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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모공어빛아존. /이재웅 개인의 사상

호소문

입주민 여러분

우선 대단히 송구스럽다는 말부터 올리겠습니다. 저는 이미 여러분에게 한차례 피해를 입힌바가 있느 한 청년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염치불구하고 여러분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청년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입힌 피해는 죄송하다는 말로 다 할 수 없겠지만,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사건이 마무리 할 수 있다면 입주민 여러분 한 분,한 분 빠짐없이 찾아뵙고 정식으로 고개 숙여 사죄드리겠습니다.

사건의 경위는 대단치 않습니다. 그러나 썩은 달걀로 빚어진 사건의 골이 산이되고 바다가 되어 한 청년의 가슴에 한을 세겨놓기에 이르렀습니다.

24일 토요일 아침 여러분들이 들었던 고성은 그 청년의 가슴에 담긴 한을 푸는 소리였습니다.

저는 스스로 말하기 민망합니다만 사건이 발생한 직후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가슴에 담긴 한을 풀지 않고서는 음식을 넘긴다는게 저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 피해를 끼친 죄인입니다만, 제 힘은 너무 미약하여 저 혼자 이 한을 풀 수 없습니다.

부디 저로인해 생긴 악감정은 잠시 접어 두시고,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신다면 영원히 그 감사함을 잊지 않고 간직하겠습니다.

사건의 경위는 대단치 않습니다. 하지만 한 청년의 가슴에 새겨진 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인생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긴 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라 자세한건 뒷면에 적어 두겠습니다. 부디 제 글을 다 읽으신 다면 뒤면의 이야기 같이 읽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얼마전부터 실의에 빠졌다가 삶을 다시 되찾으려고 노력중인 청년입니다.

하지만 썩은 달걀로 모든게 무너져 내려버린 청년입니다. 누구라도 의문스러워 할 거란거 압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하지만 제 가슴은 찢어져 버렸고 이제는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건의 경위란 이렇습니다. 저는 썩은 계란을 깰 때 심각한 가슴이 찢어지는 충격을 받았고 즉시 위로해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집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가 사람으로부터 위로받고자 할 수 있는 곳인 계란을 산 슈퍼 뿐였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달려갔습니다. 위로 받고자. 하지만 저는 거기서 더 한 충격을 받아야 했습니다. 제가 볼 땐 그것은 학대입니다. 저는 일생토록 그러한 학대를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제 스스로 자신을 혐오하게 만들라는 지시였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게 악마의 유혹보다 더 달콤한 유혹이었습니다. 꿀 보다 더 달콤했으며 처음 맛보는 환희 였습니다.

내가 그토록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는데, 더이상 그런 짓은 하지 않아도 됐는데, 저는 제 자신을 거기서 잃어버리고 왔습니다. 전 지금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란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가슴을 가진게 사람 입니까.

저는 울거나 웃어도 제가 아닌듯 어색합니다. 처음에 위로 한 마디만 단 한 마디만 했어도 저는 그 한 마디에서 라도 위안을 찾아낼 수 있었을 것 입니다. 저에게 불행이 있다면 처음 만난 사람이 여자였다는 겁니다. 남자는 둔해서 모르지만 그래서 위안의 말을 건네 올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자는 감정에 예민해서 그때 제 상태를 너무나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감정에 의해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받고 있다. 여기서 자신이 한 마디라도 잘못 건넨다면 영원히 저 사람은 잘못될지 모른다. 여자는 엄청난 중압감과 공포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자는 저를 그대로 놔두거나 즉시 남자를 부르거나 해야 했습니다. 둘 중 하나를 했더라면 저는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어느 하나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고통에 몸부림쳐 해결을 요구하자 오히려 저한테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요구해왔습니다. 참 달콤한 말이었습니다. 하나의 불행이 더해져버렸습니다. 제가 여전히 은둔의 삶을 살고 있었다면 저는 스스로 방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제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걸 알고 있었기에 그 요구에 응했습니다.

저는 일생토록 환희를 그렇게 절실하게 느낀적은 없습니다. 그때의 환희는 일생에 걸친 모든 환희보다 강렬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환희를 생각하면 기쁘고 웃음이 절로 나며 가슴의 상처도 치유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 환희는 저에게 독입니다. 제가 계속 고통을 외면하고 환희를 느낀다면 저는 결국 환희로만 만들어진 인간이 될 것입니다. 저에게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언제까지 이 환희를 거부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가슴의 고통이 너무 커 도저히 거부할 수 없게 되는 날 저는 영원히 회복할 수 없게 될거라 생각됩니다.

제 감정은 미쳐있었지만 제 이성은 무엇을 해줘야할지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알고있었습니다. 제 입에서 튀어나온 말을 돈을 요구하는 말이었습니다. 제 일생에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그렇게 생생하게 느낀것은 없었습니다. 저는 부끄러움으로 가득찼습니다. 이성이 해낸겁니다. 부끄러움으로 가득차자 마음속에는 환희가 자랐습니다. 깨진 가슴은 느껴지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걸 계속 느끼고 있으면 아무 감정도 들지 않습니다.

저의 첫번째 대면은 그렇게 부끄러움과 환희로 그리고 손에 쥐어진 죄악의 증거인 1만원으로 끝났습니다.


저는 그날 저녁에 다시 찾아 갔을 때, 이성은 환불을 하기 위해 다시 찾아갔다는 교묘한 논리를 만들어냈습니다. 감성은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성이 저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만들어낸 논리였습니다. 사람은 어쩌면 부끄러움을 느끼며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겁니다. 그래서 이성이 행동의 논리를 만들어내 양심을 보호해주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느끼는 모순이란 이성이 양심을 지키려는 감정입니다.

제가 두번째 찾아갔을 땐 이번엔 올바르게 찾아간다고 남자에게 갔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위안을 받지 못하고 몇가지 불행이 더해졌습니다. 첫번째 불행은 너무 시간이 지난 다음에 찾아갔던 겁니다. 하지만 제가 계란을 산 장소만 가도 심한 정신충격과 구토를 해댔고, 스스로 부끄러움을 만들어낸 죄악의 장소엔 가고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젠 구원을 받고 싶었기에 저녁에 찾아갔던 겁니다.

저는 제가 첫 마디 말을 하고 나서 굉장히 놀랬습니다. 이성은 몰랐지만 감정이 격해져 공격적으로 말이 나왔습니다. 제가 원했던건 환불을 요구하며 썩은 계란 사건이 일어난 곳에 사람과 같이 가서 나머지 계란을 회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첫 마디 말부터 공격적이었고 황급히 주워 담으려 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일이 틀어졌습니다. 저는 당황했고 이성이 다시 고개를 들어 정당한 환불을 요구 했습니다. 1만원은 점심,저녁을 먹지 못했던 식비며, 환불을 요구하는건 정당하다. 하지만 그런 저를 다시 부끄러움도 모르고 돈을 요구하는 사람으로 몰아 갔습니다. 어제 들어온 계란이 썩을리 없고 우리는 물건을 사와서 팔기만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환불은 안된다.

 저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때 어디서 나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만 저 사람들을 내가 이해해 준다면 저 사람들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물론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고 구입할때 문제가 있었겠지만 판매하는 곳이 여기니 환불을 해달라. 문제가 그쪽에 있다면 책임도 그쪽에서 져야하지 않겠냐? 제가 그 사람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 책임이라는 말을 여자는 흘려듣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환불을 해주라고 했습니다. 저는 당황했습니다. 제가 이해해주려고 한말을 이용당하고 이해를 받지도 못했으며 남자에 의해 위로도 받지 못했습니다. 전 그래도 환불을 이용해 계란을 치워달라고 끝까지 말했습니다만 돌아온건 무시였습니다.

그리곤 저에게 우리는 맞지 않으니 다시는 오지 말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건 단순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회복이라는 희망에 내려진 사형선고였습니다.

그 후로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시 아침이 오기 전까지는 뭘 했는지 기억에 남아있지 않네요.

저는 그때는 몰랐습니다만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찾아갔을 때, 그 썩은 계란 사건이 일어난 시간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입주민 여러분을 괴롭히게 된 24일 아침의 고성의 사연은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지금 저에게 주워진 시간이 별로 없다는걸 느끼고 있습니다.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것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부디 제 곁에 있어 주길 기원합니다.

아침이 밝았습니다. 그 시간이 되자 다시 한 번 미쳐버렸습니다. 슈퍼에 찾아갔고 노래를 불렀으며 고성을 질렀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 억울함을 토로하지 않는다면 저는 그대로 미쳐버렸을 겁니다. 

큰 소리로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고,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제 죄악의 증거인 1만 3천원은 다시 가계에 던져버렸습니다. 저에게 되돌려 주려하자 저는 절대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걸 다시 받게 된다면 영원한 죄인의 낙인이 제 몸에 세겨진다는걸 알았습니다.

제가 소란을 일으키자 처음엔 아파트 경비원이 와서 저를 말렸습니다. 저는 제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으로 생각했지만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야기 할 때 썩은 계란이 떠올라 위액이 역류해 토하자 침을 뱉으면 안된다고 하는거였습니다. 그때 이 사람은 나를 방해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나는 내 이야기를 모든 사람에게 알리지 않으면 안됐습니다. 그게 나의 삶의 목표였습니다. 

저를 한쪽으로 끌어내려고 옷을 잡아당기자 저는 그 사람이 때린듯 오버액션으로 겁에 질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가계와 경비가 한통속이라는 노래를 부르자 경비는 저의 행동에 겁에 질려 도망갔습니다. 

이제 저를 막는 것은 없었습니다. 저는 나와서 구경하는 옆 상가 사람들에게 달려가 좌초지정을 설명했으나 몸과 고개를 돌려 저를 외면했습니다. 하지마 차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듯 그 자리에서 몸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더 큰 소리로 사람들에게 썩은 계란을 파는 집이라고 알렸습니다. 그러자 아마 가계주인이 신고를 했던 모양입니다. 경찰이 왔고 저는 경찰이 제 이야기를 들어 시시비비를 가릴 것이라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제 신분을 요구했고 제가 써달라는 이야기는 하나도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위협했습니다. 소리를 지르지 않고 경찰관의 목소리 정도로 노래를 부르겠다고 해도 안된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화를 내며 경찰관을 위협하느냐고 말했습니다. 

제가 상가주인 분들에게 외면을 받을 땐 그래도 이해했습니다. 아예 몸을 돌린것도 아니었고 같은 상가 사람이라 그럴 수 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경찰에 의해 외면을 받았을 땐 사회로부터 외면을 국가로부터 외면을 받았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3번째로 위안을 받기 위해 경찰관에게 한 말은 4끼를 먹지 못했고 물만 먹고 있으니 어디 물 좀 있으면 달라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물이 어디있냐며 화를 냈습니다. 저에게 술을 먹었냐고 물어도 봤습니다. 저는 입에 술 한잔 대지도 않으며 술 냄새개 하나도 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요.

저는 경찰관에게 이야기를 하는 순간 경찰관만은 제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줄거라고 착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경찰관은 제 이야기를 계속 끊었고 저는 암담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 썩은계란이 떠올라 토했을 때 등을 두둘겨 달라는 말을 했지만 경찰관은 요지 부동이었습니다.


이게 제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이 이야기는 제 깨진 양심, 영혼으로 써진 글입니다. 저는 이 글을 처음 쓸 때는 양심을 치유하려 눈물이 흘렀지만 이제는 양심으로 글을 써도 눈물이 흐르지 않습니다. 작은 감정의 요동만 느껴질 따름입니다.

부디 저를 도와주실 간곡히 고개숙여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없다면 저는 죽게 될 것입니다.




저는 삶의 의욕을 잃고 장기간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실의에 빠진 사람이 저 혼자겠습니까만 악순환의 고리로 고착된 생활은 스스로 깨고 나오기 요원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얼마전에 거울을 봤습니다. 저는 아무리 제가 못난 생활을 하고있다고 하여 저 스스로를 싫다고 생각한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얼마전에 처음으로 거울을 보고 내 자신이 싫다고 느껴졌습니다.

자기 자신을 보기 싫다는 감정을 여러분들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아무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해줄 수도 없는 감정입니다.

저는 혼자 무수히 괴로워 하며 고민해습니다. 그러나 저는 종교를 믿지 않습니다만 계시와 같은 말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하루, 하루 변화한다면 그 변화를 쌓여서 미래를 변화시킬수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날의 영혼을 강타할 정도의 강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날 부터 매일, 매일 저는 변화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운동도 시작하고, 청소도 해버리고, 요리도 배웠습니다.  거울을 보고 제가 마음에 드는 표정도 만들었습니다. 예, 이제는 제 스스로 웃고다닐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전 변화했던겁니다. 그렇게 암담한 삶에서 빛을 만들어 올렸습니다.

미약한 빛이지만 아주 소중한 빛이었습니다. 저는 이 빛을 지키고, 보호해 나갈 의무를 느꼈습니다. 제가 귀찮음과 게으름을 피우려고 할 때마다 이 빛이 흔들려고, 저는 한 시도 그럴 수 없었습니다. 나쁜 마음을 가질 수도 없었습니다. 나쁜 마음이 일기만해도 빛이 힘을 잃어갔습니다.

이 얼마동안 일어난 변화는 저에게 기적이었습니다. 꺠지면 안되는 기적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기적으로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얼마동안 이룩했던 변화도 이토록 차란한 빛인데,

일 평생을 걸쳐 변화한다면 얼마나 찬란하고 위대한 사람이되겠습니까? 저는 생명에 대해 그렇게 느낍니다. 무한한 가능성. 불가능이란 없는 가능성.

여러분 저는 썩은계란을 봤을 때 찌어지는 가슴을 봤습니다. 제 빛을 잃었습니다.  영영. 한 줌도 없이.

제가 이런 가슴을 가지고 어떻게 빛을 보고 다시 들여차라 할 수 있겠습니까. 치유되지 않는다면 저는 영영 빛을 다시 되찾을 수 없습니다.

전 제 가슴이 찢어졌다는걸 압니다. 그렇게 않고서는 이렇게 아프지 않을리 없으니까요. 저는 계속 가슴을 쓰다듬어 진정시켜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명을 질러댑니다.너무 아파 눈물이 하염없이 나지만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이 상처는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아 난 상처이기 때문에 저는 치유할 수 없습니다.하지만 여러분들이 만약 제게 관심을 가져준다면  그리고 저를 보신다면 제 왼쪽 가슴을 한 번 쓰다듬어 주신다면 전 여러분의 손길은 영원히 제 가슴에 남아 상처를 치유할 것입니다.

제게 남아있는 미약한 힘으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이 눈물로 이 호소문을 쓰는 일입니다.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부디 제게 따듯한 손길을 부탁드립니다.   


                        두진백로 아파트 104동 507호 한 도움이 필요한 청년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