 정도 싸움을 했는데 두 번 다 졌다. 난 야성적인 놈이 아니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난 반전 주의자다.
나는 애클리 놈이 아마 그 소동을 다 들었고 지금 깨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놈이 지금 뭘 하고 있나 보려고 샤워 커튼을 재치고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놈의 방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 놈은 습관이 굉장히 지저분해져서 언제나 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제 7장
샤워 커튼 사이와 우리 방에서 빛이 조금 비쳐서 나는 그가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가 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애클리?’ 하고 내가 말했다. ‘안 자냐?’
‘응.’
꽤 어두웠기 때문에 바닥에 있는 누군가의 구두를 밟아서, 제기랄, 거의 거꾸로 처박힐 뻔했다. 애클리가 조금 일어나 앉아서 한쪽 팔에 몸을 기대었다. 그는 여드름 때문에 얼굴에 하얀 것을 잔뜩 바르고 있었다. 어두운 데서 보니 좀 유령 같아 보였다. ‘뭐하고 있는 거냐?’ 하고 내가 말했다.
‘내가 뭘 하고 있냐구? 네 놈들이 시끄럽게 굴기 전에 잠자려구 하고 있었다. 도대체 뭣땜에 싸운 거야?’
‘불은 어디 있어?’ 나는 불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벽에 대고 손을 더듬었다.
‘뭣땜에 불을 찾아?... 니 손 바로 옆에.’
나는 마침내 불을 찾아서 스위치를 돌렸다. 애클리 놈은 불빛 때문에 손을 눈에 갖다 댔다.
‘뭐야!’ 하고 그가 말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는 피니 뭐니 하는 걸 말하는 것이었다.
‘스트래드레이터하구 말다툼을 좀 했지,’ 하고 내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바닥에 앉았다. 방에는 의자라곤 하나도 없었다. 대체 의자들을 어떻게 했는지 모른다. ‘이봐,’ 하고 내가 말했다. ‘카나스타 좀 할까?’ 그는 카나스타 광이었다.
‘아직도 피가 나쟎아, 제기랄. 뭘 좀 갖다 대는 게 낫겠는데.’
‘멈추겠지. 이봐. 카나스타 좀 할래 안 할래?’
카나스타라구, 맙소사. 도대체 지금이 몇 신지 아냐?‘
‘늦지 않았어. 열 한시나 열 한시 반 정도밖에 안 됐어’
‘정도밖에 안 됐다구!’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이봐, 난 아침에 일어나서 미사에 가야 돼, 제기랄. 너희 놈들은 한 밤중에 소리지르고 싸움을 하고 ― 대체 뭣 때문에 싸운 거냐?’
‘얘기하자면 길지. 난 널 지루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애클리. 난 니 행복을 생각하고 있는 거야,’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내 걔인적인 얘기를 그와 한 적이 없다. 첫째, 그 놈은 스트래드레이터보다 훨씬 더 멍청하기 때문이다. 스트래드레이터는 그 놈에다 대면 정말 천재다. ‘야,’ 하고 내가 말했다. ‘내가 오늘밤 엘리의 침대에서 자도 되냐? 걘 내일 밤까진 돌아오지 않지?’ 나는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엘리는 매주 주말만 가까이 오면 집에 갔다.
‘난 걔가 언제 돌아올 지 몰라,’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정말이지, 그런 말엔 짜증이 났다. ‘대체 무슨 말이야 ― 걔가 언제 돌아올 지 모른다니? 걘 일요일 밤까진 돌아오지 않잖아?’
‘그야 그렇지, 헌데 제기랄, 누가 자구 싶다구 해서 걔 침대에서 자라구 말할 순 없지.’
정말 미치게 만드네. 나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넌 멋진 놈이야, 애클리 꼬마,’ 하고 내가 말했다. ‘너 그거 알아?’
‘아니, 내 말은 정말이야 ― 누가 자구 싶다구 해서 걔 침대에서 ―’
‘넌 정말 멋진 놈이야. 넌 신사구 학구파라구, 꼬마야,’ 하고 내가 말했다. 그는 정말 그렇다니까. ‘혹시 담배 있어? 없다구 해 안 그러면 죽어 버릴 거야.’
‘아니, 없어, 사실은. 이봐, 대체 뭣땜에 싸운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일어나서 창가로 가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나는 갑자기 너무 외로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거의, 죽는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뭣땜에 싸운 거야?’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거의 열 다섯 번은 말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확실히 그는 지겨운 놈이었다.
‘너 때문에,’ 하고 내가 말했다.
‘나 때문이라구, 제기랄?’
‘그래. 내가 너의 빌어먹을 자존심을 지켜 주려구 그랬다. 스트래드레이터가 그러쟎아, 니가 성격이 더럽다구. 난 그런 말을 듣고 참을 수가 없었지.’
그 말이 그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그 놈이 그랬다구? 설마? 그랬어?’
나는 농담이라고 말해 주고는 엘리의 침대로 가서 누웠다. 정말이지, 우울했다. 나는 정말 더럽게 외로웠다.
‘이 방은 냄새가 나는데,’ 하고 내가 말했다. ‘여기서도 니 양말 냄새가 난다. 넌 양말을 세탁하러 보내지두 않냐?’
‘싫으면 어떻게 할 지 알 텐데,’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정말 재치있는 친구 아냐? ‘저 놈의 불을 끄는 게 어때?’
하지만 나는 즉시 불을 끄지는 않았다. 나는 제인이니 뭐니를 생각하면서 거기 엘리의 침대에 계속 누워 있었다. 그 계집애가 스트래드레이터와 같이 저 엉덩이가 디룩디룩한 에드 뱅키의 차 구석에 앉아 있는 걸 생각하니 정말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그걸 생각할 때마다 창 밖으로 뛰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실, 아무도 스트래드레이터를 모른다. 나는 그 놈을 안다. 펜시에 있는 놈들 대부분이 계집애와 성적 관계를 갖는 것에 대해 늘 지껄이지만 ― 예를 들어 애클리처럼 말야 ― 스트래드레이터 놈은 실제로 그걸 하는 놈이다. 나는 그가 관계를 가진 계집애들 중에 적어도 두 명과 알고 지냈다. 그건 사실이다.
‘나한테 너의 그 아름다운 인생 얘기 좀 해 봐, 애클리 꼬마,’ 하고 내가 말했다.
‘저 놈의 불 좀 끄지 그래? 아침에 미사에 가야 되거든.’
그가 행복해진다면, 나는 일어나서 불을 껐다. 그리고 나는 엘리의 침대에 누웠다.
‘너 뭐 할 거야 ― 엘리 침대에서 잘 거야?’ 하고 애클리가 말했다. 정말이지, 그는 손님 접대하는 덴 끝내 주는 놈이었다.
‘그럴 수도 있구. 안 그럴 수도 있구. 걱정하지 마.’
‘난 걱정하는 건 아냐. 그저 엘리가 갑자기 들어와서 어떤 놈이 자기 침대에 있는 걸 보는 게 싫은 거지.’
‘진정해. 난 여기서 안 자. 너의 그 망할 놈의 환대에 배은망덕한 짓은 안 할 거니까.’
몇 분 있다가 그는 미친 듯이 코를 골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두운 데 거기에 누워서, 제인 계집애와 스트래드레이터가 저 빌어먹을 에드 뱅키의 차 안에 있었던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했다. 문제는, 내가 저 스트래드레이터 놈의 기술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더 어렵게 만들었다. 우리가 한번은 에드 뱅키의 차 안에서 더블로 데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스트래드레이터는 자기 계집애와 뒷자리에 있었고 나는 내 계집애와 앞자리에 있었다. 정말 그 놈은 대단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하냐 하면 말야, 아주 차분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계집애를 녹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 마치 자기는 그저 얼굴만 잘 생긴 그런 놈이 아니고, 성격도 좋고 진지한 놈이라는 듯이 말야. 나는 그 놈 말을 듣고 있다가 거의 게울 뻔했다. 계집애는 계속해서 ‘안 돼 ― 제발. 제발, 하지 마. 제발.’ 이러더군. 하지만 스트래드레이터 놈이 계속해서, 저 애이브러햄 링컨같이 진정에서 우러나온 듯한 목소리로 계집애를 녹이니까, 결국 뒷자리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게 되더군. 나는 정말 당황했어. 그 날 밤에 그 놈이 계집애한테 줬다고 생각하진 않아 ― 하지만, 제기랄, 거의 할 단계까지 갔을 거야. 거의 가까이 갔을 거라구, 제기랄.
내가 거기 누워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스트래드레이터 놈이 샤워실에서 돌아와서 방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그 놈이 지저분한 세면 도구들을 치우고 창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놈은 틈만 나면 창문을 연다. 이윽고 조금 있다가 그가 불을 껐다. 그는 내가 어디 있나 하고 둘러보지도 않았다.
밖의 거리도 우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 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너무 외롭고 우울한 생각이 들어서 애클리를 깨우고 싶었다.
‘야, 애클리,’ 스트래드레이터가 샤워 커튼 너머로 듣지 못하게, 나는 약간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애클리는 듣지 못했다.
‘야, 애클리!’
그는 아직도 듣지 못했다. 그는 돌덩어리처럼 잠에 빠져 있었다.
‘야, 애클리!’
그가 들었다, 옳지.
‘대체 왜 그래?’ 하고 그가 말했다. ‘자고 있는데, 제기랄.’
‘이봐. 수도원에 들어가면 뭘 하냐?’ 하고 내가 물었다. 나는 수도원에 들어가면 어떨까 하고 장난 삼아 생각을 좀 하고 있었다. ‘캐톨릭이니 뭐니 여야 돼냐?’
‘물론 캐톨릭이야지. 이 자식아 그런 멍청한 걸 물어 보려고 날 ―’
‘아, 다시 자. 어쨌든 난 거긴 안 들어가니까. 내가 운 좋게 들어간다 해도, 난 아마 괴상한 중들만 있는 수도원에 들어가겠지. 전부 다 멍청한 새끼들만 있는. 아니면 그냥 못된 새끼들만 있던가.’
내가 그런 말을 하자, 애클리 놈은 벼락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야,’ 하고 그가 말했다, ‘니가 나나 다른 걸 가지고 뭐라 말하든 상관 안해, 하지만 내 종교를 가지고 농담을 하면, 제기랄 ―’
‘진정해,’ 하고 내가 말했다. ‘아무도 네 몸의 종교를 가지고 농담하는 사람은 없어.’ 나는 엘리의 침대에서 뛰쳐나와서 문 쪽으로 갔다. 나는 그런 바보 같은 분위기에서 더 이상 붙어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도중에 걸음을 멈추고 애클리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거창하게 일부러 꾸며서 악수를 했다. 그는 내 손을 뿌리쳤다. ‘무슨 짓이야?’ 하고 그가 말했다.
‘아무 것도 아냐. 난 그냥 니가 그렇걔 멋진 놈이라는 데 대해 감사하고 싶은 거야, 그것뿐이지,’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저 아주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멋있어, 애클리 꼬마,’ 하고 내가 말했다. ‘너 그거 알아?’
‘교활한 놈. 언젠가는 누군가가 니 주둥아릴 ―’
나는 그의 말에 이제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나는 문을 꽝하고 닫아 버리고 복도로 나갔다.
다들 자고 있거나 집에 가 버려서 복도는 정말 조용하고 우울했다. 리히와 호프만의 방 앞에 빈 콜리노스 치약 상자가 있어서 나는 계단 쪽으로 가는 동안, 신고 있던 양가죽을 댄 슬리퍼로 내내 그것을 차고 갔다. 내가 뭘 하려고 했냐 하면, 나는 내려가서 맬 브로싸드 놈이 뭘 하고 있는지 보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나는 마음을 바꿨다. 갑자기, 나는 정말 뭘 할 지를 결정했다, 지금 바로 펜시에서 나가 버리자. 내 말은, 수요일이니 뭐니 까지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여기에 붙어 있고 싶지 않았다. 너무도 우울하고 외로웠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결심했냐 하면, 뉴욬에 가서 호텔에 방을 잡는 것이다 ― 아주 싼 호텔이나 뭐 그런 데 말이다 ― 그리고 수요일까지 거기서 쉬는 것이다. 그리고 수요일이 되면 푹 쉬고 아주 가벼운 기분으로 집에 가는 것이다. 부모님은, 아마 화요일이나 수요일까지는 내가 퇴학당했다는 터머 교장의 편지를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이 편지를 받고 화가 완전히 풀릴 때까지는 집이니 뭐니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편지를 처음 받아봤을 때 거기 있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굉장히 히스테릭한 성격이거든. 하지만, 엄마는 무슨 일이든 완전히 지나고 나면 그리 심하진 않다. 게다가 난 휴식이 좀 필요했다. 내 신경은 있는 데로 쇠약해 있었다. 정말 그랬다니까.
어쨋든, 난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그래서 나는 짐을 싸거나 뭐 그런 걸 하려고 방으로 돌아와서 불을 켰다. 이미 많이 싸 놓았었다. 스트래드레이터 놈은 깨지도 않았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옷을 다 입은 다음, 저 글래드스톤 가방 두 걔를 쌌다. 이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나는 짐을 무지 빨리 싼다.
짐을 싸는데 한가지가 마음을 좀 우울하게 했다. 나는 엄마가 거의 이삼일 전에 보내 준 새 스케이트를 싸야 했다. 그 때문에 좀 우울했다. 나는 엄마가 스폴딩 가게에 들어가서 점원에게 수백만 가지나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것이 상상이 됐다 ― 그런데 나는 여기서 다시 퇴학을 당하고 있다니. 그런 생각을 하니 정말 슬퍼졌다. 엄마는 스케이트를 잘못 샀다 ― 나는 경주용 스케이트를 원했는데, 엄마는 하키용 스케이트를 사 준 것이다 ― 하지만 어쨋든 슬픈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나한테 선물을 사 줄 땐 거의 언제나 슬퍼지게 된다.
짐을 다 싸고 나는 돈을 좀 세어 보았다. 정확하게 얼마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꽤 많이 가지고 있었다. 할머니가 일주일 전에 꽤 많이 보내 줬던 것이다. 내 할머니는 돈에 대해선 아끼지 않는 분이다.할머니는 이제 정신이 성하지 않으시다 ― 할머니는 상당히 늙으셨다 ― 그래서 할머니는 일년에 네 번 정도는 언제나 생일 선물로 돈을 보내 주신다. 어쨋든, 돈이 꽤 있었지만, 나는 언제든지 몇 딸라 정도는 더 쓸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앞일을 누가 아나.
그래서 내가 뭘 했냐 하면, 복도를 내려 가서, 타이프라이터를 빌려 준 프레데릭 우드러프를 깨웠다. 나는 그에게 타이프라이터를 빌려 준 데 대해 얼마 낼 거냐고 물었다. 그는 꽤 돈이 많은 놈이거든. 그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걸 별로 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엔 그걸 샀다. 나는 그걸 구십 딸라 정도는 주고 샀는데 그는 겨우 이십 딸라에 샀다. 내가 자기를 깨워서 화가 났던 것이다.
가방이니 뭐니를 들고, 떠날 준비가 다 되자, 나는 계단 옆에 잠시 서서 저 복도를 마지막으로 한번 보았다. 나는 눈물을 좀 흘리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나는 빨간색 사냥 모자를 쓰고 내가 좋아하는 식으로 챙을 한바퀴 돌렸다. 그리고 나는 목이 터져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잘 자라, 이 천치 새끼들아!’ 그 때문에 그 층에 있는 새끼들은 전부 깼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어떤 멍청한 새끼가 계단 사방에 땅콩 껍질을 흘려 놓아서, 제기랄, 하마터면 모가지가 부러질 뻔했다.
제 8장
택시니 뭐니를 부르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나는 기차역까지 내내 걸어갔다. 별로 멀지는 않았지만 지독하게 추웠다. 게다가 눈 때문에 걷기가 어려웠고 글래드스톤 가방이 계속해서 다리에 부딪쳤다. 하지만 나는 바깥 공기니 뭐니가 약간 좋았다. 단 한가지 문제는, 너무 추워서 코 아래, 스트래드레이터 놈이 때린 윗입술 바로 아래 부분이 아팠다. 그 놈이 이빨 있는 데 입술을 때려서 거기가 굉장히 쓰라렸다. 하지만 귀는 따뜻하고 좋았다. 내가 산 모자는 귀마걔가 있어서 나는 그것을 내려 덮고 있었다 ― 나는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어쨋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잠자리에 들어가 있었으니까.
내가 역에 도착했을 때는 운이 좋았다, 왜냐 하면, 기차가 떠날 때까지 10분만 기다리면 되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기다리는 동안 손에 눈을 뭉쳐서 얼굴을 문질렀다. 아직도 얼굴에 피가 많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보통, 나는 기차 타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밤에 타는 게 좋은데, 차 안에 불이 켜지고 창문은 깜깜한데, 장삿꾼들이 통로를 따라 와서 커피니 샌드위치니 잡지들을 파는 것이다. 나는 대걔 햄 샌드위치하고 잡지를 네 권 정도 산다. 밤에 기차를 타고 가면, 나는 잡지에 실린 저 멍청한 얘기들도 대게 게우지 않고 읽을 수가 있다. 알지? 데이빗이니 하는 저 사깃꾼 같이 턱이 훌쪽한 놈하구 린다니 마르시아니 하는 역시 사깃꾼 같은 계집들이 나와서 언제나 데이빗의 파이프에 불을 붙여 준다는 그런 얘기 말야. 나는 또 기차에서는 저 너저분한 애기들도 대걔 읽을 수가 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나는 그런 따위를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나는 그냥 앉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사냥 모자를 벗어서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다.
갑자기, 트렌톤에서 어떤 부인이 타서 내 옆에 앉았다. 아주 늦은 시간이고 그래서, 차 안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는데, 그 부인은 빈 자리에 앉지 않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왜냐 하면 그 여자는 아주 큰 가방을 들고 있었고 또 내가 앞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가방을 바로 통로 한 가운데 놓아서 차장이나 다른 사람들이 넘어 다녀야 할 판이었다. 그 여자는 마치 큰 파티나 어디서 오는 것처럼, 난초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 여자는 마흔이나 마흔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였는데, 매우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나는 여자들을 보면 기분이 좋다. 정말 그래. 내가 성욕이 과잉이라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 내가 꽤 성적이긴 하지만. 내 말은, 그냥 여자들이 좋다는 것이다. 여자들은 항상 그 놈의 가방을 통로 한 가운데 놓는다.
어땟든, 우리는 거기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그 여자가 나한테 말했다. ‘잠깐, 저거 펜시 학교 마크 아녜요?’ 그 여자는 선반에 놓은 내 수트케이스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네, 그래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 여자 말이 맞았다. 나는 내 글래드스톤 가방 하나에 망할 놈의 펜시 마크 딱지를 붙여 놓았었다. 정말 촌스러운 짓이지, 그건 인정하겠어.
‘오, 펜시에 다녀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그 여자는 멋있는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대걔는 전화로 들을 때 멋있게 들리는 그런 목소리 말이다. 그 여자는 전화기를 가지고 다니면 좋을 것이다.
‘네. 그래요,’ 하고 내가 말했다.
‘오, 그래요! 그렇다면 혹시 내 아들을 알 지도 모르겠네. 어네스트 모로운데? 걔도 펜시에 다녀요.’
‘네, 알아요. 걘 우리 반이에요.’
그 여자의 아들은 그 학교의 너저분한 역사 전체를 통털어서, 지금까지 펜시에 다닌 놈들 중에서 가장 걔자식이었다. 그 놈은 샤워를 한 뒤에 언제나, 젖은 수건으로 다른 애들의 엉덩이에 때리면서 복도를 다녔다. 그 놈은 바로 그런 자식이었다.
‘오, 잘 됐네!’ 하고 그 부인이 말했다. 하지만 촌스럽지는 않았다. 그 여자는 멋있고 괜찮았다. ‘어네스트한테 우리가 만난 얘기를 해야지,’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학생 이름을 물어 봐도 되나?’
‘루돌프 쉬미트예요,’ 하고 나는 그 여자한테 말했다. 나는 그 여자한테 내 인생 얘기를 다 하고 싶지는 않았다. 루돌프 쉬미트는 우리 기숙사의 수위 이름이었다.
‘학생은 펜시가 좋은가?’ 하고 그 여자가 나한테 물었다.
‘펜시요? 그리 나쁘지 않아요. 천국이니 뭐니는 아니지만, 다른 학교들처럼 좋아요. 선생님들 중에는 양심적인 분들도 있구요.’
‘어네스트는 학교를 정말 좋아해요.’
‘저도 알고 있어요,’ 하고 하고 내가 말했다. 이어서 나는 저 낡아빠진 허튼 수작을 좀 부리기 시작했다. ‘걔는 무엇이나 잘 적응해요. 정말 그래요. 제 말은, 걔는 예의가 바르다는 말예요.’
‘그렇게 생각하나?’ 하고 그 여자가 나한테 물었다. 그 여잔 아주 흥미를 느낀 것 같았다.
‘어네스트요? 그럼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여자가 장갑을 벗는 것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그 여자의 손은 울퉁불퉁한 게 지저분했다.
‘손톱이 부러졌어요, 택시에서 내리다가,’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그 여자는 나를 보고 약간 미소를 지었다. 그 여자는 정말 멋진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정말 그랬다. 대부분 사람들은 거의 미소를 짓지 않거나 아니면 데데한 미소밖에는 지을 줄 모른다. ‘어네스트의 아빠와 난 가끔 어네스트가 걱정이 돼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우린 가끔, 걔가 별로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글쎄. 걔는 아주 민감한 애예요. 걔는 다른 애들하구 잘 어울려 본 적이 별루 없어요. 아마 걔는 자기 나이에 비해 사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거 같애요.’
민감하다. 그 말엔 졌다. 모로우란 놈은 저 놈의 화장실 의자만큼 민감했다.
나는 그 여자한테 좋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여자는 나한테 바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 여자는 자기가 얼마나 얼간이의 엄마인지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걸 알 수는 없다 ― 누구의 엄마라면 말이다. 엄마들은 모두 약간은 제 정신이 아니니까. 하지만 사실은, 나는 모로우 놈의 엄마가 마음에 들었다. 그 여자는 괜찮았다. ‘담배 피우실래요?’ 하고 나는 그 여자한테 물었다.
그 여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흡연차가 아닌 것 같은데, 루돌프,’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루돌프라. 그 말이 정말 나를 웃겼다.
‘괜찮아요. 사람들이 우리한테 소리지를 때 까진 피울 수 있쟎아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 여자는 나한테서 담배를 받았다. 나는 불을 주었다.
그 여자가 담배 피우는 모습은 멋있었다. 그 여자는 연기를 들이마시고 뭐 그랬지만, 그 여자 나이의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러듯이 걔걸스럽게 빨아대지는 않았다. 그 여자는 여러 가지로 매력적이었다. 정말로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인데, 그 여자는 성적인 매력도 풍부했다.
그 여자는 나를 약간 야릇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잘못 본 지 모르지만, 학생 코에서 피가 나는 것 같은데,’ 하고 그 여자가 갑자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눈에 맞았어요,’ 하고 내가 말했다. ‘얼어서 딱딱한 거 있죠?’ 나는 일어난 일을 사실대로 그 여자에게 말하려고도 했지만, 그러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여자가 좋았다. 나는, 그 여자에게 내 이름이 루돌프라고 말한 걸 약간 후회하기 시작했다. ‘어니 자식,’ 하고 하고 내가 말했다. ‘걔는 펜시에서 제일 인기있는 애들 중의 하나예요. 그거 아셨어요?’
‘아니, 몰랐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애들이 걔를 알기까진 정말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걔는 재미있는 애예요. 여러 가지 면에서 이상한 애지요 ― 무슨 말이지 아세요? 내가 걔를 처음 봤을 땐, 좀 속물적인 애라고 생각했어요. 바로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걔는 아주 독창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알려면 시간이 좀 걸리죠.’
모로우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이지, 그 여자를 봤어야 하는데. 나는 그 여자를 그 자리에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었지. 여기 누구 엄마가 있다고 하자, 그들이 듣고 싶은 것은, 자기 아들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가 하는 것 밖에 없다.
그리고 나서 나는, 본격적으로 저 낡아빠진 허튼 수작을 풀어 놓기 시작했다. ‘어니가 선거 얘길 했어요?’ 하고 나는 그 여자한테 물었다. ‘학급 선거 말이예요.’
그 여자는 아니라고 머리를 가로 저었다. 나는 그 여자를 완전히 정신 못차리게 만들어 놓았다, 말하자면. 내가 정말 그랬다니까. ‘우리들은 어니가 반장이 되었으면 했어요. 제 말은, 반 전체가 걔를 만장일치로 뽑았단 말예요. 제 말은, 학급 일을 할 수 있는 애는 어니 밖에 없다는 거예요.’ 하고 내가 말했다 ― 정말이지, 대단한 수작 아냐? ‘근데, 저 해리 펜서라는 애가 반장이 됐지요. 걔가 반장이 된 이유는, 간단하고도 분명한 이유지만요, 어니가 우리한테 자기를 추천하지 말라구 고집을 부려서 그런 거예요. 왜냐 하면, 걘 정말 수줍음을 타고 겸손하고 또 뭐니 뭐니 하고 그래서죠. 걘 안 한다고 딱 잘랐어요... 정말이지, 갠 정말 수줍음이 많아요. 그걸 극복하도록 노력하게 만드셔야 할 거예요.’ 나는 그 여자를 보았다. ‘어니가 그런 애기 안 했나요?’
‘아니, 안 했어.’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니는 그런 애예요. 말 안 할 거예요. 그게 단 하나 흠이죠 ― 너무 수줍음이 많고 겸손해요. 가끔 마음을 편히 가지도록 만드셔야 할 거예요.’
바로 그때, 차장이 모로우 부인의 차표를 검사하러 들어와서, 이제 그런 수작을 그만 둘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나는, 잠시 그런 수작을 풀은 게 후련했다. 언제나 목욕 수건으로 다른 애들의 엉덩이를 치는 모로우 같은 놈이 있다고 하자, 일부러 누군가를 아프게 하려고 그러는 놈 말야, 그런 놈들은 어릴 때만 그렇게 쥐새끼 같은 짓을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일생 동안 그런 쥐새끼 같은 짓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내기를 걸어도 좋아. 내가 그런 허튼 소리를 지껄여 댔기 때문에, 모로우 부인은 이제 자기 아들에 대해, 우리한테 절대로 자기를 반장으로 추천하지 말라고 고집을 부린 저 부끄럼 많고 겸손한 아이라고 계속 생각할 것이다. 그 여자는 그럴 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엄마들이란 그런 일엔 눈치가 별로 빠르지 않으니까.
‘칵테일 한잔 드실래요?’ 하고 나는 그 여자에게 물었다. 나는 칵테일을 한잔 마시고 싶었다. ‘식당 차에 가면 돼요. 좋으세요?’
‘저런, 그런 걸 마셔도 되나?’ 하고 그 여자가 나에게 물었다. 하지만 거만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 여자는 거만하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이고 또 뭐 그랬다.
‘글쎄요, 안 되겠죠, 엄밀하게 말하면요, 근데 전, 대걔는 건강 때문에 그걸 마시기도 해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리고 전 머리가 많이 세었어요.’ 나는 비스듬히 자세를 돌려서 내 회색 머리카락을 그 여자에게 보여 주었다. 거기엔 그 여자도 졌다. ‘자, 같이 가세요, 나 가실래요?’ 하고 내가 말했다. 같이 갔으면 좋았을 뻔했다.
‘나는 별로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하여간 고마워요, 학생,’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어쨌든, 식당 차는 아마 닫혀 있을 것 같은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그 여자 말이 맞았다. 그 때가 몇 시인지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 여자는 나를 보더니 그 여자가 물어 볼까 봐 걱정하고 있던 질문을 하였다. ‘어네스트가 편지에 썼는데, 수요일에 집에 올 거라고 하던데, 크리쓰마스 휴가가 수요일에 시작한다구.’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집안에 누가 아프셔서 갑자기 집에 가는 건 아니겠지.’ 그 여자는 정말로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단순히 호기심에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녜요, 집엔 별일 없어요,’ 하고 내가 말했다. ‘제 일 때문이에요. 여기를 수술해야 하거든요.’
‘오! 정말 안됐어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그 여자는 정말로 안됐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런 말을 한 게 정말로 미안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별로 심각한 건 아녜요. 머리에 종기가 조금 난 거예요.’
‘오, 저런!’ 하고 그 여자는 입이니 뭐니에 손을 갖다 댔다.
‘오, 전 괜찮을 거예요! 바깥쪽이니까요. 그리고 아주 쪼그만 거예요. 이분 정도면 떼어 낼 수 있어요.’
그리고 나서, 나는 주머니에서 시간표를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이제 거짓말을 그만 해야겠다고 생각돼서 말야. 나는 일단 책에 빠지면, 마음만 먹으면 몇 시간이라도 계속 읽을 수 있다. 이건 농담이 아냐. 몇 시간이라두 말야.
우리는 그 뒤로는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여자는 가지고 탄 「보그」지를 보기 시작했고 나는 잠시 창밖을 보았다. 그 여자는 뉴앜에서 내렸다. 그 여자는 수술이니 뭐니에 대해 행운을 빌어 주었다. 그 여자는 나를 줄곧 루돌프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서, 여름 중으로 메사추세프의 글루체스터로 어니를 찾아 오라고 초대하였다. 그 여자는, 집이 바로 해변에 있는데, 테니스 코트니 뭐니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감사하다고 말하고, 할아버지와 같이 남미에 갈 거라고 그 여자에게 말했다. 그건 정말로 웃기는 일이었는데, 왜냐 하면 할아버지는, 어쩌다가 무슨 연극이니 그런 데가 아니면 거의 집밖에 나오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다급한 처지에 있더라도 그 놈의 모로우 새끼한테는 절대 찾아가지 않을 거야.
제 9장
내가 펜 역에 내려서 제일 먼저 뭘 했냐 하면, 나는 전화 박스에 들어갔다. 나는 누군가한테 전화를 하고 싶었다. 나는 안에서 볼 수 있게 전화 박스 바로 밖에다 내 가방들을 놓았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자마자, 누구한테 전화해야 할 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 형 D.B.는 할리웃에 있었다. 누이동생 피비는 아홉시 정도에 잠자리에 드니까 전화할 수 없었다. 걔는 내가 깨운다고 해도 뭐 화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피비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전화를 받을 것이다. 그러니 안되는 것이다. 다음엔, 제인 갤러허의 엄마한테 전화해서 제인의 휴가가 시작되었는지 알아볼까 생각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전화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다음으론, 전에 자주 같이 다니던 저 쌜리 헤이즈한테 전화할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쌜리의 크리쓰마스 휴가가 시작된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쌜리가 크리쓰마스 이브에 와서 트리를 자르는 걸 도와 달라느니 뭐니 하고 아주 긴 되먹지 않은 편지를 보냈었기 때문이다 ― 하지만 난 걔네 엄마가 전화받을까봐 두려웠다. 걔네 엄마가 우리 엄마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다리를 부러뜨려 가며 전화기로 달려가서, 내가 뉴욬에 있다고 우리 엄마한테 전화할 게 뻔했다. 게다가, 난 저 헤이즈 부인하고 전화로 얘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여자가 쌜리한테, 내가 거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여자는, 내가 거칠고 또 삶에 목표도 없다고 말했다. 나는 이어서, 내가 우튼에 있을 때 같이 다녔던 저 칼 루쓰한테 전화할까 하고도 생각했지만 나는 그 놈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난 아무한테도 전화하지 않았다. 나는 이십 여분 정도 있다가 나와서, 가방들을 집어들고 택시들이 있는 터널로 가서 택시 한 대를 잡았다.
나는 너무 방심하고 있어서 그냥 습관적으로 운전사한테 우리 집 주소를 말해 주었다. 내 말은, 호텔에서 이삼일 정도 묵으면서 크리쓰마스가 시작될 때까지는 집에 안 간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택시가 공원 한가운데 올 때까지도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여봐요, 기회를 봐서 돌아가면 안되요? 내가 주소를 잘못 알려 줬어요. 시내로 가고 싶은데.’
운전사는 좀 교활한 친구였다. ‘여기선 돌리지 못해요. 여긴 일방통행이거든. 90번가까지는 내내 가야 할 거요.’
나는 말다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좋아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 때,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다. ‘이봐요,’ 하고 내가 말했다. ‘쎈트랄 파크 남쪽 바로 근처 호수에 있는 오리들을 알아요? 쪼그만 호수요. 혹시, 그 호수가 꽁꽁 얼면 오리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요?’ 혹시 알아요?‘ 나는 백만명 중 하나 정도가 그런 걸 알 거라는 생각이 그 때 들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서, 무슨 미친 사람 보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지금 뭐하자는 거요?’ 하고 그가 말했다. ‘농담하는 건가?’
‘아니 ― 그냥 궁금해서 그래요, 다른 건 아니구.’
그가 더 이상 아무 말도 없기에 나도 입을 다물었다. 90번가에서 나올 때까지. 그 때 그가 말했다. ‘자, 이제. 어디로 가요?’
‘글쎼, 사실은, 동쪽에 있는 호텔엔 가고 싶지 앟은데, 거긴 혹시 내가 아는 놈들을 만날 지도 몰라서요. 나 지금 신분을 숨기고 다니는 중이거든요,’ 하고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신분을 숨기고’ 하는 따위의 진부한 말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부한 작자와 같이 있을 땐, 나도 언제나 진부하게 행동한다. ‘혹시, 태프트나 뉴요커에 지금 어떤 밴드가 나왔는지 알아요?’
‘몰라요.’
‘그럼 ― 에드먼트로 가요,’ 하고 내가 말했다. ‘중간에 어디 들러서 칵테일 한잔 하지 않을래요?’ 내가 살께요, 나한테 돈이 좀 있어요.‘
‘그렇겐 못해요. 미안해요.’ 이런 친구와 같이 있으면 재미있을 거야. 정말 감탄할 만한 성격 아냐?
나는 에드먼트에 도착해서 방을 잡았다. 나는 택시에 타고 있을 때 그저 심심해서 빨간색 사냥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방을 잡기 전에 나는 모자를 벗었다. 괴짜나 뭐 그런 거로 보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정말 아이러닠한 일일 것이다. 알고 봤더니, 그 빌어먹을 호텔엔 괴상한 놈들과 멍청이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어디 가나 괴상한 인간들만 있다니까.
나는 아주 지저분한 방을 받았는데, 호텔 건너편 말고는 창밖에 볼 게 없었다. 나는 별로 걔의치 않았다. 나는 너무나 우울해서 전망이 좋고 나쁜 걸 가지고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나를 방으로 안내한 벨 보이는 예순 다섯 살 정도 된 아주 늙은 노인이었다. 방보다도 그 영감을 보는 게 훨씬 더 우울했다. 그는, 대머리를 가리기 위해서 얼마 안 되는 머리카락을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빗어 넘기는 그런 친구들 중의 하나였다. 나라면, 그런 짓을 하느니 차라리 그냥 대머리로 다닐 것이다. 어쨌든, 예순 다섯 살 정도 된 늙은이한텐 얼마나 훌륭한 직업이냐. 사람들의 수트케이스를 나르고 팁을 바라고 어슬렁거리는 거 말야. 나는 그 작자가 별로 영리하거나 뭐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어쨋든 끔찍한 일이었다.
그가 나간 뒤에, 나는 오바니 뭐니를 그대로 입고 잠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난 별로 할 일이 없었으니까. 그 때 호텔 건너편에서 벌어지는 일을 봤다면 놀랬을 거야. 그들은 구태여 커튼을 잡아 내리지도 않았다. 머리카락이 회색빛에, 꽤 잘 생긴 어떤 친구가 짧은 바지 하나만 입고 있는 게 보였는데, 그가 뭘 했는지 내가 얘기해 주면 믿지 않을 거야. 먼저 그는 침대 위에 수트케이스를 올려 놓더군. 그리고는 여자 옷들을 죄다 꺼낸 다음 그것들을 입었어. 그건 진짜 여자 옷들이었어 ― 실크 스타킹, 하이 힐, 브래지어, 끈이니 뭐니가 달린 저 코르셋 같은 것들 말야. 그리고는, 몸에 꽉 끼는 검은 색 이브닝 드레스를 입었지. 하늘에 맹세코 이건 사실이야. 그 다음엔 여자들이 하는 식으로 아주 조그만 걸음걸이로 방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거울을 들여다 보더군. 그도 역시 완전히 혼자였어. 누군가가 화장실에 있지 않다면 말야 ― 그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다음에, 그의 창문 너머에 있는 어떤 방을 보니까, 어떤 남녀가 상대방한테 입으로 물을 뿜어대는 게 보였다. 그건 물이 아니라 아마 하이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컵에 뭐가 들었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어쨋든, 처음에 남자가 그걸 한 모금 입에 넣었다가 여자 온몸에 뿜고, 다음엔 여자가 같은 짓을 남자한테 하는 거다 ― 제기랄, 교대로 그런 짓을 했다니까. 그들을 봤어야 하는 건데. 그들은, 마치 그 짓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이라는 듯이, 내내 히스테리까지 일으키더군. 난 지금 농담하는 게 아냐, 그 호텔은 괴상하고 너저분한 인간들로 꽉 차 있었다구. 거기서 유일하게 정상인 놈팽이는 나밖에 없었을 거야 ― 그리고 이건 자랑하는 게 아냐. 제기랄, 나는 스트래드레이터 놈한테 뉴욬행 첫번째 기차를 타고 오라고 거의 전보를 칠 뻔했다. 그 놈이 오면, 아마 그 호텔에서 왕 대접을 받았을 거야.
문제는 뭐냐 하면, 그런 너저분한 광경은, 정말 보고 싶지 않다 해도 어느 정도 마음을 끄는 데가 있다는 거야. 예를 들어, 얼굴에 온통 물을 뒤집어 쓴 그 여자 말이다. 그 여자는 꽤 잘 생겼었다. 내 말은 그게 내가 가진 큰 문제라는 말이다. 내 마음을 보면, 나는 아마 지금까지 보아 온 최대의 섹스광일 것이다. 가끔 나는, 만약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주저하지 않고 할 그런 아주 지저분한 짓을 생각할 때가 있다. 만일 둘 다 술에 취했거나 뭐 그렇다면, 어떤 여자를 데려다 서로 얼굴에다 물이니 뭐니를 뿜어대는 것도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상상도 한단 말이다. 뭐 지저분한 일이지만 말야. 근데, 사실은, 난 그런 생각을 좋아하지 않는다. 잘 따져보면 그건 구역질나는 일이지 않은가. 내 생각엔, 어떤 여자를 정말로 좋아하지 않으면, 그 여자와 희롱이니 뭐니를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어떤 여자를 좋아한다면, 아마 그 여자의 얼굴을 좋아하는 걸거야, 그리고 얼굴을 좋아한다면, 얼굴에 물을 뿜어대느니 하는 그런 너저분한 짓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정말 유감스러운 건, 대걔 지저분한 짓들이 가끔 굉장히 재미있다는 거다. 만일 너저분해지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땐, 그리고 정말 좋은 것을 망쳐 놓으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을 땐, 여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몇 년 전에 나보다 훨씬 더 지저분한 어떤 계집애를 알고 지냈었다. 정말이지, 그 년은 지저분했어! 하지만 우린 얼마 동안 꽤 재미있게 지냈다. 지저분하게 말야. 섹스는 내가 과히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도대체 갈피를 못잡게 한단 말야. 나는 스스로 섹스의 규칙을 계속해서 만들어 낸다, 그리고는 그걸 금방 어기는 거다. 작년에 난, 나를 몹시 애타게 만들던 계집애들과 이제 희롱질을 그만하겠다고 규칙을 만들었었다. 하지만 난 그걸 만든 바로 그 주에 ― 사실은 그날 밤이지만 ― 그걸 어겼다. 나는 저 앤 루이즈 셔먼이라는 되먹지 않은 계집애하고 밤새 껴안고 애무했었다. 섹스는 정말 이해하지 못해. 하늘에 맹세코, 정말 이해하지 못해.
나는 거기 내내 서 있으면서, 제인 년한테 전화해 볼까 하는 생각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 내 말은, 걔가 언제 집에 오나 알아보려고 걔네 엄마한테 전화한다는 게 아니라, 걔가 다니는 B.M. 에 장거리 전화를 한다는 말이다. 학생한텐 밤 늦게 전화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지만 난 계산을 다 해 놓았다. 누가 전화를 받으면 삼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숙모가 자동차 사고로 죽어서 당장 통화해야 한다고 하는 거다. 그렇게 하면 통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은 건, 다만 그런 짓을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럴 기분이 아니면, 그런 짓은 잘 할 수 없다.
잠시 후에 나는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몇 걔 피웠다. 나는 몸이 꽤 달아올랐다. 그건 인정해야 돼. 그런데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지갑을 꺼내서, 지난 여름에 어떤 파티에서 만난, 프린스턴에 다닌다는 친구가 준 주소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걸 찾았다. 지갑 때문에 온통 이상한 색깔의 물이 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알아 볼 수는 있었다. 그건, 정확하게 말해서 갈보나 뭐 그런 건 아니었지만 가끔 그런 짓을 서슴없이 한다고 그 프린스턴 친구가 말해 준 어떤 여자의 주소였다. 그는 그 여자를 프린스턴의 댄스파티에 한번 데리고 간 적이 있었는데, 그 여자 때문에 하마터면 쫓겨날 뻔했다. 그 여자는 저속한 스트립쇼의 스트립 댄서니 뭐 그런 거였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전화기 쪽으로 가서 그 여자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 여자의 이름은 페이스 캐번디쉬였고 65번가와 브로드웨이의 스탠포드 암즈 호텔에 살고 있었다. 보나마나 너저분한 곳일 거야.
잠시 나는, 그 여자가 집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더니 마침내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그 여자가 내 나이니 그런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아주 저음으로 꾸몄다. 어쨌든 나는 꽤 목소리가 저음이거든.
‘여보세요,’ 하고 여자의 목소리가 말했다. 별로 다정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페이스 캐번디쉬 양입니까?’
‘누구세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누가 전화질을 하는 거예요?’
그 말에 나는 좀 겁을 먹었다. ‘저, 꽤 늦었는 줄은 압니다,’ 하고 나는, 저 아주 노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용서해 주기 바래요, 하지만 난 당신과 무척 연락하고 싶었습니다.’
‘누구세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글쎄, 당신은 나를 모를 거예요 하지만 난 에디 버드쎌의 친굽니다. 내가 언제 여기 오면 당신과 칵테일이나 한잔하라고 하더군요.’
‘누구요? 누구 친구라구요?’ 정말이지, 전화기 너머 그 여자는 정말 암호랑이 같았다. 제기랄, 그 여자는 나한테 거의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에드먼드 버드쎌이요. 에디 버드쎌,‘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그의 이름이 어드먼든지 에드워든지 기억나지 않았다. 어떤 멍청한 파티에서 한번 밖에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이름 가진 사람은 몰라요. 그리고 이 한밤중에 누가 깨우는 걸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
‘에디 버드쎌. 프린스턴 출신인데.’ 하고 내가 말했다.
그 여자가 머릿속에서 그 이름을 기억해 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버드쏄, 버드쎌이라.... 프린스턴 출신.... 프린스턴 대학 말예요?’
‘맞습니다.’ 하고 내가 말했다.
‘당신 프린스턴 출신이에요?’
‘뭐, 비슷하지요.’
‘오.... 에디는 어떻게 지내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근데, 지금은 누구한테 전화 걸기엔 좀 이상한 시간인데. 내 참!‘
‘그 친군 잘 지내요. 당신한테 안부 전해 달라고 하더군요.’
‘네, 고마워요. 그 사람한테도 내 안부 전해 줘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그는 굉장한 사람이에요. 지금 뭘 하고 있어요?’ 그 여자는 갑자기 친근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오, 있잖아요. 항상 그렇죠 뭐,’ 하고 내가 말했다. 그가 뭘 하는지 대체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이냐? 나는 그 친구를 거의 모르는데. 나는, 그가 아직 프린스턴에 다니는 지도 몰랐다. ‘이봐요,’ 하고 내가 말했다. ‘어디서 만나서 칵테일 한잔 안 하겠어요?’
‘도대체 지금 몇 신지 알고 하는 말이에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하여간 당신 이름이 뭐지요. 실례가 안된다면?’ 그 여자는 갑자기 영국식 발음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좀 어린 것 같은데.’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칭찬해 줘서 고마워요.’ 하고 내가 말했다 ― 더럽게 얌전한 어조로 말이다. ‘내 이름은 홀든 코울필드예요.’ 그 여자한테 가짜 이름을 댈 걸 그랬는데, 그런 생각을 못했다.
‘근데, 이봐요, 코플씨. 난 한밤중에 무슨 약속은 안하는데. 난 직장이 있어요.’
‘내일은 일요일인데요,’ 하고 나는 그 여자에게 말했다.
‘뭐, 글쎄요. 난 미용을 위해서 잠을 자야 되요. 무슨 말인지 알죠?’
‘난 우리가 같이 칵테일 한잔 정도는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별로 늦지 않았어요.’
‘이런. 꽤 귀엽게 나오시는군,’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어디서 전화하는 거예요? 지금 어딨어요?’
‘나요? 난 전화박스 안에 있어요.’
‘오,’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그리고는 한동안 잠자코 있었다. ‘언제 한번 당신과 만나고 싶은데, 코플씨. 꽤 매력있는 친구 같군요. 당신은 꽤 매력있는 사람 같애. 하지만 너무 늦었어요.’
‘당신 있는 데로 갈 수도 있어요.’
‘글쎄 별루, 아니 대단하군요. 내 말은, 당신이 여기 와서 칵테일 한잔 하는 것도 좋지만 내 룸 메이트가 지금 아파요. 그 친군 밤새 한잠도 눈을 못 붙이고 누워 있다가 이제 막 눈을 붙였어요. 정말이예요.’
‘오, 그거 유감이군요.’
‘어디 묵고 있어요? 아마, 내일은 칵테일 한잔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일은 내가 안되요,’ 하고 나는 말했다. ‘오늘 밤 밖에 시간이 없어요.’ 나도 참 멍청이다. 그런 말은 하지 말걸.‘
‘오, 그럼 참 유감이에요.’
‘에디한테 당신 안부 전해 줄께요.’
‘그래 줄래요? 뉴욬에서 즐겁게 보내길 바래요. 여긴 굉장한 곳이에요.’
‘알아요. 고맙습니다. 잘 자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정말이지, 난 일을 완전히 망쳐 놓았다. 적어도 칵테일이나 뭐나를 같이 하기로 약속을 했었야 하는데 말이다.
제 10장
아직 꽤 이른 시간이었다. 몇 신진 확실히 몰랐지만 과히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내가 싫어하는 게 하나 있는데, 그건 피곤하지도 않는데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트케이스들을 열어서 깨끗한 셔츠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욕실에 들어가서 샤워를 한 다음, 셔츠를 갈아입었다. 내가 뭘 하려고 했냐 하면, 나는 아래층에 내려가서 라벤더 룸이 대체 어떤 덴가 알아보자고 생각했다. 그 호텔에는 라벤더 룸이라는 나이트 클럽이 있었다.
하지만 셔츠를 갈아입는 동안, 제기랄, 하마터면 피비한테 전화를 할 뻔했다. 나는 그 애한테 전화를 걸어서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쎈스니 뭐니가 있는 누군가한테 말이다. 하지만 나한텐 그 애하고 전화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애는 아직 어린 꼬마 애이고, 전화기 옆에 있는 건 고사하고 깨어 있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전화를 받으면 나는 아마 전화를 끊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잘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분들은 난 줄 알 테니까. 엄마는 언제나 나라는 걸 안다. 엄마는 감응력이 있는 분이다. 하지만 피비라면 잠시 허튼 수작을 늘어놓아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 애를 봤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 애처럼 예쁘고 똑똑한 꼬마는 본 적이 없을 거야. 그 애는 정말 똑똑하다. 내 말은, 걔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후로 내내 A만 받았다는 말이다. 사실, 우리 집에서 멍청한 놈은 나 하나밖에 없다. 내 형 D.B.는 작가니 뭐니이고, 전에 얘기했던 죽은 내 동생 앨리는 놀라운 애였다. 나만이 정말 멍청한 놈이다. 하지만 피비를 봤어야 하는데. 그 애는 저 앨리하고 약간 비슷하게 빨간 머리를 하고 있는데, 여름엔 아주 짧게 자른다. 여름엔, 머리를 귀 뒤에 착 붙이고 다닌다. 그 애의 귀는 조그마한 게 아주 예쁘게 생겼다. 하지만 겨울엔, 머리를 아주 길게 기른다. 엄마가 가끔 걔의 머리를 따 주기도 하는데, 안 따 줄 때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근사한 모양이야. 걔는 아직 열 살밖에 안 되었다. 걔는 나처럼 꽤 여위었는데 하지만 멋있게 여위었다. 롤러 스케이트 타기에 멋있게 여위었지. 걔가 5번가를 지나서 공원에 가는 걸 창문을 통해 본 적이 있는데, 그게 걔의 진짜 모습이야. 롤러 스케이트에 맞게 여윈 모습 말야. 걔를 좋아하게 될 거야. 내 말은, 누가 피비한테 무슨 얘기를 하면 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를 정확하게 안다는 거야. 내 말은, 걔는 어디에도 데리고 갈 수 있다는 말이야. 예를 들어, 그 애한테 너저분한 영화를 보여 주면, 걘 그게 너저분한 영환지 알아. 걔한테 꽤 괜찮은 영화를 보여 주면, 갠 그게 꽤 괜찮은 영환지 알아 본다구. D.B.와 내가, 레무가 나오는 저 프랑스 영화 「빵장수의 마누라」를 보여 준 적이 있었어. 피비는 그 때 깜빡 죽었지. 하지만 그 애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로버트 도나트가 나오는 「39개의 계단」이야. 그 영화를 보러 나하고 열 번은 같이 다녔으니까 갠 그 놈의 줄거리를 다 외우고 있어. 예를 들어, 저 도나트가 경찰이니 뭐니에 쫓겨서 스코틀랜드의 농가에 나타날 때, 저 스코틀랜드 농부가 ‘청어 먹을 줄 알아요?’ 하고 말하거든. 그 때 피비도 같이, 똑같은 대사를 큰 소리로 떠들어댄단 말야. 걔는 대사 전체를 몽땅 외우고 있거든. 그리고 영화속에서 저 교수가, 사실은 독일 스파이지만, 중간관절을 숨기고 새끼 손가락을 치켜서 로버트 도나트에게 보여 줄 때, 피비는 그 보다 먼저 똑같은 시늉을 한다. 걔는 깜깜한 데서 바로 내 얼굴 앞에다 자기의 새끼 손가락을 들이대는 거야. 정말 괜찮은 애야. 그 애를 좋아하게 될 거야. 한 가지 문제는, 가끔씩 좀 감정이 넘친다는 것이다. 어린애치고는 정말 감정이 풍부하거든. 걔는 정말 그렇다니까. 걔가 또 뭘 하냐 하면, 걔는 언제나 책을 쓰고 있어. 근데, 그 책을 완성한 적은 없어. 무슨 책이냐 하면 헤이즐 웨더필드라는 어떤 꼬마애에 대한 이야기야 ― 뭐 피비는 ‘헤즐’이라고 쓰지만. 헤이즐 웨더필드란 여자 애는 꼬마 탐정이지. 걔는 고아인 것 같은데, 항상 아버지가 나타난다. 그 애의 아버지는 언제나 ‘스물 다섯 살 정도 나이에 키가 크고 멋있는 신사’지. 정말 웃긴다니까. 피비 계집애 말이다. 하늘에 맹세코, 걔를 좋아하게 될 거야. 걔는 아주 조그만 어린애였을 때도 똑똑했다. 피비가 아주 어린애였을 때, 앨리와 나는, 특히 일요일에, 걔를 데리고 공원에 가곤 했다. 앨리는 돛배를 가지고 있었는데, 일요일에는 그걸 가지고 빈둥거리며 놀기를 좋아해서 우리는 피비를 같이 데리고 다녔다. 피비는 하얀 장갑을 끼고, 마치 무슨 귀부인이니 뭐니처럼 우리 사이로 똑바로 걸어 오곤 하였다. 그리고 앨리와 내가 일반적인 일을 가지고 얘기를 하고 있을 땐, 피비 계집애는 듣고만 있었다. 가끔 그 애가 옆에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곤 하는데, 그건 걔가 너무 어린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걔는 자기의 존재를 알리기도 한다. 줄곧 얘기에 끼어드는 것이다. 앨리나 나를 밀거나 그러지 않으면 ‘누가? 누가 그런 말을 했어? 바비야 아니면 그 아줌마야?’ 하고 참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누가 그랬다고 말해 주면 걔는 ‘아,’ 하고는 다시 귀를 기울이거나 그러는 것이다. 앨리도 걔한텐 졌다. 내 말은, 앨리도 걔를 좋아했다는 말이야. 그 애는 이제 열 살이고 그 전처럼 그렇게 어리지는 안다.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을 깜빡 죽게 만든다 ― 어쨋든 쎈스가 있는 사람들은 그렇다는 말이다.
어쨌든, 걔는 언제든지 전화로 얘기하고 싶은 그런 애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이 전화를 받을까 봐 그게 걱정이었다. 그러면 내가 뉴욬에 있다는 것과 내가 펜시에서 쫓겨나니 뭐니 했다는 걸 아시게 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셔츠를 다 입고 준비를 한 다음에, 아래가 궁금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갔다.
로비에는, 갈봇집 주인같이 생긴 놈들과 창녀같이 생긴 금발 머리 여자 몇몇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라벤더 룸에서 밴드가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사람들이 북적이지는 않았는데 놈들은 뒤쪽에 있는 지저분한 테이블을 나에게 주었다. 헤드 웨이터 낯짝에다 일 딸라 짜리 한 장을 흔들걸 그랬다. 정말이지, 뉴욬에선 돈이 정말 효과가 있다니까 ― 이건 농담이 아냐.
밴드는 너저분했다. 버디 싱거 밴드였다. 겉만 번지르르했다. 멋지게 번지르르한 게 아니고 촌스럽게 번지르르했다. 그리고 거기엔 내 나이 정도 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사실은, 하나도 없었다. 대걔 나이가 들고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옷을 입은 사람들로, 하나씩 짝을 데리고 있었다. 내 바로 옆의 테이블만 빼놓고는. 내 바로 옆 테이블에는 서른 정도 되는 여자 셋이 앉아 있었다. 세 명 모두 하나같이 못생겼는데, 뉴욬에 사는 사람이라면 쓰지 않는 그런 모자를 전부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 한 명은 금발인데 썩 나쁘지 않았다. 그 금발 여자는 좀 귀엽기도 해서 내가 추파를 좀 던지기 시작하는데 웨이터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나는 스카치와 소다를 섞지 말고 가져오라고 말했다 ― 나는 재빨리 주문을 하였는데, 그건 좀 더듬거리면 스물 한 살 아래인 줄 알아차리고 독한 술은 팔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좀 있었다. ‘실례지만, ’ 하고 하고 그가 말했다. ‘나이를 증명할 수 있는 게 뭐 있습니까? 운전 면허증 혹시?’
나는, 그가 나를 무지하게 모욕했다는 듯이 그를 매우 날카롭게 째려보고 물었다, ‘내가 스물 한 살이 안된 걸로 보이시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나름대로 ―’
‘알았어요, 알았어요,’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이제 다 틀렸다고 생각했다. ‘콜라 갖다 줘요.’ 그가 가려고 하자 나는 그를 다시 불렀다. ‘거기다 럼이니 뭐니를 좀 넣어 줄 수 없어요?’ 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나는 매우 점잖은 태도로 물었다. ‘이렇게 촌스러운 데선 그냥 냉랭하게 맨 정신으로 있지 못해서 그래요. 거기다 럼이니 뭐니를 좀 넣어 줄 수 없어요?’
‘정말 죄송하지만...’ 하고 말하고는 그는 그냥 가 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만일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다 걸리면 그들은 일자리를 잃는 것이다. 나는, 제기랄, 미성년자인 것이다.
나는 옆 테이블에 있는 마귀 할멈 같은 세 여자에게 다시 눈짓을 보내기 시작했다. 사실은, 금발 머리말이다. 다른 두 여자는, 정확하게 말하면 굶주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그 여자한테만 보내지는 않았다. 나는 그냥 세 여자 모두한테 아주 냉정한 눈길을 건냈다. 하지만 그들이 뭘 했냐 하면 말야, 내가 그런 짓을 하자, 세명이 모두 천치처럼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마, 내가 그런 짓을 하기엔 너무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정말 짜증나게 하는 일이다 ― 누가 보면, 내가 뭐 자기들하고 결혼이니 뭐니를 하고 싶은 걸로 생각하는 줄 알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킥킥거리는 걸 보니까, 그런 짓을 한 게 후회됐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춤을 추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가끔가다 춤추는 걸 좋아한다. 정말 일생에 한번쯤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그들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말했다, ‘누가 나하고 춤추지 않을래요?’ 나는 무례하니 뭐니하게 말하지 않았다. 사실, 아주 점잖게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제기랄, 그들은 그것도 역시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아까보다 더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농담이 아냐, 정말 천치들이라니까. ‘자.’ 하고 하고 나는 말했다. ‘한번에 한 사람씩 춤출께요. 좋아요? 어때요? 어서요!’ 나는 정말로 춤을 추고 싶었다.
마침내, 금발 머리가 나하고 춤을 추자고 일어섰다. 왜냐 하면 말야, 내가 정말은 자기한테 말을 거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말야. 그래서 우리는 춤을 추러 플로어로 걸어나갔다. 우리가 나가는 걸 보고, 다른 두 천치들은 거의 히스테리를 일으켰다. 그 여자들하고 상대했다간 난 정말 애 좀 먹었을 거야.
하지만 그건 쓸데없는 짓은 아니었다. 금발 머리는 꽤 춤을 잘 추었다. 그 여자는, 내가 같이 춤 춰 본 여자들중에 제일 잘 추는 급에 속했다. 이건 농담이 아닌데, 멍청한 계집애들 중에선 춤출 땐 정말 끝내주는 애들이 있다니까. 여기 정말로 스마트한 계집애가 있다고 하자, 그럼 걔네들은 플로어에서 남자를 리드하는 시늉이나 좀 하지 않으면 춤 솜씨가 정말 형편없거든. 그래서 걔네들하고는, 기껏해야 테이블에 앉아서 그저 술에 취하는 것밖엔 할 일이 없다.
‘정말 춤출 줄 아는데요,’ 하고 내가 금발 머리한테 말했다. ‘프로 같은데요. 정말이예요. 한번 프로하구 춤춘 적이 있었는데, 당신은 그 여자보다 두 배는 더 잘 추는데. 마르코와 미란다라구 들어 본 적 있어요?’
‘뭐라구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그 여자는 내 말을 듣고 있지도 않았다. 그 여자는 줄곧 주위를 돌아다 보고 있었다.
‘마르코와 미란다라구 들어 본 적 있냐구요?’
‘몰라요. 네. 몰라요.’
‘뭐, 댄서들이죠, 그 여잔 댄서예요. 하지만 뭐 그렇게 열광적으로 추진 않아요. 무슨 춤이든 다 추지요 근데 그렇게 광적으로 추는 건 아네요. 어떤 여자가 진짜 춤을 잘 추는 건지 알아요?’
‘뭐라 그랬어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그 여자는 또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 여자의 마음은 그 안을 헤매고 있었다.
‘어떤 여자가 진짜 춤을 잘 추는 건지 아냐구요?’
‘글쎄-’
‘내 손이 당신 등에 가 있다고 해요. 그 때, 내 손 아래로 아무 것두 없다고 생각한다면 ― 엉덩이두 없구, 다리두 없구, 발두 없구 아무 것두 없다구 생각하면, 그 때 그 여자는 정말로 춤을 잘 추는 거에요.’
하지만 그 여자는 듣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잠시 그 여자를 무시했다. 우리는 그냥 춤만 췄다. 버디 싱거와 그의 너저분한 밴드는 ‘옛날이여 다시 한번’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그들조차 그 노래를 완전히 망쳐놓지는 못했다. 그건 굉장한 노래거든. 나는 춤추는 동안, 무슨 기교같은 건 부리지 않았다 ― 나는 플로어에서 온갖 기교를 늘어 놓는 그런 놈들을 싫어한다 ― 하지만 나는 그 여자를 충분히 리드해 나갔고 그 여자도 거기 응했다. 웃기는 건, 그 여자도 춤추는 걸 즐기고 있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그 여자가 저 아주 멍청한 말을 불쑥 입밖에 내는 것이다. ‘나하구 친구들하고 어제 밤에 피터 로르를 봤어요,’ 하고 그 여자는 말했다. ‘영화 배우 말에요. 직접이요. 신문 사고 있는 걸요. 아주 귀엽던데요.’
‘운이 좋네요,’ 하고 내가 말했다. ‘정말 운이 좋은 거에요. 그거 알아요?’ 그 여자는 정말 천치였다. 하지만 춤은 기막히게 췄다. 나는 정말 그 여자의 멍청한 이마에다 입을 맞추고 싶었다 ― 알지 ― 거기 말야. 내가 입을 맞추자 그 여자는 바락 화를 냈다.
‘이봐요! 뭘 하려는 거예요?’
‘아무 것두 아녜요. 그냥 그런 거예요. 당신은 정말 춤을 잘 춰요,’ 하고 내가 말했다. ‘나한테 여동생이 있는데, 이제 겨우 4학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당신은 걔만큼 잘 춰요, 걔는 세상 누구보다도 춤을 잘 추지요.’
‘말 조심해요, 괜찮다면.’
정말이지, 대단한 귀부인 아냐? 제기랄, 여왕이라니까.
‘어디서들 살아요?’ 하고 나는 그 여자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그 여자는 저 피터 로르가 나타나지 않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정신이 팔린 것 같았다.
‘어디서들 살아요?’ 하고 나는 그 여자에게 다시 물었다.
‘뭐라구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어디서들 살아요? 대답하기 싫으면 말아요. 귀찮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시애틀, 워싱턴,’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그 여자는 나한테 커다란 은혜나 베풀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신은 참 애기를 잘 하네요,’ 하고 나는 그 여자에게 말했다. ‘그거 알아요?’
‘뭐라구요?’
나는 그만 집어치우고 말았다. 어쨋든 그 여자는 그런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빠른 음악이 나오면 좀 빠르게 추지 않을래요? 촌스럽게 추거나 뛰거나 그런 거 말구 ― 그냥 멋지구 쉽게 추는 거 말예요. 빠른 음악이 나오면 전부들 자리에 가 앉을 거예요, 저 노인네들 하구 뚱뚱한 사람들만 뺴곤, 그러면 우리가 넓게 쓸 수 있을 거니까. 좋아요?’
‘나는 그런 거 싫어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이봐요 ― 그런데 몇 살이에요?’
왜 그런지 그런 질문엔 짜증이 났다. ‘오, 정말. 분위기 좀 망치지 말아요,’ 하고 내가 말했다. ‘난 열 두 살이에요, 제기랄. 내 나이에 비해 몸이 좀 크죠.’
‘이봐요. 내가 말했죠? 난 그런 투로 말하는 거 좋아하지 않는다구,’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계속 그런 식으로 말하려면, 난 친구들 자리로 갈 거예요, 알죠?’
나는 미친 사람처럼 사과했다. 왜냐하면 밴드가 빠른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나하고 빠른 춤을 추기 시작했다 ― 하지만 촌스럽지 않고, 멋있고 쉽게 추었다. 그 여자는 정말 춤을 잘 추었다. 그냥 그 여자를 붙잡고만 있으면 되었다. 그리고 그 여자가 회전할 때는, 조그맣고 예쁜 엉덩이가 씰룩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난 그 여자한테 완전히 녹았다. 정말이야. 우리가 자리에 앉을 때쯤 되서 나는 그 여자에게 반쯤은 빠져 있었다. 여자들이란 그렇다. 여자들이 무슨 예쁜 짓을 하면, 별로 볼 게 없는 여자나 좀 멍청한 여자라도 반쯤은 빠진다. 그렇게 되면 거의 정신을 못 차리게 되는 것이다. 여자들이란. 젠장. 그들은 남자를 얼빠지게 할 수 있다. 정말 그렇다니까.
그들은 나보고 자리에 앉으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 아마 너무 무식해서 그랬겠지만 ― 하지만 나는 그들 자리에 앉았다. 내가 같이 춤춘 여자는 이름이 버니스 뭐 ― 크랩슨지 크렙슨지 했다. 못생긴 두 여자는 마티하고 래번이었다. 나는 그냥 아무렇게나, 이름이 짐 스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들을 좀 지적인 대화로 유도하려고 했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려면 손목을 비틀어야 할거다. 셋중에 누가 제일 멍청한 지 가려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무슨 영화배우 같은 놈들이라도 한 떼거리가 금방 들어오기나 할 것처럼, 세 명 다 하나같이 그 놈의 홀 안을 계속해서 두리번거렸다. 그들은 아마도, 자기들이 뉴욬에 왔을 때, 스톸 클럽이니 엘 모로코니 그런 데가 아니고 라벤더 룸에는 항상 영화배우들이 죽치고 있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쨋든, 그들이 시애틀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뭐 그런 걸 알아내는데 삼십 분은 걸렸다. 그들은 모두 같은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들한테 자기 일이 마음에 드냐고 물어 보았다. 하지만 그런 멍청이들한테서 어떤 지적인 대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 나는 못생긴 두 여자, 마티와 래번말이다, 그들이 자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그러냐고 물어 보니까 그들은 대단한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둘다, 자기들이 닮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게 분명했는데, 그렇다고 그들이 잘못이라고 탓할 수도 없었다. 어쨋든 그건 아주 재미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들 모두 ― 세 명 다 말이다 ― 하고 한번에 하나씩 춤을 다 추었다. 못생긴 한 여자, 레번 말야, 그 여자는 과히 못 추지 않았다. 그런데, 저 마티 년은 마치 자유의 여신상을 바닥에 끌고 다니는 것 같았다. 내가 그 여자를 끌고 다니면서 반쯤이라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게리 쿠퍼, 영화배우 말야, 그를 금방 플로어 저쪽에서 봤다고 말해 주었다.
‘어디요?’ 하고 그 여자가 나에게 물었다 ― 더럽게 흥분해서 말야. ‘어디에요?’
‘오, 금방 놓쳤어요. 금방 나갔는데. 내가 말할 때 보지 않구서.’
그 여자는 사실 이제 춤을 딱 멈추고, 그를 찾기 위해서 이리저리 사람들의 머리 너머로 둘러보기 시작했다. ‘오, 제기랄!’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내 거짓말 때문에 그 여자는 거의 상심할 지경이었다 ― 정말 그랬어. 난 그 여자를 놀린 게 정말 미안했다. 어떤 사람들은 놀리면 못쓴다, 놀려 줄 만한 사람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건 정말 재미있는 일이었다. 우리가 다시 테이블로 돌아오자, 마티 년은 다른 두 여자들에게 게리 쿠퍼가 방금 나갔다고 말했다. 정말이지, 레번과 버니스 년은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거의 자살이라도 할 지경이었다.
그들은 완전히 흥분해서 마티에게 정말 그를 봤느니 뭐니 하고 물었다. 마티 년은 그저 그를 흘깃 보았다고 말했다. 거기엔 완전히 졌다.
바가 끝날 시간이 다 되어서, 나는 문 닫기 전에 그들에게 두 잔씩을 사 주고 나는 콜라 두 잔을 시켰다. 망할 놈의 테이블은 유리잔들로 너저분했다. 내가 콜라만 마신다고 저 못생긴 레번은 나를 계속 놀렸다. 그 년은 정말 대단한 유머 감각을 갖고 있었다. 그 년과 마티 년은 탐 콜린스를 마셨다 ―12월 중순인데 말야, 제기랄. 그들은 그 이상은 모르니까. 금발 머리는, 버니스 년 말야, 버번과 물을 마셨다. 그 년도 게걸스럽게 마셔 대기는 마찬가지였다. 셋 다 영화배우들을 찾느라고 내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들은 거의 말도 하지 않았다 ― 자기들끼리도 말야. 마티 년은 다른 둘보다 말이 더 많았다. 그 년은, 화장실을 ‘꼬마 계집애들의 방’이라 부르는 식의, 저 촌스럽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얘기들을 계속 늘어놓았는데, 버디 싱거의 저 늙은 클라리넷 연주가가 일어나서 몇 차례 별 볼일 없는 소절을 연주할 땐 굉장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 년은 그의 클라리넷을 ‘감초 막대기’라고 불렀다. 정말 촌스럽지 않아? 또 다른 못생긴 년은, 레번 말이다, 자기가 꽤 재치가 있는 여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우리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오늘밤엔 뭘 하고 계시는지 물어 보라고 계속 조르는 것이다. 그 년은 우리 아버지가 데이트를 하고 있는지 아닌지 하고 계속 물었다. 그런 걸 네 번은 물어 보았을 것이다. 정말 재치 있는 여자 아냐? 금발의 저 버니스 년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뭘 물어 볼 때마다, ‘뭐라구요?’ 하고 묻는 것이다. 그런 것도 몇 번하고 나면 짜증난다니까.
갑자기, 그들은 마실 것을 다 마시자 모두 일어나더니, 자러 가야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래디오 씨티 뮤직 홀에서 첫 번째 쇼를 보려면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을 잠시 거기에 붙잡아 두려고 했지만 그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잘 가라니 뭐니 하고 작별을 했다. 나는 만일 씨애틀에 가게 되면 그들을 찾아보겠다고 말했지만, 내가 그럴 지는 나도 의심이 든다. 그들을 찾아본다는 것말이다.
담배니 뭐니 해서 계산은 거의 십삼 딸라 정도 나왔다. 내가 오기 전에 자기들이 마신 건 자기들이 내겠다고 적어도 말은 해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 물론 난 그들이 그런 말을 했어도 내가 계산했을 것이지만, 그들은 적어도 그렇게 말은 해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별로 걔의치 않았다. 그들은 너무나 무식했고, 또 저 초라한 장식 모자니 뭐니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래디오 씨티 뮤직 홀에서 첫 번째 쇼를 보러 일찍 일어난다는 얘기가 내 기분을 우울하게 했다. 만일 누가 말이다, 예를 들어, 괴상하게 생긴 모자를 쓴 어떤 계집애가 워싱턴의 씨애틀에서, 제기랄, 뉴욬까지 내내 달려 온 목적이 저 래디오 씨티 뮤직 홀의 빌어먹을 첫 번째 쇼를 보러 아침 일찍 일어나기 위한 것뿐이라면, 그건 참을 수 없을 만큼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일이다. 만일 그들이 나한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세 명 모두에게 백 잔씩 사 주었을 것이다.
그들이 나가고 나서 얼마 안 있어, 나는 라벤더 홀을 나왔다. 어쪳든 문을 닫고 있었고 밴드는 벌써 떠나고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 곳은, 같이 춤출 사람이 없거나, 웨이터가 콜라가 아니라 진짜 술을 마시게 하지 않는다면 죽치고 있기에는 너무 끔찍한 곳이다. 이 세상에는, 적어도 술을 마시고 취하지 않는다면,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나이트 클럽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아니면, 정말 굉장한 어떤 계집애와 같이 있지 않다면 말야.
제 11장
갑자기, 로비로 나오는 중에, 다시 제인 계집애 생각이 났다. 걔 생각이 나자,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로비에 있는 게우고 싶어지는 의자에 앉아서 그 계집애와 스트래드레이터가 저 에드 뱅키 새끼의 차 안에 앉아 있는 생각을 하였다. 스트래드레이터 놈이 그 계집애한테 주지는 않았을 거라고 확신이 가긴 했지만 ― 나는 제인 계집애를 잘 알고 있으니까 ― 그래도 그 계집애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정말 그랬던 것이다. 내 말은, 걔가 체스 외에도 온갖 운동을 좋아해서 내가 걔를 알고 지낸 뒤에도 우리는 여름 내내 오전에는 테니스를 하고 오후에는 골프를 치고 지냈다는 말이다. 나는 정말로 그 계집애를 가까이 알았었다. 내 말은, 뭐 육체적이니 뭐니 하는 게 아니라 ― 그건 아니었다 ― 우리가 항상 서로 만났다는 것이다. 계집애를 알기 위해서 반드시 성적인 관계를 가질 필요는 없다.
내가 그 계집애를 어떻게 알았냐 하면, 걔는 우리 집 잔디에 와서 쉴 때 저 도베르만 핀셔를 데리고 오곤 했는데, 우리 엄마는 그 개를 무척 싫어했다. 엄마는 제인의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서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우리 엄마는 그런 일로 아주 대판 소동을 벌일 수 있는 그런 분이거든. 그래서 어떻게 됐냐 하면, 이삼일 뒤에 클럽의 수영장 옆에서 제인이 엎드려 있는 걸 보고 내가 인사를 했다. 걔가 우리 옆집에 사는 것은 알았지만 전에 한번도 얘기니 뭐니를 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그 날 인사를 하자 그 계집애는 얼굴을 있는 대로 찌푸리더군. 나는 걔한테, 개를 어디서 쉬게 하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듣게 하는데 얼마나 시간을 들였는지 모른다. 개가 우리 집 거실에 들어와서 쉰다 해도 난 전혀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쨋든, 그 후로는 제인과 나는 친구니 뭐니가 되었다. 나는 그날 오후에 그 계집애와 골프를 쳤다. 내가 기억하기론, 걔가 여덟 걔를 못 쳤다. 여덟 개나 말야. 나는, 걔가 공을 칠 때 어떻게 하는지 조금 가르쳐 주는데도 엄청나게 힘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걔의 골프 실력을 엄청나게 높여 주었다. 나는 골프엔 꽤 일가견이 있거든. 내가 얼마나 마음을 빨리 바꾸는지 애기해 주면, 아마 믿지 않을 걸. 나는 일생에 거의 한번인가 단편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꿨다. 나는, 나만큼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내가 출연하는 영화를 보러 오게 한다면 그건 사기라고 생각한 거다.
걔는 재미있는 애였다. 제인 계집애 말야. 엄밀하게 말해서 걔는 예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난 그 계집애한테 반했다. 걔는 좀 말이 많았다. 내 말은, 걔가 얘기하다가 뭔가에 흥분하면, 입이 마구 씰룩거린다는 것이다. 입술이니 뭐니가 다 말야. 거기엔 졌지. 그리고 걔는 입을 내내 다물고 있는 법이 없었어, 입말이야. 입이 항상 조금은 열려 있었어, 특히 골프 공을 칠 때하구 책을 읽고 있을 땐 그랬다. 걔는 항상 책을 읽고 있었는데, 아주 좋은 책을 읽었다. 걔는 시니 뭐니를 많이 읽었다. 걔는, 우리 식구말구 내가 앨리의 야구 글러브를 보여 준 유일한 애였다, 거기에 쓴 시들 하구 같이 말이다. 걔는 앨리를 만나거나 뭐나 한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걔가 메인에서 여름을 보낸 건 그 때가 처음이었으니까 ― 그 전에는 케이프 코드로 갔었다 ― 하지만 내가 앨리 얘기는 무지 많이 해 주었다. 걔는 그런 따위의 일에 관심을 가지거든.
엄마는 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 말은, 제인이나 걔네 엄마가 우리 엄마한테 인사하지 않으면 엄마는 자기를 무시하는 걸로 생각했다는 말이다. 제인이 자기 엄마하고 저 라쌀 컨버터블을 타고 시장에 자주 다녔기 때문에 엄마는 그들을 읍내에서 많이 보았거든. 엄마는 제인이 예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제인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나는 제인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렇다는 것이다.
어느 날 오후가 생각난다. 그건 제인 계집애 하구 내가 생전 처음으로 키쓰까지 할 뻔한 때였다. 토요일이었는데, 밖에는 비가 무지하게 많이 오고 있었다. 나는 제인 네 집에 가서 같이 현관에 나와 있었다 ― 걔네 집엔 철망이 달린 커다란 현관이 있었다. 우리는 체스를 하고 있었다. 나는, 걔가 왕들을 뒷줄에서 앞으로 내 놓으려고 하지 않아서 가끔 놀려 주곤 했었다. 하지만 뭐 심하게 놀리진 않았다. 제인은 심하게 놀려 주고 싶은 애는 아니었다. 기회가 생겨서 계집애를 놀려 줄 수 있을 때 제일 놀려 주고 싶지만 그건 웃기는 일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집애들은 별로 놀려 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그런 애들이다. 가끔, 계집애들은 놀림 당하는 걸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 사실 그렇다는 걸 나는 안다 ― 꽤 오래 사귄 상태에서 한번도 놀려 본 적이 없다면 그런 걸 시작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어쨋든, 우리가 거의 키쓰까지 할 뻔한 저 오후 얘기를 하자. 비가 무지하게 내리고 있고 우리가 현관에 나와 있는데, 갑자기 걔네 엄마하고 결혼한 저 주정뱅이가 현관에 나오더니 집에 담배 없냐고 제인한테 묻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을 잘 알거나 하지는 않지만, 자기가 뭐 필요한 게 없으면 별로 얘기를 하지 않는 그런 사람같이 생겼었다. 그는 성격이 너저분했거든. 어쨋든, 제인은 그가 담배가 어디 있냐고 묻는데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작자가 다시 물었는데 제인은 여전히 대꾸하지 않았다. 걔는 체스 판에서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결국 그 작자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내가,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걔는 나한테도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걔는 다음에 어떤 말을 움직일까를 생각하느라고 몰두한 체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체스 판에 눈물이 떨어졌다. 빨간 사각형 안에 ― 정말이지, 지금도 그게 눈에 선하다. 걔는 다만 체스 판을 손가락으로 문질러서 닦았다. 왜 그런 지 모르지만 말할 수 없이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뭘 했냐 하면, 난 제인 쪽으로 건너가서, 제인을 흔들의자에서 옆으로 조금 옮겨 앉게 한 다음 내가 그 옆에 앉았다. 사실 난 거의 무릎에 앉은 거나 다름이 없었다. 이윽고 걔는 정말로 울기 시작했는데, 내가 다음에 기억나는 것은, 내가 걔의 얼굴에 온통 키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어디나 ― 눈, 코, 이마, 눈썹이니 뭐니 그리고 귀에도 ― 입이니 뭐니만 빼곤 얼굴 전체에 말이다. 그 계집에는 내가 입에다 키쓰하는 건 허락하지 않았다. 어쨋든, 그 때가 우리가 키쓰까지 제일 가까이 갔던 때였다. 잠시 후에 걔는 일어나서 안으로 들어가더니 하얗고 빨간 무늬의 스웨터를 입고 나왔다, 난 그 모습에 완전히 반했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를 보러 갔다. 나는, 오는 길에, 커다히씨 ― 그게 주정뱅이의 이름이었다 ― 가 걔한테 무슨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한 적이 있냐고 물어 보았다. 제인은 아주 예쁘고 또 몸매도 굉장했기 때문에 저 커다히같은 놈이 무슨 짓을 할 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걔는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어떤 계집애들은 무슨 일이 있는지 절대 알아내지 못한다.
우리가 끌어안거나 희롱질을 많이 하지 않았다고 해서 걔를 무슨 얼음장같이 찬 계집애로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걔는 그런 계집애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나는 언제나 걔와 손을 잡고 다녔다. 생각해 보면 그런 건 별 건 아니지만, 걔는 손을 잡으면 정말 좋았다. 대부분 계집애들은, 손을 잡으면 아무런 느낌도 없거나 아니면, 남자를 지루하게 하거나 뭐할까 봐, 계속해서 손을 꼼지락거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인은 달랐다. 우리가 제기랄 무슨 영화나 뭘 보러간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는 곧바로 손을 잡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손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자세를 바꾼다거나 손을 가지고 무슨 수작을 하지도 않는다. 제인이라면, 손이 축축한지 아닌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느끼는 감정이란 행복하다는 것밖에 없었다. 정말 그랬다.
금방 또 한가지가 생각난다. 한번은, 영화관에서였는데, 내가 까무라칠 뻔한 일을 제인이 한 것이다. 뉴스 영환지 뭔지가 나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목에 손이 닿는 것을 느껴서 보니까 제인의 손이었다. 그런 짓은 재미있는 짓이기도 했다. 내 말은, 제인은 아직 젊거나 뭐 그랬는데, 대부분 여자들이 손을 누군가의 목에 대는 것을 보면 스물 다섯이나 서른 정도가 아니면, 대걔 자기 남편이나 애들한테 그런다는 것이다 ― 예를 들면, 난 누이동생 피비한테 가끔 그렇게 한다. 하지만 아직 젊거나 뭐 한 계집애가 그런다면, 정말 예쁘고 거의 녹아난다니까.
어쨋든, 나는 로비의 그 게울 것같은 의자에 앉아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인 계집애. 나는 제인이 저 에드 뱅키 새끼의 차에서 스트래드레이터와 데이트한 생각을 할 때마다, 거의 돌아버릴 것 같았다. 나는 제인이 그 놈에게 그 짓을 못하게 했을 건 알고 있었지만, 어쨋든,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난 그딴 얘기는 하고 싶지도 않다.
이제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 창녀같이 생긴 금발머리들도 어디로 가 버리고 없었다, 그 때 갑자기 나는 거기서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우울했던 것이다. 나는 피곤하거나 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 방으로 올라가서 오바를 입었다. 나는 또 저 변태 새끼들이 아직도 그런 짓을 하는지 창밖을 내다 보았는데, 불이니 뭐니가 전부 꺼져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서 택시를 잡아 타서 운전사한테 어니의 가게로 가자고 말했다. 어니의 가게는, 내 형 D.B.가 헐리웃에 나가서 창녀같은 글을 쓰기 전에 자주 다니던,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나이트 클럽이다. 그는 가끔 나를 데리고 가곤 했었다. 어니는 피아노를 치는 몸집이 거대한 뚱보 유색인종이다. 그 작자는 대단한 속물이어서 대단한 사람이나 유명인사나 뭐가 아니면 거의 말을 거는 법이 없다, 하지만 피아노는 제법 칠 줄 안다. 사실은, 너무 잘 쳐서 촌스러운 느낌이 든다. 내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어쨋든 그런 뜻이다. 나는 정말로 그 작자가 피아노치는 걸 듣기 좋아한다, 하지만 어떤 때는 그 작자의 빌어먹을 피아노를 엎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내 생각엔, 그 작자가 피아노를 칠 때, 나는 당신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면 당신과 상대하지 않겠어 하고 으스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인 것같다.
제 12장
내가 탄 택시는 정말 낡은 것이었는데, 누가 과자를 금방 토한 것같은 냄새가 났다. 나는 밤늦게 어디 갈 땐, 항상 그 놈의 토한 냄새가 나는 택시를 타게 된다. 더 나쁜 것은, 토요일 밤이었는데도 밖이 너무 조용하고 적막했다. 거리엔 거의 한 사람도 없었다. 가끔 남자와 여자가 서로 팔을 허리니 뭐니에 끼고 거리를 건너가거나, 한 떼거리의 건달 같은 놈들과 그들의 여자들이 하나도 우습지 않을 것같은 걸 보고 하이에나처럼 웃는 것이 보일 뿐이었다. 누군가 밤늦게 거리에서 웃을 때 뉴욬은 끔찍하다. 수마일이나 떨어져 있어도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외롭고 우울해지는 것이다. 나는, 집에 가서 피비와 잠시 허튼 소리나 나누었으면 하는 마음 뿐이었다. 하지만 결국, 어느 정도 가다가, 택시 운전사와 나는 대화를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호로비츠였다. 그는 먼저 탔던 운전사보다는 훨씬 좋은 사람이었다. 어쨋든, 나는 그가 오리들에 대해서 알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봐요, 호로비츠,’ 하고 내가 말했다. ‘쎈트랄 파크에 있는 호수를 지나간 적 있어요? 쏀트랄 파크 남쪽 아래 말예요?’
‘뭐라구요?’
‘호수 말예요. 작은 호수요, 거기 있는. 오리들이 있는 호수 있잖아요.’
‘그래요, 그게 어쨌는데?’
‘그럼, 거기서 헤엄치고 다니는 오리들 알아요?’ 봄이나 언제나 말예요? 혹시, 그 놈들이 겨울엔 어디로 가는지 알아요?‘
‘누가 어디로 간대요?’
‘오리들이요. 혹시, 알아요? 내 말은, 누군가 트럭이니 뭐니를 타고 와서 그 놈들을 데리고 간다든지, 아니면 자기들이 남쪽이니 어디로 날아 가냐 하는 가 말예요?’
호로비츠는 고개를 홱 돌리더니 나를 보았다. 그는 매우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도대체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소?’ 하고 그가 말했다. ‘도대체 내가 그따위 바보 같은 일을 어떻게 알아요?
‘뭐, 화내지 말아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는 화났거나 뭐 그런 것 같았다.
‘누가 화를 내요? 아무도 화내지 않았어요.’
그가 그런 일에 대해 그렇게 민감하게 나온다면, 나는 그와 얘기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가 얘기를 시작했다. 그가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고기는 아무 데로두 안 가요. 그저 거기 있지, 고기 말예요. 바로 그 놈의 호수에 말요.’
‘고기는 ― 다르지요. 고기는 달라요. 난 오리 얘길 하는 거예요.’ 하고 내가 말했다.
‘뭐가 다른데요? 다를 건 아무 것두 없어요,’ 하고 호로비츠가 말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그는 뭔가에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겨울이니 뭐니엔 오리보다는 고기한테 더 어려운 거요, 제기랄. 생각해 봐요, 체.’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내가 말했다. ‘좋아요. 그 놈들은 뭘하지요, 고기니 하는 것들 말예요, 호수가 전부 꽁꽁 얼어붙어서 사람들이 그 위에서 스케이트니 뭐니를 타면 말예요?’
호로비츠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요, 그 놈들이 뭘하다니?’ 그는 나한테 소리를 질러 댔다. ‘자기들 있는 데 그냥 있는 거지 뭐, 제기랄.’
‘얼음이 있는데 어떻게 해요? 얼음을 무시할 순 없어요.’
‘누가 그걸 무시한대요? 아무도 그걸 무시하는 사람은 없어요!’ 하고 호로비츠가 말했다. 그는 굉장히 흥분해 있어서, 나는 그가 가로등이나 뭐나에 차를 부딪칠까 봐 겁이 났다. ‘그 놈들은 바로 그 놈의 얼음 속에서 사는 거요. 그게 그들의 본성이니까, 제기랄. 그 놈들은 겨울 내내 바로 한 자리에서 꽁꽁 얼어붙어 있는 거요.’
‘그래요? 그럼 뭘 먹어요? 내 말은, 그 놈들이 꽁꽁 얼어붙어 있으면 먹이니 뭐니를 찾으러 헤엄쳐 다니지 못할 게 아니냐 말예요.’
‘그 놈들 몸이 있잖소, 체 ― 그게 형씨와 무슨 상관이 있단 거요? 그 놈들 몸이 영양이니 뭐니를 빨아들이는 거지, 무슨 해초니 얼음 속에 있는 찌꺼기 같은 걸 통해서 말야. 그 놈들은 구멍을 내내 열어 놓는다구. 그게 그들의 본성이니까, 제기랄. 무슨 말인지 이제 알아요?’ 그가 다시 고개를 홱 돌려서 나를 보았다.
‘오,’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얘기를 중단했다. 나는 그가 그 놈의 택시를 어디다 부딪칠까 봐 겁이 났다. 게다가, 그는 정말 성마른 사람이어서 그하고는 무슨 얘기를 나누는 게 즐겁지 않았던 것이다. ‘어디 차를 세우고 뭘 한잔 마실래요?’ 하고 내가 말했다.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물어 보았다.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아주 재미있고 뭐 그랬단 말이다.
‘난 무슨 술 같은 걸 마실 시간이 없는데,’ 하고 그가 말했다. ‘그런데, 대체 나이가 몇이요? 왜 집에 가서 잠자지 않는 거요?’
‘피곤하지 않아서 그래요.’
내가 어니의 가게 앞에서 차를 내려서 차비를 낼 때, 호로비츠는 다시 그 고기 얘기를 꺼냈다. 그는 분명히 그 얘기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들어 봐요,’ 하고 그가 말했다. ‘만일 형씨가 고기라면, 어머니 자연이 형씨를 보살펴 주는 거요, 그렇지 않겠소? 그래요? 겨울이 되도 그 놈 고기들이 죽는다구 생각하지 않겠지, 이젠?’
‘알았어요, 근데 ―’
‘그렇다니까, 그 놈들은 죽지 않아,’ 하고 말하고는 호로비츠는 미치광이처럼 차를 몰고 가버렸다. 그는 아마 내가 만난 중에서 제일 성질 급한 사람이었다. 무슨 얘기든지 화를 낸다니까.
늦은 시간이었지만 어니의 가게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대부분 예비 학교와 대학에 다니는 애송이들이었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학교는 내가 다니는 학교보다 크리쓰마스 휴가를 일찍 시작한다. 오바를 보관할 수 없을 정도로 북적이고 있었다. 하지만, 어니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조용했다. 그가 피아노 앞에 앉으면, 제기랄 무슨 엄숙한 분위기를 잡아야 하는 것처럼 되어 있었다. 아무도 그처럼 잘 치지는 못한다는 듯이 말야. 내 옆에는 세 쌍 정도가 자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가 피아노 치는 것을 한번 보려고 서로 밀치고 발끝으로 서 있었다. 그는 피아노 앞에 커다란 거울을 갖다 놓아서, 자기한테 저 큰 스포트라이트가 비칠 때 모든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그가 연주하는 동안 커다랗고 늙은 얼굴은 보였지만 손가락은 볼 수 없었다. 대단하지 뭔가. 내가 들어갔을 때 그가 연주하는 노래의 제목이 뭔진 잘 몰랐지만, 그게 뭐든 간에 그는 정말 바람 날리고 있었다. 그는 둔해 보이는 손가락을 과장되게 움직이며 높은 음조를 치고 있었는데, 그 밖에도 다른 온갖 기교를 부리는 게 정말 보기 거북하였다. 하지만 그가 연주를 끝냈을 때 사람들을 봤어야 하는데. 그걸 봤더라면 게웠을 거야. 그들은 정신이 나가 있었다. 우습지도 않은 영화를 보면서 하이에나처럼 웃어대는 저 멍청이들하고 똑같았다니까. 나는 신에게 맹새코, 내가 만일 피아노 연주가거나 영화배우 아니면 뭐여서 저 모든 얼간이들이 나를 굉장하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혐오스러울 거야. 나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박수치는 것조차 미워할 거야. 사람들은 늘 얼간이 같은 일에 박수를 보낸다. 내가 피아노 연주가라면, 나는 벽장 속에서 피아노를 칠 것이다. 어쨋든, 그가 연주를 끝내서 모두들 머리가 터져라 하고 박수를 치자, 어니는 의자에 앉은 체로 자세를 돌리고는 저 겸손한 체하는 가식적인 태도로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였다. 마지 자기는 굉장한 피아니스트일 뿐 아니라 지극히 겸손한 사람이라는 듯이 말야. 그건 정말 되먹지 않은 짓이었다 ― 내 말은, 그 작자가 정말 더러운 속물이니 뭐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가 연주를 끝냈을 때 그가 좀 안되어 보이기도 했다. 그가 자기의 연주가 정말 훌륭한 건지 아니지를 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오로지 그의 잘못만은 아니다. 머리가 터져라고 박수를 치는 저 얼간이들한테도 잘못이 있는 것이다 ―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누구나 멍청이로 만들어 놓으니까. 어쨌든 그걸 보니 다시 우울해지고 메스꺼워져서 오바를 다시 찾아서 호텔로 돌아가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 일렀고 혼자 있고 싶지 않아서 그러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냄새나는 테이블을 하나 안내 받았는데, 벽에 딱 붙어 있고 바로 앞에는 기둥이 있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건, 만일 누가 지나가려는데 옆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 그런데 사람들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걔새끼들 ― 의자를 타고 넘어가야 하는 그런 테이블이다. 나는 다이커리 얼은 것을 먼저 시킨 다음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카치와 소다를 시켰다. 어니의 가게에선, 여섯 살 짜리라도 술을 먹을 수 있다, 거긴 너무 어둡거든, 그리고 누가 나이 같은 건 상관하지도 않는다. 거기선 마약을 먹을 수도 있어, 아무도 상관하지 않으니까.
사방에는 애송이들밖에 없었다. 정말이라니까. 내 왼쪽에 있는 작은 테이블에는, 실제로는 내 윗자리지만, 우습게 생긴 사내놈과 우습게 생긴 계집애가 있었다. 그들은 내 나이 정도 아니면 나보다 조금 더 먹어 보였다. 웃기는 애들이었다. 조금 남은 술을 너무 빨리 먹어 없애지 않으려고 꽤나 조심하고 있었다. 나는 달리 할 일이 없어서 그들의 얘기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그 놈은 그 날 오후에 본 어떤 프로 축구 시합 얘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 놈은 시합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자질구레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 거짓말이 아니라니까. 그 놈은 내가 얘기를 들어 본 중에 제일 지루한 놈이었다. 그리고 그 계집애는 그딴 시합에는 관심도 없다는 게 뻔히 보였지만 자기가 그 놈보다 훨씬 더 우습게 생겼기 때문에, 아마 그런 애기를 듣는 체라도 해야 할 것이다. 정말 못생긴 계집애들은 운이 없는 것이다. 가끔은 못생긴 년들이 안됐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가끔 그런 애들을 차마 쳐다보지 못할 때가 있다, 특히 걔네들이 축구시합 얘기를 너저분하게 늘어 놓는 그런 얼간이 같은 놈하고 같이 있을 땐 그렇다. 그런데, 오른쪽에서 나누는 얘기는 더 심했다. 오른쪽에는, 회색 플란넬 양복에다 저 유치한 모양의 테더솔 조끼를 입은 전형적인 모범생같은 놈이 앉아 있었다. 아이비 리그 새끼들은 죄다 비슷하게 생겼다니까. 아버지는 내가 예일이나 프린스턴 같은 데 가기를 바라지만, 난 맹세코, 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다 해도 제기랄, 그런 아이비 리그 대학엔 절대 가지 않을 거야. 어쨋든, 저 모범생 같이 생긴 놈은 근사하게 생긴 계집애와 같이 있었다. 정말이지, 잘 생긴 계집애였다. 하지만 그들이 나누는 얘기를 들었어야 하는데. 먼저, 그들은 둘다 좀 취해 있었다. 그 놈이 뭘 하고 있었냐 하면, 테이블 아래로 계집애의 다리를 더듬으면서, 자기 기숙사에서 아스피린 한 병을 거의 다 먹고 자살하려고 했다는 어떤 놈 얘기를 늘어 놓고 있었다. 계집애는 그 놈한테 계속해서 이러더군, ‘어쩜 그럴 수가..... 하지마. 제발, 그러지 마. 여기선 안 돼.’ 다리를 더듬으면서 동시에 자살을 기도한 놈의 얘기를 하는 걸 상상해 봐! 그 놈들한텐 정말 졌다.
하지만 거기 혼자 앉아 있으려니까 정말 우스꽝스러운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웨이터를 불러서, 어니한테 한잔 하지 않겠냐고 물어보라고 부탁했다. 내가 D.B.의 동생이라는 것을 말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웨이터가 내 말을 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새끼들은 남의 말을 전해주는 법이 절대 없다.
갑자기, 어떤 여자가 나한테 와서 말했다, ‘홀든 코울필드!’ 그 여자의 이름은 릴리안 시몬즈였다. 내 형 D.B.는 한 동안 그 여자와 같이 다닌 적이 있었다. 그 여자는 입이 꽤 거칠었었다.
‘여어,’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려고 했지만 그런 데서는 일어나는 것도 어려웠다. 그 여자 옆에는, 마치 엉덩이를 부지깽이로 찔린 것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해군 장교가 서 있었다.
‘만나서 정말 반가워!’ 하고 릴리안 시몬즈가 말했다. 분명히 마음에도 없는 말이었다. ‘형은 어떻게 지내?’ 그 여자가 알고 싶은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잘 지내고 있어. 지금 할리웃에 가 있지.’
‘할리웃에! 정말 굉장한데! 거기서 뭘 하는데?’
‘잘 몰라. 글을 쓰는가 봐,’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그런 얘길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여자는 그게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 형이 할리웃에 있다는 것 말야. 거의 전부 다 그렇게 생각하지.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소설은 읽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야. 정말 그런 게 화나게 한다니까.
‘정말 대단해.’ 하고 릴리안이 말했다. 그리고는 나를 그 해군 친구한테 소걔했다. 그는 블럽 중령인지 뭔지였다. 그 친구는 누구하고 악수할 때, 손가락을 사십 개정도 부러뜨리지 않으면 계집애 같은 남자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제기랄, 내가 그런 걸 얼마나 싫어하는데. ‘혼자 있는 거야?’ 하고 릴리안은 나한테 물었다. 그 여자는 통로에 서서 길을 완전히 막고 있었다. 그 여자는 길을 막고 있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웨이터는 그 여자가 길을 비켜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여자는 그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웨이터가 그 여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해군 친구도, 자기가 데이트를 하고 있지만 그 여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그 여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떤 면에선, 그 여자에게 동정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같이 온 여자 없어?’ 하고 그 여자는 나에게 물었다. 나는 이제 서 있었지만 그 여자는 나한테 앉으라고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여자는 사람을 몇 시간씩 서 있게 하는 그런 타입이었다. ‘얘 잘 생기지 않았어?’ 하고 그 여자는 그 해군 친구한테 말했다. ‘홀든, 넌 점점 멋있어지는구나.’ 해군 친구는 그 여자한테, 이제 그만하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들이 길을 막고 있다고 그 여자에게 말했다. ‘홀든, 이리 와서 우리하고 같이 어울리자.’ 하고 릴리안이 말했다. ‘너 마실 걸 갖고 와.’
‘난 금방 나가려고 하는 중이었는데,’ 하고 내가 말했다. ‘누굴 만나야 하거든.’ 그 여자가 단지나한테 잘 보이려고 그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면 내가 D.B.한테 그 애길 할 거니까 말야.
‘그래, 요 꼬마야. 좋아. 형 만나면 내가 미워한다고 말해 줘.’
그리고 나서 그 여자는 가 버렸다. 그 해군 친구와 나는, 만나서 반갑다는 말을 주고 받았다. 그런 일엔 졌다니까. 나는 만나서 하나도 반갑지 않은 사람한테도 항상,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고 말한다. 하지만, 살아 있고 싶다면 그런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그 여자한테 누굴 만나야 한다고 말한 이상, 거기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거기 눌러 앉아서 어니가 그래도 좀 점잖은 곡을 연주하는 것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릴리안 시몬즈와 그 해군 친구하고 같이 앉아서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거기서 나왔다. 하지만 오바를 다시 찾을 때는 정말 화가 났다. 사람들은 항상 일을 망쳐 놓는다니까.
제 13장
나는 호텔까지 내내 걸어서 돌아왔다. 마흔 한 걔나 되는 블록을 말야. 내가 걷거나 뭐나 하는 걸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또 택시를 타고 내리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게 가끔 싫증이 나는 것처럼, 택시를 타는 것도 싫증이 날 때가 있다. 그러면 아무리 멀거나 높아도 걸어가야 한다. 내가 아주 어린애였을 때, 나는 우리 아파트 층까지 자주 걸어서 올라가곤 했다. 12층이나 되는 높이였다.
눈이 왔던가 하는 것도 모를 뻔했다. 보도에는 이제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워서 나는 주머니에서 빨간색 사냥 모자를 꺼내어 썼다 ― 나는 내 모습이 어떨까 하는 건 하나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나는 귀마걔까지 내려 덮었다. 손이 꽁꽁 얼어붙어서, 펜시에서 누가 내 장갑을 훔쳐갔는지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걸 알았다 해도 뭘 어쩌진 못했을 것이다. 나는 저 소심한 그런 친구들 중의 하나이다. 나는 그런 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다. 예를 들어, 펜시에서 내 장갑을 훔쳐간 놈을 알았다 해도, 나는 그 도둑놈의 방으로 내려가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좋아. 그 장갑을 돌려 주지 그래?.’ 그러면 장갑을 훔쳐 간 놈은 아주 태연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무슨 장갑?’ 그러면 내가 뭘 할 거냐 하면, 나는 그의 벽장 안에 들어가서 어디선가 장갑을 찾아낼 것이다. 예를 들어, 고무 덧신이나 뭐나에 숨겨 두었을 것이다. 나는 그걸 꺼내서 그 놈한테 보여 주면서 말할 것이다, ‘이게 아마 네 장갑인가?’ 그러면 그 도둑놈은 아마 저 태연한 표정을 꾸며서 말할 것이다, ‘전에 그런 장갑은 본 적이 없는데. 그게 네 꺼면 가져 가. 난 그런 건 필요없으니까.’ 그러면 난 거기에 한 오분 정도 버티고 서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놈의 장갑을 손이니 뭐니 안에 잡고 그 놈의 턱이니 뭐니를 갈겨야 할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 그 놈의 턱주가리를 부숴 놔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용기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제법 터프한 놈처럼 보이려고 애를 쓰면서 그냥 거기 서 있을 것이다. 나는 아마, 그 놈의 턱을 갈기지는 못하고, 그 놈의 성질을 돋구기 위해서 아주 통렬한 욕을 해 줄 것이다. 어쨋든, 내가 꽤 통렬한 욕을 해 주면, 놈은 아마도 일어서서 나한테 와서 말할 것이다. ‘야, 코울필드. 지금 나를 도둑놈이라고 부르는 거냐?’ 그러면 나는, ‘잘 봤어, 그러는 거야, 넌 더러운 도둑놈 새끼야!’ 이렇게 말하지는 못하고, 기껏해야, ‘내 말은, 내 장갑이 니 고무 덧신 속에 있다는 거야.’ 그러면 놈은 내가 자기를 때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야. 말을 돌리지 말고 말해 보자. 지금 나를 도둑놈이라고 부르는 거냐구?’ 그러면 나는, ‘누가 너를 도둑놈이라구 부른대냐? 내 말은 그저, 내 장갑이 니 고무 덧신 속에 있다는 거지.’ 하고 말할 것이다. 이런 식의 대화가 몇 시간씩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를 한방 때리지도 못하고 방을 나오고 말 것이다. 나는 아마 샤워장에 들어가서 몰래 담배를 피우면서 거울을 보며 터프한 표정이나 지을 것이다. 어쨋든, 내가 호텔로 돌아오면서 생각한 것은 그런 거였다. 소심하다는 것은 즐거운 일은 아니다. 아마 난 완전히 소심한 놈은 아닐지도 모른다. 잘 모르겠다. 나는 약간 소심하기도 하고 또 장갑을 잃어버려도 별로 걔의치 않는 그런 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문제가 뭐냐 하면, 뭘 잃어버려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 내가 아주 어린애였을 때 엄마는 그 때문에 속이 상하곤 했다. 어떤 놈들은 뭘 잃어버리면, 며칠을 걸려 그것을 찾아다닌다. 잃어버려도 그렇게 걱정을 할 게 나한테는 없는 것같다. 아마 그래서 내가 좀 소심한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변명이 될 수 없다. 정말 변명이 되지 못한다. 어떻게 되어야 하냐 하면, 조금도 소심해서는 안된다는 거다. 어떤 놈의 턱을 때려야 할 때는, 그리고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것을 해야 하는 거다. 하지만, 난 그런 걸 잘 못한다. 어떤 놈의 턱을 갈기느니, 창밖으로 밀어 버리거나 도끼로 놈의 머리를 찍는 편이 오히려 쉬울 것이다. 나는 주먹 싸움을 싫어하거든. 나는 얻어맞는 게 무서운 게 아니다 ― 그렇다고 내가 맞는 걸 좋아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 하지만 주먹 싸움에서 제일 무서운 게 놈의 얼굴이다. 나는 놈의 얼굴을 차마 쳐다볼 수가 없다. 그게 내 문제인 거다. 둘이 다 눈가리걔나 뭐나를 한다면 그렇게 나쁘진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그건 좀 웃기는 소심함이긴 하지만 그래도 소심하다는 건 마찬가지다. 지금 우스운 소리를 하는 게 아냐.
장갑하고 소심함에 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우울해져서, 나는 걷거나 뭐나를 하다가 어디 잠깐 들어가서 한잔 마시기로 작정했다. 어니의 가게에서 세 잔밖에 안 마셨거든, 그런데 마지막 잔은 다 마시지도 못했다. 나한테 한가지 장점이 있는데, 그건 나의 엄청난 주량이다. 나는 기분만 내키면 밤새 마시고도 조금도 표시를 내지 않을 수가 있다. 한번은, 우튼 학교에 다닐 때, 토요일 밤이었는데, 저 레이몬드 골드파브란 놈하고 스캇치 한 파인트를 사서 교회 안에 아무도 보지 않는 데서 마신 적이 있다. 그 놈은 곤드레만드레 취했지만 나는 거의 멀쩡했다. 나는 그저 아주 냉정해지고 기운이 없어졌을 뿐이다. 나는 자러 가기 전에 토했는데 ―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 억지로 토한 거야.
어쨋든, 호텔로 가기 전에 어떤 너절한 술집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두 녀석이 더럽게 취해 가지고 나오면서 지하철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그 중의 한 놈은 저 쿠바인처럼 생겼는데, 내가 방향을 가리켜 주고 있는데 내 얼굴에 대고 계속 구린내를 풍겨 댔다. 결국 난 그 놈의 술집엔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그냥 호텔로 돌아왔다.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가를 오천만걔나 피운 것같은 냄새가 났다. 정말 그랬다니까. 나는 졸리거나 뭐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좀 더러웠다. 우울하니 뭐니 해서 죽어 버릴까 하는 생각이 났다.
그 때, 갑자기 저 더러운 일을 만났다.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엘리베이터 보이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재미 좀 보지 않으려우? 아니면 좀 시간이 눚었나?’
‘무슨 말이요?’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그 작자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몰랐다.
‘오늘 밤 계집질을 좀 안하려우?’
‘나 말이오?’ 하고 내가 말했다. 그건 아주 멍청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누가 갑자기 다가와서 그런 질문을 한다면 정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몇살이우, 아저씨?’ 하고 엘리베이터 보이가 말했다.
‘왜요?’ 하고 내가 말했다. ‘스물 두살인데.’
‘어-어. 그럼 어떻수? 생각 있우? 한번 하는 데 5 딸라. 밤새는 15 딸라구.’ 그는 자기의 손목시계를 봤다. ‘오전 열 두시까지 말야. 한번에 5 딸라, 오전 열 두시까지 15 딸라라구.’
‘좋아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건 내 주의니 뭐니에 어긋나는 것이었지만, 나는 너무도 우울해서 생각 같은 건 할 수 없었다. 문제는 그런 것이다. 아주 우울할 땐, 생각 같은 건 할 수 없는 것이다.
‘뭐로 할 건데? 한번? 아니면 오전 열 두시까지 하는 거? 그걸 알아야 하거든.’
‘그냥 한번하는 거.’
‘그러슈, 방이 몇 호실인데?’
나는 열쇠에 번호가 적혀 있는 걸 보았다. ‘1222호,’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그런 짓을 시작한 걸 벌써 조금 후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알았어. 십오분 정도 있으면 여잘 하나 올려 보내지.’ 그가 문을 열어 주어 나는 내렸다.
‘이봐요, 여자가 잘 생겼어요?’ 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난 늙은 여잔 싫어요.’
‘늙은 여잔 없어. 그런 걱정은 마슈.’
‘돈은 누구한테 내요?’
‘그 여자한테,’ 하고 그가 말했다. ‘자 갑시다.’ 그는 거의 내 얼굴에 대고 문을 닫아 버렸다.
나는 방에 들어가서 머리에 물을 조금 적셨다, 하지만 짧은 머리를 빗거나 뭐나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담배 냄새나 어니의 가게에서 마신 스카치와 소다 냄새가 안 나는지 숨을 내쉬어 보았다. 그건, 그저 손을 입 아래쪽에 대고 콧구멍 쪽으로 숨을 불어 보면 된다. 별로 냄새가 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이빨을 닦았다. 그리고 나서 깨끗한 셔츠로 갈아 입었다. 창녀나 그런 여자 때문에 그렇게 모양을 낼 필요는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뭔가를 하기는 해야 했다. 나는 좀 초조한 기분이 되었다. 꽤 흥분되거나 뭐나 한 기분이 되었지만 어쨋든 좀 초조해지기도 했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인데, 나는 경험이 없다. 정말이야. 그런 경험을 할 기회는 꽤 많이 있었지만 아직 해 보지는 않았다. 꼭 무슨 일이 생기거든. 예를 들어, 어떤 계집애의 집에 있다고 하면, 부모가 엉뚱한 시간에 돌아오거나 ― 아니면 그럴까 봐 겁이 나서 못하게 된다. 아니면, 어떤 차의 뒷자리에 있을 때는, 항상 앞자리에 누군가 있단 말야 ― 어떤 계집애가 있다는 거야 ― 그래서 차 안에서 무슨 일이 있지 않나 하고 궁금하게 여기거든. 내 말은,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그 계집애가 계속해서 뒤를 돌아 본다는 것이다. 꼭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난 몇번은 거의 할 때까지 갔었다. 특히 한번인가 기억나는데, 하지만 일이 되게 잘못 돼버렸다 ― 그 이상은 잘 기억이 안 난다. 문제는 뭐냐 하면 ― 대부분 경우에, 어떤 계집애하고 거의 할 때까지 가까이 가면 ― 창녀니 뭐니가 아닌 계집애 말야 ― 계집애가 꼭 하지 말라고 그러거든. 나한테 문제는, 난 그만 둔다는 것이다. 대부분 자식들은 안 그런다. 난 도리가 없다. 계집애들이 정말 그런 걸 하고 싶지 않은지, 아니면 그냥 무서워서 그러는 건지, 또 아니면 그만하라고 계속해서 말을 해야, 남자가 그래도 할 때 책임을 자기가 아니라 남자들에게 씌우려고 그러는 건지 누가 아냐? 어쨋든, 나는 매번 그만 둔다. 문제는 계집애들이 좀 가엽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내 말은, 대부분의 계집애들은 그렇게 멍청하니 뭐니 하다는 것이다. 얼마 동안 계집애를 껴안고 있어 봐, 그럼 정신을 잃고 멍청해진다니까. 계집애가 정말로 몸이 달았을 때 껴안아 봐, 그럼 그 년은 정신이고 뭐고가 없어진다니까. 잘 모르겠다. 그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난 안한다. 계집애를 집에 데려다 준 뒤에는, 할 걸 그랬다 하고 후회하지만 여전히 같은 짓을 되풀이한다.
어쨋든, 나는 깨끗한 셔츠로 갈아입는 동안, 어떤 면에선 이번이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자가 창녀니 뭐니라면, 내가 장래 결혼이니 뭐니를 할 경우에 좀 연습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게 가끔 걱정된다. 우튼 학교에 있을 때, 꽤 세련되고 멋쟁이이고 섹시한 친구가 나오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이름이 블랑샤르였다. 너저분한 책이었지만 그 블랑샤르란 작자는 꽤 괜찮았다. 그는 유럽, 리비에라에 커다란 샤토니 뭐니를 갖고 있었는데 그가 한가한 시간에 하는 일이란 건, 몽등이로 여자를 패는 것이었다. 그는 진짜 난봉꾼이니 뭐니였어, 하지만 여자를 꼼짝 못하게 했지. 그가 어디선가 말하는데, 여자의 몸이란 바이올린과 같아서 그걸 잘 연주하려면 굉장한 음악가가 필요하다는 거야. 그건 아주 시시한 책이었는데 ― 이제 생각해 보니 말야 ― 어쨋든 그 바이올린 얘기는 잊혀지지가 않더군. 어떤 면에서, 내가 연습을 좀 하고 싶어진 것도 그 때문이야, 내가 혹시 결혼할 경우에 말이다. 코울필드와 그의 마법 바이올린, 제기랄. 진부하지, 알아, 하지만 그렇게 진부한 건 아냐. 나는 그런 면에 도가 튼다고 해도 별로 챙피하다는 생각이 안들 것 같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인데, 나는 여자와 희롱을 할 때 거의 언제나, 내가 이 여자와 뭐하러 이런 짓을 하나 하고 생각한다, 제기랄,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면 말야. 내가 금방 얘기한 그 계집애, 거의 할 뻔했다는 그 계집애만 해도 그렇다. 그 년의 브래지어를 벗기는 데 만도 삼십분이 걸렸다. 다 벗겼을 때, 그 년은 내 얼굴에 침이라도 뱉을 것 같았다니까.
어쨋든, 나는 방 안을 어슬렁거리면서 그 창녀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그 여자가 잘 생겼기를 계속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 쓴 건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 일을 빨리 끝내버리자 하고 생각했다. 마침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문을 열려고 갈 때, 길목에 수트케이스를 놓아 둔 바람에 그걸 넘어가려다가 하마터면 무릎을 부러뜨릴 뻔했다. 수트케이스니 뭐니에 걸려 고꾸라질 때도, 꼭 이럴 때 그런다니까.
내가 문을 열었을 때, 그 창녀가 거기에 서 있었다. 여자는 폴로 오바를 입고 모자는 쓰지 않고 왔다. 머리가 약간 금발이었는데, 염색한 머리라는 게 눈에 보였다. 하지만 늙어빠진 여자는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하고 내가 말했다. 정말이지, 더럽게 점잖은 말투로 말야.
‘모리스가 말한 사람이에요?’ 하고 여자가 나에게 말했다. 별로 싹싹해 보이지 않는 여자였다.
‘엘리베이터 보이 말예요?’
‘그래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네, 맞아요. 들어와요.’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점점 더 그럴 기분이 나지 않았다. 정말 그랬다.
여자는 들어오자 바로 오바를 벗어서는 침대 위에다 집어던지는 식으로 놓았다. 안에는 초록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여자는 책상에 달린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서 위아래로 발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창녀치고는 아주 초조해 보였다. 정말 그랬다. 그건 그 여자가 아주 어리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는 내 나이 정도밖에는 안되었다. 나는 여자 옆에 큰 의자에 앉은 다음에 담배를 권하였다. ‘난 담배 안 피워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그 여자는 목소리가 아주 작고 가냘펐기 때문에 거의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뭘 권해도 절대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걸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내 소걔를 좀 할까요? 나는 짐 스틸이라구 해요,’ 하고 내가 말했다.
‘시계 가지고 있어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내 이름이 뭔지 따위는 하나도 관심없었다, 당연하지만 말야. ‘이봐요, 나이가 몇이에요?’
‘나요? 스물 둘이요.’
‘그런 것같지 않은데요.’
그렇게 말하는 건 우스운 일이었다. 꼭 어린애가 말하는 듯한 말투였다. 창녀라면, ‘그런 것같지 않은데요.’ 하고 말하지 않고 ‘웃기네.’ 라고 하거나 ‘그딴 수작은 말아요.’ 라고 말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몇 살이예요?’ 하고 나는 여자에게 물었다.
‘먹을 만큼은 먹었어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정말 재치있는 여자였다니까. ‘시계 있어요?’ 하고 여자는 다시 묻고는 일어나서 머리 위로 드레스를 벗었다.
그 여자가 그런 행동을 할 때 정말 기분이 이상했다. 내 말은, 그런 행동을 그렇게 갑자기 하는 것 말이다. 누군가가 일어나서 머리 위로 옷을 벗을 땐 꽤 섹시한 기분이 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정말이지, 섹시한 기분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나는 섹시하기 보다는 더욱 우울해졌다.
‘이봐요, 시계 있냐구요?’
‘아니. 아니, 없어요,’ 하고 내가 말했다. 정말이지,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름이 뭐예요?’ 하고 나는 여자에게 물었다. 여자는 이제 핑크색 슬립밖에 걸치지 않았다. 정말 당황스런 기분이었다. 정말 그랬다.
‘써니,’ 하고 여자가 말했다. ‘자, 해요?’
‘잠깐 얘기하지 않을래요?’ 하고 내가 여자에게 물었다. 그런 말을 하는 건 유치했지만, 난 정말 기분이 더럽게 이상했다. ‘무슨 급한 일 있어요?’
여자는 마치 미친 사람 보듯이 나를 쳐다 보았다. ‘대체 무슨 얘길 하자는 거예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냥 당신이 얘길 좀 하고 싶지 않나 하고 생각했어요.’
여자는 다시, 책상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그 여자가 못마땅한 기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자는 다시 발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 정말이지, 신경질적인 여자였어.
‘이제 담배 좀 피울래요?’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그 여자가 담배를 안 피운다는 걸 잊어버렸다.
‘담배 안 피워요 이봐요, 얘기하려면 해요. 난 할 일이 있어요.’
‘하지만 난 무슨 애길 해야 할 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그 여자가 어떻게 해서 창녀니 뭐니가 되었는지 물어 볼까 하다가 그런 걸 물어 보기가 겁이 났다. 대답하지 않을테니까.
‘당신은 뉴욬 출신이 아니죠?’ 하고 나는 마침내 말했다. 나는 기껏해야 그런 생각 밖에 나지 않았다.
‘할리웃이에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침대 위, 드레스를 놓은 데로 갔다. ‘옷걸이 있어요? 드레스가 주름지는 건 싫으니까. 새 거라구요.’
‘그럼요,’ 하고 나는 급히 말했다. 일어나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너무 기뻤다. 나는 드레스를 가지고 벽장으로 가서 옷걸이에 걸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나는 옷걸이에 드레스를 걸 때 좀 슬픈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 여자가 가게에 들어가서 그 드레스를 사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여자가 창녀니 뭐니라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 여자가 그 옷을 살 때 점원은 아마 보통 평범한 여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나를 무지 슬프게 했다 ―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얘기를 계속 이어 나가려고 했다. 그 여자는 더럽게 얘기할 줄을 모르는 여자였다. ‘매일 밤 일해요?’ 하고 나는 여자에게 물었다 ― 그런 걸 묻고 나니 좀 어색하게 들렸다.
‘그래요.’ 여자는 방 안을 왔다갔다 했다. 여자는 책상에서 메뉴를 집어 들고 읽었다.
‘낮에는 뭘 해요?’
여자는 어깨를 좀 으쓱했다. 그 여자는 되게 말랐었다. ‘자고. 영화 보러 가구.’ 그 여자는 메뉴를 내려 놓고 나를 보았다. ‘이봐요, 안 할 거예요? 난 이런 걸로 ―’
‘이봐요,’ 하고 나는 말했다. ‘난 오늘밤 기분이 좀 이상해요. 기분 좋지 않게 보냈어요. 정말로. 돈 같은 건 줄께요, 하지만 안 하면 안 돼요? 그래도 괜찮아요?’ 문제는, 내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는 거였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난 섹시한 기분보다는 우울한 기분이었다. 그 여자가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벽장이니 뭐니에 걸려 있는 그 여자의 초록색 드레스말이다. 게다가, 나는 하루 종일 멍청한 영화나 보며 앉아 있는 그런 여자와 그걸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정말로 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여자는,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우스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로 가까이 왔다. ‘무슨 문제가 있어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문제는 없어요.’ 정말이지 나는 신경질적인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난 최근에 수술을 받았어요.’
‘그래요? 어디?’
‘거기에 ― 쇄골.’
‘그래요? 대체 그게 어딘데요?’
‘쇄골말예요?’ 하고 내가 말했다. ‘뭐, 사실은 그건 척추 안에 있는 거예요. 내 말은, 척추에서 아래로 많이 내려간 데 있는 거예요.’
‘그래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그거 안 됐네요.’ 그리고 나서 여자는 내 무릎팍에 올라 앉았다. ‘당신 귀여운데.’
그 여자는 내 신경을 몹시 건드려서 나는 그냥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있었다. ‘지금은 회복되는 중이에요,’ 하고 나는 여자에게 말했다.
‘당신 영화에 나오는 사람같이 생겼는데, 그거 알아요? 누구더라. 누구 말인지 알 거예요. 그 사람 이름이 뭐더라?’
‘몰라요,’ 하고 내가 말했다. 여자는 내 무릎 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알면서. 멜빈 더글라스와 같이 피처로 나왔죠? 멜빈 더글라스 동생으로 나온 사람이었나? 저 보트에서 떨어진 사람인가? 누구 말인지 알 거예요.’
‘아니, 몰라요. 나는 되도록 극장엔 안 가요.’
그러자 여자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유치하니 뭐 그런 태도 말이다.
‘그만하면 어떨까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럴 기분이 아녜요. 방금 말한 것처럼. 수술 받은 지 얼마 안됐어요.’
여자는 내 무릎이니 뭐니 에서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무섭게 화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이봐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저 모리스 놈이 날 깨우지 않았으면 난 잘 자고 있었을 거예요. 당신은 내가 뭐 ―’
‘여기 온 거는 돈이니 뭐니를 준다고 했잖아요. 정말이에요. 돈은 충분히 있어요. 그저, 내가 아주 중한 수술에서 지금 ―’
‘그럼, 도대체 뭣 때문에 모리스한테 여자를 보내 달라고 말한 거예요? 당신의 그 거긴가에 무슨 놈의 수술을 받았다면 말예요? 허?’
‘지금보다는 기분이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좀 잘못 생각한 거 같애요. 농담하는 건 아녜요. 미안해요. 지금 일어난다고 해도, 돈은 주겠어요. 정말로.’
여자는 더럽게 화를 내고 있었지만, 내가 양복장에 가서 지갑을 가져오도록 내 무릎에서 일어났다. 나는 오딸라 짜리 지폐를 꺼내서 여자에게 주었다. ‘고마와요,’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 고맙게 생각해요.’
‘이건 5 딸라잖아요. 10 딸라예요.’
여자는 정말이지, 우습게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런 일이 생길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 정말 걱정했다.
‘모리스는 5 딸라라고 했어요,’ 하고 나는 여자에게 말했다. ‘오전 열두 시까지는 10 딸라, 한번은 5딸라라고 했어요.’
‘한번 하는데 10 딸라예요.’
‘그가 5 딸라라고 했어요. 미안해요 ― 정말 미안해요 ― 하지만 그것밖에 못 줘요.’
여자는 전처럼 어깨를 좀 으쓱하고는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내 오바 좀 갔다 줄래요? 너무 폐를 끼치는 건가요?’ 정말 무서운 계집애였다. 비록 어린애같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조금 무서운 느낌이 났다. 만일 여자가 얼굴이니 뭐니에 화장을 쳐바른 어른 창녀였다면, 그 반도 무섭지 않았을 거야.
나는 가서 여자의 오바를 갖다 주었다. 여자는 그것을 입고 나서 침대에서 폴로 코트를 집어들었다. ‘안녕, 멍충이,’ 하고 여자가 말했다.
‘안녕,’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여자에게 고맙다거나 뭐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안 한 건 다행이야.
제 14장
써니 년이 나가고 난 뒤, 나는 잠시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몇 걔 피웠다. 밖은 벌써 환해지고 있었다. 정말이지, 나는 비참한 기분이었어. 나는 무지하게 우울했다,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야. 그래서 내가 뭘 했냐 하면, 난 앨리하고 조금 큰 소리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주 우울할 땐 가끔 그런 짓을 한다. 나는 앨리한테, 집에 가서 자전거를 갖고 와, 보비 팰론의 집 앞에서 만나자 하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보비 팰론은 메인에서 우리하고 아주 가까운 데서 살았었다 ― 몇 년전에 말야. 어쨋든,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말야, 한번은 보비하고 난 자전거를 타고 쎄데베고 호수로 가기로 했다. 우리는 점심이니 뭐니하고 BB 총을 가지고 가기로 했지 ― 우린 아주 어린애였기 때문에 그 BB 총을 가지고 아무 거나 쏠 수 있다고 생각했지. 어쨋든, 앨리는 우리가 그 얘길 하는 걸 듣고 같이 가자고 했는데 난 끼워 주지 않았어. 앨리한테, 넌 아직 어린애야 하고 말해 주었지. 그래서 지금처럼, 아주 우울할 땐 난 앨리한테 이렇게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거야. ‘좋아. 집에 가서 자전거를 갖고 와, 보비의 집 앞으로 나와. 빨리.’ 내가 어디를 갈 때 앨리를 데리고 다니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앨리를 데리고 다니곤 했다. 하지만 그 날은 그러지 않았다. 앨리는 그 때문에 화를 내지는 않았다 ― 앨리는 무슨 일이고 화를 내는 법이 없다 ― 하지만 아주 우울할 땐 어쨋든 그 일이 계속해서 생각난다.
하지만 결국, 난 옷을 벗고 침대에 들어갔다. 침대에 들어가자, 기도같은 걸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하지 못했다. 난 기도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먼저, 난 약간 무신론자이다. 난 예수니 뭐니는 좋아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다른 것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제자들을 보자. 사실을 알고 싶다면, 그들한텐 정말이지 짜증이 난다. 예수가 죽거나 뭐니 한 후에 그들은 잘 했다, 하지만 예수가 살아 있을 땐 그들은 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들이 한 거라곤 계속해서 예수를 실망만 시킨 것밖에 없었다. 나는 그 제자들 외에는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 다 좋아한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성경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친구는, 동굴속에서 살면서 돌로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저 미치광이니 뭐니 하는 사람이다. 나는 제자들보다는 그가 열 배는 더 좋다, 정말 가련한 친구야. 나는 우튼 학교에 있을 때, 복도 아래쪽에 방을 쓰고 있던 저 아더 차일즈하고 그 문제를 놓고 무지하게 말싸움을 하곤 했었다. 차일즈 놈은 퀘이커니 뭐니였는데, 항상 성경을 읽고 있었지. 그는 꽤 좋은 놈이어서 나는 그 놈을 좋아했었다,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것중에서는 그 놈과 생각이 다른 게 많이 있었다, 특히 그 제자들 말야. 그 놈의 의견으로는, 내가 제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예수니 뭐니도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예수가 제자들을 택했기 때문에 그들을 좋아해야 마땅하다는 거였다. 나는 예수가 그들을 택한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예수는 그들을 아무렇게나 택한 거라고 말했다. 나는 예수가 제자들을 전부 살펴 볼 시간이 없었던 거라고 말했다. 내가 예수니 뭐니가 잘못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에게 시간이 없었던 건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나는 차일즈한테, 저 예수니 뭐니를 배반한 유다가 자살한 뒤에 지옥에 갔을 거라고 셍각하는지 어떤지를 물어봤던 거로 기억난다. 차일즈는 그건 명백한 거라고 말했다. 내가 그와 생각이 다른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나는, 예수가 유다를 지옥에 보내지 않았을 거라는데 1000 딸라 걸어도 좋다고 말했다. 나한테 1000 딸라가 있으면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럴 것이다. 제자들이라면 그를 지옥이니 뭐니에 보냈으리라고 생각한다 ― 그것도 바로 말야 ― 하지만 예수는 절대 그러지 않았다고 나는 확신한다. 차일즈 놈은, 나한테 문제는 내가 교회니 뭐니에 다니지 않은 거라고 말했다. 어떤 면에서 그의 말은 옳았다. 나는 교회에 다니지 않으니까. 먼저, 부모님은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고, 우리 집 형제들은 다 무신론자이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난 목사들한텐 참을 수가 없다. 내가 다닌 학교란 학교에 있는 목사들 말이다, 그들은 죄다 설교를 시작할 때 저 거룩한 체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정말이지, 난 그게 싫다. 왜 그들은 자연스런 목소리로 말하지 못하는 지 알 수가 없다. 그들이 얘기할 땐 정말 사기꾼같이 들린다.
어쨋든, 침대에 누웠을 때 나는 기도같은 건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기도를 시작해 보려고 하면, 써니 년이 나보고 멍충이라고 부른 일이 자꾸 떠올랐다. 결국 나는 침대에 일어나 앉아서 담배를 하나 더 피웠다. 입맛이 더러웠다. 펜시를 떠난 후로 두 갑은 피웠을 것이다.
갑자기, 담배를 피우면서 누워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다. 나는 그게 내 문이 아니기를 하고 바랬지만, 분명히 그게 내 문을 두드리는 소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왜 내가 그렇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어쨋든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나는 또 그게 누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런 영감이 있다.
‘누구세요?’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꽤 겁이 났다. 나는 그런 일엔 아주 소심하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문을 두드렸다. 이번엔 더 크게.
마침내 나는 파자마만 입은 채로 침대에서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벌써 환해졌기 때문에 방에 불을 켤 필요는 없었다. 써니 년과 저 뚜장이 엘리베이터 보이 모리스가 거기 서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무슨?’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이지, 내 목소리는 더럽게 떨리고 있었다.
‘별 거 아니우.’ 하고 모리스 놈이 말했다. ‘그냥 5 딸라만 내면 되.’ 써니 년 대신에 그가 얘기를 다 했다. 써니 년은 그 옆에서 입을 벌리고 그냥 서 있었다.
‘벌써 돈은 냈어요. 이 여자한테 5 딸라 줬는데요. 물어 봐요,’ 하고 내가 말했다. 정말, 내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10 딸란데. 아까 말했는데. 한번 하는데 10 딸라, 오전 열두시까진 15 딸라라구. 말했잖아.’
‘그런 얘긴 안했잖아요. 한번에 5 딸라라구 했잖아요, 오전까진 15 딸라라구 그랬구요, 그래요, 난 분명히 그렇게 들었어요 ―’
‘문 여시지.’
‘뭣 때문에?’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이지, 심장이 터져 나갈 것같았다. 적어도 옷이라도 입고 있었으면 했다. 그런 파자마 차림으로 무슨 일이 생기는 건 끔찍한 일이다.
‘자 갑시다.’ 하고 모리스 놈이 말했다. 그리고 그는 지저분한 손으로 나를 한번 세게 밀었다. 나는 거의 엉덩방아를 찔 뻔했다 ― 그 놈은 몸집이 거대한 놈이었거든. 내가 다음에 기억하는 건, 그와 써니 년이 방안에 들어와 있다는 거였다. 그들은 마치 자기들이 그 방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했다. 써니 년은 창턱에 앉았다. 모리스 놈은 큰 의자에 앉아서 칼라니 뭐니를 풀어 놓고 있었다 ― 그는 저 엘리베이터 보이 제복을 입고 있었다. 정말이지 난 초조해졌다.
‘좋아, 자 내놓으시지. 난 일하러 가봐야 하거든.’
‘열번은 말했잖아요. 당신한테 1 쎈트도 빚진 게 없어요. 이미 저 여자한테 5 딸라를 ―’
‘이제 그런 수작은 그만 둬. 내 놔.’
‘내가 왜 5 딸라를 더 내야 해요?’ 하고 내가 말했다. 내 목소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당신은 지금 날 속이려 하고 있어요.’
모리스는 제복의 단추를 죄다 풀었다. 그가 안에 입은 건 가짜 셔츠 칼라만 있었지 셔츠니 뭐니는 입고 있지 않았다. 그의 커다란 배에는 털이 나 있었다. ‘누가 누굴 속이나,’ 하고 그가 말했다, ‘자. 주지 그래.’
‘안돼요.’
내가 그 말을 하자, 그는 위자에서 일어나서 나한테 걸어왔다. 그는 아주 지쳐 있다거나 아주 싫증이 났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나는 겁이 났다. 그 때 나는 두 팔을 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파자마만 입고 있지 않았더라도 별로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자 주시지.’ 그는 내가 서 있는 데까지 왔다. 그는 그저 그 말만 할 줄 아는 것같았다. ‘자 주시지.’ 그는 정말 천치였다.
‘안돼요.’
‘이봐, 그렇게 나오면 자넬 거칠게 다룰 수밖에 없는데. 난 그런 건 싫은데, 근데 그렇게 보이는데,’ 하고 그가 말했다. ‘자넨 우리한테 5 딸라 빚이 있어.’
‘난 당신한테 5 딸라 빚지지 않았어요,’ 하고 내가 말했다. ‘날 거칠게 다루면 소릴 막 지를 거예요. 호텔에 있는 사람들을 다 깨울 거예요. 경찰이니 뭐니를 다.’ 내 목소리는 더럽게 떨리고 있었다.
‘해 보시지. 머리가 다 터지도록 소릴 질러 봐. 좋지,’ 하고 모리스 놈이 말했다. ‘자네가 여기서 창녀하구 밤을 보낸 걸 부모님이 알면 좋겠나? 자네같은 상류층 자제가 말야?’ 그는 교활하게도 머리가 잘 돌아갔다. 정말 그랬다.
‘날 내버려 둬요. 10 딸라라구 그랬으면 달랐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분명히 ―’
‘우리가 가져갈까?’ 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나를 문에다 밀어붙였다. 그는 거의 내 꼭대기에 올라 있어서 그의 더러운 털투성이 배니 뭐니가 내 얼굴에 닿았다.
‘날 내버려 둬요. 내 방에서 나가요,’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여전히 두 팔을 서로 끼고 있었다. 정말이지, 난 얼마나 얼간이인가.
그 때 써니가 처음으로 뭐라고 말하였다. ‘이봐요, 모리스. 내가 지갑을 가져올까?’ 하고 여자가 말했다. ‘바로 그 위에 있는데.’
‘그래, 가져 와.’
‘내 지갑을 놔 둬요.’
‘벌써 가져왔어,’ 하고 써니가 말했다. 그 여자는 내 얼굴에 오딸라를 흔들어 댔다. ‘봤죠? 난 오딸라만 가져가요. 난 도둑이 아녜요.’
갑자기 나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소리를 안 질렀다면 무슨 짓이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래요, 당신은 도둑이 아녜요. 당신은 그저 오딸라를 도둑질 ―’
‘닥쳐,’ 하고 모리스 놈은 나를 한번 밀었다.
‘그 사람을 놔 줘요,’ 하고 써니가 말했다. ‘가요. 이제 빚진 돈을 가졌으니까. 가요. 빨리.’
‘그러지,’ 하고 모리스 놈은 말했지만 가지 않았다.
‘가자니까요, 모리스. 그 사람을 놔 줘요.’
‘누가 사람을 다친대?’ 하고 그가 아주 천진하게 말했다. 그리고 나서 그가 뭘 했냐 하면, 내 파자마 위를 손가락으로 강하게 훑었다. 그 놈이 어디를 훑었는진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무지하게 아팠다. 나는 그에게, 너는 더러운 천치라고 말해 주었다. ‘그게 뭔데?’ 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마치 귀머거리처럼 두 손을 자기 귀에 갖다 댔다. ‘뭐라구? 내가 뭐라구?’
나는 여전히 소리를 좀 지르고 있었다. 나는 무지하게 화가 나고 신경질이 났다. ‘넌 더러운 천치야,’ 하고 나는 말했다. ‘넌 멍청한 사깃꾼 천치야, 넌 이년 정도 지나면 지금 거리에서 너한테 와서 커피값으로 동전이나 달라구 구걸하는 저 말라빠진 그런 인간이 될 거야. 니 더러운 오바에 사방 콧물을 질질 흘리고, 또 ―’
그 때, 그가 나를 갈겼다. 나는 옆으로 피하거나 숨거나 그러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배에 끔찍한 펀치를 맞은 걸 느꼈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나가 떨어지거나 그러진 않았다, 왜냐 하면 바닥에 누운 채로 올려다 보니 그들이 나가면서 문을 닫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스트래드레이터하고 그랬던 것처럼 꽤 오랫동안 바닥에 누운 채로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랬다니까. 나는 물에 빠져 죽는다거나 그런 생각을 하였다. 문제는, 거의 숨을 쉴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마침내 일어났을 때, 나는 완전히 몸을 구부리고 배니 뭐니를 움켜 잡은 채로 욕실까지 걸어가야 했다.
하지만 난 미친 놈이야. 하늘에 맹세코 난 미친 놈이야. 욕실까지 반쯤 갔을 때, 나는 배애 총을 맞은 시늉을 했다. 모리스 놈이 내 배에다 총알을 박아 넣은 것이다. 지금 나는 신경을 가라앉히고 행동을 걔시하기 위해서 버번이니 뭐니를 한 모금 마시려고 화장실로 가는 것이다. 나는 옷을 다 입고 주머니에 자동 피스톨을 넣은 채 욕실에서 나오면서 이리저리 조금 비틀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이어서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서 아래 층으로 내려 간다. 나는 난간이니 뭐니를 움켜 잡고 있고 옆구리에서는 조금씩 피가 떨어진다. 내가 뭘 하냐 하면, 나는 배를 움켜 잡고, 피는 사방에 흐르는데, 몇 층을 걸어 내려와서 엘리베이터 벨을 울린다. 모리스 놈은 문을 열자 마자, 내가 손에 자동 피스톨을 쥐고 있는 걸 보고 저 찢어질 듯한 겁먹은 목소리로 자기를 가만 내버려 달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나는 그 놈의 몸에 총알을 박는다. 그의 털투성이 배에다 여섯 방을. 나는 총에서 지문이니 뭐니를 전부 닦은 다음에 엘리베이터 축 아래로 총을 던진다. 다음에 나는 내 방으로 다시 기어 올라와서 제인한테 전화를 해서, 이리 와서 내 배에 붕대를 감아 달라고 말한다. 나는, 내가 피니 뭐니를 흘리고 있는 동안 제인이 손에 든 담배를 내가 피우는 모습을 상상했다.
빌어먹을 영화들. 그런 영화 때문에 사람이 망친다니까. 이건 농담이 아냐. 나는 샤워니 뭐니를 하면서 한 시간 정도 욕실에 있었다. 그 다음에 나는 침대로 올라갔다. 잠이 드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 피곤하지 않았으니까 ― 하지만 결국 잠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뭘 하고 싶었냐 하면 말야, 나는 자살이나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내가 땅에 떨어졌을 때 누군가가 내 몸을 덮어 주기만 한다면 나는 그랬을 것이다. 내가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호기심 많은 멍청한 작자들이 뗴거리로 몰려 와서 나를 구경하는 건 싫었기 때문이다.
제 15장
나는 별로 오래 자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잠에서 깨었을 때 열시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던 걸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담배를 한걔 피우고 나자 무지하게 배가 고팠다. 내가 마지막으로 뭘 먹은 건, 브로싸드, 애클리하고 애거스 타운에서 극장에 갔을 때 햄버거 두 걔를 먹은 게 전부였다. 그건 오래 전이었다. 마치 오십 년전의 일같았다. 전화기가 바로 옆에 있어서 나는 아래에다 전화를 걸어 아침 식사를 좀 보내 달랠까 하고 생각했지만 모리스 놈이 식사를 가져올까 봐 좀 겁이 났다. 내가 그 놈을 다시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미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침대에서 잠시 빈둥거리며 담배를 한걔 더 피웠다. 나는 제인이 집에 왔는지 알려고 전화를 걸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뭘 했냐 하면, 나는 샐리 헤이즈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 계집애는 메어리 A. 우드러프에 다니고 있었는데, 몇 주전에 그 계집애한테서 편지를 받았기 때문에 지금 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계집애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몇 년동안 알고 지낸 적이 있었다. 나는 멍청하게도 그 계집애가 무지 똑똑한 줄로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던 건, 그 계집애가 연극이니 희극이니 문학이니 하는 것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누군가가 그런 것들을 많이 알고 있으면, 그들이 정말 멍청한지 아니지를 알려면 꽤 시간이 걸린다. 쌜리 년의 경우에는 그걸 아는 데 몇 년은 걸렸다. 그 계집애하고 그렇게 많이 껴안고 그러지 않았다면, 그걸 훨씬 빨리 알아챘을 것이다. 내 큰 문제가 뭐냐 하면, 나는 언제나, 내가 껴안고 그러는 계집애들은 꽤 똑똑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게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닌데도 나는 어쨋든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어쨋든 나는 그 계집애한테 전화를 걸었다. 처음엔 식모가 전화를 받았다. 다음엔 아버지가 나왔다. 이어서 그 계집애가 나왔다. ‘쌜리?’ 하고 내가 말했다.
‘응 ― 누구야?’ 하고 계집애가 말했다. 그 계집애는 정말 되먹지 않았다. 벌써 아버지한테 내가 누구라고 말했는데 말이다.
‘홀든 코울필드야. 잘 있었어?’
‘홀든! 난 잘 있었지! 넌 어떻게 지내니?’
‘좋아. 근데. 어떻게 지내고 있어? 내 말은 학교 다니는 게 어떻냐구?’
‘좋아,’ 하고 계집애는 말했다. ‘내 말은 ― 알지.’
‘좋아. 자 내 말 들어 봐. 혹시 오늘 니가 바쁘지 않나 하고 생각했었지. 일요일이잖아, 일요일엔 언제나 영화 한 두개 정도는 하구. 자선 공연이니 뭐 그런 거. 안 갈래?’
‘갈께. 굉장하겠는데.’
굉장하겠다구. 내가 싫어하는 말이 있다면, 그건 굉장하다는 말이다. 그건 너무 엉터리 같은 말이다. 순간적으로 나는, 영화 같은 건 그냥 해 본 말이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시시껄렁한 얘기를 좀 지껄였다. 내 말은, 계집애가 그랬다는 것이다. 한마디도 뭐라고 끼어 들을 수가 없이 말이다. 먼저 계집애는 어떤 하바드에 다니는 작자 얘기를 했는데 ― 아마 신입생일 거다, 하지만 물론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 자기를 끔찍하게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밤낮으로 전화를 건다는 것이다. 밤낮으로 말야 ― 거기엔 정말 졌다. 다음엔 웨스트 포인트 생도라는 작자 얘긴데, 그 작자도 역시 자기를 위해서는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다. 대단한 일 아냐? 나는 계집애한테, 영화가 두시 반에 시작하니까 빌트모어 극장, 시계 아래서 두 시까지 늦지 않게 나오라고 말했다. 그 계집애는 항상 늦으니까 말야. 그리고 나서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 계집애는 좀 아니꼽긴 하지만, 정말 예쁘긴 했다. 나는 쌜리 계집애하고 약속을 한 뒤에, 침대에서 내려와서 옷을 입고 가방을 쌌다. 하지만 방에서 나가기 전에, 저 변태자들이 뭘 하고 있나 보려고 창 밖을 한번 보았다. 하지만 커튼이 모두 내려져 있었다. 그런 작자들은 아침엔 최고로 얌전하다니까.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호텔에서 나왔다. 주위에 모리스 놈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물론 그를 찾으려고 안달을 하지는 않았다. 거지같은 새끼.
나는 호텔 밖에서 택시를 탔는데, 어디로 가야 할 지를 전혀 몰랐다. 나는 갈 곳이 없었다. 일요일밖에 되지 않아서 수요일까지는 ― 아니 빨라도 화요일까지는 ― 집에 갈 수가 없었다. 물론 다른 호텔에 가서 골치 아픈 일을 겪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뭘 했냐 하면, 나는 운전사한테 그랜드 쌘트랄 스테이션으로 가자고 말했다. 거긴, 쌜리를 만나기로 약속한 빌트모어 극장 근처였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할까를 생각했다. 가방들을 저 열쇠 달린 로커에 보관하고 아침을 먹자. 나는 조금 배가 고팠다. 나는 택시 안에서 지갑을 꺼내서 돈을 좀 세어 보았다. 정확하게 얼마가 남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별로 대단한 돈은 아니었다. 나는 데데하게 지낸 이주 동안에 엄청난 돈을 써 버렸다. 정말 그랬다. 나는 알고 보면 더럽게 낭비가 심하다. 쓰지 않는 돈은 잃어버린다. 나는 레스토랑이나 나이트 클럽 같은 데 가면 잔돈을 받아 오지 않을 때가 반은 된다. 그 때문에 부모님은 돌아버리신다. 하지만 부모님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돈이 상당히 많다. 아버지가 얼마를 버는 지는 모르지만 ― 어버지는 그런 것을 나한테 얘기한 적이 없다 ― 꽤 많을 거라고 상상은 간다. 아버지는 어느 회사의 법률 일을 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 돈을 많이 끌어 모은다. 아버지가 돈이 많은 것을 내가 아는 다른 이유는, 아버지는 항상 브로드웨이의 연극에 돈을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연극들은 항상 실패해서 엄마는, 아버지가 그런 일을 하면 화를 낸다. 내 동생 앨리가 죽은 뒤로 엄마는 건강이 별로 좋지 않다. 엄마는 굉장히 신경이 날카롭다. 그 때문에 나는, 내가 퇴학당한 걸 엄마가 알까 봐 걱정이 되는 것이다.
나는 역에서 가방들을 로커에 넣은 다음에 조그만 쌘드위치 바에 들어가서 아침을 먹었다. 오렌지 쥬스, 베이컨과 달걀, 토스트와 커피까지 나로서는 꽤 많이 먹은 편이었다. 나는 보통 때는 오렌지 쥬스를 조금 먹는다. 나는 아침을 조금밖에 먹지 않는다. 정말 나는 그렇다. 내가 이렇게 마른 건 그 때문이다. 살을 찌우니 뭐니 하려면 전분이니 뭐니 하는 걸 많이 먹어야 할 판이지만 나는 그런 짓을 절대 하지 않는다. 나는 어디 밖에 나갈 때는, 보통 스위스 치즈 썐드위치하고 맥아 우유를 먹는다. 많이 먹지는 않지만 맥아 우유에는 비타민이 상당히 많이 들어 있다. H.V. 코울필드. 홀든 비타민 코울필드.
내가 달걀을 먹고 있는데, 수트케이스니 뭐니를 든 수녀 두 사람 ― 보니까 다른 수녀원이니 뭐니로 가려고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 이 들어와서 카운터 바로 내 옆에 앉았다. 그들은 수트케이스니 뭐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아서 내가 도와 주었다. 수트케이스는 저 싸구려같이 보이는 그런 것이었다 ― 진짜 가죽이니 뭐니가 아닌 것 말이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걸 나도 알지만, 난 누가 싸구려 수트케이스를 들고 다니는 걸 보면 짜증이 난다. 되먹지 않은 소리로 들릴 지 모르겠지만, 누가 싸구려 수트케이스를 들고 다니면 그 사람까지 싫어진다. 언젠가 있었던 일인데 말야. 내가 엘크톤 힐즈 학교에 다닐 때, 딬 슬레이글이라고 아주 싸구려 수트케이스를 가지고 있던 놈하고 같은 방을 썼었다. 그 놈은 그게 내 거하고 나란히 있는 걸 남들이 볼까 봐 선반 위에 두지 않고 침대 밑에 두었다. 그게 나를 더럽게 우울하게 만들어서 나는 내 걸 밖으로 던져 버리거나 그 놈 거하고 바꿀 생각을 계속 했었다. 내 건 마크 크로스 제품이었는데, 진짜 암소 가죽이니 뭐니 하는 거여서 꽤 비싼 걸 거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따위 것은 웃기는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냐 하면 말야. 나는 내 수트케이스를 선반에서 내려서 침대 밑에 두었다. 그 슬레이글 놈이 열등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말야. 그런데 그 놈이 뭘 했는지 알아? 내가 내 수트케이스를 침대 밑에 놓은 다음 날, 그 놈은 자기 것을 침대 밑에서 꺼내서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아는데 꽤 시간이 걸렸는데, 그건 사람들이 내 수트케이스를 자기 거로 알았으면 하고 바랬기 때문이다. 그 놈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 면에서 그 놈은 아주 웃기는 놈이었다. 그 놈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예를 들어, 수트케이스 같은 것 말야, 언제나 되먹지 않은 말을 지껄였다. 그 놈은 항상, 내 수트케이스가 너무 새 거고 부르조아 냄새가 난다고 투덜거렸다. 부르조아란 말은 그 놈이 제일 애용하는 말이었다. 그 말을 어디서 읽었거나 들었을 것이다. 내가 가진 건 전부 더럽게 부르조아적이라고 말했다. 내 만년필까지도 부르조아적이었다. 우리는 두달 정도를 같이 방을 썼다. 그 후에 우리는 다른 방을 달라고 신청했다. 그런데 웃기는 건, 우리가 다른 방으로 간 뒤에 그 놈이 좀 그리워졌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놈한테는 굉장한 유머 감각이 있었고 또 우리도 가끔 같이 재미있게 지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놈도 마찬가지로 나를 그리워한다고 해도,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처음에, 그 놈은 내 물건을 부르죠아적이니 하고 말하면서 그저 장난 삼아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따위 말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 사실 그런 건 좀 웃기는 일이었다. 그런데 얼마 있으니까 그 놈이 이젠 농담으로 그러는 게 아닌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같이 방을 쓰는데 자기 수트케이스가 남의 것보다 더 좋은 것이면 ― 자기 건 정말 좋은 것인데 방 친구 것은 나쁜 것이면 말이다 ― 같이 방을 쓰기가 어려운 것이다. 다른 친구가 뭐 똑똑하니 뭐니 하면 그리고 유머 감각이 좋다면, 누구 수트케이스가 더 좋고 나쁘고 하는 따위에는 하나도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신경을 쓰는 것이다. 내가 스트래드레이터같은 멍청한 새끼하고 같이 방을 쓴 건 그런 이유도 있다. 적어도 그 놈의 수트케이스는 내 거하고 거의 비슷하니까 말야.
어쨋든, 그 수녀들이 내 옆에 앉아서 우리는 얘기를 좀 나누게 되었다. 바로 내 옆에 앉은 수녀는, 저 구세군들이 크리스마쓰 무렵에 기금을 모을 때 흔히 보는, 밀짚으로 만든 바구니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특히 5번가의 큰 백화점 같은 데 앞에 많이 서 있다. 어쨋든, 내 옆에 앉은 수녀가 바닥에 바구니를 떨어뜨려서 내가 그것을 집어 주었다. 나는 수녀에게, 자선단체니 뭐니를 위해 기금을 모으려고 나와 있냐고 물어 보았다. 수녀는 아니라고 말했다. 수녀는, 짐을 쌀 때 바구니가 수트케이스 안에 들어가지 않아서 들고 다니는 거라고 말했다. 수녀는 사람을 쳐다볼 때, 아주 멋진 미소를 지었다. 수녀는 코가 크고, 별로 멋이 없는 철테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굉장히 친절한 인상을 풍겼다. ‘전 수녀님들이 기금을 모으고 계신 줄 알았죠,’ 하고 나는 수녀에게 말했다. ‘제가 조금 기부를 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나중에 기부금을 모을 때 그 돈을 쓰실 수 있을 거예요.’
‘오, 정말 고마운 말이에요,’ 하고 수녀가 말했다. 그 수녀의 친구인 다른 수녀가 나를 넘어다 보았다. 그 수녀는 커피를 마시면서 조그만 책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성경 같이 보였지만 성경치고는 너무 얇았다. 하지만 그건 성경 비슷한 책이었다. 두 사람은 토스트와 커피만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게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내가 베이컨과 달걀 또 그밖에 뭘 먹고 있는데 다른 누군가는 토스트와 커피를 먹고 있다면 난 그게 싫다.
그들은 내가 기부금으로 10 딸라를 내는 것을 허락했다. 그들은 내가 그 만한 돈을 내도 되냐고 계속 물었다. 나는 돈을 꽤 많이 가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내 말을 믿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내 돈을 받았다. 두 사람이 너무 고맙다고 계속해서 말하는 바람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나는 얘기를 일반적인 화제로 돌려서 지금 어디 가시는 길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들은, 자기들은 학교 선생들이고 방금 시카고에서 오는 길이며, 168번가나 186번가 아니면 위쪽에 있는 어떤 수도원에 선생으로 부임하러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철테 안경을 쓴 내 옆의 수녀는, 자기는 영어를 가르치고 자기 친구는 역사와 미국 정치를 가르친다고 말했다 그 때 나는 갑자기, 영어를 가르친다는 그 수녀가 어떤 영문 작품을 읽을 때 수녀니 뭐니로서 어떤 생각을 하는 지가 몹시 궁금해졌다. 반드시 어떤 성적인 내용이 담긴 책이 아니라 연인들이니 뭐니 하는 게 나오는 책 말이다. 예를 들어, 토마스 하디가 쓴「귀향」에 나오는 유스타시아 바이를 보자. 그녀는 뭐 별로 쎅시하거나 그렇진 않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수녀라면 저 유스타시아 바이의 애기를 읽을 때 어떤 생각을 할 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물론 나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영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라고 말했다.
‘오, 그래요? 오, 기분 좋은데요.’ 하고 영어를 가르치는 안경 낀 수녀가 말했다. ‘올핸 무슨 책을 읽었어요? 정말 알고 싶은데요.’ 그 수녀는 정말 좋은 분이었다.
‘글쎄요, 대부분 앵글로 쌕슨 계통의 책을 읽었어요. 「베어 울프」, 그리고 「그렌델」 또 「로드 랜달 내 아들」 그런 것들이죠. 하지만 가끔 과외 학점을 따려고 다른 책들도 읽었죠. 토마스 하디의「귀향」하고 「로미오와 쥴리엣」을 읽었어요.’
‘오,「로미오와 줄리엣」! 멋져라! 그 책 좋지 않았어요?’
그 수녀는 정말이지, 보통 수녀같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네, 좋았어요. 정말 좋은 책이었어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로 마음에 남는 책이었어요.’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기억나요?’
사실을 말하자면, 수녀와「로미오와 줄리엣」얘기를 한다는 게 좀 당황스러웠다. 내 말은, 그 희곡은 몇몇 부분에서는 꽤 쎅시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은 수녀니 뭐니이다. 하지만 나한테 물어 봤으니 잠시 그것에 대해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글쎄요, 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요,’ 하고 나는 말했다. ‘제 말은, 그들이 좋긴 하지만 ― 잘 모르겠어요. 어떤 때는 정말 짜증나게 만들기도 하거든요. 재 말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었을 때보다는 머큐티오가 죽었을 때 더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은, 저 머큐티오가 그 다른 사람 ― 쥴리엣의 사촌인데 ― 이름이 뭐더라 ― 그 사람한테 죽고 난 뒤로는 로미오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던데요.’
‘티볼트.’
‘맞아요. 티볼트,’ 하고 내가 말했다 ― 나는 언제나 그 친구의 이름을 잊어버린다. ‘그건 로미오의 잘못이었어요. 제 말은, 내가 그 희곡에서 제일 마음에 든 사람은 저 머큐티오라는 거예요. 잘 모르겠어요. 저 몬태규니 캐플릿이니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괜찮아요 ― 특히 쥴리엣이 그렇지만 ― 그런데 저 머큐티오는 ―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그 사람은 아주 멋있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재미도 있고 그렇거든요. 사실은, 전 누가 죽음을 당하면 미치겠어요 ― 특히 아주 멋있고 재미있고 그런 사람이 죽으면 그래요 ― 그런데 그건 그 사람이 잘못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거든요.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은 건, 적어도 자기들 잘못이에요.’
‘어느 학교에 다니고 있지요? 하고 수녀가 나에게 물었다. 그 분은 아마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제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나 보다.
나는 펜시라고 말했는데, 그 분은 그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 것같았다. 그 분은 아주 좋은 학교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학교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자 다른 수녀, 저 역사와 정치를 가르친다는 수녀가 이제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분들의 계산서를 빼앗았지만 그 분들은 내가 돈을 내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안경을 쓴 수녀는 억지로 내게서 계산서를 빼앗았다.
‘잘 해 줘서 고마와요,’ 하고 그 분은 말했다. ‘정말 아주 멋있는 학생이에요.’ 그 분은 정말 멋있는 분이었다. 그 분은 기차에서 만난 저 어네스트 모로우의 엄마하고 좀 닮았다. 그 분이 미소지을 땐 특히 그랬다. ‘학생하고 정말 재미있게 얘기했어요.’ 하고 그 분은 말했다.
나도, 그 분들하고 얘기한 게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내 말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 분들하고 얘기하면서 줄곧, 그 분들이 갑자기 내가 카톨릭 신자인지 아니지 물어보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재미있게 얘기를 했을 것이다. 카톨릭 신자들은 항상, 누가 카톨릭이 아닌가 하고 알아내려 하거든. 나한텐 그런 경우가 많이 있었다, 왜냐하면 내 성이 아일랜드 계통이고 아일랜드 계통의 사람들은 대부분 카톨릭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우리 아버지가 한 때 카톨릭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엄마와 결혼하면서 카톨릭을 떠났다. 하지만 카톨릭 신자들은 성을 몰라도 그가 카톨릭인지 아닌지를 항상 알아 내려고 든다. 나는 우튼 학교에 있을 때 루이스 고만이라고 하는 카톨릭 친구를 안 적이 있다. 그는 내가 거기서 처음 알게 된 아이였다. 학교가 시작하던 날, 우리는 양호실 밖에 있는 두 걔의 의자에 앉아서 신체검사를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테니스 얘기를 좀 하게 되었다. 그는 테니스에 무척 관심을 갖고 있었고 나도 또한 그랬다. 그는 여름마다 포리스트 힐즈에서 열리는 전국 대회를 보러 갔었다고 말했는데 나도 여름마다 거기에 갔었다. 이어서 우리는 잠시 몇몇 잘하는 테니스 선수 얘기를 했다. 그는 나이에 비해서 테니스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었다. 정말 그랬다. 그리고 나서 그는 얘기를 하는 중에 갑자기 나한테 물었다. ‘혹시 시내에 카톨릭 성당이 어디 있는 지 아니?’ 사실은, 그가 물어보는 말투로 볼 때, 내가 카톨릭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 분명했다. 정말 그랬다. 그가 무슨 편견을 가졌다거나 그래서가 아니라, 그저 알고 싶어서 그런 것이었다. 그는 테니스니 뭐니를 가지고 얘기를 나누는 게 재미있는 것 같았는데, 내가 카톨릭이니 뭐니였다면 더욱 얘기를 즐겼을 것이다. 이런 게 나를 짜증나게 만든다니까. 그 때문에 얘기를 망치거나 그랬다는 게 아니다 ― 그렇지 않았다 ― 하지만 그딴 건 전혀 얘기에 도움이 안된다는 얘기를 하자는 것뿐이다. 그래서, 수녀들이 내가 카톨릭인지 어떤지를 물어 보지 않은 게 좋았다는 것이다. 그 분들이 그런 걸 물어 보았다 해도 얘기를 망쳐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카톨릭 신자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는 건 아니다. 나는 그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카톨릭 신자라면 아마 그들과 비슷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전에 얘기했던 저 슈트케이스 얘기와 비슷한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건 얘기를 나누는데 아무런 쓸 데도 없다는 것이다. 내 말은 그저 그런 것이다.
그들이 가기 위해서 일어났을 때, 수녀들 말이다, 나는 정말 멍청하고도 당황스런 짓을 했다. 나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인사를 하려고 일어났을 때 실수로 그만 그 분들의 얼굴에 연기를 뿜었던 것이다. 그럴려고 그런 게 아닌데 그런 것이다. 나는 미친 듯이 사과를 했고 그 분들은 그 일에 대해서 아주 관대한 태도를 보여 주었다. 그래도 어쨋든 무지 미안한 일이었다.
그 분들이 가고 난 뒤에, 나는 기부금으로 10 딸라밖에 내지 않은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실은, 쌜리 헤이즈 그 계집애하고 영화보러 약속을 해 놓았기 때문에 극장 표니 뭐니를 위해서 약간 돈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도 미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돈. 그 놈의 돈이 항상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니까.
제 16장
아침을 먹고 나니 오전 열두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두시에 쌜리 계집애를 만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어서 나는 좀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수녀들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 분들이 학교에서 수업이 없을 때는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기부금을 모을, 저 낡아빠진 밀짚 바구니 생각을 했다. 나는 엄마나 또 누구, 이모, 아니면 저 쌜리 헤이즈의 미치광이 같은 엄마가 낡아빠진 밀짚 바구니를 들고 어떤 백화점 앞에 서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부금을 모으는 광경을 상상하려고 애를 썼다.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엄마는 쉽게 상상이 되었는데, 저 두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이모는 자선단체의 일을 꽤 잘한다 ― 이모는 적십자니 뭐니 에서 일을 많이 한다 ― 하지만 이모는 옷을 잘 차려입고 다닌다, 자선적인 일을 할 때는 언제나 좋은 옷을 입고 립스틱이니 뭐니를 잔뜩 바른다. 나는, 그런 일을 할 때 검은 옷을 입어야 하고 립스틱을 바르면 안된다고 한다면, 이모가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저 쌜리 헤이즈의 엄마는 어떤가. 체, 그 여자가 바구니를 들고 그런 일을 하려면, 사람들마다 기부금을 내면서 그 여자의 엉덩이에다 입을 맞춰 줘야 할 거다. 만일 사람들이 그냥 바구니 안에다 돈만 집어넣고 그 여자를 무시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버린다면, 그 여자는 삼십 분도 안되서 그만 두고 말 것이다. 싫증이 나서 바구니를 돌려 주고는 어떤 아니꼬운 데로 점심이나 먹으러 갈 것이다. 내가 그 수녀들이 좋은 점이 바로 그거다. 한가지만 말하면, 그 분들은 점심을 먹으러 그런 아니꼬운 데로는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마음이 되게 우울해졌다. 그 분들이 점심이나 뭐나를 먹으러 그런 아니꼬운 데로는 가지 않는다는 것말이다. 그런 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어쨋든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브로드웨이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저 몇 년 동안 거기 가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밖에, 일요일에 여는 레코드 가게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내가 피비한테 사 주고 싶은 ‘리틀 셜리 빈즈’ 라는 레코드가 있었다. 그것은 아주 구하기 어려운 레코드였다. 그것은 앞니 두 걔가 튀어나온 게 부끄러워서 집밖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는 어떤 꼬마 여자 애를 노래한 것이었다. 나는 펜시에서 그 노래를 들은 적이 있었다. 윗층에 있는 어떤 놈이 그것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그걸 갖다 주면 피비가 깜박 죽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에게서 그걸 사려고 애를 썼지만 그 놈은 그것을 팔지 않았다. 그건, 저 흑인 여자 가수 에스텔 플레쳐가 약 이십년 쯤 전에 만든 거로, 아주 오래된 좋은 레코드였다. 그 여자는 노래를 딕시랜드 풍으로 매춘부 냄새가 나게 부르지만, 전혀 감상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만일 백인 여자가 그 노래를 불렀다면, 가능하면 귀엽게 부르려고 애를 썼겠지만 저 에스텔 플레쳐는 그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정말 내가 들어 본 중에서 제일 좋은 레코드 중의 하나였다. 나는, 그걸 어떤 가게에서 사 가지고 공원까지 가지고 갈 생각이었다. 피비는 일요일에는 롤러 스케이트를 타러 공원에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피비가 주로 어디서 노는 지 알고 있었다.
전날처럼 그렇게 춥진 않았지만, 아직 해가 나오지 않아서 산책하기에 별로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 교회에서 금방 나온 것같은 어떤 가족 ―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여섯 살 정도 된 꼬마 ― 이렇게 셋이서 바로 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좀 가난한 사람들 같았다. 아버지는 가난한 사람들이 멋을 내고 싶을 때 많이 쓰는 저 진주빛깔 나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와 그의 부인은 애한테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얘기를 나누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어린애는 꽤 멋을 냈다. 아이는 보도가 아니라 가장자리 돌 바로 옆에 내려서서 찻길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아이는, 꼬마들이 늘 그러듯이, 아주 똑바로 걸어가고 있다는 듯이 걸어가면서 내내 노래를 부르거나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 무슨 노래를 부르나 하고 그 아이 가까이 다가갔다. 그 아이는, ‘한 아이가 호밀밭을 지나서 오는 한 아이를 잡으면,’ 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이는 아주 작고 예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가 그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때, 차 한 대가 옆으로 오는 게 보이더니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났다. 하지만 부모는 아이 쪽으로 돌아보지도 않았고 아이는 포석 옆에서 ‘한 아이가 호밀밭을 지나오는 아이를 잡으면,’ 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계속 걸어갔다. 그것을 보았을 때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이제 기분이 우울하지 않았다.
브로드웨이는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서 혼잡했다. 일요일이고 아직 열 두시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로 들끓고 있었다. 사람들은 파라마운트니 애스터니 스트랜드니 캐피탈이니 하는 극장으로 몰려가는 중이었다. 저마다 잘 차려 입고 있었는데, 그건 일요일이니 그런 것이었다. 그게 더욱 짜증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제일 아니꼬운 것은, 전부들 영화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누군가 할 일이 없어서 영화를 보러간다는 건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영화를 보고 싶어서 그것도 빨리 가려고 잰 걸음으로 가는 건 정말 더럽게 우울한 일이다. 특히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한 블록이나 되는 길이로 끔찍하게 긴 줄을 서 가지고 자리니 뭐니를 잡으려고 참고 서 있는 걸 볼 땐 그렇다. 정말이지, 그 놈의 브로드웨이에서 빨리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나는 운이 좋았다. 내가 처음 들어간 레코드 가게에 ‘리틀 셜리 빈즈’가 한 장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구하기 어렵다고 5 딸라나 내라고 했지만 나는 걔의치 않았다. 정말이지, 나는 갑자기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걸 빨리 피비한테 주고 싶어서 공원까지 가는 시간을 기다릴 수가 없었다.
레코드 가게에서 나와서 나는 약방을 지나치다가 거기에 들어갔다. 나는, 제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직 집에 오지 않았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전화박스에 들어가서 전화를 걸었다. 문제는, 엄마가 전화를 받아서 전화를 끊어야 했던 것이다. 나는 걔네 엄마하고 길게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어쨋든, 계집애 엄마하고 전화로 얘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제인이 집에 왔는지는 물어봤어야 했다. 그런 걸 물어본다고 해서 걔네 엄마가 날 죽이진 않았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런 일은 정말 기분이 나야 하는 법이다.
아직 표를 사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신문을 사서 무슨 영화를 하는 지를 찾아 보았다.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세 걔 정도밖에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뭘 했냐 하면, 「내 사랑을 난 알아요」라는 연극의 표를 아래층 앞자리로 두 장 샀다. 그것은 자선 공연이니 그런 거였다. 별로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표를 샀다고 말하면 허영심의 여왕인 저 쌜리 계집애가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허튼 소리를 지껄일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런트니 뭐니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계집애는 런츠니 뭐니가 나오면서 꽤 잘난 체하고 현학적인 연극을 좋아한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나는 연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만큼 나쁜 것은 아니지만 뭐 크게 좋다고 할 건 없다. 무엇보다도 나는 배우들이 싫다. 그들은 절대로 보통 사람들이 행동하듯이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런다고 생각한다. 몇몇 좋은 배우들은 조금 그렇게 행동하기도 하지만 결코 자연스럽게 그러지는 않는다. 그리고 만일 어떤 배우가 정말 좋은 배우라면 그는 자기가 좋은 배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게 그의 행동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로렌스 올리비에 경을 보자. 나는 「햄릿」에서 그를 본 적이 있다. 작년에 D.B.가 나하고 피비를 데리고 갔었다. 그는 먼저 우리한테 점심을 사 준 다음에 영화를 보러 갔다. 그는 벌써 그걸 본 적이 있었는데, 점심을 먹으면서 그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나도 그게 굉장한 연극이러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로렌스 올리비에 경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지 난 잘 모르겠다, 그저 그 뿐이다. 그는 멋진 목소리를 가졌고, 굉장히 잘 생긴 배우이다. 그리고 그가 걷거나 결투를 하거나 그럴 때는 보기에도 멋이 있다, 하지만 D.B가 말한 햄릿의 모습과는 전혀 닮지 않았다. 그는 저 무슨 장군의 모습이지, 우울하고 고민하는 그런 모습은 아니다. 그 영화에서 제일 좋은 부분은, 저 오필리아의 오빠 ― 제일 끝에 햄릿과 결투하는 사람 말이다 ― 가 길을 떠날 때 아버지가 그에게 여러 가지 충고를 해 주는 그런 대목이다. 어버지가 오빠에게 충고를 늘어 놓고 있는데, 오필리아는 자기 오빠의 칼집에서 칼을 꺼내서 그를 놀리며 오빠하고 장난질을 하고 있는 대목이다, 오빠는 아버지가 늘어 놓는 허튼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체하고 있고. 그 장면은 멋있었다. 정말 그 장면에선 한 방 먹었다니까. 하지만 그런 장면은 별로 많지 않다. 피비가 제일 좋아한 대목은 햄릿이 걔의 머리를 두드려 주고 있는 데였다. 피비는 그게 재미있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랬다. 내가 뭘 할 건가 하면 그 희곡을 한 번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 하면, 언제나 그런 걸 혼자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우가 연기할 땐, 나는 거의 귀를 기울이지도 않는다. 나는 그가 순간마다 무슨 되먹지 않은 행동을 하지 않나 하고 신경을 쓰는 것이다.
나는 런츠 연극 표를 산 다음에 공원에 가려고 택시를 잡았다. 돈이 좀 떨어져 가기 때문에 지하철이나 뭐나를 탈 걸 하고 생각했지만, 나는 망할 놈의 브로드웨이를 가능하면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공원은 지저분했다. 날씨는 그렇게 춥진 않았지만, 아직 해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공원 안에는 걔똥이나 침 뱉어 놓은 거나 늙은이들이 버린 담배 꽁초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같았다. 그리고 벤치들은 죄다 거기 앉으면 엉덩이가 젖을 것같이 보였다. 그런 게 기분을 우울하게 했다. 그리고 걸어가는 동안에, 왜 그런지 모르게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크리쓰마스가 별로 남지 않은 것같은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뭐가 오고 있다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산책길 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왜냐 하면 피비는 공원에 나오면 항상 거기서 놀기 때문이다. 피비는 음악당 근처에서 스케이트 타는 걸 좋아한다. 우스운 일이다. 나도 어렸을 때는 거기서 스케이트를 타면서 놀았다.
하지만 내가 거기 갔을 때는 피비는 그 주변에 없었다. 꼬마 아이들이 몇 명 스케이트니 뭐니를 타고 놀고 있었고 남자 아이 두명이 플라이 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피비는 없었다. 나는 나이가 피비 정도 되 보이는 여자 아이가 벤치에 혼자 앉아서 스케이트 끈을 매고 있는 걸 보았다. 나는, 어쩌면 그 애가 피비를 알아서 지금 피비가 어디 있는지 뭐 그런 걸 물어보려고 그 아이한테 가서 옆에 앉아서 물어 보았다, ‘혹시 피비 코울필드 아니?’
‘누구요?’ 하고 그 애가 말했다. 그 아이는 블루 진에다 쉐타를 스무 걔나 껴입고 있었다. 모양이 울퉁불퉁한 걸 보니 그 아이의 엄마가 뜨걔질해 준 것 같았다.
‘피비 코울필드. 칠십 일번가에 사는데. 사학년이야, 저기 ―’
‘피비를 알아요?’
‘응, 내가 오빠야. 지금 어디 있는 지 아니?’
‘그 앤 미쓰 콜린스 반이죠?’ 하고 그 아이가 말했다.
‘몰라. 그래. 그런 거 같애.’
‘그럼 박물관에 있을 거예요. 지난 토요일에 우리가 거기 갔었어요,’ 하고 그 아이가 말하였다.
‘어느 박물관이니?’ 하고 나는 그 아이한테 물었다.
그 아이는 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몰라요,’ 하고 그 아이는 말했다. ‘박물관이예요.’
‘알아, 한데, 그림이 있는 박물관이니, 아니면 인디안이 있는 박물관이니?’
‘인디안이 있는 거예요.’
‘고맙다,’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일어나서 가려고 하다가 갑자기, 오늘이 일요일이란 게 생각났다. ‘오늘은 일요일이쟎아,’ 하고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그 아이는 나를 올려다 보더니 말했다. ‘아, 그럼 거기 없어요.’
그 꼬마는 스케이트 끈을 매는 데 무지하게 정성을 들이고 있었다. 손에 장갑이나 뭐니를 끼고 있지 않아서 손이 온통 빨갛게 얼어 있었다. 나는 꼬마가 끈 매는 것을 도와 주었다. 정말이지, 지난 몇 년 동안 스케이트를 만져 보지 못했다. 하지만 어색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마오십년 뒤에라도 내 손에 스케이트를 쥐어 주면 나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끈을 맬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스케이트 끈을 다 매 주자, 꼬마는 나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다. 그 아이는 아주 예의바르고 다감한 꼬마였다. 꼬마의 스케이트 끈을 매 주거나 뭐를 할 때 꼬마가 예의를 차려서 인사를 하는 것을, 정말이지 나는 좋아한다. 대부분 아이들이 그렇다. 정말 그렇다. 내가 아이한테, 핫 초콜릿이나 뭐나를 먹으러 같이 가지 않을래 하고 묻자 꼬마는 고맙지만 괜찮다고 말했다. 친구를 만나러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언제나 친구를 만나러 간다. 거기엔 졌다니까.
일요일이고 피비는 거기 없었지만, 그리고 날씨가 축축하고 지저분했지만, 나는 공원을 지나서 자연사 박물관 쪽으로 걸어갔다. 스케이트 끈을 매던 꼬마가 말하는 박물관이 거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그 박물관을 손바닥 보듯이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피비는 나와 같은 학교에 다녔는데, 우리는 항상 거기 갔기 때문이다. 미쓰 에이글팅거라는 선생이 거의 매주 토요일 마다 우리를 데리고 거기 갔었다. 어떤 때는 동물들을 구경하고, 어떤 때는 옛날에 인디안들이 만든 물건들을 구경했다. 도기니 밀짚 바구니니 그런 물건들 말이다. 그 생각을 하면 무척 행복해진다. 지금도 기억나는데, 우리는 인디안 물건들을 구경하고 난 뒤에는 보통 큰 극장에서 하는 영화를 보러 갔다. 콜럼버스 영화였다. 영화는 늘, 콜럼버스가 미국을 발견하는 이야기며,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를 졸라서 배를 살 돈을 얻어내는 이야기며 이어서 선원들이 콜럼버스에 대항하여 폭동을 일으키는 이야기 같은 것을 보여 주었다. 콜럼버스 애기 따위에 흥미를 갖는 아이는 하나도 없고, 사탕이나 껌같은 것을 가지고 들어갔기 때문에 극장 안은 정말 맛있는 냄새가 났다. 밖에 비가 오지 않는데도 꼭 비가 오는 것같은 냄새가 나서, 그 안에 있으면 이 세상에서 제일 안락하고 멋지고 물기없는 그런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박물관이 정말 좋았다. 극장에 가려면 인디안 룸을 지나가야 했던 게 생각난다. 그 곳은 아주 긴 방이어서 차례대로 들어가야 했다. 선생님이 먼저 들어가고 이어서 아이들이 들어가는 것이다. 두 줄로 서서 들어가야 하므로 짝이 있게 마련이었다. 대부분 내 짝은 거루트루드 레빈이라는 계집애였다. 그 계집애는 손을 잡기를 좋아했는데, 손이 언제나 끈적끈적하거나 땀이 나거나 그랬었다. 뱌닥은 온통 돌로 되어 있어서, 공기돌이라도 떨어뜨리면 바닥에 사방으로 뛰어 돌아다녀서 선생이 진행을 멈추고, 대체 무슨 일이 났나 하고 돌아 올 정도였다. 하지만 선생은 화를 내지는 않았다, 미쓰 에이글팅거 말이다. 다음에는 저 무지하게 긴 인디안 카누 옆을 지나가는데, 그건 캐딜락 세 대가 쭉 늘어선 만큼이나 길었다. 그 안에는 약 이십 명 정도나 되는 인디안이 타고 있었는데, 몇몇은 노를 젓고, 몇몇은 둘레에 서 가지고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인데, 그 자들은 하나같이 얼굴에 페인트를 칠하고 있는 것이었다. 카누 제일 뒤에는 얼굴에 가면을 쓴 무시무시하게 생긴 자가 있었다. 그 자는 마법사였다. 그 자를 보면 온 몸이 오싹해지곤 했지만, 그래도 나는 그 자가 마음에 들었었다. 또 한가지가 기억나는데, 지나가면서 누가 노나 뭐나를 건드리면, 감시인 중에서 한 사람이 ‘얘들아, 그런 걸 건드라면 못써,’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무슨 경찰이나 그런 사람같이 하는 게 아니고 언제나 아주 멋진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다음엔, 커다란 유리박스를 지나가는데, 그 안에는 인디안들이 막대기를 비벼서 불을 피우고 있고 인디안 여자가 담요를 짜고 있었다. 담요를 짜고 있는 여자는 앞으로 몸을 좀 숙이고 있어서 유방이니 뭐니가 다 보였다. 우리는 언제나 그걸 살짝 보곤 했는데, 여자애들도 그랬다. 하긴 걔네들은 그저 어린애이고 우리처럼 가슴이 없기는 마찬가지니까. 그 다음에는,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여러 걔의 문들 바로 옆에 있는 저 에스키모를 지나갔다. 그는 얼음 호수에 있는 구멍 옆에 앉아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구멍 옆에는 벌써 잡은 고기가 두 마리 정도 있었다. 정말이지, 그 극장은 온통 유리박스였다. 이층으로 된 박스도 있어서, 그 안에는 물웅덩이에서 물을 마시는 사슴들과, 겨울을 지내기 위해서 남쪽으로 날아가는 새들이 있었다. 제일 가까이 있는 새들은 박제를 한 것으로, 전선 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뒤에 있는 것들은 벽에다 그려 놓은 거지만, 진짜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머리를 거꾸로 해서 보면, 그것들은 훨씬 더 서둘러서 날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박물관이 제일 좋은 건, 모든 것들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 거였다. 움직이는 건 하나도 없었다. 거기에 백번이나 간다 하더라도, 그 에스키모는 이제 막 고기 두 마리를 잡아 놓았고, 새들은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으며, 사슴들은 예쁜 뿔과 날씬하고 예뿐 다리를 하고 물웅덩이에서 물을 마시고 있고, 유방이 다 보이는 인디안 여자는 똑같은 담요를 짜고 있을 것이다.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달라지는 게 있다면, 그건 우리 자신이다. 나이가 더 많아지거나 그런 게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우리 자신이 달라진다는 것 뿐이다. 이번엔 오바를 입고 간다거나, 마지막에 같이 줄을 서서 들어갔던 아이가 성홍열에 걸려서 다른 아이가 짝이 되는 그런 것이다. 아니면 미쓰 에이글팅거 대신에 다른 선생이 아이들을 인솔하고 있다든지. 또는 아버지와 엄마가 목욕탕에서 끔찍한 싸움을 하는 소리를 들었다거나, 아니면 길에서 기름이 새어 나와서 무지걔 무늬가 만들어진 물웅덩이를 지나갔다거나 그런 것이다. 내 말은,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지 달라진다는 것이다 ― 그걸 설명하지는 못한다. 또 만약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그러고 싶은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나는 걸어가다가 주머니에서 사냥 모자를 꺼내서 썼다. 나는 거기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날씨가 꽤나 축축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걸어가면서, 옛날에 내가 그런 것처럼 피비가 토요일에 박물관에 가는 생각을 내내 했다. 나는, 내가 보았던 그 똑같은 것들을 피비라면 어떻게 볼까, 그리고 거기 갈 때마다 피비가 어떻게 달라질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게 기분을 우울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뭐 기분이 좋아지지도 않았다. 어떤 것들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야 한다. 그런 것들은 저 커다란 유리박스에 놓고 그대로 놔 두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닌 것이다. 어쨋든, 나는 걸어가면서 그런 생각을 하였다.
나는 놀이터르 지나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아주 조그만 아이들 둘이서 씨이소를 타는 것을 바라보았다. 한 아이는 좀 뚱뚱해서 나는 군형을 맞춰 주려고 마른 아이가 있는 쪽 끝에 손을 갖다 댔다. 하지만 빨리 가 주었으면 하는 것같아서 나는 그냥 거기를 떠났다.
그 때 웃기는 일이 일어났다. 박물관에 도착했을 때, 나는 갑자기 백만 딸라를 준다고 해도 그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든 것이다 ― 그 놈의 공원을 내내 걸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갑자기 박물관이 마음이 내키지 않은 것이다. 만일 피비가 있었다면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피비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박물관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빌트모어로 달려갔다.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쌜리와 빌어먹을 데이트 약속을 해 놓은 것이다.
제 17장
거기 도착했을 때 시간이 좀 남아서, 나는 로비의 시계 옆에 있는 가죽 의자에 앉아서 여자들을 쳐다보았다. 벌써 많은 학교가 방학을 해서, 백만명이나 되는 계집애들이 주위에 앉거나 서서 데이트 상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리를 꼬고 앉은 계집애들과 다리를 꼬지 않고 앉은 계집애들, 다리가 죽여주는 계집애들과 다리가 너저분한 계집애들, 멋쟁이처럼 보이는 계집애들과 사실 알고 보면 되먹지 않을 그런 계집애들. 그건 정말 좋은 구경거리였어, 내 말이 무슨 뚯인지 안다면 말야. 어떤 의미에서는 좀 우울한 일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대체 저 애들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으니까 말이다. 그들이 학교나 대학을 나왔을 때 말이다. 아마 대부분은 멍청한 자식들하고 결혼할 것이다. 자기들 차는 1갤론으로 몇 마일이나 갈 수 있다는 그런 애기만 하는 자식들. 골프나, 아니면 탁구같은 멍청한 시합에서 지기라도 하면 화를 내는 유치한 자식들. 더럽게 비열한 자식들. 책은 하나도 읽지 않는 자식들. 더럽게 따분한 자식들. ― 하지만 이건 조심해야 한다. 내 말은, 어떤 자식들을 따분한 놈들이라고 부르느냐 하는 것 말이다. 나는 따분한 자식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정말이야. 내가 엘크톤 힐즈에 있었을 때, 해리스 매클린이라는 놈하고 두 달 정도 같은 방을 쓴 적이 있다. 그 놈은 머리가 좋으니 뭐니 했지만, 내가 지금까지 만난 중에 제일 따분한 놈이었다. 그 놈은 아주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거의 쉬지 않고 지껄여댔다. 그 놈은 계속해서 지껄이는데, 끔찍한 게 뭐냐 하면, 그 중에서 들을 만한 얘기는 하나도 없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 놈도 할 줄 아는 게 한가지 있었다. 그 새끼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휘파람을 잘 불었다. 그 놈은 침대를 정돈하거나 벽장 속에 뭔가를 건다 ― 그 놈은 항상 벽장에 뭔가를 건다 ― 그게 사람을 짜증나게 한다니까 ― 그런데 그런 걸 하면서, 그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로 지껄이지 않으면 언제나 휘파람을 분다. 그 놈은 클래식 음악까지도 휘파람을 불었는데, 대부분은 재즈를 불어댔다. 그 놈은, ‘양철지붕 블루스’와 같은 아주 재즈풍의 노래까지 멋지고 수월하게 불어댔기 때문에 ― 벽장에 뭔가를 걸면서 말야 ― 거기엔 깜박 죽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그 놈한테 넌 참 무지하게 휘파람을 잘 분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내 말은, 누구한테 가서, ‘휘파람을 무지하게 잘 부는데.’ 하고 말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비록 그 놈은, 내가 반쯤은 미칠 지경이 될만큼 따분한 놈이었지만, 그래도 휘파람 하나는 정말 끝내 주게 불었기 때문에, 내가 들어 본 중에서 제일 훌륭했다, 그와 거의 두 달이나 같은 방을 쓴 것이다. 그래서 난 따분한 놈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을 삼가야 한다. 그래서 멋진 계집애들이 그런 놈들과 결혼하는 걸 보더라도 과히 유감스럽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남 모르게 휘파람을 엄청나게 잘 부른다거나 그럴지도 모른다. 도대체 누가 그런 걸 안단 말이냐? 적어도 나는 모른다.
마침내, 쌜리 계집애가 계단을 올라오기 시작해서 나는 그녀를 맞으러 내려갔다. 그 계집애는 멋진 모습이었다. 정말 그랬어. 그 계집애는 검정색 오바에, 약간 검은색의 베레모를 쓰고 있었다. 베레모를 쓰는 법이 없는 계집애지만 그 베레모는 근사해 보였다. 웃기는 일이 뭐냐 하면, 그 계집애를 보는 순간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난 미친 놈이다. 나는 그 계집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그 계집애와 사랑에 빠지고 싶은 생각이 들고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정말 하늘에 맹세코, 나는 미친 놈이야. 그건 인정해.
‘홀든!’ 하고 계집애가 소리를 질렀다. ‘만나서 반가워! 이게 몇 년만이니.’ 계집애는 어디서 누구를 만나면 당황할 정도로 큰소리로 떠들었다. 그 계집애는 더럽게 잘 생겼기 때문에 그걸 탓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언제나 당황했다.
‘만나서 반갑다,’ 하고 나는 말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어떻게 지내니?’
‘물론 잘 지내지. 내가 늦었니?’
나는 계집애한테 아니라고 말했지만 사실, 십분 정도는 늦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건 조금도 걔의치 않았다. 「쌔터데이 이브닝 포스트」니 그런 데 나오는 만화를 보면 하나 같이, 여자가 늦게 나온다고 길모퉁이에서 남자들이 더럽게 화를 내며 서 있는 게 나오는데. 그런 건 부질없는 이야기다. 계집애가 나타났을 때 근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면, 누가 늦는다고 뭐라 그러겠는가?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빨리 가야겠다,’ 하고 나는 말했다. ‘연극이 두시 사십오분에 시작하거든.’ 우리는 택시를 타려고 게단을 내려갔다.
‘우리 뭘 보지?’ 하고 계집애가 말했다.
‘모르겠어. 런츠. 그거 밖에 표를 사지 못했거든.’
‘런츠라구! 오, 멋지다.’
그 계집애는 런츠 연극이라면 환장한다고, 전에 말했었지?
우리는 극장으로 가는 택시안에서 조금 희롱질을 했다. 계집애는 루즈를 칠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내가 끈질기게 구니까 저도 어쩌는 수가 없었다. 택시가 교통 때문에 갑자기 서는 바람에, 두 번이나 의자에서 고꾸라질 뻔했다. 망할 놈의 운전사들은 절대 다른 차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차를 몬다, 하늘에 맹세코, 그들은 다른 차엔 신경을 안 쓴다. 이윽고 나는, 계집애를 한동안 끌어안고 있다가, 내가 얼마나 미친 놈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계집애를 사랑하느니 뭐니하고 지껄여댔다. 물론, 그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런 말을 한 순간에는 진정으로 그런 마음이었던 것이다. 난 미친 놈이야. 하늘에 맹새코, 난 미친 놈이다.
‘오, 나도 널 사랑해,’ 하고 계집애가 말했다. 그리고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약속해, 머릴 기르겠다구. 짧은 머린 이제 촌스럽게 보여. 하지만 네 머린 정말 멋있어.’ 멋있다구? 젠장.
연극은 내가 본 것만큼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너저분하긴 마찬가지였다. 저 부부가 나오는 게 벌써 오십만 번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젊으니 뭐니 할 때부터 연극이 시작하는데, 여자의 부모는 여자가 남자하고 결혼하는 걸 반대하지만, 여자는 어쨋든 그와 결혼한다. 그 다음에 그 부부는 늙어간다. 남편은 전쟁터로 나가고, 부인은 술주정뱅이인 오빠가 있다. 나는 과히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내 말은, 가족중에 누가 죽거나 뭐하면 별로 재미가 없다는 말이다. 그들은 전부 다 배우들인 것이다. 남편하고 부인은 꽤 멋있는 부부이다 ― 아주 재기가 있고 그렇다 ― 하지만 난 그들한테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한가지 예를 들면, 그들은 연극 내내 차나 뭐를 계속 마신다. 그들을 볼 때마다, 어떤 시종이 그들 앞에 차를 갇다 놓거나 부인이 누군가에게 차를 따라 준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는 것이다 ― 사람들이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걸 보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알프레드 런트와 린 폰태인은 멋진 부부였지만 난 그들이 별로 마음애 들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달랐다는 건 인정하겠어.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행동하지도 않고 또 배우들처럼 행동하지도 않는다. 무슨 말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긴 하다. 그들은 자기들이 명사니 뭐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다. 내 말은, 그들은 괜찮은 사람들이라는 거지만, 지나치게 괜찮다는 말이다. 그 중에 하나가 일장 연설을 마치면 다른 하나가 바로, 무슨 말인지 재빠르게 지껄이는 것이다. 마치 그 사람들은 지껄이고 또 남의 말을 가로채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문제는 뭐냐 하면, 그들이 너무 그런 걸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말이다. 그들은, 그리니치 빌리지의 저 어니가 피아노를 치는 것하고 좀 비슷했다. 만일 누가 너무 멋진 일을 했다고 치자, 그런데 조금 있다가 자제하지 않으면 좀 잘난 체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땐 이미 멋진 게 아니다. 하지만 어쨋든, 그들은, 런츠 부부 말이다, 그 연극에서 그래도 유일하게 영리한 것처럼 보였다. 그건 인정해야 돼.
1막이 끝나고 우리는, 거기 온 다른 얼간이들처럼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 그건 정말 장관이었어. 일생에 아니꼬운 작자들이 그렇게 많은 건 본 적이 없을 거야, 하나같이 귀청이 떨어져 나가라 하고 담배를 피워대면서 자기들이 얼마나 똑똑하다는 걸 남들이 들으라고, 연극에 대해서 떠들어대는 거야. 어떤 멍청한 영화배우 하나가 우리 옆에서 담배를 피우며 서 있었어. 이름은 모르겠는데, 전쟁 영화에서 진짜 전투가 벌어지기도 전에 항상 겁을 먹는 그런 역할을 하는 작자였다. 그 작자는 무지하게 멋있는 어떤 금발머리하고 같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있는 걸 모른 체하면서 따분해서 못견디겠다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더군. 정말 무지하게 겸손하지 않아? 거기엔 정말 졌어. 쌜리 계집애는 런츠 부부를 열심히 칭찬하는 것외엔 별로 말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그건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서 멋있게 보이려고 열심히 꾸미고 있기 때문이었지. 그러다가, 갑자기 로비 건너 편에 자기가 아는 어떤 멍청한 자식이 있는 걸 보았다. 흑회색 플란넬 양복에 체크 무늬 조끼를 입고 다니는 그런 자식들 있잖아. 아이비 리그 자식들 말이다. 정말 대단하지 않아! 그 놈은 벽 옆에 서서 미친 듯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아주 지루해서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쌜리 계집애는, ‘어디서 쟤를 본 적이 있는데.’ 하고 계속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그 계집애는 어딜 가든지 누군가 아는 작자가 있었다, 아니면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계집애가 정말 지겨울 정도로 그딴 소리를 계속해서 지껄이길래, 나는, ‘저 놈을 알면, 가서 열렬하게 키쓰라도 해 주지 그러냐? 좋아할 텐데.’ 하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계집애는 더럽게 화를 내더군. 마침내, 그 얼간이가 계집애를 알아 보고 이쪽으로 와서 인사를 하였다. 그들이 인사하는 걸 봤어야 하는데. 아마 이십년은 만나지 못한 줄 알았을 거야. 어렸을 때 같은 목욕통에서 목욕이나 뭐나를 하고 지낸 줄 알았을 것이다. 정말 진부한 짓 아냐? 구역질이 났다니까. 웃기는 건 뭐냐 하면, 그들은 어떤 아니꼬운 파티에선가 아마 딱 한번 만났다는 것이다. 마침내, 그들이 찧고 까부는 짓을 다 했을 때, 쌜리 계집애가 우리를 인사시켰다. 그 작자의 이름은 조지 뭐였다 ―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 그리고 앤도버에 다니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일 아냐! 쌜리 계집애가 그 작자한테 연극이 어땠냐고 물었을 때 그 작자를 봤어야 하는데. 그 작자는, 어떤 물음에 대답을 하기 전에 무슨 말을 할 지를 꾸미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사깃꾼같은 작자였다. 그 작자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다가 뒤에 있는 어떤 여자의 발을 밟았다. 아마 그 여자의 발톱이 하나도 성하지 못했을 거야. 그 작자는 연극 자체는 별 건 아니지만, 런츠 부부는 말할 것도 없이 천사 그 자체라고 말했다. 천사라. 제기랄. 천사라구! 거기엔 졌다. 그 다음에 그 작자와 쌜리 계집애는 자기들이 아는 사람들 얘기를 죽 늘어 놓기 사작했다. 그건 정말,지금까지 들어 본 대화중에서 제일 아니꼬운 대화였다. 그들은 계속해서 가능하면 빨리 어떤 곳과, 거기 사는 사람들 생각을 하고 그들의 이름을 주어 섬기는 것이었다. 다시 들어 갈 시간이 되었을 땐 정말 게우고 싶은 기분이었다. 정말 그랬어. 그리고 다음 막이 끝났을 때, 그들은 다시 그 빌어먹을 지루한 애기를 늘어 놓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더 많은 곳과 거기 사는 사람들을 생각해 내는 것이었다. 가장 나쁜 건 뭐냐 하면, 그 얼간이가 저 아니꼬운 아이비 리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었다. 아주 싫증나 있고 속물같은 저 목소리말야. 그 자식은 꼭 무슨 계집애같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 자식은 내 데이트 상대에게 지분덕거리는 짓도 서슴치 않았다, 걔새끼. 연극이 끝나고 그 자식이 우리하고 두 불럭이나 같이 걷길래, 나는 잠시나마, 그 자식이 우리하고 같이 택시를 타려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자식은 자기와 비슷한 아니꼬운 자식들과 칵테일을 마실 약속이 돼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자식들이 체크 무늬 조끼들을 입고 무슨 바아에 들어 앉아서, 저 피곤하고 속물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연극이나 책 또는 여자들을 비평하고 있을 게 상상이 됐다. 그런 자식들은 정말 구역질이 난다니까.
거의 열 시간이나 그 아니꼬운 앤도버 자식의 얘기를 듣고 난 뒤에, 우리가 택시에 탈 때 쯤 되어서, 나는 쌜리 년이 좀 싫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계집애를 집에 데려다 줘 버리자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 정말 그랬어 ― 하지만 계집애는, ‘좋은 생각이 났다!’ 하고 말했다. 그 계집애는 언제나 좋은 생각이 난다니까. ‘들어 봐,’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저녁 먹으려면 몇시까지 집에 가야 돼니? 내 말은, 지금 뭐 바쁜 일이 없냐 하는 거야. 정해진 시간에 집에 들어가야 돼?’
‘나 말야? 아니. 그런 시간은 없어,’ 하고 내가 말했다. 정말이지 마음 속의 말은 결코 하지 못한다. ‘왜?’
‘래디오 시티에 스케이트 타러 가자!‘
그 계집애는 항상 그런 생각을 한다.
‘래디오 시티에 스케이트 타러 가자구? 지금 당장 말야?’
‘한 시간 정도. 가고 싶지 않아? 가고 싶지 않다면 ―’
‘가고 싶지 않다군 하지 않았어,’ 하고 나는 말했다. ‘좋아. 니가 가고 싶다면.’
‘정말이니? 가고 싶지 않으면 그렇다구 해. 내 말은, 가든 안가든 난 별로 상관없어.’
하지만 별로 그런 것 같지 않았다.
‘거기선 멋있는 스케이트 옷도 빌려 줘,‘ 하고 쌜리 계집애가 말했다. ‘쟈넷 컬츠도 지난 주에 빌렸대.‘
계집애가 그렇게 가려고 하는 이유도 거기 있었다. 계집애는 엉덩이 위까지 내려오는 그런 조그만 옷을 입고 자기를 과시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거기 갔는데, 우리한테 스케이트를 주고 나서, 쌜리한테는 엉덩이를 위로 들어올리는 그런 파랑색 옷을 주었다. 그런데, 계집애는 그런 옷을 입으니까 정말 예뻤다. 그건 인정해야 돼. 그리고 자기도 그걸 알고 있었다. 계집애는, 자기의 조그만 엉덩이가 얼마나 귀여운지 나보고 보라고 내 앞에서 계속 걸어다녔다. 계집애는 정말 엉덩이도 귀여웠다. 그것도 인정해야 돼.
그런데 웃기는 건 뭐냐 하면, 우리가 거기서 제일 스케이트를 못탄다는 거였다. 정말이야, 제일 못탔어. 게다가 쇼를 했지 뭐냐. 쌜리 년은 발목이 자꾸 안으로 굽어서 거의 얼음에 닿을 지경이었다. 그건 바보같이 보일 뿐만 아니라 아마 되게 아팠을 거야. 내 발도 아팠다. 발이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우린 정말 대단하게 보였을 거야. 그리고 더 나쁜 건 뭐냐 하면, 거기 있는 수백명이나 되는 구경꾼들 말인데, 그 자들은 사방에 서 가지고 누가 고꾸라지지나 않나 하고 둘러보는 것밖에는 다른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안쪽에 테이블에 가서 뭐 좀 마시지 않을래?‘ 하고 마침내 내가 말했다.
‘니가 오늘 하루 종일 한 생각중에 그게 제일 나은 생각이다,‘ 하고 계집애가 말했다. 몹시 힘든 모양이었다. 정말 안됐다. 나는 정말로 계집애가 딱했다.
우리는 빌어먹을 스케이트를 벗어 버리고, 양말만 신고 마실 거나 마시면서 다른 스케이트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바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 마자, 쌜리 계집애는 장갑을 벗고 나는 담배를 하나 주었다. 계집애는 별로 기분이 좋은 것같지 않았다. 웨이터가 와서 나는 쌜리한테는 코카콜라를 시키고 ― 나는 스캇치와 소다를 시켰다. 하지만 그 자식이 갖다 주지 않아서 나도 코카콜라를 마셨다. 이어서 나는 성냥으로 불을 좀 켜기 시작했다. 나는 기분이 좀 그럴 때, 그런 짓을 많이 한다. 성냥이 타 들어가서 더 이상 붙잡고 있지 못할 때까지 잡고 있다가 재떨이에 떨어뜨린다. 그건 신경질적인 버릇이다.
이윽고 갑자기, 난데 없이 섈리가 말했다. ‘이봐. 좀 알아야겠는데. 크리쓰마스 이브에 트리 자르는데 도와주러 올 거니 안 올거니? 그걸 알아야 돼.‘ 계집애는 스케이트 탈 때 발목이 그런 것때문에 아직도 좀 기분이 상해 있었다.
‘간다고 편지에 썼잖아. 스무 번은 물어봤겠다. 확실히 갈께.’
‘정말 알아야 한다니까,’ 하고 계집애는 말했다. 계집애는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는 성냥에 불붙이는 짓을 멈추고, 테이블 너머로 계집애한테 좀 가까이 상체를 숙였다. 나는 마음 속에 할 얘기가 꽤 많았다. ‘이봐, 쌜리’ 하고 애가 말했다.
‘왜?’ 하고 계집애가 말했다. 계집애는 반대 편에 있는 어떤 계집애를 보고 있었다.
‘너 넌더리가 난 적 있니?’ 하고 내가 말했다. ‘내 말은, 니가 무슨 일인가 하지 않으면 모든 게 더럽게 될 것같아서 무서운 생각이 든 적이 있냐 말야. 내 말은, 넌 학교니 뭐니 하는 게 좋으냐 말이다.’
‘학교는 정말 끔찍하게 따분해.’
‘내 말은, 니가 학교를 정말 싫어하냐는 거야. 나도 학교가 끔찍하게 따분하다는 건 알아, 한데 니가 정말 학교가 싫으냐는 거다.’
‘글쎼, 뭐 아주 그렇다는 건 아니구, 넌 맨날 ―’
‘난 학교가 싫어. 정말이지, 난 학교가 싫어,’ 하고 내가 말했다. ‘그것만이 아냐. 난 모든 게 다 싫어. 뉴욬이니 뭐니에 사는 것도 싫어. 택시도 그렇구, 뒷문으로 내리라느니 뭐니하고 늘 운전사가 소리지르는 저 매디슨 스퀘어 버스, 런츠를 천사라고 부르는 아니꼬운 놈들한테 소걔받는 것도 그렇구, 밖으로 나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하구, 브룩스 백화점에서 항상 바지를 재어 주는 그런 작자들도 그래. 그리고 늘 ―’
‘소리지르지 마, 제발,’ 하고 쌜리 년이 말했다. 그건 웃기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조금도 소리지르지 않았으니까.
‘자동차 얘기를 해 볼까,’ 하고 나는 저 아주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야, 전부 자동차에 미쳐 있어. 자동차에 조금만 상처가 날까 봐 걱정하고, 자기 자동차가 1 갤론에 몇 마일이나 갈 수 있나 하는 얘기만 하고 있고, 또 새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면, 더 새 차로 바꾸려고 벌써 생각하고 있다구. 난 오래된 자동차도 좋아하지 않아. 내 말은, 그런 것들은 하나도 관심없다는 말이야. 난 차라리 말을 가지겠어. 말은 적어도 인간적이거든, 제기랄. 말을 가지곤 적어도 ―’
‘난 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하고 쌜리 년이 말했다. ‘넌 이 얘길 하다가 갑자기 ―’
‘너 이거 알아?’ 하고 나는 말했다. ‘내가 지금 뉴욬에 있는 건, 아니 다른 데 있더라도 아마 너 때문일거야. 니가 여기 없다면 난 아마 다른 데 있을 거야. 숲속이나 어떤 거지같은 데 있겠지. 사실, 내가 여기 붙어 있는 건 너 때문이지.’
‘넌 귀여워,’ 하고 계집애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계집애가 내가 화제를 바꿔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언젠가 남자 학교에 한번 가 봐야 돼. 언제 한번 가 봐,’ 하고 나는 말했다. ‘거긴 되먹지 않은 놈들 투성이야, 그리고 공부 밖엔 하는 게 없지, 그래야 언젠가 그 놈의 캐딜락을 살 수 있을 만큼 영리해 질 테니까 말야, 그리고 축구 팀이 지면 무슨 큰일이나 난 것같은 표정을 지어야 하고 말야, 또 하루 종일 하는 얘기라니, 계집애들, 술 그리고 섹스 얘기밖엔 없어, 그리고 자기들끼리 무슨 지저분한 그룹을 만들어서 뭉치고 말야. 야구 팀에 있는 놈들은 자기들끼리 뭉치고, 캐톨릭들은 자기들끼리 뭉치고, 제기랄, 똑똑하다는 놈들은 자기들끼리 뭉치고, 브릿지 게임하는 놈들은 자기들끼리 뭉친다 이 말이야. 심지어는 무슨 「이달의 책」클럽에 속한 놈들도 자기들끼리 뭉쳐. 조금이라도 지성이란 걸 가져 보려고 생각만 해도―’
‘이제, 내 말 좀 들어 봐,’ 하고 쌜리 계집애가 말했다. ‘학교에서 그런 것보다도 다른 걸 배우는 애들도 많아.’
‘그건 그래! 그렇지, 일부는 그렇지! 하지만 내가 학교에서 배우는 건 그게 다란 말야. 알아? 그게 내 말이야, 그게 정확하게 내가 말하는 거라구,’ 하고 내가 말했다. ‘난 어떤 것에서도 거의 아무 것도 배우는 게 없어. 난 지금 상태가 나빠. 지금 더러운 심정이라구.’
‘정말 그래 너는.’
그 때, 갑자기 나는 이런 생각이 났다.
‘이봐,’ 하고 나는 말했다. ‘생각이 났어. 여기서 나가는 게 어때? 내 생각은 이래. 그리니치 빌리지에 아는 작자가 하나 있는데, 이 삼주 정도 차를 빌릴 수 있어. 그 작잔 나하고 같은 학교애 다녔거든, 그리고 나한테 10 딸라 빚진 게 있어. 우리가 뭘 하냐 하면 말야, 내일 아침에 매사추세츠나 버몬트로 가서 거길 사방 돌아 다니는 거야, 구경하는 거지. 거긴 정말 무지하게 멋있단 말야. 정말이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굉장히 흥분되었다, 그래서 나는 좀 앞으로 손을 내밀어 쌜리 계집애의 손을 잡았다. 난 정말 더럽게 멍청이다. ‘농담이 아냐,’ 하고 나는 말했다. ‘난 은행에 180 딸라 정도 있어. 아침에 은행이 문 열면 찾을 수 있어, 그럼 거기 가서 그 작자의 차를 얻는 거야. 농담이 아냐. 저 오두막집이나 그런 데서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있는 거야. 그 다음에, 돈이 다 떨어지면, 어디 가서 일자리를 하나 얻어서 시냇물이나 뭐 그런 게 있는 데서 살 수 있겠지. 그리고, 나중에 우리 결혼이니 뭐니를 하는 거야. 겨울이나 뭐 그런 땐 내가 나무를 잘라 올 수도 있구. 정말이지, 우린 재미있게 지낼 거야. 어떻게 생각해? 자아! 어떻게 생각해? 나하구 그렇게 할래? 어서 말해 봐!’
‘그런 건 하지 못해,’ 하고 쌜리 계집애가 말했다. 계집애는 더럽게 화가 난 목소리였다.
‘왜 안 돼? 도대체 왜 안 돼?’
‘소리 좀 지르지 마, 제발,’ 하고 계집애가 말했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계집애한테 소리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안 돼? 왜 안 돼냐구?’
‘넌 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먼저, 우린 둘 다 어린애야. 그리고 돈이 다 떨어졌을 때 일자릴 얻지 못하면 어떻게 할 건지 생각이나 해 봤어? 우린 굶어 죽을 거야. 니 얘긴 다 현실성이 없어, 심지어는―’
‘현실성이 없는 게 아냐. 난 일자릴 얻을 거야.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왜 그래? 나랑 가고 싶지 않아? 그렇다면 그렇다고 말해.’
‘그런 게 아냐. 전혀 그런 건 아냐,’ 하고 쌜리 계집애가 말했다. 나는 어쩐지 계집애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우린 그런 일들을 할 시간이 많아 ― 그런 일들 말야. 내 말은, 니가 대학이나 그런 델 들어가고 난 뒤에 말야, 그리고 우리가 결혼이나 그런 걸 해야 한다면 말야. 그 땐 멋진 데도 많이 갈 수 있을 거야. 넌 아직 ―’
‘아냐, 그렇지 않을 거야. 하나도 갈 데가 없을 거야. 그 땐 완전히 달라질 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다시 더럽게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뭐라구?’ 하고 계집애가 말했다. ‘무슨 말하는지 안 들려. 아깐 소릴 지르더니, 지금은 ―’
‘아니라고 했어, 내가 대학이니 뭐니에 들어가고 난 뒤엔 뭐 멋진 데 같은 덴 없을 거라구. 잘 들어. 그 땐 완전히 다를 거라구. 수트 케이스니 뭐니 다 가지고 엘리베이털 타고 아래로 내려 가자. 그리고 호텔이니 뭐니에서 사람들한테 전화해서 작별을 하고 우편엽서를 보내는 거야. 그리고 난 무슨 사무실에서 일해서, 돈을 많이 벌고, 택시니 메디슨 애비뉴 버스니를 타고 일하러 나가고, 신문을 보고, 또 항상 브릿지 게임을 하고, 그리고 영화관에 가서 멍청한 단편영화나 무슨 멋진 영화의 예고편이나 뉴스 영화를 보겠지. 뉴스영화라. 제기랄. 거긴 늘 멍청한 경마나, 어떤 마누라가 배 위에서 병을 깨거나, 침팬지가 바지를 입고 빌어먹을 자전거를 타는 게 나오지. 절대로 똑같진 않단 말야. 넌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 하나도 몰라.’
‘그럴 지도 모르지! 너도 모를 걸.’ 하고 쌜리 계집애가 말했다. 그 땐 우리 둘 다 서로가 미워 죽을 지경이었다. 무언가 지적인 대화를 나누는 게 하나도 의미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얘기를 꺼낸 걸 더럽게 후회하였다.
‘자, 여기서 나가자,’ 하고 나는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너 때문에 똥구멍이 아플 지경이야.’
정말이지, 내가 그런 말을 하자, 계집애는 화가 나서 죽으려고 했다. 그런 말은 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리고 보통때라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계집애는 나를 더럽게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보통 그런 야비한 말은 계집애들한텐 하지 않는다. 정말이지, 계집애는 화가 나서 미치려고 했다. 나는 미치광이처럼 사과했지만 계집애는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계집애는 울기까지 했다. 나는 그게 좀 겁이 났는데, 왜냐하면 계집애가 집에 가서, 자기 아버지한테 내가 자기더러 똥구멍을 아프게 했다고 일러 바칠까 봐 조금 겁이 났기 때문이다. 계집애 아버지는 말은 없지만 덩치가 엄청나게 큰 그런 종류의 인간이거든, 게다가 나를 별로 탐탁하게 생각치 않고 있었다. 그 작자는 언젠가 쌜리한테, 내가 너무 말이 많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진심이야. 미안해,’ 하고 나는 연방 말했다.
‘미안하다구. 미안하다구. 그것 참 웃긴다,’ 하고 계집애가 말했다. 계집애는 여전히 조금 울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는 그런 말을 한 게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자, 내가 집에 데려다 줄께. 정말이야.’
‘나 혼자도 집에 갈 수 있어, 고맙지만. 내가 너보고 집에 데려다 달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넌 미쳤어. 지금까지 어떤 남자애도 나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
생각해 보면, 이런 일 자체가 어떻게 보면, 좀 웃기는 일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나는 그러지 말아야 하는 짓을 했다. 나는 웃음을 터뜨린 것이다. 그것도 저 머저리같이 커다랗게 웃었던 것이다. 내 말은, 내가 만일 극장이나 그런 데 앉아 있었다면, 난 아마 앞으로 고개를 내밀고 제발 좀 닥쳐라 하고 자기한테 말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게 쌜리 계집애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나는 어느 정도 거기에 붙어 앉아서, 사과하고 날 용서해 달라고 연방 말했지만 계집애는 들어 주지 않았다. 계집애는 나보고 빨리 가 버려라, 자기를 혼자 내버려 달라고 말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렇게 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서, 신발이니 뭐니를 찾아서 혼자 밖으로 나왔다. 그래서는 안됐지만, 그 때쯤엔 나도 꽤 지쳐 있었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내가 왜 그 따위 얘기를 계집애한테 시작했는지 모른다. 내 말은, 매사추세츠니 버몬트니 하고 어디로 간다는 얘기 말이다. 계집애가 따라간다고 했어도 나는 아마 데리고 가지 않았을 거다. 간다고 해도 그 계집애하곤 안 갔을 것이다. 그런데, 끔찍한 건 뭐냐 하면, 내가 계집애한테 가자고 졸랐을 땐, 진심으로 그랬다는 거야. 그게 끔찍하다는 거다. 하늘에 맹세코, 난 미친 놈이야.
제 18장
스케이트장에서 나왔을 때 배가 좀 고파서 나는 약국에 들어가서 스위스 치즈 쌘드위치하고 맥아우유를 먹었다. 그 다음에 전화박스에 들어갔다. 제인 계집애한테 전화를 해서 집에 왔나 한번 알아보려고 생각한 것이다. 내 말은 저녁 내내 할 일도 없고 해서 계집애한테 전화해 보자, 만일 집에 왔으면, 춤추러 가거나 아니면 어디 가서 뭐든 하려는 것이었다. 계집애하고 알고 지냈지만, 그동안에 같이 춤추러 가거나 뭐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계집애가 춤추는 것을 본 적은 한번 있다. 굉장히 춤을 잘 추는 것 같았다. 그건 클럽에서의 저 독립기념일 댄스 파티였다. 그 때는 계집애를 잘 몰랐었고, 내가 계집애한테 춤추자고 끼어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계집애는 쇼아트에 다니는 알 피크라는 끔찍한 작자하고 데이트를 하는 중이었다. 그 작자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항상 수영장 근처에서 어슬렁 거리는 놈이었다. 그 작자는 라스텍스 종류로 만든 수영 팬티를 입었고, 늘 높은 데서 다이빙을 하였다. 그 작자는 하루 종일 앞으로 뛰어서 뒤로 돌아 떨어지는 다이빙만 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그것 밖에 없었는데도 그 작자는 자기가 굉장히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체격만 볼 품 있지 머리 속은 텅 빈 작자였다. 어쨋든, 제인이 그 날 밤에 데이트하는 게 그 작자였다. 나는 그게 이해되지 않았다. 정말이야, 그게 이해되지 않았어. 나는 제인하고 몇바퀴 정도 돌다가, 어떻게 알 피크같은 허풍장이 놈하고 데이트를 할 수 있냐고 물어 보았다. 제인은 그 작자가 허풍장이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 작자는 열등의식이 있다는 것이었다. 계집애는 그 작자에게 동정이나 뭐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이 보였는데, 그냥 그런 체하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그런 것이었다. 계집애들은 그런 게 웃긴다. 어떤 걔자식 ― 아주 비열하거나 잘난 체하거나 그런 작자 ― 얘기를 계집애들한테 하면, 열등의식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마 그런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그렇더라도 그 놈이 걔자식이라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다. 계집애들이란. 계집애들이 무슨 생각을 할 지는 절대로 알 지 못한다. 한번은 내 친구한테, 로버타 월시라는 계집애의 같은 방 친구를 데이트 상대로 소걔해 준 적이 있다. 그 친구 이름은 밥 로빈슨이었는데 진짜 열등의식이 있는 놈이었다. 그가 자기 부모를 되게 창피하게 생각한다는 걸 누구나 금방 알 수 있었는데, 왜냐하면 그의 부모들은 ‘그 사람이가’ 또는 ‘그 여자이가’ 또는 그런 식으로 말을 하고 또 별로 잘 살지도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걔자식이나 뭐 그런 놈은 아니었다. 그는 아주 멋있는 놈이었다. 하지만 로버타 월시의 방 친구는 그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 계집애는 로버타에게, 그가 너무 잘난 체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 그런데 그가 너무 잘난 체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계집애한테 자기가 토론클럽의 회장이라고 우연히 말한 것 때문이었다. 그런 사소한 일을 가지고 그 계집애는 그가 잘난 체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계집애들한테 끔찍한 게 뭐냐 하면, 그들이 어떤 꼬마를 좋아하고 있다면, 그가 아무리 걔자식이라도 그가 열등 의식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가 아무리 멋있는 놈이라고 해도 잘난 척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똑똑한 계집애들도 그렇다.
어쨋든, 나는 제인 계집애한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아서 그냥 끊어야 했다. 다음에 나는, 도대체 누가 지금 이 저녁 시간에 전화를 받을 지 하고 주소록을 훑어 보았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 하면, 내 주소록엔 대충 세 명 밖에 없었다는 거다. 제인, 엘크톤 힐즈에서의 내 선생이었던 앤쏠리니 선생, 그리고 아버지 사무실 전화번호였다. 나는 사람들 전화번호를 적어 놓는 걸 늘 잊어버린다. 그래서 결국 내가 뭘 했냐 하면, 칼 루쓰 놈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내가 나가고 난 뒤에 우튼 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나보다 세 살 정도 나이가 많았는데,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저 똑똑하다는 그런 놈들 중의 하나였다 ― 그는 우튼에서 I. Q. 가 제일 높았다 ― 나는 그가 어디에서 나하고 저녁이나 같이 먹으면서 약간 지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어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놈은 어쩌다가 굉장히 흥미있는 얘기를 할 줄 아니까. 그래서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지금 콜럼비아 대학에 다니고 있었지만, 65번가나 어디에 살고 있었다. 나는 그가 집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에게 전화를 했을 때, 그는 같이 저녁은 먹지 못하지만, 54번가에 있는 위커 바에서 열 시에 한 잔 정도 마실 수는 있다고 말했다. 내가 전화를 걸어서 그 놈이 꽤 놀랐을 거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그 놈을 되먹지 않은 머저리라고 부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열 시까진 시간이 꽤 남아 있어서, 내가 뭘 했냐 하면, 래디오 씨티에 쇼를 보러 갔다. 그건 아마 내가 한 일 중에 제일 형편없는 짓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극장이 가까이 있었고 다른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내가 들어갔을 때는 엉터리같은 쇼가 한창이었다. 로켓트 패거리는 서로 상대의 허리에 총을 갖다 대고 있을 땐 늘 그렇듯이 머리통에 총을 쏘아대고 있었다. 관객들은 미친 둣이 박수를 쳐 댔다, 그리고 내 뒤에 앉은 어떤 작자는 자기 마누라한테 쉬지 않고 지껄여 댔다, ‘저게 뭔지 알아? 정확성이란 거야.’ 그 말엔 졌다. 로켓트 패거리가 나가고 난 뒤에는, 어떤 친구가 턱시도를 입고 롤러 스케이트를 타고 나와서, 작은 테이블 밑으로 스케이트를 타면서 끊임없이 죠크를 늘어 놓았다. 그는 스케이트를 굉장히 잘 탔지만, 마치 자기는 무대 위에서 롤러 스케이트 타는 연습을 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별로 재미있지 않았다. 그건 정말 멍청해 보였다. 그저 내가 그런 즐길 기분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다음에, 그가 나가고 나자, 래디오 시티에서 해마다 하는 저 크리쓰마스 공연이 벌어졌다. 무슨 천사란 천사는 다 상자니 뭐니에서 나오고, 남자 놈들은 십자가니 뭐니를 매고 사방 돌아다니면서 같이 한데 뭉쳐서 ― 전부 합쳐 천 명은 되었을 거다 ― “경건한 자들이여 모두 나와라!” 하는 노래를 미친 듯이 불러대는 것 말이다. 정말 대단한 광경 아냐? 그런 게 뭐 굉장히 거룩하고 또 굉장히 멋있는 광경으로 여겨지게 돼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난, 제기랄, 한 뗴거리의 배우들이 십자가를 매고 사방 돌아다니는 것에서 무슨 거룩하거나 멋있는 건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그들이 공연을 전부 마치고 다시 무대 밖으로 뛰어나갈 때 보면, 담배를 피우거나 뭔가를 마시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작년에 나는 쌜리 헤이즈 계집애하고 같이 그걸 봤었는데, 계집애는 참 멋있다고 연방 말하는 것이었다, 의상이니 뭐니가 말야. 나는, 예수가 그걸 봤다면 아마 게웠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 저 장식 달린 옷이니 뭐니를 말이다. 그러자 쌜리는 내가 천벌을 받을 무신론자라고 말했다.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 예수의 마음에 들었을 친구가 단 하나 있다면, 오케스트라에서 큰 북을 치는 친구였을 것이다. 나는 거의 여덟 살 때부터 그 친구를 보아 왔다. 내 동생 앨리와 나는 ― 만일 부모님이나 누구와 같이 왔다면, 그 친구를 보려고 자리를 옮겨서 아래 쪽으로 내려가곤 했었다. 그는 내가 본 중에서 제일 북을 잘 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두 세번 밖에는 북을 치지 않지만, 북을 치지 않을 때도 절대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지 않는다. 그러다가 북을 칠 때가 되면, 그는 얼굴에 긴장된 표정을 보이며 아주 근사하고 유쾌하게 북을 치는 것이다. 한번은 앨리와 내가 아버지와 함께 워싱턴에 간 적이 있는데, 앨리는 그에게 엽서를 보냈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그 엽서를 받지 못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그 때 엽서를 어떻게 보내는 건 지 잘 몰랐었으니까.
저 크리쓰마스 공연이 끝나고 빌어먹을 영화가 시작됐다. 얼마나 엉터리같은 영환지 거기서 눈을 땔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알렉 뭔가하는 어떤 영국 작자의 얘긴데, 전쟁에 나갔다가 병원이니 뭐니에서 기억을 상실한다. 그는 병원에서 지팡이를 하나 집고 나와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상태에서 런던을 사방 돌아다닌다. 사실 그는 공작이지만 그걸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그는, 버스에 타려고 하는 어떤 상냥하고, 편안하고 진지한 처녀를 만난다. 그 여자의 모자가 바람에 날려 떨어지자 그가 집어 주는 것이다. 그들은 같이 이층으로 올라가서 자리에 앉아서는 챨스 디킨즈 이야기를 한다.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챨스 디킨즈다. 둘이 다 「올리버 트위스트」를 한 권씩 들고 있다. 나는 거의 게울 뻔했다. 어쨋든, 그들은 챨즈 디킨즈를 좋아한다는 것 때문에 금방 사랑에 빠지고, 그가 여자가 출판업을 꾸려 나가는 것을 도와 준다. 여자는 출판업자인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별로 일에 열성을 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정뱅이 여자의 오빠가 그들의 돈을 다 써 버리기 때문이다. 그는 아주 신랄한 친구이다, 오빠 말이다, 왜냐하면 그는 군의관이었는데 신경쇠약증이 있어 이젠 수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술에 취해 살지만 그래도 꽤 재치니 뭐니가 있다. 어쪳든 알렉은 책을 쓰고, 여자는 그 책을 출판해서 두 사람은 돈을 좀 번다. 그들이 막 결혼하려고 할 때, 마르시아라는 여자가 나타난다. 마르시아는, 그가 기억상실증에 걸리기 전에 알렉의 약혼녀였다. 알렉이 가게에서 책에 서명을 하고 있을 때 그 여자가 나타나서 그를 알아 본다. 여자는 알렉에게 그가 사실은 공작이니 뭐니라고 말해 주지만 그는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다. 여자가 그의 엄마니 뭐니를 만나러 같이 가자고 말해도 듣지 않는다. 그의 엄마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다른 여자는, 그 편안한 여자 말이다, 그를 가게 만든다. 그 여자는 매우 숭고하니 뭐니하다. 그래서 그는 간다. 그가 기르던 걔는 반갑다고 그에게 달려 들고 그의 엄마는 손으로 온통 그의 얼굴을 더듬고, 그가 꼬마였을 때 귀여워하던 곰 인형을 갖다 줘도 그는 기억을 되살리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날,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크리켓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크리켓 공에 머리를 세게 얻어 맞는다. 그는 갑자기 기억을 되찾아서 집 안으로 들어가서 엄마의 이마니 뭐니에 입을 맞춘다. 다음부터 그는 다시 공작의 생활을 되찾고 출판업을 하는 그 여자의 일은 까맣게 잊어 버린다. 나머지도 얘기해 줄께, 하지만 그러면 게울 것 같다. 그러면 얘기를 망치니 뭐니해서가 아니다. 제기랄, 망칠 게 뭐가 있냐 말야. 어쪳든, 알렉과 그 여자는 결혼하고, 그 주정뱅이 오빠는 신경쇠약을 고치고 알렉의 엄마를 수술해서 시력을 되찾아준다. 그리고 오빠와 마르시아는 서로 좋아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은, 모든 식구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걔가 강아지들과 함께 들어와서 온 식구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는 것으로 끝난다. 왜냐하면, 내 생각인데, 모두들 그 걔가 숫놈이나 뭐로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게우고 싶지 않으면 그걸 보지 말라는 것이다.
신경 거슬린 게 뭐냐 하면, 내 옆에 어떤 여자가 앉았는데, 그 놈의 영화를 보면서 내내 훌쩍거리는 거다. 영화가 점점 엉터리같아질수록 더 많이 우는 것이다. 그 여자가 운 건, 굉장히 마음이 다정다감해서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바로 옆에 앉아 있었는데, 그건 아니다. 그 여자는 꼬마애를 데리고 왔는데, 지루해서 화장실에 데려다 달라고 졸라도 여자는 애를 데리고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얌전히 앉아 있으라고만 하는 것이다. 그 여잔 제기랄, 늑대만큼이나 다정다감했다니까. 영화관에서 어떤 같지 않은 걸 보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면, 열에 아홉은 마음이 비열한 자들이다. 이건 농담이 아니야.
영화가 끝난 뒤에 나는, 칼 루스 놈을 만나기로 한 위커 바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걸으면서 전쟁이니 뭐니에 대해 좀 생각했다. 전쟁 영화를 보면 항상 생각을 좀 하게 된다. 내가 만일 전쟁터에 나가게 된다면 잘 견디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 것같다. 그냥 어디 나가서 뭘 쏘거나 그러면 과히 나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군대에 너무 오래 있어야 하는 게 문제다. 내 형 D.B.는, 제기랄, 4년이나 군대에 있었다. 그는 전쟁에도 나갔었다 ― 그는 D-데이니 뭐니에 상륙작전에 참가했었다 ― 하지만 나는 그가 전쟁보다도 군대를 더 싫어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때 꼬마였지만, 그가 휴가니 뭐니해서 집에 오면 아무 것도 안하고 거의 침대에 누워 있기만 하던 걸 기억한다. 그는 거실에도 거의 들어오지 않았었다. 나중에, 바다 건너서 전쟁터에 나갔을 때도 그는 부상이니 뭐니도 입지 않았고 누굴 쏠 필요도 없었다. 그가 하는 일이란, 카우보이같은 장군을 태우고 온종일 돌아 다니는 일이었으니까. 그는 언젠가 앨리하고 나한테, 만일 누군가를 쏘아야 했어도 자기는 어느 방향으로 쏴야 할 지를 몰랐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군대는 걔자식들이 우글거리는데, 나찌보다 나을 것도 없다고 말했다. 또 기억나는데, 앨리가 그에게 형은 작가니까 전쟁터에는 쓸 만한 얘기가 많아서 좀 좋은 점도 있지 않냐고 물어 본 적이 있다. 그는 앨리한테, 가서 야구 글러브를 가져 오게 한 다음에 루퍼트 브루크하고 에밀리 디킨슨 중에서 누가 더 훌륭한 전쟁 시인이냐고 물었다. 앨리는 에밀리 디킨슨이라고 말했다. 나는 시를 많이 읽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선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만일 군대에 애클리나 스트래드레이터 또는 모리스 같은 놈들하고 같이 있어서 그런 놈들하고 행군이니 뭐니를 해야 한다면 정신 이상이 될 거라는 건 안다. 한번은, 일주일 정도 보이 스카우트에 있던 적이 있는데 앞에 있는 놈의 목덜미를 계속 쳐다 보는 게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맹세하건데, 만일 전쟁이 또 한번 터진다면 차라리 나는 총살대 앞에 묶여 있는 게 나을 거다. 나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D.B.한테 화가 나는 건 뭐냐 하면, 그가 전쟁을 그렇게 혐오하면서도 나 보고는 지난 여름에 「무기여 잘있거라」를 읽으라고 한 거다. 그의 말로는 그 소설이 대단하다는 거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게 그거다. 거기엔 헨리 중위라는 친구가 나오는데, 그가 멋있는 친구라는 것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그가 군대니 전쟁이니를 그렇게 혐오하면서 어떻게 그런 되먹지 않은 책을 좋아하냐는 점이다. 내 말은, 예를 들어, 그가 그런 되먹지 않은 책을 좋아하면서, 링 라드너의 책이나 그가 그렇게 좋아하는 저 「위대한 갯츠비」를 동시에 좋아할 수 있냐는 것이다. 내가 그런 말을 하자, D.B.는 화를 내면서, 내가 그런 걸 이해하기엔 너무 어리니 뭐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나도 링 라드너와 「위대한 갯츠비」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도 그런 걸 좋아했다. 난 「위대한 갯츠비」엔 깜박 죽었다. 갯츠비 자식. 괜찮은 놈이다. 그 소설엔 졌다니까. 어쪳든, 원자 폭탄이 발명된 건 잘 된 일이다. 만일 또 한번 전쟁이 일어난다면, 나는 그 꼭대기에 올라 앉아서 떨어지겠어. 자원할 거야, 하늘에 맹세코 그럴 거다.
제 19장
뉴욬에 살지 않는다면 말인데, 위커 바는 세턴 호텔이라는 저 약간 멋부린 호텔 안에 있다. 전엔 거기에 많이 가곤 했지만 지금은 가지 않는다. 조금씩 끊었다. 거기는 소위 아주 세련된 그런 곳으로 알려져 있고, 같지 않은 작자들이 들락날락 거린다. 전에는 티나와 재닌이라는 프랑스 여자 둘이서, 하루에 세 번 정도 나와서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그들 중 한 여자는 피아노를 치고 ― 되게 형편없는 솜씨로 말야 ― 다른 여자는 노래를 불렀는데, 대부분의 노래가 꽤 지저분하지 않으면 불어로 불렀다. 노래 부르는 여자는, 재닌 말인데, 노래를 부르기 전에 언제나 마이크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뭐라고 말하냐 하면, ‘자 이제 불리 부 프란세에 대한 우리의 인상을 전해드리려 합니다. 이건 뉴욬같이 큰 도시에 온 어린 프랑스 소녀의 얘기랍니다. 그 애는 브루클린 출신의 어린 소년을 사랑하게 됩니다. 여러 분이 이 얘기를 좋아하길 바랍니다.’ 그 여자는 속삭여 대고 아양을 떨어 대고 하는 짓을 마치고는, 반은 영어로 반은 프랑스어로 멍청한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그러면 거기 있는 엉터리같은 작자들은 좋아서 날뛰곤 했다. 거기 앉아서 그런 작자들이 박수치고 뭐고 하는 짓을 봤다면, 세상 사람들이 전부 싫어졌을 거야, 분명히 그랬을 거야. 바텐더 또한 더러운 놈이었다. 그 작자는 더럽게 속물이었다. 그 작자는 대단한 인물이나 유명한 그런 사람이 아니면 절대 말을 걸지 않는다. 만일 대단한 인물이나 유명한 사람일 경우엔, 훨씬 더 메쓰겁게 굴었다. 그 작자는 가까이 가서 말한다. 자기를 알고 보면 굉장히 멋있는 사람이라는 듯이 저 굉장히 매력적인 웃음을 지으면서 말이다, ‘근데, 코네티컷은 어떻습니까?’ 아니면 ‘플로리다는 어떻습니까?’ 하고 말야. 거긴 정말 끔찍한 곳이었다, 농담이 아냐. 나는 조금씩 거기 가는 걸 그만 두었다.
내가 거기 도착했을 때는 꽤 일렀다. 나는 바에 앉아서 ― 꽤 사람이 많았다 ― 루쓰 놈이 나타나기 전에 스카치와 소다를 시켰다. 나는 서서 주문을 했는데, 그건 일부러 크게 보여서 날 미성년자로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거였다. 다음에 나는 엉터리같은 작자들을 잠시 바라 보았다. 내 옆에 있는 놈은, 같이 있는 여자를 온갖 감언이설로 속이고 있었다. 그 작자는 여자의 손이 정말 귀족같이 고상하다고 연방 추켜 세우고 있었다. 그런 짓엔 정말 졌다. 바의 다른 쪽을 보니 온통 변태들 뿐이었다. 겉 모습은 별로 변태들같지 않았지만 ― 내 말은 머리를 길게 기른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이다 ― 어쨋든 한 눈에 변태들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마침내 루쓰 놈이 나타났다.
루쓰 자식. 정말 대단한 놈이다. 그 놈은 내가 우튼에 있을 때, 소위 내 「학생 주임」으로 통했다. 하지만 그 놈이 한 일이라고는, 밤 늦게 자기 방에 애들이 한 뗴거리 모여 있을 때, 쎽스 얘기나 그런 애기를 한 것밖에 없다. 그 놈은 쎅스에 관해 꽤 많이 알고 있었다, 특히 변태나 그런 인간들에 관해서 말이다. 그 놈은 우리한테 언제나, 양하고 쎅스를 하고 돌아 다니는 너절한 인간들 얘기 아니면, 계집애 팬티를 모자니 뭐니 안에다 꽤매어 쓰고 돌아 다니는 작자들 얘기를 했다. 그리고 속물들하고 여자 호모들 얘기도 하고 말이다. 루쓰 놈은 미국에 살고 있는 온갖 변태와 여자 호모들을 알고 있었다. 그 놈한테 어떤 사람 ― 누구라도 말야 ― 의 이름을 말하면, 놈은 그가 변탠지 아닌지를 금방 아는 것이다. 가끔은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였는데, 그 놈이 변태니 호모니 영화 배우니 하고 말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 놈이 변태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결혼한 사람도 있었다. 제기랄. 놈한테, ‘넌 조 블로우가 변태란 거냐? 조 블로우가? 맨날 갱이나 카우보이로 나오는 저 덩치 크고 거친 사람이 말야?’ 그럼 루쓰 자식은 말하는 것이다. ‘물론이지.’ 그 놈은 언제나 ‘물론이지’ 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 놈은 누가 결혼했는지 안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결혼한 사람의 반은 변태인데 자기들은 그걸 모른다는 거였다. 또한, 그런 기질이나 뭐나를 가지고 있으면 단 하룻밤 사이에도 변태로 변하게 된다는 거였다. 그 놈은 늘, 나를 놀라 자빠지게 하곤 했다. 나는 늘, 변태니 뭐니로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루쓰 놈한테 웃기는 게 뭐냐 하면, 나는 그 놈 자신도 어떤 면에서는 약간 변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 번 이렇게 해 봐,’ 하고 놈은 말하고는, 복도를 걸어가게 하고는 뒤에서 엉덩이를 찌르는 것이다. 그 놈은, 샤워장에 들어갈 땐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 놓고는, 누가 이빨을 닦거나 뭐를 하는 동안 말을 걸었다. 그런 건 좀 변태같은 짓이 아닌가. 정말 그렇다. 나는 학교니 뭐니에서 진짜 변태들을 좀 안 적이 있는데, 그런 놈들은 늘 그런 짓을 하는 것이다. 내가 루쓰 놈을 항상 수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 놈은 꽤 영리한 녀석이었다. 그건 정말이었다.
그 놈은 사람을 만나도, 인사니 뭐니를 하는 법이 없었다. 그 놈은 자리에 앉으면서 처음 무슨 말을 했냐 하면, 자기는 몇 분 밖엔 앉아 있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데이트가 있다는 것이다. 다음에 그 놈은 마티니를 시켰다. 놈은 바텐더한테 마티니를 아주 드라이하게 해 오고, 올리브는 넣지 말라고 말했다.
‘야, 네 놈한테 맞는 변태가 하나 있는데,’ 하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저 끝에 말야. 지금 보진 말구. 널 위해서 아껴 둔 놈이야.’
‘아주 재밌는데,’ 하고 그가 말했다. ‘코울필드는 여전하군. 넌 언제나 철이 들을래?’
그 놈은 내가 무지하게 따분한 것 같았다. 정말이었다. 하지만 놈은 날 재미있게 했다. 놈은 사람을 재미있게 할 줄 아는 그런 놈이었다.
‘성 생활은 어떻구?’ 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는 누가 그런 따위의 질문을 하는 걸 싫어했다.
‘긴장 풀어,’ 하고 그는 말했다. ‘그냥 느긋하게 앉아서 긴장을 풀라구, 제기랄.’
‘난 긴장하지 않았어,’ 하고 나는 말했다. ‘그래, 콜럼비아는 어때? 마음에 드나?’
‘물론 마음에 들지. 마음에 안 들면 거기 가지도 않았을 거야,’ 하고 그는 말했다. 그 놈도 가끔은 싱겁게 말을 하는 때도 있다.
‘뭘 전공하지?’ 하고 나는 말했다. ‘변태 성욕인가?’ 나는 그저 희롱질을 하였다.
‘너 지금 뭘 하려는 거냐 ― 웃기려는 거야?’
‘아니. 그저 농담하는 거야,’ 하고 내가 말했다. ‘야, 내 말 좀 들어 봐, 루쓰. 넌 똑똑한 놈이니까. 네 충고가 필요하다. 난 지금 꽤 어려운 ―’
그는 아주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봐, 코울필드. 여기 앉아서 조용하게 한 잔 하면서 조용하게 얘길하고 싶으면 ―’
‘알았어, 알았어,’ 하고 내가 말했다. ‘진정해. 그 놈은 나하고 무슨 진지한 얘기를 나누고 싶지는 않은 기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저 똑똑하다는 놈들의 문제는 바로 그거다. 놈들은 그럴 기분이 아니면 절대로 진지한 얘기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니까. 그래서 난 그저, 일반적인 얘기나 하기 시작했다. ’농담이 아니라, 너의 성 생활은 어떻냐?‘ 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지금도 저 우튼에서 사귀던 계집애하고 같이 다니냐?‘ 저 굉장한 ―’
‘뭐라구, 아냐,’ 하고 그가 말했다.
‘왜? 걘 뭘 하는데?’
‘내가 알 게 뭐냐. 니가 물어 보니까 말인데, 걘 아마 지금쯤 뉴 햄프셔에서 제일 가는 창녀가 돼 있을 걸.’
‘그렇게 말해선 안되지 않나? 니가 항상 데리고 놀도록 얌전하게 내버려 뒀는데, 적어도 걔를 그런 식으로 말해선 안 되지 않아.’
‘오, 그러냐!’ 하고 루쓰 자식은 말했다. ‘이제 전형적인 코울필드식 대화가 되려나 본데. 그런가?’
‘아니,’ 하고 나는 말했다. ‘어쨋든 그렇게 말하는 건 아냐. 걔가 얌전하게 니가 하자는 대로 ―’
‘지금 우리가 이런 얘기를 계속 해야 하는 건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얘기를 하다간 그 놈이 날 두고 가 버릴 까 조금 겁이 났다. 그래서 나는 그저 술을 한 잔 더 시켰다. 나는 곤죽이 되도록 술에 취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누구랑 사귀고 있냐?’ 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나한테 얘기하고 싶지 않냐?’
‘넌 모르는 여자야.’
‘그래, 누구야? 내가 알 지도 모르쟎아.’
‘그리니치 빌리지에 살아. 조각가지. 니가 알아야 한다면 말야.’
‘그래?농담이 아니구? 몇 살이냐?’
‘그런 건 물어 본 적 없어, 제기랄.’
‘그냥, 어느 정도 됐어?’
‘마흔 살 가까이 된 것 같은데,’ 하고 루쓰 놈이 말했다.
‘마흔 살 가까이 됐다구? 그래? 그게 좋아?’ 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늙은 여자가 좋냐구?’ 내가 그런 걸 물어 본 이유는, 그 놈은 섹스니 뭐니에 대해 정말 많이 알고 있는 놈이었기 때문이다. 그 놈은, 내가 아는 중에, 그런 놈 중의 하나였다. 그 놈은 열 네 살 때 벌써 넌티에서 동정을 잃었다. 정말이라니까.
‘난 성숙한 여자가 좋아, 니가 말하는 게 그거라면 말야. 물론이지.’
‘그러냐? 왜? 농담이 아니구 말인데, 그들이 쎅스니 뭐니를 더 잘해서 그래?’
‘이봐, 한가지 분명히 하자. 난 오늘 밤에 너의 그 코울필드식의 질문엔 대답하지 않겠어. 도대체 넌 언제 철이 날거냐?’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상태로 그냥 있었다. 그러자 루쓰 놈은 마티니를 한 잔 더 시키고 바텐더에게 훨씬 더 드라이하게 해서 가져 오라고 말했다.
‘이봐, 그 여자하고 얼마나 알았냐, 그 조각가 말야?’ 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나는 정말로 알고 싶었던 것이다. ‘우튼에 있을 때도 알고 지냈냐?’
‘그렇진 않지. 그 여잔 이 나라에 몇 달 전에야 왔으니까.’
‘그랬어? 어느 나라 여잔데?’
‘샹하이에서 왔나 본데.’
‘정말이야? 중국 여자라구, 맙소사.’
‘그럼.’
‘정말이냐? 그게 좋냐? 그 여자가 중국 사람인 것 말야?’
‘그럼’
‘왜? 정말 알고 싶은데 ― 정말이야.’
‘난 그저 서양 철학보단 동양철학이 더 마음에 드는 것 같아서 말야. 물어 보니까 하는 말인데.’
‘그러냐? 너 ’철학‘ 얘길 하는 거야? 너 쎽스니 뭐니가 그렇다는 거냐? 중국이 그런게 더 낫단 말야? 그 말이야?’
‘반드시 중국이 그렇다는 건 아니구, 제기랄. 동양이라구 그랬지. 우리가 이런 멍청한 얘길 계속 해야 하냐?’
‘이봐, 난 진지하게 얘기하는 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농담이 아니라구, 그게 왜 동양이 낫냐구?’
‘얘길 하려면 길어져, 제기랄,’ 하고 루쓰 놈이 말했다. ‘그 사람들은 쎅스를 그냥 신체적, 정신적인 체험으로 간주하는 거지, 내가 뭐 ―’
‘나도 그래! 나도 그걸 뭐 그런 거로 ― 신체적, 정신적 체험이니 뭐니로 생각한다구. 정말이야. 하지만 누구하고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만일 내가 그걸 누구하고 한다면, 그건 ―’
‘그렇게 크게 떠들지마, 제기랄, 코울필드. 조용하게 얘기하지 못하겠다면, 이런 얘긴 ―’
‘알았어, 근데 들어 봐,’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흥분하여 조금 큰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흥분할 땐, 좀 크게 말하는 때가 있다. ‘하지만, 내 말은 이런 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그게 신체적, 정신적 또 무슨 예술적이니 뭐니하다는 건 알아. 하지만 내 말은 뭐냐 하면, 아무나 하고 그걸 할 때 ― 아무 계집애하고나 껴안고 뭐할 때 ―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순 없다는 거야. 넌 그럴 수 있어?’
‘그만 하자,’ 하고 루쓰 놈은 말했다. ‘계속 할거야?’
‘알았어, 근데 들어 봐. 너하고 그 중국 여자를 예로 들어 보자. 너희 둘이 뭐가 그렇게 좋다는 거냐?’
‘그만 하자구 그랬어.’
나는 조금 너무 걔인적으로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느낌이 들긴 했다. 하지만 루쓰 놈한테 짜증나는 게 그런 거다. 우리가 우튼에 있을 때, 그 놈은 누구한테 신상 얘기를 하게 만들지만, 누가 그 놈한테 신상에 관해 물어 보면 화를 내는 것이었다. 똑똑하다는 놈들은 자기들이 얘기를 끌고 가지 않을 땐, 누구하고 지적인 얘기같은 걸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놈들은 항상, 자기들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입을 다물어 주기를 바라고, 자기들이 방으로 돌아갈 땐, 남들도 자기 방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니까. 내가 우튼에 있을 때, 루쓰 놈은 그런 걸 싫어했었다 ― 정말이야 ― 자기 방에서 우리들한테 쎅스 얘기를 다 지껄인 뒤에, 우리가 둘러 앉아서 그 얘기를 재잘거리고 있는 것 말이다. 다른 놈들하고 내가 어떤 놈의 방에서 그러는 걸 말이다. 루쓰 놈은 그런 걸 싫어했다. 그 놈은 자기가 한바탕 잘난 체를 하고 난 뒤엔, 다른 놈들은 모두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입을 닥치고 있기를 바랬다. 그 놈이 두려워하고 있는 게 뭐냐 하면, 어떤 놈이 자기보다 더 근사한 얘기를 하면 어쩌나 하는 거였다. 그 놈은 정말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중국에나 가야 겠다. 내 성 생활은 너저분하거든,’ 하고 내가 말했다.
‘당연하지. 넌 아직 덜 여물었으니까.’
‘사실이야. 정말 그래. 나도 알아,’ 하고 나는 말했다. ‘너 내 문제가 뭔지 알아?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계집애한텐 절대로 정말 쎅시해지지 못한다는 거야 ― 정말로 쎅시해지는 거 말야. 내 말은, 내가 계집애를 되게 좋아해야 한다는 거야. 그렇지 않을 땐, 계집애한테 흥미니 뭐니가 좀 없어지는 거지. 정말이지, 그런 게 내 성 생활을 끔찍하게 만들어 놓거든. 내 성 생활은 더럽다니까.’
‘당연하지, 제기랄. 지난 번에 널 만났을 때 너한테 필요한 게 뭔지 말했었지.’
‘정신과 위사니 뭐니한테 가 보라는 거 말이냐?’ 하고 내가 말했다. 그 놈은 그런 게 나한테 필요하다고 말했었다. 그 놈 아버지는 정신과 의사니 뭐니였다.
‘그건 니가 알아서 할 일이지, 제기랄. 니가 니 인생을 어떻게 하든 내 알 바는 아냐.’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무슨 생각을 좀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니 아버지한테 가서 정신분석을 받는다 치자,’ 하고 나는 말했다. ‘니 아버지가 날 어떻게 한다는 거냐? 내 말은, 니 아버지가 나한테 뭘 해 준다는 거냐구?’
‘너한테 뭘 해 주냐? 그저 너한테 얘기를 시키고 그럼 넌 얘기를 하는 거지, 제기랄. 예를 들어, 니가 니 정신의 패턴을 깨닫는 걸 도와 주는 거야.’
‘정신의 뭐라구?’
‘니 정신의 패턴 말이다. 니 정신이란 건 ― 이 봐. 난 지금 정신분석 기초 강의를 하는 게 아냐. 니가 관심있으면, 전활 해서 약속을 하라구. 아니면 하지 말구. 솔직히, 난 관심 없어.’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정말이지, 그 놈은 재미있는 놈이라니까. ‘넌 정말 좋은 놈이야,’ 하고 내가 말했다. ‘너 그거 아냐?’
그는 손목시계를 보고 있었다. ‘이제 가야겠다,’ 하고 그는 일어섰다. ‘만나서 반가왔다.’ 그는 바텐더를 불러서 계산서를 가져 오라고 말했다.
‘야,’ 그가 떠나기 전에 내가 말했다. ‘너 너의 아버지한테 정신분석 받아본 적 있냐?’
‘나 말야? 그건 왜 물어?’
‘그냥. 받아 본 적 있어?’
‘정식으로는 아니구. 아버지는 어느 정도 내가 방향을 잡는 걸 도와 줬지, 하지만 정식으로 그런 걸 받을 필요는 없었어. 그건 왜 물어?
‘그냥. 그저 궁금해서.’
‘자, 수고해,’ 하고 그는 말했다. 그는 팁을 놓고 가려고 했다.
‘한 잔만 더 해,’ 하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부탁이야, 난 더럽게 외롭단 말야. 진심이야.’
그는 그럴 순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늦었다고 말하고 가버렸다.
루쓰 자식. 그 놈은 정말 아니꼬운 놈이긴 했지만, 어휘 구사가 뛰어난 놈이었다. 그 놈은 우튼에서 제일 어휘가 풍부한 놈이었다. 어휘 시험을 본 적이 있었거든.
제 20장
나는 술에 취한 채 거기 계속 죽치고 앉아서 티나와 재닌 년이 나와서 노래니 뭐니를 부르기를 기다렸지만 오늘은 나오지 않았다. 머리가 출렁거리는 속물같은 녀석이 나와서 피아노를 치고, 이어서 저 발렌시아라는 새로 온 여자가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그 여자는 별로 잘하지는 않았지만 티나와 재닌 년 보다는 나았다. 적어도, 좋은 노래를 불렀으니까. 피아노가 내가 앉아 있는 바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발렌시아는 바로 내 옆에 서 있었다. 나는 그 여자에게 좀 추파를 던져 보았지만 날 못 본 체 했다. 그런 짓은 하지 말았어야 할 걸 그랬나 본데, 하지만 난 더럽게 취해 있었던 거다. 여자가 노래를 끝내자마자 바로 나가버렸기 때문에 나는 한잔 하자고 청할 기회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웨이터를 불렀다. 나는 그 자에게, 발렌시아가 혹시 나하고 한잔 하지 않겠는지 물어봐 달라고 말했다. 그 녀석은 그러겠다고 말했지만, 아마 전하지도 않았을 거다. 사람들은 절대로 남의 말을 전하는 법이 없으니까.
정말이지, 나는 거지같이 취해서 1시 정도까지 그 놈의 바에 앉아 있었다. 나는 거의 똑바로 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허풍이나 그런 짓은 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나는 누가 나를 알아 보거나, 아니면 나이가 몇인지 물어보거나 하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정말이지 앞을 똑바로 볼 수도 없었다니까. 나는 정말 술에 취하자, 배에 총 맞은 사람같은 저 멍청한 짓을 다시 했다. 빠 안에서, 배에 충 맞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나는 웃도리 속으로 배니 뭐니에 손을 계속 갖다 대고 피가 사방에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는 시늉을 했다. 나는 부상당한 사실을 사람들이 알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자기가 상처입은 걔자식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 중이었다. 마침내 내가 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냐 하면, 제인 계집애한테 전화를 걸어서 집에 왔는지 알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계산이니 뭐니를 치루었다. 다음에 나는 빠를 나와서 전화가 있는 데로 갔다. 나는 여전히 웃도리 속에 손을 넣고 피가 흐르지 않도록 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난 취한 것이다.
하지만 전화박스 안에 들어가니까, 제인 년한테 전화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나지 않았다. 아마 너무 취해서 그랬던 것같다. 그래서 내가 뭘 했냐 하면, 나는 쌜리 헤이즈한테 전화를 했다.
나는 제대로 다이알을 돌리기 전에 스무 번 정도는 더 돌려야 했다. 정말이지, 나는 앞이 하나도 안 보였다.
‘여보세요,’ 하고, 누군가 그 놈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말했다. 나는 좀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너무 술에 취했던 것이다.
‘누구에요?’ 아주 냉담한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예요. 홀든 코울필드. 쌜리 좀 바꿔 주세요.’
‘쌜리는 자는데. 난 쌜리 할머니요. 이 시간에 전화하는 게 누구라구, 홀든? 지금 몇신지 알아요?’
‘네. 쌜리하구 얘기좀 하고 싶어서요.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쌜리 좀 바꿔 주세요.’
‘쌜리는 잔다구, 학생. 내일 전화해요. 그럼.’
‘깨워 주세요! 깨워 달라구요.’
그러자 갑자기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홀든, 나야.’ 그건 쌜리이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쌜리? 너니?‘
‘그래 ― 소리지르지 마. 너 취했니?’
응, 이봐. 잠깐만. 크리스마스 이브에 갈께. 내가 크리스마스 트리 잘라 줄께, 알았지? 알았어, 야, 쌜리야?‘
‘알았어, 넌 취했어. 이제 자. 어디 있는 거야? 누구하고 있어?’
‘쌜리? 내가 가서 크리스마스 트리 잘라 줄께, 알았니? 알았냐구, 쌜리?
‘그래. 이제 가서 자. 어디 있어? 누구랑 있는 거야?’
‘아무도 없어. 나밖에, 나 뿐이라구.’ 정말이지, 난 무지 취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여전히 배를 움켜 쥐고 있었다. ‘놈들이 날 쐈어. 로키 패거리들이 날 쐈어. 그거 알아? 쌜리, 그거 아냐구?’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이제 자라니까. 난 자야 돼. 내일 전화해.’
‘이봐, 쌜리! 내가 크리스마스 트리 잘라 줄까? 그럴까? 응?’
‘그래. 잘 자. 집에 가서 자.’
쌜리는 전화를 끊었다.
‘잘 자. 잘 자, 쌜리 귀염둥이. 쌜리 내 사랑,’ 하고 나는 말했다. 내가 얼마나 취했는지 상상할 수 있겠어? 나도 전화를 끊었다. 나는, 쌜리가 금방 데이트에서 돌아온 것이라고 추측했다. 나는 쌜리가 그 앤도버 자식하고 런츠니 뭐니를 보러 갔을 거라고 상상했다. 제기랄, 차 한잔 시켜 놓고서 서로 현학적인 얘기나 늘어 놓으면서 멋있게 보이며 거짓말이나 늘어 놓는 놈들 말이다. 계집애한테 전화를 걸지 말 걸 하고 후회했다. 난 술에 취하면, 미친 놈이 된다니까.
나는 그 놈의 전화박스 안에 잠깐 더 있었다. 나는, 완전히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전화기를 좀 붙들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거기서 나와서 바보처럼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가서 세면대중의 하나를 차가운 물로 채웠다. 그리고 나는 거의 귀에까지 물이 오도록 그 속에 머리를 처박았다. 나는 일부러 머리를 말리려고 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나는 머리에서 물이 흘러내리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다. 다음에 나는 창가에 있는 라디에이터로 가서 그 위에 앉았다. 거긴 따뜻하고 좋았다. 나는 미친 놈처럼 떨고 있었기 때문에 그건 기분이 좋았다. 웃기는 일이지만, 나는 술에 취하면 정말 언제나 미친 놈처럼 떤다니까.
나는 달리 별로 할 일도 없고 해서, 그냥 라디에이터 위에 앉아서 바닥에 있는 작은 흰색 타일들을 세었다. 나는 흠뻑 젖어 있었다. 거의 일 갤론이나 되는 물이 목 아래로 흘러 내려서 칼라니 뭐니가 다 젖었지만 나는 그런 것엔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데 신경쓰기엔 너무 취해 있었으니까.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발렌시아 년의 피아노 반주를 하던 저 머리가 파도처럼 구불거리고 변태처럼 생긴 친구가 들어와서 황금 빛깔의 머리를 빗었다. 그 작자가 머리를 빗는 동안, 우린 조금 얘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 작자는 별로 친절하진 않았다.
‘이봐, 빠로 돌아가면 발렌시아를 다시 볼 건가?’ 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러겠지,’ 하고 그가 말했다. 정말 재치있는 자식 아냐? 난 어딜 가나 재치있는 자식들만 만나다니까.
'이봐. 내가 칭찬한다고 전해 주게. 그 놈의 웨이터가 내 말을 전해 줬는지도 물어 봐 주고.'
'왜 집에 안가는 거야, 친구? 그런데 몇 살인가?
'여든 여섯. 이봐 내가 칭찬하더란 말 전해 주게.'
'왜 집에 안가냐구, 친구.'
'내 걱정은 말구. 정말이지, 당신은 피아노를 칠 줄 아는데,'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그저 추켜서 말했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인데, 그 작잔 피아노를 더럽게 못 쳤다. '당신은 라디오에 나가야 돼,' 하고 나는 말했다. '당신같이 잘 난 친군 말야. 저 황금빛 나는 머리카락 좀 보게. 매니저가 필요하지 않나?'
'집에나 가게, 친구, 착하지. 집에 가서 잠이나 자라구.'
'갈 집도 없다네. 이건 진심이야 ― 매니저가 필요한가?'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나가버렸다. 그 작잔 머리를 빗고 두드리고 하던 짓을 다 하고 나서 나가 버렸다. 스트래드레이터 처럼 말야. 잘 난 친구들은 다 한결같다니까. 그 놈의 머리카락을 다 빗고 나면 그냥 홱 나가버린다.
나는 라디에이터에서 내려와서 휴대품 보관실로 나갔을 때 울거나 뭐 그러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어쨋든 난 울고 있었다. 아마 내가 더럽게 우울하고 외롭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한다. 내가 보관실에 갔을 때 나는 내 꼬리표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거기서 일하는 여자는 꽤 영리했다. 어쪳든 내 코트를 갖다 주었다. 그리고 “리틀 셜리 빈즈” 레코드도 ― 나는 여전히 그걸 가지고 다니고 있었다. 나는 잔소리없이 내 물건을 내 준데 대해 1 딸라를 주었지만 여자는 받으려 하지 않았다. 여자는 그냥 집에 가서 자라는 말만 하였다. 나는 그 여자의 일이 끝나면 데이트를 해 보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여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자는, 자기는 내 엄마니 뭐니 정도 될 만큼 나이가 많다고 말하였다. 나는 여자에게 내 회색 빛 머리카락을 보여 주고, 내가 마흔 두 살이라고 말하였다 ― 물론, 그건 장난질을 해 본 거였다. 하지만, 여자는 걔의치 않은 태도를 보였다. 내가 여자에게 내 빨간색 사냥 모자를 보여 주었더니 마음에 들어 했다. 여자는, 내가 나가기 전에 모자를 쒸워 주었다. 아직도 내 머리는 꽤 많이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은 여자였다.
밖에 나왔을 때는, 이제 별로 취한 기분이 없었다. 하지만 다시 추워지기 시작해서 이빨이 무섭게 덜덜거렸다. 나는 그걸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매디슨 애비뉴로 걸어 올라가서 버스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이제 돈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아서 택시니 뭐니는 타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놈의 버스를 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뭘 했냐 하면, 나는 공원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 작은 호수를 지나가면서 도대체 오리들이 뭘 하고 있는지, 그 놈들이 거기에 있는지 어떤지 보자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는, 그 놈들이 거기에 있는지 어떤지 몰랐다. 공원을 건너가면 별로 멀지도 않았고, 별로 갈 만한 데도 없었던 것이다 ― 나는 어디서 잠을 잘 지도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그래서 나는 갔다. 나는 피곤하거나 뭐하지는 않았다. 나는 다만 더럽게 우울했다.
내가 공원에 들어갔을 때,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피비의 낡은 레코드를 떨어뜨린 것이다. 그건 거의 다섯 조각으로 부서졌다. 레코드는 껍데기니 뭐니에 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부서져 버렸다. 나는 거의 울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 때문에 그만큼 우울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껍데기에서 조각들을 꺼내서 코트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그것들은 아무 데도 쓸모가 없었지만 그것들을 그냥 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나는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이지, 거긴 어두웠다.
나는 지금까지 뉴욬에 살았기 때문에, 쎈트랄 파크를 손바닥처럼 잘 안다. 왜냐하면, 나는 어렸을 때, 늘 거기서 롤러 스케이트를 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밤엔 그 호수를 찾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 나는 호수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 그건 바로 쎈트랄 파크 남쪽 근처에 있었다 ― 하지만 나는 거길 찾지 못했다. 나는 생각보다 더 취했던 게 틀림없다. 나는 계속해서 걸었는데, 점점 더 깜깜해지고 더 으시으시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공원에 들어온 이후로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그건 참 다행이었다. 누구 한사람이라도 보았더라면 아마 놀라서 일 마일은 펄쩍 뛰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호수를 찾았다. 어똈냐 하면, 그건 얼어붙은 데도 있었고, 얼지 않은 데도 있었다. 하지만 오리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놈의 호수 주위를 한바퀴 돌았다 ― 제기랄, 사실은, 한번 호수에 빠질 뻔했다 ― 하지만 오리는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어쩌면 근처 어딘가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가, 풀밭이나 어디에서 자거나 뭐나 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호수에 빠질 뻔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마리도 보지 못했다.
결국 나는, 별로 어둡지 않은 벤치에 앉았다. 나는 더럽게 떨고 있었다, 그리고 사냥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머리 뒤엔 작은 얼음 덩어리가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게 걱정스러웠다. 아마 폐렴에 걸려서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백만명이나 되는 얼간이들이 내 장례식이니 뭐니에 오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같이 버스에 타면, 언제나 거리에 매겨진 번호들을 큰 소리로 읽는 디트로이트의 할아버지니 숙모들이니 ― 난 숙모가 오십명은 된다 ― 너절한 사촌들이니 말이다. 얼마나 대 군중이 거기 모일 것인가. 앨리가 죽었을 때도 그들은 다 왔었다, 그 멍청한 친척들 전부 말이다. 입냄새가 되게 나는 멍청한 숙모가 하나 있는데, D.B.가 한 말이지만, 거기 누워있으면 얼마나 평화스러울까 하고 늘 얘기한다는 것이다. 나는 거기 있지는 않았다. 나는 아직 병원에 있었다. 나는 손을 다친 이후로 그 병원이니 뭐니에 들어가야 했다. 어쨋든, 머리털 속에 그런 얼음 덩어리들이 있으니 폐렴에 걸려서 죽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나는 엄마하고 아버지에 대해 되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특히 엄마는 그렇다, 엄마는 아직도 앨리를 잊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가 내 양복이니 운동기구니 뭐니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고 있는 모습이 계속 상상이 되었다. 한가지 좋은 건, 피미가 아직 어린애이기 때문에, 엄마가 피비를 내 장례식에 오지 못하게 할 거라는 거였다. 그게 유일하게 좋은 점이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묘석이니 뭐니에 내 이름을 새기고, 그들이 묘지니 뭐니에 나를 묻는 상상을 하였다. 죽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말이다. 정말이지, 누가 죽으면 사람들은 그를 정리해 버리는 것이다. 진정 바라건대, 내가 죽으면 양식 있는 누군가 나를 강이나 뭐나에 그냥 던져 버렸으면 한다. 그 놈의 묘지에 묻는 것이 아니면 뭐라도 좋다. 일요일이면 사람들이 와서 꽃다발을 배 위에 올려 놓는 것이라니, 그 무슨 엉터리같은 짓이란 말인가. 죽었는데 누가 꽃을 올려 놓기를 바라겠는가? 아무도 없는 것이다.
날씨가 좋으면, 부모님은 자주 나가서 앨리의 무덤에 꽃다발을 갖다 놓곤 한다. 나는 몇번은 그들과 함께 가곤 하다가 그 짓을 그만 두었다. 먼저, 나는 앨리가 무덤 속에 들어가 있는 걸 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들과 묘석이니 뭐니에 둘러 싸여 있는 것 말이다. 해가 나왔을 때는 그래도 별로 나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두 번인가 ― 두 번 그랬다 ― 우리가 거기 있을 때 비가 오기 시작했다. 정말 끔찍했다. 앨리의 지저분한 무덤 위에, 그리고 그의 배 위에 있는 풀 위에 비가 내렸다. 사방에 비가 내렸다. 그러자 무덤을 찾아 왔던 사람들이 죄다 차 있는 데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는 거의 머리가 돌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자기들 차 속으로 들어가서 라디오니 뭐니를 켜고는 어디 근사한 데로 가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 앨리만 빼곤 다들 말이다. 나는 그런 게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무덤 속에 있는 건 그저 그의 몸이니 뭐니밖에 없고 그의 영혼은 천국이나 무슨 엉터리같은 데 가 있다는 건 안다, 그래도 나는 그런 걸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앨리가 천국에 가 있지 않았으면 한다. 사람들은 앨리를 잘 알 지 못했다. 앨리를 알았다면 내 말을 알 것이다. 해가 나올 때는 별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해는 나오고 싶을 때만 나오는 것이다.
조금 있다가, 나는 폐렴이니 뭐니에 걸리는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돈을 꺼내서 가로등에서 비치는 더러운 불빛에 비추어 세기 시작했다. 남은 돈은, 1 딸라 짜리 세 장, 25 쎈트 동전 다섯개와 5 쎈트 동전 한개밖에 없었다 ― 정말이지, 펜시에서 나온 뒤로 엄청나게 많이 써 버린 것이다. 그래서 내가 뭘 했냐 하면, 나는 호숫가로 내려가서 물이 얼지 않은 데다가 25쎈트와 5쏀트 동전을 튀겨서 던졌다. 나는 왜 그런 짓을 했는 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랬다. 아마 그렇게 하면 폐렴이니 그런 것에 걸린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지는 못했다.
나는, 내가 폐렴에 걸려서 죽는다면 피비의 마음이 어떨까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건 유치했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일이 생기면, 피비는 무척 마음이 아플 것이다. 피비는 나를 무척 좋아하니까 말야. 내 말은, 피비가 나를 무척 따른다는 말이다. 어쨋든, 나는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해서, 마침내 어떻게 할까 생각했냐 하면, 내가 죽거나 뭐할지 모르기 때문에 집에 몰래 들어가서 피비를 보자 하고 생각했다. 나한테 문 열쇠니 뭐니가 있기 때문에, 나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게 아파트에 몰래 들어가서, 피비하고 잠깐 아무 얘기나 하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만 마음이 쓰인 건 앞문인데, 그게 더럽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되게 오래된 아파트인데다 수위가 더럽게 게으른 작자라서 모든 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다. 나는, 부모님이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어쩻든 들어가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나는 공원에서 나와서 집으로 갔다. 나는 내내 걸어갔다. 집은 별로 멀지 않았고 이제 피곤하거나 취해 있지 않았다. 날씨는 아주 추웠고 주위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제 21장
집에 도착했을 때 천만다행인 것은, 보통 밤에 엘리베이터 보이를 하는 피트가 엘리베이터 안에 없었다는 것이다.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 온 친구가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이나 누구나와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는다면, 피비한테 인사나 하고 내뺄 수 있겠지, 그러면 아무도 내가 이 근처에 와 있다는 걸 모를 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정말 다행이었다. 더욱 좋은 게 뭐냐 하면, 그 엘리베이터 보이가 약간 모자랐다는 것이다. 나는, 아주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딕스타인씨네 까지 태워다 달라고 말했다. 딕스타인네란, 우리하고 같은 층이지만 다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다음에 나는, 의심스럽게 보이지 않으려고 사냥 모자를 벗고, 아주 급한 듯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 친구는 엘리베이터 문을 닫으니 뭐니 하고 위로 올라갈 준비를 한 다음에, 돌아서서 나를 보며 말했다, ‘그 사람들은 지금 집에 없어요. 14층에 파티하는데 갔는데.’
‘괜찮아요’ 하고 나는 말했다. ‘뭐 기다리기로 하고 온 거니까. 난 조카예요.’
그 친구는 나한테, 약간 바보같기도 하고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했다. ‘로비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같은데,’ 하고 그는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 정말 그러고 싶지만,’ 하고 나는 말했다. ‘근데, 다리가 편치 않아서요. 다리를 일정하게 하고 있어야 되요. 문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게 좋을 것같은데요.’
그는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몰랐다, 그래서 그냥 ‘오’ 하고는 나를 태워다 주웠다. 정말이지, 그건 괜찮은 일이었다. 우스운 일이기도 하였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쪽에서 원하는 걸 거의 다 해 주는 것이다.
나는 우리 층에서 내렸다 ― 걔처럼 절뚝거리면서 말야 ― 그리고는 딕스타인네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는, 돌아서서 우리 집쪽으로 갔다. 나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제 술도 완전히 깨었다. 나는 문 열쇠를 꺼내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아주 아주 조심하면서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나는 정말이지, 꼭 도둑놈같았다니까.
현관은 완전히 깜깜했지만, 물론 난 불을 켤 수 없었다. 나는 뭔가에 부딪혀서 소리를 낼까 봐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집에 왔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집 현관은, 다른 어떤 집에서도 나지 않는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이다. 난, 도대체 그게 무슨 냄새인지 모른다. 그건 꽃양배추도 아니고 향수 냄새도 아니다 ― 도대체 그게 무슨 냄샌지는 모른다 ― 하지만 집에 왔다는 걸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오바를 벗어서 현관의 벽장에 있는 옷걸이에 걸었다. 하지만 옷장문을 열었을 때 벽장안에 있는 옷걸이들이 미친 듯이 달그락거려가지고 그냥 열어 놓은 채로 놔두었다. 이어서 나는, 아주 천천히, 천천히 피비의 방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나는, 식모가 한쪽 귀밖에 없기 때문에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젠가 식모가 나한테 말했는데, 어렸을 때 자기 오빠가 귓속에 밀짚을 쑤셔 넣었다는 것이다. 식모는 정말 아주 귀가 멀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특히 엄마가 그렇지만, 귀가 꼭 무슨 경찰 걔같다. 그래서 그 분들 방문 앞을 지날 땐, 아주, 아주 조심하였다. 제기랄, 숨조차 쉬지 않았다니까. 아버지는 의자로 머리를 때려도 깨지 않을 거야, 하지만 엄마는 다르다, 시베리아 어디에선가 기침을 한번 해봐, 그럼 그 소리를 듣는다니까. 엄마는 아주 신경이 날카로우니 뭐니 하다. 밤새도록 일어나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때가 많다.
결국, 나는 한시간이나 지나서 피비의 방에 갈 수 있었다. 근데, 피비는 방에 없었다. 내가 그 생각을 못했는데, 피비는 D.B.가 할리웃이나 어디에 나가 있을 땐 늘 D.B.의 방에서 잔다. 그 방이 집에서 제일 크기 때문에 피비는 그 방을 좋아한다. 그건 또, D.B.가 필라델피아에서 어떤 주정뱅이 부인한테서 산 굉장히 큰 미치광이같은 책상과, 양쪽으로 십마일이나 되는 엄청나게 큰 침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그 침대를 어디서 샀는지는 모른다. 어쨋든, 피비는 D.B.가 집에 없을 땐 그 방에서 자는 걸 좋아하는데, D.B.는 그렇게 하라고 허락한다. 피비가 그 미치광이같은 책상에서 숙제나 뭐나를 하는 걸 봐야 하는데. 그것도 침대만큼이나 크다. 피비가 거기서 숙제를 할 땐,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피비는 그런 걸 좋아한다. 자기 방은 너무 작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지를 쫙 펴는 걸 좋아한다는 것이다. 정말 웃기지 않아? 피비같은 꼬마애가 뭘 쫙 핀다는 건지 말야.
어쨋든, 나는 아주 조용히 피비의 방에 들어가서 책상 위에 있는 전등을 켰다. 피비는 깨지도 않았다. 불이 들어왔을 때, 나는 잠깐 피비의 얼굴을 보았다. 피비는 얼굴을 벼걔 옆쪽으로 하고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입을 좀 벌리고 있었다. 그건 우스웠다. 어른들을 보자, 그들이 잠들어 있을 때, 입을 좀 벌리고 있으면 너저분해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조금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벼걔에다 사방 침을 흘리고 자도 괜찮아 보이는 것이다.
나는 아주 조용하게 방안을 어슬렁거리면서 잠시 물건들을 쳐다 보았다. 그러니 기분전환이 되었다. 나는 이제 폐렴이니 뭐니에 걸린 것같은 기분이 안들었다. 나는 기분이 꽤 좋아졌다. 피비의 옷은 침대 바로 옆에 있는 의자에 있었다. 피비는, 어린애치고는 아주 단정한 편이다. 내 말은, 보통 아이들처럼 피비는 자기 물건을 아무 데나 던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비는 너저분한 애가 아니다. 피비는 엄마가 캐나다에서 산 갈색 양복 윗도리도 의자 등에 걸어 놓았다. 블라우스니 그런 것도 의자 위에 놓아 두었다. 신발과 양말은 의자 바로 아래 바닥에 서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 신발은 전에 보던 게 아니었다. 그건, 내가 신은 것과 같은, 짙은 갈색 간편화였는데 엄마가 캐나다에서 사 준 양복과 아주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엄마는 피비한테 옷을 잘 입힌다. 정말 그렇다. 엄마는 어떤 것엔 굉장히 까다로운 편이다. 엄마는 아이스 스케이트나 그런 걸 고르는 데는 소질이 없지만, 옷을 고르는 덴 완벽하다. 내 말은, 피비는 언제나 굉장히 잘 어울리는 옷을 입는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을 보면, 부모가 부자니 뭐니 해도 대걔는 끔찍한 옷을 입고 다닌다. 엄마가 캐나다에서 산 옷을 입은 피비의 모습을 봤어야 하는데. 이건 농담이 아니다.
나는 피비의 책상에 앉아서 그 위에 있는 물건들을 보았다. 그건 대부분 학교니 뭐니에서 쓰는 피비의 물건이었다. 대부분 책이었다. 제일 위에 있는 건 「산수는 재미있다!」였다. 나는 첫 페이지를 펴서 살펴 보았다. 거기다 피비는 이렇게 써 놓았다.
피비 웨더필드 코울필드
4 B-1
그게 웃기는 일이었다. 피비의 가운데 이름은 웨더필드가 아니라, 조세핀이다. 하지만 피비는 그 이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피비를 볼 때마다, 피비는 매번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쓰는 것이다.
산수책 아래에는 지리책이 있었고, 지리책 아래에는 철자법 책이 있었다. 피비는 철자법을 잘 안다. 피비는 모든 과목을 잘하지만, 철자법을 제일 잘한다. 철자법 책 아래에는, 노트가 여러 권 있었다. 피비는 노트가 오천권은 된다. 나는 제일 위에 있는 노트를 펼쳐서 1페이지를 보았다. 거기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버니스, 쉬는 시간에 날 봐,
너한테 중요한 말이 있어.
1페이지엔 그게 전부였다. 다음 페이지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왜 알래스카 남동쪽엔 그렇게 많은 통조림 공장이 있는가?
그건, 거기에 연어가 많기 때문이다.
왜 거기엔 좋은 숲이 있는가?
그건, 거기 날씨가 좋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알래스카 에스키모의 생활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
그건 내일 알아 봐야겠다!!!
피비 웨더필드 코울필드
피비 웨더필드 코울필드
피비 웨더필드 코울필드
피비 웨더필드 코울필드
피비 W. 코울필드
피비 웨더필드 코울필드 님
셜리한테 전해 줘!!!
셜리, 넌 니가 궁수자리라고 말했지.
하지만, 너 우리 집에 올 땐,
니 스케이트를 가지고 와.
나는 거기 피비의 책상에 앉아서 노트를 다 읽었다. 그건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그런 건 읽을 수 있다, 어떤 아이의 노트 같은 거 말이다, 피비니 어떤 다른 아이의 거나 말야, 그런 건 하루 종일이라도 읽을 수 있다. 아이들의 노트는 정말 웃긴다. 다음에,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 그건 마지막 담배였다. 나는 그 날, 아마 세 갑은 피웠을 것이다. 조금 있다가, 결국 나는 피비를 깨웠다. 내 말은, 내가 죽을 때까지 거기 피비의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없다는 거고, 게다가 나는 부모님이 갑자기 들어오실까 봐 겁이 났고, 그러기 전에 적어도 피비한테 인사라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피비를 깨웠다.
피비는 잘 일어난다. 내 말은, 피비한텐 소리지르거나 뭐할 필요가 없단 말이다. 그냥, 피비 옆에 앉아서 ‘피비, 일어나,’ 하면 된다. 그러면 벌서 깬다.
‘홀든!’ 하고 피비는 이내 말했다. 피비는 내 목이니 뭐니를 끌어 안았다. 피비는 아주 다정하다. 내 말은, 피비는 어린애치고는 아주 정이 많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너무 다정할 정도이다. 내가 약간 입을 맞춰 주자 피비가 말했다, ‘언제 왔어?’ 피비는 나를 보자 아주 반가와했다. 정말이었다.
‘그렇게 큰소리 내지 마. 금방 왔어. 잘 있었니?’
‘잘 있었어. 내 편지 받았어? 오 페이지 ―’
‘응 ― 조용히 해. 고맙다.’
피비는 나한테 편지를 보냈던 것인데, 나는 답장을 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건, 자기가 학교에서 출연하는 연극에 관한 것이었다. 피비는, 금요일에 연극을 보러 와야 하니까 데이트나 뭐나를 하지 말라고 썼던 것이다.
‘연극은 어떻게 돼 가니? 하고 나는 물었다. ’제목이 뭐랬지?‘
‘「미국인을 위한 크리스마스 행진」이야. 평범하지만, 내가 베네딕트 아놀드야. 거의 제일 큰 역이야.’ 하고 피비는 말했다. 정말이지, 피비는 완전히 깨어 있었다. 피비는 그런 얘기를 할 땐 굉장히 흥분한다. ‘내가 죽으려고 할 때, 연극이 시작돼. 크리쓰마스 이브에 망령이 찾아와서 창피하지 않냐고 물어 보지. 있잖아. 내가 조국이니 뭐니를 배반했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보러 올거야?’ 피비는 침대에 완전히 일어나 앉아 있었다. ‘내가 그것 때문에 편지 쓴거야. 올거야?’
‘그럼, 가지. 정말 갈께.’
‘아빤 오지 못하셔. 캘리포니아에 가야 된대,’ 하고 피비가 말했다. 정말이지, 피비는 완전히 깨어 있었다. 피비는, 완전히 깨려면 2초면 된다. 피비는 앉아서 ― 약간 무릎을 꿇고 있었다 ― 내 손을 쥐고 있었다. ‘근데. 엄마가 그러는데, 오빤 수요일에 온다 그랬잖아?’ 하고 피비가 말했다. ‘엄마가 수요일이라고 그랬어.’
‘빨리 왔어 ― 그렇게 큰소리 내지 마. 다 깨겠어.’
‘지금 몇시야? 늦게나 오신다고 엄마가 그랬어. 코네티컷, 노워크에 파티에 가셨거든,’ 하고 피비는 말했다. ‘내가 오늘 오후에 뭐했는지 맞춰 봐! 내가 무슨 영화 봤나 맞춰 봐!’
‘몰라 ― 근데. 몇시에 오신다고 ―’
‘「의사」라는 영화야,’ 하고 피비는 말했다. ‘리스터 재단에서 특별히 보여 준 거야. 하루만 보여 줬는데 ― 오늘이 바로 그날이야. 켄터키니 뭐니에 사는 어떤 의사 얘긴데, 다리가 불구라 걷지 못하는 자기 아이 얼굴 위에다 담요를 뒤집어 씌운대. 그래서 그 사람은 감옥이나 어디로 끌려가지. 정말 재미있는 영화였어.’
‘잠깐만. 몇시에 오신다는 ―’
‘그 사람은 그 일을 뉘우치지, 의사 말야. 그래서 그는 여자 애의 얼굴이니 뭐니에 담요를 씌워서 질식시키는 거야. 그래서 그는 감옥에 끌려가서 종신형을 살게 돼, 하지만 머리에 담요를 뒤집어 쓴 애는 늘 그 의사를 찾아와서 그가 한 일에 대해 감사하지. 그 사람은 안락사 의사였어. 하지만, 그 사람은 자기가 감옥에 갈 만한 죄를 지었다는 걸 알아, 왜냐하면 의사는 하나님한테서 아무 것도 빼앗아 가면 안되기 때문이야. 우리 반에 있는 애 엄마가 데리고 갔어. 앨리스 홈즈란 애야. 걘 나하고 제일 친한 애야. 걘 유일하게 ―’
‘잠깐만 좀,’ 하고 나는 말했다. ‘너한테 뭘 물어보잖아. 몇시에 오신다는 얘기 했니, 아니면 안했니?’
‘아니, 근데 아주 늦게 오시진 않을 거야. 아빠는 기차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차니 뭐니를 가지고 가셨어. 이제 차 안에 무전기 달아 놨어! 근데 엄마는, 차가 가고 있을 땐 그걸 쓰지 말랬어.’
나는 좀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내 말은, 부모님이 갑자기 들이닥치지 않나 하는 걱정을 안하게 됐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걱정을 했던 것이다. 갑자기 들이닥친다면 나는 꼼짝하지 못하고 잡힐 것이었다.
피비를 봤어야 하는데. 피비는 칼라에 빨간 코끼리 그림이 있는 파란색 파자마를 입고 있었다. 피비는 코끼리라면 깜빡 죽거든.
‘그래 영화가 재미있었니?’ 하고 나는 말했다.
‘아주 좋았어, 앨리스가 감기에 걸려서, 걔네 엄마가 계속해서 몸이 안 좋니 하고 물어보는 것만 빼놓곤. 영화가 제일 재미있는 데서 말야. 언제나 영화 한가운데서, 걔네 엄만 내쪽으로 몸을 숙이고는 앨리스한테 너 몸이 안 좋은 거 아니니 하고 묻는 거야. 정말 신경질 났어.’
이어서 나는 피비한테 레코드 얘기를 했다. ‘근데, 너 주려고 레코드를 샀는데,’ 하고 나는 말했다. ‘근데, 오다가 그걸 깨뜨렸어.’ 나는 오바 주머니에서 조각들을 꺼내서 피비한테 보여 주었다. ‘큰 손해 봤지,’ 하고 나는 말했다.
‘그걸 이리 줘,’ 하고 피비가 말했다. ‘가지고 있을께.’ 피비는 내 손에서 조각들을 받아서 나이트 테이블 서랍에 넣었다. 정말 귀엽지 않아?
‘D.B.는 크리쓰마스때 온대?’ 하고 나는 물었다.
‘올지도 모르고 안 올지도 모른대, 엄마가 그랬어. 사정에 따라서. 할리웃에 남아서 애너폴리스 이야기 영화 대본을 써야 할지도 모른대.’
‘애너폴리스라구? 체!’
‘연애 이야기니 뭐니래. 거기 누가 나오는지 알아? 어떤 영화 배운지? 밪춰 봐.’
‘난 관심없어. 애너폴리스라구, 체, 제기랄, D.B.가 애너폴리스에 대해 뭘 알아? 그게 자기가 쓰는 얘기하구 무슨 상관이 있어?’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이지, 그런 건 화가 난다.빌어벅을 할리웃. ‘니 팔은 왜 그러니?’ 하고 나는 피비에게 물었다. 나는 피비가 팔꿈치에 커다란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걸 보았다. 내가 그걸 발견한 건, 피비의 파자마는 소매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애 때문이야, 커티스 웨인트라우브말야, 우리 반에 있는 앤데, 내가 공원에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날 밀었어,’ 하고 피비가 말했다. ‘볼래?’ 피비는 팔꿈치에서 미치광이같은 반창고를 떼기 시작했다.
‘그냥 놔 둬. 걔가 널 왜 밀었대?’
‘몰라. 날 미워하나 봐,’ 하고 피비가 말했다. ‘쎌마 애터배리하고 내가 걔 잠바에 잉크니 뭐니를 부어 주었지.’
‘그건 잘 한 게 아닌데. 너희들은 ― 도대체 어린애가?’
‘아냐. 걘 내가 공원에 나갈 때마다, 날 졸졸 쫓아 다녀. 언제나 날 따라 다녀. 걔한텐 짜증난다니까.’
‘걔가 아마 널 좋아하나 보다. 그런 걸 가지고 잉크를 ―’
‘난 걔가 날 좋아하는 건 싫어,’ 하고 피비는 말했다. 그러더니 나를 이상한 표정으로 보기 시작했다. ‘홀든,’ 하고 피비는 말했다, ‘왜 수요일에 오지 않고?
‘뭐라구?’
정말이지, 피비는 늘 찬찬히 봐야 한다. 피비가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미친 거다.
‘왜 수요일에 오지 않은 거야?’ 하고 피비가 물었다. ‘쫓겨 나거나 그런 건 아니지?’
‘말했잖아. 일찍 보내 줬다구. 전부 다 ―’
‘오빤 쫓겨 난거야! 쫓겨 났다구!’ 하고 피비는 말했다. 그러더니 피비는 주먹으로 내 무릎을 때렸다. ‘그랬지? 오, 홀든!’ 피비는 손이니 뭐니를 입에 갖다 댔다. 피비는 정말 감정적이다, 하늘에 맹세해.
‘내가 쫓겨났다구 누가 그러냐? 아무도 내가 ―’
‘오빤 쫓겨난 거야. 쫓겨난 거라구,’ 하고 피비는 말했다. 그리고 다시 주먹으로 나를 때렸다. 내가 아프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미친 거다. ‘아빠가 오빨 죽이려구 그럴 거야!’ 하고 피비는 말했다. 그러더니 피비는 침대 위에 배를 깔고 엎드린 다음 얼굴을 벼개로 덮었다. 피비는 그런 짓을 자주 한다. 어떤 땐 미치광이 같다니까.
‘이제 그만 둬,’ 하고 나는 말했다. ‘아무도 날 죽이지 않아. 아무도 심지어 ―자, 피브, 그 놈의 걸 얼굴에서 떼. 아무도 날 안 죽여.’
하지만 피비는 벼개를 떼려고 하지 않았다. 피비가 고집을 부릴 땐 아무도 그걸 막을 수없다. 피비는 계속해서, ‘아빠가 오빨 죽이려구 그럴거야.’ 하고 말했다. 하지만 그 놈의 벼개를 얼굴에 덮고 있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는 않았다.
‘아무도 날 안 죽여. 생각해 봐라. 먼저, 난 멀리 가니까. 내가 뭘 하려냐 하면 말야, 당분간 목장이니 뭐니에서 일자릴 얻을 지도 몰라. 할아버지가 콜로라도에 목장이 있는 친굴 알거든. 거기서 일자릴 얻을 지도 몰라,’ 하고 나는 말했다. ‘가게 된다면, 거기 가서도 너하고 계속 연락할께. 자아. 얼굴에서 그걸 떼라니까. 빨리. 야, 피브. 어서, 어서.’
하지만 피비는 벼개를 떼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벼개를 떼려고 했지만 피비는 꿈쩍도 안했다. 피비하고 다투면 피곤해진다니까. 정말이지, 피비가 계속해서 벼개를 얼굴에 대고 있으려고 한다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제발, 피브. 이리 와,’ 하고 나는 계속 말했다. ‘자아, 야...야, 웨더필드. 어서.’
하지만 피비는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어떤 땐 피비한텐 설득도 안 통한다. 결국, 나는 일어나서 거실로 나왔다. 나는 테이블 위에 있는 담배 상자에서 담배를 몇 걔 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내 건 다 피웠거든.
제 22장
내가 다시 방에 들어갔을 때, 피비는 벼개를 떼고 있었다 ― 나는 그렇 줄 알고 있었다 ― 하지만 피비는 똑바로 누워 있으면서도 나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침대 가장자리를 돌아서 다시 앉았을 때, 피비는 반대쪽으로 얼굴을 획 돌렸다. 피비는 무섭게 나를 배척하고 있었다. 내가 그 무슨 펜시 장비를 지하철에 두고 내렸을 때, 펜시의 그 펜싱팀처럼 말야.
‘헤이즐 웨더필드는 어떻게 지내고 있니?’ 하고 내가 말했다. ‘지금도 그 애에 대해 새로운 얘기를 쓰니? 니가 보내 준 얘기는 내 수트 케이스 안에 있어. 저기 역에 말야. 그거 참 재미있는 얘기더라.’
‘아빠가 오빨 죽일 거야.’
정말이지, 피비는 어떤 걸 마음 속에 품고 있으면 정말로 거기서 마음을 뗴지 않는다.
‘아냐, 아버진 안 그래. 아버진 제일 심하게 한다 해도, 날 혼내 주고 나서는, 그 놈의 육군 사관학교에 보내겠지. 아마 그 정도일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난 여기 있지도 않을 거야. 난 멀리 갈 거야. 그럴 거야 ― 콜로라도 목장에 가 있을 거야.’
‘웃기지마. 오빤 말도 못 타잖아.’
‘누가 못 탄대? 난 탈 수 있어. 그럼 탈 수 있지. 그런 건 2분 정도면 배워,’ 하고 나는 말했다. ‘그거 좀 잡아 당기지마.’ 피비는 팔에 붙인 반창고를 잡아 당기고 있었다. ‘근데 누가 니 머릴 그렇게 잘라 줬니?’ 하고 나는 물었다. 나는, 피비가 우스꽝스러운 머리를 하고 있는 걸 그 때 알아챘다. 머리가 좀 너무 짧았던 것이다.
‘상관마,’ 하고 피비는 말했다. 피비는 어떤 땐, 굉장히 골을 낼 때가 있다. 피비도 꽤 화를 낼 줄 안다. ‘오빤 또 전 과목에서 낙제한 거지,’ 하고 피비가 말했다 ― 아주 화가 난 말투였다. 어떤 면에선 우습기도 하였다. 피비는 가끔 무슨 학교 선생같은 말투를 쓴다, 겨우 어린애인 주제에 말이다.
‘아냐, 그런 건 아냐,’ 하고 나는 말했다. ‘영어는 통과했어.’ 그리고, 나는 그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피비의 엉덩이를 꼬집어 주었다. 피비가 옆으로 누워 있는 모습이 좀 아니꼬왔던 것이다. 피비는 엉덩이랄 것도 거의 없다. 세게 꼬집은 것도 아닌데, 피비는 내 손을 때리려고 했지만 맞치지는 못했다.
그러자 갑자기 피비가 말했다, ‘오, 왜 그랬어?’ 무슨 말이냐 하면, 왜 또 쫓겨났냐는 것이다. 피비의 그런 말투가 나를 좀 우울하게 했다.
‘오, 제발, 피비, 나한테 묻지 마. 모두들 그런 걸 묻는데 신물이 난다,’ 하고 나는 말했다. ‘이유야 수만가지나 돼. 거긴 내가 다닌 중에서 제일 형편없는 학교야. 같지 않은 놈들만 다닌다구. 그리고 너절한 놈들도 많구. 평생에 그렇게 너절한 놈들이 많이 모인 것도 본 적이 없어. 예를 들어, 누군가의 방에서 잡담을 하고 있다 치자, 그런데 누가 들어오려고 한단 말야. 그런데 그 놈이 멍청하고 또 여드름 투성이면 들여 보내지 않는다구. 누군가 들어오려고 하면 다들 문을 걸어 잠그고 말야. 그런데 놈들은 무슨 비밀 결사같은 걸 가지고 있다구. 나는 더러워서 가입하지 않았지만 말야. 거기 끼려고 애쓰는, 저 여드름 투성이에다 따분한 로버트 애클리란 놈이 있었어. 그 놈은 계속 거기 끼려고 애썼지만 놈들은 허락하질 않았지. 단지 그 놈이 따분하고 여드름 투성이라는 이유로 말야. 난 그런 얘긴 하고 싶지도 않다. 거긴 더러운 학교였어. 내 말은 진짜야.’
피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목덜미를 보고 피비가 내 말을 듣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피비는, 누가 무슨 얘기를 하면 언제나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우스운 게 뭐냐 하면, 피비는 무슨 얘길 하는 지를 태반은 알아 듣는다는 것이다.
나는 펜시 얘기를 계속했다. 나는 좀 그러고 싶은 기분이었다.
‘몇 사람은 좋은 선생이 있기도 해, 근데 그들도 엉터리긴 마찬가지야,’ 하고 나는 말했다. ‘스펜서라는 선생이 있었어. 선생 부인은 늘 핫 초콜렛이니 뭐니를 주지, 그분들은 정말 꽤 좋은 분들이었어. 하지만 터머, 교장인데, 그가 역사시간에 들어와서 뒷쪽에 앉는 걸 봤어야 하는데. 그는 늘 들어 와서는 교실 뒷쪽에 30분 정도 앉아 있어. 자기는 자리에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생각해 달라는 거야. 조금 있다가 그는 스펜서 선생의 말을 막고는 시시한 농담을 늘어 놓는 거야. 그럼 스펜서 선생은 낄낄거리고 웃겨서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거야, 마치 교장이 무슨 제기랄 왕자니 뭐니라도 된다는 것처럼 말야.’
‘그렇게 욕하지마.’
‘그걸 봤다면 너 게웠을 거야, 맹세해 틀림없이 그랬을 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다음에, 재향군인의 날엔 말야, 그런 날이 있어, 재향군인의 날이라구 말야, 그 땐 1776년 정도에 펜시를 졸업한 멍청이들이, 마누라니 애들을 데리고 죄다 몰려 와서는 사방을 어슬렁거리지. 50살 정도 된 어떤 사람을 봤어야 하는데. 그 사람이 뭘 했냐 하면 말야, 우리 방에 들어와서 문을 노크하고는 화장실을 좀 써도 되냐고 묻더군. 화장실은 복도 끝에 있었거든 ― 우린 왜 그가 우리한테 그런 걸 양해를 구하는지 몰랐어. 그 사람이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 옛날에 자기가 화장실 문에 써 넣었던 이니셜이 지금도 있는지 알고 싶다는 거야. 그가 뭘 했었냐 하면, 자기는 90년 전 쯤에 자기 이니셜을 화장실 문에 파 놓았는데, 그게 지금도 있는지 보고 싶다는 거야. 그래서 나하고 방친구는 그 사람을 데리고 화장실까지 가서는, 그 사람이 화장실 문마다 자기 이니셜을 찾는 동안 거기 서 있었지. 그 동안 그 사람은 내내 우리한테 얘기를 하더군, 자기가 펜시에 있을 때가 자기 일생에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말하면서, 우리한테 미래니 뭐니에 대해 충고를 늘어 놓더군. 정말이지, 그 사람이 얼마나 날 우울하게 했는지 몰라!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란 말이 아냐 ― 그렇진 않았어. 하지만 꼭 나쁜 사람이 사람을 우울하게 하지는 않아 ― 좋은 사람이면서도 사람을 우울하게 할 수가 있어. 누구를 우울하게 하려면 말야, 그저 화장실 문에서 자기 이니셜을 찾으면서 엉터리같은 충고를 늘어 놓기만 하면 돼 ― 그러면 된다구. 모르겠어. 그 사람이 그렇게 완전히 숨이 차서 헐떡꺼리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나쁘진 않았을지도 몰라. 그 사람은 사다리를 올라가면서부터 완전히 숨이 차서 자기 이니셜을 찾는 내내 헐떡거리더군, 콧구멍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더라, 그 동안 스트래드레이터하고 나한테, 우리가 펜시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모두 얻으라고 말하는 거야. 제기랄, 피비! 난 설명하지 못하겠어. 난 펜시에서 일어나는 건 어떤 것도 좋아하지 않았어. 왜 그런 진 설명하지 못하겠어.’
피비가 그 때 뭐라고 말을 했지만, 난 알아들을 수 없었다. 피비는 입을 약간 벼개에 처박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뭐라구?’ 하고 내가 말했다. ‘입을 떼. 니가 입을 그러구 있으니까 알아들을 수가 없잖아.’
‘오빤 무슨 일이건 좋아하는 게 하나도 없다구.’
피비가 그런 말을 했을 때 나는 한층 더 우울해졌다.
‘아냐. 나도 좋아하는 게 있어. 물론 있지. 그렇게 말하지 마.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하는거야?’
‘왜냐하면 오빤 하나도 좋아하는 게 없으니까. 오빤 어떤 학교도 좋아하지 않잖아. 오빤 이 세상 일을 하나도 좋아하지 않아.’
‘좋아해! 그게 니가 잘못 알고 있는 점이야 ― 바로 그게 니가 잘못 알고 있는 거라구. 도대체 넌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이지, 피비는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오빤 하나도 좋아하는 게 없으니까,’ 하고 피비가 말했다. ‘하나만 말해 봐.’
‘하나만? 내가 좋아하는 거 하나만?’ 하고 나는 말했다. ‘좋아.’
문제는 뭐냐 하면, 나는 마음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는 거다. 어떤 땐 마음을 집중하기가 어렵다.
‘내가 무지 좋아하는 거 하나만 말이지?' 하고 나는 피비에게 물었다.
하지만, 피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피비는 침대 다른 쪽에 비스듬하게 앉아 있었다. 피비는 거의 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었다. ‘자아, 대답해 봐,’ 하고 내가 말했다. ‘내가 무지 좋아하는 거, 아니면 내가 그냥 좋아하는 거 말야?’
‘오빠가 무지 좋아하는 거.’
‘좋아,’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뭐냐 하면, 집중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건 다만, 저 낡아빠진 밀짚 바구니를 들고 기부금을 모으고 있던 저 두명의 수녀들밖에 없었다. 특히 저 철테 안경을 쓰고 있던 수녀 말이다. 그리고 엘크톤 힐즈에 있던 어떤 놈하구. 엘크톤 힐즈에, 제임스 캐슬이라는 이름을 가진 놈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필 스타빌이라는 아주 잘난체 하는 놈한테 뭔가를 돌려 주지 않으려고 했었다. 제임스 캐슬은 그 놈을 아주 잘난체 하는 놈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스타빌의 너저분한 친구 놈 중 하나가 스타빌한테 가서 캐슬러 얘기를 했다. 그래서 스타빌이, 너저분한 놈들 여섯 명하고 같이 제임스 캐슬의 방으로 몰려 가서 문을 잠그고는 그에게서 말한 걸 뺏으려고 했지만 캐슬러는 돌려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놈들은 그를 손봐주기 시작했다. 그 놈들이 어떤 짓을 했는 진 말하지 않겠어 ― 너무 너저분한 얘기니까 ― 그래도 그는 돌려 주려고 하지 않았지, 제임스 캐슬 말야. 그런데 그를 봤어야 하는데. 그 놈은 작고 빼빼 말랐는데, 손목은 연필만큼이나 굵었지. 결국, 그 놈이 뭘 했냐 하면, 말한 걸 돌려 주는 대신에 창 밖으로 뛰어 내렸어. 나는 그 때 샤워니 뭐니를 하고 있었는데, 그 놈이 밖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난 그 땐, 무슨 물건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라디오나 책상이나 뭐나가 말야, 어떤 아이나 뭐나가 아니고 말야. 그 때, 모두들 복도를 지나 우르르 몰려가서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나도 목욕옷을 입고 아래로 내려갔다, 제임스 캐슬이 돌 계단이니 뭐니에 자빠져 있었다. 그는 죽어 있었다, 이빨이니 피니가 사방에 흩어져 있었는데, 아무도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빌려 준 자라목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방에 그와 같이 있었던 그 놈들이 무슨 벌을 받았냐 하면 그저 퇴학당한 것뿐이다. 그 놈들은 감옥에 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게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전부였다. 아침시간 때 본 그 두명의 수녀와 엘크톤 힐즈의 제임스 캐슬 말이다. 웃기는 건 뭐냐 하면,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인데, 나는 제임스 캐슬을 거의 잘 알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 놈은 아주 조용한 놈이었거든. 그는 나하고 같이 수학 시간에 들었었다, 자리가 교실 저쪽 끝에 있었는데 뭘 암송하러 일어나거나 칠판에 나가서 뭐나를 쓰거나 하는 적이 거의 없었다. 학교에서 어떤 놈들은 일어나서 뭘 암송하거나 칠판에 나가는 법이 거의 없다. 생각해 보면, 내가 그 놈하고 얘기를 했던 적이 단 한번 있었는데, 그가 나한테 자라목 스웨터를 빌릴 수 있냐고 물었던 때이다. 그 놈이 나한테 물었을 때 나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나는 너무 놀랐었다. 기억으론, 그 때 샤워실에서 이빨을 닦고 있었다. 그의 말은, 자기 사촌이 드라이브니 뭐니를 시켜 주러 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내가 자라목 스웨터를 가지고 있는 걸 아는 지도 몰랐다. 내가 그 놈에 대해 아는 건, 출석을 부를 때 그의 이름이 바로 내 앞에 있다는 것밖에 없었다. R. 캐벌, W. 캐벌, 캐슬, 코울필드 ― 난 지금도 그 순서를 왼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이지만. 나는 그에게 거의 내 스웨터를 빌려주려고 하지 않았었다. 그를 별로 잘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뭐라구?’ 하고 나는 피비에게 말했다. 피비가 나한테 뭐라고 말을 했는데,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오빤 한가지도 생각해 낼 수 없잖아.’
‘아냐, 생각할 수 있어. 있다구.’
‘그럼, 해 봐.’
‘난 앨리를 좋아해,’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걸 좋아하구, 여기에 너하고 앉아서 얘기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하고, 또 ―’
‘앨리는 죽었어. 오빤 언제나 그런 얘기만 해! 누군가가 죽었거나 뭐해서 하늘나라에 있으면, 그건 사실은 ―’
‘앨리가 죽은 건 나도 알아! 내가 그걸 모를 줄 알아? 그래도 난 앨리를 여전히 좋아할 수 있는 거야, 그렇지 않아? 누가 죽어도 그를 좋아할 수 있는 거야, 내 참 ― 특히 그가 살아 있으니 뭐니한 사람들 보다도 백만배는 더 나은 사람일 경우에는 그렇지.’
피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피비는 할 말이 하나도 없을 때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어쨋든, 난 지금이 좋아,’ 하고 나는 말했다. ‘내 말은, 바로 지금말야. 그냥 너하고 여기 앉아서 농담하고 그러는 거―’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그런 게 정말 중요한 거야! 바로 그런 게 중요한 거라구! 대체 왜 아니라는 거야? 사람들은 정말 중요한 건 생각하지 않아. 난 제기랄, 그딴 데 넌더리가 나.’
‘욕 좀 하지마. 좋아, 다른 걸 말해 봐. 오빠가 되고 싶은 걸 말해 봐. 과학자라든지. 아니면 변호사나 뭐 그런 거말야.’
‘난 과학자가 되지 못해. 난 과학에 소질이 없거든.’
‘그럼, 변호사는 ― 아빠나 누구처럼 말야.’
‘변호사는 괜찮은 거 같애 ― 하지만 그런 건 별로 관심없어,’ 하고 나는 말했다. ‘내 말은, 그들이 죄없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러 다니거나 뭐나 하면 괜찮다는 거야, 하지만 변호사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아. 변호사들이 하는 일이란 건, 돈이나 많이 벌고 골프나 브릿지 게임을 하고, 자동차를 사고 마티니를 마시고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뿐이지. 그리고 또 말인데. 설사 사람들의 생명이나 뭐나를 구하고 다닌다 해도 말야, 그게 진짜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싶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사실은 그저 유명한 변호사가 되서, 공판이 끝났을 때 무슨 영화에서처럼, 기자들이니 뭐니들이 뒤에서 박수를 치고 축하를 하는 걸 꿈꾸는 건지 어떻게 아니? 누가 엉터리가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아? 문제는, 그걸 알 수 없다는 거야.’
도대체 내 얘기를 피비가 이해할 거라고는 별로 확신하지 않는다. 내 말은, 피비가 어린애니 뭐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비는 적어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만일 누군가가 귀를 귀울이고 있다면 그렇게 나쁜 건 아니다.
‘아빤 오빠를 죽이려고 그럴 거야. 오빨 죽일 거야.’ 하고 피비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듣고 있지 않았다. 나는 뭔가 다른 걸 생각하고 있었다 ― 어떤 미치광이 같은 걸 말이다. ‘넌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아니?’ 하고 나는 말했다. ‘내가 뭐가 되고 싶은 지 알아? 내 말은, 만일 나한테 무슨 빌어먹을 선택권이 있다면 말야?’
‘뭐라구? 욕 좀 그만해.’
‘너 이런 노래 알아 “어떤 애가 호밀밭을 지나 오는 다른 애를 잡으면”? 나는 그런 ―’
‘그건 “어떤 애가 호밀밭을 지나 오는 다른 애를 만나면”이야!’ 하고 피비가 말했다. ‘그건 시야. 로버트 번즈가 쓴.’
‘그게 로버트 번즈가 쓴 시라는 건 알아.’
하지만 피비 말이 맞았다. 그건 “어떤 애가 호밀밭을 지나 오는 다른 애를 만나면”이다. 하지만 그 땐 그걸 몰랐었다.
‘난 그게 “어떤 애가 다른 애를 잡으면”인 줄 알았지,’ 하고 나는 말했다. ‘어쨋든 난 그런 어린애들이 넓은 호밀밭이니 뭐니에서 무슨 놀이를 하고 있는 걸 계속 생각하는 중이야. 수천명이나 되는 어린애들이 있는데,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 ― 내 말은, 어른이 아무도 없다는 거야 ― 나 말고는 말야. 그런데 나는 어떤 미치광이같은 벼랑 가장자리에 서 있는 거야. 내가 뭘 하냐 하면 말야, 아이들이 벼랑을 넘어가려고 하면 그들을 잡는 거야 ― 내 말은, 아이들이 어디로 가는 지 보지도 못하고 달려갈 때 내가 어디선가 나와서 그들을 잡는다는 거야. 내가 하루 종일 하는 일은 그것뿐이야. 나는 그저, 호밀밭이니 뭐니에서 파수꾼이 되고 싶어. 그게 미친 짓인 줄은 알아, 하지만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건 그것밖에 없어. 그게 미친 짓인 줄은 알아.’
피비는 오래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피비가 뭐라고 말을 했는데, 피비는 그저, ‘아빤 오빨 죽이려고 그럴 거야.’라고 했다.
‘아버지가 그래도 난 상관 안해,’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왜냐하면 내가 뭘 하고 싶었냐 하면 말야, 나는 엘크톤 힐즈에서 내 영어 선생이었던 앤쏠리니선생한테 전화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지금 뉴욬에 살고 있었다. 엘크톤 힐즈를 그만 두었던 것이다. 그는 뉴욬대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가지고 있었다. ‘전활 해야겠다,’ 하고 나는 피비한테 말했다. ‘금방 돌아올께. 잠자지 마.’ 나는. 내가 거실에 있는 동안 피비가 잠들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피비가 자지 않는다는걸 알았지만, 그저 다짐을 하려고 그렇게 말했다. 내가 문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피비가 말했다. ‘홀든!’ 그래서 나는 돌아섰다.
피비는 침대에서 약간 일어나 있었다. 피비는 정말 예뻐 보였다. ‘난 지금 필리스 마굴리스한테 웅변 수업을 듣고 있어,’ 하고 피비가 말했다. ‘들어 봐.’
나는 귀를 기울였다. 무슨 얘긴가 들었지만 별로 대단한 건 아니었다. ‘좋은데,’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나는 거실로 나가서 앤쏠리니 선생한테 전화를 걸었다.
제 23장
나는, 부모님이 전화하는 중에 들이닥칠까봐 걱정이 되서 빨리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앤쏠리니 선생은 아주 좋은 분이다. 선생은 내가 그러고 싶으면 지금 바로 와도 된다고 말했다. 아마 선생과 그의 부인을 깨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전화를 받기까지 꽤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선생은 나한테 먼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펜시에서 퇴학당했다는 말은 했다. 나는, 선생한테 말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런 말을 하자, 선생은 ‘저런’ 하고 말했다. 선생은 유머 감각이니 뭐니가 있었다. 선생은, 내가 오고 싶으면 바로 와도 좋다고 말했다.
선생은, 내가 만났던 중에서 제일 좋은 선생이었다, 앤쏠리니 선생 말이다. 선생은, 내 형 D.B.보다 별로 나이가 많지 않은, 아주 젊은 사람이었는데, 선생하고는 농담을 해도 존경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선생은 내가 말한, 창 밖으로 뛰어 내린 그 녀석을 안아 올린 사랍이었다, 제임스 캐슬 말이다. 앤쏠리니 선생은 그의 맥박을 짚어 보고 나서는, 자기 오바를 벗어서 제임스 캐슬에게 덮고는 그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었다. 선생은, 자기 오바가 온통 피로 물들어도 하나도 걔의치 않았다.
내가 D.B.의 방으로 돌아왔을 때, 피비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있었다. 댄스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피비는, 식모가 듣지 못하도록 낮게 틀어놓고 있었다. 피비를 봤어야 하는데. 피비는 이불 밖에서, 저 요가하는 친구들처럼 다리를 포걔고 침대 한 가운데 앉아 있었다. 피비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정말 웃긴다니까.
‘이런,’ 하고 나는 말했다. ‘너 춤추고 싶니?’ 피비가 아주어린 애였을 때 나는 피비에게 춤추는 법이니 뭐니를 가르쳐 준 적이 있다. 피비는 춤을 아주 잘 춘다. 내 말은, 그저 피비에게 몇가지만 가르쳐 줬다는 것이다. 피비는 대부분은 자기 혼자서 배웠다. 춤추는 법은 사실 가르쳐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오빤 신발을 신고 있잖아,’ 하고 피비가 말했다.
‘벗을께. 자아.’
피비는 침대에서 거의 뛰어 내렸다. 그리고 내가 신발을 벗는 동안 기다렸다. 나는 잠시 피비와 춤을 추었다. 피비는 정말 잘 춘다. 나는 어린애들과 춤추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데, 대걔의 경우 끔찍해 보이기 때문이다. 내 말은, 레스토랑이니 뭐니에서 어떤 늙은 사람이 어린애를 댄스 플로어로 데리고 나가는 걸 말한다. 보통 그들은 잘못해서 어린애의 옷을 뒤에서 계속 위로 잡아당긴다, 게다가 어린애는 같이 춤을 추어서는 안되는 거고, 끔찍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 있는 데선 피비건 누구건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집 안에서 장난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피비하고는 다르다, 피비는 정말 춤을 추는 것이다. 피비는 무엇을 하든지 따라할 줄 안다. 내 말은, 다리가 더 길어서 피비를 바싹 가까이 잡아당겨야 할 경우에도 그렇다는 것이다. 피비는 바로 따라 온다. 크로스 오버니, 우스꽝스러운 드롭이니 지루박같은 걸 해도 피비는 바로 따라 한다. 탱고조차 따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네 곡 정도 춤을 추었다. 곡 사이에도 피비는 되게 웃긴다. 피비는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말이나 뭐나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자세 그대로 다음 곡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웃기지 않아? 웃거나 뭐나 하면 안되는 것이다.
어쨋든 우리는 네 곡 정도 춤을 추고 나자, 나는 라디오를 껐다. 피비는 다시 침대 위로 팔짝 뛰어 올라가서 이불을 덮었다. ‘나아지지 않았어?’ 하고 피비는 나에게 물었다.
‘대단한데,’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침대 위에 피비 옆에 앉았다. 나는 좀 숨이 찼다. 나는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서 거의 숨을 쉴 수 없었다. 피비는 조금도 숨이 차지 않았다.
‘이마를 만져 봐,’ 하고 피비가 갑자기 말했다.
‘왜?’
‘만져 봐. 한 번만 만져 봐.’
나는 이마를 만졌다. 하지만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꽤 뜨겁지 않아?’ 하고 피비가 말했다.
‘아니. 뜨거워야 되니?’
‘응 ― 지금 그렇게 만드는 중이야. 다시 만져 봐.’
나는 다시 만졌지만 여전히 아무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말했다.
‘뜨거워지는 것같은데, 이제.’ 나는 피비가 그 놈의 열등감을 갖지 않게 해 주고 싶었다.
피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온도계 눈금 이상으로 온도를 올릴 수 있어.’
‘온도계. 누가 그런 말을 하니?’
‘앨리스 홈버그가 어떻게 하는지 알려 줬어. 다리를 포걔고 숨을 멈춰 봐, 그리고 아주, 아주 뜨거운 걸 생각해 봐. 라디에이터나 뭐나 말야. 그러면 이마 전체가 너무 뜨거워져서 손을 태울 수도 있게 돼.’
그게 웃기는 일이었다. 나는 마치 무서운 위험에 처하기라도 한 듯이 피비의 이마에서 손을 떼었다. ‘말해 줘서 고마워,’ 하고 나는 말했다.
‘오, 오빠 손을 태우면 안되지. 그래서 내가 너무 뜨거워지기 전에 그만 두었어 ― 쉬이!’ 그리고는, 피비는 재빠르게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피비가 그렇게 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왜 그러니?’ 하고 내가 말했다.
‘앞문이야!’ 하고 피비는 큰소리로 말했다. ‘오셨어!’
나는 재빨리 벌떡 일어나서 건너 편으로 넘어가서 책상 위의 불을 껐다. 그리고 나는 담배를 신발 위에 뭉걔서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리고 나서는 담배 연기를 내 보내려고 미친 듯이 공기를 휘저었다 ―제기랄, 담배를 피우지 말았어야 하는데. 다음에 나는 신발을 잡아 들고 벽장 속으로 들어간 다음 문을 닫았다. 정말이지, 심장이 더럽게 뛰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방에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피비?’ 하고 엄마가 말했다. ‘이제, 그만 해. 불빛을 봤다.’
‘이제 오세요!’ 나는 피비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잠이 안 왔어요. 재미있으셨어요?’
‘그럼,’ 하고 엄마는 말했지만 그 말이 진심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외출할 떈 별로 재미있게 보내지 못한다. ‘왜 깨어 있었지, 물어봐도 될까? 방은 따뜻했니?’
‘방은 따뜻했어요, 그저 잠이 오지 않았어요.’
‘피비, 여기서 담배 피웠니? 사실대로 말해, 응.’
‘네?’ 하고 피비가 말했다.
‘담배 피웠냐구?’
‘잠깐 하나 피웠어요. 그저 후 하고 내뿜었어요. 그리곤 창 밖으로 던져 버렸어요.’
‘왜, 물어봐도 될까?’
‘잠이 오지 않아서요.’
‘그건 좋지 않아, 피비. 그건 전혀 좋지 않아,’ 하고 엄마가 말했다. ‘담요를 한장 더 줄까?’
‘아녜요.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피비는 말했다. 피비가 엄마에게서 벗어나려고 하는 게 역력했다.
‘영화는 어땠니?’ 하고 엄마가 말했다. ‘좋았어요. 앨리스 엄마만 빼면요. 걔네 엄만 영화를 보는 내내, 앨리에게 몸을 숙이고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냐고 물었어요. 집에 올 떈 택시를 탔어요.’
‘이마 좀 만져 보자.’
‘아무렇지도 않아요. 앨리스도 그렇구요. 그저 걔네 엄마만 감기 걸린 거예요.’
‘그럼, 이제 자라. 저녁밥은 어땠니?’
‘형편 없었어요,’ 하고 피비는 말했다.
‘너 아빠가 그런 말을 쓰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들었지? 뭐가 형편없다는 거야? 넌 맛있는 양고기를 먹었잖아. 난 그걸 사러 렉싱톤 애비뉴를 온통 ―’
‘양고기는 좋았어요, 근데 샬린은 뭘 내려 놓을 땐 언제나 나한테 숨을 내뿜어요. 샬린은 음식이니 뭐니에다 온통 숨을 내뿜어요. 정말 아무 데나 숨을 내 뿜어요.’
‘자아, 이제 자라. 엄마한테 키쓰해 주고. 기도는 했니?’
‘화장실에서 했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잘 자거라. 바로 자야 돼. 엄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하고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자주 머리가 아프다. 그건 정말이다.
‘아스피린을 좀 드세요,’ 하고 피비는 말했다. ‘홀든은 수요일에 오죠?’
‘내가 알기로는 그래. 이제 들어가라. 쏙 들어가.’
엄마가 나가고 문을 닫는 소리가 났다. 나는 이삼분 정도 기다렸다. 이어서 나는 벽장에서 나왔다. 그 때 나는 피비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왜냐하면 너무 어두웠는데 피비는 침대에서 나와서 나한테 말해 주려고 이쪽으로 오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쳤니?’ 하고 내가 말했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오셨기 때문에 이젠 소근소근 말해야 했다. ‘이젠 가 봐야겠다,’ 하고 나는 말했다. 어둠속에서 침대 모서리가 보여서, 나는 거기 앉아서 신발을 신기 시작했다. 나는 꽤 걱정이 되었다, 그건 인정해야 돼.
‘지금 가지 마,’ 하고 피비가 속삭였다. ‘주무실 때까지 기다려!’
‘아냐, 지금 가야 돼. 지금이 제일 좋은 때야,’ 하고 나는 말했다. ‘엄마는 목욕을 하실 거고 아버지는 뉴스니 뭐니를 보려고 텔레비젼을 켤테니까. 지금이 제일 좋은 때지.’ 나는 신발 끈을 매는 것도 어려웠다, 나는 그 정도로 불안했던 것이다. 부모님이 나를 잡아서 죽이거나 뭐나 할까봐 그런 게 아니고, 그저 부모님 눈에 띄는 게 싫었던 것이다. ‘대체 너 어디 있는 거니?’ 하고 나는 피비에게 말했다. 너무 깜깜해서 피비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야.’ 피비는 바로 내 옆에 서 있었다. 나는 피비가 보이지도 않았다.
‘가방들을 역에 놓고 왔어,’ 하고 나는 말했다. ‘피비, 돈 좀 있니? 난 거의 돈이 바닥났어.’
‘크리쓰마스 때 쓸 돈밖엔 없는데. 선물이나 뭐나를 살 건데. 아직 쇼핑이나 뭐나를 안 했거든.’
‘오.’ 나는 피비의 크리쓰마스 돈은 가져가고 싶지 않았다.
‘좀 줄까?’ 하고 피비가 말했다.
‘니 크리쓰마스 돈은 가져가고 싶지 않아.’
‘어느 정도 빌려 줄 순 있어.’ 하고 피비가 말했다. 나는 피비가 D.B.의 책상에 가서 수백만걔나 되는 서랍을 열어 손으로 더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완전히 깜깜했다, 방이 너무 깜깜했던 것이다. ‘오빠가 가면, 내가 연극에 나오는 거 보지 못하는데,’ 하고 피비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피비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렸다.
‘아냐, 보러 갈 거야. 그 전엔 안 가. 넌 내가 연극도 안 보고 갈 줄 아니?’ 하고 나는 말했다. ‘내가 뭘 할 거냐 하면 말야, 아마 화요일 밤까지는 앤쏠리니 선생의 집에 있을 거야. 그 다음엔 집에 올께. 기회가 있으면 너한테 전화하고.’
‘여기 있다,’ 하고 피비가 말했다. 피비는 나한테 돈을 주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내 손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야?’
피비는 돈을 내 손에 놓았다.
‘야, 난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어,’ 하고 내가 말했다. ‘그냥 2 딸라만 줘. 정말이야 ― 여기 있어.’ 나는 돈을 돌려 주려고 했지만 피비는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다 가져도 돼. 갚으면 되잖아. 연극 보러 올 때 가지고 와.’
‘근데, 얼마냐?’
‘8 딸라 85 쎈트. 아니 65 쏀트네. 좀 썼거든.’
그 때 갑자기 나는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도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울자 피비는 깜짝 놀라서 나한테 와서는 눈물을 막으려고 했지만, 일단 울기 시작한 이상 금방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침대 모서리에 앉아 있었다. 피비는 내 목을 끌어 안았다. 나도 피비를 끌어 안았지만, 그래도 나는 오래 동안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숨이 막혀 죽을 것같았다. 정말이지, 나는 피비를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이다. 창문이 열려 있어서, 나는 피비가 떨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피비는 파자마만 입고 있었으니까 말야. 나는 피비를 침대로 들어가게 하려고 했지만 피비는 그러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울음을 멈췄지만, 정말 그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음에 나는 단추니 뭐니를 다 채웠다. 나는 피비에게, 계속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피비는, 내가 그러고 싶다면 자기하고 같이 자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지금 가는 게 좋다, 앤쏠리니 선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느니 뭐니 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오바 주머니에서 사냥 모자를 꺼내서 피비에게 주었다. 피비는 그런 미치광이같은 모자를 좋아한다. 피비는 받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억지로 주었다. 피비는 그걸 쓰고 잤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피비는 그런 모자를 정말 좋아하거든. 그리고 나는 다시, 기회가 있으면 전화하겠디고 말하고는 집을 나왔다.
집에 들어가기보다는 나오기가 훨씬 쉬었다. 우선, 나는 부모님이 나를 잡든지 말든지 이제 걱정되지 않았다. 정말 그랬던 것이다. 나는, 잡을테면 잡아라 하고 생각했다. 어떤 면에선, 잡혔으면 하고 바라기까지 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걸어서 내려왔다. 나는 뒷계단으로 내려왔다. 나는 거의 천만걔나 되는 쓰레기통에 걸려서 모가지가 부러질 뻔 했지만, 무사히 나왔다. 엘리베이터 보이는 나를 보지도 못했다. 그 친구는 아마 내가 딕스타인네 집에 있을 것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제 24장
앤쏠리니 선생 부처는 써튼 플레이스에 있는 굉장히 멋진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두 계단만 내려가면 거실이 있는데, 거긴 빠니 뭐니 해서 없는 게 없다. 나는 선생의 집에 여러번 갔었는데, 그건 내가 엘크톤 힐즈를 나온 후에 선생이 내가 어떻게 지내나 보려고 저녁을 먹으로 우리 집에 아주 자주 왔었기 때문이다. 선생은 그 땐 결혼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선생이 결혼하고 나서, 나는 롱 아일랜드, 포레스트 힐즈에 있는 웨스트 사이드 테니스 클럽에서 선생 부처와 테니스를 치러 자주 다녔었다. 앤쏠리니 선생 부인이 거기 속해 있었거든. 부인은 돈에 대해서는 인색하다. 부인은 선생보다 6년 정도 나이가 많지만, 선생 부처는 꽤 사이가 좋은 것 같이 보였다. 우선, 두 분 다 아주 지적인 사람들이었다, 특히 앤쏠리니 선생이 그랬다, 선생은 같이 있을 떈, 지적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재치가 있었다, D.B.하고 좀 비슷했다. 앤솔리니 선생 부인은 대걔는 진지한 편이었다. 부인은 심한 천식에 걸려 있었다. 두 분 다 D.B.의 소설을 읽었다 ― 선생 부인도 읽었다 ― 그리고 D.B.가 할리웃에 가려고 할 때, 선생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서 가지 말라고 하였다. D.B.는 가고 말았지만, 선생은 D.B같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할리웃에 갈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건 내가 말한 것과 같은 말이었다.
나는 피비가 나에게 준 크리쓰마스 돈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선생의 집에 걸어서 가려고 했지만, 밖으로 나왔을 때 기분이 이상했다. 좀 현기증이 났다. 그래서 나는 택시를 탔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어쨋든 택시를 탔다. 나는 택시를 잡는데도 무지하게 시간이 걸렸다.
내가 벨을 울렸을 때 앤쏠리니 선생이 문을 열었다 ― 엘리베이터 보이 녀석이 태워서 올려 준 뒤에 말이다. 선생은 목욕복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한 손에는 하이볼을 들고 있었다. 선생은 아주 세련된 사람이었고 또한 굉장히 술을 좋아했다. ‘홀든, 여어!’ 하고 선생은 말했다. ‘이런, 20인치는 더 자랐구나. 널 보니 반갑다.’
‘안녕하세요, 앤쏠리니 선생님? 사모님께서도 안녕하세요?’
‘우린 다 잘 있지. 그 오바 줘.’ 선생은 오바를 받아서 걸었다. ‘난 니가 갓난 아기를 안고 온 줄 알았는데. 어쩔 수가 없구나. 니 눈썹에도 벌써 눈서리가 내렸는데.' 선생은 어떤 때는 아주 제치있는 사람이다. 선생은 돌아서서 부엌쪽으로 소리를 질렀다. ‘릴리안! 커피는 어떻게 됐소?’ 릴리안이란 부인의 이름이다.
‘다 됐어요,’ 하고 부인이 소리쳤다. ‘홀든이니? 안녕, 홀든!’
‘안녕하세요, 사모님!’
선생 집에 가면 늘 소리를 질러대게 된다. 두 분이 동시에 같은 방에 있는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그건 좀 웃기는 일이다.
‘앉아라, 홀든,’ 하고 앤쏠리니 선생이 말했다. 선생이 약간 들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방은 마치 금방 파티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유리잔이며 땅콩이 담긴 접시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방이 지저분해서 미안한데.’ 하고 선생이 말했다. ‘버팔로에서 온 마누라 친구들을 대접했었거든, 사실 몇몇 친구는 진짜 버팔로지만 말야.’
나는 웃었다, 그 때 부인이 부엌에서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무슨 소린지 듣지는 못했다. ‘뭐라고 하신 거예요?’ 하고 나는 앤솔리니 선생에게 물었다.
‘자기가 들어 올 때 보지 말라고 한 거야. 금방 일어났거든. 담배 피워라. 지금도 담배 피우니?’
‘고맙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선생이 내 민 담배갑에서 담배를 한 걔 집었다. ‘가끔 피웁니다. 전 담배를 별로 많이 안 피워요.’
‘그럴 거야,’ 하고 선생은 말했다. 선생은 테이블에서 커다란 라이터를 집어서 불을 붙여 주었다. ‘그래. 이제 너하고 펜시는 하나가 아니란 말이지.’ 선생은 늘 그런 식으로 말을 했다. 어떤 때는 그런 게 재미있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그렇지도 않았다. 선생은 좀 지나치다 싶을 만큼 그랬다. 선생이 재치가 없다느니 뭐니 하다는 말이 아니다 ― 선생은 재치가 있는 분이다 ― 하지만 누군가가 언제나 ‘이제 너하고 펜시는 하나가 아니란 말이지.’ 하는 식으로 말할 땐 가끔 신경이 거슬리기도 한다. D.B.도 어떤 때는 좀 지나치게 그런다.
‘뭐가 문제였나?’ 하고 앤쏠리니 선생이 물었다. ‘영어는 어땠니? 영어에 낙제했다면 내가 잘하는 비결을 간단하게 알려 줄께. 넌 영어 작문은 잘 하는데 말야.’
‘오, 영어는 잘 통과했어요. 하지만 문학이 주로 문제였어요. 학기 내내 두번 정도 밖에 작문을 내지 못했어요,’ 하고 나는 말했다. ‘전 「구술 표현법」에서 낙제했어요. 거기선 「구술 표현법」이니 하는 걸 들어야 했거든요. 거기서 낙제했어요.’
‘왜?’
‘오, 모르겠어요.’ 나는 그런 얘기를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머리가 좀 어지러웠는데, 갑자기 두통을 느꼈던 것이다. 정말 그랬다. 하지만 선생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거기에 대해 얘기를 좀 했다. ‘그건 하나씩 일어나서 연설을 하는 과목이었어요. 아시죠. 자발적이니 뭐니 하는 거요. 그리고 얘기가 주제에서 벗어나면, 재빠르게 “탈선!” 하고 소리를 질러야 하는 거예요. 거기서 F를 받았어요.’
‘왜?’
‘오, 모르겠어요. 그런 짓을 하는 게 제 신경에 거슬렸거든요. 모르겠어요. 제 문제가 뭐냐 하면요, 누군가가 얘기를 벗어나거나 하는 걸 좋아한다는 거예요. 그게 더 재미있어요.’
‘넌 누가 너한테 어떤 얘기를 할 때, 그 한가지 얘기만 하는 게 싫으냐?’
‘오, 아녜요! 전 누군가 한가지 얘기를 물고 늘어지는 걸 좋아해요. 하지만 너무 한가지 얘기만 하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모르겠어요. 전, 누군가 언제나 한가지 얘기만 하는 건 좋아하지 않나 봐요. 「구술 표현법」에서 제일 좋은 점수를 받은 애들은 한가지 얘기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애들이었어요 ― 그건 인정해요. 하지만 리차드 킨젤라라는 애가 있었어요. 걔는 별로 한가지만 물고 늘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애들이 걔한테 계속해서 “탈선!” 하고 소리질렀지요. 그건 끔찍한 일이었어요, 왜냐하면 우선 걔는 굉장히 소심한 애였거든요 ― 정말로 걔는 굉장히 소심한 애였어요 ― 걔는 자기가 얘기를 할 때가 되면 입술을 와들와들 떨었어요, 그래서 뒷쪽에 앉아 있으면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어느 정도 입술이 떨리지 않게 되면 전 걔 얘기가 다른 애들보다 더 좋았어요. 하지만 걔도 거기서 거의 낙제했어요. 애들이 계속해서 “탈선!” 하고 소리를 질러대서 D-플러스를 받았어요. 예를 들어, 걔는 자기 아버지가 버몬트에 샀다는 농장 얘기를 했어요. 걔가 얘기를 하는 동안 애들은 내내 “탈선!”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리고 선생은, 빈슨씨인데, 농장이니 뭐니에서 무슨 동물이니 식물이니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고 F를 줬어요. 걔가 뭘 했냐 하면요, 리차드 킨젤라 말예요, 그런 얘기를 하고 있다가 갑자기 자기 삼촌이 엄마한테 쓴 편지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삼촌이 마흔 두 살이 되었을 때 소아마비니 뭐니에 걸린 얘기하고, 입원해 있을 때 자기가 부목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아무도 문병을 오지 못하게 한 얘기를 했어요. 그건 농장 얘기하곤 별로 관계도 없는 얘기였어요 ― 그건 인정해요 ― 하지만 그건 재미있는 얘기였어요. 누군가 자기 삼촌 얘기를 하는 건 재미있어요. 특히, 자기 아버지 농장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삼촌 얘기를 할 때 말예요. 제 말은, 걔가 진지하게 얘기에 열중하고 있는데, “탈선!” 하고 계속 소리를 지르는 건 더러운 짓이라는 거예요... 모르겠어요. 그걸 설명하기는 어려워요.’ 나는 또 별로 얘기하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다. 우선, 갑자기 머리가 굉장히 아팠다. 앤쏠리니 선생 부인이 빨리 커피를 갖고 들어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정말 짜증나는 게 그런 거였다 ― 무슨 말이냐 하면, 커피가 다 됐다고 하면서 사실은 안 된 거 말이다.
‘홀든... 한가지 약간 딱딱한 질문을 하나 할까. 모든 일에는 그에 맞는 때와 장소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니? 누군가 자기 아버지의 농장 얘기를 시작했으면 그 얘기를 어느 정도 하다가, 다음에 삼촌의 부목 얘기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니면, 삼촌의 부목 얘기가 그렇게 호기심 있는 얘기라면, 먼저 그 얘기를 주제로 잡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 농장이 아니라?’
나는 생각이니 대답이니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머리가 아팠고 더러운 기분이었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배도 좀 아팠다.
‘그렇게 생각해요 ― 모르겠어요. 그렇게 했어야겠지요. 제 말은, 그게 제일 관심있다면 농장 대신에 자기 삼촌을 주제로 삼았어야 된다는 거예요. 하지만 제 말은, 대걔 사람은 자기에게 가장 흥미있는 건 아닌 어떤 얘기를 시작할 때 비로소, 자기에게 뭐가 제일 흥미있는 지를 알게 된다는 거예요. 제 말은, 어떤 때는 자기도 어쩔 수 없다는 거지요. 제가 생각하는 건요, 적어도 뭔가에 흥미가 생겨 열중하게 되기까지는 그냥 내버려 둬야 된다는 거예요. 저는, 누군가 뭔가에 열중해 있을 때가 좋아요. 선생님은 그 분을 모르셔서 그래요, 빈슨 선생 말예요. 그 선생은 가끔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요, 자기도 그렇고 반 전체도 그렇구요. 제 말은, 그 선생은 늘 통일시키라느니 단순화하라느니 하고 말해요. 어떤 건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데 말예요. 제 말은, 누가 통일이니 단순화니 하는 걸 원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말예요. 선생님은 그 분을 모르셔서 그래요. 빈슨씨 말예요. 제 말은, 그 분은 굉장히 지적이니 뭐니 해요, 하지만 별로 머리가 좋은 것 같진 않아요.’
‘커피들 드세요,’ 하고 앤솔리니 선생 부인이 말했다. 부인은 커피니 과자니 하는 걸 담은 접시를 들고 들어왔다. ‘홀든, 날 보지 마. 꼴이 엉망이니까.’
‘안녕하세요, 사모님,’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일어나니 뭐니 하려고 했지만 선생은 내 양복을 잡고 다시 앉혔다. 선생 부인은 머리에 컬러니 뭐니 하는 걸 잔뜩 붙이고, 립스틱이니 뭐니 하는 것도 바르지 않고 있었다. 부인은 과히 보습이 보기 좋은 게 아니었다. 아주 나이가 많아 보였다.
‘여기 놓고 갈께요. 잡수세요,’ 하고 부인이 말했다. 부인은 유리잔들을 모두 치우고 담배 테이블 위에 접시를 올려 놓았다. ‘어머니는 안녕하시니, 홀든?’
‘잘 있으세요, 감사합니다. 최근에 어머니를 보진 못했지만, 마지막으로 ―’
‘여보, 홀든한테 뭐 필요한 게 있으면, 옷장 속에 다 있어요. 제일 윗 칸에요. 난 자러 가요. 너무 피곤해서.’ 하고 부인은 말했다. 부인은 정말 피곤한 모습이었다. ‘잠자리는 알아서 까실 수 있겠죠?’
‘우리가 다 알아서 할께. 당신은 자러 가요,’ 하고 앤쏠리니 선생이 말했다. 선생은 부인에게 키쓰를 해 주고, 부인은 나한테 인사를 하고는 침실로 들어갔다. 그 분들은 사람들 있는 데서 늘 키쓰를 한다.
나는 커피를 조금 마시고 과자를 반 정도 먹었는데 마치 돌덩어리처럼 딱딱했다. 하지만 앤쏠리니 선생은 그저 하이볼을 한 잔 더 마셨다. 선생은 하이볼을 굉장히 강하게 해서 마신다. 조심하지 않으면 알콜 중독자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몇 주 전에 아버지와 점심을 같이 먹었다,’ 하고 선생이 갑자기 말했다. ‘그거 알고 있었니?’
‘아녜요, 몰랐어요.’
‘너도 물론, 알고 있겠지, 아버지가 네 걱정을 굉장히 하고 계시다는 거 말이다.’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러시는 거 알지요.’ 하고 나는 말했다.
‘보니까, 나한테 전화하시기 전에, 최근 교장 선생한테서 좀 언짢은 편지를 받으신 거같더라. 네가 전혀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는 취지의 편지 말야. 수업을 빼먹고. 수업에 하나도 준비를 하지 않고 온다는. 대체로, 전반적으로 ―’
‘전 수업을 빼먹은 적은 없는데요. 수업을 빼먹으면 안되게 되어 있거든요, 가끔 들어가지 않은 게 몇개 정돈 있었지만요, 말씀드린 「구술 표현법」 같은 거 말예요, 하지만 수업을 빼먹은 적은 한번도 없어요.’
나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커피를 먹어서 배가 좀 나아지긴 했지만 두통은 여전했다.
앤쏠리니 선생은 또 하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선생은 마치 중독자처럼 담배를 피웠다. 이윽고 선생이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너한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홀든.’
‘알고 있습니다. 전 뭐라 얘기하기가 어려운 상태예요. 그건 깨닫고 있어요.’
‘난, 니가 뭔가 끔찍하게 추락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게 어떤... 내 말 듣고 있니?’
‘네.’
선생이 마음을 집중시키려고 애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건 아마 이런 건지도 몰라, 서른 살이 되어서 어떤 빠에 앉아서, 아마 대학에서 축구선수를 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 올 때마다 경멸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지도 모른다는 거야. 그러다간 다시, “그건 자네와 나만의 비밀이야.” 하고 말하는 그런 사람들을 경멸할 만한 정도의 교양을 쌓을 지도 모르고. 아니면 결국엔 어떤 사무실에 들어가게 될 지도 모르지, 가까이 있는 속기사한테 서류 뭉치를 던져 주고 하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넌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는 알지?’
‘네, 그럼요,’ 하고 나는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말했다. ‘하지만 일을 싫어한다는 말씀은 잘못 아신 거예요. 아니, 축구 선수니 뭐니를 싫어한다는 것 말예요. 정말 잘못 아시는 거예요. 제가 뭐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건 아녜요. 전 어떠냐 하면요, 얼마 동안은 싫어하지요, 펜시에 있는 저 스트래드레이터나 로버트 애클리. 어쩌다 한 번씩 그 놈들이 싫어지곤 했어요 ― 그건 인정해요 ― 하지만 그런 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어요, 제 말은 그런 거예요. 얼마 있다가 그 놈들이 보이지 않거나, 방에 들어오지 않거나 아니면 식당에서 몇번 보이지 않으면 약간 그 놈들이 그리워지기도 했어요. 정말로 그 놈들이 그리워졌다는 거예요.’
앤쏠리니 선생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선생은 일어나서 큰 얼음 덩어리를 가지고 와서 하이볼에 넣고는 다시 앉았다. 선생이 무슨 생각에 몰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선생이 지금 말고 아침에 다시 얘기를 시작했으면 하고 바랬지만 선생은 얘기를 계속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 쪽에서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을 때 얘기를 하려고 한다니까.
‘좋아, 잠깐 내 얘기를 들어 봐... 지금은 하고 싶은 말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겠는데, 하루 이틀 내로 너한테 편지를 쓸께. 그러면 넌 모든 걸 똑바로 이해하게 될 거야. 어쨋든 들어 봐.’ 선생은 다시 애기를 시작했다. 이윽고 선생이 말했다. ‘이런 추락은, 난 니가 어떤 끔찍한 ― 이런 건 별난 추락인데 ― 그런 추락에 빠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추락하는 사람은, 자기가 바닥에 떨어지는 걸 느끼지도 듣지도 못해. 그냥 계속해서 추락해 가는 거지. 그런 사람들은, 인생 어느 시점에서, 자기들의 환경에서 찾을 수 없는 어떤 것을 찾으려고 하는 거야. 아니면 자기들의 환경은 그런 걸 줄 수 없다고 생각하던가. 그래서 그들은 찾기를 포기하게 돼. 그들은 실제로 시작도 해 보기 전에 포기하는 거야. 내 말 듣고 있니?’
‘네, 선생님.’
‘정말로.’
‘네.’
선생은 일어나서 유리잔에 술을 더 따랐다. 그리고 다시 앉았다. 선생은 꽤 오래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에게 겁을 주려고 하는 건 아냐,’ 하고 선생은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니가 어떤 별로 가치도 없는 이상을 위해 고결하게 죽어가고 있는 게 보여.’ 선생은 나에게 재미있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편지를 쓰면 그걸 잘 읽어 보겠니? 그리고 보관할 거니?’
‘네. 그럼요,’ 하고 나는 말했다. 실제로도 나는 편지를 보관한다. 나는 지금도 선생이 나한테 준 메모를 보관하고 있다.
선생은 방 건너편에 있는 책상으로 가서, 앉지도 않고 종이 위에 뭔가를 썼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손에 종이를 들고 앉았다. ‘이상하지만, 이건 현재 시인이 쓴 건 아냐. 이건 빌헬름 쉬테켈이라는 정신분석학자가 쓴 거야. 여기 그가 ― 너 아직도 내 말 듣고 있는 거니?’
‘네, 그럼요.’
‘이게 그 사람이 쓴 거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의 특징은, 이상을 위해 죽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성숙한 사람의 특징은, 이상을 위해 겸손하게 살아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선생은 앞으로 몸을 숙여서 나에게 그것을 건네 주었다. 나는, 선생이 그것을 건네 주었을 때 바로 읽은 다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선생이 그런 수고를 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별로 정신을 집중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이지, 나는 갑자기 더럽게 피곤하였다. 하지만 선생은 별로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꽤 흥분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요즘,’ 하고 선생은 말했다. ‘너도 이제 진로를 정해야 할 것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 다음엔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것도 바로 말야, 넌 지금 우물쭈물할 여유가 없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선생이 나를 정면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선생이 말하는 것에 대해 별로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나는 분명히 알고 있기는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별로 확신할 수가 없었다. 나는 너무나 피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기는 싫지만,’ 하고 선생은 말했다. ‘니가 일단 어디로 가야 할 지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 먼저 학업에 전념해야 할 거야. 그렇게 해야 할 거야. 넌 학생이야 ― 니가 관심이 있든 아니든 간에 말야. 넌 지식을 사랑하고 있잖니. 그리고 난, 니가 빈즈 선생이니 그 「구술 뭐」니 하는 걸 통과한다면 내 말의 뜻을 알 거라고 생각한다.’
‘빈슨 선생이에요,’ 하고 나는 말했다. 선생은 빈즈 선생이 아니고 빈슨 선생을 의미했을 것이다. 어쪳든 나는 선생의 말을 막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 ― 빈슨 선생. 일단 니가 빈슨 선생의 수업을 통과한다면, 넌 조금씩 아주 귀중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거야 ― 즉, 니가 그걸 원하고 추구하고 기다린다면 말야. 무엇보다도, 인간의 행동에 대해 혼란을 느끼고 놀라고 또 구역질을 느낀 사람이 니가 처음은 아니란 걸 알게 될 거야. 그 점에선 넌 혼자가 아냐, 그리고 넌 그걸 알게 되면 관심이 생기고 더 알고 싶을 거야. 아주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너처럼 윤리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고뇌를 겪었지. 다행이,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의 고뇌를 기록으로 남겨 놓았지. 넌 거기서 배우는 게 있을 거야 ― 니가 원한다면 말야. 언젠가 니가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남겨 놓는다면, 그들이 너한테서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것처럼 말야. 그건 아름다운 상호 합의지. 그건 교육이 아니야. 그건 역사야. 그건 시지.’ 선생은 말을 멈추고 하이볼을 한잔 크게 들이켰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 얘기를 이었다. 정말이지, 선생은 정말 흥분해 있었다. 나는 선생의 말을 중단시키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겼다. ‘난 지금 너한테,’ 하고 선생은 말했다. ‘교육 받고 학식이 있는 사람들만이 세상에 가치있는 뭔가를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아니야. 그렇지는 않아. 내 말은, 교육 받고 학식있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똑똑하고 창조성이 있다면 ―불행히도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지만 ― 단순히 총명하고 창조성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기록을 남기는 경우가 많아. 그런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을 더 명확하게 표현하고, 또 자기의 사상을 끝까지 추구하는 정열을 가지고 있지. 그리고 ― 가장 중요한 건 ― 열에 아홉은, 그들은 학식이 없는 사색가보다는 더 겸손한 자세를 갖고 있지. 내 말 듣고 있니?’
‘네, 선생님.’
선생은 다시 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 경험이 있는 지는 모르지만, 누가 생각이니 뭐니를 하는 동안 무슨 말을 하기를 기다리는 건 좀 힘들다. 정말 그렇다. 나는 하품이 나오려는 것을 막으려고 계속 애를 쓰고 있었다. 나는 따분하거나 그런 기분이었다 ― 그렇지는 않았다 ― 하지만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교육은 또 다른 걸 주기도 해. 한 동안 교육을 받다 보면, 넌 자신의 머리가 어느 정도 되는 지를 알게 될 거야. 자신의 머리가 어디에 맞는지 또 맞지 않는지를 말야. 얼마 있으면, 자신의 머리로는 어떤 종류의 사상을 가져야 하는 지를 알게 된다. 예를 들어, 교육은, 자기한테 맞지 않는, 어울리지 않는 사상을 가지려고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게 해 준다. 자기의 정확한 치수를 알고 거기 따라서 사상을 갖추게 되는 거야.’
그 때, 갑자기 나는 하품을 하고 말았다. 얼마나 무례한 놈인가, 하지만 자신도 그걸 억제하지 못했다!
하지만 앤쏠리니 선생은 그저 웃었다. ‘이런,’ 하고 선생은 말하고는 일어섰다. ‘잠자리를 마련해야겠구나.’
나는 선생을 따라갔다. 선생은 벽장으로 가서, 제일 윗칸에 있는 시트니 담요니 하는 것들을 내리려고 애를 썼지만 손에 하이볼 잔을 들고는 잘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생은 하이볼을 마셔버리고는 잔을 바닥에 내려 놓고 다시 잠자리를 내려 놓았다. 나는 선생이 그것들을 침대 위에 까는 것을 도와 드렸다. 우리는 같이 잠자리를 깔았다. 선생은 그런 것에 별로 소질이 없었다. 선생은 잠자리를 아주 반듯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서서라도 잠이 들 판이었으니까.
‘니 여자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나?’
‘다들 잘 있어요.’ 정말 더럽게 얘기를 잘 하지 않아? 하지만 나는 얘기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
‘쌜리는 어떻게 지내고 있니?' 선생은 쌜리 헤이즈를 알고 있었다. 언젠가 선생에게 인사를 시킨 적이 있었던 것이다.
‘잘 있습니다. 오늘 오후에 걔하고 데이트를 했어요.’ 정말이지, 그 일이 20년 전의 일같이 생각되었다! ‘저희는 이제 공통점이 별로 없어요.’
‘참 예쁜 애지. 그 다른 애는 어떤가? 저번에 얘기한 적 있는, 메인에 산다는.’
‘오 ― 제인 갤러허요. 걔도 잘 있지요. 아마 내일 걔한테 전화를 할 것 같애요.’
우리는 그 때 잠자리를 다 만들었다. ‘이제 여기서 자라.’ 하고 앤쏠리니 선생은 말했다. ‘니 긴 다리는 어떻게 할 지 모르겠는데.’
‘괜찮습니다. 전 짧은 침대에 익숙해 있어요,’ 하고 나는 말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과 사모님은 정말 오늘 밤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욕실이 어디 있는 지는 알지? 뭐 필요한 게 있으면, 그냥 소리를 질러. 난 잠시 부엌에 있을 거니까 ― 불빛 때문에 자는데 방해가 될까?’
‘아녜요 ― 천만에요, 아니예요. 정말 고맙습니다.’
‘좋아. 잘 자라.’
‘안녕히 주무세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은 부엌으로 들어가고 나는 욕실로 들어가서 옷을 벗었다. 칫솔이 없었기 때문에 이빨을 닦을 수는 없었다. 나는 파자마도 없었는데, 앤쏠리니 선생은 빌려 주는 걸 잊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거실로 돌아가서 침대 옆에 있는 작은 등을 끄고 바지를 입은 채로 침대속으로 들어갔다. 그건 나한테 너무 짧았다, 침대말이다, 하지만 나는 눈 한번 깜짝도 하지 않고 선 채로라도 잘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앤쏠리니 선생이 한 말을 생각하면서 몇 초동안 깨어 있는 채 누워 있었다. 자기 머리의 치수를 깨달으니 뭐니 하는 것 말이다. 선생은 정말 재치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눈을 뜬 채로 있을 순 없어서 잠이 들었다.
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났다. 그 얘기는 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갑자기 잠이 깼다. 그 때가 몇 시였지는 모르지만 어쨋든 잠이 깬 것이다. 뭔가 이마를 만지는 느낌이 있었다, 그건 누군가의 손이었다. 정말이지,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게 뭐였냐 하면, 그건 앤쏠리니 선생의 손이었다. 선생이 뭘 하고 있었냐 하면, 선생은 침대 옆 바닥에 앉아서 내 이마를 만지작거리는지 두드리는지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천 피트는 뛰어 올랐을 것이다.
‘대체 뭘 하고 계세요?’ 하고 나는 말했다.
‘아냐! 그냥 여기 앉아서 널 ―’
‘아니, 뭘 하고 계신데요?’ 하고 나는 다시 말했다.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몰랐다 ― 내 말은, 당황했다는 말이다.
‘목소릴 좀 낮춰라. 난 여기 앉아서 ―’
‘가야겠어요, 어쨋든,’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이지, 나는 얼마나 겁이 났는지 모른다! 나는 캄캄한 데서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바지가 잘 입혀지지도 않았다, 난 정말 겁이 났던 것이다. 나는 학교니 뭐니에서 누구보다도 변태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내가 옆에 있을 때 꼭 변태 짓을 한다니까.
‘어디 가야 한다는 거니?’ 하고 앤쏠리니 선생은 말했다. 선생은 아주 아무렇지도 않고 침착한 채 하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냉정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내말은 정말이다.
‘가방이니 뭐니를 역에 놓고 왔어요. 거기 가서 그걸 가져 오는 게 좋을 것같아요. 그 안에 내 물건들이 다 있거든요.’
‘아침에 가도 그대로 있을 거야. 자, 이제 그만 자라. 나도 잘 거니까. 뭐가 잘못됐니?’
‘잘못된 건 없어요. 그저 돈이니 뭐니가 가방에 있어서 그래요. 금방 올께요. 택시를 타고 돌아올께요,’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이지, 나는 깜깜한 데서 애를 쓰고 있었다. ‘사실은, 그게 내 거가 아니에요, 돈 말이에요. 엄마 거고 나는 ―’
‘우스운 소리 하지 마라, 홀든. 이제 가서 자. 나도 자러 가겠다. 돈은 아침에도 거기 안전하게 ―’
‘아니에요, 이건 진짜예요. 가 봐야 돼요. 정말이에요.’ 나는 넥타이만 어디 있는지 찾지 못했지, 옷은 거의 다 입었다. 나는 넥타이를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넥타이를 매지 않고 양복이니 뭐니를 입었다. 앤쏠리니 선생은 나한테서 좀 떨어진 커다란 의장 앉아서 나를 보고 있었다. 너무 깜깜해서 선생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날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선생은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선생의 충실한 하이볼이 손에 들려 있는 게 보였다.
‘넌 아주 이상한 애구나.’
‘알아요,’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넥타이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넥타이를 매지 않은 채였다. ‘안녕히 계십시오, 선생님,’ 하고 나는 말했다. ‘고맙습니다. 진심으로요.’
선생은, 내가 현관으로 나갈 때 바로 따라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벨을 울릴 때도 현관에 서 있었다. 그는 여전히, 내가 ‘이상한 애니 뭐니 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상한 애라구? 제기랄. 선생은 엘리베이터가 올 때까지 현관에서 기다리고 서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가 오기를 그렇게 기다려 본 적도 없었다. 하늘에 맹세코 하는 말이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거기 서 있는 선생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이렇게 말했다. ‘이제 좋은 책을 좀 읽어야겠어요. 정말 그러야겠어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는 말이다. 정말 당황했다니까.
‘가방을 찾으면 바로 돌아와라. 문을 열어 놓겠다.’
‘고맙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안녕히 계세요!’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왔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서 아래로 내려갔다. 정말이지, 나는 미친 놈처럼 떨고 있었다. 나는 땀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이런 변태적인 일을 당하면 정말 더럽게 땀을 흘린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런 일이 스무 번은 일어났다. 나는 이런 일은 정말 참을 수 없다.
제 25장
내가 밖으로 나갔을 때, 불들이 막 꺼지고 있었다. 또 무지하게 추웠지만 나는 땀을 많이 흘리고 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상쾌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랐다. 나는 또 호텔로 가서 피비의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렉싱턴으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그랜드 쎈트럴역으로 갔다. 내 가방들이 거기에 있어서, 거기 미치광이같은 대합실의 벤치에서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얼마동안은 과히 나쁘지 않았는데, 그건 사람들도 별로 많지 않았고 발을 올려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얘긴 하고 싶지 않다. 과히 좋은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짓은 해 볼 생각도 하지 마, 이건 정말이다. 기분이 우울해지니까 말이다.
나는 아홉시 정도까지 밖에는 자지 못했다. 백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대합실에 들어와서 발을 내려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발을 바닥에 내려 놓고는 잘 자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일어나 앉았다. 여전히 머리가 아팠다. 아까보다 더 아팠다. 그리고 내 일생 어느 때보다도 우울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앤쏠리니 선생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거기서 자지 않은 걸 알았을 때, 선생이 부인에게 뭐라고 말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그 부분은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는데, 그건 선생은 아주 영리해서 뭐라고 할 말을 꾸며 낼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집에 갔느니 뭐니 하고 얘기했을 것이다. 그 부분은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정말 신경이 쓰인 건,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선생이 내 이마니 뭐니를 만지작 거리는 걸 알게 된 부분이다. 내 말은, 선생이 나에게 수상한 짓을 한 거라고 생각한 게 오해를 한 게 아닐까 한 것이다. 나는, 선생은 누가 잠들어 있을 때 단순히 이마를 만지작거리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말이지, 그런 짓에 대해 누가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도 그러지는 못한다. 나는 심지어는, 아까 말한대로 가방을 집어들고 다시 돌아갔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 말은, 선생이 설령 변태라 해도, 나한테 아주 잘 해 주지 않았냐 하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그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를 했을 때도, 오고 싶으면 바로 와도 좋다고 선생이 말한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선생은 일부러 신경을 써 주어서, 내 머리의 치수니 뭐니를 발견하라는 충고를 해 준 것과, 제임스 케슬이라고 전에 말한 친구가 죽었을 때 그 아이 옆에 갔었던 유일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다. 나는 그런 모든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욱 더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내 말은, 선생의 집으로 돌아갔어야 하지 않았냐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아마 선생은 아무런 뜻도 없이 그저 내 이마를 만지작거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우울해지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더욱 나쁜 것은, 눈이 무지하게 아팠다. 잠을 충분히 자지 않았기 때문에 눈이 쑤시고 타는 것 같았다. 게다가, 감기도 좀 걸린 것 같았는데, 나는 손수건도 없었다. 수트테이스에 조금 있긴 했지만, 그 철제 가방에서 그것을 꺼내서 사람들 있는 데서 펼치거나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가 내 옆의 벤치에 놓아 둔 잡지가 있어서, 나는 그것을 읽는 동안 잠시나마 앤쏠리니 선생이니 백만가지 다른 일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잡지를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읽기 시작한 그 기사는 내 기분을 훨씬 더 불쾌하게 했다. 그건 온통 호르몬 이야기였다. 호르몬이 좋은 상태에 있으면, 얼굴이니 눈이니 뭐니가 어떤 모습이니 하고 써 놓은 것이었는데, 나는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그 기사에서 호르몬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의 모습과 정확하게 맞았다. 그래서 나는 내 호르몬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다음에 나는, 암에 걸렸는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방법에 관한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거의 이주일 동안 입술 안쪽이 따끔따끔거리는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암에 걸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잡지는 정말이지 기분을 복돋아 주었다니까. 나는 마침내 잡지 읽는 것을 중단하고 좀 걷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다. 나는 암에 걸렸기 때문에 이삼 걔월 지나면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니까. 나는 그것을 확신하기까지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확실히 과히 즐거운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어쩐지 비가 올 것 같았지만 나는 어쨋든 걷기 시작했다. 우선 나는, 아침을 좀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도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 말은, 비타민이 들어 있는 걸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돈을 많이 쓰지 않으려고, 싸구려 식당들이 있는 동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걸어가다가, 트럭에서 커다란 크리스마쓰 트리를 내리고 있는 두 사람 옆을 지나갔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한테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 놈의 걸 위로 들고 있어! 제기랄 들고 있으라니까!’ 크리스마쓰 트리를 가지고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정말 훌륭하지 않아? 하지만, 그건 끔찍하긴 하지만 조금 우습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는 조금 웃음이 나왔다. 그건 아마 내가 한 짓 가운데서 제일 나쁜 짓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웃음이 나오자마자, 게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으니까 말이다.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웃었지만 게우지는 않았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내 말은, 내가 뭔가 상한 거나 그런 걸 먹은 적이 없고, 또 보통 나는 소화를 잘 시킨다는 말이다. 어쨋든, 그런 생각은 사라졌고, 뭔가를 먹으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싸구려로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서 도너츠와 커피를 먹었다. 하지만 도너츠는 먹지 않았다. 잘 삼킬 수가 없었다. 사실, 무슨 일로 아주 우울한 상태에선, 음식을 삼키는 일이 아주 힘드는 법이다. 하지만 웨이터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돈을 내라고 하지 않고 그것들을 도로 가져갔다. 나는 커피만 마셨다. 다음에 나는 거기를 나와서 5번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월요일이니 뭐니였는데, 크리스마쓰가 아주 가까웠기 때문에 가게들은 전부 열려 있었다. 그래서 5번가를 따라 걷는 것도 별로 나쁘지는 않았다. 요정같은 크리스마쓰였다. 저 울퉁불퉁한 싼타 클로스들은 그 놈의 벨을 울리면서 길모퉁이에 서 있었고, 립스틱이니 뭐니도 바르지 않은 구세군 여자들도 벨을 울리고 있었다. 나는 전날 아침 식사시간에 만났던 저 두명의 수녀들이 있나 하고 둘러보았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없을 줄은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학교 선생이 되기 위해 뉴욬에 온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쨋든 나는 계속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어쨋든, 갑자기 굉장한 크리스마쓰가 된 것이다. 백만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시내에 나와서, 버스에서 내리거나 타지 않으면, 가게에 들어가거나 나오고 있었다. 나는 피비가 근처에 있었으면 했다. 피비는 이제 장난감 가게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할 만큼 그렇게 어린애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장난을 하거나 사람들을 쳐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작년 크리스마쓰 때는 피비를 데리고 시내에 나와서 쇼핑을 했었다. 우리는 그때 재미있게 보냈다. 블루밍스데일 백화점에서였다고 기억한다. 우리는 구두 가게에 들어갔는데, 피비는 굽이 아주 높은 구두를 사려고 했었다. 저 백만걔나 되는 구멍이 있는 구두 말이다. 우리는 점원을 무지하게 짜증나게 만들었었다. 피비는 거의 스무걔나 되는 구두를 신어 보았는데, 그때마다 그 친구는 신발끈을 매어주어야 했던 것이다. 그건 비열한 장난이었지만 어쨋든 그런 짓을 하는 게 피비는 재미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마침내 모카신 구두를 한 켤레 사고 계산을 했다. 그 점원은 아주 친절했다. 나는, 피비가 계속해서 낄낄거렸기 때문에 그 친구가 우리가 장난질을 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쨋든, 나는 넥타이니 뭐니도 매지 않고 5번가를 따라서 계속 걸어 올라갔다. 그 때 갑자기, 뭔가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나는 블록 끝에 와서 보도에서 내릴 때마다, 길 반대쪽으로 가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그냥 계속해서 길을 따라 내려 가자, 그러면 아무도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거다, 하는 생각을 하였다. 정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자,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야. 나는 더럽게 땀을 흘리고 있었다 ― 내 셔츠와 속옷이니 뭐니가 전부 젖어 있었다. 그 때 나는 갑자기 다른 짓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블록 끝에 올 때마다, 내 동생 앨리한테 얘기를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나는 앨리한테 말을 하는 것이다. ‘앨리, 날 사라지게 하지 마. 앨리, 날 사라지게 하지 마. 앨리, 날 사라지게 하지 마. 제발, 앨리.’ 그리고 나는 길 건너편까지 사라지지 않고 건너가면, 앨리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리고 다음 모퉁이에 이르면, 그런 짓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걸어갔다. 나는, 걸음을 멈추기가 두려웠다고 생각한다 ― 잘 생각나지는 않는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야. 나는 60번가를 지나서 동물원이니 뭐니까지 가기 전에는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을 안다. 나는 어떤 벤치에 앉았다. 나는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였고 무지하게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마 한 시간은 거기 앉아 있었을 것이다. 마침내, 내가 뭘 하려고 결심했냐 하면, 나는 가 버리자고 결심했다. 나는 집에도 가지 않고 다른 학교에도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나는, 다만 피비를 만나서 작별 인사니 뭐니를 하고 크리스마쓰 돈을 돌려 주고 자동차를 얻어 타고 서부로 가자고 결심했다. 뭘 할 거냐 하면, 홀랜드 터널로 내려가서 차를 하나 얻어 타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차를 바꿔 타는 것이다, 그러면 며칠이 지나면 서부 어딘 가에 가 있겠지, 거기 가면 날씨가 아주 좋겠지, 아무도 날 알지 못하고 그러면 거기서 일자리를 하나 얻느 것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어딘가 주유소 일자리를 하나 얻어서 사람들 차에 걔스니 기름이니를 넣어 주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어떤 일이라도 상관 없었다. 그저,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할 거냐 하면, 나는 귀머거리 벙어리인 체 하리라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 아무하고도 무슨 바보같은 쓸데없는 애기를 주고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만일 누가 나한테 말을 걸려면, 종이에 써 가지고 나한테 줘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얼마 후에는 그런 짓에 싫증이 나게 되고, 나는 일생동안 얘기 같은 걸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누구나, 내가 불쌍한 귀머거리 벙어리라고 생각하고 나를 혼자 내버려 둘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바보같은 자동차에 걔스니 기름을 넣으라고 하고, 월급이나 그런 것을 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내가 번 돈으로 어딘가에 작은 오두막집을 짓고 거기서 일생동안 사는 것이다. 집은 숲속은 아니고 숲 가까운 데 지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햇빛이 비치는 걸 좋아하니까. 나는 혼자서 음식을 요리해 먹고, 나중에 결혼이니 뭐니를 하고 싶으면 나처럼 귀머거리 벙어리인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서 결혼하는 거다. 그 여자는 와서 나하고 같이 사는 거다, 그리고 나한테 할 말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처럼 종이에다 그걸 써야 한다. 만일 애기를 낳으면 어딘가에 애기를 숨겨 놓을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한테 책을 잔뜩 사다 주고, 우리 스스로 읽고 쓰는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굉장히 흥분되었다. 정말 그랬다. 나는 귀머거리 벙어리 행세를 하는 부분은 미친 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 나는 정말 서부나 어디로 가겠다고 결심했다. 그 전에 먼저 하고 싶은 일은, 피비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은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갑자기 나는 미친 사람처럼 길 건너로 뛰어갔다 ― 나는 거의 차에 치어 죽을 뻔했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인데 ― 그리고 문방구에 들어가서 편지지와 연필을 샀다. 나는, 피비한테 작별 인사를 하고 크리스마쓰 돈을 돌려 줄 수 있게 어디에서 만나자 하는 메모를 써서, 피비의 학교에 그걸 가지고 가서는 교장실에 있는 아무한테 그걸 피비한테 주라고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편지지와 연필을 주머니에 넣고 피비의 학교로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 문방구 안에서 메모를 쓰기엔 나는 너무나 흥분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피비가 점심을 먹으러 집에 가기 전에 그걸 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빨리 걸았다. 그리고 나한텐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피비의 학교에 간 적이 있었기 때문에 물론 학교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교 안이 어떤 지 잘 기억할 수 있을까 하였지만 기억을 해냈다. 학교 안의 모습은 내가 옛날에 갔을 때하고 똑같았다. 안에는 그 때와 똑같은 약간 어두운 큰 마당이 있었는데, 공에 맞아도 깨지지 않게 전등들은 철골로 싸 놓았다. 바닥은 시합이니 뭐니에 사용하기 위해 그 때와 똑같이 원 모양들을 칠해 놓았다. 그리고 망이 없이 백보드와 링만 남아 있는 저 낡은 농구 골대도 있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그건 아마 휴식시간이 아니고 또 아직 점심시간이 되지 않앗기 때문일 것이다. 조그만 흑인 아이 하나만 보였는데 화장실에 가는 모양이었다. 아이의 뒷주머니에서 나무로 만든 통행증이 삐죽이 나와 있었는데, 우리도 전에는 그런 걸 가지고 다녔다. 그건 화장실에 가도 된다는 허가증 같은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아까같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나는 층계로 가서 첫 번째 계단에 앉아서 아까 산 편지지와 연필을 꺼냈다. 층계에서는 옛날에 내가 왔을 때와똑같은 냄새가 났다. 마치 누군가 거기다 금방 오줌을 눈 것같은 그런 냄새 말이다. 학교 계단에서는 항상 그런 냄새가 난다. 어쪳든 나는 거기 앉아서 메모를 적었다.
사랑하는 피비,
수요일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오늘 오후에는 아마 자동차를 얻어 타고 서부로 갈 것같다. 올 수 있으면 12시 15분에 박물관 정문으로 와. 너한테 크리스마쓰 돈을 돌려 줄께. 많이 쓰지는 않았어.
사랑하는 오빠 홀든.
피비의 학교는 바로 박물관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점심을 먹으러 집에 가려면 어쩃든 거기를 지나야 하기 때문에, 나는 피비가 나를 만나는데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음에 나는, 아무한테나 메모를 주어서 교실에 있는 피비한테 전해 줄 수 있도록 교장실로 가는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도 그걸 볼 수 없게 열번 정도는 접었다. 그 놈의 학교에서는 아무도 믿을 수가 없거든. 하지만 내가 피비의 오빠니 뭐니라면 그들이 피비한테 그것을 전해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계단을 올라가다가 갑자기 다시 게울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게우지는 않았다. 잠깐 앉아 있으니까 기분이 좀 나아졌다. 하지만 나는 앉아 있다가 머리를 돌게 만드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가 벽에다 ‘X나 해라’ 하고 써 놓은 것이다. 그게 정말 내 머리를 거의 돌게 만든 것이다. 나는, 피비나 다른 어린애들이 그걸 보고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하고 궁금하걔 여기다가, 어떤 너저분한 녀석이 ― 그 놈은 물론 미친 놈일 거야 ― 그들에게 그 의미를 말해 주면 아이들은 며칠 동안 그 생각을 하고 어쩌면 고민까지 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것을 써 놓은 자식은 누구라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나는, 어떤 변태 부랑자 새끼가 오줌이나 뭐나를 누려고 밤 늦게 몰래 학교에 들어 왔다가 벽에다 그런 걸 써 놓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자식을 쫓아가서, 그 놈이 완전히 뻗어서 피가 철철 날 때까지 대가리를 돌계단에다 짓이기는 상상을 계속 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런 짓을 할 만한 용기가 없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었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더 우울해졌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나는 내 손으로 벽을 문질러서 그걸 지울 용기도 없었다. 나는, 그걸 지우고 있는 걸 어떤 선생이 보고 내가 그걸 쓴 거라고 생각할까 봐 무서웠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걸 문질러서 지웠다. 그리고 교장실로 올라갔다.
교장 선생은 보이지 않았지만 백살 정도는 된 어떤 부인이 타자를 치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에게, 나는 4B-1반의 피비 코울필드의 오빠라고 말하고, 피비한테 메모를 좀 전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그 메모가 아주 중요한 거라고 말하고, 엄마가 아파서 피비한테 점심을 차려 주지 못하기 때문에, 약국에서 나하고 만나서 점심을 먹어야 할 거라고 말했다. 그 부인은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그 부인은 나한테서 메모를 빼앗아서 옆 사무실에 있는 다른 여자를 불렀다. 그 여자는 메모를 피비한테 전해 주려고 갔다. 이어서 그 백살쯤 된 부인과 나는 잠깐 허튼 소리를 나누었다. 그 부인은 아주 좋은 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하고 내 동생들도 그 학교를 다녔다는 얘기를 하였다. 그 부인이, 지금은 어디에 다니냐고 물어서 내가 펜시라고 대답하자 그 부인은, 펜시는 아주 좋은 학교라고 말했다. 나는 그 부인이 잘못 알고 있다고 바로 잡아 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할 용기가 없었다. 게다가, 그 부인이 펜시를 아주 좋은 학교로 알고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라고 해 두는 게 좋다. 백살 쯤 된 사람한테 새로운 얘기를 해 주는 건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들은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으니까. 얼마 있다가 나는 거기를 나왔다. 우스운 일이었다. 그 부인은, 내가 펜시를 떠날 때 스펜서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행운을 빌어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제기랄, 내가 어디를 떠날 때, 누가 나한테 ‘행운을 빌어요!’ 하고 소리를 지르는 걸 나는 정말 싫어한다.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거든.
나는 다른 계단으로 내려왔는데, 벽에 ‘X나 해라.’ 하고 쓴 걸 또 보았다. 나는 손으로 문질러 지우려고 했지만 그건 칼이나 뭐나를 가지고 벽에다 긁어 놓은 것이었다. 그건 잘 지워질 것같지 않았다. 어쨋든 그런 짓은 소용없는 일이다. 그런 건 백만년이나 걸려서 지우려고 해도 이 세상의 반도 지우지 못할 것이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구석진 마당에 있는 시계를 보았는데, 아직 열한 시 사십 분밖에 되지 않아서 피비를 만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어쨋든 나는 박물관 쪽으로 갔다. 달리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 도중에 전화박스라도 있으면 서부로 가기 전에 제인 갤러허한테 전화라도 한번 할까 했지만 그런 기분이 아니었다. 우선, 나는 계집애가 방학을 해서 집에 왔는 지 어떤 지도 잘 몰랐다. 그래서 나는 그냥 박물관으로 가서 어슬렁거렸다.
문 안쪽에서 피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꼬마 애들 둘이서 오더니 미이라는 어디 있냐고 물었다. 그 중에 한 꼬마는, 나한테 물어 본 아인데, 바지 단추가 열려져 있었다. 나는 그 꼬마한테 그걸 말해 주었다. 그러자 꼬마는 그 자리에서 단추를 올렸다 ― 꼬마는 기둥이나 뭐나 뒤로 가지도 않았다. 거기엔 졌다. 나는 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다시 게울 것같은 기분이 들어서 웃지 않았다. ‘미이란 어디 있어요, 아저씨?’ 그 꼬마는 다시 물었다. ‘알아요?’
나는 꼬마들과 잠깐 장난을 하였다. ‘미이라라구? 그게 뭔데?’하고 나는 그 꼬마한테 물었다.
‘있잖아요. 미이라요 ― 죽은 사람들 말예요. 저기 toon이나 그런 데 묻힌 사람들 말예요.’
toon이라구? 그게 웃겼다. 꼬마는 무덤(tomb)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왜 학교에 가지 않았니?’ 하고 나는 말했다.
‘오늘은 수업이 없어요.’ 하고 혼자 얘기를 다 하는 꼬마가 말했다. 그 놈은 거짓말을 하는 게 분명했다, 꼬마 악당 놈같으니. 하지만 나는 피비가 올 때까지 할 일도 없고 해서, 꼬마들과 같이 미이라를 찾으러 다녔다. 정말이지, 예전에는 미이라가 어디 있는지 정확하게 알았었다, 하지만 박물관에 오지 않은 지도 몇 년은 되었다.
‘너희들은 미이라가 그렇게 재미있니?’ 하고 내가 말했다.
‘네.’
‘네 친구는 말을 못하니?’ 하고 나는 말했다.
‘친구가 아니에요. 내 동생이에요.’
‘동생은 말을 못하니? 나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꼬마를 쳐다 보았다. ’넌 말을 못하니?‘ 하고 나는 그 꼬마한테 물었다.
‘아니에요,’ 하고 꼬마는 말했다. ‘말하고 싶은 기분이 아녜요.’
마침내, 우리는 미이라가 있는 곳을 찾아서 안으로 들어갔다.
‘너희들, 이집트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어떻게 묻었는지 알아?’ 나는 한 꼬마한테 물었다.
‘아니요.’
‘저런, 그런 건 알아야지. 아주 재미있어. 그 사람들은 특수한 약품으로 처리한 천으로 얼굴까지 올라오게 쌌어. 그렇게 하면, 수천년 동안 무덤 속에 있어도 얼굴이 썩거나 그러지 않았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는 이집트 사람들을 빼놓고는 아무도 몰라. 현대 과학도 몰라.’
미이라가 있는 데로 가려면, 파라오의 무덤이니 뭐니에서 가져 왔다는 돌들을 양쪽에 늘어 놓은 아주 좁은 통로를 지나가야 했다. 꽤 으시시했는데, 같이 있는 두 놈의 꼬마가 별로 재미있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꼬마들은 나한테 바짝 달라붙어 있었는데, 말이 없는 놈은 내 소매에 거의 매달려 있었다. ‘가자,’ 하고 그 꼬마가 자기 형한테 말했다. ‘난 벌써 봤거든. 자아, 빨리.’ 꼬마는 돌아서서 달아났다.
‘되게 빨리 도망가네,’ 하고 다른 꼬마가 말했다. ‘나도 갈께요!’ 그 놈도 달아나 버렸다.
그래서 나는 거기 혼자 남았다. 어떤 점에서는, 그게 약간 마음에 들기도 했다. 거긴 정말 근사하고 평화스러웠거든, 그 때, 갑자기 내가 벽에서 뭘 봤는지 상상도 못할 거야. 또 ‘X나 해라’ 하는 낙서였다. 그건 돌 아래 유리가 있는 부분 바로 밑에, 빨간 크레용 같은 걸로 씌어 있었다.
그게 문제인 것이다. 근사하고 평화스러운 곳은 절대로 찾지 못할 거야, 그런 곳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곳이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그런 데 가 봐, 그러면 보지 않는 사이에 누군가 몰래 와서는 코 밑에다 ‘X나 해라’ 하고 써 놓을 거야. 언젠가 한번 해 보기 바란다.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나를 무덤 속에 집어 넣고 비석이니 뭐니를 세우고는, 거기다 ‘홀든 코울필드’ 라고 쓴 다음에, 내가 몇 년도에 나고 몇 년도에 죽었다고 쓴 다음에 바로, ‘X나 해라’ 하고 쓸 거야. 정말이지 난 그걸 확신해.
나는 미이라가 있는 데서 나와서, 화장실에 들어가야 했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인데, 난 약간 설사를 자주 하는 편이거든. 나는 설사니 뭐니 하는 건 별로 마음에 쓰지 않고 있었지만, 다른 일이 일어났다. 나는 화장실에서 나와서 문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약간 의식을 잃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운이 좋았다. 내 말은, 바닥에 넘어졌을 때, 죽을 수도 있었단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옆으로 넘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우스운 일이었다. 의식을 잃은 다음엔 기분이 더 나아졌다. 정말 그랬다. 넘어질 때 부딪친 팔이 좀 아프기는 했지만 이제 그렇게 현기증이 나지는 않았다.
그 때가 열 두시 십 분 정도 되었기 때문에, 나는 다시 문 옆으로 가서 피비를 기다렸다. 나는 그게 피비를 마지막으로 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 말은, 친척중에 말이다. 나는 아마 친척들을 다시 만나기는 하겠지만 몇 년 내에는 다시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생각하기를, 아마 서른 다섯 살 정도 됐을 때, 누가 병에 걸려서 죽기 전에 날 보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집에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 외에는 결코 내 오두막집을 떠나서 집에 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굉장히 신경이 날카롭기 때문에 울며 불며, 다시 내 오두막집으로 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사정을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쨋든 가버리는 것이다. 나는 더럽게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를 취할 것이다. 나는 엄마를 진정시켜 놓고는, 거실 다른 쪽으로 가서 아주 냉정하게, 담배 상자를 꺼내서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오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언제 나를 찾아 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뭘 할 거냐 하면 말야, 여름 방학이나 크리쓰마스 때 그리고 부활절 휴가 때 피비한테 나를 찾아오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D.B.한테도, 만일 글을 쓰기에 좋고 조용한 곳이 필요하면 잠시 나한테 와도 좋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내 오두막집에서는 소설이나 이야기를 써야지, 영화같은 건 쓰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나는, 누가 나를 찾아 오면 아무도 되먹지 않은 엉터리같은 짓은 하지 못한다는 규칙을 만들 것이다. 만일 누가 그런 되먹지 않은 짓을 하려고 하면, 내 집에서는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갑자기 나는 휴대품 보관소에 있는 시계를 보았다. 열두시 삽십 오분이었다. 나는, 학교의 그 할머니가 다른 여자한테 메모를 피비한테 주지 말라고 말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할머니가 여자한테 메모를 불태워 버리거나 하라고 말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정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길을 떠나기 전에 정말로 피비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내 말은, 피비한테 크리쓰마스 돈이니 뭐니를 줘야 한다는 말이다.
마침내, 피비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유리창을 통해서 피비의 모습을 보았다. 피비의 모슴이 보인 건, 피비가 내가 준 미치광이 같은 사냥 모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 놈의 모자는 십 마일 밖에서도 볼 수 있다니까.
나는 피비를 맞이하기 위해서, 문을 열고 나가서 돌계단을 내려갔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피비가 커다란 수트케이스를 들고 있었던 것이다. 피비는 5번가를 지나서 그 커다란 수트케이스를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피비는 그걸 거의 끌지도 못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건 내가 우튼에 다닐 때 사용하던 낡은 수트케이스였다. 나는, 도대체 피비가 그걸 가지고 뭘 하려고 그러는지 몰랐다. ‘오빠,’ 하고 가까이 왔을 때 피비가 말했다. 피비는 그 미치광이같은 수트케이스 때문에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니가 안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하고 나는 말했다. ‘대체 그 가방에 뭐가 들은 거니? 난 아무 것두 필요 없는데. 나는 그냥 이대로 갈 거야. 나는 역에 놔 둔 가방도 가지고 가지 않는데. 그 안에 대체 뭐가 있니?’
피비는 수트케이스를 내려 놓았다. ‘내 옷이야,’ 하고 피비는 말했다. ‘나도 같이 갈래. 그래도 돼? 괜찮아?’
‘뭐라구?’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피비가 그렇게 말했을 때 거의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하늘에 맹세코 정말 그랬다. 나는 좀 현기증이 나고 다시 기절이니 뭐니 할 것같은 기분이었다.
‘샬린이 보지 못하게 뒤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왔어, 무겁진 않아. 여기 든 건 그저, 옷 두 벌하구 모카신 구두, 속옷, 양말 그리고 다른 것들이야. 만져 봐. 무겁지 않아. 한번 만져 봐.... 같이 가면 안돼? 홀든? 안 돼? 제발.’
‘안 돼. 입 다물어.’
나는 기절할 것같은 기분이었다. 내 말은, 피비한테 입 다물라느니 하는 말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다시 기절할 것 같았다.
‘왜 안돼? 제발, 홀든! 난 아무 것두 안 할거야 ― 오빠하구 그냥 갈거야! 오빠가 같이 가자구 안하면 옷두 안 가지고 갈거야 ― 난 그냥 ―’
‘넌 아무 것두 가지고 갈 수 없어. 넌 가지 않으니까. 난 혼자 가는 거야. 그러니 입 다물어.’
‘제발, 홀든. 나하구 같이 가. 난 정말, 정말 ― 오빤 ―’
‘넌 가지 않아. 이제 입 다물어! 그 가방 줘,’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피비한테서 가방을 빼앗았다. 나는 거의 피비를 때리려고 했다. 나는 잠깐, 피비를 때리려고 생각했었다. 정말 그런 생각을 했다.
피비는 울기 시작했다.
‘난 니가, 학교에서 연극이니 뭐니를 해야 한다구 생각했었어. 니가 그 연극에서 베네딕트 아놀드니 뭐니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구,’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거의 심술궂은 말투로 말했다. ‘너 뭐하려구 그러는 거야? 제기랄, 연극은 안하구?’ 그 말이 피비를 더욱 울게 만들었다. 나는 쾌감을 느꼈다. 나는 갑자기, 피비가 눈물을 떨어뜨릴 만큼 울었으면 했다. 나는 거의 피비가 미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피비가 나와 같이 가면 연극에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미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만 해,’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다시 박물관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뭘 하려고 했냐 하면, 학교가 끝나고 피비가 찾아 가도록, 그 미치광이같은 가방을 보관소에 맡기자 하고 생각했다. 나는 피비가 그걸 학교에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아, 가자,’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피비는 나와 같이 계단을 올라가려고 하지 않았다. 피비는 나와 가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쨋든 나는 가방을 보관소에 가지고 가서 맡기고 다시 내려왔다. 피비는 여전히 보도에 서 있었지만 내가 가까이 가자 나한테 등을 돌렸다. 피비는 그런 짓을 할 수 있다. 피비는 그러고 싶으면 나한테 등을 돌릴 수 있는 아이다.
‘난 아무 데두 안 가. 생각을 바꿨어. 그러니 울지 말고 가만히 있어,’ 하고 나는 말했다. 웃기는 건 뭐냐 하면, 내가 그런 말을 했을 때는 피비는 울고 있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어쨋든 나는 그런 말을 하였다. ‘자아, 이제, 내가 학교까지 널 데려다 줄께. 자아, 빨리. 늦겠다.’
피비는 내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좀 피비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피비는 내 손을 뿌리쳤다. 피비는 여전히 나한테 등을 돌리고 있었다.
‘너 점심 먹었어? 점심 아직 안 먹었어?’ 하고 나는 피비한테 물었다.
피비는 내 말에 대답하려고 하지 않았다. 피비는 그저, 내 빨간색 사냥 모자를 벗어서 ― 내가 준 것 말이다 ― 거의 내 얼굴에 댈 정도로 팽걔쳤다. 그리고는 다시 등을 돌렸다. 그게거의 날 슬프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모자를 집어서 오바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왜 그래, 야. 내가 학교까지 널 데려다 줄께.’
‘난 학교에 안 가.’
피비가 그런 말을 했을 때 나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나는 몇 분동안 거기 그냥 서 있었다.
‘학교에 가야 돼. 너 그 연극에 나가고 싶지 않아? 베네디트 아놀드 역 하고 싶지 않아?’
‘싫어.’
‘아냐, 넌 하고 싶잖아. 넌 정말 그 역을 하고 싶잖아. 자, 가자,’ 하고 나는 말했다. ‘먼저, 난 아무 데두 안 가, 내가 그랬지? 난 집에 가는 거야. 난 니가 학교에 가자마자 집으로 갈 거야. 먼저 난 역에 가서 가방들을 찾아 가지고 다음엔 곧장 집으로 ―’
‘학교에 안 간다고 했잖아. 오빤 하고 싶은 대로 해, 하지만 난 학교에 안 가,’ 하고 피비는 말했다. ‘그러니까 입 좀 다물어.’ 피비가 나한테 입을 다물라고 말한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 말은 정말 끔찍하게 들렸다. 정말이지, 끔찍하게 들렸다. 그건 욕을 하는 것보다 더 나쁜 말로 들렸다. 피비는 여전히 나를 보려고 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깨에 약간 손을 올려 놓으려고 할 때마다 뿌리쳤다.
‘야, 우리 좀 걸어 갈까?’ 하고 나는 피비에게 물었다. ‘동물원까지 걸어가지 않을래? 너 보고 오늘 오후에 학교에 가라고 하지 않고 좀 산책이나 하면, 화 풀거야?’
피비는 여전히 대꾸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말했다. ‘오늘 오후에 학교 빼먹고 좀 산책이나 하면 화 풀거냐구? 내일은 착한 어린애답게 학교에 갈거야?’
‘그럴 지도 모르고 안 그럴 지도 몰라,’ 하고 피비는 말했다. 그러더니 피비는 차가 오나 보지도 않고 바로 길 건너로 달려갔다. 피비는 가끔 미친 사람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피비를 따라가지 않았다. 나는 피비가 나를 따라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원쪽 길을 따라 동물원을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비는 길 건너편에서 시내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피비는 나를 보려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피비가 내가 어디로 가는지보려고 아마 잔뜩 화난 눈으로 나를 힐끔힐끔 볼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해가 된 건, 이층 버스가 옆을 지나갈 때였다. 그 때는 길 건너편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대체 피비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기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동물원에 도착했을 때, 나는 피비에게 소리를 질렀다, ‘피비! 난 동물원에 들어간다! 빨리 와!’ 피비는 나를 보려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피비가 내 말을 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동물원으로 가는 계단을 내려갈 때, 나는 고개를 돌리고, 피비가 길을 건너서 나를 따라오고 있는 걸 보았다.
날시가 좀 우중충했기 때문에 동물원 안에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았다. 하지만 바다사자 우리니 뭐니에는 몇 명이 있었다. 내가 그 옆을 지나치려고 할 때, 피비는 걸음을 멈추고 바다사자들이 먹이를 받아 먹는 것을 보는 체했다 ― 한 친구가 바다사자들에게 고기를 던져주고 있었다 ― 그래서 나는 되돌아 갔다. 나는, 그 때가 피비 옆으로 갈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피비에게 다가가서 약간 뒤에 서서 피비의 어깨에 손을 좀 댔지만, 피비는 무릎을 굽혀서 빠져 나갔다 ― 피비는 한 번 마음 먹으면 굉장히 골이 날 수가 있다는 건 말한 적 있지? 피비는 바다사자들이 먹이를 받아먹는 동안 거기 계속 서 있었고 나도 피비 바로 뒤에 서 있었다. 나는 이제 피비의 어깨에 손을 갖다 대거나 뭐하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피비가 바로 도망가 버릴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우습다. 아이들한테는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바다사자 우리를 떠날 때도 피비는 내 옆에서 걸으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 멀리서 걷지도 않았다. 피비는 약간 다른 쪽 인도로 걷고 나는 반대쪽에서 걸었다. 그건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었지만, 아까처럼 일마일이나 떨어져서 걷는 것보다는 나았다. 우리는 윗쪽으로 걸어 올라가서 잠깐동안 작은 언덕 위에 있는 곰을 보았지만 그 놈은 별로 볼 만한 게 없었다. 한마리만 밖에 나와 있었다, 북극곰 말이다. 다른 놈은, 갈색 곰 말인데, 동굴 속에 들아가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 놈은 엉덩이만 이쪽으로 보이고 있었다. 내 옆에는 카우보이 모자를 귀까지 눌러 쓴 꼬마가 있었는데, 자기 아버지한테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다. ‘아빠, 곰이 나오게 해. 곰이 나오게 해.’ 나는 피비를보았지만 피비는 웃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골이 나면 어떤 지 알지? 아이들은 웃거나 뭐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곰 우리를 떠나서, 동물원을 나와서 공원 안에 있는 작은 길을 건너갔다. 다음에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 오줌을 눈 것 같은 냄새가 나는 작은 터널로 들어갔다. 그건 회전목마 타는 데로 가는 길이었다. 피비는 여전히 나하고 얘기니 뭐니도 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이제 약간 내 곁에서 걷고 있었다. 나는 그저 장난으로 피비의 오바 뒤에 있는 벨트를 잡았지만 피비는 그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피비는 말했다, ‘손 좀 가만히 있어, 부탁이야.’ 피비는 여전히나한테 골이 나 있었다. 하지만 아까처럼 그렇게 골이 난 건 아니었다. 어쨋든 우리는 회전목마 쪽으로 점점 가까이 갔는데, 항상 거기서 돌리는 미치광이같은 노래가 들려왔다. 그건 “오, 마리!” 라는 노래였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오십 년 전에도, 똑같은 노래를 돌리고 있었다. 회전목마가 한가지 좋은 점은, 언제나 똑같은 노래를 돌린다는 것이다.
‘겨울엔 회전목마 안 하는 줄 알았는데.’ 하고 피비가 말했다. 피비가 무슨 말을 한 건 그게 처음이었다. 피비는 아마, 나한테 화를 내고 있어야 한다는 걸 잊어버린 것같았다.
‘아마 크리쓰마스 때니까 그렇겠지,’ 하고 내가 말했다.
내가 말을 하자 피비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피비는 아마, 나한테 화를 내고 있어야 한다는 게 생각난 것같았다.
‘저거 한번 타고 싶니?’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피비가 아마 그걸 타고 싶어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피비가 아주 어린 꼬마였을 때, 앨리와 D.B. 그리고 내가 피비를 데리고 공원에 가면, 피비는 회전목마 타는 걸 미치게 좋아했다. 그 놈의 것에서 피비를 내리게 할 수가 없었다니까.
‘난 너무 커,’ 하고 피비가 말했다. 나는 피비가 내 말에 대꾸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피비는 대꾸했다.
‘아냐, 그렇지 않아. 타 봐, 내가 기다려 줄께. 타 봐,’ 하고 내가 말했다. 이어서 우리는 바로 그리로 갔다.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는데, 대부분 아주 어린애들이었다. 그리고 부모들은 바깥쪽에서 벤치니 뭐니에 앉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뭘 했냐 하면, 나는 표를 파는 창구로 가서 피비의 표를 한 장 샀다. 그리고 표를 피비에게 주었다. 피비는 바로 내 옆에 서 있었다. ‘여기,’ 하고 나는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 니 돈 남은 것도 받아.’ 나는 피비가 나한테 빌려 준 돈을 주려고 하였다.
‘오빠가 가지고 있어. 내 대신 가지고 있어,’ 하고 피비는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부탁이야.’
누군가가 ‘부탁이야’ 하고 말하면 정말 우울해진다. 내 말은, 피비나 누가 그런다면 말이다. 그 말이 나를 무지하게 우울하게 했다. 하지만 나는 돈을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오빠도 타지 않을래?’ 하고 피비는 나에게 물었다. 피비는 약간 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이제 피비는 나한테 화를 내지 않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음에 타지 뭐. 널 보고 있을께,’ 하고 나는 말했다. ‘표 받았지?’
‘응.’
‘그럼 가 ― 난 여기 벤치에 앉아 있을께. 널 봐줄께.’ 나는 벤치로 가서 앉고, 피비는 회전목마를 타러 갔다. 피비는 회전목마 주위를 돌았다. 내 말은, 피비가 회전목마 주위를 완전히 한바퀴 돌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피비는 지쳐 보이는 커다랗고 늙은 갈색 말 위에 올라탔다. 그러자 회전목마가 돌기 시작했고, 나는 피비가 회전목마를 타고 돌아가는 걸 바라보았다. 회전목마 위에는 아이들이 대여섯 명밖에 없었는데, “당신의 눈에 눈물이 고일 때”라는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노래는 아주 묘하면서도 재즈풍으로 연주되고 있었다. 아이들은 황금빛 손잡이 고리를 잡으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피비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피비가 말에서 떨어질까 봐 좀 걱정이 되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아이들이 황금빛 손잡이 고리를 잡으려고 하면, 하고 싶은 대로 놔 두고 아무 말도 해서는 안된다. 떨어지면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회전목마가 멈추자, 피비는 말에서 내려서 나한테로 왔다. ‘이번에 오빠도 한번 타 봐,’ 하고 피비가 말했다.
‘아냐, 난 그냥 널 보고 있을께. 그냥 널 바라보고 있을 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피비에게 돈을 좀 더 주었다. ‘여기. 표를 좀 더 사.’
피비는 나한테서 돈을 받았다. ‘이제 오빠한테 화 안나,’ 하고 피비는 말했다.
‘알아. 빨리 가 ―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데.’
그러자 갑자기 피비는 나한테 입을 맞췄다. 그리고 피비는 손을 내밀었다. ‘비가 올 것같애. 비가 오는데.’
‘알아.’
이어서 피비가 뭘 했냐 하면 ― 그게 나를 놀라게 했다 ― 피비는 내 오바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내 빨간색 사냥 모자를 꺼내서 내 머리에 씨워 주었다.
‘너 이거 안 가질래?’ 하고 내가 말했다.
‘잠깐 쓰고 있어도 돼.’
‘알았어. 빨리 가, 이제. 놓치겠다. 니 말이니 뭐니를 말야.’
하지만 피비는 가지 않고 그냥 있었다.
‘오빠가 아까 한 말 정말이야? 정말 아무 데도 안 가는 거야? 정말 이제 집에 갈 거야?’ 하고 피비는 나에게 물었다.
‘응,’ 하고 나는 말했다. 내 말은 진심이었다. 나는 피비한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나중에 집으로 갔다. ‘이제 빨리 가,’ 하고 나는 말했다. ‘돌아가기 시작하는데.’
피비는 달려가서 표를 샀다. 그리고 회전목마가 돌아가기 바로 전에 거기 도착했다. 피비는 자기 말을 찾아서 자기 말을 찾았다. 그리고는 거기 올라탔다. 피비는 나에게 손을 흔들었고 나도 피비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정말이지, 미치광이처럼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빠께쓰로 쏟아 붓는 것같았다, 이건 농담이 아냐. 부모니 엄마니 모두들 비에 젖지 않으려고 회전목마 지붕 아래로 가서 섰다. 하지만 나는 꽤 얼마동안 거기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나는 완전히 비에 젖었다, 특히 목과 바지가 흠뻑 젖었다. 사냥 모자를 쓰고 있어서 그래도 비로부터 보호가 되었지만 그래도 비에 젖었다. 하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피비가 회전목마에 타고 돌아가는 모습에서 나는 갑자기 행복한 느낌에 젖었다. 나는 거의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나는 정말 광장히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인데. 왜 그런 지는 모른다. 그저, 피비가 청색 오바니 뭐니를 입고 회전목마에서 돌아가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던 것이다. 정말이지, 그 모습을 봤어야 하는데.
제 26장
내가 얘기하려는 건 이것뿐이다. 내가 집에 돌아 오고 나서 뭘 했으며, 병이니 뭐니에 걸리고, 여기서 나가면 다음 가을에는 어느 학교에 가기로 되었다느니 하는 얘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정말 그런 얘기는 하고 싶지가 않다. 지금은 그런 얘기가 별로 흥미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사람들이 여기서 알고 지내는 정신분석학자라는 친구는, 내가 다음 9월에 학교에 가게 되면 공부에 전념할 것인지를 끈덕지게 물었다. 내 생각엔, 그건 정말 멍청한 질문이다. 내 말은, 누가 어떤 걸 하기 전까지는 뭘 할 건지를 어떻게 아냐 하는 말이다. 그건 아무도 모른다. 나는 공부에 전념하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내가 그럴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다. 하늘에 맹세코 그건 멍청한 질문이야.
D.B.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지만, 그도 나한테 여러 가지 질문을 끊임없이 한다. 지난 토요일에는, 그는 자기가 쓰고 있는 새 영화에 나오는 영국 여자하고 드라이브를 했다. 그 여자는 굉장히 태도를 꾸미는 그런 여자였지만 아주 미인이기는 했다. 어쨋든, 한번은 그여자가 복도 저 쪽 끝에 있는 화장실에 갔을 때, D.B.는 나한테 내가 이제 말한 그런 얘기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몰랐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말인데, 나는 그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른다.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한테 그 얘기를 한 걸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내가 아는 건, 내가 얘기한 모든 사람들이 약간 그리워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스트래드레이터와 애클리까지도 그렇다. 저 모리스 새끼까지도 그리워지는 것같다. 그건 우스운 일이다. 절대로 아무한테도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러면 모두를 그리워하게 될 테니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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