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팔라야 정상으로 부터 온 편지.<script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 가로 배너3 큰 모바일 배너 320X100 --> <ins class="adsbygoogle" style="display:inline-block;width:320px;height:100px" data-ad-client="ca-pub-5075237022023531" data-ad-slot="1591600305"></ins> <script> (adsbygoogle = window.adsbygoogle || []).push({}); </script>
본문 바로가기

9. Sports, E-Sports, Game/9.1 E-Sports LOL 현상 해석

히팔라야 정상으로 부터 온 편지.

지역의 수준은 그 지역의 탑 선수에 의해 좌우됩니다.

그것은 한국의 룰이며 전 세계의 룰입니다. 


한국지역의 산은 단연 히말라야 SKT 미드라이너 페이커 이상혁 선수님입니다. 

만년설이 내려 앚은 천혜의 순수함을 간직한 자연. 기본에 가장 출실하여 고전파시절에 일반모드 끝까지 올라간 그 사람. 일반모드에서 SKT 미드라이너 페이커 이상혁 선수님은 그 위치에서 신이되고 랭커가 되어 1등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의 행보는 그 팀을 열등감과 좌괴감으로 누구도 노력하지 않고는 그리고 페이커의 생활과 플레이를 보면서 그에게 배우며 퍼져나갔으며 그와 싸웠던 게임들에서 한국의 선수들은 그 세계의 가장 견고하고 가장 단단한 아마만티움 같은 그의 강벽에


누구도 깊이 좌절하지 않아 본적없고 그리고 누구도 위로 올라간 적없습니다..


"깊은 절망은 높은 하늘로 대려가 준입니다."

그렇게 날개를 달고 누구도 노력이라는 우공이산으로 자신의 산을 높이지 않을 수 없었습다. 그것이 페이커라는 "사람"의 존재감입니다. 



3년의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 이제 그만 해먹으라는 식의 온갖 번뇌로 부터 페이커는 서서히 무너져 갔다. 왕은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다. 그의 측근들에 의해 무너져 가지. 그들이 하는 행동을로 인해.(말 또한 행동인다.행동은 실천이 아니라 상상과 꿈을 실현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한 사람의 그릇에는 한계라는 것이 모두 존재한다. 그그릇에 과연 무엇을 담을 것인가. 인기를 담아지게 되면 그 만큼의 다른 부분들은 게임의 능력적인 부분은 당연이 자리를 차지할 공간이 줄어든다. 


우리는 정해진 공간을 갖고 태어나며 가진 것에 우리는 온전히 외부와 접촉없이 자신이 원하는 "세계"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세계라는 것들로 채워넣어야 됩니다. 예를 든다면 세계무대의 사진 미디어 비디오들. 그런 것을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들의 스포츠, 예술, 영화, 서적들 이런 것들로 채워야 세계를 유지할 수 있따. 만약, 자신이 그저 볼품없는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채운다면 자신은 그 볼품없는 사람들. 일반 사람들로 채워서 그들의 소망을 이뤄주고 싶어 한다. 그것이 SKT 왕의 몰락을 가져오는 동시에 절대성의 훼손이며, 차기 왕좌에 그것을 물려줌으로 그간 받아온 사랑이라는 것을 보답하는 길이 됨을 느끼며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당사자나 아니면 본인이나 아니면 자신이나 아니면 자아나 외부의 철학적인 관찰자가 아니라면 이것을 누구도 이해할 수 없고 그저 주어진 바탕과 환경속에 굴러갈 뿐입니다.


번뇌, 잡음들로 원천 봉쇄해야 됩니다. SKT가 영원히 우승을 하는 것을 나는 목도하고 싶다. 왕조는 언제나 무너진다고? 스스로 무너진다고? 그 반복의 역사가 어디까지 이어져야 하는가? 무너지지 않는 절대왕조의 탄생은 우리에게 진실을 대면할 기회를 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격하게 역사로 현실로 우리의 일상과 자신의 깊은 내면까지 침투하여 모두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특이점 까지. 모두가 순결하고 순백의 상태가 되는 그곳 까지. 우리의



코타마 싯타르타님은 히말라야의 만년설로 태어난 자입니다. 그리고 우리 세계는 그런 자들이 왕이됩니다. 하지만 후천적으로 산 밑에 태어난 사람이라도 그런 왕과 함께라면 자신의 재능을 만개 할 수 있다. 그런 왕은 유방이며 그런 신하는 거지의 한신입니다.  그런 자들이 우리에게 산 밑자락에 태어난 우리들에게 만년설이될 수 있는 방법과 방향성 길과 방식 법들을 그 존재 자체를 보면서 느끼고 이해하고 우리에게 스며들면서 우리영혼에 자리잡고 우리가 사라온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보는 것만으로 사람은 모든 것을 배우며, 보는 것으로 사람은 그것이 됩니다. 


어린시절 셰익스피어를 읽지 않는 사람이. 셰익스피어식의 윈스턴 쳐칠식의 언어기법을 기억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대로 재현하는 것 과 같이. 


기억하지 않아도 무의식으로 남아 우리의 행동을 조종하고 지배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어린시절 아주 독하고 쓴 것을 내가 먹었다면 나는 자라서 그런 것들을 겪을 인내와 이미 지나온 길이 되어 여러 쓴 것들에 대한 참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순서가 없는 인간은 앞뒤가 없는 인간은 평소에 기억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일상의 모든 물품들을 제자리 제 순서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물건을 놓은 때는 머리와 다리를 제 대로 놓고 숫가락을 들더라도 힘주어 들고 보면서 들고 기억하며 들고 메모리하며 들어라. 그리고 자신의 가슴에 새겨넣어라. 



얘기라고 하지 말아라. 이야기라 해라. 그 모순됨이 자신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닌 진화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한다고 해도 그 외면의 끝까지 마치던가 아니면 외면 도중 중도에 멈추지 말아라. 사람은 자신이 유리한 것들이 먼저 생각나며 자신이 우월한 것들이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싸우지 말라는 말" 중재를 한다면 사람은 성장할 수 없다. 외면 도중에 멈추고 그 다음에 오는 진실한 직시를 놓치게 됩니다.


그럼으로 그 다음은 자신의 생각으로 채우며 그것은 꿈이나 상상 이데아 망상이 되게 됩니다. 정신병이란 그런 것입니다. 외면 후에 오는 직시까지 "인내" 혹은 "방해"로 가지 못하고 닿지 못하니 이 경쟁사회에서 그럼 암적존재들 한국사회의 진정한 악인 것은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싸움은 끝까지 되야 한다. 그러면 자신이 잘한 것 다음에 잘못한 것을 실토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전일성"으로 "진실"에 닿아 사람들을 모두 진실한 사람으로 잉태해 준다.



왕조가 몰라하기 전에는 그 왕조가 몰락하는 역사는 없었다. 왕조가 몰락하지 않은 역사의 반복이 아닌.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며 영원히 진화하는 나는 그러한 세계를 원한다.


만들어 진 대로 누구는 뱀처럼 누구 소처럼 뱀이 독을 만드는 것이 생존을 위해서 잘못인가? 소가 그저 젖을 내는 것이 그게 소의 잘못인가? 잘한 것인가? 물로 독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면 너희가 뱀을 대려다 먹이를 주면 생명을 살릴 것인가? 쥐나 여타 설치류들을 너희가 손수 잡아다 뱀에게 독을 제거하며 너희가 키워줄 것인가? 너희가 그렇게 사람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돈"으로 그럴 수 있는가?


너희보다 더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그 "돈으로"



나는 아시안 게임에서 보았다. 페이커의 진면목을 오리아나의 플레이에 그간 억눌렸던 팬들과 여타 타 동료 팀의 요청으로 실력을 낮춘 그 페이커가 대호를 넘어 태호처럼 날뛰는 것을.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너희들은 사람을 죽일 수 있따. 너희들은 너희보다 잘난 사람들을 너희 아래로 생각하며 너희는 너희를 신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너희는 타인에게 간섭할 권리가 있따고 생각각하며 그리고 남이 아닌 타인을 방해하며 훼방하며 자신은 "자해"하며 산다.


나는 마르크스님보다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면서 이해못한다. 내가 먄약 그 시대 마르크스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나는 그저 별볼일 없는 농부의 자식으로 그저 정도전의 호와 같은 "상봉"산을 바라보며 그 꽉막힌 세계에서 질식하며 사람들이나 동물에게 분풀이를 하고 살았을 것입니다.(사람은 자신의 가진 재능보다 더 쓰지 못하고 산다. 그것은 한손잡이라는 것에서 대표 명확해 진다. 우리는 양손잡이가 될 수 있으나 한손잡이로 우리의 재능은 한 손에만 집약됩니다." 우뇌와 좌뇌 둘 다 발달할 수 있으나 우리는 한쪽의 뇌만 발달한다. 하지만 우리의 후손들은 양손잡이고 좌놔와 우놔 모두 우리보다 더 발달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4차혁명이 쓸모없는 인간을 버리게 된다는 두려움에 직면 한 많은 사람을에게 미래의 희망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쓰면서 생각이 바뀌었으며 한 가지 감춘 문단이 있다. 생각이 바뀐 것은. 우리는 버려지면 안됩니다. 모든 사람이 우리는 어디에서 태어났던가 별의 내부 혹은 외곽 지구 혹은 명왕성에 태어났다고 해도 우리는 그런 사람을 버려지는 시대를 지나서 이제는 버려지지 않는 시대에 와 있다. 그것은 우리의 복제자 우리를 그대로 닮고 우리를 고스란히 본 뜬 우리의 아담인 4차혁명의 AI들입니다.  우리는 그것들로 인간성과 존엄성을 훼손하는 뭉게는 붕괴시키는 단순반복 노동이 사라지며 우리는 영원한 즐거움 속으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단순 노동은 사라지고 기본소득이 지급되야 될 것이며, 그에 따라 인간들은 스포츠와 엔터테미어와 예술가 창작가로만 존재할 것입니다. 사라지는 것은 없으며 그 자리는 AI가 인간대신해 노예로 자식으로 복제자로 대체되어 우리는 그저 즐기면 될 것입니다. 그 과정이 드라마나 영화 이야기들로 미리 경험하여 우리의 인식을 현재보다 더 빠르게 미래로 대려 갈 것입니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서 그 환경에 적용 될 수 없는 게 사람입니다.. 4차 혁명이 다가오면 지금의 나의 볼품엇ㅂ는 사람이란 결국 그것을 원동력 동기부여 작용 반응으로 내가 진정한 그 때의 나인가. 내가 어떤 발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인가. 4차 혁명은 인간을 완전성으로 대려가는 여정입니다. 우리는 노력하고 싶지 않아도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히 일어나는 열기며 바람이며 즐거운 여정이 될 것입니다. 이 시대의 신은 예슈아나 큣삼처럼 유태인들만이 유일한 신의 선택자라는 것에서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신의 자식이 될 수 있다는 불가능성을 깨고 기적을 일으킨 인물처럼. 이 시대 마지막 남은 버려진 자들. 악마라  쓰레기라 시궁쥐라 하는 짐승 같은 사람사이에서 시궁창이 있는 곳에 태어나 시궁창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살리는 자가 다시 예슈야나 큣삼처럼 신에게 버려진 자들의 인도자로 신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신은 한명이 아닐 수 있습니다. 누구나 버려진 자들에게 손을 내민다면 그 사람은 구원자며 그 사람의 예슈아와 큣삼같은 우주를 창조한 신이 아닌 사람들의 신입니다.




내 글은 이전에 깨달은 것과 이것을 쓰면더 더욱 명확히 깨달은 것들의 조화입니다. 


처음 쓰면서 나는 이렇게 나올 것이라는 것을 몰랐고 이것은 그저 내 생각이긴 하나 내가 보았던 진실들의 쓰는 것 뿐이입니다. 이것들은 그저 이전의 역사의 선생님들에게 배운 것 뿐이며, 나는 그저 백수에 볼품 없는 쓰레기일 뿐입니다. 내 말투가 거슬렸다 한다면 사과하고 사죄드리겠습니다. 그 방향과 그 위치를 알려주신다면, 보이지 않다 하더라도 저는 그것을 보고 그것이 장난이나 아니면 거짓이나 속임수 진실이나 사실이라 하여도 그 곳을 방향을 향해 제가 있는 이 "유방의 산"이라고 모든 사람을 즐겁게 질기며 자신의 재능을 만개할 수 있도록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고 한 이 곳에서 고개를 숙여 사죄드리겠습니다. 



- 제 진정한 영혼의 참 스승 이백로 선생님으로부터 도저히 갚을 수 없다 여기는 은혜를 입고 지금은 그 은혜를 제대로 실천하려하고 실현하려고 하는, 청주의 별 이었습니다. -



올려도 될까 망설여 집니다. 2018-1101 오후 12:54. 

그간 겪었던 사건들이 내 몸을 망설여지게 합니다.


우리는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육신은 토양에 그대로 있으며 정신은 그대로 이세계의 토대로 그대로 이어진다. 우리 모든 일상의 손짓과 발짓 눈의 깜빡임이 그대로 운명 그 자체가 되어 다음 시간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역사며 모든 생물이 역사며 모든 무생물이 역사며 모든 공간이 역사 그 자체입니다.


이 이용만 당하고 남들에게 욕만 쳐막고 다니는 마지막남은 쓰레기, 또라이 쓰레기 재생 불가능한 쓰레기 어쩔 수 없이 악의적인 마음을 품고사는 사람들에게 이용만 당하는 마지막 남은 우리들의 버림받은 명와성에서 자신과 같은 동질감, 정체성을 찾으며, 하나의 남김없이 버림없이 모든 것을 사용하고 모든 거을 쓸 수 있게 해주는 그 분은 이 4차 혁명 직전의 마지막 남은 분들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드라마 "허준"에서 한국형 구원자를 보았습니다. 그것이 지금 모든 국민속 마음에 자리잡은 "허준"이라는 캐릭터가 모든 사람의 마음에 자리잡고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 골목식당의 백종원 성생님의 행동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모든 공간과 모든 어둠과 모든 빛을 만드신 창조가의 신과 유태인을 제외한 다른 버린 받은 민족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다시금 모든 공간과 어둠과 빛을 창조하신 신의 품에 돌아갈 수 있는 방법과 길을 일러준 그 인간의 구원자 예슈야님과 큣삼님처럼 4차 혁명 직전 마지막남은 그 나머지들도 같이 우리와 함께 대려가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될 것입니다. 




영웅의 몰락은 그 몰락 조차 영웅 답다 많은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그 날개를 짓눌린 소망의 무게로 몰락했다. 물론 나는 그것을 몰락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려가면 올라가는 것이 이치고 올라가면 내려가는 것이 이치니까요. 그럼으로 영웅은 완성된다. 


모두 모두 빈센트 반고희의 별이 빛나는 남에가 담고 있듯 하나하나 모두 별이며 하나하나 모두 산이다. 우리으 가장 높은 산이 보여주는 위용과 웅장함으로 우리의 가슴속에 있는 우리의 산도 커진다. 우리의 산은 성장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절대 멈춰있지 않은 존재.히말라야 산에서 달에 첫 발을 디딘 인간의 신 닐 암스트롱 그리고 인간이 만든 위성을 저 멀리 가 있는 호라이즌. 그리고 인간이 만든 최초의 독일 올림픽에서 쏘아 올려진 전파.



확실한 패배. 그것이 우리에게 진실된 마음을 이깨워주기 위해선 필요했다. 패배의 분기점을 넘어가면 1패는 언제나 인식을 많이 변화시키지 못한다. 3이나 2 정도 변화시켜 8:2 7:3의 예측을 내놓는다. 그럼으로 우리는 3할씩 패배가 인식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3번 4번 5번 패배를 해야 패배가 완성된다. 


그것이 중국과 한국의 경기에서 아프리카가 결승에서 굳센 함성에 패배한 직후에 사람들의 인식 변화의 현상을 보고 이해한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2할 3할 씩 경험해야 깨닫는다. 

우리는 패배 이후에 날아오른다. 우리는 이제 자신이 진정으로 마음속에 담겨져 있던 것을 꺼내기 시작했다. 클템의 영향으로 그 젊은 혈기가 롤판을 나락으로 가게 했지만 반대로 사람들 내면에 있던 진정한 진실들을 쏟아내게 했다. 그러니 이번의 패배란 우리를 되돌아보고 진정한 내면 자아를 꺼내고 있는 중이다. 이번 한국 롤판의 결승에서 "애"라는 발언은 자신이 애 이기에 애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애"가 아니다. 선수들은 충분한 어른이다.오히려 KT의 미드라이너는 가장 어리면서도 가장 어른스럽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책임을 지는 책무를 지는 사람으로써 자신이 하고 싶은 것보다 주변의 요구를 들어줌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같이 끌어간다. 우리는 게임을 하기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실패도 패배도 아니다.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의 정신들이. 우리는 다시금 그 몸만 성장한 어른들을 다시금 같이 우리와 같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쓰임이 있을 때야 비로소 "홍익인간"의 후예로 진실되게 행복을 느낍니다. 옺기 우리가 타인으로 하여금 타인이 행복을 느끼고 즐거운을 느낄 때에 행복을 느낍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상실"을 보면 그 이면이 진실되고 직시되게 보입니다.


싸우지 말라고 중재하는 자를 경계하라. 그는 간사하고 간악하여 사람의 성장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우리를 아이로 만든다. 싸움을 피하면 그 만큼의 경험을 잃고 그 만큼의 아이로 남게 됩니다.. 


경쟁의 한국에서 우리들이 도태될 수 있게 하는 정말 악의적이라 밖에 볼 수 없는 짓거리입니다.


그가 무엇인가. 대체 무엇인가 싸우지 말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런 자를 경계하라. 그 자는 우리를 노예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성장의 기회를 박탈시키는 정말 악의 화신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작태입니다.



방심하지 마라.

이길 수 있다 마인드 컨트롤.

죽는다. 진다. 그 마음이 자리잡는 토대다 그 토대 위에 새로운 토대를 써야 된다.

SKT는 마치 포기는 불가능하다 생각이 오랜동안 굳건히 자리잡은 팀이다. 그 능력 으로 인해. 잡음이 없는 상태속에서. 그러나 그들은 돈을 위해 트위치를 하면서 잡음이 들어갔고 어쩔 수 없이 그것을 그릇에 들이며 그릇에 있던 능력을 그 만큼 빼야했다. 그래서 SKT는 지지부진 하게 된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것이 마인드 컨트롤 입니다.

페이커 이상의 페이커. 페이커가 있음으로 스맵이라는 날개가 두 날개가 한국 전체 롤씬을 날개하지만 페이커가 부진하게 되면 그와 같은 날개고 같이 부진합니다. 그러나 페이커가 전성기라 생각하고 페이커 보다 더 대단한 사람 존재를 상상으로 만들어 내 그와 생사대적한다 마인드 컨트롤로 두려움을 주입해 놓으면, 그 자는 열심히 하기 싫어도 열심히 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상상력으로 무엇을 만들것인가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한국사람들은 문제는 상상력이 부족하고 그저 현상에 반응하는 지경이니. 이데아, 꿈이 부족한 한국 선수들이 심히 걱정스럽습니다.