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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준비. 모순, 패러독스, 아이러니, 이중성

상실의 시간


내가 쓴 글이 질투에 의해 빛을 보지 못하고 지워졌다.

인생 낙오자와 패배자 소굴에는 어울리지 않을
투기와 질투심을 한도껏 만들어 낸 글.

단순한 글이 아니었다. 그동안 궁리해왔던 러시아 문학과 미국. 영혼과 자본주의라는 측면이 이 현실세계에서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되어야 하는지 비전까지 닿은
위대한 생각의 금자탑이었다.
황금과 같은 글이었고, 많은 빛을 받아 마땅할 글이었다.
애도와 안타까움, 어리석음에 대한 적개심.

분노는 한가지 방법밖에 떠오르게 하지 않는다. 분노를 잠재우며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용의 길.
1. 식욕에 대한 30년간의 단련
2. 굶주림은 나를 더 강하게 하니 이것이 신으로 이르는 길이다. 싯타르타가 보리수 아래 칠일을 굶었고 모든 종교는 굶는 날을 지정해 놓고 있다. 배부른 돼지는 절대 절대 하등계급으로 중인도 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